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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Author: 은별
last update Huling Na-update: 2024-10-29 19:42:56
19층에 위치한 2,300평 남짓한 소현우의 집은 간단한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장식이 되어있지 않아 다소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소현우가 말하길, 아주머니가 매주 월요일 청소하고 요리를 해준다고 했다.

구름이는 이곳을 매우 좋아했다. 꼬리를 날아갈 것처럼 흔들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화분의 작은 잎사귀를 물어뜯는 것도 좋아했다.

강아지가 물건을 망가뜨릴까 봐 걱정되었던 유시아가 가방에 다시 들어가게 하려 하다 소현우에게 제지당했다.

“원래 장난을 좋아하는 아인데, 이대로 둬.”

이후 소현우는 유시아를 서재로 데려갔다.

그는 오늘 마침 답장해야 할 업무 이메일이 있었다. 유시아는 창문과 가까운 테이블에서 공부하다가 가끔 책장 앞에 가서 책을 골라 읽었다.

소현우의 책장은 작지 않았고 거의 한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소현우는 장난스레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대부분 장식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중 예술류의 서적과 그림책을 가리키며 농담했다.

“그치만 이 책들은 성실한 시아 친구에게 잘 어울릴 것 같네.”

유시아가 까치발을 하고 가장 위쪽의 책을 가지려고 할 때 cd 하나가 위에서 떨어져 옆의 카펫 위로 떨어졌다.

허리를 굽혀 주운 뒤 자세히 보았더니, 그 cd는 뜻밖에도 신서현이 생전에 출판했던 음반이었다. 심지어 디럭스에디션이었다. 외곽은 특색 있게 포장되었고 신서현의 사진도 찍혀있었다.

사진 속의 신서현은 20대의 모습이었다. 원래도 젊고 아름다운 얼굴에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치니 더욱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

일에 열중해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던 소현우가 유시아의 기척이 들리지 않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유시아가 그 cd를 들고 넋 놓고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작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시아야...”

부름소리에 유시아가 정신을 차렸다.

“방금 책 가지려고 할 때 떨어졌어요.”

소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cd를 들고 잠시 쳐다보고 대답했다.

“전에 신서현 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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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라는 죄로   제 129화

    그의 말에 유시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해 엷게 웃었다.“이 cd 저한테 주면 안 돼요?”비록 노래를 좋아하지도, 평소에 노래를 즐겨 듣지도 않았지만 기념품으로나마 이 cd를 간직하고 싶었다.확실히 자신의 전 반생의 기쁨과 슬픔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와 깊이 사랑했던 남자가 모두 신서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괜찮으니까 마음에 들면 가져가. 여기 있어도 전시외엔 쓸데가 없으니...”소현우는 신서현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저녁 시간이네. 나가서 외식하고 우리 엄마 보러 가자.”유시아가 잠시 망설였다.“어머님을 뵈러 간다고요?”비록 처음 뵙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 예비 며느리로 시어머니를 뵈러 간다고 생각하니 유시아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었다.게다가 이 여사는 아직 그들의 결혼을 정식으로 승낙하지 않았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둘의 결혼 결정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기도 했다.“네.”소현우가 부드럽게 유시아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어찌 됐든 언젠가는 만나 뵈어야 하는 사람이니까.”비록 어머니와 함께 살진 않았지만 주말이면 본가에 돌아가 엄마와 함께하는 것이 이미 습관처럼 되었다.그가 유시아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위안했다.“괜찮아. 우리 엄마 친화력도 좋고 너 좋아해 줄 거야.”그가 뒤돌아서 서랍을 열어 푸른색 선물상자를 꺼내 보여주었다.“봐봐. 내가 너 대신 선물도 준비해 뒀어. 엄마가 한복을 좋아해서 브로치를 모으는 취미가 있거든. 그리고 나도 같이 있을건데...”소현우의 위로에 유시아가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 그럼 전 가서 책 정리할게요.”“그럼 난 구름이 밥 줄게.”말을 마치고 소현우는 주방으로 향했다.유시아가 서재에서 필기와 그림 원고를 정리할 때 소현우의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하 이사” 세글자가 보였다. 회사 사람인 듯

  • 사랑이라는 죄로   제 130화

    혼자 집에 있던 유시아는 구름이에게 밥을 먹이고 빵을 꺼내 허기를 채웠다.오후 4~5시가 되었을 때 소현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유시아는 책을 덮고 창가에서 밖을 보며 눈을 쉬었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는 우유와 즉석밥, 컵라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유시아는 냉장고 문을 닫고 지갑을 챙겨 인근 편의점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아파트 주변은 녹화 환경도 좋고 공기도 맑았고 간간이 새 지저귐소리도 들려왔다.임재욱은 한 은행나무 아래에 선 채 저 멀리 석양 속에서 쇼핑카트를 밀고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여인을 바라보았다.유시아는 오늘 하얀 와이셔츠에 간단한 디자인의 청색 멜빵바지를 입고 흰 축구화를 신었다. 귀엽게 묶은 올림머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학생 같아 보였다.쇼핑 키트에 산처럼 쌓인 식재료를 보고 임재욱의 호흡이 불안정해졌다.아주 현모양처가 따로 없네. 금방 청혼을 허락하고 이렇게 밥이며 채소를 갖다 바치면서 주부를 자처하는구나. 소현우는 참 복에 겨웠네.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문득 그가 위 천공으로 입원했을 때 유시아가 밤을 새워 토마토 브로콜리 죽을 해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너무 많았던 토마토조각과 시큼한 맛의 죽...가슴이 아팠다. 오장육부가 다 저릴 만큼.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창백한 얼굴의 여인을 보며 미세하게 웃었다.“제가 말했죠. 피한다고 계속 피할 순 없다고."유시아의 쇼핑 키트를 잡은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유시아는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임재욱이 쇼핑 키트를 잡았다.“정말 소현우랑 결혼할 거야? 평생 같이 살 거야?”“그럼요?”유시아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뭐 어떡하려고요.”다시 생각해 보니 유시아의 눈에 두려움이 담겨있다.그녀의 눈에 임재욱은 맹수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다.그녀가 출소한 이래 가장 즐겨하던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고 싶냐는 말은.임재욱 역시도 자신에게 수없이 물어봤던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건가? 아예 유시아를

  • 사랑이라는 죄로   제131화

    이 모든 걸 이제 더 이상 우연이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현우 씨 회사 일, 재욱 씨 때문이죠?”임재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내가 말했잖아, 너희 두 사람 같이 있는 꼴을 못 보겠다고. 게다가 전에 너랑 잘 이야기해보려 했는데 넌 끝까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어. 그래서 그런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야. 소현우를 없애야 너랑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왜 그랬어요?”유시아는 살짝 이성을 잃은 듯 그에게 소리쳤다.“나나 현우 씨나 당신한테 잘못한 거 없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거예요? 우리 아빠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다 해도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우리를 어디까지 몰아붙일 생각이에요?”사람이 죽었으니 빚도 탕감되었고, 그녀도 감옥에 3년 동안 갇혀 있었다. 이미 할 만큼 했는데 평생 그녀를 괴롭히고 놓아주지 않을 필요는 없었다.임재욱의 눈에 유시아가 죽을죄를 지었고 아버지가 진 빚을 대신 갚아야 한다 해도 할 말이 없었지만, 소현우는 억울했다.그는 그저 유시아를 사랑한 죄밖에 없었다. 왜 그 이유로 임재욱에게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소현우가 세현 그룹을 다시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임재욱이 그것을 짓누르려고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행위였다.아마도 유시아의 나약한 모습만 봤어서 그런지 눈앞에서 울부짖는 그녀를 보고 임재욱은 살짝 놀랐다.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는 그의 본능적 분노를 더욱 일으켰다.“소현우가 그렇게 좋아? 이렇게 감싸줄 만큼 좋은 거야?”“그 사람은 내가 교도소에서 나온 뒤 나한테 제일 잘해줬던 사람이에요. 내 목숨을 바쳐서 보호할 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요!”오직 소현우만이 유시아가 감옥살이했다고, 멍청하다고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고, 그녀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나쁜 짓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그는 유시아를 존중하고 아껴주었다. 그녀 때문에 상처를 받고도 이해하고 믿어주려고 했다.그녀를 위해 성대하고 로맨틱한 프러포

  • 사랑이라는 죄로   제132화

    임재욱을 사랑했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휘둘렸지만, 이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앞에서 흠잡을 데 없이 강해진다.한참 지나자 임재욱은 서서히 차분해졌다.“유시아, 그때 네가 했던 모든 게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난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 그저 네가 뻔뻔하게 느껴지고 가증스러울 뿐이야.”그 말에 유시아는 자신의 심장이 활에 맞아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빨간 피가 철철 흐르고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그에게 잘해주고 불만 없이 그의 뒤를 따랐던 것은 유시아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그때는 아마도 어리고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를 귀찮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그와 평생 같이 있는 것이었다.그러나 임재욱은 유시아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했던 모든 것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유시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잘해줘도 감동 한 번 받은 적 없었고 오히려 그녀를 뻔뻔하다고 생각하고 가증스러워하며 그를 위해 했던 모든 것들을 완전히 부정해 버렸다.그 뜨거운 사랑은 그의 눈에 그저 장난에 불과했다.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건 비참하다고 하는 거다.예전에 미친 듯이 사랑하고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에 이젠 힘들고 지쳐서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다니...이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나쁜 남자가 존재한단 말인가?“유시아, 너 정신 차려!”임재욱은 분노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지금의 넌 소현우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너희 두 사람은 잘될 리가 없어.”소현우처럼 성공한 인사는 막론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결혼했었고 감옥도 다녀왔던 여자를 흔쾌히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임재욱은 소현우 어머니의 성격에 대해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그분은 밖에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지만 집에서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소현우가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어머니의 슬기로운 가르침 때

  • 사랑이라는 죄로   제133화

    임재욱이 임씨 가문 본가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기에 주방에서 맛있는 요리 냄새가 풍겼다.거실에는 외국에서 돌아온 임청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들어오는 임재욱을 보더니 눈을 흘기고 내키지 않은 듯 ‘오빠’라고 부르고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임태훈은 임재욱의 뒤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더니 의아해하며 말했다.“유라 데리고 같이 오라고 했잖아. 왜 혼자 왔어?”임씨 가문과 정씨 가문의 혼사는 정유라의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또한 정유라는 성격이 우아하고 시원스럽기 때문에 임태훈의 예쁨을 받았고 그녀를 반드시 임씨 집안 며느리로 들이려고 했다.임재욱은 작은 일인용 소파를 가져다 앉았다. 젊고 준수한 얼굴은 다소 피곤해 보였다.“할아버지 가족끼리 식사하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가족 식사면 식탁에 전부 임씨 성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면 되죠. 왜 정씨 성을 가진 사람까지 부르고 그래요?”임청아는 원래 옆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그를 흘끗 쳐다봤다.“정씨가 아무리 그래도 유씨보다는 낫죠. 적어도 사람이 깨끗하잖아요?”간단한 말 한마디가 임재욱의 화를 돋우었다.그는 고개를 들어 ‘피가 섞인’ 여동생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다시 한번 말해봐.”임청아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임재욱의 이렇게 사나운 모습을 처음 본다. 입술을 앙다물고 눈빛은 마치 그녀를 벨 듯 차갑고 날카로웠다.겁난 나머지 임청아는 임태훈 곁에 다가가 꼭 붙어 있었다.“할아버지, 오빠 좀 봐요.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임태훈은 손녀 임청아를 한번 보더니 말을 살짝 돌려서 했다.“유라는 네 아내가 될 아이인데, 당연히 우리 임씨 가문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그의 눈에 임재욱은 고집 센 아이에 불과해서 많이 가르쳐주어야 했다.“유라는 여자고 넌 남자니까 네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지. 집으로 자주 초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생길

  • 사랑이라는 죄로   제134화

    임태훈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조건을 거는 거냐?”“자격 따위가 왜 필요하죠?”임재욱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이건 거래일 뿐이에요. 할아버지도 좋고 저도 좋으면 되죠. 만약 할아버지가 동의하시지 않으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거고 제가 아무 말도 안 한 걸로 해요.”“대우 그룹은 언젠가는 네 것이 될 거야. 그리고 넌 언젠가는 유라를 처로 맞이해야 하고.”임태훈은 그렇게 말한 뒤 잠시 멈추었다가 이어서 말했다.“네가 요즘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별로야. 내가 이사회에 말해서 당장 멈추도록 하지!”임재욱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왜요?”“그 포로젝트는 세현 그룹의 돈줄만 되어줄 뿐 대우 그룹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별로 없어. 추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임태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재욱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재욱아, 넌 아직 너무 젊어. 언젠가 네가 성숙해져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충동적으로 일으키지 않을 때문 대우 그룹을 넘겨주는 걸 고민해 보도록 할게.”말을 마치고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됐어. 와서 밥 먹어!” 임재욱은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그래서 전 그냥 할아버지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뿐인가요?”임태훈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넌 감옥살이했던 전처 때문에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현우를 상대하고 있잖아. 그런 사람은 내 꼭두각시밖에 되지 못해!”할아버지가 노하자 거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임태훈의 예쁨을 받던 손녀 임청아도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하며 휴대폰을 내려놓고 임재욱을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곧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러 갔다.그러나 임재욱은 여전히 제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정운대학교는 이미 한참 전에 수업이 끝났다.용재휘는 문 앞에서 큰 교실 안에 유시아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디자인이 심플한 흰색 원피스 차림에 창가 자리에

  • 사랑이라는 죄로   제135화

    유시아는 용재휘의 말에 두 볼이 빨개졌다.“뭐... 그렇겠죠...”그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소현우가 전화한 것이었다.“시아야,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몇 분 후, 유시아가 학교 문 앞으로 뛰어가자 키 크고 건장한 남자가 랜드로버 앞에 서 곧게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웃으면서 곧바로 소현우에게 달려갔다.“현우 씨...”그가 너무 바빠서 두 사람은 못 만난 지도 일주일 되었고, 유시아는 혹시나 그가 일하는 데에 방해가 될까 봐 평소에 통화도 짧게 했다.심지어 만약 임재욱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유시아는 소현우와 헤어질 생각도 있었다.소현우의 인생에는 그녀 외에도 중요한 사업이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를 붙잡을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소현우는 손을 뻗어 유시아의 얼굴을 만지며 눈썹을 찌푸렸다.“왜 살 빠졌어?”“지금 다이어트 중이라 그래요!”소현우는 갸름해진 그녀의 턱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요 며칠간 그는 회사의 일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느라 바빠서 같이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초조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며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을 것이다.소현우는 유시아의 얼굴을 꼬집어 보고 돌아서서 차 문을 열었다.“타, 일단 뭐 좀 먹으러 가자!”우아한 분위기의 홍콩식 레스토랑에서.유시아는 숟가락으로 그릇에 들어 있는 국을 저으면서 소현우에게 장 보러 다녀오다가 임재욱을 만났던 일을 말해 주었다.이야기를 끝낸 뒤 그녀는 여전히 걱정했다.“다음에 또 그러면 어떡해요?”유시아도 기사를 통해 이번 일이 해외의 큰 프로젝트랑 관련된 걸 알고 있었다. 세현 그룹을 계속 경쟁 입찰에 참여하면서 많은 준비를 해왔었다. 거의 따낼 수 있는 프로젝트였는데 임재욱이 끼어드는 바람에 위태로워진 것이다.소현우는 유시아의 말을 듣고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비즈니스 업계는 전쟁터와 같아. 임재욱 씨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임재욱 씨가 대우 그룹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것도

  • 사랑이라는 죄로   제136화

    이채련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유시아는 그래도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좋아하는지는 굳이 말이 필요 없이 눈빛과 사소한 동작에서도 보아낼 수 있다.유시아는 소현우가 뒤에서 살짝 찌르는 것을 느끼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두 손으로 건네며 말했다.“어머님, 이건 제가 어머님께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이에요. 어머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고마워요. 뭘 이런 걸 다...”이채련은 선물을 건네받고 바로 포장을 뜯어보았다. 분명 소현우 안목의 브로치였지만 굳이 까발리지 않고 그저 웃었다.“참 예쁘네요, 시아 씨 안목이 좋은가 봐요!”“당연하죠.”소현우는 자신의 여자 친구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시아는 미대생이라 안목이 얼마나 좋다고요...”그렇게 말하면서 유시아의 손을 잡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엄마, 저 시아랑 의논해 봤는데, 시아가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고 싶어요!”유시아가 올 A+의 좋은 성적을 받든, 정운대학교의 졸업증을 받을 수 있든 말든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할 생각이다.이채련은 입술을 앙다물고 기분이 살짝 언짢은 듯했다.“그렇게 빨리?”원래 그녀는 소현우가 마음을 바꾸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소현우와 심하윤은 아직 가능성이 있었다. 두 사람이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집안 배경이 비슷한 아내를 들이면 모를까, 왜 하필 유시아 때문에 죽고 못 사는 것일까?소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인생에 단 한 번뿐인 큰 일인데 일찍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머니 안에 있는 휴대폰이 울렸다.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는 옆방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고 소파에 유시아 혼자만 남게 되었다.소현우가 옆에 없자 유시아는 어쩔 줄 몰라 그저 테이블 위의 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이채련에게 커피를 따라주며 말했다.“어머님, 커피 드세요...”이채련은 예의 있게 고맙다고 말하며 잔을 들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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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5화

    늦은 밤, 유시아의 카카오톡을 받았을 때 임재욱은 병원에 있었다.신시연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고 그동안에 임재욱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늦은 밤의 사립 병원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당직을 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외에 거의 사람이 없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임재욱은 복도를 한참이나 누비다가 의자에 걸터앉았다.유시아를 병원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길에 신시연의 전화를 받고서 오게 된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아프다고.신시연은 며칠 전에 병원에서 여러 번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해외에서 그러한 몹쓸 짓을 당하며 우울증과 부인병이 있는 외에 다른 수치들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그 말인즉슨,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신시연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임재욱 하나뿐이니 어찌 됐든 그녀를 잘 지켜야 하는 마음뿐이었다.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게끔.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여 임재욱은 그녀를 직접 병원까지 데리고 오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확답을 듣고 나야만 마음이 놓일 수 있다.애타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렸다.유시아가 보낸 카카오톡인데,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보고 싶어요.]임재욱은 고개를 숙인 채 카톡 내용을 거듭 곱씹으며 유시아 사진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 올라갔다.‘내가 보고 싶어? 별거한 지 하루 만에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거야?’‘우리 시아 이제 제법 솔직하네.’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어떻게 답장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도우미 김향화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신시연을 부축하고 걸어 나왔다.신시연은 디자인이 아주 심플한 데님 스커트를 입었고 윤기가 별로 없어 보이는 머리를 돌돌 말아 묶어 올렸다.무척이나 초췌해 보이는 것이 가여운 느낌도 물씬 풍기고 있어 기고만장했던 그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4화

    유리 구두를 품속에 꼭 안고 있는 유시아를 보고서 임재욱은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달래기 쉬운 여자라는 것을.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주 살짝만 잘해주어도 유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기뻐하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늘 임재욱 앞에만 서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자기를 낮은 위치에 놓는 데 습관 되어 있다.임재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뽀뽀했다.“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예쁜 유리 구두 선물해 줄게. 어때?”“좋아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아주 유치하게 그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절대 어기지 않겠다고.”백화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일단 화실로 향했다.새로 구매한 공예품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 유시아의 제안으로 이채련의 병원까지 바래다주었다.유시아는 자기가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타입이라 이채련과 이미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 했다.하물며 자식도 없는 이체련에게 마지막 이 시간들이 더더욱 외로울 것이다.외부인들이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외롭다.임재욱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고 이채련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니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보내주었다.차는 곧 사립 병원 앞에 멈춰 섰고 임재욱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유시아는 차창에 대고 거듭 강조했다.“유리 구두랑 드레스들 옷방에 고이 모셔두도록 해요. 마구 놓지 말고요.”“알았어.”임재욱은 말하고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확 잡고서 찐한 키스를 남기고 나서야 순순히 놓아 주었다.“얼른 가 봐.”“조심해서 가요.”임재욱은 조수석에 앉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고서야 시선을 거두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가는 길에 갑자기 신시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병실로 돌아와 보니 이채련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침대에 멍하니 누워 재미가 일도 없는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유시아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채련은 놀라고도 기뻤다.“시아야,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유시아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3화

    쇼핑은 늘 설레는 일이다.유시아는 자기 취향대로 화실 장식품으로 쓰일 공예품을 골랐다.이윽고 임재욱은 또 유시아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지난번에 두 사람은 함께 쇼핑하면서 많은 옷을 샀었지만, 신서현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면서 유시아는 그 모든 옷을 모조리 청소 아주머니에게 줘 버렸다.그때의 아쉬움을 채워주기 위해 임재욱은 또다시 쇼핑하려고 한 것이다.게다가 다음 주면 대우 그룹 상장 20주년이다.정식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유시아를 자기 아내 신분으로 남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이브닝 파티에 어울릴만한 드레스와 신발을 살 예정이다.드레스는 그럭저럭 큰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유시아는 그 신발이 마음에 들었다.은백색의 하이힐로 예쁜 보석들로 가득 박혀 있어 매점 불빛 아래서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신데렐라 동화에 나올 법한 유리 구두 같았다.매점 직원은 유시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다가왔다.“손님 안목이 참 좋으시네요. 이 제품은 저희 디자이너 선생님의 최신 디자인으로 지금 딱 한 켤레만 있습니다. 만약 이 신발을 신고 나가신다면...”임재욱은 갑자기 직원의 말을 끊어버렸다.“이미 결혼했고요. 이 사람은 제 아내예요.”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는데,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를 보고서 따라서 웃었다.“맞아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매점 직원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베스트 쇼핑 가이드다운 실력을 드러냈다.“어머, 어쩐지 너무 어울리신다 했어요...”직원의 칭찬에 두 사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이윽고 매점 직원은 분위기를 파악하며 유리 구두에 대해 더욱 디테일한 설명을 첨부하기 시작했다.“이 제품의 새끼 양가죽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착용감이 엄청 좋으실 거예요. 하루 종일 신고 걸으셔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우리 디자이너 선생님이 즉흥으로 만들어내신 작품이라 절대 똑같은 제품을 시중에서 보실 수 없을 거예요.”한 켤레일 뿐만 아니라 사이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2화

    한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내가 뭐?”“한서준 씨는 당당해요?”유시아는 바로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임씨 가문에 접근한 그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요? 할아버지, 재욱 씨 그리고 나까지 똑똑히 알고 있어요. 청아 씨만이 한서준 씨를 사랑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쭉 모르는 척을 하며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한서준 씨 역시 청아 씨를 이용한 게 아닌가요?”마지막 한 마디에 한서준은 침묵하고 말았다.그렇다. 임청아에게 접근한 이유는 유시아가 ‘스파이’로 움직여 주지 않겠다고 거절했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임씨 가문 천금을 노리게 된 것이다.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변하게 되어 있다.임청아 대한 마음은 모략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이 점점 사랑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띠고 다가왔던 임청아가 어두운 자신의 삶을 밝게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따라서 한서준은 임청아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츰 생기게 된 것이다.임태훈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꼭 자기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청아 씨 지금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에요.”“만약 청아 씨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차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려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택시에 오른 유시아는 긴 망설임 끝에 끝내는 더 스케치 화실 주소를 운전 기사에게 알렸다.차는 화실 맞은 편에 세워졌고 유시아는 화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화실 안의 상황을 바로 체크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많은 경호원들이 임태훈을 사이에 두고 화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임태훈은 벤틀리에 올라 강한 기운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시아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바로 화실로 향해 달려갔다.화실 안과 밖은 겉은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1화

    전화를 마치고 유시아는 혼자 밖에 없는 휴게실을 보고서 깊은 번뇌에 잠겼다.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임태훈처럼 막무가내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인이 있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태훈이 끔찍이 여기는 임청아를 유시아가 계단에서 밀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애꿎은 자기 화실을 닫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집안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스스로 반성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일단 남한테서 문제를 찾고 있으니, 권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했다.유시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고 불안함도 점점 커졌다.지금 운영하고 있는 더 스케치 화실도 용재휘가 먼저 시작한 것인데, 그와 더불어 학생들까지 모두 함께 넘겨주었는데, 만약 이대로 화실을 망쳐버린다면 용재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임재욱과 임태훈이 어느 정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화실이 그들 싸움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일단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그렇게 한참이나 심장을 조이고 있었지만, 걸려 오는 전화는 없었다.유시아는 일이 어느 정도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 채팅방에 오늘 갑자기 일이 있다며 수업을 뒤로 미룬다고 알렸다.언제 다시 수업을 시작할지는 소식을 기다리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톡을 보내고서 유시아는 더 이상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바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병원 대문을 나오자마자 한서준이 정면에서 오고 있었다.“유시아.”유시아는 고개를 들었고 그를 보게 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 났다.직감이 알려주건대, 절대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화실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한서준은 쉽사리 유시아를 놓아 주지 않았고 손을 내밀어 유시아의 손목을 꼭 잡았다.“물어볼 일이 있어.”말하면서 근처에 있는 지프차를 가리켰다.“차에 타서 얘기 하자.”“그쪽이랑 할 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0화

    유시아는 그 말을 이어받지 않고 집사의 바람대로 타이르기 시작했다.“몸이 아직 많이 허약해요.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하거든요. 일이 어찌 됐든 일단 건강부터 챙겨야 해요.”임청아 그 말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건강 회복되면 할아버지한테 잡혀가서 집에 감금되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유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어찌 됐든 할아버지 마음은 한결같을 거예요. 청아 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요. 서로 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 터놓고 얘기하고 나면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임청아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아이 낳고 나면 할아버지도 서준이도 원한을 내려놓고 행복만 할 수 있다고요.”“근데 이렇게 몸도 아끼지 않고 점점 더 막무가내로 나가면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은 점점 더 짙어질 거예요.”유시아는 말하면서 도우미 손에서 보신탕을 가져와 천천히 불며 임청아의 입가로 가져갔다.임청아는 생각 밖으로 무척이나 순순하게 유시아의 말을 따랐고 그녀의 말에 이치가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보신탕을 받아 마셨다.도우미와 집사는 두 사람이 티키타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임청아가 뭐라도 먹기 시작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시름을 놓으며 자리까지 비켜주려고 했다.두 사람이 마음 편히 말할 수 없을까 봐 눈치껏 일어서려는 것이다.“작은 사모님, 아가씨와 천천히 얘기하고 계세요. 밖에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네, 가보세요.”도우미 일행이 나오고 나서야 유시아는 본론으로 들어갔다.“한서준 씨는 알고 있어요?”임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런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잖아요.”요즘 임태훈뿐만 아니라 한서준도 눈을 부라리고 임청아를 찾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자 아파트도 호텔도 들어갈 수 없었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유시아 화실에 몸을 숨기고 지낸 것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9화

    임청아 이름 석 자가 임재욱의 입에서 나오자, 유시아는 순간 청천벽력을 맞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청아 씨가 왜 병원에 있는 거죠?”임청아는 임신한 것을 알고 매사에 조심하며 걸음 하나도 천천히 옮겼었다.게다가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여 해외로 떠날 준비까지 마쳤다고 했었다.그런데 관건이 되는 순간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할아버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야?”임재욱은 말하면서 차갑게 웃었다.“네 화실에 청아 숨겨 놓았잖아. 할아버지께서 그걸 과연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오늘 화실로 청아 데리러 갔었는데, 가지 않겠다고 청아가 하도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묶어서라도 데리고 가겠다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그렇다면 아이를 유산했을지도 모른다.임태훈의 습관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이 화살은 결국 유시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임재욱이 그렇게 경고하였건만 유시아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약해지는 마음에 언젠가는 구렁이에 빠지게 될 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 일 줄은 몰랐다. 임재욱은 한숨을 내쉬며 꾸짖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병원 주소 보내줄 테니 얼른 가 봐.”말을 마치고 임재욱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고 운전 기사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같은 시각, 병원 안에서.임청아는 이미 수술을 마쳤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이미 가문의 집사와 간호인이 옆에 있었고 병실 문 앞에는 임태훈이 보낸 경호원도 있었다.다만 경호원이 경계해야 할 상대는 유시아가 아니라 한서준이다.따라서 유시아는 별다른 막힘없이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상에 누워 있는 임청아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고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에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집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주 공손하게 유시아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8화

    조금 전까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던 임재욱은 멈칫거리고 말았다.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별거하자는 뜻이야?”“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유시아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머리가 아픈 듯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으로 시연이한테 집중해도 되잖아요. 나도 마침 어머님 곁에 좀 있어드리고... 서로에게 지금 이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낙담한 모습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 거겠지. 그렇게 하자.”말을 마치고 그는 계속 밥을 먹었다.유시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서 아련하게 웃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튿날 아침, 유시아는 임재욱이 출근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상복 몇 벌과 일상용품을 챙겨 작은 트렁크 안에 놓고 바로 이채련한테 가려고 했다.허씨 아주머니는 트렁크를 들고 내려오는 유시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사모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설마... 가출하려는 건 아니죠?”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를 향해 웃었다.“아니에요. 친척분이 좀 위독하신데 제가 옆에서 좀 챙겨드리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고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트렁크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이채련이 지내고 있는 병실이 VIP 병실로 널찍한 객실까지 갖춰져 있다.유시아는 간호사에게 접이식 침대와 이불을 요구했고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잘 자리가 아늑하게 마련되었다.이채련은 더 이상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하루 24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얼굴도 하도 여위어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그전에도 유시아는 이채련에게 이곳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만 이채련은 행여나 자기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흠이 생기게 될까 봐 동의하지 않았었다.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갖은 풍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7화

    임재욱은 핸들을 꼭 움켜쥐고서 앞만 바라보았으나 두 눈에는 고통과 망연함이 가득했다.“시연이 해외에 있을 때, 몹쓸 짓을 당했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거야.”유시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볼륨까지 높아졌다.“어머, 어떡해요!”평소에 신시연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다.여자에게 있어서 그런 몹쓸 짓을 당한다는 건 치명적인 타격과 치욕이 아닐 수가 없다.게다가 부모님의 일까지 더해지니 조금 전 식당에서 봤던 신시연의 모습이 이해되었다.임재욱은 말하면서 후회와 자책하는 빛을 드러냈다.“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는 시연이를 내가 억지로 보낸 거야.”그때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낯선 곳으로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업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삶을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임재욱이 잊고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신시연이 이제 갓 20살을 넘은 꽃다운 여자아이라는 것이다.해외에는 불안정 요소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하는 위험도 많다.게다가 젊은 나이라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길로 들어서기도 아주 위험하고 말이다.신시연 곁에 사람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24시간 동안 찰싹 달라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유시아와 결혼하고 나서 신혼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신시연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지금 임재욱은 신서현에게 미안할 뿐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하지만 그가 말한 본의와 달리 듣고 있는 유시아는 또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유시아의 기억으로는 신시연이 해외로 보내진 이유는 이러하다.그때 신시연은 정운시 대학교 교내 사이트에 유시아를 먹칠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유시아로 하여금 학업을 이어갈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없게 악한 상황을 만들었었다.마침 그 일을 소현우가 알게 되면서 유시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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