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형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우리 도둑이 없이도 헛소리 안 해요. 인간 대 인간으로 조금만 더 신뢰해 주시면 안 돼요?]한현진: [죄송해요. 임신했더니 아이가 심장을 누르고 있어서 제가 요즘 소심해졌거든요. 그래서 걱정이 좀 많아요. 이해 부탁드려요.]한현진의 문자를 본 한성우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아이를 심장에 임신한 거야?’한성우: [형수님, 하시고 싶은 질문이 뭔데요?]한현진: [주강운 씨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이요. 성우 씨가 아는 건 전부 알려주세요.]한성우: [???]차미주: [!!!]한성우: [형수님, 그건 왜요?]한현진: [물어보지 말아야 할 건 묻지 마시고요.]한성우: [...]한성우: [형수님, 강운이 일을 알고 싶으시면 왜 한서에게 묻지 않으시고요. 두 사람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서 알고 지낸 시간이 저보다 길어요. 강운이에 관해선 한서가 제일 잘 알아요. 차라리 한서에게 묻는 편이...]한현진: [강한서에게 물으면 제가 강운 씨를 조사하고 다니는 걸 들키잖아요.]게다가 강한서는 지금 기억을 잃은 연기 중이었으니 그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자식은 물어본다고 해서 꼭 대답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전에도 강한서에게 물어봤었지만 쓸모없는 짓이었다. 한성우: [한서에게 숨기기까지 하시려고요??]한현진: [알려줄 거예요, 말 거예요?]차미주: [나 나갈 거야. 오늘 밤 당장.]한성우: [... 알려주면 되잖아. 사실 저도 아는 게 많지는 않아요.]한성우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교 전까지만 해도 주강운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남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수능 준비를 했다. 제일 큰 차이점이라면 주강운의 가정 환경이 엄격하다는 것뿐이었다. 어딜 가든 허락을 받아야 했다. 만약 정해진 시간에 전화하지 않으면 그와 연락이 닿을 때까지 주변 모든 사람에게 전화했다.나중에 주강운과 강한서는 같은 대학에 입학했고 한성우는 점수가 낮아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서 주강운과의
한현진: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강운 씨에게 첫사랑이 있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야. 강운 씨와 살 것도 아닌데.]차미주: [그럼 왜 강한서 몰래 주 변호사님에 관해 묻는 거야?]문자를 작성하던 한현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문자를 다시 하나하나 지웠다. [강한서가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주 변호사님을 미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할 거라고 했단 말이야. 하지만 난 주 변호사님보다는 너희가 우리 아이의 미성년후견인이 되어줬으면 좋겠거든. 그러니 강운 씨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강한서가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핑계를 댈 수 있지. 내 아이의 미성년후견인은 너희 두 사람만이 될 수 있어.]차미주: [!!! 감히 내 양딸을 뺏으려고 해? 한성우, 찌라시 좀 퍼뜨려봐!]한성우는 말문이 턱 막혔다. ‘한현진 이 여자는 정말 능글맞고 간사하기까지 하다니까.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잘 속여?’그는 한현진이 주강운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이 절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만일을 대비해 아이의 미성년후견인을 미리 지정하는 것은 강한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한현진의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한현진처럼 수단이 좋은 여자를 강한서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아이의 미성년후견인은 물론, 성을 한씨로 하겠다고 해도 사랑에 눈이 먼 강한서는 어쩌면 바로 그러자며 승낙할 수도 있었다. ‘우리 단순하고 착한 도둑이가 어쩌다 이렇게 심보가 고약한 여자와 절친이 된 거지?’하지만 그가 차미주를 속였을 때 찾아와 경고하던 한현진의 모습을 생각해 보니 비록 두 사람은 상반된 성격을 가졌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 분명했다. 차미주: [개자식, 우리 양딸을 잃게 생겼는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한성우는 얼른 음성 통화를 연결했다. 차에서 별안간 한현진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휴대폰을 꺼버렸다. 한현진의 조건반사에 강한서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휴대폰으로
“그래요...”강한서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을 이었다. “전 줄곧 비밀번호를 설정한 사람이 저에게 뭔가를 암시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한현진은 순간 그녀가 비밀번호를 설정할 때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강한서를 떠올렸다. ‘설마, 그때부터 이 비밀번호가 그런 뜻인 줄 알았던 거야?’어쩐지 그날, 새벽까지 한현진을 괴롭히던 강한서는 거의 잠들고 있는 그녀에게 앞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얘기하라고 했었다. 그 말의 의미를 몰라 한현진은 한동안 꽤 답답해하기도 했었다. ‘직접 얘기하라는 게 그런 의미였다니!’‘젠장.’복잡한 표정을 짓던 한현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상상력이 풍부하네.”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한현진의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은 강한서의 눈빛에 즐거움이 스쳤다. 하지만 자신에게 들킬까 봐 숨기던 한현진의 모습을 떠올린 강한서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달콤한 말로 마음을 녹이더니 이젠 그를 피해 전화를 받으려고 했다. ‘대체 누구 전화길래 저렇게까지 뜨끔해하는 거야?’강한서가 한현진으로 힐끔 시선을 돌리자 한현진은 조용히 휴대폰을 핸드백에 넣었다. 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끝내 숨기시겠다?’‘그래, 대체 어떤 놈이 내 여자를 건드리는지 꼭 확인하고 말겠어.’한현진을 아름드리로 데려다준 강한서는 곧 다시 집을 나섰다. 신미정은 절대 얌전히 잘못을 인정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쯤 구원 투수를 데려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돌아가 확인해야 했다. 강한서가 집을 나서자마자 한현진은 안방으로 달려가 그룹 통화를 연결했다. 세 사람의 그룹 통화가 곧 연결되었다. 한성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제가 그룹 통화를 몇 번이나 보냈는데 왜 계속 끊으셨어요?”한현진이 말했다. “미안해요. 강한서가 옆에서 있어서 못 받겠더라고요.”한성우가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저희는 그냥 평소처럼 수다 떠는 거잖아요. 바람이라도 피는 것처럼 왜 그래요?”한현진이 쇼츠를
“하지만 간민혜와 함께 있는 강운이는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어요. 하지만 간민혜의 집안 배경 때문에 강운이네 집에서는 절대 두 사람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우리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강운이가 얘길 꺼내지 않으니 우리도 아무 말 하지 않았죠. 어쩌면 강운이가 가족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져도 여전히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어요.”“그러니 강운이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은 저희도 약속이나 한 듯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죠. 그 사실을 아는 건 가깝게 지내는 그 몇 명뿐이었어요.”“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잖아요. 강운이네 집에서도 곧 그 사실을 알게 됐고 강운이에게 간민혜와 연락을 끊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어요. 강운이는 당연히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고 그러니 집안 어른들이 간민혜를 찾아갔어요. 그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간민혜가 집을 나서기만 해도 강운이네 가족이 찾아왔으니까요.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던 때라 그걸 견딜 수 없었던 건지 어느 날 갑자기 강운이에게 헤어지자는 문자를 보내고 사라졌어요.”얘기를 듣던 차미주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사라져? 태주 대학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입시도 포기한 거야?”“응.”한성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바로 그게 이상한 부분이야. 간민혜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어.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대학원 준비는 마쳤어야 하잖아. 하지만 이상하게도 간민혜는 헤어지자는 문자를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땐 이미 성적도 나왔고 심지어 간민혜는 필기시험 1등이라 면접을 망치지만 않는다면 합격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간민혜는 면접 장소에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죠. 그 부분은 정말 너무 이상해요.”“강운이는 미친놈처럼 여기저기 찾아다녔어요. 찾아볼 만한 곳은 전부 찾아봤지만 아무리 애써도 간민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전에 사용하던 모든 연락처를 전부 말소해 버렸더라고요. 마치 증발해 버린 것처럼요.”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강운 씨네 집안에서 그
잠시 말이 없던 한현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뒷부분 얘기는 성우 씨 상상이라는 거예요?”“상상이라고 할 수는 없죠. 대충 맞는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간민혜는 가족이 별로 없었어요. 사망 후 장례식도 한서가 치러준 거니까요. 그때 저도 장례식에 갔었는데 빈소가 제 시험지보다 더 깨끗했어요. 간민혜의 남편이 정말 자기 아내를 사랑했다면 어떻게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겠어요?”잠시 생각하던 한성우가 말했다. “전 당시 간민혜가 사라진 게 강운이네 집안과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교통사고도 강운이와 관련되어 있었지만 해리성 장애가 있었잖아요. 강운이네 집안에서는 절대 강운이에게 그런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겠죠. 그래서 그 사고는 결국 덮어졌어요. 그러니 강운이가 그 기억을 잃은 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요.”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운은 좋네. 본인은 기억을 못 하니 그만이겠지만 그 여자는 주 변호사님 때문에 목숨을 잃었어. 전생에 대체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거야? 현진아, 나중에 강한서랑 아무리 같이 못 살겠어도 절대 주 변호사님 같은 사람은 만나지 마. 본인도 문제지만 집안도 문제야.”줄곧 말이 없던 한현진은 차미주의 부름에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한현진이 갑자기 물었다. “간민혜 씨와 주 변호사님 사이에 아이가 있어요?”“네?”한성우가 멍해졌다. “없을 거예요. 한서에게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어요.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으시는 거예요?”“그게 아니라...”한현진이 입술을 짓이겼다. “주 변호사님이 다급하게 간민혜 씨를 데리고 한주를 떠나려고 하신 게 혹시 그분이 임신하셔서 집안에서 간민혜 씨를 해칠까 봐 그런 건 아닐까 해서요.”그 말에 한성우가 웃어버렸다. “그럴 리가요. 만약 간민혜가 임신했다면 어쩌면 강운이네 집에서 허락했을지도 몰라요. 아무리 간민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절대 자기 집안 씨를 밖에 내버려둘 분들이 아니시거든요.”말하며 한성우가 또 목소리를 낮췄다. “강운이 아버지와 둘째 삼촌 두 분
물어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물어볼수록 머리만 복잡해졌다. 한성우가 뭐든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놓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당시 주강운과 간민혜가 사고를 당한 후 강한서가 뒷수습을 도왔을 테니 주강운이 은혜를 원수로 갚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막약... 만약 그 납치 사건에 정말 주강운이 연루된 것이라면. 만약 주강운의 목적이 강한서였다면... 당시 간민혜의 사고는 한성우가 말한 것처럼 간단한 사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고...’눈을 감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한현진이 갑자기 눈을 떴다. “간민혜 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게 언제예요?”“7년 전 9월이었어요. 그건 제가 똑똑히 기억해요. 제가 그때 복수 전공을 하고 있어서 두 사람보다 1년 늦게 졸업했거든요. 여름 방학 때 친구 몇 명과 해외여행을 갔고 9월 중순쯤에야 여행을 갔던 애 중 두 명이 입사해야 해서 돌아왔었어요.”한현진이 멈칫했다. 그녀와 하현주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바로 7년 전 9월이었다. 한현진은 순간 전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를 떠올렸다. 강한서는 왜 그날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나 그녀를 구했던 걸까?그녀는 하현주의 교통사고를 조사하던 중 고용했던 탐정이 알려준 정보를 떠올렸다. 그 탐정은 당시 그들과 사과가 난 건 택시라고 했었다. 택시에 타고 있던 사람 중 두 명은 사망했고 한 명은 부상을 당했다. 사망 2명, 부상 1명. 그중 한 명은 임산부였다. K 탐정은 당시 유상수가 교통사고의 증거를 만들어내기 위해 일부러 택시에 탑승하고 있던 사람들을 조사했다고 했다. 그는 운전기사와 승객의 유가족은 배상금을 가지고 한주를 떠났던 터라 많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그 사람들의 정보는 캐내지 못했다고 했다. 만약... 만약 당시 한현진과 함께 교통사고가 났던 차가 바로 주강운과 간민혜가 타고 있던 택시라면... 그렇다면 주강운의 친구인 강한서가 현장에 도착해 한현진을 구한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
한현진이 대답했다. “알아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성우 씨도 제가 이 일에 대해 물어봤다는 걸 강한서에게 비밀로 해줘요.”“제가 미쳤다고 얘기하겠어요? 제가 오늘 이 얘기를 형수님께 한 걸 알면 제일 먼저 절 찾아올 사람이 강한서예요. 강운이 어머니를 도와 그 사람들 입을 막은 게 한서예요. 전 죽을 각오를 하고 형수님께 말씀드리는 거라고요. 저 배신하시면 안 돼요.”차미주가 한성우에게 하찮은 눈빛을 보냈다. “겁에 질린 꼴 좀 봐. 강한서가 뭐 호랑이도 돼? 널 잡아먹기라도 하는 거야?”한성우가 차미주를 부추기며 말했다. “그럼 네가 한서랑 싸우던가.”말문이 막힌 차미주가 순간 그 개자식에 의해 유치장에 들어갔던 일을 떠올리고는 헛기침하더니 곧 말을 돌렸다. “날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내가 걔랑 왜 싸워?”한성우가 그런 차미주를 비웃으며 말했다. “이 겁쟁이야, 넌 그냥 나만 괴롭힐 수 있냐?”그룹 통화를 끈 한현진은 오랜만에 탐정 케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 번 뵐 수 있을까요?]상대방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A/S는 안 돼요.]할 말을 잃은 한현진이 문자를 전송했다. [전에 일이 아니라, 새로운 의뢰요.]탐정 케이가 무슨 의뢰냐고 물었다. 한현진은 그에게 당시 그들과 사고를 당했던 택시 운전기사와 승객의 정보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탐정 케이는 한참 동안 답장이 없었다. 기다리다 조급해진 한현진이 다시 문자를 작성했다. [수고비는 전의 3배로 드릴게요. 정보를 찾아주시기만 하신다면요.]하지만 한현진이 그 문자를 전송하자 한참이 지나도 문자 옆에 표시된 1일은 사라지지 않았고 심지어 프로필도 비공개로 되어 있었다. 한현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자식, 날 차단해?’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탐정 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속적으로 전화를 네 번이나 끊자 한현진이 분노했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메시지를 작성해 그를 협박했다. [전화 안 받으시면 탐정님 신상정보를 인스타그램에 올려버릴 거예요.
[현진 이모, 저 세뱃돈 엄청 많이 모았어요. 내일 저랑 같이 놀러 갈래요? 한서 삼촌은 데려가지 마요.]멈칫하던 한현진이 빙그레 웃으며 문자를 작성했다. [그래. 하지만 내일 낮엔 일이 좀 있어서 저녁쯤 나가는 건 어때?]잠을 자지 않고 답장을 기다리던 은서가 문자를 확인하고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좋아요!]답장을 보낸 후에야 자기가 너무 적극적이었나 싶었던 건지 한참 문자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더니 또 문자 하나를 전송했다. [현진 이모, 아직도 안 주무셨어요?][한서 삼촌 기다리고 있어.][삼촌 또 야근해요?][그렇다고 할 수 있지.][이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갑작스러운 칭찬에 한현진이 어리둥절해졌다. 은서가 또다시 문자를 보냈다. [한서 삼촌이 이모는 예쁘고 음식도, 연기도 잘한다고 했어요. 이모를 만나고 나니까 이모는 삼촌이 말한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랑 문자하는 것도 좋고 제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줘서 좋아요. 한서 삼촌 기다리는 것도 좋고... 아무튼 다 좋아요. 현진 이모, 전 이모가 너무 좋아요.]“...”‘요즘 애들은 이렇게 입에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직설적으로 칭찬하는 거야?’아무리 뻔뻔한 한현진도 아이의 칭찬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그녀는 지금 은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한현진이 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서야, 너 생일 언제야?”“내일이요.”생각지 못했던 대답에 한현진이 멍해졌다. “내일?”“한서 삼촌이 그랬어요. 내 생일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거라고요. 내일 이모랑 놀러 가니까 내일 생일 하고 싶어요.”“...”한현진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은서야, 이모는 진짜 생일을 묻고 있는 거야.”“그럼 한서 삼촌이랑 같은 날이에요.”“강한서랑 같은 날이라고?”한현진이 멈칫했다. 강한서의 생일은 9월이 아닌 이번 달 말이었다. ‘내 추측이 틀린 건가?’“은서야, 한서 삼촌이 너한테 부모님 얘기한 적 없어?”은서가 말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자 옆에 서 있는 벤틀리가 보였다. 송민준이 운전석에 앉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차창은 닫혀 있었으니 송민준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강한서의 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운지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송민준은 강한서가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송민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놓고 그녀의 옷을 정리하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경하는 은연 중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송민준은 카키색의 캐주얼한 외투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한열이 자주하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고 선글라스를 콧등에 걸친 채 입술을 앙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긴 다리의 그가 우뚝 서 있으니 카리스마와 매력이 흘러넘쳤다. 전엔 그가 한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을 보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그를 한열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이 가방을 메고 송민준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멋져요?”송민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가 언제 안 멋진 적이 있었어?”한현진이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떤 날이든 멋지긴 하죠. 그래서 언제 데뷔할 생각이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열이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 내가 데뷔하면 연예계에 걔 자리가 있긴 할 것 같아?”한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검지로 콧등에 걸린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강한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쟨 차에서 뭐하는 거야?”“업무 통화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현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우린 먼저 올라가는 게 좋겠어. 혼자 미적거리라고 해.”룸에 도착하자 송민준은 그제야 물었다. “너희 두 사람,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
한현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한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약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한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졌는데 조금 전 불쾌한 일이 있었거든.”한현진은 간단하게 주혁이 무릎 꿇은 일을 서술했다. “난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하지만 꿇어앉아 있는 기사님 모습을 본 순간 화가 치밀더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러니까 날 강박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기회를 빌려 바로 전근시켰어.”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 기사님은 지금 아들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돈이 부족한 상황이거든. 전근하면 월급은 당연히 전보다 줄어들 텐데.”강한서가 한현진의 손등을 토닥였다.“인공 달팽이관은 보청기와 비슷한 거야.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아니니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장 급할 건 없어. 하지만 굳이 너를 속여 가며 부업을 하려고 했어. 난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멈칫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자신의 존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거야. 전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 네가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내가 불안해.”강한서는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네가 마음 약해질 때마다 난 심장이 떨려.”“휴. 신세를 지기도 했고 기사님 집에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안타까워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거 봤어? 난 아주 독한 사람이라고.”강한서는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강운이에겐 마음 약하게 굴었잖아.”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강한서의 태도에 한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불쌍해 보이는 주 변호사님 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