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운은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보니 송민영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선박위는 이따금 바람이 불어서 날씨가 꽤 쌀쌀했었지만 송민영은 아주 청량하게 입고 왔었다.옅은 회색에 소매가 없는 드레스, 얇은 재질. 갑판위의 조명들의 그녀의 옷에 반사되여 부드러운 불빛을 내고 있었다. 주위의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눈부시고 사람의 이목을 끌게 만들었다.화장도 꽤 신경을 쓴것 같았다, 긴 생머리가 머리뒤로 늘어져있었고 앞머리가 차분하게 이마를 덮었다, 우아한 자태와 배우로써의 극강의 표정관리를 추가하니 아무리 유현진이 그녀를 엄청 싫어한다해도 오늘 밤 송민영은 확실히 예쁘다는 걸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주강운은 자신의 예측을 말했다."아마도 주최측에서 연극 배우를 초청한것 같네요."유람선에선 매 일마다 세 차례의 공연이 있었다, 송민영도 공연자중 한 명일것이였다."주최측에서 돈이 많나 보네요, 그녀도 초청하고?"유람선의 대 극장에 초청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연극단 아니면 오케스트라 팀이였다. 송민영 이런 사람이 와서 연극을 한다면 분명히 연극의 질이 떨어질게 뻔했다.말하는 도중 뒤에서 한성우가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말했지? 형수님은 갑판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배가 이렇게 큰데 수영해서 돌아갈수 있을리가."유현진이 몸을 돌리자 강한서의 굳은 얼굴이 시야로 들어왔다.눈 앞까지 걸어온후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그녀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깨어나자마자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바다에라도 빠지면 어떡할래?"유현진은 이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개 자식, 그 입이 문제야!)그녀는 손을 빼더니 그를 째려봤다."내가 바다에 빠진다 해도 당신이 신경 쓸건 없어!"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태연하게 답했다."누가 건져내든 수고비를 쥐야겠지, 결혼할 때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데."유현진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아무리 말을 곱씹어봐도 이상했다, 뭔가 빈정거리는 것보단 어쩔 도리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강운, 너
강한서도 이를 보아내고는 물었다."맛이 없어?""아니, 엄청 맛있어."강한서가 어쩌다가 한 번 사람 노릇을 했는데 유현진도 그 마음을 거절하고 싶진 않았지만 배가 너무 불렀던 탓에 낮은 목소리로"그냥 배가 안 고파."강한서는 이를 믿지 않았다."배가 너무 고파서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내 앞에서 허겁지겁 먹는게 수치스러워?"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입을 다물자 강한서의 얼굴색이 밝아지며"당신이 취했을때, 내가 당신이 화장실에서 한 짓도 봤었는데, 고작 먹는 모습을 봤다고 정 떨어질까봐?"유현진은 입꼬리가 떨렸다."밥 먹을때 그런 더러운 얘기는 하지 말지?"강한서는 이에"이거 그 대사 아냐?"유현진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원래도 못 먹는데 개 자식이 그녀가 전에 그한테 해줬던 썰을 푸니까 더욱더 식욕이 없었다.그녀는 간신히 죽을 먹고는 물었다."증조 할아버지께선 어디 가셨어?""사람들과 도박하러 가셨어.""뭐?"유현진은 하마트면 뛰어오를뻔 했다."당신, 왜서 안 말렸어?"강한서는 이에 태연하게 답했다."내가 보기엔 엄청 즐기시던데?""그래도 그렇지, 지면 어떡하려고?"배위의 사람들은 억만장자는 아니라 해도 대부분은 백만장자쯤은 되였다. 여기 도박장의 칩은 비록 그들에겐 푼돈이였지만 일반인에겐 엄청난 돈이였기때문에 한 판 한 판에 거금이 오고갔다.증조할아버지께선 한평생 자신의 동네에서만 생활했었기 때문에 아무리 큰 도박판이라 해봤자 평소 동네 어르신들과의 노름판에서 고작 몇백 몇천원만 따가거나 잃을게 뻔했다.(이런 큰 돈이 오고가는 도박판을 증조할아버지께서 경험했을 리가 없지, 만약 진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하지만 강한서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내가 보기엔 오늘 운이 좋으셔, 혹시 진다고 해도......"그는 말을 잠깐 멈췄다가 유현진을 다시 바라보며"당신 2000억통장에서 메꾸면 되겠네."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도박에서 지는건 사소한 일이였고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는건 증조할아버지
그리고는 또 다른 주머니에서 칩을 꺼냈다, 또 그리고 바지 주머니, 심지어는 셔츠 안쪽 주머니에서도 칩이 나왔다.유현진은 마치 도라에몽을 보는듯한 착각을 느꼈다, 계속해서 숨겨놓은 칩을 꺼내고 있었다. 칩은 탁자위에서 산을 이루고 있었다.유현진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질 않았다.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서 강한서를 바라봤다. 하지만 강한서는 태연한 태도로"내가 말했잖아, 운이 좋으시다고."(운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한 번도 져본적이 없는게 아니야?)탁자위의 칩은 테이블 차지랑 딜러한테 주는 팁을 제외해서 계산한 결과 3억 4000만원을 땄다.유현진은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났다, 이 정도는 그녀가 연기를 해서 번 돈보다 훨씬 많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증조할아버지랑 같이 도박하는건데!유현진은 증조할아버지의 돈 따는 비법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여태까지 어떻게 돈을 딸수 있었냐고 물었다.이에 증조할아버지는"젊은이는 착실하게 살아야 되지 이런 쪽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안돼.""근데 할아버지께선 계속 돈을 거셨잖아요."증조할아버지는 당당하게"만약에 돈을 잃었다고 해도 집에 있는 땅으로 얼마든지 죽기전까진 먹고 살수 있지 않나. 하지만 너희들은 다르지, 이런것에 손 대면 그때부터 패가망신하는 길로 들수밖에 없지. 도박장에서 번 돈을 누가 그리 쉽게 내줄까?"유현진은 이에 할말을 잃었다.비록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도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증조할아버지가 말한 교훈이 약간은 내로남불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강한서를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혹시 할아버지께서 사기를 친게 아닐까?"강한서는 머리를 끄덕였다."가능성 있어.""그럼 어떡해?"강한서는 그녀는 한번 보고는"당신이 딜러한테 말해봐, CCTV 한 번 돌려봐서 확인해보라고. 정 아니면 어르신을 보내는건 어때? 그 정도 년세면 몇날 안가서 풀어나실거야."유현진의 입꼬리가 떨렸다."내가 바보야?"유람선 안에서 벌어지는 도박판은 원래도 불법이였기에 만약 진짜로 속임수를 썼다 한들 사적으로
"그 "법역" 이라는 프로그램이죠? 제 아이도 하교하자마자 TV앞에 앉아서 그 프로그램을 봤죠. 듣기론 학교에서 내준 독후감 숙제라나? 저도 아이랑 함께 몇화정도 봤었는데 주위에서 말하지 않았다면 현진씨를 몰라뵐뻔 했네요."비록 이런 칭찬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법역" 의 흥행은 진짜였다.유현진은 웃으며 답했다."저는 고여정씨한테 도움을 준것 뿐이예요, 사업단위에서 한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적당한 배우를 찾지못해서 제가 그나마 반반하게 생겨서 대신 출연한거예요, 대충 연기했는데 운이 좋았죠."반반하게 생겨서......이 말을 들은 사모님들을 할말을 잃었다.유현진의 미모는 반반하게 생겼다고 할게 아니라 신이 내린 축복을 받은듯한 외모였다.다행히도 강한서가 그녀와 결혼했길래 망정이지 아니면 다들 모두 조금이나마 위기감을 느꼈을것이다. 손짓 하나로 충분히 남자를 홀릴수 있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였다.전 여사는 송민영을 힐끔 보고는 갑자기 웃으며 입을 열었다."기실 연기에 관한건 저희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배우들은 잘 아시지 않나요? 연기가 좋고 나쁨은 배우라면 알아낼수 있겠죠? 민영씨?"유현진은 전 여사를 흘겨보았다.(어째서 또 그녀를 거론하는거지? 강한서가 저번에 고작 푼돈을 딴걸 가지고 늘어지네, 뒤끝이 얼마나 긴거야?)송민영은 이에 상냥한 태도로 답했다."저도 그냥 밥 벌어 먹고 사는 정도예요,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아요.""민영씨 너무 겸손하시다, 민영씨가 전문적이지 않으면 연예계에서 그 누가 전문적이라고 말할수 있겠어요? 현진씨도 대충 연기한거라 했으니 민영씨도 몇마디 해주시죠, 저희도 궁금해요."전 여사는 말을 끝내고 미소를 지으며 유현진을 바라봤다."현진씨도 괜찮죠?"유현진은 속으로는 쌍욕을 퍼부었지만 표정관리는 그 누구보다 잘했다. 태연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럼요, 저도 한 번 '전문가' 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네요."송민영은 이에"그럼 제가 두어마디 대담하게 해드릴게요, 제
연기부문의 상은 타지 못했었다. 만약 사적인 자리에서 말한다면 송민영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그녀는 원래도 연기파 배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조회수는 동료 여배우들을 많이 앞질렀기에 평소에도 자신의 상업적 가치에 대해서 자신감이 충족한 상태였다.하지만 유현진은 기어코 그녀의 아픈곳에 소금을 뿌렸다, 마침 이 상처는 그녀의 제일 아픈곳이였다.그녀가 반나절동안 입을 열지 않자 유현진은 눈썹을 움직이며 말했다."민영씨 어째서 말이 없나요, 받은 상이 너무 많아서 어떤걸 고를지 고민하는건가요?"송민영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저는 그런 억지 명예에 기대지 않아요, 관중들이 좋은게 좋은거죠. 평심원들은 연기에 대한 견해가 저마다 다 달라서 받은 상으로 한 사람의 연기를 평가하는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오호."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도리어 평심원들의 평가는 엄격하다고 생각하고있고 다들 업계에서 어느정도의 성과를 이룩했던 사람들이기에 남들을 평가할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한 사람의 연기가 업계 전문가의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큰 확률로 연기를 못하는게 틀림 없어요. 연기를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사람의 연기의 좋고나쁨을 판단할수 있겠어요. 실로 창피한거죠."송민영은 낯빛이 파래지면서 오랫동안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못했다.만약 그녀의 말이 직설적이라한다면 유현진은 직접 언급하지만 않았다뿐이지 면전에 대고 욕설을 퍼부은 격이였다.그리고 이 말 만큼은 반박하기가 어려웠다.유현진은 송민영의 일그러진 표정을 충분히 만끽한후 "아" 하더니 죄송하는듯이 말했다."민영씨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부러 한건 아니고 대화가 흘러가다보니......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건데, 민영씨 혹시 화나신거 아니죠?"그녀는 송민영이 한 말을 토 씨도 틀리지 않고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남 까내리는걸 누가 못해?송민영은 얼굴이 뻗뻗하게 굳어서 반나절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결국엔 전 여사가 입을 열었다."그냥 말하는거
"그래요, 뭔가 아쉬워요, 한 곡 더 해주세요!"게다가 어떤 사람은"천상의 하모니."이렇게 평가를 내렸다.유현진은 하마트면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뻔 하였다.그녀는 목이 말라서 고개를 돌려 강한서의 손에 들려있는 물병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그의 옆에 도착한후 물었다."강대표, 손에 든 물 마실거야?"강한서는 그녀를 보고는"안 마셔.""그럼 내가 마실래."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그의 손에서 물병을 낚아채서 제 마음대로 마시기 시작했다.강한서는 그녀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송민영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찬사를 맘껏 즐긴후 가볍게 웃으며"오늘은 한주시의 비지니스 파티이기때문에 여러분들이야말로 주인공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모든 이목을 끄는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맞다, 이러면 어떨까요? 한 명의 사모님을 대표로 합주를 하는거말이예요, 저랑 함께 연주하고 싶으신 사모님 계신가요?"사모님들은 너도나도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사실 다들 피아노를 칠줄 모르는건 아니였다, 사모님들중 적지 않은 사람이 명문가 출신으로 피아노를 조금씩은 칠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오랫동안 피아노를 건드리지 않았던 탓에 누구하나 나서지 않았다.그리고 송민영과 같이 합주를 한다면, 송민영의 젊음을 떠나서 외모도 수려했기에 사모님들이 제 아무리 관리를 빡세게 했다해도 그 나이차이는 숨길수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그 누구도 자신이 스타와 비교당하는걸 원치 않았다.그래서 다들 이 자리를 남한테 떠넘기기에 급급했다."현진씨가 올라가는 건 어때요?"전 여사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칼날은 유현진을 향했다."여기에서 현진씨가 가장 젊으니까 대표로 나가서 연주하는게 어때요?"다행히도 물을 이미 넘긴 상태였기에 하마트면 전 여사 얼굴에 뿜을수도 있었다.전 여사가 입을 열자 다른 사모님들도 이에 순응하며"그래요, 현진씨가 가장 젊고 기억력도 좋고 반응도 빠르니까요.""현진씨, 저희들의 대표로 저희들 체면을 살려주세요.""현진씨는 제가 보기엔
유현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이러면 저한테 유리하게 되잖아요. 제가 민영 씨가 잘 모르는 곡을 선택하면 어떡해요. 아무래도 그건 민영 씨한테 불공평할 것 같은데."송민영이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네.송민영은 유현진이 피아노 칠 줄 모른다고 확신했다. 아니면 이렇게 연거푸 거절할 리 없다.방금 전 유현진 때문에 망신당한 송민영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유현진이 거부하면 할 수록 송민영은 더 좋아라 그를 요청했다."현진 씨가 곡을 골라요. 저는 어떤 곡이더라도 박자를 따라갈 수 있어요. 강 대표도 현진 씨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기대할 거 아니에요?"유현진은 강한서를 쳐다보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가?"강한서는 유현진을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맘대로!"강한서의 태도에 유현진은 조금 실망했다."그럼 다녀올게."유현진이 송민영과 함께 멀어지자 한성우가 입을 열었다."송민영은 피아노 7급이라 일반 곡들은 다 괜찮게 칠 텐데, 현진 씨 괜찮겠어?"강한서는 유현진이 마시던 생수병을 열어 한모금 마시고 답했다."기껏해야 체면이 깍이겠지. 어차피 습관이 됐을 거야."한성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송민영은 유현진에게 악보를 건넸다."현진 씨가 골라봐요."악보를 펼쳐 보던 유현진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말했다."이걸로 해요."송민영이 보자 이었다.이 곡은 난도가 있는 곡이었다. 화음 속도가 빠르거니와 다섯 손가락이 서로 다른 힘으로 건반을 눌러야 하기에 제대로 연주하려면 탄탄한 기본기가 필요했다.송민영도 연습해 본 적 있었지만, 힘이 부족해서 고조되는 부분에서 원곡이 가져다 주는 기세를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는 유현진을 상대로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두 사람 모두 피아니스트가 아니고, 더욱이 곡을 유현진이 스스로 골랐기에 치지 못하는 사람이 창피할 거라 생각했다."현진 씨, 확실히 이 곡으로 할 건가요?"송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저 물소리와 피아노 소리면 귓전에 울렸다.유현진은 송민영처럼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추위를 타는지라 치마 밖에 흰 외투를 걸쳤다.그리고 머리는 간단하게 포니테일 하고, 고개를 숙여 피아노를 칠 때마다 이마 앞 잔머리가 살랑살랑 날렸다. 거기에 입술을 살짝 깨무니 세속을 벗어난 것만 같은 청초함에 더없이 아름다웠다.이 모습을 지긋이 쳐다보던 주강운은 저도 모르게 술잔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한강운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그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이러한 대사가 떠올랐다.과인이 아직 놀랄 일이 더 남았나?그중 강한서만 담담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유현진이 곡을 선택한 것은 확실히 송민영한테 불공평했다.그는 집에 있는 피아노로 매번 이 곡을 연습했다.맨 처음에 칠 때에는 그도 송민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매번 같을 곡을 치다 보니, 처음에는 듣기 거북하던 곡이 차츰 나아지면서 나중에는 훌륭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이 곡을 숙지하고 나서도 피아노방만 가면 이 곡을 쳤다.나중에 강한서가 듣다 못해 유현진에게 어째서 한 곡만 계속 치냐고 물었다.유현진의 답은 심플했다. 이 곡이 뽐내기에 가장 좋아서.그러니 오늘 드디어 뽐내기에 성공했다.강한서가 그런 유현진을 보고 피아노 연주에 대한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하자, 유현진은 되레 엄청 진지한 태도로 답했다. 자신은 모든 피아노곡을 익힐 필요가 없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악할 정도의 곡만 능수능란하게 연주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이다.유현진은 재주는 많지 않지만 이상한 논리만은 가득하다.강한서가 예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입술을 말아올렸다.맨 마지막 음을 마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유현진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의 말대도 듣는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십여 년 간 쳐 온 사람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에 반해 송민영은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 전의 자신만만하던 태도는 온데간데 사라졌다.유현진은 불난
“아니면 뭐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 봐?”차미주는 물 한 모금 마시며 한성우의 눈길을 피했다.그런 그녀를 몇 초 동안 뚫어져라 보던 한성우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럼 나는 뭐라고 저장해줄까? 슈크림?”순간, 차미주는 입안에 있던 물을 푸하고 내뿜었다.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자 촉촉한 미간과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한 한성우는 관능미가 한층 더해져 매혹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턱에 고여있던 물방울이 차미주의 손에 떨어져 차미주는 저절로 손이 움츠러들었다.“크리미가 이런 뜻이었어? 도대체 그 머릿속엔 무슨 야리꾸리한 생각이 들어있는 거야?”차미주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뭐라는 거야?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생사람 잡지 마!”눈꼬리가 올라간 한성우의 눈매는 유달리 이뻤다.“오늘 어때?”“뭐라고?”차미주는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을 후회하고 있어서 한성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한성우는 더욱 목소리를 낮춰 그녀의 귀를 깨물며 물었다.“크리미의 저력을 알고 싶지 않아?”차미주가 도망치려고 하는 순간, 한성우는 그녀를 잡아 소파에 눕혔다.차미주는 발버둥 치며 말했다.“이거 놔줘.”한성우는 그녀의 얼굴에 뽀뽀하며 말했다.“나쁜 생각은 네가 먼저 한 거잖아. 너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닌걸.”차미주는 부끄러워하며 소리쳤다.“헛소리하지 마, 난 아무 생각하지 않았다고.”“그래, 그래, 다 내 탓이야.”한성우는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조잘조잘 말하는 차미주의 입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차미주는 해명하려고 했으나 한성우는 기회를 주지 않고 그녀를 침대로 이끌었고 결국 차미주는 해명은 커녕 화를 낼 기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한성우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더더욱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팔에 끼어있던 한현진이 선물했던 팔찌가 손에 닿았다.그는 그녀의 팔을 들어 전등불에 비추자 미주는 아프다고 팔을 빼며 말했다.“망가뜨리면 안 돼. 함부로 다치지 마.”한성우는 팔찌를 만지작거
한성우가 멍때리고 있을 사이, 차미주는 그를 바닥에 제압해 버렸다.“아파 아파.”한성우는 크리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아프다고 외쳤다.그는 처음으로 차미주가 밥을 너무 잘 먹어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밥심을 모두 자신을 제압하는 데 썼다간 언젠가는 자신의 몸이 고장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차미주는 이를 갈며 핸드폰을 내놓으라고 말했다.“줄게 줄게, 나를 먼저 놔줘.”강한서와 달리 한성우는 바로 투항하는 타입이었다.차미주는 한성우가 폰을 돌려주자 그제야 완전히 그를 풀어주었다.한성우는 바닥에 앉아 아픈 어깨를 문지르며 불평했다.“아가씨,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 넘어요. 신체기능이 점점 떨어질 나이라고요. 나를 이렇게 함부로 다루다가는 큰일 난다고요.”“도둑놈 잡는 게 습관 대서 그래. 그러니까 돌려달라고 할 때 줬으면 됐잖아. 핸드폰을 가지고 튀니까 직업병이 도져서 그런 거지.”차미주는 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괜히 기침 한번 했다.“정의 구현이 아니라 찔리는 것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한성우가 되묻자 차미주는 귀가 빨개지며 부정했다.“찔리긴 뭐가 찔려, 괜한 트집 잡지 마.”한성우는 어깨를 문지르며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찔리는 게 없는데 왜 안 보여줘? 혹시 조준한테 미련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전번 날에도 두 사람이 통화하는 것을 들었어, 재검진 시간 예약하던데.”“헛소리하지 마, 언제 시간 되냐고 묻길래 다음 주 목요일이라고 대답한 거거든. 그날은 자신의 외래 날이 아니라고 했어. 난 그걸 알고 일부러 그날에 가려고 한 거고. 네가 괜히 오해할까 봐. 넌 내 통화를 엿들은 것도 모자라 혼자 시나리오까지 쓰고 앉아 있네. 피해망상증이 있는 거 아니야?”차미주의 말을 들은 한성우는 기분이 좋아져 가까이 붙으며 물었다.“주치의 바꿨어?”차미주가 내일 당장 원래대로 바꾸겠다고 말하자 한성우는 그녀를 껴안으며 사과했다.“여보, 내가 미안해, 일부러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 방에 물건 가지러
두 사람은 모두 한성우를 관여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가 잘못을 저지르면 서로의 유전자를 탓하며 비난하기에 바빴다.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삐그덕거렸고 양측 부모님들은 아이가 생기면 나아질 거라며 두 사람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권유한 덕에 그가 태어났다.어찌저찌하여 가정은 유지해 왔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딱히 좋아지지 않았다.혼인 관계에서 두 사람은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해 왔고 그 영향으로 인해 한성우는 결혼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 차미주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사실 한성우는 일찌감치 부모님에게 자신의 태도 의사를 밝혔다.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고 부잣집 딸이 아니라 평범한 아가씨라고, 만나고 싶으면 인사시킬 수는 있으나 지적하거나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럴 거면 인사시키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화내기 전에 가버렸다.그들의 성격상 만남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언제 인사시키겠냐고 연락이 왔고 한성우는 이를 차미주에게 알렸다.그리고 나서는 이내 또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미주가 자신의 가정 상황을 알고 나서 흔들릴까 봐 두려웠고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들이 말을 함부로 할까 봐 걱정됐다.하지만 차미주가 이번 만남을 신중히 생각하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이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결혼 당사자는 본인이니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도 자신이 소중한 사람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차미주가 손을 씻고 씻을 때,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귓속말했다.“다 씻었어?”차미주는 간지러워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귓속말하지 마. 간지러워.”한성우는 더욱 가까이 붙으며 간지럽히듯 여보라고 불렀고 차미주는 귀가 빨개지도록 부끄러웠다.“뭐라고?”한성우는 웃으며 말했다.“나랑 결혼하면 여보 맞잖아. 여보 아니면 뭐라고 부를까? 애기? 자기야?”차미주는 얼굴이 빨개졌다.“마음대로 해.”“그럼 난 여보. 카카오톡도 여보라고 저장
말을 하며 차미주를 화장실로 데려가 손에 세정제를 좀 묻히고 힘껏 팔에 끼워넣었다. 차미주는 손목을 돌리며 이 팔찌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이전에 옥이 별로라고 말한 게 너무 과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팔찌, 진짜 너무 아름다워. 말 그대로 예술이잖아.’ 그녀가 팔찌를 감탄하며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강한서가 내 손목 둘레를 재었다고 하는데, 이 팔찌는...?” 한현진이 눈을 살짝 좁히며 웃었다. “이건 너를 위한 신혼 선물이야.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미리 즐겨봐. 나한테 며칠 더 두면 내가 못 참고 껴버릴까 봐 그래.” 차미주는 그 말을 듣고 팔찌를 빼려고 했다. “너 미쳤어? 이거 얼마나 비싼데. 너 결혼할 때 내가 500만 원밖에 안 줬는데 이건 너무 과하지 않냐고.” 처음 끼울 땐 힘들었는데 이제 빼려니 더 어려웠다.한현진이 차미주를 막았다. “미주야, 그건 다르지. 그렇게 비교하면 안 돼. 내가 결혼할 때 너는 한 달 월급이 300만 원도 안 됐잖아. 그런데도 500만 원을 선물로 줬고 그 마음이 그 선물보다 훨씬 더 값지고 중요한 거야. 지금은 내가 능력이 생겨서 너 결혼할 때 더 좋은 선물을 줄 수 있게 된 거고 그건 내 마음이야. 가치가 높고 낮고로 그 마음의 소중함이 달라지지 않아.”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팔찌는 강한서가 고른 건 맞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너도 이걸 좋아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 마음에 들어?” 차미주가 대답했다. “좋아. 근데...” “좋으면 됐어. 앞으로도 우리 둘 다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그때 가면 팔찌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건물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너한테 줄 수 있어.” 차미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됐어. 건물은 너무 비싸. 너랑 강한서가 또 이혼하고 나한테 재산 반환을 요구하면 어떻게 해?” 한현진은 혀를 차며 이빨을 간 채 말했다. “우리 둘한테
한현진이 그녀의 손등을 툭 쳤다. “그만 떠들고 가만히 서 있어 봐.” 차미주는 바로 허리를 펴고 자세를 잡았다. 한현진이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뭔가 하나가 부족한데...” 차미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한현진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 “조금만 기다려 봐.”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차미주가 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강한서였다. 그는 손에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고 표정은 평소처럼 담담했다. 차미주는 놀라서 물었다. “너 여기 웬일이야?” “너희 집에서는 현관문 열고 얘기하면 몇 년 받냐?” 차미주는 말문이 막혔다. 차미주는 멋쩍게 길을 비켜주며 그 귀한 분을 집 안으로 들였다. 강한서는 한현진의 눈짓에 따라 손에 든 상자를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한현진이 소파 가장자리에 앉아 상자를 열자 차미주는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바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자 안에는 투명한 광택을 띠는 옥 팔찌가 들어 있었다. 차미주는 옥 팔찌에 대해 잘 몰랐다. 엄마가 몇 개 가지고 있긴 했지만 대부분 짙은 녹색이라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늘 옥 팔찌는 나이 든 사람이나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팔찌는 달랐다. 맑고 투명한 빛에 가장자리엔 은은한 황금빛이 스며들어 있었고 자연광 아래에선 촉촉하게 윤기가 돌았다. 마치 물기를 머금은 꽃잎 같았다. 차미주는 눈앞에 옥 팔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미주야, 이리 와.” 한현진이 불렀다. 차미주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한현진은 차미주의 손목을 잡고 팔찌를 들어올렸다. 팔찌를 손목에 끼웠다. 안 들어갔다. 다시 시도했다. 또 안 들어갔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차미주의 손목은 붉게 달아올랐고 팔찌는 손목 중간쯤에서 멈춰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차미주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직 안 정했어. 그의 생일에 맞춰서 먼저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은 양쪽 부모님이 서로 만나고 만족하면 우리 엄마가 사람을 불러서 날짜를 정해줄 거야. 우리한테 맞는 날을 고르기만 하면 돼.”한현진은 놀라서 물었다. “너희 둘 진도가 언제 이렇게 빨라졌어?”차미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개자식이 나한테 청혼할 때 내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받아 줬어. 후에 웃으면서 말하더라구. 내가 너무 급하게 받아줬다고. 좀 더 밀당했어야 한다고. 근데 그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 내 머릿속엔 오직 ‘그래. 나도 결혼하는구나.’라는 생각뿐이었어. 하하.”한현진은 웃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누가 너를 자극한 거야?”“자극이라기보단...” 차미주는 입술을 삐죽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 기억나? 내가 말했던 그 큰 이모. 그 이모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는 나보다 두 살 많고 둘째는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우리 할머니는 그 집안을 아주 좋게 봤어.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 집에 편애가 심했지. 내가 사촌오빠랑 싸우면 그 오빠가 나를 이기지 못하고 항상 고자질을 했거든.”“그 큰 이모는 나를 볼 때마다 그런 얘기를 했어.” ‘너처럼 덩치 크고 성격도 안 좋으면 커서 누가 너랑 결혼해주냐?’ “사실 그 말이 나한텐 꽤 큰 걱정거리였어. 물론 자라면서 그 이모가 입이 가벼운 사람이란 걸 알게 됐지만 그때는 정말 결혼 못할까 봐 불안했어. 아니면 왜 20년이 넘도록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겠어.”한현진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너한테 남자가 없는 게 아니라 너를 좋아했던 사람들을 네가 죄다 친구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사실 그녀가 알기로만 해도 대학 시절 차미주에게 호감을 보였던 남자는 둘이나 있었다. 첫 번째 남자가 어떻게 포기했는지는 몰라도 두 번째 남자는 차미주에게 농구 경기를 같이 보러 가자고 직접 데이트 신청까지 했었다. 차미주는 선뜻 따라갔지만 농구장은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한현진은 그녀의 호적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이시연은 오래 기다렸고 그 사이 네 명이 더 끼어든 후에야 은서하가 비로소 돌아왔다. 그녀는 땀에 젖어 얼굴이 여전히 창백했고 얼굴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이시연은 그녀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아직도 괜찮지 않은 거예요? 의사한테 같이 가줄까요?”은서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화장실 갔다 오니까 많이 나아졌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이시연은 결과지를 건네며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면 승진하고 나 좀 잘 챙겨줘요.”은서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자리만 지킬 수 있어도 감사하죠. 승진은 꿈도 안 꿔요.”잠시 멈추고선 덧붙였다. “대회 준비는 어떻게 돼가요?”“그냥 그럭저럭이죠. 서 대표님이 이번에 강력한 카드를 데려왔으니까 우리는 그저 배경일 뿐이죠.” 이시연의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친선 경기라고 보면 되죠 뭐.”은서하는 향료 조향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래도 좀 더 열심히 해봐야죠. 안 그러면 너무 아쉬울 거 같아요.”이시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클라우드 아파트 902.“현진아, 이건 어때?”차미주는 흰 티에 청바지 오버롤을 입고 한현진 앞에서 빙그르르 돌며 물었다. “어때?”한현진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 여유 있게 대답했다. “나쁘지 않아.”“그럼 아까 그 꽃무늬 원피스는?”“그것도 괜찮아.”차미주는 눈꺼플이 살짝 뛰었다. “그럼 이 노란 운동복은?”“비슷해.”차미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너 지금 뭐야? 그냥 대충 말하는 거지? 다 비슷하면 난 도대체 뭘 입어야 해?”한현진은 웃으며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내가 너 대충 대하는 게 아니야. 오면서 계속 생각했어. 너한테 좀 더 격식을 차린 옷을 입힐지 아니면 너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힐지 말이야. 평소에 이렇게 캐주얼한 옷을 입고 다니니까 갑자기 정장 스타일을 입으면 길도 제대로 못 걸을 거고 스
한현진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서해금 옆에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벌써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법을 배우셨군요.”은서하의 얼굴이 잠시 창백해졌지만 이내 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 대표님, 저를 싫어하시든 미워하시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주혁이라는 사람. 그 사람만큼은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주혁 씨가 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운전기사일 뿐인데? 당신 말대로라면 그 사람이 다른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건가요?”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난 당신이 정말로 걱정해서 경고해 주는 건지 아니면 고의로 우리 사이를 흔들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은서하는 더 조급해졌다. “저는 이간질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만큼은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 하세요. 한 대표님,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어요. 제가 아무리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도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안 할 거예요.”초조해하는 은서하와는 달리 한현진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단호하게 물었다. “내가 그때 당신을 도와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죠? 갑자기 등을 돌리지 않았나요? 은서하 씨,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은서하는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 대표님, 저는 겁이 많고 피할 줄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알아요. 최소한 저를 도와주셨던 대표님을 해칠 수 없다는거요.” 그녀의 진지한 말투에 한현진은 마음이 흔들렸다.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바라보다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주혁 씨를 멀리하라는 이유라고 말해보세요.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설득 될 만한 이유요.”은서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움켜잡은 채 잠시 입을 다물었다.한현진은 지칠 대로 지쳐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유가 없다면 더 이상 여기서 나를 걱정한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은서하는 급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말하지
[서해금이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 만약 네가 은서하고 우연히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걸 이용해서 서대금이 나를 잠시라도 회사에서 밀어낼 수 있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넌 그 기회를 통해 승진하고 월급도 올리고 사장 앞에서 좋은 이미지도 쌓을 수 있어. 그 상황에서 너라면 그걸 참을 수 있겠어?]차미주는 그 말에 감탄하며 말했다. [임신한 채로도 이렇게 계산적이네? 너 아이 낳으면 두 명의 도깨비가 나올까 봐 걱정돼.]한현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럴 리 없을 거야. 강한서가 매일 내 옆에서 를 읽어주고 있어. 맨날 애들한테도 읽어주니까 조금은 성품이 좋을 거야.][강한서 진짜 대단하다. 넌 그걸 듣고 있어?][안 듣지.] 한현진이 대답했다. [난 이어폰 끼고 드라마 봐. 강한서가 애들한테 읽어주고.]차미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국 는 아무 소용없다는 거네.][왜?] 한현진이 물었다.차미주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엄마가 항상 그러셨어. 아이는 유전이 중요하다고.] [옛말에 그런 말 있잖아. 용은 용을 낳고 봉항은 봉황이 낳는다고. 네가 도덕이 없다면 강한서이 아무리 를 많이 읽어줘도 소용없어.”[너 진짜!] 한현진이 이빨을 갈며 말했다. [한성우 씨랑 있더닌 이제는 입만 잘 돌아가네.][오래 배운 거 이럴 때 써먹어야지.]한현진은 코웃음을 쳤다. [나랑 연습하면 뭐 해. 능력 있으면 너희 사장한테 가서 연습해.]차미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안 돼. 사장한테서 월급 받아야 해.]차미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있잖아.그 사람이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해서 밥을 먹자고 하는데 네가 봤을 때 첫 만남에 뭘 입고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할까? 정말 고민돼.]한현진은 답했다. [내가 경험이 많아 보여?][두 번이나 결혼했잖아. 너가 없으면 누가 경험 있겠어.]한현진은 담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