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금은 송가람이 적을 얕잡아 보는 이런 태도가 매우 실망스러웠다.“한현진은 주얼리 디자인도 못 해. 그래도 내가 너한테 준 스트레인지를 자기 손에 있는 무기로 키웠어. 너를 봐봐, 지금 스트레인지를 언급하면 내가 너에게 준 혼수품 인 걸 누가 알겠니?”송가람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보석 파는 거랑 조향이 어떻게 같아? 운이 좋았을 뿐이야. 깔리느에서는 조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누구도 인정 안 해.”“그래, 운이 좋다고 쳐, 하지만 그것도 한현진의 능력이야. 네가 조향에 대해 더 잘 알면 또 어때? 깔린느에 그렇게 많은 조향사가 있는데, 네가 없다고 회사가 멈출 것 같아? 회사 제품의 판로를 개척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진짜 능력이야,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걸 추구하지마.”송가람은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한현진 때문에 서해금의 걱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깔린느가 물론 아버지의 지분이 절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 전부 어머니의 노력이었고 많은 사람이 인정한 것도 그의 어머니였다. 한현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엔 고작 배당금을 받을 뿐이고 회사에서 핵심적인 팀들이 어머니한테 복종한다면 깔린느가 나누어져도 손해 보는 건 결국 한현진일 것이다.“내 말 들었지?”잠자코 아무 말도 않는 송가람을 보자 서해금은 언짢았다.근 몇 년 동안 위기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너무 버릇을 잘못 들였다.한현진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든 상관없었다.송병천 부자들은 깔린느에 별로 관여하지도 않았다.심지어 송병천은 몇 년간 그의 어머니를 돌본 서해금에게 보상금 대신 깔린느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였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한현진이 돌아오자 송병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깔린느의 지분을 한현진에게 넘겼다.한현진의 두 눈은 한아람과 너무도 닮았다.그러나 조향을 좋아했던 한아람의 눈빛과는 달리 한현진의 눈에는 야심이 서려 있었다.스트레인지는 고작 그가 칼을 갈기 위
“적게 연락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강한서는 한현진의 약혼자야, 가깝게 지내서 뭐 할 건데?”송가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엄마, 예전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 신미정 이모한테 우리를 주선해 달라고 했었잖아, 왜...”“예전은 예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야.”서해금은 송가람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그때 한현진은 송씨가문에 인정받지 못했을 때고 이혼까지 했었잖아. 네가 강한서를 좋아한다 해서 지지했었지만, 지금은 어때? 한현진은 너의 의붓동생이고 강한서랑 약혼까지 했어. 그 두 사람 사이에 왜 끼어들어. 남들이 뭐라 하는지 알아? 이 세상에 무슨 남자가 없다고 하필 제삼자가 되려고 그러는 거야?”말이 귀에 거슬린 송가람은 창피하면서도 짜증 나는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만약 한서 오빠가 날 좋아하면?”서해금은 차갑게 대답했다.“기억을 잃고 네가 며칠을 돌봐 줬다고 너한테 마음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 그런 거면 그를 돌봤던 의사며 간호사며 강한서를 생사의 길에서 살려준 사람들인데 돌아가면서 다 좋아해야겠네?”“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한들 큰 사모님 관문은 어떻게 넘을 건데? 큰 사모님은 가문의 명예를 가장 중요시하시는데 강한서가 너랑 결혼하게 놓아둘 거 같아? 강한서는 큰 사모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어. 강씨 가문에 들어도 못 갈 텐데 그럼 뭐 강한서의 숨겨놓은 여자라도 할래? 만 보를 물러서서 이 모든 걸 다 극복했다고 쳐, 강한서가 기억력을 회복한다면?”“송가람, 너와 강한서의 시간은 훔친 거에 불과해. 일단 강한서가 한현진을 떠올리고 그들 사이의 모든 것을 전부 기억해 내면 네가 한현진을 이길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강한서 몸의 상처는 전부 한현진을 위한 거야. 유언장마저 한현진의 이름이고. 강한서 마음속에 있는 한현진이라는 무게는 고작 목숨을 구해준 은혜로 넘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때 되면 넌 어떡할래?”송가람은 먼 훗날의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강한서를 빨리
송가람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해금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가람아. 넌 어릴 때부터 말 잘 듣고, 엄마가 시키는 건 다 잘 해왔잖아. 엄마가 너를 위해 애쓴 건 네가 나중에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길 바란 거지, 누군가의 아내로 살게 하려고 한 게 아니었어.”“강한서가 설령 마음이 바뀌어 너를 좋아한다고 해도 생각해 봐. 오늘은 너를 위해 한현진을 버릴 수 있지만,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너를 버리지 않겠니?”서해금은 이를 악물고 다시 강하게 밀어붙였다.“넌 송씨 성을 가졌지만, 송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야. 네 아빠와 오빠가 너를 아무리 사랑해도, 사람은 결국 자기 피붙이를 더 챙기기 마련이야. 그러니 송씨 가문은 네 평생의 뒷배가 될 수 없다고. 넌 반드시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해. 깔린느에서 중요한 자리에 오르면 아무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내가 한현진 얘기를 꺼낼 때마다 그렇게 짜증 내지 마. 한현진은 네 아빠에게 인정받아 송씨 가문으로 돌아왔고 또 강한서와 다시 잘되고 있으니, 그녀의 인생은 대박 난 거야. 근데 그녀가 멈춘 적 있어? 네 아빠가 준 가게든 스트레인지든 심지어는 본인이 연기하는 영화나 드라마도 하나도 소홀히 한 적 없잖아.”“걔는 너만큼 스타트가 좋지 않았지만 네가 여기서 멈춰 있으면 걔가 널 추월하는 건 시간 문제야. 일단 걔가 깔린느에서 자리를 잡으면 넌 평생 걔한테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송가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서해금은 물잔을 건네며 말했다.“강한서가 내 말 한마디에 너와 연락을 줄였다는 건, 네가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빨리 포기하는 게 너한테도 좋을 거야. 대보름이 지나면 정식으로 입사해. 그때 성월을 붙여줄게.”서해금의 쓴소리가 이제야 가슴에 와닿은 듯 송가람은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응수했다. 서해금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제는 어른이니 뭐가 중요한지 스스로 판단할 나이였기 때문이다
강한서는 일을 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그녀가 소파에서 다리를 찢으려는 걸 보자 결국 참다못해 말했다.“가만히 좀 앉아 있으면 안 돼?”한현진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앉아 있어도 나랑 말 걸어주는 사람 없으니 심심하잖아. 움직이면 덜 심심해.”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차라리 내가 성우를 불러줄까? 수다나 떨게?”“아니, 민 실장님이랑 얘기하면 돼. 민 실장님, 바빠요?”한현진은 순진한 눈빛으로 물었다.민경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제 일은 거의 다 마쳤고, 이제 대표님께서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한현진은 바로 자리에 앉아 물었다.“민 실장님, 요즘 민서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민경하...강한서...그녀가 심심한 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가십거리에 대한 궁금증을 더 이상 참지 못해 속이 터질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당사자에게 직접 돌직구를 날려버렸다.민경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다른 얘기 하면 안 될까요?”한현진: “한서 씨가 민 실장님을 협박해서 이렇게 참고 있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 얘기해 봐요. 내가 실장님 편 들어줄게요. 그딴 억지 결혼 절대 못 하게 할 테니까.”강한서: “?”‘그가 그런 사람이었나?’민경하: “정말 그런 일 없어요. 대표님은 그런 분 아니에요.”“그럼, 실장님은 민서를 좋아하는 거예요?”질문이 너무 직설적이라 민경하는 어떻게 대답할지 난감해하며 강한서의 눈치를 살폈다.강한서는 그를 흘겨보았다. 마치 ‘아까 내 아내한테 아부할 때는 왜 그렇게 용감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농담은 농담이고, 그래도 강한서가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꺼냈다.“왜 그렇게 민 실장의 연애에 관심이 많아?”한현진은 금세 강한서에게 말려들어 생각이 딴 데로 갔다.“당신 동생이 민 실장님을 괴롭힐까 봐 그러지. 걔가 전에 사람들 괴롭힌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민 실장이 그렇게 만만해? 예전에 민서가 회사에 왔을 때도 민 실장이 데리고 다녔
한현진...그녀가 성난 표정으로 말했다.“한 번 더 말해봐!”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잡아 부드럽게 끌어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 위에 얹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내가 여기 있는데, 남의 연애사에 그렇게 관심을 가져도 되는 거야?”“그럼, 우리 둘 얘기나 해볼까?”강한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던 한현진은 여러 번 말을 꺼내려 했지만, 끝내 멈췄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망했다. 느낌이 안 와.”남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한현진은 그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그렇게 달콤하게 쳐다보지 마. 난 아직 당신이 기억을 되찾은 게 적응이 안 되거든. 아니면 예전처럼 내가 살짝만 건드려도 꼭 순결한 여인인 것처럼 펄쩍 뛰어봐.”그러고는 수줍게 말을 이었다.“그게 나름 설렜었거든.”강한서...그는 그녀를 감싸던 팔을 풀고 살짝 옆으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 앉았다. 곧 그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고 턱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한현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바로 이거야, 이 느낌!’그녀는 강한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강한서는 몸을 약간 뒤로 빼며 말했다.“현진 씨, 자중하세요.”한현진은 웃으며 다가가 그의 셔츠를 덥석 잡았다.강한서는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제지했다.“아니, 여자가 어떻게 남자 옷을 막 벗겨요? 부끄러운 줄도 몰라요?”한현진은 장난스럽게 그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부끄럽긴? 마침, 내 남편이 기억을 잃었잖아. 평소에는 감히 바람도 못 피웠는데 지금 기억이 없을 때 빨리 서둘러!”강한서??그가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도도한 걸 원하는 거 아니었어? 왜 중간에 대본을 바꿔?”그것도 불륜 대본이라니!한현진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웃으며 한참을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코끝을 그의 코에 살짝 맞대고는 그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내 말이면 뭐든 다 들어주네? 당신도 참, 너무 원칙이 없어.”강한서의 귀는 그녀의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강한서는 올려다보며 눈빛에 미소를 띄웠다.“그날 내가 계속 당신 짐이 됐다면 우리 둘 다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이 아이들도 없었겠지.”그는 손을 천천히 그녀의 배 위에 얹으며 말했다.“하나 대신 셋을 얻었으니, 충분히 값진 거야.”한현진은 화가 난 듯 말했다.“아니야! 당신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어! 당신이 죽었는데 내가 애를 낳을 거라고 생각해? 꿈도 꾸지 마! 당신이 안 돌아오면 난 바로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서 매일 빨간 옷 입고 당신 무덤 앞에서 돌아다녔을 거야. 영웅이 된들 어떡하겠어? 아내가 다른 놈이랑 살게 될 텐데.”강한서는 그녀의 화난 말에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네 그런 '배은망덕'한 잔소리가 들려서, 못 떠나고 다시 돌아온 거잖아.”한현진은 그를 꼭 안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내일 내가 도시락 싸줄까? 다친 뒤로 근육이 빠져서 안으니까 느낌이 별로야.”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임신 중인데 도시락을 만들어 준다고? 민준이가 알면 내 목을 몇 바퀴는 비틀려고 할 걸.”한현진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당해도 싸지. 네가 예전에 못된 짓을 많이 했잖아.”“아, 맞다. 송가람한테 최면 걸어서 뭔가 알아낸 거 있어?”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물에서 구해준 사람은 송가람이 아니었어. 다른 사람이 나를 구해서 병원에 두고 송가람의 연락처를 남긴 거야.”“그럼, 송가람이 당신을 강가에서 발견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강한서가 대답했다.“그날, 물속에서 의식을 잃기 직전에 누군가 날 붙잡았어. 그때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그 힘은 여자 같지 않았어.”물속에서 의식을 잃은 성인 남자를 한 손으로 끌어올리는 건 웬만한 여성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사실 성인 남성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사람은 분명 엄청난 체력과 뛰어난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그 사람은 그를 구했지만, 곧바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송가람의 연락처를 남겼다. 그 사람은 그를 죽이려
한현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당신 집에 이런 비밀이 있었다니!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봐.”강한서는 평소에 입이 정말 무겁기로 유명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비밀을 지켰다는 건 거의 아무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도 이미 양시은한테서 들었을 것이다.강한서는 뜸을 들이며 얘기했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한현진은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그도 그들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아버지의 장례식 때, 그는 강단해와 신미정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어떤 일은 일단 의심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신경을 쓰게 마련이었고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법이었다. 그 당시 신씨 가문은 한주시에서 꽤 잘나가는 집안이었고 신미정과 남동생 신표는 명문가 자제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미남미녀로 유명했다.하지만 신씨 가문은 자식들을 지나치게 감싸줬다. 자식을 버릇없게 키우는 건 자식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속담은 신씨 가문에는 딱 맞는 말이었다.신표는 어린 나이에 이미 도박에 빠져 있었고, 신씨 가문의 재산은 신미정이 결혼하기 전에 거의 바닥났기에 신미정은 결혼 후에도 자주 동생에게 돈을 보태주었다.강한서의 아버지는 도박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신미정은 감히 그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증표가 도박에서 지고 돈을 갚지 못할 때마다 신미정은 강단해에게 부탁했다.강한서는 처음에 이 사실을 몰랐다가 어느 날 술에 취한 증표가 그의 어깨를 감싸안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누나는 정말 잘못된 선택을 했어. 네 아빠랑 결혼해서 크게 성공하려 했는데, 결국 네 아빠는 우리 누나를 지지하지도 않고 일찍 죽어버렸잖아. 차라리 그때 네 둘째 삼촌이랑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네 아빠가 죽어도 그녀는 여전히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는 건데. 그때가 되면 누가 감히 나를 쫓아낼 수 있겠어?”이 말에 열몇 살이었던 강한서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때부터 그는 강단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자신뿐만 아니라 강민서도 그와 멀리하게 했다.
강한서...이건 정말 예전에 그가 했을 법한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릴 때 신미정이 늘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어렸을 때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신미정은 늘 같은 말이었다.“자만하지 마, 다음번엔 다른 애가 널 따라잡을지도 몰라.”“나와 네 아빠가 너한테 돈을 그렇게 많이 썼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니?”그는 그녀에게서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을 나눌 때도 어떻게 제대로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그래서 그가 생각한 격려는 상대방에게 상처와 비하로 들렸을 뿐이었다.신미정은 그에게 가장 잘못된 본보기를 주었기에 강한서는 자신이 그녀와 다르다고 믿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받들어지다 보니 자신도 그녀와 같은 착오를 범하고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강한서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며 작은 강아지처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예전의 나를 더 좋아해, 아니면 지금의 나를 더 좋아해?”한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한서 씨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치는 사람이니까, 언제나 다 좋아해.”그의 눈이 별처럼 반짝이며 환하게 빛났다.그는 나지막이 말했다.“사실 나 그 영화 봤어. 개봉 전에 감독님 댁에서 원본을 봤는데, 연기 정말 좋더라.”“50원짜리 연기라며?”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이번에는 80원은 되던데.”한현진이 양서은에게 먼저 연락하기 전에 양시은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요 며칠 동안 전씨 가문의 일은 온 바닥에 소문났다.전태평의 죄목은 거의 확정된 상태로, 현재 관련 기관에 구속되어 절차만 기다리고 있었다.양시은은 사업 수완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정치계의 회색지대는 전태평에게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계속해서 주의를 줬었다.그녀는 자산도 충분하고, 가정의 경제 사정도 여유로워 굳이 위험한 돈을 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돈을 만졌다가 사고가 나면 집안이 완전히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전태평은 말로는 잘 알겠다고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