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속여?”피식 냉소를 흘리던 신미정이 갑자기 걸음을 옮겼다. 강민서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갑자기 손을 올려 강민서의 뺨을 내려쳤다.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때린 것인지 강민서의 왼쪽 귀에서 순간 이명이 울렸다. 뺨을 맞은 얼굴도 조금 얼얼해졌다. 강민서는 고개를 들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신미정을 쳐다보았다. “엄마?”굳은 얼굴의 신미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엄마라고 부르지 마. 강민서, 대체 누가 누굴 속였다는 거야?”“한현진이 정말 네 오빠와 싸웠어? 네 오빠가 정말 한현진을 없는 취급 하며 지냈어? 넌 정말 걔가 마시는 과일 식초에 약을 타긴 했던 거니? 내가 널 얼마나 믿었는데. 네가 어떻게 날 이렇게 깜빡 속일 수가 있어? 너도 한현진 그 여우 같은 계집애한테 홀리기라도 한 거야?”강민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엄마, 그건 오빠 아이기도 해요. 엄마 손주라고요. 왜 꼭 아이를 없애려고 하시는 거예요? 한현진에 대한 원망이 그렇게도 지워지지 않으세요?”“그래서 네가 날 배신했다는 거니?”신미정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넌 네가 한현진에게 손을 쓰지 않으면 걔가 널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해? 네가 좋은 일 하나 한다고 걔들이 그동안 네가 했던 일을 다 잊을 것 같아? 현실을 똑바로 봐. 난 그냥 네가 범인인 것처럼 정황을 만들었을 뿐인데 네 오빠와 한현진, 그리고 걔네들을 좀 보렴. 누구 하나 먼저 널 의심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강민서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을 보며 자신이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유치장에서 나오며 정인월이 강민서에게 본가에서 지내라고 했을 때도 그녀는 신미정과 멀어지지 않았었다. 남들 눈에는 어떤 모습이든, 강민서에게만큼은 신미정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부족한 것 없이 귀하게 자랐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무조건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강한서와는 떨어져 살았기에 강민서의 마음속에
하지만 지금, 한현진은 이미 송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그녀는 강한서의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음에도 신미정은 여전히 한현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강민서는 어느 순간 신미정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한현진이 아니라 자신의 부귀영화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임을 인지했다. 강한서가 사고를 당했을 때, 급히 그의 재산을 나누려고 했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피가 물보다 진하기는 개뿔, 신미정의 눈에 강한서의 목숨은 남은 생의 호화로운 삶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강민서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시 신미정이 굳이 자기를 키우겠다고 고집한 건 정말 딸을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강씨 가문에게 손을 벌리기 위해 그 집 자식을 데리고 있어야 했던 것일까. 만약 정말 강민서를 사랑했다면 인간 된 도리에 어긋나는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죄를 뒤집어씌울 수가 있을까?강민서는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우린 가족이잖아. 이렇게까지 너 죽고 나 죽는 지경까지 가야 해? 오빤 말만 심하게 하지 마음은 약한 사람인거 엄마도 알잖아. 오빠가 엄마를 버릴—”신미정이 버럭 소리를 높이며 강민서의 말을 끊었다. “네 오빠는 못하겠지만 한현진은 할 수 있어. 내가 걔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약을 먹였는데, 걔가 날 용서할 리가 없어. 만약 한현진이 네 오빠와 재혼한다면 나에게 더는 기회가 없어.”강민서가 놀라며 물었다. “약이라니? 그건 엄마가 한의사에게 부탁해서 지은 보—”말하던 강민서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그 약, 보약이 아니었어?”신미정이 차가운 눈빛으로 강민서를 쳐다보았다. 강민서는 드디어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강한서가 왜 신미정을 집에서 쫓아냈는지, 왜 누가 설득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는지 말이다. ‘이것 때문이었어.’그 의문이 풀리자 강민서는 드디어 신미정이 왜 꼭 한현진의 아이를 유
강민서 머릿속에 있는 이상한 가치관은 전부 신미정의 공로였다. 신미정은 그 모든 것이 강민서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책에서 이르길,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신미정은 비슷한 집안의 여자를 강한서와 결혼시켜 그가 한성의 대표 자리에 오르는 것에 힘을 보태게 할 생각뿐이었다.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이익 관계는 결혼 생활이 파탄 나는 순간 그 힘도 잃게 되어 강한서는 더 이상이 회사에서 입지를 굳히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고민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시댁에서 강민서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든든히 준비한다고는 하지만 만약 남자 쪽에서 강민서의 배경을 보고 그녀와 결혼하려는 것이라면 그 관계에 사랑이 있을 리는 없었다. 신미정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강한서와 강민서의 미래를 위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신경 쓰는 건 늘 자기의 앞날뿐이었다. 깊은숨을 내쉰 강민서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절 위한 거 맞아요?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강씨 가문의 모든 걸 누리고 싶으신 게 아니고요? 한성의 사모님으로서의 재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으신 건 아니냐고요.”“나쁜 X.”신미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강민서의 뺨을 내리쳤다. “강민서. 내가 너에게 퍼부은 돈이 얼만데. 지나가는 개도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알 거야. 넌 그걸 몰라서 나에게 그런 소릴 하는 거니? 여우에게 홀려 눈이 멀어서는 한현진과 손잡고 날 속이다니. 너 같은 걸 기르느니, 차라리 개를 키우는 게 나았겠어.”“넌 계속 그렇게 진흙탕에서 뒹굴어 봐. 내가 없이 누가 널 사람 취급이나 해주나 한 번 보라고.”신미정이 말을 멈추고 냉소를 지었다. “넌 네가 이런다고 걔들이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해? 네가 한현진을 강현우 방으로 유인했다는 것 하나로도 한현진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송씨 가문에서 널 용서하지 않을 거고.”말을 마친 신미정은 더 이상 강민서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리를
민경하가 입술을 짓이겼다. 강민서는 예쁘고 집안이 좋은 데다 민경하보다 몇 살이나 어리기도 했다. 정인월이 유일한 손녀를 그에게 소개했으니 고윤은 기쁘면서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행여나 강민서를 홀대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었다. “엄마, 민서 씨 마음에 들어요?”민경하가 물었다. 고윤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얘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민서가 좋은지, 네가 너에게 물어야지.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난 민서랑 한 번 만나본 게 전부라 그 아이에 대해 잘 모르잖아. 하지만 엄만 네 안목을 믿어. 너만 좋다면 엄마는 민서를 딸처럼 생각할 거야.”민경하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허리를 숙여 고윤을 안았다. “만나볼게요.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저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자란 사람이라, 잘 안될 수도 있어요.”고윤이 민경하의 등을 두드리더니 물건을 건넸다. “운전 조심해서 해.”“네.”——차미주와 한성우는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는 한현진을 발견한 차미주는 바로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내가 눈이 삐었나 봐. 피투성이인 채로 뭘 먹고 있는 현진이를 봤어.”한성우가 그런 차미주를 잡았다. “안 삐었어. 나도 봤어. 뭐 먹고 있는 거.”몸을 돌린 차미주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했다.“너 죽고 싶은 거야? 지금 이 타이밍에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한현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안 되겠어.”차미주가 물었다. “과다 출혈하면 배가 고파?”“...”한성우가 쓰레기통에서 피범벅인 주머니를 꺼냈다. “형수님, 피 주머니를 너무 큰 걸 사용하신 거 아니세요? 넘어졌을 뿐인데 동맥파열 된 것 같은 수준이잖아요.”한성우의 말에 차미주가 어리둥절해졌다. 한현진이 창피한 듯 대답했다. “그거 제가 만든 거예요. 재료가 한정적이라 조금만 짜낼 생각이었는데 힘을 주니까 구멍이 크게 뚫려버렸어요. 막을 수 없으니 어쩌겠어요.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데 연기
아무리 강민서가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신미정은 그녀의 엄마였다. 그러니 강민서가 한현진에게 신미정의 모든 속셈을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강민서가 얘기하지 않으니 혼자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신미정의 목적은 아이를 없애는 것이니 그녀가 손을 쓸 수 있는 수단은 고작해야 그 몇 가지였다. 몰래 약을 먹이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 하지만 신미정은 한현진에게 한약을 먹일 때도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움직였다. 그러니 약을 타는 그런 뻔한 방법은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넘어지게 하는 건 한현진은 진작 미끄럼 방지 장비와 함께 피 주머니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오늘 밤 신미정이 가만히 있는다면 그만이었지만 만약 자신에게 손을 댄다면 넘어지지 않았어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한현진은 생각했다. 조금 전 신부 대기실에서 신미정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한 양시은을 보며 한현진은 그녀가 뭔가를 눈치채고 일부러 두 사람 사이에 긴장된 분위기를 연출하며 신미정의 경계심을 늦추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역시 그녀의 추측대로 양시은은 화장실에 있는 한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신미정이 비상계단에 손을 쓰라고 지시했으니 조금 이따 내려올 때 다른 쪽 계단을 이용하라고 했다. 양시은이 호텔 리모델링을 진행할 때 다른 가문의 사모님들도 현장에 있었다. 당시 그녀는 비상계단의 CCTV는 딸 결혼식이 끝난 후 전부 같이 바꿀 것이라며 비상계단 쪽의 등이 어두우니 될수록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신미정은 갑자기 그녀에게 생뚱맞게 비상계단의 CCTV에 관해 물었다. 양시은은 그저 신미정이 지난번에 해준 말을 깜빡했다고만 생각하고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신부 대기실에 있던 신미정은 갑자기 아직도 설치하지 않았냐며 또CCTV 얘기를 꺼냈다. 계속 CCTV를 신경 쓰는 신미정을 보며 양시은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양시은은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푼수데기 같은 신미정이 나쁜 일을 꾸미고 있다
한현진이 냉소적으로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저 자랑하기 위해서 강한서가 수영을 못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다른 애와 시합을 시켜서 물에 빠지게 했던 사람이야. 그런 인간이 무슨 짓을 못 하겠어.”호기심에 가득 찬 한성우가 물었다. “방금 왜 한서에게 신고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직 오늘 밤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주인공이 가버리면 재미없잖아요.”한성우가 놀라며 물었다. “또 뭘 하려고요?”한현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뭘 하려는 게 아니라, 지은 죄가 있으니 업보를 받는 거죠.”말하며 한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친 척해야 해서 아쉽네. 아니면 정말 현장에서 내 눈으로 보고 싶은데.”차미주가 말했다. “그거야 쉽지. 내가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켤게.”차미주의 말에 한현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구야, 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야.”입을 열려던 한성우가 고개를 들자 언제 왔는지 강한서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하려던 말을 삼킨 한성우가 차미주를 재촉했다. “얼른 가자. 먼저 가서 구경부터 하러 가.”차미주는 한성우에게 밀려 입구에 도착했다. 강한서를 지나칠 때 차미주는 한성우를 뿌리쳤다. “강한서, 너도 네 엄마 꼬락서니 봤지? 모질게 굴 자신 없어서 계속 편들 생각이라면 다신 현진이 찾아오지 마. 현진이가 아무리 널 좋아해도 쟤도 살아야지.”한성우가 얼른 차미주를 잡아당겼다. “취해서 헛소리하는 거야.”“헛소리는 네가 하는 거고.”차미주는 소리를 지르며 한성우 품에 안긴 채 끌려 나갔다. 한현진은 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마주 보았다. 조금 전 비상계단에서 한현진을 품에 안았던 탓에 그의 몸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특히 안에 입은 셔츠에도 군데군데 핏자국이 선명했다. 심지어 얼굴에도 옅게 빨간 흔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사람을 유혹하는 매혹적인 눈매를 가지고 있는 데다 눈가까지 빨개져 있으니 차도남스러운 매력이 더 짙어진 듯했다. 한현진은 뜬금없이 한 단
한현진은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강한서가 쉬고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너 나 못 믿는 거지?”움찔한 한현진이 시선을 내렸다. 강한서는 한현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너무도 쉽게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를 알아차렸다. 만약 강민서가 초조함 때문에 미리 한현진 앞에서 불안을 드러내지 않아 한현진이 신미정의 동기를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강한서는 정말 피바다에 쓰러져 있는 한현진을 보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한현진은 임신이 쉽지 않은 몸 상태였기에 어쩌면 이번이 그들이 부모가 될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신미정은 본인의 의기심 때문에 그 기회마저도 빼앗아 가려 했다. 만약 오늘 사고가 생겨 아이를 잃었다면 그녀는 그것을 없던 것으로 하고 강한서와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사 강한서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 역시 자신만큼이나 힘들다는 걸 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현진이 자신의 계획을 강한서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신미정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그녀의 덜미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미리 강한서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게 된다면 그가 괜히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웠다. 그랬기에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그 선택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욱신, 마음이 아파졌다. 한현진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강한서, 난 감히 도박을 걸 수 없었어. 그래서도 안 됐고. 난 우리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길 바라. 누구든 우리 아이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은 전부, 없애버릴 거야. 난 내 옆에 그 어떤 불안 요소도 남겨두고 싶지 않아.”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꽉 잡고 물었다. “그래서 네 마음속에 난 남아있는 거지?”주먹을 꽉 그러쥔 한현진이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그 사람은 네 어머니야. 사람은 늘 핏줄에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니까.”강한서가 고개를 숙이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현진아, 내가 아무리 마음이 여려도 너와 우리 아이를 해치려 했어. 네 마음속에 난, 사리
한현진의 말이 이해되지 않은 강한서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우리, 정을 키우기 위해 조금 진도를 빼야 하지 않겠어?”한현진은 진지한 태도로 강한서와 상의했다. 아랫입술을 핥으며 강한서가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한현진이 강한서의 입술에 시선을 두며 중얼거렸다. “일단 몸 정부터 쌓아야지.”“네?”한현진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강한서가 되물었다. 그녀는 곧 몸을 일으켜 강한서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까치발을 든 한현진이 그의 입술에 입 맞췄다. 흠칫, 놀라던 강한서가 무의식적으로 한현진의 허리를 감쌌다. 한현진은 눈을 감고 부끄러움을 무릅쓴 채 혼신을 다해 강한서를 탐했다. 강한서가 방에 들어선 순간, 얼굴 여기저기 피를 묻힌 섹시한 모습을 봤을 때부터 한현진은 진작 이렇게 그를 덮치고 싶었다. 한현진이 굶주린 탓이 아니었다. 매혹적인 강한서의 두 눈이 너무너무 그녀를 홀리고 있는 탓이었다. 주강운의 멜로 눈깔은 저 사람은 날 좋아한다는 강력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강한서의 섹시한 눈을 보면 유혹당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특히 눈가에 묻은 가짜 피 때문에 아련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마치 그의 눈이 한현진의 손을 잡고 직접 함정을 향해 뛰어드는 것 같았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눈은 외모지상주의인 한현진에겐 도무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최선을 다해 기억상실 설정을 이어가고 있는 강한서는 한현진이 어떻게 다가와도 절대 그 키스를 받아주지 않았다. 한현진이 입을 벌려 그의 혀를 꽉 깨물었다. 생생한 통증에 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한서를 놓아준 한현진의 호흡이 거칠었다. “그렇게 나무처럼 딱딱하게 굴면서 나랑 어떻게 마음을 나누겠다는 거야?”강한서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기억을 잃은 연기를 계속하며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능숙하지 않아서요.”“...”한현진은 순간 그가 기억 상실 설정을 이어가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유혹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