은영선생님은 지금 시대의 국악의 대가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그의 대표곡은 "백화정" 이였다.유현진도 이 사람을 아주 잘 알고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어머니 하현주가 은영의 광팬이였었고 집안에 은영선생님의 앨범이 잔뜩 보관되여있었다.게다가 그녀는 어릴때 하현주를 따라서 몇번이나 콘서트장에 간적이 있었다, 콘서트장에 울려퍼지는 그의 곡조는 과연 최고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였다.은영선생님은 그녀가 성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그녀는 은영선생님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목소리로 감정을 전달하는 성우의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도 자신의 목소리로 남한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은영선생님께서 나이가 50이 되던 해에 은퇴를 선언하고 이후부터 교육사업에 매진할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때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은영선생님은 한번도 무대에 선적이 없었다. 이 기간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에게 초청을 보냈었지만 하나도 예외없이 모두 다 거절을 당했다.(송민희가 그 사람의 제자를 안다 한들 무슨 방법이 있어? 당시에 은영선생님의 가족들과도 친한 사람도 결국엔 실패했잖아.)송민희는 아마도 직접 가보진 않은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자신 있는 목소리로"비록 은퇴하셨지만 친구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시진 않겠지요? 원래 제가 바로 친구를 찾아가서 초청하려고 했는데 아직 형수님이랑 상의해보진 않았고 또 형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서 아직까지 미뤘어요."송민희는 숨을 고른후 말을 계속해 이어갔다."듣기론 형수님께서 최근에 미용원에 투자를 하셨다고, 방금 개업해서 신경써야 될 일이 많으시죠? 형수님 번거로울까봐 어머님 팔순잔치는 제가 맡을게요.신미정은 그녀를 흘겨보며"동서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 팔순잔치보다 더 중요한게 어디 있겠어? 그 미용원은 그냥 심심풀이로 투자 조금 한 것 뿐이야, 대주주도 아니고, 그냥 연말에 보너스 타가는 정도지. 그래서 평일엔 한가해. 그리고 팔순잔치는 당연히 맏며느리가 도맡아 해야지 않겠어? 어
강민서도 동참하며 한마디 거들었다."할머니, 제 오빠 생일준비도 제대로 못하는데, 팔순잔치라는 큰 일을 해낼수 있을까요? 무조건 망신을 당할거예요."강한서의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어른들이 말하시는데 어딜 감히 끼어들어? 예절 못 배웠어?"이에 강민서는 입을 다물고는 말 없이 유현진을 째려봤다.유현진은 감히 찍소리도 낼수 없었다.이건 그녀한테 청천벽력같은 일이였고 결코 좋은 일이 아니였다.지혜로운 할머니는 분명 둘중에 한 명을 선택한다면 다른 한쪽에게 원한을 살 수 있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그래서 이 뜨거운 감자는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너희들도 다 젊었을 때가 있었잖니? 젊은 사람은 많이 경험해 봐야해, 누구나 태여날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어. 현진아, 네 생각은 어떻니?"할머니는 유현진을 바라봤다.비록 할머니는 의사를 물어보는듯이 질문을 건넸지만 그 눈빛은 마치"감히 안 한다고 말 할수 있을까?"라고 말하는것 같았다.유현진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져서 반나절이 지나서야 대답했다."할머니, 저는 제가 실수라도 할까봐 두려워요.""젊은 사람은 실패하는걸 두려워해선 안된단다, 계속되는 실패속에서 교훈을 얻는거야. 할 줄 모르면 옆에서 배우고 모르는게 있으면 너의 시어머니랑 작은 어머니한테 물어보거라, 모두 흔쾌히 알려줄거다."송민희는 할머니의 태도에서 이번 팔순잔치에서 그녀의 역할은 없다는걸 보아냈다.그녀는 신미정을 흘겨보았다. 상대방의 안색은 그녀보다 더욱 안 좋았다.그녀는 이를 보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가 못 한걸 신미정도 못했으니, 심지어 맏며느리에게 유현진에게 맡길 정도면 할머니의 맘속에서는 그녀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그리고 이 일이 유현진에게 돌아간 이상, 그녀가 나서지 않아도 신미정이 알아서 그녀를 방해할것이라고 생각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송민희는 입을 열었다."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데 저희가 어쩔 도리가 있나요? 애
송민희는 신미정이 반나절동안 말을 하지 않는걸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형수님, 왜 아무말도 하지 않으세요? 혹시 이 처사에 대해서 맘에 들지 않으시는건 아니죠? 현진이가 준비하는거랑 형수님께서 준비하는게 뭐가 다릅니까, 모두 큰집에서 하는건데. 준비 잘하면 모두한테 좋을거예요."이와 같이 만약 준비를 잘 못한다면 큰집 모두의 체면을 잃게 될게 뻔했다.신미정은 마음속의 울분을 억누르고 태연하게 송민희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어머니가 현진이한테 시킨것에 대해선 아무런 의견도 없어, 그냥 걱정이 들 뿐이야."말을 마치고 유현진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현진아, 끝난후에 집에 잠깐 들르거라, 내가 전체 순서를 한 번 알려주마, 모르는게 있으면 맘껏 물어봐도 된단다, 돈 아끼지 말고 되도록 완벽하게 준비해야 돼."유현진은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어머니."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할머니는 아주 기뻐보였다. 공적인 대화가 끝나고 할머니는 배가 고프다고 일찍 식사를 하자고 했다.강씨 가문의 규칙을 비록 많진 않지만 모두가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예를 들면 할머니께서 공적인 일에 대해서 말할때 강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말을 끼어들어선 안되고 사적인 일을 말할땐 남자들이 말해선 안 되였다. 마치 방금 팔순잔치에 대해서 토론할때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서와 둘째 삼촌은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지 않았다.밥상위에서 할머니가 회사에 대한 일들을 묻자 둘째 삼촌과 강한서가 주로 이에 대답했고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이 말들을 듣고 있었다.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거실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유현진은 식사가 끝나고 주방정리를 도우고 있었다.진씨 아주머니는 눈치가 빨랐기에 낮은 목소리로 유현진에게 말을 걸었다."사모님, 이런건 제가 할테니 거실에서 모두와 함께 티타임을 즐기시는게 어떤가요?""괜찮아요, 방금 먹은걸 소화시킬겸 하고 있는거예요."그녀가 신미정이 바라는걸 빼앗았기에 만약
주얼리 전시회에서 주제넘게 나섰고, 그녀의 사람을 짤랐고, 그리고 전화통화에서 아주 건방지게 말했었던 일로 하여금 두사람의 관계는 표면상의 평온함만 간간히 유지하고 있었다.그녀가 만약 잔치준비를 신미정한테 넘긴다 하더라도 신미정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게 뻔했다.어쨌든 미움을 살 만큼 샀으니 기회가 손에 들어온 이상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잔치준비에 대한 사례금이라던가.(10년전에 사례금이 아홉자리수나 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그보단 적지 않겠지?)유현진은 과일접시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는 도중에 강현우와 맞닥뜨렸다.강현우는 벽에 기대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아직 불붙지 않은 담배가 떨어졌고 눈을 조용히 감고있었다.유현진은 그를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거실로 향했다.강현우는 담배를 귀에 걸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접시위의 딸기를 손에 쥐였다."형수님, 오래간만에 뵙는데, 어째서 이렇게 매정하신가요?"유현진은 차갑게 바라보며"비켜."라고 외마디를 뱉었다.강현우는 그녀 손안의 과일접시를 힐끔 보고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손가락으로 유현진의 손끝을 스치며 입을 열었다."이렇게 차가운데 제가 들어드리죠."유현진은 그의 터치를 피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강현우, 역시 사람성격은 안 변한다더니, 밖에서 충분히 놀만큼 놀지 않았어? 이젠 나한테 까지 손을 대? 미쳤어?"강현우는 입술을 만지며 말을 계속해 이어나갔다."형수님, 그게 아니죠. 처음부터 저를 꼬신건 형수님이 아니십니까? 결혼첫날밤도 저랑 함께 하셨으면서 너무 매정한거 아닌가요?"유현진은 얼굴색이 어두워지면서 그를 노려봤다."강현우, 그 말을 어디 한번 강한서 앞에서 지껄이지그래? 그 사람이 널 어떻게 대할까?"강현우는 이에 아무렇지도 않은듯"말하라면 말하죠, 이 일에 대해선 제가 피해잔데요?"유현진은 갑자기"여보 다 들었죠?"강현우는 이를 듣고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에선 식은 땀이 나고 있었다.하지
계단을 오르고 있을때에서야 강한서는 방금 일에 대해 물어보고있었다.그는 강현우와 유현진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랐다.할머니와 둘째 삼촌은 공적인 일로 대화하러 서재에 들어갔고 송민희는 팔순잔치의 일로 아직까지도 불만을 토로했고 신미정도 이에 대해서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있었다. 강한서는 옆에서 들어주기 귀찮아서 구실을 찾아서 거실에서 빠져나와 유현진한테 갔었다.도착하자마자 강현우가 유현진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진 몰랐지만 유현진은 인상을 쓰고 있었고 표정도 아주 좋치 못했다.저번에 회사에서의 상황과 똑같았다.유현진은 강현우에 대한 혐오감을 하나도 감추지 않았다."별 거 아니야, 그냥 농담 몇마디 주고받았어."유현진은 몇마디로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하였다.사실 이 일에 대해선 그녀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잘 몰랐다, 이 일을 자세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강민서와 신미정도 서로 연관되여 있다는걸 알수있기 때문이였다.당시 결혼식장에서 강한서가 그녀를 내버려두고 떠난후에 그녀가 술대접을 하는 도중 비록 신학의 도움으로 위기에선 벗어났지만 그래도 많은 술을 마신 상태였다.집에 돌아가고 있을땐 이미 휘청거리고 있었다.강민서와 집안의 가정부가 그녀를 도와서 방안에 데려다 주었다.당시 그녀는 스무살 남짓이였기에 신혼 첫날밤에 그녀를 내팽겨치고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났다는 사실에 대해서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을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수 없었다.방안에 돌아오자 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눈물을 훔쳤다.시간이 지나고 우는것에 지친 그녀는 정신이 희미한 채로 잠에 들었다.잠결에 누군가가 그녀의 위에 올라타서 그녀를 만지고 있었고 그 힘이 너무도 쎄서 아파서 깨났다.방안은 어두컴컴했고 술도 적잖히 마셨었고 눈 앞에 광경이 뚜렷하게 보이지않았기에 강한서로 착각했었다.오늘 하루의 억울함이 물밀듯 몰려와서 그녀는 상대방의 어깨를 안고 낮은 소리로 그를 원망했다.상대방은 그녀의 턱을 잡고 낮은 숨소리를 내며"얼굴만 예쁘게 생
강민서가 그를 방에 데려다 준 이후로 유현진은 방을 나선 적이 없기에 스스로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갈 리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강씨 가족의 옛 저택에 처음 간 유현진은 강한서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강민서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하지만 유현진이 아무리 변명해도 신미정은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잘못 기억했다고 우겼다.당시 유현진은 어렸고, 잘잘못을 따져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에 급급했기에 당장 정인월을 찾아가 이 일을 명백히 조사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신미정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그는 이 사건 자체가 너무 황당무계하여 더 떠벌려봐야 강한서의 오점만 더 되겠냐고 하였다. 진실이 어떠하든 어쨌거나 신혼 첫날밤 유현진이 강현우와 엮인 건 사실이고, 아무리 정인월에게 알려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말이다.당시 너무 단순했던 유현진은 신미정이 강한서를 내세우자 바로 위축됐다.그는 강한서마저 자신을 이상한 여자로 생각할까봐 두려웠다. 타인의 시선은 간과할 수 있으나 강한서의 시선은 신경이 쓰였다.신미정은 '집안 망신'이라는 이유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유현진이 당시 그 사건을 무덤까지 가져가도록 구슬렸다. 강현우야 자신이 형수를 추행한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떠벌릴 리 없었다.그 일이 있고나서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야 유현진은 당시 신미정이 그 일을 묻으려고 한 것이 강민서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이런 일은 일단 조사하기 시작하면 진실은 자연스레 수면 위에 떠오른다. 유현진은 한때 강한서에게 이 일을 솔직히 말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강한서가 안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강민서는 강한서의 동생이다. 가족이라면 끔찍한 그로서는 기껏해야 몇 마디 혼내고 말겠지. 아니면 아예 신민정처럼 진실을 알면서도 강민서를 보호하기 위해 잘못을 자신에게 들씌우거나.어떠하든지 결과는 다를 게 없다는 게 당시 유현진의 판단이었다.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유현진 스스로도 더이상 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강한서가 물어
"슥"유현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강산서의 손등을 내리쳤다."아파! 당신 상처를 누르면 안 아파?"유현진의 팔꿈치에 난 성처도 강한서의 머리에 난 상처와 같이 크루즈에 올랐던 당일 밤에 남은 것이다.팔꿈치 뿐만 아니라 유현진은 무릎에도 상처가 났다.강한서는 유현진을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아무말 없길래 난 또 안 아픈 줄 알았지."그러면서 면봉으로 약을 묻혀서는 유현진의 팔꿈치에 부드럽게 발라주었다."이 약은 할머니가 의사선생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조제한 거라, 다친 데 엄청 효과가 좋아. 한 번 바르면 바로 좋아질 거야.""그렇게 좋아? 그럼 갈 때 가져가야겠다."촬영할 때 다치는 건 흔한 일이다. 멍 들면 외관에 영향 주는 건 차치하더라도 엄청 아프다. 이 약이 그렇게 효과가 좋은면 당연히 가져가서 사용해야지.그러자 강한서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할머니에게도 이 한 병밖에 없어. 그 의사선생님이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서 1년 안에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이 약을 보배처럼 여기고 있어. 지난번에 민서가 말 타다가 떨어져 발목을 삐었는데도 할머니가 아까워서 안 내놓았는데, 지금 아예 가져가겠다고?"이 말은 꿈 깨라는 소리다!유현진이 입을 삐죽거리면서 속으로 할머니가 나한테 그렇게 큰 임무를 맡겼는데 약 한 병이 뭐라고?"여보! 우리 뭐 좀 의논하자!"이 말에 강한서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난번에 유현진이 이런 말투로 시작해서 그에게 요구한 것은 신혼집을 가지겠다는 거였다.강한서는 입술을 깨물고 약을 다 바른 유현진의 다리를 훅 던지면서 냉담하게 한마디 했다. "의논할 거 없어!"유현진이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내가 뭘 말할지 알고?"강한서가 유현진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좋은 일이면 당신이 나랑 의논할 리 없잖아?"유현진이 켕기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그건 또 무슨 말이야? 좋은 일이니까 여보랑 의논하는 거지."강한서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면봉을 버리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유현진이 홧김에 말했다."안되면 성우 씨나 강운 씨를 찾아가서 빌릴거야. 그 두 사람한테 이자를 20퍼센트를 주면 되지뭐. 적어도 당신같은 흡혈귀한테 빨리는 것보다는 나아."강한서가 멈칫하더니 실눈을 위협적으로 뜨면서 말했다."그러기만 해봐!""왜? 난 그럴 건데!"유현진은 말하면서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누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강한서가 어두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뺏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유현진이 침대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강한서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강한서도 균형을 잃으면서 두 사람은 함께 침대 위에 넘어졌다.이때 마침 신미정이 정인월을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와 얼굴을 붉히고 침대에 누워있는 유현진과, 눈을 붉히고 유현진의 몸 위에 엎드려 있는 강한서를 보았다.정인월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신미정이 큰소리로 두 사람을 혼냈다."너희 두 사람 지금 뭐하는 거야?"이 소리에 깜짝 놀란 유현진은 바로 강한서를 밀치고 옷차림을 정리하면서 일어나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정인월을 불렀다."할머니."강한서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넥타이를 바로잡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팔순잔치를 준비하는 일이 물건너가고 나서 유현진에게 원한이 가득 맺힌 신미정은 눈앞의 장면이 눈꼴사나웠다."현진아, 시집 온 지 이젠 여러 해가 됐는데 여태 이리 철없으면 어떡하니. 이게 어디라고 함부로 이렇게 노닥거리는 거야? 남들 입방아에 오르면 어쩔려고? 너희 부모님께서 이렇게 가르쳤어?"안색이 어두워진 유현진은 입술을 깨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한서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엄마가 남한테 말하지 않으면 남들이 어떻게 알아?"신미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화난 어투로 말했다."한서야 그 말은 또 무슨 뜻이야? 내가 이젠 현진이한테 말도 못해?"강한서가 대꾸하기 전에 정인월이 입을 열었다."한서 말도 일리가 있다. 이 자리에 우리밖에 없는데 남들이 어떻게 알아?"그러고는 두 사람한
한현진은 그녀의 호적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이시연은 오래 기다렸고 그 사이 네 명이 더 끼어든 후에야 은서하가 비로소 돌아왔다. 그녀는 땀에 젖어 얼굴이 여전히 창백했고 얼굴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이시연은 그녀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아직도 괜찮지 않은 거예요? 의사한테 같이 가줄까요?”은서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화장실 갔다 오니까 많이 나아졌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이시연은 결과지를 건네며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면 승진하고 나 좀 잘 챙겨줘요.”은서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자리만 지킬 수 있어도 감사하죠. 승진은 꿈도 안 꿔요.”잠시 멈추고선 덧붙였다. “대회 준비는 어떻게 돼가요?”“그냥 그럭저럭이죠. 서 대표님이 이번에 강력한 카드를 데려왔으니까 우리는 그저 배경일 뿐이죠.” 이시연의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친선 경기라고 보면 되죠 뭐.”은서하는 향료 조향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래도 좀 더 열심히 해봐야죠. 안 그러면 너무 아쉬울 거 같아요.”이시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클라우드 아파트 902.“현진아, 이건 어때?”차미주는 흰 티에 청바지 오버롤을 입고 한현진 앞에서 빙그르르 돌며 물었다. “어때?”한현진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 여유 있게 대답했다. “나쁘지 않아.”“그럼 아까 그 꽃무늬 원피스는?”“그것도 괜찮아.”차미주는 눈꺼플이 살짝 뛰었다. “그럼 이 노란 운동복은?”“비슷해.”차미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너 지금 뭐야? 그냥 대충 말하는 거지? 다 비슷하면 난 도대체 뭘 입어야 해?”한현진은 웃으며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내가 너 대충 대하는 게 아니야. 오면서 계속 생각했어. 너한테 좀 더 격식을 차린 옷을 입힐지 아니면 너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힐지 말이야. 평소에 이렇게 캐주얼한 옷을 입고 다니니까 갑자기 정장 스타일을 입으면 길도 제대로 못 걸을 거고 스
한현진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서해금 옆에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벌써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법을 배우셨군요.”은서하의 얼굴이 잠시 창백해졌지만 이내 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 대표님, 저를 싫어하시든 미워하시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주혁이라는 사람. 그 사람만큼은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주혁 씨가 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운전기사일 뿐인데? 당신 말대로라면 그 사람이 다른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건가요?”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난 당신이 정말로 걱정해서 경고해 주는 건지 아니면 고의로 우리 사이를 흔들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은서하는 더 조급해졌다. “저는 이간질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만큼은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 하세요. 한 대표님,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어요. 제가 아무리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도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안 할 거예요.”초조해하는 은서하와는 달리 한현진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단호하게 물었다. “내가 그때 당신을 도와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죠? 갑자기 등을 돌리지 않았나요? 은서하 씨,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은서하는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 대표님, 저는 겁이 많고 피할 줄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알아요. 최소한 저를 도와주셨던 대표님을 해칠 수 없다는거요.” 그녀의 진지한 말투에 한현진은 마음이 흔들렸다.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바라보다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주혁 씨를 멀리하라는 이유라고 말해보세요.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설득 될 만한 이유요.”은서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움켜잡은 채 잠시 입을 다물었다.한현진은 지칠 대로 지쳐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유가 없다면 더 이상 여기서 나를 걱정한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은서하는 급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말하지
[서해금이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 만약 네가 은서하고 우연히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걸 이용해서 서대금이 나를 잠시라도 회사에서 밀어낼 수 있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넌 그 기회를 통해 승진하고 월급도 올리고 사장 앞에서 좋은 이미지도 쌓을 수 있어. 그 상황에서 너라면 그걸 참을 수 있겠어?]차미주는 그 말에 감탄하며 말했다. [임신한 채로도 이렇게 계산적이네? 너 아이 낳으면 두 명의 도깨비가 나올까 봐 걱정돼.]한현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럴 리 없을 거야. 강한서가 매일 내 옆에서 를 읽어주고 있어. 맨날 애들한테도 읽어주니까 조금은 성품이 좋을 거야.][강한서 진짜 대단하다. 넌 그걸 듣고 있어?][안 듣지.] 한현진이 대답했다. [난 이어폰 끼고 드라마 봐. 강한서가 애들한테 읽어주고.]차미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국 는 아무 소용없다는 거네.][왜?] 한현진이 물었다.차미주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엄마가 항상 그러셨어. 아이는 유전이 중요하다고.] [옛말에 그런 말 있잖아. 용은 용을 낳고 봉항은 봉황이 낳는다고. 네가 도덕이 없다면 강한서이 아무리 를 많이 읽어줘도 소용없어.”[너 진짜!] 한현진이 이빨을 갈며 말했다. [한성우 씨랑 있더닌 이제는 입만 잘 돌아가네.][오래 배운 거 이럴 때 써먹어야지.]한현진은 코웃음을 쳤다. [나랑 연습하면 뭐 해. 능력 있으면 너희 사장한테 가서 연습해.]차미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안 돼. 사장한테서 월급 받아야 해.]차미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있잖아.그 사람이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해서 밥을 먹자고 하는데 네가 봤을 때 첫 만남에 뭘 입고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할까? 정말 고민돼.]한현진은 답했다. [내가 경험이 많아 보여?][두 번이나 결혼했잖아. 너가 없으면 누가 경험 있겠어.]한현진은 담담하게
은서하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건강검진표를 꽉 쥔 채 한현진의 뒤로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현진의 배로 향했다. 한현진은 회사에 와서부터 항상 허리 라인이 보이지 않는 넉넉한 옷만 입었다. 뒷모습으로 보면 여전히 날씬해 보였고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현진이 특정 동작을 할 때 배가 살짝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한현진의 차에 탔을 때 그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살이 찐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은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한현진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혹시 서해금 때문일까?’은서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마치 그녀의 발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나누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줄을 빠져나갔다.은서하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한 대표님, 검사 안 하세요?”한현진은 천천히 돌아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올려구요.” 그리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한현진이 떠난 뒤 이시연이 나타났다. “한 대표님 어디 가셨어요?” 이시연은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은서하가 대답했다. “전화를 받으시더니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셨어요. 나중에 다시 오신다고 했어요.”“그렇군요.” 이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한 대표님과 얘기 해봤어요? 예전에 그 분의 옷을 받고 따돌림 당하고 급여도 깎였다고 했을 때 한 대표님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어요.” “그때 한 대표님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었죠. 후에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 대표님은 정말 착한 분이세요. 잘 사과하면 한 대표님이 이해해줄 거예요.”은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대표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저는 그런 얘길 꺼낼 입장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그냥 작은 직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시연과 은서하가 진단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이시연이 은서하의 손을 이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한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건강검진 받으러 오신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은서하를 가볍게 훑어본 뒤 다시 이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오늘입니까?” 이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어제가 제 날짜였는데 어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른 분이랑 바꿨어요. 서하 씨랑 같이 오려고요.” “가족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직장에서 추가 의료보험을 들어두셔서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하 씨 외할머니의 병은 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은서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시연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주혁에게로 흘러갔다. 주혁은 예민하게 그 시선을 포착했다. 둘의 눈이 맞닿자 은서하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건강검진 순서가 불리기 시작했다.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얘기 나누세요. 전 애들 데리고 먼저 검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주상욱와 함께 자리를 떠나자 이시연이 한현진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한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먼저 채혈하고 나서 초음파 검사하면 순서가 빨라요. 그러면 금방 검사 끝내고 식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채혈은 이미 했어요. 먼저 가요. 난 초음파실 앞에서 번호표 뽑아둘게요.” 한현진은 애초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주혁이 진짜 주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난 뒤부터 직접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내 무심한 척 주혁을 은근히 살폈다. 주혁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얼굴이었다.
주혁이 설명했다. “상욱이가 자신이 보낸 그림 잘 받았는지 물어봐요.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해요.”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주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든다는 걸 수화로 어떻게 하면 돼요?”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하면 돼요. 상욱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게 서툴러요.”사실 주상욱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납치 사건에서 구출된 후 청력을 잃었다. 오랫동안 그는 청각장애인처럼 생활했으며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못 들은 것도 있지만 또한 납치 당시 겪은 충격 때문에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어 능력도 점차 떨어졌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후 보청기를 장착한 뒤 청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꼈다.한현진은 주상욱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주상욱은 눈이 반짝이며 수화를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글을 한 문장 써서 한현진에게 건넸다.“나 보라고?”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현진은 고개를 숙여서 화면을 읽었다. [누나, 아빠에게 휴가를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빠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이제 누나 옆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와 엄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거예요. 아빠 대신 사과하고 싶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한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아이의 말은 서툴고 순수했지만 그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입에 담은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글 한 줄을 적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네 아빠를 탓하지 않아.]주혁은 이제 그녀 곁에서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