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서해금은 확실치가 않았다.‘가람이한테 관심도 없는 강한서가 이런 늦은 시간에 함께 있다고?’“가람이 핸드폰이 왜 너한테 있어?”한현진은 강한서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말했다.“가람이가 취해서 잠깐 저희 집에 데려왔어요. 숙취해소제를 먹였는데 조금 정신이 돌아오면 보내려고요. 가람이가 이 상태로 집에 돌아가면 아줌마가 화낼 거라고 해서요.”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한서야. 가람이가 취했으면 집으로 보내면 되지. 너희 집으로 데려갔다가 이상한 소문이 돌면 어떡해? 아무리 그래도 현진이 약혼자인데 이러면 안 되잖아.”한현진이 일부러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가람이가 말리더라고요. 취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면 아줌마가 화낼 거라면서...”그러고 잠깐 멈칫하고는 계속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비서님이랑 함께 온 거니까 이상한 소문은 돌지 않을 거예요.”서해금이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어 이 상황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영상통화로 가람이를 보여줘.”당황한 한현진은 애써 침착하면서 말했다.“네.”음성통화를 끊은 지 몇 초 뒤, 서해금이 바로 송가람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한현진은 받지도, 끊지도 못하고 송가람의 핸드폰 화면 밝기를 가장 밝게 만들었다. 공포스러운 벨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강한서에게 문자를 보냈다.“아줌마가 가람 언니 상태를 확인하겠다면서 영상통화를 보내왔어. 얼른 끝내야 할것 같아.”얼마 후, 강한서한테서 알겠다는 답장이 돌아왔다.영상통화를 받지 않자 서해금은 끊고 또다시 걸었다.한현진은 평소에 익숙하게 들었던 통화연결음이 재촉하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이때, 강한서가 방 안에서 나오면서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한현진은 송가람의 핸드폰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 강한서에게 아까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이때 강한서의 핸드폰이 울렸고, 이번에는 서해금이 강한서에게 전화한 것이다.강한서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서해금이 강한서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물었다.“가람이랑 함께 밥 먹으면서 너는 술 안 마셨어?”강한서가 대답했다.“저는 약을 먹어서 마시지 않았어요.”“가람이 말리지 좀 그랬어. 여자애가 밖에서 술 마시면 어떡해.”한현진은 움찔하고 말았다.‘정말 엄마 딸이 똑같네. 무슨 일이 있으면 맨날 남 탓하기 바빠.’강한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줌마, 저도 말려보긴 했는데 가람이도 이젠 성인이잖아요. 자기만의 선택의 자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가람이한테 전해주세요. 저도 곤란하니까 저한테서 이만 멀리 떨어지라고요.”서해금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말았다.더 말하기 싫은 강한서는 아예 카메라를 돌려 송가람을 비췄다.옷을 단정하게 입은 송가람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협탁에는 숙취해소제로 보이는 병 하나가 놓여있었다.서해금은 화면에 대고 송가람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지만 그녀는 취기가 올라 일어나지도 못했다.이때, 송가람의 핸드폰이 또 한 번 울렸다. 이번 발신인은 다름아닌 그녀의 아버지인 송병천이었다.한현진은 멈칫하고 말았다.‘아줌마가 집에 없나? 왜 아빠는 아줌마가 한서한테 전화하는 걸 모르고 있는 거지?’한현진은 곧바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떠보려고 전화한 것이 틀림없어. 아까 가람 언니 핸드폰이 어디 갔냐고 물어봤잖아. 이런 젠장. 눈치가 참 빨라.’그나마 아까 2층으로 올라갈 때 송가람의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았기 다행이었다. 강한서가 통화하고 있을 때 송가람의 핸드폰이 울리면 무조건 무슨 일이 있다고 의심할 것이 뻔했다.한현진은 폐를 끼칠까 봐 핸드폰을 들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이때 강한서가 말했다.“가람이 핸드폰은 민 실장님이 지금 1층에 충전하고 있어요.”서해금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충전은 됐고, 가람이 얼른 보내.”“저는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아줌마가 사람을 보내서 데려가시죠? 처음부터 가람이가 우리집에 오는 게 싫었는데 아줌마가 데리러 오면
그것보다도 비밀번호도 모르는데 핸드폰이 잠겨있다는 것이다.강한서가 송가람의 핸드폰을 가져가 잠깐 생각하고는 자기 생일 날짜를 입력하니 바로 풀렸다.한현진이 질투하면서 말했다.“가람 언니가 꽤 순정파네.”강한서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핸드폰 무선 배터리 공유 기능을 켜고 자신의 핸드폰을 송가람 핸드폰 뒷면에 갖다 댔다.한현진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말했다.“이럴 수도 있었어?”강한서가 담담하게 말했다.“핸드폰을 살 때 카메라 화질만 신경 쓰지 않으면 다른 기능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한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강한서는 또 배터리 사용량이 많은 앱까지 전부 다 켜놓고는 밖에 나가 지현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가람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한현진은 참지 못하고 강한서의 카톡을 검색했다.그러다 결국 침묵하고 말았다. 강한서는‘한서 오빠’라고 적혀있었고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대화 배경 화면도 강한서의 사진인 것이다.사진 속 여윈 모습의 강한서는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옆모습으로 창가에 기대어 앉은 강한서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캐시미어 가디건에 햇살이 비쳐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딱 봐도 강한서가 기억 상실되었을 때의 모습이었다. 사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기도 했다.[10년을 기다린다고 해도 상관없어.]주인공이 오랜만에 상봉한 소설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면 감동에 겨워 울면서 보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한현진은 송가람 핸드폰 속 강한서의 카톡과 사진을 삭제하려다 겨우 참았다.그녀는 두 번이나 한숨을 내쉬어서야 평온을 되찾았고 송가람의 갤러리를 들춰보다 강한서가 실종되었던 동안에 찍은 사진이 전혀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이럴 수가.’한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들춰보다가 비밀번호가 설정되어있는 앨범을 확인하게 되었다.그녀는 멈칫도 잠시 전혀 망설임 없이 강한서의 생일 날짜를 입력했다. 역시나 앨범은 바로 열렸고 그 안에는 수백 장의 강한서의 사진과 동영상들이 있었다
강한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한현진이 먼저 말했다.“그 약을 사용하지 않게 허락한 것도 이미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거야. 날 말릴 거면 내일 바로 이혼해! 너랑 더 이상 살기 싫어!”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데이터를 다 써버리면 어떡해. 와이파이를 연결하면 더 빠를 수도 있잖아.”‘눈치라도 있으니 다행이야.’한현진이 와이파이를 연결한 순간, 아래층에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커튼 사이를 통해 밖을 내다보니 다름아닌 서해금의 차량이 도착한 것이다.한현진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배터리도 아직 남아있고 사진도 다 보내지 못했단 말이야.”강한서가 그녀를 달래면서 말했다.“일단 당황하지 말고 옆방에 가서 조용히 있어봐. 내가 시간 끌어볼게.”그러고는 한현진에게 옷을 걸쳐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긴장하지도 말고. 사진 다 보냈으면 대화 기록도 지우고 와이파이도 끊는 걸 잊지 마. 배터리가 다 되지 않아도 괜찮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절대 소리 내지 말고.”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한서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가봐.”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강한서는 방안에 아직 한현진의 향기가 남아있다는 것은 확인하고 송가람의 핸드백 속에 있는 향수를 사방에 뿌리고는 서서히 향기가 퍼져나갈 수 있게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민경하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혀 조급함 없이 1층으로 내려갔다.문이 열리고,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왜 이제야 문을 여는 거야. 가람이는?”강한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숙취해소제를 마시고 2층에서 쉬고 있어요.”“어느 방에 있는 거야? 안내해 봐.”강한서가 말했다.“아줌마, 잠깐만요. 가람이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숙취해소제가 소용없었는지 계속 머리가 아프다길래 민 실장님더러 약을 사 오라고 했어요. 약 먹고 데려가시죠.”“아니야. 됐어.”서해금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바로 데려갈 거야. 집에 약 있어.”‘차라리 아직 안 깨서 다
강한서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한현진한테서 핸드폰을 빼앗았다.“보지 마. 이제 집에 가.”한현진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였다.“다시 줘.”강한서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집에 가자고.”한현진이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주라고.”강한서가 아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자 한현진은 일어나 빼앗으려고 했고, 강한서는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았다.“보지 마. 듣고 싶은 거 내가 얼마든지 듣게 해줄게.”한현진은 강한서가 피투성이인 상태로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이 떠올라 심장이 미어지게 아파져 왔다.“도대체 얼마나 고생한 거야.”한현진은 울먹거리기 시작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강한서의 허리를 안았다.“주삿바늘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마취도 없이 13바늘이나 꿰맸는데 아프지 않았어?”품속에 안겨있는 한현진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송가람이 강한서를 구해준 이유는 바라는 것이 있어서였다. 보상받으려고 일부러 병간호했던 모습을 찍어놓은 것이고, 이것을 핑계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서였다.그래도 다행히 이 동영상들로 인해 그때 당시의 상태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강한서가 구조되었을 때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장시간 동안 찬물에 잠겨있어 심각한 호흡기감염 증상이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그 증상이 악화되어 경련을 일으킬까 봐 차마 마취를 진행하지 못했다.그때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 아팠는지도 몰랐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통증완화 연고를 발라주었고 송가람에게 아프다고 할 때마다 발라주라고 했다. 아프다는 말이 없으면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라고 신신당부했다.강한서가 아프다고 한 적은 없었지만 한현진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다정하게 한현진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싫은 송가람은 계속 연고를 발라주었고, 그러는 바람에 일주일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했다.그래서 한현진이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안 아팠어. 그리고 나 바늘 무서워하지 않아.”한현진이 울
“알았어.”강한서는 말도 잘 들었다.그는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고 한현진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동영상과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송가람은 강한서에게 병적인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강한서가 몸을 가누지 못했던 시절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았다. 강한서를 돌봐주는 것을 오히려 즐긴 모습이었고 동영상마다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강한서가 최면에 걸리던 모든 과정이 찍히기도 했다.강한서가 최면에 걸렸을 때는 상처도 아직 회복하지 못해 허약한 상태였다. 정신적으로 매우 허약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듯싶다. 세 번의 실패 끝에 최면사는 결국 강한서에게 약을 먹이기로 했다.최면 과정은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강한서는 최면과 맞서 싸우는 느낌이었고 화면 속 그의 표정은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송가람과 죽마고우이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세뇌시켰을 때, 감정변화가 특히나 심했다. 최면은 기억을 뒤바꿀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시도를 실패한 끝에 최면서는 먼저 강한서의 기억을 지우는 것을 추천했다. 그러고는 강한서가 특정 소리를 들었을 때 송가람을 믿고 의지하게 만들겠다고 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런 미친 짓을 할 정도로 사랑에 눈먼 여자라고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최면의 증거를 핸드폰에 저장한 행동이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몰랐다.대충 동영상을 다 보았을 때, 마침 강한서가 욕실에서 나왔다.강한서한테 최면에 걸렸을 때 송가람한테서 들은 것이 없냐고 묻고 싶었지만 강한서가 수건 한 장을 두른 채 젖은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강한서가 실종되어 돌아온 이후로 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물기를 잘 닦지 않아 어깨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쇄골을 따라 가슴에 떨어졌다.맑고 하얀 피부에 남아있는 상처 중에 옆구리에 있는 상처가 유난히 선명했다.한현진은 움찔하고 말았다.“갈아입을 옷은?”강한서가 대답했다.“아까 바닥에 떨어뜨려서 못 입어.”말하는 사이, 물방울이 허리에 묶여있는 수건에 떨어졌다.한현진의 시선은
한현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상처를 내 얼굴 앞에 갖다 대는데 내가 못 볼 리가 있겠어?”강한서가 부드럽게 쳐다보면서 말했다.“봤으면서 왜 화를 안 내는 건데?”“화를 왜 내? 내가 뭐 고슴도치도 아니고 맨날 화내게?”한현진이 째려보면서 말했다.“기억을 회복했으면서 아닌 척해서, 그런 고생까지 하게 해서 화난 건 사실인데 상처까지 봐서 마음이 아파죽겠는데 어떻게 화를 내. 분명 나를 보호하려다 난 상처인데. 상처마다 내 심장을 쿡쿡 찌르고 있다고.”강한서는 당황한 나머지 다급하게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라.”“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알아.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내가 여보를 좋아하지도 않았겠지. 기억 상실한 척하는 것도 내가 끄집어내 줘야 하고, 도망가려다 일부러 잡힌 척도 해야 하고. 여보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모를 것 같아?”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날 칭찬하는 것 같지 않은데?”한현진이 피식 웃더니 몸을 숙여 강한서의 턱을 잡았다.“왜 칭찬이 아닌데? 정말 궁금해 죽겠네. 혼인 신고할 때도 그럴듯한 핑계로 결혼까지 시키더니. 어떻게 저녁에 정명석을 만나자마자 들통이 나? 계속 기억 상실되었다고 핑계를 대지 그랬어?”강한서는 뻘쭘하게 웃고 말았다. 한현진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내가 계속 기억이 상실된 척하면 너를 빼앗아 갈 거 아니야.”한현진이 웃으면서 말했다.“기억 상실되었을 때는 나랑 이혼하겠다고 그러더니. 정명석과 다시 만나라고 하더니. 마음이 그렇게 넓던 사람이 왜 기억을 회복하자마자 소심해진 거야?”강한서는 사레가 들고 말았다. 기억 상실되었을 때 했던 부질없던 말들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 꽂혔다.강한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때는 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때 했던 말은 못 들은 걸로 해.”“그래.”쉽게 넘어가는 한현진의 모습에 강한서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다 곧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한현진이 계속해서
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정말 알고 싶어.”설전까지는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한현진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나 독심술을 배웠잖아. 언제 기억을 회복했는지는 물론 언제 정관수술을 했는지, 수술 부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아.”그 자리에 얼어붙은 강한서는 한참이나 한현진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게?”한현진은 발끝으로 그의 복근을 터치하면서 말했다.“어디 한번 계속 해 봐.”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앞에 한 말이 진짜인지는 몰라도 이 말은 맞는 말이었다.강한서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발바닥을 간지럽혔다.“거짓말하지 마. 애들이 뱃속에서 들으면 어떡하려고.”한현진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섣달그믐날 밤 기억나?”‘섣달그믐날 밤?’강한서가 기억을 되돌리면서 말했다.“내가 사진 가져간 날?”“무슨 사진을 가져갔는데?”강한서는 입을 닫고 말았다.‘사진을 말한 게 아니었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사진을 가져갔는데?”강한서가 우물쭈물하면서 시선을 피했다.“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우리 오빠한테 물어보면 되지.”한현진이 핸드폰을 꺼내려고 하자 강한서가 말리면서 부자연스럽게 말했다.“그냥... 여보의 어릴 적 사진...”“어떤 사진?”강한서가 머뭇거리면서 침대 협탁 위에 있는 책 사이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한현진에게 건넸다.한현진이 한창 동안 보면서 침묵을 지켰다.“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 많은 예쁜 사진을 놔두고 왜 이렇게 못생긴 사진을 가져온 건데?”강한서가 말했다.“이 사진만 나한테 없거든.”한현진의 마음은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바보. 사진첩에서 사진을 훔친걸 우리 아빠가 알면 기억이 회복된 거 들키면 어떡하려고.”강한서는 뻘쭘하기만 했다.“그때 술김에 훔친 거야. 내내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아직 발견 못 한 것 같더라고.”“그럴 리가. 아빠가 내 어릴 적 물건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데. 사진첩을 자주 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