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진은 본가에서 지내던 때를 떠올렸다. 장미 화분을 정성껏 돌보는 송병천의 표정은 늘 부드럽게 변했었다. 그는 장미를 통해 오래전 사별한 아내를 떠올린 것이 아니었을까.“사실 아빠가 정원에 전문적으로 꽃을 가꿀 화원을 만들어 그 장미를 조금 더 심으려고 하셨어. 하지만 공사를 시작도 전에 아줌마 알레르기 때문에 아빠는 잠시 생각을 접으셨지.”한현진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기가 막힌 우연이네요.”그 장미들이 정말 얼어 죽은 것이 맞는지, 한현진은 의심스러웠다. 한주는 아무리 추운 날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영하 4, 5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장미는 그렇게까지 까다롭거나 예민하지 않았다. 온실에서 재배된 것이라고 해도 이틀 사이 얼어 죽을 정도로 생명력이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많은 꽃 중에 하필이면 한아름이 제일 좋아했던 장미 알레르기가 있다니, 우연 같지 않은 우연이라고 느껴졌다. “오빠, 방금 왜 일부러 죽을 엎은 거예요?”말하며 한현진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혹시 오빠가 알아낸 일과... 관계되어 있어요?”송민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한 건 아니야. 그 간호사 말에 따르면 당시 그들을 찾아간 건 남자였어. 하지만 아줌마 주변엔 단 한 번도 남자가 있었던 적은 없어.”“청부업자일 가능성은요?”“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야. 최측근이 아니라면 넌 믿고 맡길 수 있겠어?”한현진이 침묵했다. 맞는 말이었다. 운명공동체와 죽은 사람의 입이 제일 안전한 법이었다. 가슴이 불안하게 뛰어왔다. 만약, 정말 서해금이 벌인 짓이라면 그녀는 대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마음 편히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던 걸까. 한현진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생각하지 마.”송민준이 한현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넌 그저 마음 푹 놓고 태교에만 집중하고 너만 잘 챙기면 돼. 다른 건 오빠가 해.”한현진이 눈을 꼭 감았다. 비행기 추락 사고가 정말 인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건 한현진이 강한서를 “협박”하려고 업로드한 피드였다...그리고 섣달그믐날 저녁에 한현진을 찾아왔다는 건, 주강운네에서는 섣닫그믐날 가족끼리 모여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건가?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찾아온 손님을 당연히 그저 돌려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한현진이 주강운이 내민 술을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장난으로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올린 거예요. 그믐날 저녁엔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알았는데.”“이제 막 야근을 마치고 현진 씨가 올린 피드를 확인했거든요. 그래서 현진 씨 보러 왔죠.”본가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려던 한현진은 행여나 강한서가 그녀가 어딨는지를 찾지도 못할까 친절히 주소까지 태그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 주강운이 본가에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그믐날에도 야근이에요?”한현진이 조금 놀라워하며 말했다. “요즘 변호사 사무실이 그 정도로 경쟁이 심한 거예요?”주강운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설 연휴가 다들 휴가 갔거든요. 고모도 집에 계셔서 전 그다지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요.”한현진이 멈칫하더니 곧 주강운의 말을 이해했다. 동생의 죽음을 기점으로 주강운의 동년은 그를 억누르는 시절이 되었다. 그리고 주시윤은 바로 그 모든 사건의 간접적인 범인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주강운과 같은 입자에 놓인다면 한현진 역시 가족들이 단란하게 모이는 명절에 상처를 숨기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에게 명절 인사를 건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현진이 주강운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서해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운아, 오늘 잘 왔어.”서해금의 말에 한현진은 말이 없었다.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치?’평소와 다른 서해금의 모습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서해금은 송가람보다 훨씬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당시 강한서가 한현진의 요구대로 인스타그램을 업로드했을 때, 서해금은 바로 송가람과 강한서 사이에는 더 이상
“손수건 준비했어?”전화를 받은 한성우가 다짜고짜 말했다. 강한서가 영문도 모른 채 대답했다. “아니.”“그럼 하나 가져가.”한성우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네 전 와이프가 널 울릴 것 같거든.”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흥 콧방귀를 뀐 한성우가 말했다. “네 전 처남이 채팅방에 자기 집에 있는 주강운 사진을 올렸던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모르겠어?”미간을 찌푸린 강한서의 얼굴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한성우는 여전히 수화기 너머로 주절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만약 네 전 와이프와 강운이가 만나면 태어난 아이는 네 성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강운이 성을 따라야 할까? 나중에 아기 돌잔치 땐 우린 너에게 축의금 줘야 하는 거야, 아님 강운에게 줘야 해?”강한서가 이를 악물었다. “그 입 좀 다물어.”한성우가 쯧 혀를 찼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내가 힘들게 번 돈이고 나중엔 와이프가 돈 관리할 텐데 전부 똑똑히 기억해 뒀다가 다시 받아와야—”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서가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성우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차미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도둑아, 재밌는 거 보러 갈래?]차미주 역시 지루한 설 연휴를 보내고 있었던 것인지 곧 답장을 보내왔다. [재밌는 거 뭐? 너 혹시 현진이 영화 전체 대관했어? 몇 타임이나 했어?]“...”한성우는 애초에 뭘 보러 간다는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지금 이 타이밍에 그가 그런 게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차미주는 가차 없이 읽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대관했지. 다음 주로 했어. 오늘은 영화 말고 민준이 본가에 구경하러 가자.][현진이 집에?]차미주가 얼른 문자를 보냈다. [준비할 테니까 기다려.][그래. 주소 보내면 내가 데리러 갈게.]곧 한성우는 차미주가 보낸 주소를 확인했다. 경하 대학의 교직원 아파트였다. 베란다에서 나온 차미주가 식탁에 도란도란 앉아
차미주가 냉담하게 말했다. “저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엄마에 대해 함부로 말해요? 아버지가 학교 다니실 때 엄마가 시댁 사람들 모시면서 절 키웠어요. 엄마 내조로 성공한 아버지 그늘을 자기가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제까짓 게 뭐라고 엄마를 욕해요?”“저를 여기서 설을 보내게 하려고 매년 엄마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제가 왜 오겠어요?”“밥도 먹었고 할 말도 했으니 이젠 더 이상 엄마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잘 지내신다는 거, 잘 알겠어요. 죄송하지만 엄마도 잘 지내요. 엄마가 재혼하지 않은 건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또다시 머리 검은 짐승을 만나기 싫으시기 때문이에요.”하고 싶던 말을 전부 내뱉은 차미주는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거기 서.”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차미주가 그가 준 세뱃돈을 던져버리려는데 갑자기 한 인영이 달려들며 그녀를 밀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차미주는 휘청이며 바닥에 벌러덩 넘어졌다. 꼬리뼈가 어디에 부딪힌 것인지 말 못 할 고통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차미주를 밀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멍해졌다고 그녀를 부축하려고 앞으로 다가왔다. 차미주는 내밀어진 그의 손을 피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소년은 여전히 소란스레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네가 뭔데 감히 엄마아빠를 욕해? 네까짓 게 뭔데. 다시 한번 말해 봐.”아버지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냐고 묻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 방금 차미주가 내뱉었던 말 때문에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차미주는 그런 아버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가방을 내려놓더니 순간 앞으로 다가가 냅다 소년을 업어치기로 넘겨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방안에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넘어간 아들에 부부가 깜짝 놀라며 달려와 아들을 살폈다. 그 현장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고 울음소리와 욕설이 어지럽게 섞여 들려왔다. 차미주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쿨하게 자리를 벗
차미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한성우는 어젯밤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듣고는 철렁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는 손을 뻗어 차미주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다음엔 꼭 나도 데려가. 네가 키가 작으니까 만만하게 본 거야. 내가 가서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면 꼼짝 못 할 거야.”차미주가 흥 코웃음 쳤다. “그 인간들도 속이 시원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자기 귀한 아들을 업어치기 해버렸거든. 내가 뭘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씁—”“네네, 차미주 씨가 최고예요.”한성우가 차미주를 치켜세워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얘기 그만하고 좀 쉬어. 힘 좀 아끼라고.”차미주가 눈을 감았다. “설날부터 엉덩이나 굽고 있다니. 창피해 죽겠네.”한성우가 피식 소리 내 웃었다. “치질 수술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야.”“꺼져.”한성우가 몸을 일으켰다. “물 좀 가져올게.”차미주가 나른하게 대답했다. 병실을 나서자마자 한성우는 손을 들어 이마를 탁 소리 나게 때렸다. ‘젠장, 너무 하얗잖아.’한편, 서해금의 지시로 아주머니가 전을 다 부쳤을 때, 마침 강한서가 한현진의 본가에 도착했다. 문을 연 송민준이 눈앞에 서 있는 강한서를 보더니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주유 값이 올랐든?”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살펴보지 않았는데.”“그래?”송민준이 말을 이었다. “난 또 주유 값이 올라서 네가 그 돈이 아까워서 걸어오는 건 줄 알았지.”“...”송민준은 쓸데없이 마음 쓰이게 하는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콧방귀 뀌며 말했다. “안 들어와? 내가 안까지 안아드려야 하는 거야?”강한서는 그제야 선물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는 몇 가지 술안주들이 다시 세팅되었다. 주강운은 송병천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송가람은 그들 맞은편에 앉아 있었지만 한현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한서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송가람이 그런 강한서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이며 소리높여 그를 불렀다. “한서 오빠!”두
한현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에요. 지금 만든다고 해도 푸딩이 굳으려면 몇 시간은 있어야 해요. 닭국수 어때요? 마침 닭고기 수프도 좀 있는데.”주강운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현진 씨가 만들어주는 거면 뭐든 좋아요. 현진 씨 음식 솜씨가 너무 기대되는데요?”강한서가 작게 헛기침하더니 중얼거렸다. “무지한 자는 용감한 법이지.”강한서의 목소리가 워낙 낮았고 TV까지 틀어져 있었던 터라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묻혀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 강한서의 바로 뒤에 서 있던 한현진은 어렴풋이 그가 뱉은 말을 들은 것도 같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물었다. “강한서 씨, 뭐라고요?”강한서가 움찔 몸을 떨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양념간장이 없어서 맛이 없다고요.”‘방금 그 말이 이렇게 길었었나?’한현진이 입술을 앙다물고 잠시 강한서를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주강운이 직접 음식을 기대한다고 얘기를 꺼냈으니 설에 실망감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한현진이 자리를 비우자 송가람은 차를 따르는 사이 강한서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강운은 덤덤한 눈빛으로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강한서는 시선을 내린 채 접시에 놓인 전을 먹으며 옆에 앉은 송가람에게는 특별한 리액션을 해주지 않았다. 송가람이 말을 걸어도 강한서는 그저 무덤덤하게 대답을 해줄 뿐이었다. 다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냉담한 태도도 아니었다. 주강운이 물었다. “한서야, 올해 그믐날엔 본가에서 할머니랑 보내지 않는 거야?”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현진 씨 데리고 같이 갈 거야.”주강운이 미소 짓더니 고개를 돌려 송병천에게 물었다. “아저씨, 현진 씨가 본가로 돌아오고 처음으로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건데 올해 설 연휴는 본가에서 지내라고 하지 않으신 거예요?”“같이—”송병천이 막 대답하려는데 식탁 밑으로 누군가 그의 발을 걷어찼다. 움찔 손을 떤 송병천은 하마터면 술을 쏟을 뻔했고 아까운 마음에 그는 술
송가람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건네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한서 오빠, 손 닦아요.”강한서가 수건을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송가람의 시선의 강한서의 이목구비를 훑고 지났다. 가까워 지면 질 수록 더 좋아졌다. 그녀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한서 오빠. 건강은 이제 제법 회복되지 않았어요?”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송가람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현진 씨와 파혼할 거예요?”강한서는 아무런 동요 없이 여전히 손을 닦으며 말했다. “현진 씨는 지금 제 기억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어요. 파혼 얘기를 꺼낼 타이밍은 아닌 것 같아요.”송가람이 멈칫했다. “전 오빠가...”송가람이 말을 잇지 못하자 강한서가 따지듯 물었다. “제가 뭘요?”송가람이 얼른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다행히 강한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수건을 다시 송가람에게 돌려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나지막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화장실로 향하던 한현진의 귓가에 마침 강한서의 그 말이 들려왔다. 멈칫, 걸음을 멈춘 한현진이 조용히 옆으로 몸을 숨기고 송가람과 강한서를 관찰했다. 멍해진 송가람은 얼굴부터 목까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은 파르르 떨렸고 가녀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에게 주는 거예요?”강한서가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그날 편의점에서 본 거예요. 가람 씨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요. 마음에 들진 모르겠네요. 혹시 마음에 안 들면...”“마음에 들어요.”송가람이 다급하게 말했다. 말하며 입술을 꼭 깨문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빨갛게 변했다. 어쩐지 강한서가 피식 소리 내 웃은 것 같았다. 송가람은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한서 오빠, 혹시... 혹시 해줄 수 있어요?”한현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알겠다고 하기만 해 봐. 오늘 그 다리를 분질러 버릴 테니까.’하지만
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핀 예뻐요.”한현진은 그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송가람은 자기가 예쁘냐고 묻는 거잖아. 누가 머리핀 예쁘냐고 물었어?’그러나 송가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가람 씨, 요즘 경찰 측에서 연락이 온 거 있어요?”강한서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 얘기인 듯 툭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강한서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는 기쁨에 잠겨있던 송가람이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아뇨. 왜요?”“그냥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얼마 전에 또 저에게 찾아와서 그날 일을 묻더라고요. 어떻게 구해졌는지에 대해서요. 전 지금까지도 전혀 기억이 없으니 경찰에게 아무런 단서도 드리지 못했어요. 그날 가람 씨 혼자서 절 찾은 거예요?”순간 주먹을 꽉 움켜쥔 송가람이 고개도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그날 경찰에게서 오빠와 현진 씨가 그 부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그쪽으로 갔었어요. 제가 오빠를 찾았을 때 오빠는 이미 강가에 쓰러져 있었고 택시 기사님께 도와달라고 부탁했었죠.”“경찰에게서 소식을 들었다고요?”강한서가 멈칫했다. “전 가람 씨가 강운이와 함께 간 줄 알았어요. 경찰은 강운이의 연락을 받고 간 거라, 가람 씨도 그런 줄 알았죠.”멈칫하던 송가람이 조금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강한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말이 없었다. 한현진이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그녀의 심장이 가늘게 떨려왔다. 강한서가 지금 송가람을 떠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송가람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왜 내 앞에서는 그렇게 얘기한 거지?’송가람은 강한서가 미끼를 던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오히려 강한서가 발견 즉시 강씨 가문에 그의 생사를 알리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눈시울을 붉힌 송가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오빠는 당시 부상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