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피식 소리 내 웃었다. “내가 좋은 소식 가져올게.”...수치심을 자극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강민서의 귀에 박혔다. 늘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강민서였지만 그날만큼은 그 말을 듣고는 도망치듯 그곳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강민서는 두 번 다시는 그런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서로 명품이나 자랑하며 즐기던 티타임 모임에도 가지 않았다. 그녀는 정인월 옆에서 매일 강한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이란 가끔은 이렇게 알 수 없도록 이상한 존재였다. 잔뜩 흥분했을 땐 다신 안 볼 것처럼 다투다가도 마음의 진정을 찾고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정인월의 목소리를 따라 하나둘 강민서의 마음에 흘러들었다. ‘나와 오빠는 왜 이렇게 됐을까?’‘정말 단순히 한현진 때문일까?’강민서는 아직도 자기를 경찰에 넘기던 강한서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눈이 삐었다며 강한서를 욕했던 것도, 한현진에게 미쳐 동생도 나 몰라라 한다고 했던 말들 전부. 그때의 강한서는 실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강민서를 쳐다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폐지 줍는 어르신만 봐도 마음이 아파 눈물을 뚝뚝 흘리던 네가 지금은 왜 이렇게 변한 거야? 강민서, 대체 왜 이렇게 변했어?”그가 내뱉은 모든 말들이 쿡쿡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당시의 강민서는 곧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한서가 어느 날엔가 한현진의 진면모를 파악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신미정을 집에서 내쫓은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강한서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에 떨어진 강한서를 따라 앞뒤 재지 않고 그를 따라 강으로 뛰어든 한현진의 모습을 본 강민서는 뺨이라도 얼얼하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기싸움을 하던 강민서와 민경하도 그날을 기점으로 약속이나 한 듯 화해했다. 강한서가 사고를 당하고 민경하는 강한서의 팀을 이끌고 강단해 쪽을 경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민서는 바삐 돌아치는 팀원들을 보며 처음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자기의 무능력함
민경하는 고윤의 모습에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는 사실 정인월이 굳이 그에게 식사를 권유하고 그의 어머니까지 모셔 온 원인을 눈치챘다. 전에 정인월이 언급했었던 강민서와의 혼사를 민경하가 완곡하게 거절했으나 고집을꺾지 않은 노인네가 또 이런 “맞선” 자리를 마련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그런 의도를 내비치지 않고 그저 두 모자가 썰렁하게 설을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같이 식사하려 한다는 핑계로 민경하가 도무지 거절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괜히 아들이 상사에게 밉보여 직장생활이 힘들어질까 두려워 황송해하며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 웃어 보이며 감싸주는 고윤의 모습에 민경하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러니 강민서를 보는 그의 눈빛에 차가움이 더해졌다. 냉기가 도는 민경하의 눈빛에 꼭 마음을 찔린 강민서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제멋대로 굴던 옛날의 제 모습을 떠올린다면 민경하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일부러 고윤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강민서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고고하게만 자라 미안하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강민서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공용 젓가락으로 닭 날개를 집어 고윤의 접시에 올리며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전... 전... 사실 흰머리가 빨리 나는 건 유전자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은 어머니께서도 40대이신데 흰머리가 엄청 많거든요. 그래서 계속 검은색으로 염색하셨고요.”강민서의 말에 강한서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괜히 불똥이 튄 송민희가 재채기했다. ‘괜찮은 아이인 것 같은데, 경하는 왜 오만하다고 했을까?’그런 생각을 하며 고윤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려는데 민경하가 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희 어머니는 닭고기 안 좋아하세요.”강민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순간 부잣집 딸내미의 성깔이 불쑥 튀어나왔다. “안 좋아하면 버려요.”툭 내뱉어진 강민서의 말에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고
강한서는 말 하며 휴대폰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이젠 거실엔 민경하와 강민서 단둘이 남게 되었다. 잠시 생각하던 민경하가 먼저 집을 열었다. “민서 씨,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강민서가 어리둥절해졌다. “뭘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예요?”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강민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민경하가 말했다. “이성으로 어떻게 생각하냐고요.”강민서가 멈칫하더니 이내 그녀의 귓불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빨개졌다. “어디 아픈 거예요? 제가 왜 실장님을 이성으로 생각해요?”‘내가 요즘 좀 대들지 않았다고 내가 자길 좋아한다고 생각한 거야? 미친 거 아냐, 이 사람?’강민서의 대답에 민경하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나중에 회장님께서 물어보시면 꼭 지금처럼 대답해 줘요.”강민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이게 할머니와 무슨 상관인데요?”민경하의 맑은 눈빛이 강민서를 향했다. “회장님께서 저희 두 사람을 이어주려고 하세요. 눈치 못 채셨어요?”멍해진 강민서가 무의식적으로 민경하의 말에 반박했다. “그럴 리가요.”민경하는 말없이 그저 가만히 강민서를 바라보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강민서는 요즘 틈만 나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던 정인월을 떠올렸다. 강민서가 가끔 민경하의 얘기를 꺼낼 때면 정인월은 꼭 몇 마디를 더 보태기도 했었다. 민경하의 얘기라면 정인월은 늘 은근슬쩍 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엔 전혀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것들을 민경하의 귀띔으로 다시 돌이켜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정인월은 쉽게 사람을 칭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에 쏙 든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 정인월이 틈만 나면 칭찬하던 한현진은 강한서와 결혼해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런 정인월이 지금 민경하를 칭찬한다는 것은 민경하를—강민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우리 둘 사이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실장님이 할머
고윤은 순간 조마조마해졌다. 다행히 정인월은 그에 대해 아무런 말 없이 오히려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고윤 씨 말이 맞아요. 일이라는 건 더 나은 삶을 위해 하는 거죠. 안 그러면 돈을 버는 의미가 없잖아요.”정인월의 말에 고윤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니까요.”“고윤 씨는 민서 그 아이, 어떤 것 같아요?”정인월이 갑자기 대화 주제를 돌리며 물었다. 고윤이 솔직하게 얘기했다. “민서 아가씨야 예쁘시죠. TV에 나오는 연예인만큼이나 예뻐요. 제가 다 쑥스러워서 말도 못 걸겠는걸요. 성격도 착하시고 예의도 바르신 것 같아요. 회장님 말씀엔 잘 따르시는 것 같고요.”정인월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민 실장에게 소개해 주면 어떨 것 같으세요?”“그건 당연히—”고윤이 말을 내뱉기도 전에 갑자기 멈칫 몸을 굳히더니 말을 더듬었다. “소... 소, 누굴 소개해 주신단 말씀이세요?”정인월이 퍽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경하 실장이요.”놀란 고윤이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녀는 아무리 해도 정인월이 자기를 집으로 초대한 건 아들에게 연을 맺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소개해 주려는 사람이 손녀라니. 연예인처럼 예쁘던 부잣집 딸이 며느리가 된다고 생각하니 고윤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린 고윤이 점차 침착함을 되찾았다. “회장님, 결혼은 아무래도 아이들 본인 생각이 중요하죠. 물론 저야 경하가 얼른 결혼해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제가 더 바라는 건 경하 행복이에요. 만약 경하가 민서 씨가 서로를 좋아한다면 부모로써 당연히 두손 두발 다 들고 찬성할 일이지만 만약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이 없다면 어른인 저희가 아무리 밀어붙여도 소용없잖아요.”말을 마친 고윤은 사실 이제 정인월의 호통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렸다. 부잣집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민경하에게 손녀를 소개해 주려고 했으면 감지덕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감히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상대방의 체면 따위는
민경하와 강민서를 더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한 정인월이 말했다. “고윤 씨, 설 연휴가 지나면 다시 집에 초대할게요. 우리가 먼저 애들 약혼 날짜를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약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우리 집 예비 사위가 되면 더 이상 민 실장이 여기에 드나드는 일로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정인월의 말에 고윤은 조금 멍해졌다. ‘저녁 식사 한 번에 며느리가 생겼다고?’하지만 더 어리둥절한 쪽은 오히려 민경하와 강민서였다. 특히 강민서는 왜 하필 민경하를 이겨 먹겠다고 “괜찮다”라는 말을 내뱉었는지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흥분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정인월의 모습에 그녀는 차마 방금 한 말이 민경하에게 농락당한 것이 기분이 나빠 홧김에 내뱉은 말이라고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인월을 설득했다. “할머니, 전 아직 그렇게 조급해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저 아직 어려요.”“넌 어리겠지만 민 실장은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됐어. 그리고 약혼식을 올리면 너희 둘이 나란히 다녀도 쓸데없는 말도 돌지 않을 테고.”문벌의 차이가 심한 두 사람이 만약 약혼자라는 신분 없이 가깝게 지낸다면 불필요한 루머를 생성할 수 있었다. 민경하는 정인월이 가족으로 인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에 맞는 신분과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 강민서의 멘탈이 와장창 붕괴했다. 그녀는 10여 분 전으로 돌아가 홧김에 쓸데없는 말을 내뱉는 자신을 쥐어박고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실장님도 저랑 엮이는 거 싫잖아요. 얼른 거절해요, 얼른.’그런 강민서의 눈짓을 받은 민경하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민서 씨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저 자식이!’‘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바라본다는 그 한마디 했다고 지금 이렇게까지 복수하는 거야?’민경하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정인월이 얼른 강민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아직도 강운
버럭 화를 내는 강한서에 강민서와 민경하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설에 대체 무슨 저렇게 내는 거야?’순간 강민서는 정인월이 민경하와 인연을 맺어준 지금, 자기를 도울 수 있는 것은 강한서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오빠, 할머니께서 나더러 실장님과 약혼하래.”멈칫하던 강한서가 민경하를 쳐다보더니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연봉은 못 올려줘요.”민경하와 강민서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강민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그것뿐이야?”잠시 생각하던 강한서가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요. 결정 내린 후엔 반품은 없어요.”강민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인 건데?’‘오빠는 결사반대해야 하는 거 아냐? 부하 직원이 자기 여동생과 결혼하는 게 어딨어? 집안이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난 전에 실장님한테 못되게 굴기도 했잖아.’‘기억을 잃기만 한 게 아니라 머리도 어떻게 된 거야?’강민서는 강한서의 이성을 되찾게 하려는 듯 자신과 민경하를 가르키며 말했다. “오빠, 잘 봐. 우리가 어울리는 것 같아?”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민 실장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뭐 괜찮겠지. 아무래도 나한테서 그렇게 많은 보너스를 받았으니.”“...”‘내 실력으로 받은 보너스가 왜 몸을 판 돈이 된 거야?’강민서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한참 만에야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가 오빠 따위는 어떻게 되는 그냥 내버려뒀어야 하는 건데.”말하며 그녀는 씩씩 화를 내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민경하는 강한서를 바라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강한서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민경하에게 말했다. “약혼이 결혼은 아니니까요. 할머니께서는 그저 두 사람에게 서로를 알아갈 기회를 만들어주신 것뿐이에요. 잘되든 아니든, 그건 두 사람 일이죠.”말하던 그가 고개를 들어 민경하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 집은 오너가라는 이유로 민 실장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 같은 건
고여정: [새해 복 많이 받아요.]신우: [여보, 아직 나한테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 안 했잖아.]차미주: [¥%&*&*...]한성우: [시스템도 너 따라 놀라서 버그가 생긴 거야?]신하리: [새언니 주량 세시네요. 나중에 저랑 열이 결혼할 때 독한 거로 몇 병 준비해드릴게요.]한열: [젠장.]양지원: [절대 일반적인 맛은 아닐 거예요. 그 정도면 일반인들은 며칠은 마실 거라고요.]강한서가 굳은 얼굴로 한현진과의 대화창으로 들어왔다. 한편, 편안하게 소파에 앉은 한현진은 휴대폰에 뜬 강한서와의 채팅창을 보고 있었다. “입력 중”이라는 글과 “기억 잃고 사리 분별 못하는 남편”이라는 글이 번갈아 대화창 상단에 표시되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나고 한현진이 기다리다 지칠 때쯤, 강한서가 드디어 겨우 한 마디를 쥐어짜 냈다. [뭐해요?]한현진은 그 세 글자에 화가 치밀어 실소를 내뱉었다. 저녁 내내 한현진은 강한서가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꺼지라는 말에 본가로 들어간 강한서는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한현진은 어쩔 수 없이 인스타그램에 협박성적인 피드를 업로드했다. ‘봐, 이 개자식 바로 확인했잖아.’‘고작 이 세 글자를 5분 동안 생각했다고?’한현진이 여유 있는 손놀림으로 답장했다. [아이 아빠를 바꿀까, 생각 중이었어요.]그리고 곧 강한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위험하게 들려왔다. “그러기만 해봐요.”‘하, 정색을 하시겠다?’한현진이 흥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제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예요. 누가 아이 아빠가 되든 그건 제 마음이죠. 제가 할 수 있는지 아닌지 한번 볼래요?”강한서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직도 화났어요?”한현진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화 안 났어요. 제가 왜 화를 내요? 강한서 씨는 절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모든 걸 다 참고 책임까지 짊어지시는 대단한 분이시라 전 너무 기쁜걸요? 하하.”“...”강한서는
안방 동쪽 옷장에는 코스프레용 커스튬으로 가득했다. 일부는 한현진이 직접 산 것이었고 나머지는 강한서가 한현진을 놀리기 위해 사둔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말은 뭔가를 암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건 두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암시였다. 툭 물건을 떨어뜨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현진의 심장도 쿵 내려앉았다. ‘설마... 혹시...’“덜렁대긴, 조심 좀 하면 안 돼요?”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평온하다 못해 삭막하기까지 한 강한서의 목소리였다. 한현진에게 한 말은 아닌 듯했다. 같은 시각, 강씨 가문의 본가에선 민경하의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떨어뜨린 휴대폰을 주우며 이유 없이 자기를 꾸짖는 강한서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강한서의 눈짓에 번뜩 눈치챈 민경하가 테스트하듯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해요, 대표님...?”한 편,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현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설마 내가 착각한 건가?’강한서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민경하를 힐끔 쳐다보더니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가봐요.”그는 민경하를 내보내고 나서야 다시 물었다. “방금 안방 동쪽 옷장에 뭐라고요?”“...”한현진이 실망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강한서가 또다시 “조금 이따 데리러 갈게요.”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한현진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과일을 들고 들어오던 송민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에 빠진 한현진을 마주했다. 그는 손을 뻗어 한현진의 이마에 살짝 손가락을 튕겼다. “무슨 생각해?”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현진이 이마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오빠.”송민준이 한현진 곁에 앉으며 그녀에게 포크를 건넸다. 그가 가져온 그릇엔 자른 망고가 담겨있었다. 잘린 모양이 이상한 것을 보니 한 번도 주방에 드나든 적이 없는 도련님 손에서 나온 작품인 듯했다. 한현진이 살풋 웃으며 망고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었다. 그녀가 나지막이 야유했다.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