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의 말에 강단해가 멍해졌다. 그는 냉담하고 무정한 강한서를 보며 한참 만에야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 일로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하겠다는 거니?”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삼촌, 얼마 전 지진 피해를 본 안수시에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기부했던 일 잊진 않으셨겠죠? 수도 없이 기부하며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기업 이미지가 그 일로 크게 실추되었어요. 실추된 이미지는 지금까지 여전히 회사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요. 겨우 기업 이미지를 회복할 기회가 제 눈앞에 놓였어요. 삼촌도 사업하시는 분이시잖아요. 삼촌이 대표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강단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강한서, 너 머리에 물이라도 들어찬 거야? 어떻게 네 친엄마를 이용해 노이즈 마케팅을 할 생각을 해? 미친 거야?”강한서가 테이블에 놓인 뉴턴의 요람을 움직였다. 고개를 숙인 그가 피식 웃음을 흘리는 듯하더니 곧 평온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엄마는 줄곧 제가 잘되길 바라셨잖아요. 외부의 비난을 무릅쓰고도 제 장례식을 치르려고 하시면서 제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신 분인데, 지금 엄마 한 몸 희생해 회사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으니 엄마도 이해하실 거예요.”강단해가 강한서에게 삿대질하며 그를 비난했다. “강한서. 넌 정말 이기적인 놈이야.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강한서가 여유롭게 시선을 올렸다. “삼촌, 이 입장 발표는 이미 이사진들과 얘기를 끝낸 사안이에요. 마침 잠시 후 회의를 진행할 예정인데 회의에서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죠. 제 제안에 찬성하시는 분이 많으신지, 반대가 많은지 보면 되겠네요. 삼촌은 공정하게 투표하는 걸 좋아하셨잖아요. 저도 그편이 공평한 것 같거든요.”강단해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평소 회사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기만 하면 강단해는 투표를 제안했다. 강단해 보다 늦게 입사한 탓에 강한서는 그만큼 회사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해 인맥이 넓지 못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투표만 하면 강한서는 늘 열세였다. 하지만 시간
강단해가 냉소 지으며 말했다. “강한서, 괜히 시비 걸지 마. 탓을 하려거든 길을 막은 그 개자식을 탓해.”강한서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삼촌께서 합의로 조용히 넘어가고 싶지 않으신가 보네요.”말하며 휴대폰을 꺼내든 강한서가 경찰서에 신고했다. “여보세요? 신고 좀 하려고요. 특수폭행을 저지른 사람이 있어서요. 전 강한서라고 합니다. 주민등록번호는...”강한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단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강한서, 너 미친 거야? 고작 이런 일로 신고를 해?”강단해를 힐끔 쳐다보던 강한서는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단해는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강한서가 돌아오기 전 강단해는 회사에서 겨우 다시 입지를 다졌다. 그로 인해 강한서가 조금이라도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마 전 못난 아들놈이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기부한 일로 그동안의 노력이 다시 수포가 되었다. 강단해에게 지금은 곁에 사람을 제대로 두어야 하는 시기였다. 이런 타이밍에 강한서가 정말 비서를 경찰에 신고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아마 부하 직원을 대하는 강단해의 태도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깊은숨을 들이쉰 강단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랫사람이 실수로 저지른 일이야. 내가 민 실장에게 사과하마. 네가 사람을 보내면 내가 사비로 민 실장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이 일은 없던 일로 하렴.”강한서가 휴대폰 아래를 손으로 가리고 강단해를 보며 물었다. “얼마를 주실 생각이세요?”“2000만.”강한서가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기 시작했다. 강단해가 이를 악물었다. “4000만.”강한서는 이미 주소를 말하고 있었다. 강단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6000만 원이면 충분하겠지. 강한서, 적당히 해.”강한서가 그제야 전화를 끊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제가 민 실장을 대신해 감사드릴게요.”강한서를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6000만 원을 토해내야 했다
민경하의 말에 강민서가 입술을 씰룩였다.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6000만 원에 한 대 더 맞겠다는 거예요?”민경하가 쯧, 혀를 찼다. “부잣집 아가씨는 돈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셔서 그래요. 6000만 원이 아니라 600만 원에 한 대 더 맞으라고 해도 맞을 수 있어요. 이건 제가 지금까지 제일 쉽게 번 돈이라고요. 역시 괜히 시비를 걸어 손해배상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건 전부 이유가 있는 거였어요. 일하지 않고 쉽게 돈을 얻으면 사람은 나태해지기 마련인가 봐요.”그의 말에 강민서는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돈 앞에서 작아지는 실장님 꼴 좀 봐요. 돈만 주면 마음대로 때릴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이 왜 이렇게 기개가 없어요.”“기개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잖아요.”민경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날 때렸다고 나도 그 사람을 때리면 나중에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 싸움에 이긴 사람은 없는 게 되는 거예요. 전 심지어 강 대표님을 들이받았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게 될 거라고요. 일개 직원일 뿐인 제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6000만 원이면 제 몇 달 치 보너스예요. 그러니 기개가 중요하겠어요, 돈이 중요하겠어요?”민경하의 말은 그저 그와 같은 일반 직원들이 처한 현실에 불과했다. 심지어 강민서 역시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우리 집 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니, 내가 어떻게 대하고 싶으면 어떻게 대하는 거지.’사람을 지시하며 살아온 것에 익숙했던 예전의 강민서는 그것이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야 정인월의 가르침으로 그 행동들이 얼마나 예의 없는 짓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또 두 눈으로 직접 자기 집안 사람에게 부적절한 대우를 받고도 감히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민경하의 모습을 보며 예전의 자기가 얼마나 추악한 인간이었는지 다시 깨닫고 있었다. 강민서의 강단해와 다르지 않던 예전의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수치심을 느끼는 한편, 민경하가 너무 겁이 많다고 생각했다. “다
‘남자는 전부 그런 말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다른 남자는 어쩌면 좋아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한서는 절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할 때면 강한서는 말했다. “혀가 문에 끼이기라도 한 거야?”그는 좋아하는 사람의 애교 섞인 말투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애교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요즘 기억 잃은 척하느라 고생 좀 하셨겠네.’민경하가 말했다. “대표님 지금 회의 중이라 전화 받기 어려우니 말씀하시면 제가 전달해 드릴게요.”“회의는 언제쯤 끝나요?”“글쎄요. 회의 내용에 따라 시간이 다르겠지만, 짧게는 30분, 길면 3, 4시간 정도—”이런 쓸데없는 말이나 들으려 전화한 것이 아니었기에 송가람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 올라가서 기다릴게요. 민 실장님, 내려와서 안내 좀 해주시겠어요?”“...”민경하가 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잔뜩 일그러진 강한서의 얼굴이 민경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능력하기는.”민경하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은 몰랐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공장에 가셨다고 얘기할걸.’전화를 끊은 민경하가 휴대폰을 강한서에게 돌려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을게요.”강한서가 민경하를 사무실 밖으로 걷어차 버렸다. 바리바리 물건을 들고 온 송가람은 민경하를 보자마자 그에게 물건을 들어달라고 했다. 같은 인간이었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현진은 수도 없이 회사에 왔었지만 단 한 번도 직원에게 짐을 들게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송가람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 듯 행동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송가람은 민경하에게 며칠 동안 강한서의 행적을 묻기 시작했다. 민경하는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출근, 헬스 그리고 가족을 만났다는 것이 전부였다. 송가람은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당황하던 송가람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얼른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민서야, 내가 민 실장님께 도와달라고 한 거야.”송가람은 비록 민경하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가 강한서에게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최소한 지금 민경하와 척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민서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은 채 말했다. “가람 언니, 실장님 편을 들지 말아요. 이 인간은 아부하는 게 일상이에요. 로비에 경비원도 있는데 비서 실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짐을 들고 있어요. 언니에게 빌붙으려는 게 분명해요.”민경하가 빌붙길 바라는 건 오히려 송가람이었다. 그녀는 얼른 민경하에 손에 들린 짐을 가져가며 말했다. “민서야, 이런 일로 그러지 마. 민 실장님도 좋은 마음으로 그러신 건데. 내가 들면 돼. 네 사무실은 어디야?”강민서는 그제야 비난을 멈추고 복도의 끝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같이 가요.”말하며 앞장서 사무실로 향했다. 치마를 입고 있어 큰 행동을 하기엔 조금 불편했던 송가람은 강민서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민서는 먼저 획 그녀를 지나쳐 사무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강민서가 고개를 돌려 송가람에게 말했다. “가람 언니, 차 드시겠어요, 아니면 커피?”그 모습에 송가람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 ‘저런 게 무슨 강씨 가문 딸이라고. 눈치도 없어.’송가람은 어설픈 자세로 짐을 바리바리 손에 들고 대답했다. “다 좋아.”제자리에 서서 피식 웃던 민경하가 몸을 돌려 강한서의 사무실로 향했다. 곧이어 그는 강한서의 불만 가득한 눈빛을 가득 받으며 강한서의 사무실에 있는 한현진과 아이에 관련된 모든 물건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곤 송가람이 선물했던 마이크로 풍경 유리 글로브를 박스의 제일 밑에서 꺼내 책상에 올려두었다. 강한서는 턱을 괴고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촬영장 연출팀에서 일해야 할 것 같네요.”민경하가 말했다. “전 다만 능력으로 증명하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그 연봉을 받는 건 당연한 노력의
민경하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고생은요. 그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돈 받고 하는 일인데요. 이 선물은 제게 너무 과분해요.”송가람이 말했다. “제가 한서 오빠 대신 실장님께 주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새해 인사 겸 드리는 작은 선물이에요.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고요.”민경하와 가까워지려는 송가람의 속셈을 알아차린 강민서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가람 언니가 주면 그저 받아요. 고상한 척하기는. 왜요, 지금은 기개가 밥 먹여주나 보죠?”“...”조금 전 일로 복수하는 것이 분명했다. 강민서의 말에 민경하도 더는 사양하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선물을 건네받았다. “송가람 씨, 대표님께서 회의가 끝나셨어요. 안내해 드릴게요.”“저도 갈래요.”강민서가 몸을 일으켰다. “마침 저도 오빠에게 볼 일이 있었거든요. 가요, 언니.”송가람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드리웠다. ‘강민서, 역시 눈치가 없어.’사무실에 들어서자 보이는 마이크로 풍경 유리 글로브에 송가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강민서가 있는 자리에서 얘기하기는 껄끄러웠던 터라 송가람은 수줍어하며 별것 아닌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강민서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겁쟁이네. 나도 비록 강운 오빠를 꼬시는데 실패했지만 최소한 난 당당하게 고백했었다고.’이것저것 신경 쓰며 겁에 질린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얘기를 꺼내지 않으니 내가 먼저 말해야지.’강민서가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오빠. 퇴근하고 바빠? 안 바쁘면 나랑 실장님이랑 같이 영화 보러 가.”송가람이 어리둥절해졌다. 강한서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태연하게 말했다. “무슨 영화?”“아무거나. 할머니가 실장님과 데이트하라는데 도무지 뻘쭘해서 견딜 수가 없어. 오빠가 같이 가줘. 혹시 실장님이 나 괴롭히면 월급 좀 깎아.”강민서가 애교 부리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그녀의 투정에 귀찮아진 강한서가 고개를 들어 송가람에게 말했다. “가람 씨, 별일 없으면 오늘은 일단 돌아가요.”
‘안 넘어졌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현진이 막 몸을 일으켜 사과하려는데 귓가에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컴컴한데 날 유혹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순간 으스스 소름이 돋은 한현진이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명석은 등받이 기대앉아 입꼬리를 씩 올린 채 여유로운 눈빛으로 한현진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 다른 사람 시야 다 가리셨네요.”뒷좌석의 관객도 입을 열었다. “서 있지 말고 얼른 앉아요. 영화 시작했잖아요.”한현진이 굳은 얼굴로 좌석을 확인했다. ‘젠장, 지지리 운도 없지.’정명석의 옆자리였다. 은서가 한현진의 손을 잡아당기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안 앉냐는 눈빛이었다. 심호흡을 내쉰 한현진이 은서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은서를 가운데 앉히며 정명석과 떨어졌다. 타이틀이 지나가고 본영화도 이미 시작되었다. 한현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자기를 쳐다보는 정명석의 뜨거운 눈빛이 느껴졌다. 한현진은 내색하지 않고 모자를 더 푹 눌러썼다. 옆에서 풉하는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한현진은 모른 척 영화에 집중했다. ‘정명석 이 자식은 귀신처럼 따라붙네. 제일 좋은 전 애인은 죽은 것처럼 지내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얜 왜 이렇게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거야?’특히 강한서가 행방불명됐을 때, 정명석은 가짜 연애로 강한서를 나타나게 하라는 제안을 했었다. 사심이 없지 않고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한현진의 생각이었다. “살의”는 개봉 후 지금까지 9일 사이 총 400만 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했다. 설 연휴 기간 개봉한 영화 중 누적 관객수 5위를 차지했고 1위는 오늘까지 이미 1500만 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해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다행히도 연휴가 끝난 후로는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영화의 관객수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살의”는 오히려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영화 편성률도 조금씩 상승하고 있는 건 좋은 현상이었
무대 위의 쨍한 조명은 그녀의 얼굴로 비춰졌지만 그녀의 온 몸은 어두운 그림자 아래에서 마치 무언의 암시를 하는 것 같아보였다. 장면은 30년 전으로 돌아가 독을 탄 그 손을 자세히 보여줬다. 그 손은 꽤나 크기가 컸고 손등에는 혈관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손목에는 여성의 머리끈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끼워져 있었고 그 머리끈은 옅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옅은 노란색의 머리끈, 그것은 그녀들이 마지막에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출 때 끼는 머리끈과 일치했다. 화면은 거기서 뚝 멈춰버려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 독을 탔는지에 대해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었다. 관중들은 이미 마지막에 독을 탄 사람에 대해 토론 중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손의 주인이 진상현이라는 역할을 맡은 한열이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사라 역을 맡은 한현진이라는 주장을 했다. 왜냐하면 한현진의 손은 여자에 비해 꽤나 큰 크기였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의 주장에 한현진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보며 갸우뚱했다. ‘내 손이 크다고?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지만 마지막 그 손은 사실 감독의 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손이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을 하든지 다 비슷하게 보이는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안창수는 미스터리 영화계에서 상을 수도 없이 받은 사람이라 관중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관중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났지만 한현진은 그들이 다 떠나기를 기다려서야 몸을 일으켰다. ‘이러면 사람들이랑 마주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사람들이 채 나가기도 전, 정명석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오랜 친구가 우연히 만났으면 인사라도 해야지. 너는 왜 이렇게 양심도 없냐?” 한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명석에게 대답했다. “가만히 있어. 시비 걸지 말고.” “쯧.” 정명석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내가 너한테 준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실시하다니, 강을 건너 다리까지 해체할 수 있는 자식이 왜 이러지? 지금 혹시 찔리는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