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거기서 뭐해?”유현진이 흠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병실 문 앞에는 환자복을 입은 강한서가 팔을 깁스한 채 덤덤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한성우가 서 있었다.둘의 모습을 보더니 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오빠!”강민서가 강한서에게 달려가며 말했다.“나 엄청 놀랐단 말이야!”사실 강한서가 원래 709호실에 있었던 건 맞다. 하지만 709호실에 햇빛이 잘 안 들어 강한서가 아침에 704호실로 바꿨다. 병원 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았는지 강한서의 병실이 아직 709호로 되어있었고 그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팔은 왜 그래?”신미정은 겨우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강한서가 말하기도 전에 한성우가 대답했다.“어젯밤 경찰을 도와 나쁜 놈을 잡다가 그놈들한테 당했어요.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일곱 바늘이나 꿰맸어요.”‘일곱 바늘 꿰맸다고?’유현진은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크게 다치지 않아 알릴 생각이 없었는데 성우가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한성우는 강한서가 잠든 틈을 타 친한 친구들이 있는 여러 단톡방에 보내려고 그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사진을 찍었는데 그만 잘못 눌러 동창 단톡방에 보냈다. 마침 누군가가 그 사진을 캡처하고는 강민서가 있는 단톡방에 전달했다.신미정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일곱 바늘이나 꿰맸는데 크게 다치지 않았다니!”언성이 높아질까 봐 한성우는 바로 상황을 수습했다.“먼저 병실로 돌아가서 천천히 얘기하는 건 어때요? 돌아가신 분은 존중해야 하지 않겠어요?”확실히 언성을 높이며 얘기하기 마땅한 곳은 아니었다.강한서가 유현진을 힐끔 봤다. 유현진이 가만히 있자 그는 입술을 얇게 오므리며 말했다.“언제까지 여기서 무릎 꿇을 생각인데?”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내가 무릎 꿇고 싶어서 꿇냐고? 지금도 무릎이 엄청 아프단 말이야.’강민서가 아니꼬운 얼굴로 말했다.“창피하게 이게 뭐야. 모르는 사
강한서의 침대는 신미정과 강민서, 유상수에게 둘러싸여 유현진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그때 한성우가 말했다.“민서야, 물 좀 받아와. 오빠 아직 약 못 먹었단 말이야.”강민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저기 그냥 서 있는 사람 있잖아.”“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한성우가 무슨 말을 더하려던 그때 유현진이 물컵을 건네받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제가 갈게요.”마침 유현진도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는데 잘된 일이었다.문을 닫자마자 신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별일 없었어요.”강한서가 짧게 말했다.“술 마실 때 시비를 거는 놈들이 있었고 싸움으로 번졌어요.”“어떻게 싸웠길래 사람 팔을 이렇게 만들어? 널 다치게 한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엄마,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그 말을 들은 신미정은 기분이 언짢았다.“내가 상관하지 않아도 되겠어? 네가 어젯밤에 이렇게 큰 사고를 당했는데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잖아. 너를 챙겨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놓이지, 혼자 온 밤 동안 병원에 있었고 끼니나 물을 챙기는 사람도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이 놓이겠어?”유현진은 입술을 씰룩거렸다.신미정의 말은 그녀를 저격한 것이었다.남편이 사고를 당했는데 아내로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이때 강한서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제가 알려주지 않았어요. 피를 무서워하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저를 보고 놀라서 칭얼거릴까 봐 귀찮아서 안 불렀어요.”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기분이 그래도 좋아져 컵을 들고는 물을 받으러 갔다.“그게 귀찮았다고? 할머니가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나는 또 얼마나 속상하겠어?”“오빠,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그 사람 편을 들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 병원으로 찾아왔겠어?”강한서가 미간을 구겼다.“너는 무슨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그래?”강민서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그 말을 들은 신미정은
병실에서 나온 후 유상수는 바로 신미정을 불렀다.“사부인, 요새 얼굴색이 좋아 보이네요.”신미정이 덤덤하게 말했다.“그럭저럭 괜찮아요.”“전에 제가 현진이를 통해 보내드렸던 트러플은 받으셨어요? 어떠셨어요?”신미정이 미간을 구겼다.“무슨 트러플이요? 저는 모르는데요.”유상수가 흠칫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사부인께 전하라고 현진이에게 직접 건네줬었는데 어떻게 못 받으셨을까요?”“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강민서가 목소리를 높였다.“우리 엄마가 받고도 못 받은 척한다는 말씀이세요? 엄마가 그깟 트러플을 못 먹어본 것 같아요? 유현진이 오빠와 결혼했다고 신분 상승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집안에서 뭣도 아닌 게.”유상수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신미정은 강민서가 말을 다하고서야 그녀를 혼내는 말투로 말했다.“민서야,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강민서는 콧방귀를 뀌고 더는 유상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오십 넘은 유상수가 어린 여자애한테 혼나게 되니 체면이 서질 않았다.신미정이 말했다.“얘가 성격이 좀 세요. 사돈어른,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유상수는 억지로 미소를 짜내며 말했다.“사부인,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민서의 말을 마음에 둘 리가 있겠나요?”“사실 사돈어른은 절 찾아올 필요도 없어요. 회사 일은 한서가 보고 있고 저는 이미 물러났으니 별 영향력이 없어요.”유상수는 신미정에게 부탁을 하고 싶어도 이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유상수가 웃으며 말했다.“사부인, 부탁드리려고 온 게 아닙니다. 사부인께서 현진이를 이렇게 잘 보살펴주셨는데 아비로서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가 더 화목해지길 바랍니다.”신미정이 그를 힐끔 보며 말했다.“우리 강씨 집안에 신경을 써준다면 저야 당연히 현진이를 잘 챙겨주겠죠. 혹시나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까 봐요.”그 말을 들은 유상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물을 받고 있어 유현진은 어쩔 수 없이 옆에서 기
유현진은 바로 병실로 달아갔다.문을 열자, 병실 안에는 강한서 혼자만 있을 뿐 경찰은 없었다.오히려 강한서는 문이 갑자기 열린 소리에 깜짝 놀라고는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왜 저렇게 덤벙대?”유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물컵에 담겨있는 뜨거운 물을 식혔다.금방 받은 물은 뜨거웠다. 강한서는 워낙 까다로워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은 온수를 마시지 않고 오직 뜨거운 물을 식힌 온수만 마셨다.전에 유현진이 귀찮아서 찬물과 뜨거운 물이 섞인 온수를 강한서에게 주자 그는 한 모금만 마시고는 더는 물에 입을 대지 않았다.병원에는 쾌속 열 식히기 기능이 있는 정수기가 없어 이렇게 손으로 식혀줄 수밖에 없었다.강한서는 그녀를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아침에 어디 갔어?”“로또 사러 갔어.”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로또는?”유현진이 컵을 내려놓고는 휴대폰을 꺼내 차미주가 보낸 두 사진을 강한서에게 보여줬다.“번호 엄청 오래 고민했어. 1등 할 것 같아.”강한서는 액정이 깨질 대로 깨진 유현진의 휴대폰을 힐끔 봤다.“로또를 산 사람마다 1등 당첨된다고 말하더라.”“꿈은 크게 꾸는 게 좋잖아.”“그건 꿈이 아니라 망상이야.”유현진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너 같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로또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모르겠지.”강한서가 대답했다.“로또 1등에 당첨되면 당첨금은 부부의 공동 재산으로 되는 거지? 나도 절반 챙길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로또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기도 하고.”유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못돼먹은 놈. 내가 1등에 당첨되어도 당첨금은 이혼한 후에 수령해야지.’“약 먹어.”물이 미지근해지자 유현진은 컵을 강한서에게 건넸다.하지만 강한서는 물을 건네받고는 그저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유현진은 어리둥절했다.“왜 그래?”강한서가 괜히 심술을 부리며 말했다.“내가 약을 먹을 손이 어디 있어?”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약을 강한서에게 먹여주었다.
“그리고 난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정당방위야. 그리고 네 약물 검사도 경찰 쪽에 넘겼으니까 변호사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거야.”그 사람들에게 칼이 있었다면 자신을 협박했을 때 왜 칼을 쓰지 않았는지 유현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칼을 썼었더라면 그녀는 찍소리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이리 와.”강한서의 낮은 목소리에 유현진은 생각을 멈췄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왜?”말은 그렇게 해도 유현진은 강한서의 침대 옆으로 갔다.강한서가 미간을 구미며 말했다.“머리 좀 숙이고 가까이 와.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유현진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는 허리를 숙였다.“도대체 무슨...”말을 마치기도 입술에 차가운 느낌이 전해져 왔다.강한서가 검지로 그녀의 입술에 난 상처에 약을 발랐다.유현진이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 난 상처이다.연고는 차가웠지만 강한서의 손길은 부드럽고도 따뜻했다.어젯밤에 당한 일을 떠올리면 유현진은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입술이 소시지처럼 부었는데도 몰랐어?”강한서는 역시 입이 방정이다, 그의 말을 들은 유현진의 억울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는 강한서의 손을 툭 치며 그를 째려봤다.“보기 안 좋으면 보지 말든가!”“더 못생긴 모습도 봤는데, 뭐. 이미 익숙해져서 괜찮아.”유현진은 입술을 씰룩거렸다.‘팔이 아니라 혀를 다쳤어야지.’“똑똑.”유상수가 문을 두드리며 과일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유현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아빠, 먼저 가신 거 아니었어요?”유상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가려던 참에 1층 마트에 싱싱한 과일을 팔길래. 한서가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골고루 사 왔어. 너 좀 있다가 한서한테 과일이나 깎아줘.”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과일 바구니를 건네받았다.참 아이러니했다.유현진은 어렸을 때 몸이 아파 계란말이가 그렇게 먹고 싶었었다. 유상수가 다니는 회사 맞은편에 바로 계란말이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도 유상수는 그녀가 병이
유현진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아빠 맞아요? 다른 사람의 말은 그렇게 잘 믿으면서 왜 친딸 얘기는 믿지 못해요? 제가 선물했다고 말했었잖아요. 신미정한테 당한 수모를 왜 저한테 푸시는 거예요?”유상수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선물을 받았으면 왜 못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겠어? 저번에 너보고 강한서한테 천주시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했을 때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더니. 너 이제 강한서가 뒤를 봐준다고 유씨 집안을 버릴 셈이야? 네 엄마 치료비만 1년에 몇억은 들었어. 돈이 그냥 생기는 줄 알아? 너한테 이런 일을 시킨 것도 결국 누구 때문인데? 우리 유씨 집안이 일어서지 못하면 강씨 집안에서 누가 너를 존중하겠어?”‘말만 잘하지, 나랑 엄마를 위해 헌신하는 척하긴. 그런 수단으로 부와 명예를 얻어낸다고 해도 강씨 집안에서 나를 더 좋게 봐줄 것도 아닌데 말이야.’“제가 말했죠, 트러플은 정말 선물했다고요. 정 못 믿으시겠으면 앞으로 저한테 이런 일 맡기지 마세요. 아부 떠는 건 제가 확실히 아빠를 못 따라가죠.”“너.”유상수는 분노가 끓어올랐다.마침 이때, 옥상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있어 그는 결국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유현진은 바로 자리를 떴다....병실 안에서, 한성우는 방금 유현진이 사람을 잘못 알고 통곡하는 얘기를 하며 깔깔 웃어댔다.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제 그만하지.”한성우가 겨우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그래도 죽으면 울어주는 사람이 있잖아, 기분이 어때?”“괜찮네.”강한서가 그를 힐끔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네가 죽을 땐 울어주는 사람이 있을까?”그 말을 들은 한성우는 정색했다.울어주는 사람이 있기는커녕 저번에 몸이 아파서 주사를 맞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전 여자친구들의 댓글로 도배되었다.“쌤통이야, 아주!”“경찰 쪽에는 무슨 소식이 없어?”강한서가 진지하게 물었다.“처음에는 부인하며 잡아떼더니 CCTV를 보여주자 두 사람 모두 솔직하게 털어버렸어. 어젯밤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끝내 말을 더하지 않았다.‘그래, 내가 낸 아이디어니까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인정해야지.’이때 유현진이 돌아왔다.한성우는 워낙 눈치가 빨랐기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현진 씨, 저는 회사에 일이 생겨 가봐야 할 것 같네요. 한서 잘 챙겨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시고요.”강한서가 그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빈손으로 가면 어떻게 해? 과일 바구니 들고 가.”“내가 혼자도 아닌데 과일 바구니는 무슨...”한성우는 갑자기 강한서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한성우가 병문안을 빈손으로 왔다며 비아냥거리고 있었다.“과일 바구니는 여기 둘게요. 현진 씨, 이 카드 받으세요. 안에 1억 정도 있을 거예요. 전에 약속했던 사례금이에요. 한서가 다쳐서 일 못 한 거랑 형수님이 받으신 정신상의 고통까지 고려해 두둑이 넣었어요. 저 때문에 두 사람 이런 일을 당한 거잖아요.”유현진은 끝내 그 카드를 받지 않았다.“남편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데요. 팔을 다쳐 한 주일은 쉬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맞지, 여보?”그 말인즉 돈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여보라는 소리에 강한서는 기분이 좋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천연덕스럽게 말했다.“상처가 회복되는 거 봐야지. 회복하는 데에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테고 심각하면 보름 걸릴 수도 있어.”유현진은 어깨를 으쓱했는데, 마치 ‘나 거짓말한 거 아니야’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한성우는 입술을 씰룩거렸다.‘누가 두 사람 부부 아니랄까 봐? 내 돈 떼먹을 때는 저렇게 마음이 잘 맞아. 괜히 한서를 도우려고 나섰네. 전혀 내가 도울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둘이 화해하고 나부터 저격하는 것 좀 봐.’유현진은 일부러 한성우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한성우가 원망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어젯밤 강한서가 칼을 맞은 걸 눈 뜨고 보고만 있었으니.오늘 돈이라도 받아내지 못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강한서도 오늘 돈을 받아내지 못하면 나중에라도 배로 더 받아낼 기
“너 얼른 수표 챙겨, 내가 후회하기 전에.”강한서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내 물음에 대답하면 수표는 네 거야.”“뭔데?”유현진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아버님이 뭐라고 하셨어?”유현진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어머님이 트러플을 못 받았다고 하셨대. 네가 많이 바쁘면 그냥 거절했어도 됐는데.”‘굳이 나한테 전했다고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강한서가 멈칫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내가 일부러 안 전했다고 생각해?”“일부러든 아니든, 잊어먹었든 아니든 할 수 없는 일을 약속하는 거 아니야.”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더하려던 그때, 민경하가 문을 두드리더니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사모님. 퇴원 수속은 마쳤습니다.”두 사람이 대답하지 않자 민경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퇴원하시는 거 맞습니까?”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두 사람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민경하는 오히려 불편했다. 두 사람이 워낙 많이 다퉜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니 왠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그는 몰래 백미러를 힐끔 봤다.강한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잔뜩 구겼다. 유현진도 차가운 얼굴로 창문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 왜 또 이런대?’“민경하 씨.”강한서가 갑자기 물었다.“지난번에 엄마한테 전하라던 트러플 말이에요, 엄마한테 전했어요?”유현진은 귀를 쫑긋했다.민경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엄마가 받았나요?”“아니요, 부인께서 집에 계시지 않아 가정부에게 전했어요.”“그럼 우리가 보낸 거라고 똑똑히 말했었나요?”“네, 분부하신 대로 말씀드렸습니다.”강한서는 미간을 구겼다.‘그런데 왜 못 받은 거지?’그는 신미정이 살고 있는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는 바로 통했다.“저에요.”가정부는 바로 강한서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도련님,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 부인과 아가씨는 안 계시는데요.”“알아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말씀하세요.”“저번에 민경하 씨한테 부탁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