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가 냉담하게 말했다. “저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엄마에 대해 함부로 말해요? 아버지가 학교 다니실 때 엄마가 시댁 사람들 모시면서 절 키웠어요. 엄마 내조로 성공한 아버지 그늘을 자기가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제까짓 게 뭐라고 엄마를 욕해요?”“저를 여기서 설을 보내게 하려고 매년 엄마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제가 왜 오겠어요?”“밥도 먹었고 할 말도 했으니 이젠 더 이상 엄마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잘 지내신다는 거, 잘 알겠어요. 죄송하지만 엄마도 잘 지내요. 엄마가 재혼하지 않은 건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또다시 머리 검은 짐승을 만나기 싫으시기 때문이에요.”하고 싶던 말을 전부 내뱉은 차미주는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거기 서.”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차미주가 그가 준 세뱃돈을 던져버리려는데 갑자기 한 인영이 달려들며 그녀를 밀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차미주는 휘청이며 바닥에 벌러덩 넘어졌다. 꼬리뼈가 어디에 부딪힌 것인지 말 못 할 고통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차미주를 밀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멍해졌다고 그녀를 부축하려고 앞으로 다가왔다. 차미주는 내밀어진 그의 손을 피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소년은 여전히 소란스레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네가 뭔데 감히 엄마아빠를 욕해? 네까짓 게 뭔데. 다시 한번 말해 봐.”아버지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냐고 묻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 방금 차미주가 내뱉었던 말 때문에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차미주는 그런 아버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가방을 내려놓더니 순간 앞으로 다가가 냅다 소년을 업어치기로 넘겨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방안에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넘어간 아들에 부부가 깜짝 놀라며 달려와 아들을 살폈다. 그 현장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고 울음소리와 욕설이 어지럽게 섞여 들려왔다. 차미주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쿨하게 자리를 벗
차미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한성우는 어젯밤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듣고는 철렁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는 손을 뻗어 차미주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다음엔 꼭 나도 데려가. 네가 키가 작으니까 만만하게 본 거야. 내가 가서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면 꼼짝 못 할 거야.”차미주가 흥 코웃음 쳤다. “그 인간들도 속이 시원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자기 귀한 아들을 업어치기 해버렸거든. 내가 뭘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씁—”“네네, 차미주 씨가 최고예요.”한성우가 차미주를 치켜세워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얘기 그만하고 좀 쉬어. 힘 좀 아끼라고.”차미주가 눈을 감았다. “설날부터 엉덩이나 굽고 있다니. 창피해 죽겠네.”한성우가 피식 소리 내 웃었다. “치질 수술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야.”“꺼져.”한성우가 몸을 일으켰다. “물 좀 가져올게.”차미주가 나른하게 대답했다. 병실을 나서자마자 한성우는 손을 들어 이마를 탁 소리 나게 때렸다. ‘젠장, 너무 하얗잖아.’한편, 서해금의 지시로 아주머니가 전을 다 부쳤을 때, 마침 강한서가 한현진의 본가에 도착했다. 문을 연 송민준이 눈앞에 서 있는 강한서를 보더니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주유 값이 올랐든?”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살펴보지 않았는데.”“그래?”송민준이 말을 이었다. “난 또 주유 값이 올라서 네가 그 돈이 아까워서 걸어오는 건 줄 알았지.”“...”송민준은 쓸데없이 마음 쓰이게 하는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콧방귀 뀌며 말했다. “안 들어와? 내가 안까지 안아드려야 하는 거야?”강한서는 그제야 선물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는 몇 가지 술안주들이 다시 세팅되었다. 주강운은 송병천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송가람은 그들 맞은편에 앉아 있었지만 한현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한서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송가람이 그런 강한서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이며 소리높여 그를 불렀다. “한서 오빠!”두
한현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에요. 지금 만든다고 해도 푸딩이 굳으려면 몇 시간은 있어야 해요. 닭국수 어때요? 마침 닭고기 수프도 좀 있는데.”주강운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현진 씨가 만들어주는 거면 뭐든 좋아요. 현진 씨 음식 솜씨가 너무 기대되는데요?”강한서가 작게 헛기침하더니 중얼거렸다. “무지한 자는 용감한 법이지.”강한서의 목소리가 워낙 낮았고 TV까지 틀어져 있었던 터라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묻혀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 강한서의 바로 뒤에 서 있던 한현진은 어렴풋이 그가 뱉은 말을 들은 것도 같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물었다. “강한서 씨, 뭐라고요?”강한서가 움찔 몸을 떨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양념간장이 없어서 맛이 없다고요.”‘방금 그 말이 이렇게 길었었나?’한현진이 입술을 앙다물고 잠시 강한서를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주강운이 직접 음식을 기대한다고 얘기를 꺼냈으니 설에 실망감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한현진이 자리를 비우자 송가람은 차를 따르는 사이 강한서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강운은 덤덤한 눈빛으로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강한서는 시선을 내린 채 접시에 놓인 전을 먹으며 옆에 앉은 송가람에게는 특별한 리액션을 해주지 않았다. 송가람이 말을 걸어도 강한서는 그저 무덤덤하게 대답을 해줄 뿐이었다. 다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냉담한 태도도 아니었다. 주강운이 물었다. “한서야, 올해 그믐날엔 본가에서 할머니랑 보내지 않는 거야?”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현진 씨 데리고 같이 갈 거야.”주강운이 미소 짓더니 고개를 돌려 송병천에게 물었다. “아저씨, 현진 씨가 본가로 돌아오고 처음으로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건데 올해 설 연휴는 본가에서 지내라고 하지 않으신 거예요?”“같이—”송병천이 막 대답하려는데 식탁 밑으로 누군가 그의 발을 걷어찼다. 움찔 손을 떤 송병천은 하마터면 술을 쏟을 뻔했고 아까운 마음에 그는 술
송가람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건네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한서 오빠, 손 닦아요.”강한서가 수건을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송가람의 시선의 강한서의 이목구비를 훑고 지났다. 가까워 지면 질 수록 더 좋아졌다. 그녀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한서 오빠. 건강은 이제 제법 회복되지 않았어요?”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송가람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현진 씨와 파혼할 거예요?”강한서는 아무런 동요 없이 여전히 손을 닦으며 말했다. “현진 씨는 지금 제 기억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어요. 파혼 얘기를 꺼낼 타이밍은 아닌 것 같아요.”송가람이 멈칫했다. “전 오빠가...”송가람이 말을 잇지 못하자 강한서가 따지듯 물었다. “제가 뭘요?”송가람이 얼른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다행히 강한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수건을 다시 송가람에게 돌려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나지막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화장실로 향하던 한현진의 귓가에 마침 강한서의 그 말이 들려왔다. 멈칫, 걸음을 멈춘 한현진이 조용히 옆으로 몸을 숨기고 송가람과 강한서를 관찰했다. 멍해진 송가람은 얼굴부터 목까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은 파르르 떨렸고 가녀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에게 주는 거예요?”강한서가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그날 편의점에서 본 거예요. 가람 씨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요. 마음에 들진 모르겠네요. 혹시 마음에 안 들면...”“마음에 들어요.”송가람이 다급하게 말했다. 말하며 입술을 꼭 깨문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빨갛게 변했다. 어쩐지 강한서가 피식 소리 내 웃은 것 같았다. 송가람은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한서 오빠, 혹시... 혹시 해줄 수 있어요?”한현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알겠다고 하기만 해 봐. 오늘 그 다리를 분질러 버릴 테니까.’하지만
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핀 예뻐요.”한현진은 그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송가람은 자기가 예쁘냐고 묻는 거잖아. 누가 머리핀 예쁘냐고 물었어?’그러나 송가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가람 씨, 요즘 경찰 측에서 연락이 온 거 있어요?”강한서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 얘기인 듯 툭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강한서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는 기쁨에 잠겨있던 송가람이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아뇨. 왜요?”“그냥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얼마 전에 또 저에게 찾아와서 그날 일을 묻더라고요. 어떻게 구해졌는지에 대해서요. 전 지금까지도 전혀 기억이 없으니 경찰에게 아무런 단서도 드리지 못했어요. 그날 가람 씨 혼자서 절 찾은 거예요?”순간 주먹을 꽉 움켜쥔 송가람이 고개도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그날 경찰에게서 오빠와 현진 씨가 그 부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그쪽으로 갔었어요. 제가 오빠를 찾았을 때 오빠는 이미 강가에 쓰러져 있었고 택시 기사님께 도와달라고 부탁했었죠.”“경찰에게서 소식을 들었다고요?”강한서가 멈칫했다. “전 가람 씨가 강운이와 함께 간 줄 알았어요. 경찰은 강운이의 연락을 받고 간 거라, 가람 씨도 그런 줄 알았죠.”멈칫하던 송가람이 조금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강한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말이 없었다. 한현진이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그녀의 심장이 가늘게 떨려왔다. 강한서가 지금 송가람을 떠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송가람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왜 내 앞에서는 그렇게 얘기한 거지?’송가람은 강한서가 미끼를 던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오히려 강한서가 발견 즉시 강씨 가문에 그의 생사를 알리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눈시울을 붉힌 송가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오빠는 당시 부상이 너무
한현진의 말에 강한서는 아무 말 없이 의자를 빼내 한현진의 옆에 앉았다. 주강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 사람이 까다롭고 음식 먹을 줄 몰라서 그래요. 이렇게 맛있는데요, 왜요.”한현진이 주강운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역시 강운 씨가 보는 눈이 있어요.”송가람은 강한서 옆에 앉으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송가람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란 송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람아, 너 얼굴 왜 그래?”송가람이 멈칫했다. “왜요?”송민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송가람에게 쏠렸다. 예쁘던 메이크업이 번져 얼굴엔 파운데이션과 섀도가 엉망으로 섞여 마치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우뚝 행동은 멈춘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화장이 번진 것도 몰랐던 거야?”송민준이 “자상”하게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송가람 앞에 가져가 얼굴을 확인하게 했다. 송가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한현진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현진 씨, 제 메이크업이 번진 걸 왜 아까 알려주지 않았어요? 일부러 창피하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그 말에 한현진이 어리둥절해졌다. ‘지금 강한서를 등에 업었다고 생각하고 아빠 앞에서 날 다그치는 거야?’질타하는 듯한 송가람의 말에 술에 취했던 송병천도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일부러 창피를 주려는 거라니? 가람이 넌 왜 늘 현진이가 널 일부러 상대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일부러 널 괴롭힐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왜 널 구해줬겠어?”송가람은 그만 말문이 턱 막혔다. 서해금도 송병천의 말을 따라 송가람에게 말했다. “얼른 가서 화장 고치고 와. 꼴이 그게 뭐니?”하지만 송가람은 이 일을 그냥 이렇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현진이 강한서 앞에서 창피를 주기 위해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송가람은 서해금의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분노에 차 한현진을 노려보며 왜 그런 건지 설명하라고 했다. 한현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가
강한서가 말을 내뱉자 한현진은 송병천과 송민준 두 사람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주강운은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대리 부르면 되잖아. 설인데 왜 한 잔도 안 하겠어?”강한서가 그런 주강운을 힐끔 훑어보았다. “오늘은 그믐날이잖아. 오늘 같은 날엔 대리 기사님도 편히 쉬고 싶지 않겠어? 이럴 땐 부르지 않는 편이 좋아.”꽤 일리가 있는 말처럼 들렸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문제투성이인 말이었다. 쉬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대리를 하러 나오지 않을 것이고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차라리 누군가 대리 기사를 불러주길 바랄 것이었다. 하지만 강한서는 주강운에게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고 술잔을 들어 쭉 들이켰다. 옆에 앉은 한현진은 그런 강한서를 말리지 않았다. 강한서가 술을 들이켜자 주강운도 미소를 지은 채 자기 술잔에 채워진 술을 한꺼번에마셨다. 한현진은 옆에 놓은 술병을 들어 빈 술잔을 술을 가득 채워주며 강한서에게 말했다. “저 대신 강운 씨랑 한 잔 더 해요. 새해엔 일도 잘 풀리고 얼른 솔로 탈출도 하시길 바랄게요.”강한서는 눈앞에 놓은 술을 보며 입을 꾹 닫았다. 한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대신 마시기 곤란하면 그럼 제가—”강한서가 술잔을 가로채며 한현진을 째려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강운과 술잔을 부딪치더니 또 쭉 술을 들이켰다. 주강운이 한현진 쪽으로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덕담 고마워요.”한현진은 또 강한서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이번엔 오빠와 한 잔 마셔줘요. 새해엔 무탈하게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고 계속 돈 많이 벌길 바라요.”강한서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한 번에 할 순 없어요?”“당연히 안 되죠. 제가 전하고 싶은 새해 인사가 사람마다 다른데 한 명 한 명해야죠. 그래야 제 진심이 전해지잖아요.”말하더니 한현진이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강한서 씨 주량이 적어서 그래요? 힘들면 제가 할게요.”“누가 힘들대요?”강한서
사진 속 자그마한 아기는 쭈글쭈글하게 포대기에 싸여 있었고 피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배 속에서 아무 탈 없이 자랐다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막 태어난 신생아였지만 얼굴은 포동포동 살이 올라 있었다. 사진 속에서 아기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조용히 잠이 들어있었다. “이게 저예요?”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던 한현진이 곧 웃으며 말했다. “전혀 못 알아보겠어요.”송병천이 말했다. “난 알아보겠는걸. 입은 날 닮고, 눈은 네 엄마를 닮았어. 눈썹도 나를 닮았고 머리카락은 네 엄마를 닮았네. 그리고 코도 네 엄마와 똑같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송병천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송병천이 대체 어떻게 몇 가닥 보이지도 않는 눈썹이 그를 닮았다고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눈썹을 다른 본 누군가는 한현진보다 더 직관적인 감상평을 내뱉었다. “제가 보기엔 현명 법사 같은데요?”그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순간 멍해졌다. ‘현명 법사?’ 생각하던 한현진은 순간 어렸을 때 보았던 무협 드라마의 현명 법사 캐릭터를 떠올렸다. ‘현명 법사는... 눈썹이 없잖아.’한현진의 얼굴이 어둡게 변해갔다. 같은 또래인 주강운과 송병천 역시 그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하지만 송병천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여전히 현명 법사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송병천이 물었다. “현명 법사의 눈썹이 어떤데?”?주강운이 웃음을 꾹 참으며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송민준이 흥 코웃음을 흘리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사람들이 다 너처럼 짱구 눈썹인 줄 알아?”강한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송병천은 눈썹 에피소드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계속 사진첩을 넘기며 입이 마르도록 한현진을 칭찬했다. 당사자인 한현진은 도무지 뻔뻔하게 송병천의 말에 맞장구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주강운이 옆에서 송병천이 무안하지 않게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송병천이 말했다. “이건 현진이 백일 때 사진이야. 눈 큰 것 좀 봐.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