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청여는 벼락 맞은 것 같이 충격을 받았다. 전소환이 계속해서 염치없는 행동을 반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에는 평양후까지 건드리다니..그리고 중요한 것은 평양후가 단순히 잡아준 것이 아니라, 허리를 감싸안았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평양후는 남자 손님이었기에, 전소환이 조금 전 정원에서 벌였던 소동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저 이마에 상처를 입은 채 곧 기절할 것 같은 여인이 쓰러지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것이었다. 머리보다 행동이 빨랐기에 결국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를 품에 안게 된 것이다.모두가 휘둥그레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 송석석이 말했다. “여봐라, 소환 아가씨께서 몸이 불편하시니 집으로 돌려보내거라.” 평양후부의 노부인은 송석석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전소환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상황을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양 마마와 부인 2명이 급히 들어왔다. 그들은 전소환의 팔을 양측에서 부축했다. 실상은 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정신을 못 차리던 전소환은 막 끌려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몸부림치며 가의 군주를 향해 울부짖었다. “군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제발 저를 도와주시옵소서..!”그녀의 말에 장내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북명왕을 노린 거야, 아니면 평양후를 노린 거야?” “가의 군주가 돕겠다고 했으니 평양후를 노린 걸 수도 있겠군. 듣기로는 평양후의 첩이 노부인의 친척 조카딸이라는데 그 여인이 장남과 장녀를 낳았는데 지금 또 임신 중이라 하더군. 평양후에게 또 첩을 맞이하게 하려는 건가?” “허나 이건 너무 비열하지 않나? 자신이 군주이니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하면 될 텐데 말이야.” “자네들은 평양후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게로군. 이미 친정으로 돌아가 숨어 지낸 지 꽤 되었고, 직접 돌아가기가 꺼려져서 이런 일을 벌였을 것이네.”저저마다 의견이 분분했고 평양후는 이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가의 군주는 분노로
손님들을 접대하는 와중에도 송석석은 시만자에게 사람들을 감시하게 했다. 특히 속셈이 있는 아가씨들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했다.시만자는 장공주와 두 여자가 자주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발견하고 양 마마에게 그들의 신분을 물었다. 양 마마는 안으로 들어가 그들에 대해 알아본 후 시만자에게 와서 말했다. “그 두 아가씨 중, 황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영태비의 친척 아가씨로, 이름은 모른다. 보랏빛 옷을 입은 아가씨는 의귀비의 친척 아가씨로, 이름은 위여은이라 합니다. 미모와 재주가 뛰어나 모두가 그녀를 제황후와 비교하곤 하지요. 제황후의 아우라는 당시 진성에서 제일 으뜸이었으니깐요.”이를 기억해 둔 시만자는 송석석이 나오자마자 두 사람의 신분을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송석석은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비든 의귀비든 모두 장공주와 연왕과 관련이 있었기에 그들은 북명왕부에 자신들의 사람을 심으려 했다.그 중 전소환은 단지 그들이 데려온 앞잡이일 뿐이었다. 송석석은 연왕을 연주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를 진성으로 불러들여 눈앞에 두고 감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고모의 원수를 갚아야 할 때가 왔다.연회가 끝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의 손을 잡고 함께 귀빈들을 배웅했다. 준수한 외모에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왕예와 아름다운 왕비,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선남선녀요, 천생연분이 아닌가?손님들은 부병의 지시에 따라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밀치거나 붐비는 일은 조금도 없었다. 같은 마차에 탄 장공주와 가의 군주는 떠나기 전 송석석이 화답의 의미로 건넨 선물을 열어보았다. 송석석은 한 사람당 하나의 선물을 준비했고 각각 다른 내용물이 담겨있었다.가의 군주에게 선물한 것은 장수 노인의 조각상이였는데, 가의 군주는 화들짝 놀라 그것을 한쪽에 던져버렸다. “이게 뭐야?” 그러고 나서 장공주의 것을 열어보았는데 도덕 노인의 조각상이 들어 있었다. 가의 군주
그 계집애를 생각하니 왕청여는 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친척 조카로, 남편의 첩이 된 후 돼지마냥 아들과 딸을 쑥쑥 낳았고, 심지어 지금도 임신 중이었다. 곧 출산 예정이라 지금 돌아가면 고통만 더할 게 분명했지만 어머니께서 명령을 내리셨으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친정으로 가겠다고 위풍당당하게 나왔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혼자 돌아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전소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아들과 딸을 낳고도 또다시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 계집을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전소환이 상대하게 한다면 자신은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소환이 미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얀 것! 모두가 교얀 것들이다!’가의군주는 결국 그렇게 돌을 들어 자신의 발을 찍은 격이 되었다.반면, 눈을 감고 있는 장공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왕이 시씨 가문의 여인을 후처로 맞이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연왕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해진 혼사였다. 시씨 가문은 권력과 병무와 무기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맞이하려는 시씨 가문의 그 여인이 가문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마침, 평서백 왕표의 딸도 이제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으니 만약 연왕의 장남인 사여령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왕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왕표는 현재 북명군과 송가군을 지휘하고 있으니 말이다.또한 옥영과 옥경 두 현주의 혼사도 진성의 공신 가문과 연결시키면 된다. 그러면 혼인을 통해서라도 중요한 인물들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 이제는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가의 군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워야 했다.손님들이 떠나면서 떠들썩하던 북명왕부는 다시 고요해졌다.하인들은 뒷정리했고, 송석석은 혜태비를 방으로 모셨다. 오늘 너무
고집을 부리던 사여묵은 어머니를 가볍게 밀어내고 한 손으로 송석석의 손을 낚아챘다.“방금 당신이 내게 측실을 들이겠다는 말을 들었소. 이리 오시오. 아주 단단히 혼쭐을 내줄테니!” 말을 마친 그는 송석석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혜태비는 화들짝 놀랐다.그저 한 번 언급한 것 뿐인데 저렇게 날뛰니 단단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유모, 어서 따라가 보거라!” 혜태비는 마음이 급했다. “정말로 때리기라도 한다면 난 언니에게 뭐라고 하냔 말이다. 석석이를 가장 아낄텐데…” 그러자 고 씨 유모가 한숨을 쉬었다.“제가 어떻게 감히 따라가겠습니까? 태비께서도 장공주와 덕귀 태비의 말을 들으시고 장군께 측실을 맞이하게 하려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노비인 제가 따라가기라도 한다면 장군을 더욱 화나게 할 것입니다. 보아하니 왕비께서 맷집이 좋은 것 같사오니 부디 염려하지…” “어리석다! 아내는 때리려고 맞이하는 거라고 누가 그러더냐? 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가겠다.” 그러자 고 씨 유모가 급히 그녀를 막아섰다.“알겠사옵니다. 장군께서는 염 선생의 말을 잘 들으시니 노비가 염 선생을 모셔 오겠습니다.” “어서 서두르거라!” 마음이 급했던 혜태비는 책상까지 두드리며 재촉했다. 아름다운 송석석의 얼굴에 상처가 하나라도 난다면... 혜태비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송석석을 끌고 태비의 앞마당을 벗어난 사여묵은 바로 그녀를 들쳐멨다.순간, 송석석은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혜태비는 하늘과 땅이 맞붙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맙소사, 정말로 때리는 것인가? 두려운 마음에 계속속 고 씨 유모를 밀며 재촉했다. “아직도 가지 않고 뭐 하느냐? 당장 움직여라!” 고 씨 유모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으나, 그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뜰 안을 한 바퀴나 돌았다. 비록 태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장군은 일부러 그렇게 화를 낸 것이었다. 이는 태비에게 측실 이야기를 집안에서 꺼내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왕비가
오늘 하루 너무 바쁘게 움직였고 날씨도 더웠기에 샤워를 꼭 해야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그녀의 귀가에 속삭였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딱 좋군, 함께 씻으면 되겠소.” 송석석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약간 의아해했다. “매일 밤 사랑을 나누는데 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까요?”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단 뜻이오?” 그녀를 안은 사여묵은 욕실로 성큼성큼 들어가 갑자기 그녀의 겉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두 분이 혼인하시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임신하셨다고 하셨거든요.” “나는 굳이 아이를 빨리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보오.” 사여묵은 드디어 그녀의 매혹적인 어깨선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단신의에게 약을 부탁했소. 당신도 전장에서 부상을 입었으니 충분히 회복된 후에 다시 얘기하기오.”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피임약을 먹고 있단 말입니까? 그 약은 몸에 해롭다고 들었습니다만.” “여자도 먹을 수 있는 걸 남자가 못 먹는단 법은 없소.” 사여묵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당신은 몸도 안 좋은데 임신하지 못하게 하려고 피임약을 먹일 수는 없소. 단신의께서도 여자는 기와 혈을 기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셨소. 만약 당신에게만 피임하도록 한다면 그동안 기른 것들이 모두 허사가 될뿐만 아니라 몸에도 해가 될 것이오.” 송석석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여묵의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피임약을 자처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정실부인이 피임약을 먹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현면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받고 남편에게도 미움을 받을 것이다. 정실부인이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낳았기에 어머니가 복 받은 사람이며 다들 부러워했다. 여섯, 일곱이나 자식을 낳는 여인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자란 것은 하늘의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잔뜩 풀이 죽은 왕청여와 전소환은 장군부로 향했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왕청여가 그동안 참아온 화를 푸는 듯 온 힘을 다해 전소환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너무나도 거친 행동이라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장군부에 어찌 너같은 천한 년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오늘 밤, 너는 장군부의 가풍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당장 어머니께 가서 벌을 받거라.”전소환은 소망하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후에게 순결마저 빼앗겼다. 이제는 사람의 탈을 쓴 자이면 모두 그녀를 괴롭히려 드는 것 같았다.그렇게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어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그것도 모자라 막 집에 들어서자마자 왕청여에게 뺨까지 맞았으니 고삐가 완전히 풀려버린 것이다. 전소환도 왕청여의 뺨을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누구를 천하다고 말하는 거야? 너는 고상한 줄 알아? 너무 천박해서 내 오라버니와 결혼한 거 아니야! 고상한 네가 오늘 밤 생일 연회에는 왜 갔지? 남을 비웃으려다 도리어 된통 당했으니 꼴 좋네.”왕청여는 그녀가 큰 일을 저질렀으니 자신에게 손을 대리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왕청여는 뺨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전소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자, 어머니께 이 일을 고해야 한다.”전소환은 힘껏 그녀를 밀쳐버리고는 차갑게 말했다. “오늘 밤 일을 내가 감히 어머니 허락 없이 움직였을까?”바닥에 주저앉은 왕청여의 얼굴에 충격이 가득했다. “뭐라고? 어머니가 아신다고? 네가 북명왕을 넘보려 했다는 것을 어머니께서 아신단 말이야?”전소환은 되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왕청여를 바라보았다.“곁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던 거야?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데! 모두 너희 부부를 위해서잖아! 오라버니가 너 때문에 한 사람의 손발을 부러뜨려 지위가 강등되어서 앞날을 걱정하시던 어머니가 결국 허락하셨던 거야.”그녀는 점점 더 서럽게 울부짖었다. 그 모습은
그러자 전소환은 억울한 듯 전북망을 향해 소리쳤다. "오라버니,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오라버니께서 강등되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찌 이런 일을 하였겠습니까?"하지만 전북망은 엄하게 몰아붙였다."내 앞날을 왜 감히 네가 계획하느냐? 나는 스스로 노력하여 나아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너 자신을 위함이고 사여묵을 마음에 둔 거겠지. 그자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 것이기게에 다들 앞다투어 달려드는 것이냐!"의로운척하려던 전소환은 전북망에게 속내를 들켜버리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전소환은 전북망이 자신이 사모하는 이를 비난하려 하자 즉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당연히 오라버니보다 훨씬 낫지요! 송석석조차 오라버니와 이혼하고 바로 북명왕에게 시집간 것만 봐도 오라버니보다 훨씬 나음을 알 수 있지요. 게다가 이 진성의 귀한 집 여식들 중 어느 누가 북명왕비가 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그러자 전북망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북명왕비가 되고자 하나, 북명왕에게는 이미 정실부인이 있느니라. 네 꿈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전소환이 울먹이며 외쳤다. "제가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처음에는 첩이 되더라도 왕의 총애만 받으면 언젠가는 송석석을 대신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다들 송석석이 밉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기어코 이혼을 청하였고 그로 인해 장군부의 체면을 여지없이 떨어뜨렸지요. 저도 사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장군부를 위해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그만!" 남매의 다툼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노부인이 외쳤다. "모두 입 닥치거라!"노부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전소환을 바라보았다. "네가 말해보거라. 평양후가 네 몸에 손을 댔다고 하였느냐?"전소환은 여전히 울먹거렸다. "저의 허리도 감싸안았습니다. 다행히도 이내 풀었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본 상태였습니다.”노부인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모든 이가 지켜보았단 말이지? 평양후부 또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로서 진성에서 다섯 손가락
전소환은 얼굴을 감싼 채 노부인의 품에 파고들어 울먹거렸다. "어머니, 오라버니가 저를 때렸습니다."그러자 노부인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잔뜩 실망한 눈빛으로 전북망을 바라보았다."소환이를 위해 그저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너는 대뜸 손찌검을 하는구나. 이러면 소환이 마음이 다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런 일을 벌인 시작이 너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여도, 결국 너도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전북망은 화가 났다."제가 그녀를 때린 것은 형수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그의 말에 왕청여는 오히려 깊이 감동 받았다. 고생스러웠던 모든 것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청여를 한 번 째려보던 노부인이 다시 말했다. "됐다. 너희들은 모두 물러가거라. 나는 청여와 조용히 이야기해야겠다."전북망은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음이 여전히 너무 답답했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화가 가시지 않은 그의 모습에 왕청여는 곧바로 따라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 밤 저를 지켜주셨으니, 저도 장군을 꼭 지켜드리겠습니다."순간 전북망의 몸이 굳어졌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울적해졌다. 사실, 그가 전소환을 때린 것은 왕청여를 위해서가 아닌, 전소환이 송석석을 '몸쓸 년'이라고 했기에 그 말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그만 이성을 잃고 전소환의 뺨을 때렸던 것이다. 그가 말했던 "그녀에게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속 그녀는 바로 송석석이었다.사람은 뭔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는 이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송석석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 죄책감일 수도 혹은 미련일 수도 있었다.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송석석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러지 않고서야 곧바로 궁에 들어가 이혼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내 앞날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나는 스스로 개척해나갈 것이다." 그는 왕청여의 손을 뿌리
향병의 행동에 장공주는 결심을 더욱 굳히고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겉옷을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내일 오후에 다시 협상을 재개할 것이니, 조건은 협상 가능하도록 하지요. 너무 고집부릴 필요는 없습니다.”수란석은 눈을 크게 뜨며 반발했다. “협상이라? 어떻게 협상한단 말이오? 설마 그들이 국경을 물러서라고 해도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란 말이오?”장공주는 이미 결심이 선 듯 단호하게 말했다. “국경 문제는 일단 보류할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협정을 체결하고 즉시 귀국하는 것이 목표지요.”“그건 안 되오…” 수란석이 강하게 반발하자 장공주는 그를 냉랭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결정이니 불만이 있어도 모두 삼가세요.”수란석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는 소리쳤다. “이건 독단이오! 국경 문제를 보류하면 황제와 조정의 문무백관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장공주는 위엄 있는 눈빛으로 그를 단숨에 제압했다. “설명은 내가 하면 되지 수 상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조정을 오랜 시간 이끌어온 인물로서 항상 권위와 기세가 넘쳤다. “당장 나가서 초안을 다시 작성하고 상국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국경 문제는 제외하십시오. 그리고 2년 후에 이 문제로 다시 협상하는 것으로 하지요. 나는 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수란석은 이를 악물며 불만을 드러냈다. “나약하오, 정말 나약하오!” 그는 장공주가 서둘러 귀국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향병을 원망했다. “난 동의할 수 없소. 국경 문제는 분명히 해야 하오.”장공주는 화가 나 향로를 내던지며 강하게 명령했다. “당장 나가서 다시 작성하십시오.”한편, 북명황실의 의논 자리에서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단신의는 정좌에 앉았고 무소위조차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만종문의 구성원들은 세력을 등에 업고 몸을 꼿꼿이 세우며 잘난 척했다.그러자 단신의가 설명했다. “이번에 사용된
향병은 뺨을 맞은 얼굴을 가린채 억울함과 분노를 모두 토해냈다. “장공주님. 태자 전하께서 얼마나 비참하게 사망하셨는지 잊으셨습니까? 그건 우리 서경 백성들의 영원한 고통인데 어찌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태자 전하는 장공주님의 친동생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진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장공주가 움켜쥔 손바닥은 젖어 있었고 불빛에 비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그를 위해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장공주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빛에 노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아직 허약하지만 손을 뻗어 향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향병,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 모든 계획과 절차를 너에게 말했고, 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복수에 눈이 멀어 정세를 조금도 파악하지 않다니. 넌 경역에게 충성을 다했으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거라. 그가 지금 상국과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겠느냐?” 그러자 향병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내우외환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식량 30만 석과 소성을 요구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장공주님, 저희는 지금 승리로 하늘에 계신 태자를 위로해야 합니다.” 장공주는 오열하는 향병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침통함을 느꼈다.그녀는 안운여와 곽아정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도 향병의 말에 동의하느냐? 뒤에서 나를 모해할 생각 하지 말고 이 참에 다 말하거라.” 곽아정과 안운여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공주님,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향병은 고개를 돌려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안운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운여, 너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넌 전하의 보살핌을 잊었느냐? 복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니.”
단신의는 독충을 가져가지 않고 향로 안에 남겨두었는데 독충은 약의 피비린내를 탐내 평생 안에 있을 수 있지만 몸에서 꺼낸 독충은 오래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단신의가 말했다. “바로 향로 안에 있으니 가져가서 장공주께 보여드리거라.” 독충은 작지만 무서운 존재라 금태의는 손을 뻗었다가 허공에서 멈추고 물었다. “이 독충이 다시 인체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평무종은 금태의가 감히 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 향로를 들고 뚜껑을 열어 장공주에게 가져가 보여주었다. 독충을 본 장공주는 헛구역질을 하며 토할 뻔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야 토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반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독충은 죽을 것이오. 독충이 몸에서 나오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소.” 그러자 장공주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러니 결국엔 누군가가 독을 탔다는 것이겠지?” 수란석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물었다. “자백할지 본관이 직접 조사할 때까지 기다릴지 결정하거라.” 장공주는 답답한 가슴을 누르며 힘없이 말했다. “작은 외삼촌, 먼저 나가십시오. 향병, 운여, 곽아정만 남고 모두 나가거라.” 그러자 수란석이 말했다. “냉옥아, 무리하지 말고 독을 탄 사람부터 밝혀내거라. 감히 네 목숨을 해치려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지.”그러자 냉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먼저 나가십시오. 채희야, 사람들을 배웅해드리거라.” 채희가 그들에게 나가라고 청하자 수란석는 채희를 보고 다시 향병을 보더니 역시 향병의 혐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 물어보고 못 찾으면 내가 직접 심문하러 가겠다.” 수란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장공주는 채희에게 등잔을 두 개 더 켜라고 분부했다. 등불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자 방금 이상할 정도로 붉었던 윤기는 물러가고 눈엔 피로밖에 남지 않았다. 장공주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았다
총 네 마리의 선충이 있었는데 마지막 두 마리의 선은 색깔이 조금 달랐다. 피를 빨아서인지 앞부분은 붉은색을 띠었고, 뒷부분은 옅은 붉은색이었다. 이때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네 마리의 선충이 모두 피를 빨아들였다면 장공주는 살 수 없었을 것이오.” 그가 향로를 한쪽에 놓자 사람들은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섰다. 그들은 본 적이 없는 선충에 겁을 잔뜩 먹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로 바라보더니 구역질이 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향병은 놀라서 거의 서 있지 못하고 한 손으로 탁자를 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장공주가 깨어날 것이오. 금태의, 당신은 지금 가서 자공주가 아직 혈맥이 막혔는지 맥을 짚어보오.” 수란석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금태의를 밀며 말했다. “가서 맥 짚어보거라.” 금태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맥을 짚어보더니 한참 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럴 수가? 맥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독충이 이렇게 많이 나온 걸 보면 변한 게 당연합니다.” 안운여는 침대 옆에 앉아 채희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분부하고는 잠시 후 장공주가 깨어나면 따뜻한 물을 먹이라고 했다. 그러자 단신의가 말했다. “장공주에게 설탕 소금물을 준비하오.”그의 약상자에는 약이 아주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장공주가 복용하기에 적합했지만, 장공주가 깨어나기 전에는 주지 않을 것이었다. 장공주가 깨어나 그에게 치료를 부탁해야만 약을 처방할 것이었다. 채희는 서둘러 설탕 소금물을 준비했고, 당황한 나머지 발걸음이 흐트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송석석이 부축하고 나서야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 채희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처음에 그들이 기회를 틈 타 소란을 일으킬까 봐 화장실에서 장공주의 일을 북명왕비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들이 침입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수란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일은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도 향병의 문제를 발견했지만 향병이 무슨 짓을 했든 장공주가 협상에 참여할 수만 없다면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에게는 전제가 있었는데 바로 냉옥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왜냐하면 냉옥은 그의 조카딸이기 때문이었다. 경역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냉옥은 그가 전쟁을 벌이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숨만큼은 보호해야 했다.그가 이상한 건 냉옥의 심복이었던 향병이 왜 그녀를 배신했냐는 것이었다.‘혹시 전쟁을 지지하게 된 건가? 하지만 처음엔 분명 반대했는데. 냉옥을 죽게 하기는 싫고 여기서 포기하는 것도 싫은 것인가? 이건 그녀 혼자 한 일이 아닐 것이야. 그녀에게 냉옥을 배신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있을 텐데 누구일까? 설마 황제는 아니겠지?’많은 의혹이 수란석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는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그는 회왕과 결탁했기 때문에 향병에게 문제가 있다고 추측한 것이었다. 향병이 줄곧 냉옥의 충실한 심복이었으니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수란석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평무종이 향병에게 말했다.“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독이 있으면 우리도 함께 중독될 것이다.”그러자 향병이 반박했다.“당신들이 독을 탔는데 무슨 해독제가 없습니까?”그러자 평무종이 물었다.“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 상국 진성에서 당신들을 독살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냐는 말이다.”사신들도 상국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모두 금태의를 바라보았다. 금태의만 동의한다면 그들도 믿고 향을 피울 것이었다.금태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묘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본 적도 없고 해독법도 몰랐다. 그리고 장공주가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작은 것이 장공주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그들이 모두 말하지 않자 단신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공주가
사신들은 금태의를 보고, 다시 단신의를 보더니 마음이 금태의에게로 기울은 듯했다. 단신의의 의술도 뛰어나 서경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금태의는 장공주를 오랫동안 치료해 온 태의인 데다가 지극히 충성적이라 자연스럽게 그를 믿는 것 같았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번역하자 단신의는 맥을 짚던 손을 떼고 평무종이게 말했다. “중독된 것이라고 알리거라.” “우리도 다 알아들으니 굳이 번역할 필요 없습니다.” 이때 고공이 급히 물었다. “장공주님께서 무슨 독에 중독된 것입니까?” 그러자 단신의는 송석석을 보았는데 송석석도 비주의 사건이 생각난듯 했다.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되었던 나약했던 부인이 힘이 세지고 발광했던 사건을 말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점은 그 부인은 성공적으로 조종되었고, 장공주는 혼수상태에 빠져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금태의는 여전히 자신의 견해를 주장했다. “장공주는 원래 몸이 허약한 데다 두통 고질병까지 있습니다. 혈기와 혈맥이 막히고 두통이 심한 것으로 보아 머리에 혹이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단신의에게 전하자 단신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릿속에 혹이 난 건 아니지만 혈맥이 막힌 것은 맞소. 그건 장공주의 머릿속에 독충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인데 내가 중독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건 독충도 독이지만 사람에게 중독되었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소. 독충은 중독자의 심신을 방해해서 두통을 악화시킬 뿐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소.” “그럴 리가 없습니다…!” 향병은 손수건을 집어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단신의를 노려보며 상국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독충은 무슨,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장공주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니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그저 돌팔이 의사인 것 같은데 감히 신의라고 자칭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군요.” 단신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봐 온 덕분에 한눈에 향병이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향병은 침실로 들어가 장공주의 커튼이 걷어진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안운여를 꾸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외간 남자에게 장공주가 자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 그녀는 앞으로 가서 커튼을 내리고 단신의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안운여에게 가로막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진단해 봅시다.” “안운여! 너 너무 건방진 것 아니냐?” 향병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노호했다. 안운여는 출신이 좋지 않은 데다 관직도 그녀보다 높지 않아 잠깐 망설이다가 확고하게 말했다. “장공주님의 옥체보다 더 종요한 건 없습니다. 장공주님께서는 이미 두 시간이 넘도록 혼미했으니 당장이라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옥체에 큰 해가 될 것입니다.” 여관인 곽아정도 안운여를 지지했다. “온 김에 진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인데 넌 왜 계속 반대를 하는 것이냐? 내가 보기엔 넌 장공주를 걱정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자 향병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내가 장공주를 걱정하지 않는다니? 상국인들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잊었어? 그들이 마을 백성들을 학살한 일을 잊었냔 말이야!” 평무종은 그들의 대화를 듣더니 즉시 서경어로 반격했다. “백성들을 학살한 것은 바로 이방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상국인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 서경의 정찰이 송 씨 가문을 도륙했는데, 그럼 모든 서경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냐?” 대학사 고공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말했다. “장공주의 옥체가 중요하니 다들 그만합시다. 금 태의도 장공주가 왜 혼미에 빠졌는지 알아내지 못했으니 단신의에게 진단을 받아봅시다.” 그러자 홍려사경도 말했다. “그래, 그래. 이왕 들어왔으니 맥을 짚어 일단 중독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 이때 금태의가 말했다. “장공주님께선 중독되지 않으셨습니다.” 향병은 단신의의 얼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금 태의의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한편, 송석석과 시만자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향병은 비록 중요한 여관은 아니었지만 장공주의 믿음을 얻었고 방금도 그녀가 극구 반대를 해서 원래 지지하던 사람들까지도 따라서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홍려사경을 비롯한 두 세 사람은 여전히 상국의 단신의를 청하는 것을 지지했다. 단신의의 명성은 서경에까지 퍼졌다. 애초에 선제의 병이 위독했을 때 조정의 신하도 단신의에게 치료를 청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선제는 스스로 상국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기 싫다며 결국엔 포기했다. 그들은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는데 송석석과 평무종은 상황을 보더니 단신의를 모시고 곧장 동원으로 달려갔다. “막아라!!” 향병이 소리쳤다. “저기요,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시만자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향병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우리도 장공주님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장공주님의 시녀가 옆에 있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몽동이도 수란석을 가로막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맥만 짚어보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른 들어가서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태의는 진작에 뛰어 들어갔다. 비록 장공주의 곁에는 두 명의 의사가 간호하고 있었지만 상국의 사람이 들어가자 태의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바로 따라 들어갔다. “놔, 이거 놔주십시오.” 향병은 시만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입니까? 날 해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시만자는 그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런 게 아닙니다. 들어가려는 거면 같이 들어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몽동이도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다 같이 들어갑시다! 모두들 장공주의 건강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같이 들어갑시다.” 경위들도 송 대인이 손찌검을 하지 말라고 분부해서 밀치락달치락 하며 공격을 어깨로 되받아 칠 수밖에 없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혼란스러웠지만 몽동이가 수란석을 잡고 있기 때문에 시만자는 힘껏 향병의 손을 잡고 동원 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평무종이 회동관 입구에 나타났는데, 혼자 온 게 아닌 것 같았다.방금 송석석이 그녀를 보았을 땐 야행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야행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저, 무슨 상황입니까?”송석석은 얼른 마중 나가서 물었다.그러자 평무종이 답했다.“내가 장공주 방의 옥상에서 잠깐 들었는데 장공주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시녀 몇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장공주가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사람까지 물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더군.”시만자는 의아해서 물었다.“미친 듯이 사람을 물었다고요? 설마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요?”이때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혹시 정원에서 들었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던가요?”“그들이 정원에서 다투고 있었는데 태의나 단백부를 모시러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난 옥상에서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고 지지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그럼 신의를 모시러 간다는 의견에 반대하던 사람 중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까?”“있었다.”평무종이 몽동이를 만났을 때 이미 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향병은 아니었다.”“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습니까?”“서너 명인 것 같았는데 그들도 침착하게 분석할 뿐이지, 무작정 반대했던 건 아니다. 유독 한 여자의 반대가 심했는데 그녀는 우리 상국의 태의와 의사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어의보다 못하며 가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그러니까 그녀를 따라 반대하던 사람들은 장공주가 자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 책임을 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군요.”평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럼 쳐들어갑시다!”이때 몽동이가 걱정하며 말했다. “왕야님께 알려서 결정지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아니, 이건 내 개인적인 결정이지 왕야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송석석은 밤을 지키고 있는 경위를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