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훈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너 미쳤어? 지금 시즌에 열애설이 터지면 네 팬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한열의 표정을 평온하기만 했다. “내가 제안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이 일은 결국 퍼질 거예요. 신하리 씨가 해명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하겠죠.”윤명훈이 다급하게 말했다. “대응만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일을 누가 기억이나 하겠어? 게다가 우리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잖아. 네가 왜 네 앞날까지 걸어가면서 신하리 씨를 도와 이런 일을 처리해 줘야 하는 건데?”예전이 윤명훈은 신하리를 좋게 보고 있었다. 신하리의 연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신하리를 존경해도 그녀가 자기 집의 바보 같은 똥강아지의 앞날을 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 신하리는 인기로 먹고사는 배우가 아니었다. 수년간 실력과 성과를 쌓아온 신하리는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사생활이 복잡한 것쯤은 그녀의 연기 생활에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니 열애설이 터지든 말든 신하리에게는 그 어떤 타격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열은 달랐다. 지금의 그는 여전히 인기로 먹고살았다. 이런 타이밍에 팬들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탑 아이돌이었던 또 다른 연예인의 현재가 바로 그 증거였다. 공개 열애 후 인기는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고 그저 예능에서나 얼굴을 비출 수 있었다. 더 높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탑 아이돌은 진짜 연애를 하고 있었고 영화계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신하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열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윤명훈은 한열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그의 머릿속을 열어 들여다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열이 덤덤하게 말했다. “팬들에게 떠받들려 칭찬만 받으면 전 영원히 발전할 수 없어요. 팬들이 좋아하는 건 그저 제 외적인 모습뿐이잖아요. 5년, 그리고 10년 후면 더 멋지고 잘생긴 아이돌이 나타나 결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윤명훈은 그저 외톨이 같은 신세였다. 제작발표회에서 있었던 일은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신하리와 한열의 팬들은 서로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고 양측 회사에서도 최대한 빨리 각 매니저에게 연락해 대책을 마련했다. 신하리네 회사는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한열 쪽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소속사 대표는 윤명훈의 귀에서 피가 나도록 그를 욕했다. 스피커폰이 아니었음에도 차에 있던 모든 사람이 대표의 욕설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윤명훈은 어쩔 수 없이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대표에게 굽신거려야 했다. 아무리 한열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이미 그가 제안을 받아들인 이상 윤명훈은 최대한 회사를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소속사 대표는 언제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개 연애는 그들을 당황스럽게 했고 이미 많은 브랜드 쪽에서 사실 확인 전화를 걸어왔다. 회사는 공개 연애로 인해 여론이 어떤 쪽으로 흘러가냐에 따라 한열과의 재계약이 결정할 것이었다. “전향? 전향은 개뿔. 아무리 전향이 목적이어도 이딴 식으로는 아니었어야지. 다들 배우님, 배우님 해주니까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팬들이 정말 연기력이나 실력 때문에 자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홍보팀에서 밀어주지 않았으면 뜨기는 했을 것 같아? 내가 한열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는 건 두 번째 한열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얘기야. 얼른 신하리와의 열애설 부인하는 해명글을 올리라고 해. 한열 설득 못 하면 너도 잘릴 각오해야 할 거야.”윤명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사람 좋게 말했다. “대표님, 이미 카메라에 전부 찍혀서 해명하긴 힘들어요. 팬들이 바보도 아니고, 대충 해명글로 무마하려면 믿지 않을 거예요. 지난번 회의에서 대표님과 안 이사님께서 열이를 배우로 전향시킬 사안에 관해서 얘기 꺼내셨었잖아요. 그때 대표님께서 열이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넌 X발, 내가 애 달래느라 한 얘기도 믿는 거야? 내가 네
모든 탑 아이돌이 영원히 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젊은 탑 아이돌은 언제든 있었다. 인기 아이돌에게 한열 지금의 나이는 마침 돈을 최대한 끌어모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이었다. 대충 춤이나 추고 노래를 불러도 팬들은 그들을 위해 통이 크게 지갑을 열었다. 형편없는 발연기로 드라마에 출연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시청률을 높여줬다. 연기력이 좋든 아니든, 돈만 벌어주면 그만이었다. 전대호나 안 이사는 말로는 배우로의 전향을 기획하고 있다고는 그들 중 그 누구도 하지만 손에 넣은 돈 벌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외모가 더는 레전드급이 아니게 될 때면 또 다른 인기 아이돌이 나타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전 세대의 인기 아이돌은 이미 한 평생은 먹고살고도 남을 재부를 축적했을 테지. 연예계에 발을 들이며 아무리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해도 자본 앞에 결국은 조금씩 자기를 잃어가며 서서히 자본주의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전대호가 내뱉은 말들은 전부 상당히 귀에 거슬리는 얘기들이었지만 맞는 말도 있었다. 한열이 사라져도 그를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가 연예계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한열은 비로소 팬들이 만들어준 환상 속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한열이 원한 것은 결코 한 순간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린 것은 신하리처럼 영화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윤명훈은 여전히 한열을 설득했다. “열아, 넌 아직 젊어.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해. 아이돌이 배우로 전향하는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한열이 윤명훈의 말을 잘랐다. “형, 저한테 여기가 네가 찍을 정상은 아니라고 했던 거 거짓말이었어요?”“당연히 아니지.”윤명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 이래 봬도 이 바닥에선 프로야. 얼마나 많은 연예인을 키웠는데. 내 안목이 틀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그 말에 한열이 피식 웃었다.
신하리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래서 제가 얘를 똥강아지라고 부른다니까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체 누가 지나가던 개에게 마음을 준다는 소리를 해요? 당연히 동족이니까 마음이 가겠죠.”한열은 순간 신사다운 매너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신하리와 싸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신하리가 유유히 입을 열었다. “나 건드리기만 해 봐. 계약이 끝나는 동시에 데이트 폭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할 거야. 안 좋은 소문이 퍼진 너를 대체 어떤 여자가 좋아할 수 있을지 지켜볼 거야.”눈을 부릅뜨고 신하리를 노려보는 한열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싶었다. 신하리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는 강소희가 기회를 보다 입을 열었다. “그만해.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장난이 하고 싶어?”입을 삐죽이던 신하리가 드디어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다. “다들 진정하고 대책부터 생각하죠. 일단 의심받지 않을만한 스토리를 짜야 해요.”이때, 차미주가 손을 들었다. “제가 스토리를 짜드려도 될까요?”하나둘 차미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 있던 한현진이 차미주 대신 홍보하듯 말했다. “미주는 작가거든요. 전에 킹 엔터에서 제작했던 인기 드라마가 전부 미주 손에서 나온 거예요. 다만 그때는 그저 서브 작가였을 뿐이라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요.”대본을 쓰는 작가는 당연히 스토리텔링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강소희도 전문적인 작가에게 이 일을 맡길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다만 이 문제는 두 배우의 앞날이 걸린 일이라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외부인에게 맡겼다가 괜히 이익에 눈이 멀어 두 사람을 배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강소희는 여전히 차미주의 실력에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정말 하실 수 있겠어요?”차미주가 말했다. “제가 일단 대충 스토리를 들려만 드릴게요. 들어보시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수정하죠.”아무도 차미주의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구상한 스토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대충
곧이어 강소희는 신하리와 한열에게 서로 각자의 취미를 공유하고 꼭 기억하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신하리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한열에게 말했다. “번호 교환해.”그러나 한열은 그런 신하리를 무시했다. 신하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번호 교환 안 하고 어떻게 보내라고?”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열이 자기 취미를 적어 신하리에게 전송했다. 카톡 알림이 울리고 한열과의 대화창을 확인한 신하리가 멈칫했다. “내가 언제 너랑 번호 교환했어?”전에 한열은 줄곧 디엠으로 신하리에게 연락했었던 터라 그녀는 이제껏 전화번호를 교환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열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똥멍청이.”“...”서로의 취미를 공유한 후 한열에게 다가가 생일을 물으려던 신하리는 그가 연락처에 저장해 놓은 자신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미친 X. 입술을 파르르 떨던 신하리 역시 얼른 한열의 이름을 미친X으로 수정했다. 완성을 누르고 고개를 들자 한열이 어두운 얼굴로 자기 이름을 수정한 신하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 기분이 한결 좋아진 신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친 X, 미친 X. 환상의 한 쌍이네.”한열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유치하긴.”10분 후, 두 사람은 나란히 페이스북을 업로드했다. 한열: 저의 또라이 여친을 소개합니다. @신하리. 신하리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한열의 피드를 리트윗하며 글을 올렸다. 제 또라이 남친을 소개합니다. @한열, 앞으로 돈 관리는 내가 할 거야. 그리고 곧 페이스북은 서버가 셧다운되어 버렸다. 대중들의 관심사는 이제 제작발표회에서 어떤 미친 여자가 한 말이 아닌 최연소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신하리와 탑 아이돌인 한열이 사귄다는 것에 쏠렸다. 신하리를 욕하던 한열의 팬들은 이젠 한열의 페이스북에 미친 듯이 댓글을 남겼다. [미친 거 아냐?][우리가 힘들게 스밍 돌리고 있는데 연애하느라 바빴네?][차라리 신하리가 X스 파트너라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
한열의 말에 한현진이 멈칫하더니 이내 피로연 때를 떠올렸다. 신하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로 퉁 치면 네가 손해일 텐데.”한열이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하리가 말했다. “그래도 방금 내가 한 말은 유효해.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한열은 신하리의 말을 들은 건지 아닌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원래는 함께 밥을 먹으려고 했지만 한열의 상황이 이러하니 식사는 무리였다. 많은 기자가 열애설에 대해 물으려고 혈안이 되어 한열을 찾고 있을 테니 지금은 최대한 그들 앞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편이 상책이었다. 한현진을 데려다주려고 그녀에게 어디로 갈 건지 묻자 차미주가 클라우드 아파트로 갈 것을 제안했다. 저녁이 되면 한성우와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송병천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의 목소리는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호흡이 가쁜 듯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얼른 집으로 돌아와. 네 오빠에게 사고가 생겼어.”순간, 한현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빠.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하지만 한현진은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다. 송병천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M 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어. 네 오빠가 탄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다고. 구조대가 이미 그쪽으로 가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추락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대...”한현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빠가 비행기에 탑승한 게 확실해요?”송병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탑승하기 전에 나에게 전화했었어. 내일 아침에 도착한다면서.”한현진이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비행기에 탑승 하기 전 송민준의 연락을 받았다. ‘돌아와 할 말이 있다고도 했었는데. 갑자기 추락이라니?’‘설마 오빠가 진실을 알아내서 누군가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야?’그런 생각이 불쑥 머리를 스치자 한현진은 찬물을 끼얹은 듯 온몸에 소름이 끼
한현진의 말에 모두들 안색이 변해버렸다. 서해금이 나지막이 말했다. “현진아, 넌 왜 인위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민준이가 이번 출국, 설마 단순히 비즈니스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야?”한현진이 덤덤하게 말했다. “가람 언니가 날씨 때문이라고 추측한 것처럼 저도 단지 그런 추측을 할 뿐이에요. 지금 구조대가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니 저희가 먼저 막무가내로 날씨 때문에 추락한 거라고 속단 짓지 말죠. 그렇게 함부로 단정 짓는 건 너무 섣부른 것 같아요.”한현진이 말에 송가람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녀가 얼른 말했다. “전 단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얘기한 것뿐이에요. 제가 언제 함부로 단정 지었다고 그래요.”말하며 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오빠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하얘져서...”한현진이 목소리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사관에서는 그저 비행기가 추락했다고만 했어요. 아직 오빠가 비행기에 탑승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고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왜 오빠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요?”“전—”말문이 막힌 송가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행기 추락 사고의 생존율은 거의 0%에 가깝다는 걸 몰라서 그래요? 지금 현진 씨는 오빠 생사가 중요해요, 아니면 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게 중요한 거예요?”“당연히 오빠의 안위가 제일 중요하죠. 전 단지 아직 제대로 된 소식도 없는 상황에 곡이나 하는 꼴이 보기 싫었을 뿐이에요.”한현진이 송가람을 비꼬며 말을 이었다. “능력이 좋으셔서 강한서도 구해오신 분이 오빠를 구할 방법도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송가람의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금 이런 상황에 현진 씨는 아직도 저와 한서 오빠—”짝—점점 일그러지는 송병천의 얼굴을 보던 서해금이 갑자기 송가람의 뺨을 내리치며 서늘한 말투로 말을 뱉었다. “조용히 해. 지금이 싸울 때야? 네 오빠는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마지막 한 마디를, 송병천은 가볍게 툭 던지듯 얘기했다. 그러나 한현진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욕심에 불과한 바람이었다. 그들 모두 송민준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기를 감히 바랐다. 서해금이 눈시울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럼 조심해서 가요. 도착하면 바로 연락해 줘요.”알겠다고 대답한 송병천이 한현진과 함께 집을 나섰다. 공항으로 가는 길,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전화했다. 연말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던 강한서는 한현진의 전화에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한현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강한서 씨, 지금 집이에요? 제 여권 좀 가져다줄 수 있어요?”그 말에 강한서가 잠시 멈칫 몸을 굳혔다. “어디 가려고요?”“M 국이요. 오빠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어요.”한현진은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지만 그 말은 강한서의 마음속에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한 소식이에요?”강한서의 목소리에 한현진은 목 놓아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송병천도 차에 있었던 터라 아빠 앞에서 그녀는 차마 울 수 없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송병천 역시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한현진이 힘껏 코를 훌쩍이며 울음을 삼키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대사관에서 이미 구조대를 보냈다고 했어요. 비행기 잔해 일부는 발견했지만 오빠와 블랙박스는 아직 찾지 못했어요. 저 지금 아빠와 그쪽으로 가서 대사관 직원을 만나 수색을 돕거나... 인계받아야죠.”강한서가 휴대폰을 쥔 손에 꾹 힘을 실었다. “지금 어디예요?”“공항으로 가는 길이예요. 전 아름드리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요. 강한서 씨가 집에 있으면 저에게 여권을 가져다주는 게 더 빠르거든요. 1시간 30분 뒤 항공편이에요. 지금 집이에요?”시간을 확인하던 강한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기다려요. 지금 갈게요.”말하며 전화를 끊은 강한서가 회의실로 돌아가 얘기할 새도 없이 다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차에 올라타 민경하에게 전화해 급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