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하는 업무 보고를 끝내고 문뜩 무언가가 떠올라 말했다. "맞아요. 오늘 대표님 회의 들어가셨을 때 한 대표님께서 연락해 주셨어요. 올해 상인회는 유람선에서 진행할 거라면서 사람을 보내 초대장을 가져오셨어요. 참석 여부에 상관없이 연락해달라고 그러시던데요. 대표님, 참석하시겠어요?""아니요." 강한서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거절했다.민경하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럼 한 대표님한테 전화 넣을게요."상인회는 날이 갈수록 성질이 변해갔다. 규모는 점점 커졌지만, 알맹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올해는 스케일이 더 커졌다.'유람선?'강한서는 뭔가 생각 난 듯 민경하를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초대장은 그대로 두세요."민경하는 뜻밖의 말에 의아했다. "가시게요?"강한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유현진이 유람선 타고 싶다 그랬잖아요? 데리고 가보죠, 뭐. 세상 물정을 그리도 몰라서야."민경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사모님 유럽 여행 때 유람선 타고 가셨는데, 그것도 보름이나.'유현진은 유럽 여행 때, 매일 같이 수십 장의 사진을 보냈다.하지만 강한서는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때 두 사람은 신혼부부였건만 강한서에게서 다정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그래서 민경하는 늘 강한서가 이 결혼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강한서가 이상했다. 회의하다가도 휴대폰에서 알람 소리가 뜨면 바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민경하는 강한서가 협력사의 소식을 기다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협력사의 소식을 확인하고는 늘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그날 회의 중에 강한서는 유현진에게서 보내온 돌고래 영상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환해졌다.민경하는 알 수 있었다. 강한서가 이틀 동안 표정이 어두웠던 건 유현진의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대표님 기억력이 얼마나 좋으신데. 그때 일을 까먹을 리가 없는데?'그렇다고 민경하는 감히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민경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강한서의 말에 답하고 사무실을 나
여러번의 반복하여 설득을 끝냈다.강한서는 옆에서 하품을 따라하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고작 법에 관한 드라마를 찍는데 밤까지 새야 돼?"어젯밤에 유현진은 "법역" 촬영때문에 외출을 했었고 강한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돌아올거라고 예상했었지만 아침 다섯시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유현진은 연신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저녁 촬영은 당연히 저녁에 해야지, 대낮에 하면 화면에 그 느낌이 나겠어?"강한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은 귀마개를 끼며"나 잠깐 잘테니까 도착하면 깨워 줘."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눈을 감았다.강한서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는 불만인듯 눈썹을 찌푸렸다.(그 많은 일은 뒤로 미루면서까지 와줬는데 그냥 잔다고?)유현진이 깨어났을땐 이미 부두에 도착한 뒤였다.곧 승선할 유함선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높이만 봐도 칠층짜리 건물에 맞먹는듯했다. 그리고 선체는 육안으로 봤을때 대략 150미터 정도 돼보였다. 그녀가 전에 유럽에서 탔었던 배보다 훨씬 기풍이 넘쳤다.어르신께서 차에서 내리자 배에서 웨이터들이 내려와 휠체어를 대령했다.원래 어르신께서 혼자서 걸을수도 있다고 고집을 부리셨지만 아래를 한번 힐끔 보고는 그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결국엔 휠체어에 앉아서 이동했다.배위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강한서가 나타나자 이쪽으로 오며 아부를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유현진은 너무나도 졸렸기에 방열쇠를 받고는 민경하에게 어르신을 잘 보살피라는 당부를 하고는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그녀가 깨어났을땐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던 참이였다.그녀는 커텐을 걷고 밖을 내다봤다, 태양은 한창 저물고 있었다. 수면에 저녁노을이 반사되여 반짝반짝거리는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이따금씩 몇마리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엄청 먹음직스러워보였다.맞다, 그녀는 배가 고팠다.어젯밤 촬영할때 야식을 먹었던것 빼곤 지금까지 잠만 잤으니 어찌 배고프지 않을까?(여섯시가 다 되였는데도 아직도 배식
(이건 뭔 뜻이지?)주강운은 식지로 태양혈을 살살 문지르며 살짝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최선을 다해 대화를 해봤는데요, 셰프가 아직 시간이 안돼서 만들어진 음식이 없다네요. 하지만 저희에게 식재료는 줄수 있으니 알아서 만들어 먹으라고 했어요."유현진은 이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와, 모처럼 유람선을 탔는데 밥도 저절로 해 먹으라고?)"그냥 배식시간을 기다리는게 났겠어요."그녀가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창피한듯 옷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갑시다.""잠깐만요."주강운은 말하면서 양복외투를 벗으며"이걸 잠시만 들어줄수 있어요?"유현진은 뭔지 모르겠다는듯이 외투를 건네 받았다.주강운은 하얀색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셰프가 던져준 후라이팬에 불을 붙이고 물을 넣었다.유현진은 행동을 멈추고"직접 요리하시려고요?"이에 주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파스타 좋아하세요?"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려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예요, 안 해도 돼요. 요리까지 해주시다니 당치도 않아요. 조금만 기다리면 배식시간이 될거예요.""아직도 두시간이나 남았는데요?"주강운은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먹을걸 찾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기엔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유현진은 주강운에게 어디서 식사할수 있는가고 물어본것에 대해서 엄청 후회했다.(이럴줄 알았으면 조금만 참았을걸, 요리까지 하게 만들고...... 경우도 이런 경우가 없네.)그녀가 안절부절하는걸 본 주강운은 그녀의 다급함을 알아채고 대화로 그녀의 주의력을 돌리려고 했다."전에도 궁금했었는데, 한서랑은 어떻게 만나게 된거예요?"과연 유현진의 주의력은 쉽게 돌려졌다."맞선에서요."강한서는 맞선을 통해 처음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이 것이 처음은 아니였다.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차 사고가 났던 그 날, 그녀는 처음으로 강한서를 만났었다.그 날 사고가 났을때, 차 전체가 옆으로 넘어져
강한서가 나한테 선물을 줬어. + 10000강한서의 첫사람은 내가 아니야. - 100강한서가 감기가 걸렸을때 다른 여자 이름을 불렀어. - 10000강한서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 100000......계산하고나니 실망만 남아있었다.주강운은 요리를 하느라 그녀를 보고있지 않았다. 태연하게"그때는 이십대 초반이였지 않았어요? 그런데 결혼을 왜 그렇게 빨리 결정했나요?"유현진은 유씨 가문의 복작한 사정을 입밖에 내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절반은 농담으로"결혼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지 궁금해서요."주강운은 웃으며 물었다."어때요?"유현진은 혀를 차며 대화를 이어갔다."생각보다 별로네요, 솔로가 낫네요."유현진은 이 대화를 계속해 이어나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되려 질문을 던졌다."주 변호사님은 여자친구 있으세요?"주강운은 태연하게"제 몸 상태 때문에 혹시 사귄다면 상대한테 실례가 아닐까요?"유현진은 그가 그의 예전에 걸렸었던 병에 대해 말하는줄 알고는 다시 물었다."다 나으시지 않았나요?"주강운은 대답하지 않고 와이셔츠를 위로 걷었다. 유현진은 이에 입을 다물었다.그는 손목위로 화상흔적이 남아있었다, 피부는 화상자국으로 인해 흉하게 보였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서리치게 했다.유현진은 숨이 턱 멎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시선을 피했다.주강운은 평온하게 소매를 내리고는 웃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놀라셨죠."유현진은 그제서야 자신이 시선을 피한 행동이 실례로 느껴질수 있었음을 깨닫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미안해요......""괜찮아요."주강운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듯이 말했다."제가 봐도 무서운걸요."유현진은 마음을 가라앉힌후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실 무서운것보다 약간 불편해서......"그녀는 숨을 고른후 말을 이어 나갔다."많이 아프셨죠?"주강운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그는 조리로 면을 꺼내올리고 육수를 버린후 다시 가스레인지우에 올려놓았다. 버터를 후라이팬바닥에 한바퀴 둘렀다.아까의
주강운은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보니 송민영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선박위는 이따금 바람이 불어서 날씨가 꽤 쌀쌀했었지만 송민영은 아주 청량하게 입고 왔었다.옅은 회색에 소매가 없는 드레스, 얇은 재질. 갑판위의 조명들의 그녀의 옷에 반사되여 부드러운 불빛을 내고 있었다. 주위의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눈부시고 사람의 이목을 끌게 만들었다.화장도 꽤 신경을 쓴것 같았다, 긴 생머리가 머리뒤로 늘어져있었고 앞머리가 차분하게 이마를 덮었다, 우아한 자태와 배우로써의 극강의 표정관리를 추가하니 아무리 유현진이 그녀를 엄청 싫어한다해도 오늘 밤 송민영은 확실히 예쁘다는 걸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주강운은 자신의 예측을 말했다."아마도 주최측에서 연극 배우를 초청한것 같네요."유람선에선 매 일마다 세 차례의 공연이 있었다, 송민영도 공연자중 한 명일것이였다."주최측에서 돈이 많나 보네요, 그녀도 초청하고?"유람선의 대 극장에 초청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연극단 아니면 오케스트라 팀이였다. 송민영 이런 사람이 와서 연극을 한다면 분명히 연극의 질이 떨어질게 뻔했다.말하는 도중 뒤에서 한성우가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말했지? 형수님은 갑판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배가 이렇게 큰데 수영해서 돌아갈수 있을리가."유현진이 몸을 돌리자 강한서의 굳은 얼굴이 시야로 들어왔다.눈 앞까지 걸어온후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그녀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깨어나자마자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바다에라도 빠지면 어떡할래?"유현진은 이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개 자식, 그 입이 문제야!)그녀는 손을 빼더니 그를 째려봤다."내가 바다에 빠진다 해도 당신이 신경 쓸건 없어!"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태연하게 답했다."누가 건져내든 수고비를 쥐야겠지, 결혼할 때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데."유현진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아무리 말을 곱씹어봐도 이상했다, 뭔가 빈정거리는 것보단 어쩔 도리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강운, 너
강한서도 이를 보아내고는 물었다."맛이 없어?""아니, 엄청 맛있어."강한서가 어쩌다가 한 번 사람 노릇을 했는데 유현진도 그 마음을 거절하고 싶진 않았지만 배가 너무 불렀던 탓에 낮은 목소리로"그냥 배가 안 고파."강한서는 이를 믿지 않았다."배가 너무 고파서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내 앞에서 허겁지겁 먹는게 수치스러워?"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입을 다물자 강한서의 얼굴색이 밝아지며"당신이 취했을때, 내가 당신이 화장실에서 한 짓도 봤었는데, 고작 먹는 모습을 봤다고 정 떨어질까봐?"유현진은 입꼬리가 떨렸다."밥 먹을때 그런 더러운 얘기는 하지 말지?"강한서는 이에"이거 그 대사 아냐?"유현진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원래도 못 먹는데 개 자식이 그녀가 전에 그한테 해줬던 썰을 푸니까 더욱더 식욕이 없었다.그녀는 간신히 죽을 먹고는 물었다."증조 할아버지께선 어디 가셨어?""사람들과 도박하러 가셨어.""뭐?"유현진은 하마트면 뛰어오를뻔 했다."당신, 왜서 안 말렸어?"강한서는 이에 태연하게 답했다."내가 보기엔 엄청 즐기시던데?""그래도 그렇지, 지면 어떡하려고?"배위의 사람들은 억만장자는 아니라 해도 대부분은 백만장자쯤은 되였다. 여기 도박장의 칩은 비록 그들에겐 푼돈이였지만 일반인에겐 엄청난 돈이였기때문에 한 판 한 판에 거금이 오고갔다.증조할아버지께선 한평생 자신의 동네에서만 생활했었기 때문에 아무리 큰 도박판이라 해봤자 평소 동네 어르신들과의 노름판에서 고작 몇백 몇천원만 따가거나 잃을게 뻔했다.(이런 큰 돈이 오고가는 도박판을 증조할아버지께서 경험했을 리가 없지, 만약 진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하지만 강한서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내가 보기엔 오늘 운이 좋으셔, 혹시 진다고 해도......"그는 말을 잠깐 멈췄다가 유현진을 다시 바라보며"당신 2000억통장에서 메꾸면 되겠네."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도박에서 지는건 사소한 일이였고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는건 증조할아버지
그리고는 또 다른 주머니에서 칩을 꺼냈다, 또 그리고 바지 주머니, 심지어는 셔츠 안쪽 주머니에서도 칩이 나왔다.유현진은 마치 도라에몽을 보는듯한 착각을 느꼈다, 계속해서 숨겨놓은 칩을 꺼내고 있었다. 칩은 탁자위에서 산을 이루고 있었다.유현진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질 않았다.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서 강한서를 바라봤다. 하지만 강한서는 태연한 태도로"내가 말했잖아, 운이 좋으시다고."(운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한 번도 져본적이 없는게 아니야?)탁자위의 칩은 테이블 차지랑 딜러한테 주는 팁을 제외해서 계산한 결과 3억 4000만원을 땄다.유현진은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났다, 이 정도는 그녀가 연기를 해서 번 돈보다 훨씬 많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증조할아버지랑 같이 도박하는건데!유현진은 증조할아버지의 돈 따는 비법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여태까지 어떻게 돈을 딸수 있었냐고 물었다.이에 증조할아버지는"젊은이는 착실하게 살아야 되지 이런 쪽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안돼.""근데 할아버지께선 계속 돈을 거셨잖아요."증조할아버지는 당당하게"만약에 돈을 잃었다고 해도 집에 있는 땅으로 얼마든지 죽기전까진 먹고 살수 있지 않나. 하지만 너희들은 다르지, 이런것에 손 대면 그때부터 패가망신하는 길로 들수밖에 없지. 도박장에서 번 돈을 누가 그리 쉽게 내줄까?"유현진은 이에 할말을 잃었다.비록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도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증조할아버지가 말한 교훈이 약간은 내로남불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강한서를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혹시 할아버지께서 사기를 친게 아닐까?"강한서는 머리를 끄덕였다."가능성 있어.""그럼 어떡해?"강한서는 그녀는 한번 보고는"당신이 딜러한테 말해봐, CCTV 한 번 돌려봐서 확인해보라고. 정 아니면 어르신을 보내는건 어때? 그 정도 년세면 몇날 안가서 풀어나실거야."유현진의 입꼬리가 떨렸다."내가 바보야?"유람선 안에서 벌어지는 도박판은 원래도 불법이였기에 만약 진짜로 속임수를 썼다 한들 사적으로
"그 "법역" 이라는 프로그램이죠? 제 아이도 하교하자마자 TV앞에 앉아서 그 프로그램을 봤죠. 듣기론 학교에서 내준 독후감 숙제라나? 저도 아이랑 함께 몇화정도 봤었는데 주위에서 말하지 않았다면 현진씨를 몰라뵐뻔 했네요."비록 이런 칭찬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법역" 의 흥행은 진짜였다.유현진은 웃으며 답했다."저는 고여정씨한테 도움을 준것 뿐이예요, 사업단위에서 한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적당한 배우를 찾지못해서 제가 그나마 반반하게 생겨서 대신 출연한거예요, 대충 연기했는데 운이 좋았죠."반반하게 생겨서......이 말을 들은 사모님들을 할말을 잃었다.유현진의 미모는 반반하게 생겼다고 할게 아니라 신이 내린 축복을 받은듯한 외모였다.다행히도 강한서가 그녀와 결혼했길래 망정이지 아니면 다들 모두 조금이나마 위기감을 느꼈을것이다. 손짓 하나로 충분히 남자를 홀릴수 있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였다.전 여사는 송민영을 힐끔 보고는 갑자기 웃으며 입을 열었다."기실 연기에 관한건 저희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배우들은 잘 아시지 않나요? 연기가 좋고 나쁨은 배우라면 알아낼수 있겠죠? 민영씨?"유현진은 전 여사를 흘겨보았다.(어째서 또 그녀를 거론하는거지? 강한서가 저번에 고작 푼돈을 딴걸 가지고 늘어지네, 뒤끝이 얼마나 긴거야?)송민영은 이에 상냥한 태도로 답했다."저도 그냥 밥 벌어 먹고 사는 정도예요,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아요.""민영씨 너무 겸손하시다, 민영씨가 전문적이지 않으면 연예계에서 그 누가 전문적이라고 말할수 있겠어요? 현진씨도 대충 연기한거라 했으니 민영씨도 몇마디 해주시죠, 저희도 궁금해요."전 여사는 말을 끝내고 미소를 지으며 유현진을 바라봤다."현진씨도 괜찮죠?"유현진은 속으로는 쌍욕을 퍼부었지만 표정관리는 그 누구보다 잘했다. 태연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럼요, 저도 한 번 '전문가' 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네요."송민영은 이에"그럼 제가 두어마디 대담하게 해드릴게요, 제
한성우가 흥, 콧방귀를 뀌었다. “형수님도 양심은 없으시네요. 아무리 그대로 강운이가 형수님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잖아요. 이렇게 이용하시면 마음에 안 찔리세요?”한성우의 말에 한현진의 말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좋아하면 강한서를 자극하기 위해 절 간민혜 씨 모습으로 분장시킬 수 있어요? 저와 주 변호사님은 그저 지인 딱 그 정도예요. 말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말 안 할 거면 됐어요.”‘강한서에게 덫을 놓은 건 내가 평생 기억하고 있을 거야.’말을 잘못 꺼냈음을 인지한 한성우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얘기하면 되잖아요. 왜 화를 내고 그래요. 하지만 제가 얘기한다고 해서 강운이가 나설 거란 보장은 저도 못해요.”한현진이 덤덤하게 말했다. “할 거예요.”주강운이라는 사람의 모든 면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었지만 한현진은 변호사로서의 그의 능력은 의심한 적이 없었다. 정서희의 의뢰를 받고 정설희 사건을 조사하고 있으니 당연히 장준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제 발로 찾아온 기회는 주강운은 거절할 리가 없었다. 주강운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던 한성우는 돌고 돌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불법 레이싱 교통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3명이 죽고 15명이 부상을 입었대. 전부 이제 갓 20살이 된 어린 애들이던데 안타깝게 됐어. 학교나 열심히 다닐 것이지 레이싱은 대체 왜 한 거야.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봐.”커피를 한 모금이 마신 주강운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이젠 사회 뉴스도 봐?”“아니, 그냥 우연하게 본 건데 놀라워서 그러지. 바로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부상자 중에 진수 그룹 막내아들도 있었고. 탄식이 절로 나오더라니까.”물을 한 모금 마신 한성우가 툭 던지듯 물었다. “넌 이런 뉴스 안 봐?”주강운이 말했다. “봤는데 자세히는 안 봤어.”“사건 관련 기사는 아무것도 아니야. 숨겨진 뒷이야기가 더 충격적이야. 그러니까...”“잠깐만.”주강운이 한성우의 말을 잘랐다. “나 할 일이 있어서 나중에 끝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사고 원인을 밝히는 거 아녜요? 대체 왜 부상자 신상정보나 캐고 있는 거예요? 일부러 여론 몰이 하려는 거 아녜요?][그러니까요. 이렇게 큰 교통사고면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 이 경기의 주최 측에 문제점을 둬야하는 거잖아요.][속도 제한 구간에서 불법 레이싱을 하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어요. 뭐 더 할 말 있어요? 위에 댓글 혹시 진수 그룹 알바 아니세요?][그래서 진모 씨는 경기에 참가하지 않은 건가요? 피해자라도 된대요? 피해자는 그 인간들 차에 치인 사람이에요. 논리적인 척 하는 거 웃기네요. 쓰레기 같은 인간 때문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나 몰라라 하면서 그것도 인간이라고 신상정보가 털리는 게 안타까워요?][진윤. 남. 서화 대학 전기정보공학과 2학년. 주민등록 번호: XXXX. 전화번호: XXXX.]진윤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전부 폭로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보를 공유했다. 심지어 진윤의 수능성적을 폭로하며 그의 성적으로는 서화 대학에 입학할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법 레이싱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한 사람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여론은 이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여론 몰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 대상이 진윤이 될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 진윤을 이용해 사건의 요점을 흐리려는 의도이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진수 그룹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 분명했다.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한현진이 한성우에게 연락했다. 진윤의 일로 전화했다는 것을 안 한성우가 말했다. “이번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녜요. 일단 불법 레이싱도 문제이긴 하지만 제일 중요하건 레이싱에 참가한 사람 중 마약을 한 인간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이번 사고가 일어난 제일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고요.”“지금 그 인간을 숨기기 위해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의 모든 화살을 진윤 씨에게 돌리고 있어요. 형수님과 한서는 이번 일에 끼어들지 말아요.”한현진이 멈칫하며 물었다. “그
한현진은 어쩔 수 없이 민경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혼식 준비를 하는 민경하를 위해 강한서는 특별 휴가를 지급했다. 그러니 민경하도 지금은 강한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아주머니 말로는 아침 여섯 시부터 급하게 나갔다고 해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겠어요.”“잠깐만요, 사모님.”갑자기 한현진을 부른 민경하가 나지막이 물었다. “오늘 아침 뉴스 보셨어요?”“아직요. 왜요?”민경하가 말했다. “어젯밤 남서신길에서 레이싱 경기가 있었는데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어요. 3명이 죽고 1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해요. 남서신길 쪽에 저희 자회사에서 시공을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요.”“오늘 아침 6시쯤에 뉴스가 터진 거니까 대표님께서 급히 나간 게 그 일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남서신길이요?”잠깐 생각에 잠겼던 한현진이 움찔 몸을 떨었다. ‘진윤 씨가 전에 참가하겠다고 고집 부리던 경기잖아?’한현진이 곧바로 진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홍혜림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비록 진씨 가문과 연이 깊은 것도 아니었고 진윤에게 다가간 것도 홍혜림에게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이었지만 혹시라도 사고를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이 자식! 분명 강한서와 더는 그런 위험한 경기엔 참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대체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거야.’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자 한현진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하리에게 물어봐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진윤의 사촌누나이니 어쩌면 남인 그들보다 먼저 소식을 들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열이 말했다. “진윤 씨도 다쳐서 아직 깨어나지 못했대요. 신하리 씨도 아까 공항으로 가서 아마 지금쯤 그쪽으로 출발했을 거예요. 아직 사람을 보지도 못했으니 신하리 씨도 상황은 잘 모르고 있을 거예요.”제일 염려했던 일이 결국은 일어나고 말았다. 진윤도 그 사고 현장에 있었다. 그
염색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잘생긴 포즈로 거울 셀카를 찍은 진윤이 강한서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다시 시작.]강한서는 사진 속 검은 머리에 순해 보이는 젊은이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읽던 책을 내려놓은 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왜?”강한서가 진윤의 셀카를 한현진에게 보여주었다. 한현진 역시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금발에 눈썹도 살짝 밀어버리는 스타일을 고집하더라니. 눈썹 피어싱까지 빼니까 그냥 아기였네. 너무 귀엽게 생겼잖아. 훈이보다 어려 보여.”강한서도 한현진을 따라 웃었다. “선배도 그렇잖아. 50살도 넘은 분이 아직도 30대처럼 보이니까. 성우가 처음 선배를 봤을 때 형이라고 불렀다가 예의 없다고 혼났어. 그러다 다른 애들도 형이라고 하니까 말이 없더라고.”그 장면을 상상한 한현진은 웃음을 멈추질 못했다. “역시 동안이 좋아. 50대가 되어서도 얼굴 하나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살 수 있잖아. 난 왜 동안이 아닐까?”그 말에 멈칫한 강한서가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누구 마음을 사려고?”한현진이 눈웃음을 지었다. “강 대표님, 몇 십 년 후의 일도 미리 질투하실 거예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냐.”한현진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정말?”강한서가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안 해, 질투.”예상 밖의 대답에 호기심이 불타오른 한현진이 물었다. 몇 십 년 후엔 사랑보다 정으로 사는 거라 신경 쓰지 않는 거야?”강한서가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뭔데?”강한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대들은 그저 첩에 불과해.”멍해졌던 한현진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강한서를 품에 안고 뽀뽀 세례를 날렸다. “진지한 얼굴로 실없는 농담을 던질 때 정말 귀여워 죽겠다니까.”강한서가 힐끔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이런 걸 바로 조강지처의 자신감이라고 하는 거야.”한
순간 불쾌한 기분에 빠진 진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아마추어 경기는 사석에서 주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문적인 레이싱 경기도 아니었다. 오직 속도에서 주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경기였다. 상금이 높은 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하지만 진윤이 경기에 참가한 것은 상금 때문이 아니었다. 돈 걱정 없이 산 진윤이 목숨 건 돈에 욕심낼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단지 경기의 주최 측에 F1 레전드 인물도 있다는 소식에 우승을 하면 그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참가한 것이었다. 진윤은 그의 팀원들 역시 레이싱에 대한 열정으로 함께 지금까지 뭉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의 말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진윤처럼 레이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프로 선수가 되길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이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레이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상금이라는 거대한 유혹일 수도 있었다. 팀원 중 위험한 내기 경기에 참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진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산길을 휘저었다. 목숨을 내걸고 재벌들의 도박판에서 기꺼이 주사위가 되었다. 아차 하는 사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면 그만큼 어마어마한 상금이 주어졌다. 불행히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고 해도 그의 가족들은 놀라운 액수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처음으로 팀원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의 진윤은 충격에 빠졌었다. 하지만 팀원들은 마치 일상적이 대화를 하듯 당연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때의 진윤은 그저 그들이 비슷한 일을 너무 많이 들은 탓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들은 그렇게 위험 부담마저도 부러웠었던 같았다. 팀원 중 대부분의 사람에게 레이싱은 그저 짧은 시간 사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다. 뜬 눈으로 꿈을 꾸고 있는 진윤이야말로 그들에겐 이상한 인간
“아들. 네가 공부가 하고 싶다면 복수 전공이 아니라 10개 전공을 배우겠다고 해도 엄마는 찬성이야. 엄마 지금 너무 기뻐. 만약 농담하는 거라면 지금 당장 거짓말이었다고 얘기해. 안 그럼 엄마는 진심으로 받아들일 거야.”진윤이 웃으며 홍혜림의 팔을 끌어안았다. “엄마. 저도 형처럼 엄마의 자랑이면 안 돼요?”홍혜림이 진윤의 금발을 어루만졌다. “너도 예전엔 엄마의 자랑이었지. 금발로 염색한 후로는 자랑이 아니게 되었지만.”진윤: ...“그럼 다시 염색할게요.”홍혜림이 얼른 헤어숍 VIP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얼른 가. 여긴 새벽 12시가 되어야 영업이 끝나는 곳이야. 지금 가면 아직 시간 있어.”진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홍혜림이 얼마나 진윤의 금발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네, 네, 네. 지금 갈게요.”외투를 챙겨주며 문앞까지 배웅 나온 홍혜림이 진윤에게 물었다. “아들. 조금 전에 누구한테 들은 말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잖아. 그 분 너희 교수님이셔?”“우리 교수님은 아녜요. 하지만 좋은 스승님이긴 해요.”‘사기꾼이기도 해. 하지만 꽤 능력 있는 사기꾼.’홍혜림이 호기심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그 분 한 마디에 바로 생각이 바뀐 거야?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이 얘기했었는데, 그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진윤이 말했다. “절 데리고 20km를 뛰었어요. 자길 이기면 날 뉴벨리 팀에 입단시켜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보다 10살이나 많아서 나이 많은 어르신한테 지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졌어요.”진윤이 창피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저보다 빨리 뛴 건 아니었어요. 제가 적을 만만하게 생각한 거죠. 하지만 무서운 사람이에요. 지독하게 강해서 무서운 사람. 그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입단은 무슨, 그냥 그 기회를 벌어 저에게 설교를 하려던 것뿐이었어요.”“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레이싱을 그만두게 하려고. 처음엔 엄마가 보낸 스파이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진윤에게 묻는 홍혜림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얘기해. 엄마 괜찮아. 파산이라도 하지, 뭐. 돈은 없으면 다시 벌 수 있어. 아빠가 안 된다고 하면 쫓아내면 돼.’처음으로 느끼는 죄책감에 진윤은 고개를 숙였다. 홍혜림이 비록 관리를 잘 하긴 했지만 귀밑머리는 이미 하얀 서리가 내려있었다. 큰형은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라 부모님의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유독 진윤이 고집을 부리며 걸음마를 뗄 때부터 뒤에서 마음을 졸이게 했다. 진윤의 수능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 그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 전공은 전부 부모님이 수많은 돈을 들여 기획한 결과였다. 하지만 진윤은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전공이라는 이유로 자포자기하며 지냈다. 부모님이 통제욕이 강하다는 것은 그저 진윤이 그들에게 씌워놓은 프레임에 불과했다. 정말 부모님의 통제 속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은 매일 모든 스케줄, 심지어 먹는 음식까지 전부 부모님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그의 부모님은 그저 애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레이싱을 좋아하는 진윤이 못마땅했지만 그럼에도 그저 설득하는 것이 전부였다. 홍혜림은 단 한 번도 진윤의 레이싱 장비를 부순 적이 없었다. 매번 더는 새 장비를 사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다짐도 진윤의 애교 몇 번에 곧 무너지고 말았다. ‘언제까지 실망만 안겨드릴 순 없잖아. 나도 엄마의 자랑이 되어야지 않겠어?’“엄마. 저 복수 전공하고 싶어요. 전 레이싱이 좋아요. 도무지 포기가 안 돼요. 저 실력 그 정도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자동차 관련한 전공을 배워보고 싶어요. 지금 전공은 절대, 두 번 다시는 F학점 받는 일 없을 거라 약속 드려요. 복수 전공하게 해주면 안 돼요?”홍혜림: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진윤이 멍해졌다. “네?”홍혜림이 말했다. “네가 나에게 하려는 말이 그거야?”진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그게 아니면요?”홍혜림: “사람을 치거나, 교통사고를 낸 게 아니고?”
눈에 띄게 변한 진윤의 모습을 홍혜림은 믿을 수가 없었다.집 바로 앞이 학교라 진윤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레이싱 게임을 할 때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아 진윤은 큰형 아파트에 몰래 숨어있는 것을 좋아했다. 진윤의 큰형은 일 때문에 그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9살이나 더 많은 그의 형은 가끔 부모님보다 더 진윤을 아끼기도 했다. 심지어 가끔은 진윤의 편을 들어 그의 비밀을 지켜주기도 했다. 큰형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니 제발 눈치껏 본가로 들어오라고 홍혜림은 몇 번이고 진윤에게 얘기했었다. 사실 예비 며느리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진윤을 본가로 불러들이는 이유는 진윤이 곁에 없으니 도무지 관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윤은 그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매번 홍혜림이 같은 얘기를 꺼낼 때마다 그는 두 귀를 닫고 못 듣는 척 연기했다. 하지만 이번엔 홍혜림이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진윤 스스로 본가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진윤에 홍혜림은 혹시 형제가 싸우기라도 한 걸까 전화를 했지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홍혜림은 생각했다. ‘이 자식 또 무슨 사고라도 치고 돌아와서 얌전한 척 연기하는 거 아냐?’‘교통사고라도 내서 배상해 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레이싱 카가 망가져서 새 차를 살 돈이 필요한 건가?’‘설마 사람을 친 건 아니겠지?’진윤이 집에서 열심히 공부할수록 홍혜림은 점점 더 사람을 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매일 밤 아무 일도 없는 척 진윤의 방 앞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먼저 잘못을 인정하면 요즘 얌전하게 지냈던 걸 정상참작해서 욕을 좀 덜해야겠어.’하지만 3일이 지나도록 진윤은 홍혜림을 부르지 않았다. ‘이상해.’‘너무 이상하잖아!’‘설마 사람을 친 것보다 더 큰 사고는 아니겠지?’‘대체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 거야?’1 주일이 지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한 홍혜림은 진윤의
진윤: ...강한서가 진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싫다면서 현 상황을 바꿔보려고 하지도 않은 거야?”진윤: ...‘왜 선생님께 혼나는 기분이 드는 거지? 진지하게 핵심만 꼬집고 있잖아.’입을 달싹이던 진윤은 변명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진윤은 그동안 어떻게 반항해야할지,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강한서가 말했다. “네 인생은 네 거야. 네가 열심히 살든, 대충 살든 네 하루하루는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어. 네 태도에 따라 싫었던 그 경험들이 사라지지 않아. 단지 네가 싫다는 이유로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않고 대충 흘려보냈을 뿐 그것들은 계속 존재해.”“대충 공부해서 대충 졸업하면 또 대충 취직이나 하겠지. 아니면 아예 너희 회사로 입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에? 그렇게 평생을 대충 흘려보낼 거야? 그게 네가 원하는 인생이야?”멍하니 강한서를 쳐다보던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아뇨.”부모님이 선택해준 전공이 싫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얼른 졸업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강한서의 말처럼 졸업 후엔? 전공에 맞는 직업을 찾아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갈까, 아니면 부모님 회사에 입사해 되는대로 살아갈까. 어떤 선택이든 그건 진윤이 원하는 인생은 아니었다. 4년이란 시간을 허무히 흘러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 이미 3학년이에요. 전과를 하기엔 늦었잖아요. 이젠 뭘 하려고 너무 늦은 것 같아요.”속상한 듯 대답하는 진윤의 말에 한현진이 말했다. “진윤 씨는 완전 MZ세대잖아요. 이제 갓 이십 대 초반인데 뭘 해도 늦지 않은 나이예요. 너무 빨리 본인의 가능성을 단정 짓지 말아요. 60세에 대학생이 됐다는 기사 못 봤어요?”“진윤 씨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도 늦었다고 생각 안 하는데, 진윤 씨가 왜 겁을 내요?”“전...”입술을 달싹이던 진윤이 한참이 지나서야 한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 문제아 갱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