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성은 강한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저랑 같은 연도에 대학에 들어선 최면술사, 특히는 박사 학위까지 딴 최면술사는 몇 없어서 제가 다 알고 있는데... 제 기억 속에 황 씨 성을 가진 한국인인 없었습니다.” 강한서는 핸드폰을 열어 사진 한 장을 지현성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입니다. 아세요?” 지현성은 사진 속 남자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 해지더니 말했다. “야마다 쇼타?” 강한서는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일본말에 당황하며 물었다. “일본인입니까?” 지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희 학교 학생 아닙니다. 저랑 같은 연도에 대학에 붙은 같은 학번학생도 아니고요. 근데 이 사람 매일이다시피 저희 교수님 수업을 들으러 왔었습니다.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머리도 총명해서 교수님도 이 사람을 좋아했고요. 하지만 저희 업계에서 이 사람 명성이 아주 안 좋습니다. 전에 불법으로 어떤 여자에게 최면을 걸어 소송을 걸라고 협박했었습니다. 그런데 증거가 부족해 그냥 풀려나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산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혼자 사무실을 열어 자신이 우리 학교에서 들은 지식을 이용해 천천히 이름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람은 쉽게 안 변하는지 하는 수법도 아주 차하고 악질이라고 합니다. 돈을 벌어서는 다 유흥에 쓰고 술에 찌들어 살면서 알코올중독까지 걸릴 뻔했다고 하고 실력은 그 자리 그대로 발전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후에 고객에게 금지된 제품을 사용한 일이 밝혀지고 나서는 자격증도 다 회수되고 감옥에서 몇 년 살았습니다.” “그리고나서는 더는 저 사람 소식을 못 들었는데... 여기서 들을 줄이야.” 강한서는 침묵하다 천천히 입을 열어 지현성에게 물었다. “황닥터와 교수님은 아직 연락을 하는 가요?” “이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현성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이어갔다. “아마 하는 것 같습니다. 전에 교수님 따님분이 결혼할 때 식장에서 야마다 쇼타 씨를 마주친 적 있습니다. 근데
민경하는 강민서의 성격이 참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자주 바뀐다고 생각을 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강민서의 옆으로 다가갔다. 민경하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 강민서는 물티슈를 꺼내들더니 발뒤꿈치를 조금 든 채로 민경하의 얼굴을 벅벅 닦았다. 강민서가 민경하의 얼굴을 닦아주는 그 힘은 마치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것 같았기에 아픔을 느낀 민경하는 인상을 쓴 채로 피해버렸다. 그러자 강민서는 짜증이 잔뜩 난 얼굴을 하고 그에게 물었다. “왜 피해요? 얼굴에 립스틱 자국 묻은게 아주 자랑인가 봐요?” 민경하는 강민서의 말에 얼굴을 어루만지던 행동을 멈추고는 되물었다. “립스틱 자국이요?” 강민서는 그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송가람 씨가 차에서 뽀뽀했잖아요. 기분 좋았나 봐요? 송가람 씨는 송 씨 삼촌 딸이 아니니까 이 틈을 타 재벌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아요.” “...” 침묵하던 민경하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 뜻은 우리도 가능성이 없다는 건가요?” “네? 뭐라고요?” 민경하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께서 재벌 집안에 들어갈 제 꿈의 불길을 꺼버렸잖아요.” 강민서는 그의 말에 이빨을 꽉 깨물며 반박했다. “전 지금 송가람 씨 말을 하는 건데요? 누가 지금 이 말 하라고 했어요?”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제 고작 얼마나 만나봤다고 뭘 그렇게 아는 척 해요? 아니면 여기서 끝을 내고 싶은 건가? 뭐 하나 알려줄게요. 만약 정말 끝을 내고 싶은 거라면 가서 할머니께 말씀드려요. 저는 절대로 민경하 씨랑 같이 혼날 생각은 없으니까!” 민경하는 화가 나 씩씩 거리며 서있는 강민서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재벌 집안에 들어갈 꿈은 다시 꿔도 된다는 거죠?”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민경하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강민서는 물티슈를 그에게 툭 던져주며 말했다. “혼자 닦아요. 난 더러워 죽겠으니까.” ‘이래서 아까 차에 올라 탈 때 한현진 씨가 우리 오빠를 기어코 조수석에 앉힌
“강한서?”서해금은 확실치가 않았다.‘가람이한테 관심도 없는 강한서가 이런 늦은 시간에 함께 있다고?’“가람이 핸드폰이 왜 너한테 있어?”한현진은 강한서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말했다.“가람이가 취해서 잠깐 저희 집에 데려왔어요. 숙취해소제를 먹였는데 조금 정신이 돌아오면 보내려고요. 가람이가 이 상태로 집에 돌아가면 아줌마가 화낼 거라고 해서요.”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한서야. 가람이가 취했으면 집으로 보내면 되지. 너희 집으로 데려갔다가 이상한 소문이 돌면 어떡해? 아무리 그래도 현진이 약혼자인데 이러면 안 되잖아.”한현진이 일부러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가람이가 말리더라고요. 취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면 아줌마가 화낼 거라면서...”그러고 잠깐 멈칫하고는 계속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비서님이랑 함께 온 거니까 이상한 소문은 돌지 않을 거예요.”서해금이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어 이 상황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영상통화로 가람이를 보여줘.”당황한 한현진은 애써 침착하면서 말했다.“네.”음성통화를 끊은 지 몇 초 뒤, 서해금이 바로 송가람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한현진은 받지도, 끊지도 못하고 송가람의 핸드폰 화면 밝기를 가장 밝게 만들었다. 공포스러운 벨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강한서에게 문자를 보냈다.“아줌마가 가람 언니 상태를 확인하겠다면서 영상통화를 보내왔어. 얼른 끝내야 할것 같아.”얼마 후, 강한서한테서 알겠다는 답장이 돌아왔다.영상통화를 받지 않자 서해금은 끊고 또다시 걸었다.한현진은 평소에 익숙하게 들었던 통화연결음이 재촉하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이때, 강한서가 방 안에서 나오면서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한현진은 송가람의 핸드폰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 강한서에게 아까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이때 강한서의 핸드폰이 울렸고, 이번에는 서해금이 강한서에게 전화한 것이다.강한서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서해금이 강한서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물었다.“가람이랑 함께 밥 먹으면서 너는 술 안 마셨어?”강한서가 대답했다.“저는 약을 먹어서 마시지 않았어요.”“가람이 말리지 좀 그랬어. 여자애가 밖에서 술 마시면 어떡해.”한현진은 움찔하고 말았다.‘정말 엄마 딸이 똑같네. 무슨 일이 있으면 맨날 남 탓하기 바빠.’강한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줌마, 저도 말려보긴 했는데 가람이도 이젠 성인이잖아요. 자기만의 선택의 자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가람이한테 전해주세요. 저도 곤란하니까 저한테서 이만 멀리 떨어지라고요.”서해금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말았다.더 말하기 싫은 강한서는 아예 카메라를 돌려 송가람을 비췄다.옷을 단정하게 입은 송가람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협탁에는 숙취해소제로 보이는 병 하나가 놓여있었다.서해금은 화면에 대고 송가람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지만 그녀는 취기가 올라 일어나지도 못했다.이때, 송가람의 핸드폰이 또 한 번 울렸다. 이번 발신인은 다름아닌 그녀의 아버지인 송병천이었다.한현진은 멈칫하고 말았다.‘아줌마가 집에 없나? 왜 아빠는 아줌마가 한서한테 전화하는 걸 모르고 있는 거지?’한현진은 곧바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떠보려고 전화한 것이 틀림없어. 아까 가람 언니 핸드폰이 어디 갔냐고 물어봤잖아. 이런 젠장. 눈치가 참 빨라.’그나마 아까 2층으로 올라갈 때 송가람의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았기 다행이었다. 강한서가 통화하고 있을 때 송가람의 핸드폰이 울리면 무조건 무슨 일이 있다고 의심할 것이 뻔했다.한현진은 폐를 끼칠까 봐 핸드폰을 들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이때 강한서가 말했다.“가람이 핸드폰은 민 실장님이 지금 1층에 충전하고 있어요.”서해금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충전은 됐고, 가람이 얼른 보내.”“저는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아줌마가 사람을 보내서 데려가시죠? 처음부터 가람이가 우리집에 오는 게 싫었는데 아줌마가 데리러 오면
그것보다도 비밀번호도 모르는데 핸드폰이 잠겨있다는 것이다.강한서가 송가람의 핸드폰을 가져가 잠깐 생각하고는 자기 생일 날짜를 입력하니 바로 풀렸다.한현진이 질투하면서 말했다.“가람 언니가 꽤 순정파네.”강한서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핸드폰 무선 배터리 공유 기능을 켜고 자신의 핸드폰을 송가람 핸드폰 뒷면에 갖다 댔다.한현진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말했다.“이럴 수도 있었어?”강한서가 담담하게 말했다.“핸드폰을 살 때 카메라 화질만 신경 쓰지 않으면 다른 기능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한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강한서는 또 배터리 사용량이 많은 앱까지 전부 다 켜놓고는 밖에 나가 지현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가람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한현진은 참지 못하고 강한서의 카톡을 검색했다.그러다 결국 침묵하고 말았다. 강한서는‘한서 오빠’라고 적혀있었고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대화 배경 화면도 강한서의 사진인 것이다.사진 속 여윈 모습의 강한서는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옆모습으로 창가에 기대어 앉은 강한서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캐시미어 가디건에 햇살이 비쳐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딱 봐도 강한서가 기억 상실되었을 때의 모습이었다. 사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기도 했다.[10년을 기다린다고 해도 상관없어.]주인공이 오랜만에 상봉한 소설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면 감동에 겨워 울면서 보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한현진은 송가람 핸드폰 속 강한서의 카톡과 사진을 삭제하려다 겨우 참았다.그녀는 두 번이나 한숨을 내쉬어서야 평온을 되찾았고 송가람의 갤러리를 들춰보다 강한서가 실종되었던 동안에 찍은 사진이 전혀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이럴 수가.’한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들춰보다가 비밀번호가 설정되어있는 앨범을 확인하게 되었다.그녀는 멈칫도 잠시 전혀 망설임 없이 강한서의 생일 날짜를 입력했다. 역시나 앨범은 바로 열렸고 그 안에는 수백 장의 강한서의 사진과 동영상들이 있었다
강한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한현진이 먼저 말했다.“그 약을 사용하지 않게 허락한 것도 이미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거야. 날 말릴 거면 내일 바로 이혼해! 너랑 더 이상 살기 싫어!”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데이터를 다 써버리면 어떡해. 와이파이를 연결하면 더 빠를 수도 있잖아.”‘눈치라도 있으니 다행이야.’한현진이 와이파이를 연결한 순간, 아래층에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커튼 사이를 통해 밖을 내다보니 다름아닌 서해금의 차량이 도착한 것이다.한현진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배터리도 아직 남아있고 사진도 다 보내지 못했단 말이야.”강한서가 그녀를 달래면서 말했다.“일단 당황하지 말고 옆방에 가서 조용히 있어봐. 내가 시간 끌어볼게.”그러고는 한현진에게 옷을 걸쳐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긴장하지도 말고. 사진 다 보냈으면 대화 기록도 지우고 와이파이도 끊는 걸 잊지 마. 배터리가 다 되지 않아도 괜찮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절대 소리 내지 말고.”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한서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가봐.”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강한서는 방안에 아직 한현진의 향기가 남아있다는 것은 확인하고 송가람의 핸드백 속에 있는 향수를 사방에 뿌리고는 서서히 향기가 퍼져나갈 수 있게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민경하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혀 조급함 없이 1층으로 내려갔다.문이 열리고,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왜 이제야 문을 여는 거야. 가람이는?”강한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숙취해소제를 마시고 2층에서 쉬고 있어요.”“어느 방에 있는 거야? 안내해 봐.”강한서가 말했다.“아줌마, 잠깐만요. 가람이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숙취해소제가 소용없었는지 계속 머리가 아프다길래 민 실장님더러 약을 사 오라고 했어요. 약 먹고 데려가시죠.”“아니야. 됐어.”서해금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바로 데려갈 거야. 집에 약 있어.”‘차라리 아직 안 깨서 다
강한서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한현진한테서 핸드폰을 빼앗았다.“보지 마. 이제 집에 가.”한현진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였다.“다시 줘.”강한서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집에 가자고.”한현진이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주라고.”강한서가 아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자 한현진은 일어나 빼앗으려고 했고, 강한서는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았다.“보지 마. 듣고 싶은 거 내가 얼마든지 듣게 해줄게.”한현진은 강한서가 피투성이인 상태로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이 떠올라 심장이 미어지게 아파져 왔다.“도대체 얼마나 고생한 거야.”한현진은 울먹거리기 시작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강한서의 허리를 안았다.“주삿바늘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마취도 없이 13바늘이나 꿰맸는데 아프지 않았어?”품속에 안겨있는 한현진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송가람이 강한서를 구해준 이유는 바라는 것이 있어서였다. 보상받으려고 일부러 병간호했던 모습을 찍어놓은 것이고, 이것을 핑계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서였다.그래도 다행히 이 동영상들로 인해 그때 당시의 상태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강한서가 구조되었을 때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장시간 동안 찬물에 잠겨있어 심각한 호흡기감염 증상이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그 증상이 악화되어 경련을 일으킬까 봐 차마 마취를 진행하지 못했다.그때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 아팠는지도 몰랐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통증완화 연고를 발라주었고 송가람에게 아프다고 할 때마다 발라주라고 했다. 아프다는 말이 없으면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라고 신신당부했다.강한서가 아프다고 한 적은 없었지만 한현진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다정하게 한현진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싫은 송가람은 계속 연고를 발라주었고, 그러는 바람에 일주일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했다.그래서 한현진이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안 아팠어. 그리고 나 바늘 무서워하지 않아.”한현진이 울
“알았어.”강한서는 말도 잘 들었다.그는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고 한현진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동영상과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송가람은 강한서에게 병적인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강한서가 몸을 가누지 못했던 시절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았다. 강한서를 돌봐주는 것을 오히려 즐긴 모습이었고 동영상마다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강한서가 최면에 걸리던 모든 과정이 찍히기도 했다.강한서가 최면에 걸렸을 때는 상처도 아직 회복하지 못해 허약한 상태였다. 정신적으로 매우 허약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듯싶다. 세 번의 실패 끝에 최면사는 결국 강한서에게 약을 먹이기로 했다.최면 과정은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강한서는 최면과 맞서 싸우는 느낌이었고 화면 속 그의 표정은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송가람과 죽마고우이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세뇌시켰을 때, 감정변화가 특히나 심했다. 최면은 기억을 뒤바꿀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시도를 실패한 끝에 최면서는 먼저 강한서의 기억을 지우는 것을 추천했다. 그러고는 강한서가 특정 소리를 들었을 때 송가람을 믿고 의지하게 만들겠다고 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런 미친 짓을 할 정도로 사랑에 눈먼 여자라고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최면의 증거를 핸드폰에 저장한 행동이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대충 동영상을 다 보았을 때, 마침 강한서가 욕실에서 나왔다.강한서한테 최면에 걸렸을 때 송가람한테서 들은 것이 없냐고 묻고 싶었지만 강한서가 수건 한 장을 두른 채 젖은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강한서가 실종되어 돌아온 이후로 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물기를 잘 닦지 않아 어깨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쇄골을 따라 가슴에 떨어졌다.맑고 하얀 피부에 남아있는 상처 중에 옆구리에 있는 상처가 유난히 선명했다.한현진은 움찔하고 말았다.“갈아입을 옷은?”강한서가 대답했다.“아까 바닥에 떨어뜨려서 못 입어.”말하는 사이, 물방울이 허리에 묶여있는 수건에 떨어졌다.한현진의 시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