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19화

작가: 은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심송학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오래간만에 오곡밥 먹어보자.”

채경숙도 고개를 돌리더니 유시아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시아야, 그동안 네가 도와준 덕분이다. 네가 없었다면 나랑 하윤이 둘 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야.”

어제 한바탕 통곡한 탓인지, 두 눈이 아직 빨갛게 부어있었고 한눈에 봐도 안색이 창백한 게 많이 초췌해 보였다.

유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애써 그녀의 눈빛을 피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별일 아니래도요. 저한테 너무 예의 차리지 마세요, 아줌마!”

유시아의 이러한 태도는 채경숙의 마음을 냉랭하게 만들었다.

‘설마 이미 우리를 안 돕기로 마음 먹은 거야...?’

유시아는 심씨 가문이 일로 인해 임재욱에게 부탁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더더욱 다시 임재욱 손안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소현우가 남겨준 부동산과 돈으로 혼자 잘 살려는 건가? 소현우... 애초에 시아가 소현우를 우리 딸한테서 뺏지 않았더라면 소현우의 아내가 될 사람은 바로 우리 유현이였을 텐데... 심씨 가문에 일이 생기면 소현우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적어도 우리를 도와 유현이를 잘 돌봤겠지. 그런데 지금 죽었으니 시아도 이제 손을 떼고 상관하지 않으려는 모양이군.’

이런 생각이 들자 채경숙은 유시아가 조금은 달갑지 않았다.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 이렇게 산산조각나며 미래가 캄캄해지자 그녀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심송학은 간단히 점심을 먹고 평소와 다름없이 휴식을 취하려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탓에 쉽게 피곤함을 느끼곤 해서 말이다.

채경숙은 병실에서 그를 지키고 있었고, 유시아는 이 기회를 틈타 심하윤을 끌고 나가서 그녀와 함께 바람을 쐬려고 했다.

병원 뒤쪽에는 유럽풍의 작은 정원이 있었다. 비록 겨울이라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남았지만 여러 가지 등불 장식이 있어 분위기가 침체되기는커녕 오히려 활기 넘쳐 보였다.

심유현은 연한 갈색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넣더니 갑자기 물었다.

“시아야, 너는 업보라는 걸 믿어?”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0화

    “어이쿠!”심유현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한 남자가 심유현 쪽을 쳐다보더니 물었다.“이게 따님입니까? 아주 예쁘장하게 생겼네. 아직 남자친구는 없지?”“네 남자친구가 널 차버렸다고 하던데? 나랑 한번 사귀어보는 건 어때? 내가 돈 많이 줄게. 하룻밤 자주면 한 달 이자 갚은 거로 하지!”곧 남자가 심유현에게 다가갔다.살면서 처음 접해본 장면에 심유현은 깜짝 놀라 멍해지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그 자리 꼼짝 않고 서 있었다.그녀의 곁에 서 있던 유시아도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지만,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심유현은 끌어당기려 했다.“언니...”그러나 이미 늦었다. 남자는 이미 손을 뻗어 심유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조롱하고 있었다.“왜? 이미 다 파산한 마당에 네가 무슨 아직도 부잣집 아가씨인 줄 알아?”“손 사장님...”그때, 채경숙이 단번에 달려 나와 손 사장의 앞을 가로막았다.“제발, 일단은 이러지 마세요. 돈은 제가 꼭 무슨 방법을 대서든지 갚을게요. 한 달, 아니 보름 사이로 꼭 갚을 테니 제 딸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남자는 비웃었다.“뭐로 갚으시게요? 장부상 그렇게 많은 돈을 잃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난 돈으로 갚겠다는 거죠?”계속되는 남자의 모욕에 채경숙은 얼굴이 시뻘게졌다.“치... 친정에 가서 빌리겠습니다!”그녀의 친정은 해외에 있다. 외부에는 그녀의 친정 오빠가 해외에서 아주 큰 회사를 차려 심송학과 실력이 비등비등하다고만 알려져 있다. 때문에 채경숙은 친정을 무기 삼아 남자를 위협할 수 있었다!하지만 손 사장이라 불리는 남자는 전혀 난처해하는 기색이 없었다.“그래요. 그럼 일단 기다려보죠! 만약 보름 동안 돈을 갚지 못하면 당신 딸은 제 것입니다!”이렇게 말하며 그는 심유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계집애, 어디 도망칠 생각하지마! 내 사람들이 병원 전체를 지키고 있어. 네가 도망쳐도 네 엄마 아빠는 도망칠 수 없으니, 그런 줄 알아!”이 말을 남기고 남자는 비로소 나머지 두 사람을 데리고 의기양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1화

    집으로 돌아온 유시아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온몸에 진이 쭉 빠진 채로 기운도 하나도 없었다.구름이한테 먹이를 주고 난 뒤 유시아는 멍하니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넋을 놓았다.그렇게 한참 지나서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으로 고민 끝에 임재욱에게 전화하기로 했다.유시아는 결국 자기 스스로한테 두손 두발을 들고 말았다.곤경에 빠진 심씨 가문과 더불어 처참하게 능멸을 당하고 있는 베프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임재욱한테 놀아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진심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 희생 한 번으로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심씨 가문에 일말의 기회라도 안겨다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유시아이다.하물며 유시아는 심하윤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에게 반해 우정을 외면한 채 그를 빼앗아 온 적도 있다.심씨 가문을 위해 자기 발로 임재욱의 곁으로 돌아간다면 이로써 퉁 친 셈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다만 임재욱이 자기 요구를 들어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유시아는 심장이 바짝 조여왔다.해외 시간으로 보면 지금은 아침이다. 임재욱은 으리으리한 빌딩 안에서 비서와 담판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개인 맞춤으로 제작한 블랙 슈트는 한 치의 오차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완벽한 몸을 감싸고 있다.그와 더불어 깎아 놓은 듯한 완벽한 콧날과 남자다운 턱선이 아울러 지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를 드러내고 있다.해외로 오고 나서 모든 일은 생각 밖으로 술술 풀려갔다.그중에서도 특히 정유라에 관한 일은 거의 바람에 돛 단 격으로 막힘이 없었다.이에 임재욱은 늘 기분이 좋았고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평소보다 부드럽고 유유한 이미지를 보였다.바로 이때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왔다.손을 주머니로 옮겨 핸드폰을 꺼내 보니 발신자 이름에 ‘유시아’가 떡 하니 쓰여 있었다.‘유시아?’임재욱은 순간 잘못 본 줄 알고 다시 눈을 크게 뜨고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2화

    그 질문을 듣고 유시아는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심씨 가문 사람에 비하면 유시아는 빚 하나 없이 아주 자유롭고 여유로운 몸이다.하지만 심하윤의 상황만 떠올리게 되면 절로 걱정이 앞서게 된다.“전 괜찮아요. 하윤 언니 곁에 자주 있어 주세요. 여기저기 산책도 좀 다니시고 너무 슬퍼하지 않게끔 옆에서 많이 타일러 주시고요. 시간이 흐르다 보면 갑자기 일이 풀리는 날도 올 수 있잖아요.”내일이면 유시아는 공항으로 임재욱 마중을 가야 한다.만약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막힘이 없고 술술 풀린다면 임재욱은 심씨 가문의 일부 채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있다.돈으로 직접 해결하지 않는다고 한들 이러한 관건이 되는 순간에 심씨 가문 편에 선다면 채권자들은 그를 봐서라도 좀 기다려 줄 수 있다.적어도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들이닥쳐 소리만 지르고 행패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물론 임재욱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면 유시아도 별수 없다. 포기하고 받아들일 수밖에.“알았어요. 시아 씨도 그동안 몸 잘 챙기고 있어요.”용재휘의 부드러운 소리를 끝으로 두 사람의 통화는 종료되었다.유시아는 지금 상황과 달리 유난히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가볍게 내뱉었다.‘심씨 가문도 나도 무사하길.’그리 대단한 바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소망이다. 어느 한 쪽이 다쳐야 다른 한쪽이 무사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다음 날 아침 4, 5시쯤.유시아는 일찍이 잠에서 깨어나 부랴부랴 아침 밥을 먹었다.얼마 먹지도 못한 채 또다시 허겁지겁 가방을 들고 바로 집을 나섰다.유시아는 공항으로 가려고 한다. 어느 항공편인지 임재욱에게 묻는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그렇다고 해서 다시 전화를 걸어 묻고 싶지도 그럴만한 처지도 되지 못하니 그만두었다.‘모레 도착’이라는 말만 믿고 무작정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부탁해야하는 입장이니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한다면서.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녀는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3화

    그 말을 듣고 유시아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건 아니에요. 부탁할 게 있어서 공항으로 마주 간 것 뿐이에요.”그러자 허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시아 씨 부탁이라면 그게 뭐든 대표님께서 들어주리라 믿어요.”‘과연 그럴까?’유시아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애꿎은 찻잔만 만지작거렸다.그렇게 30분 정도 지나고 나서야 임재욱이 위층에서 내려왔다.금방 샤워를 마치고 편안한 파자마로 갈아입은 채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얼굴에 가득 묻어있던 피곤함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보고 유시아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재욱 씨...”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말들이 목구멍을 비집고 넘어오려 했지만 차마 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말을 뱉는 그 순간 바로 그에게 매몰차게 버려져 모욕을 당할 것만 같았다.하지만 허씨 아주머니의 시선은 달랐다. 지금 유시아가 보이고 있는 모습을 사랑에 빠진 소녀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하여 허씨 아주머니는 먼저 입을 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얘기 하고 계세요. 찌개 끓이고 있어서 전 이만 부엌으로 가봐야 할것 같아요.”말하면서 재빠르게 몸을 돌려 부엌으로 향했다.이때 유시아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운을 떼기 시작했다.“재욱 씨, 심씨 가문 좀 살려주세요.”유시아의 전화를 받고 나서 임재욱은 심씨 가문에 관한 모든 걸 샅샅이 조사했다.하여 유시아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뻔뻔하게 자기한테 전화 온 그 이유를 알고 있다.심씨 가문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없으니 말이다.유시아는 당연히 마지막 지푸라기인 자기를 놓지 않으리라 단언할 수 있었다.차갑게 씩 웃으며 임재욱은 유시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럼, 내가 얻는 건 뭔데?”그 질문에 유시아는 사색이 되었으나 마음은 오히려 안정되었다.적어도 별장에서 쫓겨나지 않았고 아직 ‘흥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유시아는 입술을 살짝 사리물고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4화

    우당탕한 소리는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귀에 유난히 거슬릴 정도로 부엌에서 분주히 일 보고 있던 허씨 아주머니도 집안 곳곳에서 바삐 돌고 있던 하인들도 화들짝 놀라 서둘러 거실로 달려 나왔다.임재욱한테 목이 꽉 조인 채 테이블 위에 힘없이 누워 있는 유시아가 보였다.허씨 아주머니는 이미 여러 명문대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리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보는 광경임에도 불구하고.허씨 아주머니는 재빠르게 하인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다들 제 위치로 돌아가라며 암시했다. 끼어들지 말아야 곳에 절대 끼어들지 말라면서.그리고 허씨 아주머니 역시 부엌으로 돌아가 투명 인간처럼 행동했다.테이블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더없이 차갑고 딱딱했다.온몸에 뼈마디가 저리고 아파질 만큼 유시아는 점점 괴로워졌다.마른 몸에 추위까지 타는 유시아는 맨살이 대리석에 대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육체적으로 느껴지는 추위와 아픔 보다도 더더욱 놀라운 건 다른 것이었다.하인이 버젓이 보고 있는 앞에서 임재욱은 지금 이곳에서 그녀를 가지려고 한다.모두가 보는 앞에서 유시아의 포지션을 다시 알려주려는 것이 분명하다. 천한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것.이 집에서 개처럼 고개 숙이고 지내게 하려는 임재욱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유시아는 운명을 받아들인 듯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좀 만 참으면 돼. 곧 지나갈 거야.’임재욱은 고된 비행을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시차에도 적응되지 않아 무척이나 피곤할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오래는 못 할 것이라고 아주 잠깐만 참으면 심씨 가문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속으로 거듭 곱씹었다.하지만 한참을 숨죽인 채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임재욱의 가벼운 웃음소리만 귓가에 울려 퍼질 뿐.“어라? 오늘은 좀 다르네? 전에는 엄청 순진한 척 하더니 왜 갑자기 가만히 있는 거야?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재미없게.”말하면서 그는 손을 내밀어 유시아의 얼굴을 살짝 때렸다.“보아하니 모든 걸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5화

    임재욱은 그동안 자기가 뭘 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모자랐던 부분을 메워 주고 싶었고 유시아의 곁에 남아 그녀를 제대로 사랑해 주고 싶기도 했었다.하지만 매번 고개를 숙이고 호감을 드러낼 때마다 유시아는 그런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었다.전에는 소현우를 위해서 멀리하더니 지금은 심씨 가문을 위해서 자존심을 버리고 빌고 있다.유시아에게 있어서 소현우도 감옥에 있을 때 등을 돌렸던 심씨 가문도 자기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그렇게 보잘것없는 존재로 유시아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싫었다.목숨을 구해주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까지 생겼었는데도 말이다.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도 유시아는 단 한 번도 자기 곁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다.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으로 유시아의 마음속에 남 채.아무리 잘해 주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결국 하찮은 짓에 불과했다.한두 가지 일이 차곡차곡 쌓여 임재욱은 마침내 와르르 무너져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절망이 모든 이성을 삼켜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점점 난폭해지고 잔인해진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유시아는 지금 즉시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등불이 환하게 비치는 넓은 거실에서 이런 모욕을 당하고 있으니.임재욱은 유시아의 마지막 ‘옷’까지 벗어 던지고 만 것이다. 추호의 여지도 남겨주지 않은 채 벌거숭이가 되게끔.그렇게 기나긴 밤이 흘러 지나 갔다. 어찌나 긴 밤이었는지 유시아는 아침이 밝아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얼마나 지났는지 온몸을 쑤시고 있는 통증과 피로감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유시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다행히도 딱딱하고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이 아니라 포근한 침대에서 일어났다.밖은 여전히 어둠이 내려앉아 있고 기절한 유시아를 임재욱이 침실로 안고 온 것이다.고개를 돌려보니 창가 앞에 우뚝 서 있는 임재욱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침대 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임재욱도 천천히 몸을 돌렸다.그러고는 덤덤한 모습으로 유시아를 바라보며 입을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6화

    온갖 정성을 다해 주어도 유시아는 절대 소현우를 잊을 리가 없고 다시 자기를 사랑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애지중지 여긴다고 하더라도 절대 소현우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음을 똑똑히 알고 있다.그래서 차라리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소리이다.“평생 재욱 씨 눈에 띄지 않게 제가 잘 챙기고 있을게요.”유시아는 붉어진 눈시울로 임재욱을 바라보며 애원했다.“재욱 씨, 제발 이것만은... 차라리 묻어버릴게요.”임재욱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이윽고 눈빛이 차갑게 확 바뀌면서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제발 부탁 좀 드릴게요. 재욱 씨...”유시아는 점점 허리를 숙였고 당장 무릎이라도 꿀을 기세였다.“현우 씨 죽음에 재욱 씨도 연관되어 있잖아요. 그냥 못 본 척하고 저 좀 봐주시면 안 돼요? 이 반지만은 가지고 있게 해주세요.”임재욱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유시아, 같은 말 두 번 하고 싶지 않거든.”“...”임재욱은 이런 말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유시아한테도 소현우한테도 연민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그가 던지라고 한다면 유시아는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왜냐하면 지그 유시아 앞에 놓인 건 소현우가 남기고 떠난 기념과 심씨 가문의 생사이기 때문이다.어느 쪽이 더욱 중요한 것인가를 따져 본다면 살아있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소현우가 살아 있고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착한 사람이.유시아는 손을 뻗어 잠옷 가운을 걸치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임재욱이 뜻대로 변기에 내리려고 왔는데, 이곳에 이르자마자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다리는 곧 나른해졌고 그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변기 바로 옆에.그 소리를 들은 임재욱은 바로 달려가 보았다.문 앞에 서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유시아가 직접 목걸이를 변기 안으로 던지는 것을 지켜보았다.이윽고 물 내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소리와 함께 반지며 목걸이며 그대로 빨려 들어가 흔적 하나 남기

  • 사랑이라는 죄로   제327화

    임재욱은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심씨 가문의 일로 유시아가 다시 자기 품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유시아와 달리 이는 그에게 있어서 선물이나 다름없다.두 사람은 함께 할 운명이라는 뜻으로 받아 지금 무척이나 소중히 다루고 있다.유시아를 품에 안은 채 볼로 시작해서 귀, 목, 쇄골 그리고...한 곳도 빠짐없이 오랫동안 그렸던 디저트를 즐기고 있듯이 지금 마음껏 맛보고 있다.매너도 이성도 유시아 앞에만 서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지칠 법도 하나 임재욱은 굶주린 늑대처럼 유시아를 놓아 주지 않고 있다.여러 방식으로 겨우 손에 넣은 ‘디저트’를 즐기며 멈출 기미 보이지 않았다.유시아는 그런 그를 상대하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하지만 앞으로 천천히 임재욱의 곁에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무뚝뚝한 유시아도 영혼이 업는 유시아도 결국 모두 유시아 이기에 임재욱은 따지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는 사람이 유시아면 되는 것이다.그렇게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 왔다.유시아는 잠을 설쳤고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어났다.눈을 떴을 때 옆에서 자고 있는 임재욱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유시아는 더 이상 잘 수가 없었고 가슴이 턱턱 막혀와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5시 30분이 되자, 임재욱이 잠에서 깨어났다.오랜 시간 동안 몸에 익히 버릇이라 그 어떠한 날에도 귀신처럼 제시간에 일어난다.유시아는 그를 등진 채 누워있다. 온몸을 이불 속으로 꽁꽁 숨긴 채 얼굴만 살짝 내놓고 있는데 백지장처럼 하얗다.임재욱은 유시아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가볍게 뽀뽀까지 했다.입술이 얼굴에 닿는 순간 유시아는 아주 본능적으로 한 번 떨었다.유시아는 다시 자지 않았고 더 이상 자는 척을 할 수도 없었다.저도 모르게 몸까지 떨었으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빛을 잃은 눈동자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처량하고 불쌍한 분위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임재욱은 그런 그녀의 정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잔뜩 흥이 난

최신 챕터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5화

    늦은 밤, 유시아의 카카오톡을 받았을 때 임재욱은 병원에 있었다.신시연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고 그동안에 임재욱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늦은 밤의 사립 병원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당직을 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외에 거의 사람이 없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임재욱은 복도를 한참이나 누비다가 의자에 걸터앉았다.유시아를 병원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길에 신시연의 전화를 받고서 오게 된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아프다고.신시연은 며칠 전에 병원에서 여러 번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해외에서 그러한 몹쓸 짓을 당하며 우울증과 부인병이 있는 외에 다른 수치들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그 말인즉슨,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신시연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임재욱 하나뿐이니 어찌 됐든 그녀를 잘 지켜야 하는 마음뿐이었다.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게끔.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여 임재욱은 그녀를 직접 병원까지 데리고 오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확답을 듣고 나야만 마음이 놓일 수 있다.애타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렸다.유시아가 보낸 카카오톡인데,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보고 싶어요.]임재욱은 고개를 숙인 채 카톡 내용을 거듭 곱씹으며 유시아 사진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 올라갔다.‘내가 보고 싶어? 별거한 지 하루 만에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거야?’‘우리 시아 이제 제법 솔직하네.’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어떻게 답장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도우미 김향화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신시연을 부축하고 걸어 나왔다.신시연은 디자인이 아주 심플한 데님 스커트를 입었고 윤기가 별로 없어 보이는 머리를 돌돌 말아 묶어 올렸다.무척이나 초췌해 보이는 것이 가여운 느낌도 물씬 풍기고 있어 기고만장했던 그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4화

    유리 구두를 품속에 꼭 안고 있는 유시아를 보고서 임재욱은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달래기 쉬운 여자라는 것을.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주 살짝만 잘해주어도 유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기뻐하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늘 임재욱 앞에만 서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자기를 낮은 위치에 놓는 데 습관 되어 있다.임재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뽀뽀했다.“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예쁜 유리 구두 선물해 줄게. 어때?”“좋아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아주 유치하게 그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절대 어기지 않겠다고.”백화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일단 화실로 향했다.새로 구매한 공예품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 유시아의 제안으로 이채련의 병원까지 바래다주었다.유시아는 자기가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타입이라 이채련과 이미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 했다.하물며 자식도 없는 이체련에게 마지막 이 시간들이 더더욱 외로울 것이다.외부인들이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외롭다.임재욱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고 이채련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니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보내주었다.차는 곧 사립 병원 앞에 멈춰 섰고 임재욱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유시아는 차창에 대고 거듭 강조했다.“유리 구두랑 드레스들 옷방에 고이 모셔두도록 해요. 마구 놓지 말고요.”“알았어.”임재욱은 말하고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확 잡고서 찐한 키스를 남기고 나서야 순순히 놓아 주었다.“얼른 가 봐.”“조심해서 가요.”임재욱은 조수석에 앉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고서야 시선을 거두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가는 길에 갑자기 신시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병실로 돌아와 보니 이채련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침대에 멍하니 누워 재미가 일도 없는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유시아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채련은 놀라고도 기뻤다.“시아야,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유시아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3화

    쇼핑은 늘 설레는 일이다.유시아는 자기 취향대로 화실 장식품으로 쓰일 공예품을 골랐다.이윽고 임재욱은 또 유시아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지난번에 두 사람은 함께 쇼핑하면서 많은 옷을 샀었지만, 신서현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면서 유시아는 그 모든 옷을 모조리 청소 아주머니에게 줘 버렸다.그때의 아쉬움을 채워주기 위해 임재욱은 또다시 쇼핑하려고 한 것이다.게다가 다음 주면 대우 그룹 상장 20주년이다.정식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유시아를 자기 아내 신분으로 남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이브닝 파티에 어울릴만한 드레스와 신발을 살 예정이다.드레스는 그럭저럭 큰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유시아는 그 신발이 마음에 들었다.은백색의 하이힐로 예쁜 보석들로 가득 박혀 있어 매점 불빛 아래서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신데렐라 동화에 나올 법한 유리 구두 같았다.매점 직원은 유시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다가왔다.“손님 안목이 참 좋으시네요. 이 제품은 저희 디자이너 선생님의 최신 디자인으로 지금 딱 한 켤레만 있습니다. 만약 이 신발을 신고 나가신다면...”임재욱은 갑자기 직원의 말을 끊어버렸다.“이미 결혼했고요. 이 사람은 제 아내예요.”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는데,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를 보고서 따라서 웃었다.“맞아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매점 직원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베스트 쇼핑 가이드다운 실력을 드러냈다.“어머, 어쩐지 너무 어울리신다 했어요...”직원의 칭찬에 두 사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이윽고 매점 직원은 분위기를 파악하며 유리 구두에 대해 더욱 디테일한 설명을 첨부하기 시작했다.“이 제품의 새끼 양가죽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착용감이 엄청 좋으실 거예요. 하루 종일 신고 걸으셔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우리 디자이너 선생님이 즉흥으로 만들어내신 작품이라 절대 똑같은 제품을 시중에서 보실 수 없을 거예요.”한 켤레일 뿐만 아니라 사이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2화

    한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내가 뭐?”“한서준 씨는 당당해요?”유시아는 바로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임씨 가문에 접근한 그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요? 할아버지, 재욱 씨 그리고 나까지 똑똑히 알고 있어요. 청아 씨만이 한서준 씨를 사랑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쭉 모르는 척을 하며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한서준 씨 역시 청아 씨를 이용한 게 아닌가요?”마지막 한 마디에 한서준은 침묵하고 말았다.그렇다. 임청아에게 접근한 이유는 유시아가 ‘스파이’로 움직여 주지 않겠다고 거절했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임씨 가문 천금을 노리게 된 것이다.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변하게 되어 있다.임청아 대한 마음은 모략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이 점점 사랑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띠고 다가왔던 임청아가 어두운 자신의 삶을 밝게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따라서 한서준은 임청아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츰 생기게 된 것이다.임태훈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꼭 자기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청아 씨 지금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에요.”“만약 청아 씨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차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려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택시에 오른 유시아는 긴 망설임 끝에 끝내는 더 스케치 화실 주소를 운전 기사에게 알렸다.차는 화실 맞은 편에 세워졌고 유시아는 화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화실 안의 상황을 바로 체크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많은 경호원들이 임태훈을 사이에 두고 화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임태훈은 벤틀리에 올라 강한 기운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시아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바로 화실로 향해 달려갔다.화실 안과 밖은 겉은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1화

    전화를 마치고 유시아는 혼자 밖에 없는 휴게실을 보고서 깊은 번뇌에 잠겼다.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임태훈처럼 막무가내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인이 있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태훈이 끔찍이 여기는 임청아를 유시아가 계단에서 밀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애꿎은 자기 화실을 닫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집안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스스로 반성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일단 남한테서 문제를 찾고 있으니, 권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했다.유시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고 불안함도 점점 커졌다.지금 운영하고 있는 더 스케치 화실도 용재휘가 먼저 시작한 것인데, 그와 더불어 학생들까지 모두 함께 넘겨주었는데, 만약 이대로 화실을 망쳐버린다면 용재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임재욱과 임태훈이 어느 정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화실이 그들 싸움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일단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그렇게 한참이나 심장을 조이고 있었지만, 걸려 오는 전화는 없었다.유시아는 일이 어느 정도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 채팅방에 오늘 갑자기 일이 있다며 수업을 뒤로 미룬다고 알렸다.언제 다시 수업을 시작할지는 소식을 기다리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톡을 보내고서 유시아는 더 이상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바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병원 대문을 나오자마자 한서준이 정면에서 오고 있었다.“유시아.”유시아는 고개를 들었고 그를 보게 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 났다.직감이 알려주건대, 절대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화실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한서준은 쉽사리 유시아를 놓아 주지 않았고 손을 내밀어 유시아의 손목을 꼭 잡았다.“물어볼 일이 있어.”말하면서 근처에 있는 지프차를 가리켰다.“차에 타서 얘기 하자.”“그쪽이랑 할 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0화

    유시아는 그 말을 이어받지 않고 집사의 바람대로 타이르기 시작했다.“몸이 아직 많이 허약해요.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하거든요. 일이 어찌 됐든 일단 건강부터 챙겨야 해요.”임청아 그 말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건강 회복되면 할아버지한테 잡혀가서 집에 감금되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유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어찌 됐든 할아버지 마음은 한결같을 거예요. 청아 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요. 서로 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 터놓고 얘기하고 나면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임청아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아이 낳고 나면 할아버지도 서준이도 원한을 내려놓고 행복만 할 수 있다고요.”“근데 이렇게 몸도 아끼지 않고 점점 더 막무가내로 나가면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은 점점 더 짙어질 거예요.”유시아는 말하면서 도우미 손에서 보신탕을 가져와 천천히 불며 임청아의 입가로 가져갔다.임청아는 생각 밖으로 무척이나 순순하게 유시아의 말을 따랐고 그녀의 말에 이치가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보신탕을 받아 마셨다.도우미와 집사는 두 사람이 티키타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임청아가 뭐라도 먹기 시작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시름을 놓으며 자리까지 비켜주려고 했다.두 사람이 마음 편히 말할 수 없을까 봐 눈치껏 일어서려는 것이다.“작은 사모님, 아가씨와 천천히 얘기하고 계세요. 밖에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네, 가보세요.”도우미 일행이 나오고 나서야 유시아는 본론으로 들어갔다.“한서준 씨는 알고 있어요?”임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런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잖아요.”요즘 임태훈뿐만 아니라 한서준도 눈을 부라리고 임청아를 찾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자 아파트도 호텔도 들어갈 수 없었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유시아 화실에 몸을 숨기고 지낸 것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9화

    임청아 이름 석 자가 임재욱의 입에서 나오자, 유시아는 순간 청천벽력을 맞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청아 씨가 왜 병원에 있는 거죠?”임청아는 임신한 것을 알고 매사에 조심하며 걸음 하나도 천천히 옮겼었다.게다가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여 해외로 떠날 준비까지 마쳤다고 했었다.그런데 관건이 되는 순간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할아버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야?”임재욱은 말하면서 차갑게 웃었다.“네 화실에 청아 숨겨 놓았잖아. 할아버지께서 그걸 과연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오늘 화실로 청아 데리러 갔었는데, 가지 않겠다고 청아가 하도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묶어서라도 데리고 가겠다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그렇다면 아이를 유산했을지도 모른다.임태훈의 습관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이 화살은 결국 유시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임재욱이 그렇게 경고하였건만 유시아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약해지는 마음에 언젠가는 구렁이에 빠지게 될 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 일 줄은 몰랐다. 임재욱은 한숨을 내쉬며 꾸짖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병원 주소 보내줄 테니 얼른 가 봐.”말을 마치고 임재욱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고 운전 기사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같은 시각, 병원 안에서.임청아는 이미 수술을 마쳤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이미 가문의 집사와 간호인이 옆에 있었고 병실 문 앞에는 임태훈이 보낸 경호원도 있었다.다만 경호원이 경계해야 할 상대는 유시아가 아니라 한서준이다.따라서 유시아는 별다른 막힘없이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상에 누워 있는 임청아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고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에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집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주 공손하게 유시아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8화

    조금 전까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던 임재욱은 멈칫거리고 말았다.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별거하자는 뜻이야?”“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유시아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머리가 아픈 듯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으로 시연이한테 집중해도 되잖아요. 나도 마침 어머님 곁에 좀 있어드리고... 서로에게 지금 이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낙담한 모습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 거겠지. 그렇게 하자.”말을 마치고 그는 계속 밥을 먹었다.유시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서 아련하게 웃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튿날 아침, 유시아는 임재욱이 출근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상복 몇 벌과 일상용품을 챙겨 작은 트렁크 안에 놓고 바로 이채련한테 가려고 했다.허씨 아주머니는 트렁크를 들고 내려오는 유시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사모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설마... 가출하려는 건 아니죠?”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를 향해 웃었다.“아니에요. 친척분이 좀 위독하신데 제가 옆에서 좀 챙겨드리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고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트렁크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이채련이 지내고 있는 병실이 VIP 병실로 널찍한 객실까지 갖춰져 있다.유시아는 간호사에게 접이식 침대와 이불을 요구했고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잘 자리가 아늑하게 마련되었다.이채련은 더 이상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하루 24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얼굴도 하도 여위어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그전에도 유시아는 이채련에게 이곳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만 이채련은 행여나 자기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흠이 생기게 될까 봐 동의하지 않았었다.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갖은 풍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7화

    임재욱은 핸들을 꼭 움켜쥐고서 앞만 바라보았으나 두 눈에는 고통과 망연함이 가득했다.“시연이 해외에 있을 때, 몹쓸 짓을 당했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거야.”유시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볼륨까지 높아졌다.“어머, 어떡해요!”평소에 신시연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다.여자에게 있어서 그런 몹쓸 짓을 당한다는 건 치명적인 타격과 치욕이 아닐 수가 없다.게다가 부모님의 일까지 더해지니 조금 전 식당에서 봤던 신시연의 모습이 이해되었다.임재욱은 말하면서 후회와 자책하는 빛을 드러냈다.“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는 시연이를 내가 억지로 보낸 거야.”그때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낯선 곳으로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업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삶을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임재욱이 잊고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신시연이 이제 갓 20살을 넘은 꽃다운 여자아이라는 것이다.해외에는 불안정 요소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하는 위험도 많다.게다가 젊은 나이라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길로 들어서기도 아주 위험하고 말이다.신시연 곁에 사람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24시간 동안 찰싹 달라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유시아와 결혼하고 나서 신혼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신시연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지금 임재욱은 신서현에게 미안할 뿐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하지만 그가 말한 본의와 달리 듣고 있는 유시아는 또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유시아의 기억으로는 신시연이 해외로 보내진 이유는 이러하다.그때 신시연은 정운시 대학교 교내 사이트에 유시아를 먹칠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유시아로 하여금 학업을 이어갈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없게 악한 상황을 만들었었다.마침 그 일을 소현우가 알게 되면서 유시아에게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