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선이 전소환에게 집중되었다. 전소환은 무릎이 까지고 이마가 찢어져 있었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하지만 아픔 따위는 그녀에게 그리 중요치 않았다. 꿈에 그리던 그 사람에게 닿을 뻔 했는데 실패한게 더 중요했다. 사여묵이 비록 무장이지만 여색을 좋아하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쓰러지려는 여자를 무의식적으로라도 붙잡아줄 것이라고 전소환은 굳게 믿었다.그녀가 성공할 것이라 믿었던 그 순간, 마치 무언가에 의해 앞으로 끌어당겨진 듯, 그녀는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사여묵은 어느새 저만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빨라서, 마치 전혀 움직인 것 같지 않았다.아픔을 참으며 고개를 들은 전소환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곧이어 그녀가 마주한 시선들은 하나같이 한기를 내뿜고 있어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시녀들이 그녀를 일으켰지만 그녀는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시녀의 몸에 기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가의 군주를 바라보았지만, 가의 군주는 저 멀리서 그녀를 쳐다보기만 할 뿐 조금도 도와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모두의 눈빛에는 조롱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이제야 알아보겠네, 그 여인은 장군부의 아가씨 전소환이오.” “확실하오? 장군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요?” “모르겠소, 왕비께서 장군부 사람을 초대하셨을 리는 없지 않소?” “출세하려는 건가? 저 움직임은 분명 장군을 노린 것이 틀림없소. 장군부 사람들은 정말 염치가 없구려.” “참, 어찌 염치가 있겠소? 그들은 이미 염치도 없고 주제도 모르는 자들이오. 그야말로 구제 불능이오.”모두의 안 좋은 시선에 전소환은 그만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사여묵이 자신을 부축해 주시지 않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그녀는 왕청여에게 붙잡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형수님, 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누군가가 저를 밀었다고요.”그녀는 변명하려 했다. 하지만 왕청여는
양 마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전소환에게 다가갔다.“노비가 이마에 상처를 치료해 드리겠사옵니다.” 양 마마는 장군부에서 집사로 있었기에 전소환과는 오랜 사이라 할 수 있다.전소환도 이마에 상처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가려고 했다. 비록 피는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 상태로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실례가 되므로 어쩔 수 없이 양 마마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양 마마는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 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남의 그릇에 담긴 것은 탐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옵니다.”그 말에 수치를 느낀 전소환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같은 시각, 시만자는 송석석을 찾아갔다. “가의군주가 밀어버렸어. 사전에 계획을 한게 분명해. 아마 전소환을 네 남편의 품에 안기게 해 어쩔 수 없이 아내로 들이게 할려고 했을거야. 하지만 이상한 점은 가의군주는 이 계획의 성공 여부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음, 난 덕귀 태비가 본인의 손자와 손녀들을 데리고 와 첩을 들이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이미 무슨 꿍꿍인지 눈치챘어. 그들은 어머님이 질투를 느껴 장국에게 측실을 맞이하라고 부추겨 나와 어머님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야. 그들은 애초부터 장군의 측실이 되려는 전소환을 도울 생각이 없었지. 북명왕부는 장군부의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은 오로지 장군께 여인의 순결을 망쳐 놓고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악명을 씌우려던 계략이었어.” “그럼, 전소환이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감히 장군을 넘볼 수 있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지?” 시만자는 전소환의 행동이 너무나 어리석어 할 말을 잃었다.“오늘 그 난리를 쳤는데 어느 가문에서 그녀를 좋게 보겠어?” 송석석은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다.“어리석긴 하지. 가의 군주를 따라 북명왕부에 온 것은 자기 어머니의 지지가 있었을 거야. 전북망의 품계가 낮아졌으니 내가 아는 노부인은 무척이나 초조해하
아니꼬운 시선들이 왕청여에게 날아와 꽂혔고, 왕청여는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하지만 아직 그녀가 고대했던 광경을 보지 못했기에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전 시댁 사람들과 마주하더라도, 송석석이 난처해하는 모습은 꼭 보고 싶었다. 이토록 성대한 연회에서 작은 실수 정도는 꼭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굳게 믿었다. 이어 축배를 올리는 시간이 되었다. 식사 중 축배를 올리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이므로, 남자 손님들이 한 명씩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태비님께 축배를 올리러 가세.” 그러자 여자 손님들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둥근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축배를 올릴 준비를 했다.북명왕이 앞장섰고 회왕과 목 승상, 안만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여자 손님들에게 단 하나의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태비를 향해 걸어갔다.“태비 마마께서 복수강녕하시고,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머니를 대신해 술을 마시려고 북명왕이 따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기뻤던 혜태비가 술잔을 들더니 웃으며 말했다. “좋다! 우리 모두 오래도록 건강하게 자손들과 복을 누리자꾸나.” 나이가 좀 있는 목 승상과 안만수에게는 어울리는 축복이었지만 회왕만은 조금 난감했다.목 승상과 안만수가 먼저 술잔을 비우자 태비도 따라 잔을 비웠고, 그 모습에 회왕은 황급히 술을 들이키고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춘 후 물러났다. 남자 손님들도 세 명씩 다가와 혜태비에게 축배를 올렸고 혜태비는 그렇게 이미 몇 잔을 비운 상태였다. 그때 송석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가 어머님 대신 후작님과 백작님께 술을 올리겠사옵니다. 오늘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만약 접대에 부족함이 있었다면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송석석이 말한 그들은 평양후와 두 백부의 가주들이다. 평양후는 가의군주의 남편인데, 들어오면서부터 가의 군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아 가의 군주는 이미 화가 난 상태였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그녀도 굳이 그를 보고 싶지
왕청여는 벼락 맞은 것 같이 충격을 받았다. 전소환이 계속해서 염치없는 행동을 반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에는 평양후까지 건드리다니..그리고 중요한 것은 평양후가 단순히 잡아준 것이 아니라, 허리를 감싸안았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평양후는 남자 손님이었기에, 전소환이 조금 전 정원에서 벌였던 소동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저 이마에 상처를 입은 채 곧 기절할 것 같은 여인이 쓰러지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것이었다. 머리보다 행동이 빨랐기에 결국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를 품에 안게 된 것이다.모두가 휘둥그레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 송석석이 말했다. “여봐라, 소환 아가씨께서 몸이 불편하시니 집으로 돌려보내거라.” 평양후부의 노부인은 송석석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전소환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상황을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양 마마와 부인 2명이 급히 들어왔다. 그들은 전소환의 팔을 양측에서 부축했다. 실상은 끌어내고 있는 것이었다.정신을 못 차리던 전소환은 막 끌려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몸부림치며 가의 군주를 향해 울부짖었다. “군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제발 저를 도와주시옵소서..!”그녀의 말에 장내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북명왕을 노린 거야, 아니면 평양후를 노린 거야?” “가의 군주가 돕겠다고 했으니 평양후를 노린 걸 수도 있겠군. 듣기로는 평양후의 첩이 노부인의 친척 조카딸이라는데 그 여인이 장남과 장녀를 낳았는데 지금 또 임신 중이라 하더군. 평양후에게 또 첩을 맞이하게 하려는 건가?” “허나 이건 너무 비열하지 않나? 자신이 군주이니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하면 될 텐데 말이야.” “자네들은 평양후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게로군. 이미 친정으로 돌아가 숨어 지낸 지 꽤 되었고, 직접 돌아가기가 꺼려져서 이런 일을 벌였을 것이네.”저저마다 의견이 분분했고 평양후는 이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가의 군주는 분노로
손님들을 접대하는 와중에도 송석석은 시만자에게 사람들을 감시하게 했다. 특히 속셈이 있는 아가씨들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했다.시만자는 장공주와 두 여자가 자주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발견하고 양 마마에게 그들의 신분을 물었다. 양 마마는 안으로 들어가 그들에 대해 알아본 후 시만자에게 와서 말했다. “그 두 아가씨 중, 황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영태비의 친척 아가씨로, 이름은 모른다. 보랏빛 옷을 입은 아가씨는 의귀비의 친척 아가씨로, 이름은 위여은이라 합니다. 미모와 재주가 뛰어나 모두가 그녀를 제황후와 비교하곤 하지요. 제황후의 아우라는 당시 진성에서 제일 으뜸이었으니깐요.”이를 기억해 둔 시만자는 송석석이 나오자마자 두 사람의 신분을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송석석은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비든 의귀비든 모두 장공주와 연왕과 관련이 있었기에 그들은 북명왕부에 자신들의 사람을 심으려 했다.그 중 전소환은 단지 그들이 데려온 앞잡이일 뿐이었다. 송석석은 연왕을 연주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를 진성으로 불러들여 눈앞에 두고 감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고모의 원수를 갚아야 할 때가 왔다.연회가 끝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의 손을 잡고 함께 귀빈들을 배웅했다. 준수한 외모에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왕예와 아름다운 왕비,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선남선녀요, 천생연분이 아닌가?손님들은 부병의 지시에 따라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밀치거나 붐비는 일은 조금도 없었다. 같은 마차에 탄 장공주와 가의 군주는 떠나기 전 송석석이 화답의 의미로 건넨 선물을 열어보았다. 송석석은 한 사람당 하나의 선물을 준비했고 각각 다른 내용물이 담겨있었다.가의 군주에게 선물한 것은 장수 노인의 조각상이였는데, 가의 군주는 화들짝 놀라 그것을 한쪽에 던져버렸다. “이게 뭐야?” 그러고 나서 장공주의 것을 열어보았는데 도덕 노인의 조각상이 들어 있었다. 가의 군주
그 계집애를 생각하니 왕청여는 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친척 조카로, 남편의 첩이 된 후 돼지마냥 아들과 딸을 쑥쑥 낳았고, 심지어 지금도 임신 중이었다. 곧 출산 예정이라 지금 돌아가면 고통만 더할 게 분명했지만 어머니께서 명령을 내리셨으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친정으로 가겠다고 위풍당당하게 나왔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혼자 돌아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전소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아들과 딸을 낳고도 또다시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 계집을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전소환이 상대하게 한다면 자신은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소환이 미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얀 것! 모두가 교얀 것들이다!’가의군주는 결국 그렇게 돌을 들어 자신의 발을 찍은 격이 되었다.반면, 눈을 감고 있는 장공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왕이 시씨 가문의 여인을 후처로 맞이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연왕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해진 혼사였다. 시씨 가문은 권력과 병무와 무기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맞이하려는 시씨 가문의 그 여인이 가문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마침, 평서백 왕표의 딸도 이제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으니 만약 연왕의 장남인 사여령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왕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왕표는 현재 북명군과 송가군을 지휘하고 있으니 말이다.또한 옥영과 옥경 두 현주의 혼사도 진성의 공신 가문과 연결시키면 된다. 그러면 혼인을 통해서라도 중요한 인물들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 이제는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가의 군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워야 했다.손님들이 떠나면서 떠들썩하던 북명왕부는 다시 고요해졌다.하인들은 뒷정리했고, 송석석은 혜태비를 방으로 모셨다. 오늘 너무
고집을 부리던 사여묵은 어머니를 가볍게 밀어내고 한 손으로 송석석의 손을 낚아챘다.“방금 당신이 내게 측실을 들이겠다는 말을 들었소. 이리 오시오. 아주 단단히 혼쭐을 내줄테니!” 말을 마친 그는 송석석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혜태비는 화들짝 놀랐다.그저 한 번 언급한 것 뿐인데 저렇게 날뛰니 단단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유모, 어서 따라가 보거라!” 혜태비는 마음이 급했다. “정말로 때리기라도 한다면 난 언니에게 뭐라고 하냔 말이다. 석석이를 가장 아낄텐데…” 그러자 고 씨 유모가 한숨을 쉬었다.“제가 어떻게 감히 따라가겠습니까? 태비께서도 장공주와 덕귀 태비의 말을 들으시고 장군께 측실을 맞이하게 하려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노비인 제가 따라가기라도 한다면 장군을 더욱 화나게 할 것입니다. 보아하니 왕비께서 맷집이 좋은 것 같사오니 부디 염려하지…” “어리석다! 아내는 때리려고 맞이하는 거라고 누가 그러더냐? 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가겠다.” 그러자 고 씨 유모가 급히 그녀를 막아섰다.“알겠사옵니다. 장군께서는 염 선생의 말을 잘 들으시니 노비가 염 선생을 모셔 오겠습니다.” “어서 서두르거라!” 마음이 급했던 혜태비는 책상까지 두드리며 재촉했다. 아름다운 송석석의 얼굴에 상처가 하나라도 난다면... 혜태비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송석석을 끌고 태비의 앞마당을 벗어난 사여묵은 바로 그녀를 들쳐멨다.순간, 송석석은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혜태비는 하늘과 땅이 맞붙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맙소사, 정말로 때리는 것인가? 두려운 마음에 계속속 고 씨 유모를 밀며 재촉했다. “아직도 가지 않고 뭐 하느냐? 당장 움직여라!” 고 씨 유모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으나, 그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뜰 안을 한 바퀴나 돌았다. 비록 태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장군은 일부러 그렇게 화를 낸 것이었다. 이는 태비에게 측실 이야기를 집안에서 꺼내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왕비가
오늘 하루 너무 바쁘게 움직였고 날씨도 더웠기에 샤워를 꼭 해야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그녀의 귀가에 속삭였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딱 좋군, 함께 씻으면 되겠소.” 송석석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약간 의아해했다. “매일 밤 사랑을 나누는데 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까요?”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단 뜻이오?” 그녀를 안은 사여묵은 욕실로 성큼성큼 들어가 갑자기 그녀의 겉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두 분이 혼인하시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임신하셨다고 하셨거든요.” “나는 굳이 아이를 빨리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보오.” 사여묵은 드디어 그녀의 매혹적인 어깨선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단신의에게 약을 부탁했소. 당신도 전장에서 부상을 입었으니 충분히 회복된 후에 다시 얘기하기오.”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피임약을 먹고 있단 말입니까? 그 약은 몸에 해롭다고 들었습니다만.” “여자도 먹을 수 있는 걸 남자가 못 먹는단 법은 없소.” 사여묵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당신은 몸도 안 좋은데 임신하지 못하게 하려고 피임약을 먹일 수는 없소. 단신의께서도 여자는 기와 혈을 기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셨소. 만약 당신에게만 피임하도록 한다면 그동안 기른 것들이 모두 허사가 될뿐만 아니라 몸에도 해가 될 것이오.” 송석석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여묵의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피임약을 자처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정실부인이 피임약을 먹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현면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받고 남편에게도 미움을 받을 것이다. 정실부인이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낳았기에 어머니가 복 받은 사람이며 다들 부러워했다. 여섯, 일곱이나 자식을 낳는 여인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자란 것은 하늘의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