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들어오는 장면은 아름다웠다.준수한 외모의 아들과 송석석의 예쁜 외모가 눈에 띄었다.게다가 두 사람에게 풍기는 위엄과 합이 맞았다.방금 전,고 씨 유모가 빠르게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송석석이 처녀였던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왕야에게 그녀의 처음을 준 것이 확실했다.혜 태비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처음을 주었다는 것 빼고, 이혼을 한 여자라는 사실은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단정한 태도로 앉아 살짝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사여묵은 화를 꾹 참았다.송석석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혜 태비에게 문안을 올렸다.“신부는 태비에게 차를 올리셔야 합니다.”고 씨 유모가 찻잔을 들고 옆에서 말했다.송석석은 차를 받아 들고 혜 태비에게 건넸다.“태비 마마, 차를 대령하겠습니다.”혜 태비는 서둘러 받지 않았다. 사여묵이 화를 내기 일보 직전에 손을 내밀어 찻잔을 건네받았다.몇 입 마시고는 말했다.“상을 올려라.”혜 태비의 목소리에는 교만함이 잔뜩 들어 갔다.고 씨 유모는 용과 봉황이 그려져 있는 팔찌를 꺼냈다.곧이어 송석석의 손목에 채워다 주었다.“태비 마마께서 신부께 상을 주셨으니,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표하셔야 합니다.”송석석은 규칙대로 머리를 조아려 감사 인사를 표했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혜 태비가 자신의 목을 쓰다 듬었다.“어제 잠을 많이 못 잔 탓에 머리가 좀 아프구나. 저에게 안마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이때, 사여묵의 말이 들렸다.“잠시만요. 모친께 묻고 싶습니다. 어젯밤, 제 아내의 혼수에 손을 댄 게 사실입니까?동주를 몇 알 가져가서 장공주에게 준 것도 사실입니까?”혜 태비는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그의 눈빛을 피하기 바빴다.하지만 눈을 피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대체 누가 입을 함부로 놀리는가. 궁이 그놈의 혀를 잘라버릴 것이야!”사여묵이 물었다.“사실입니까? 맞으면 맞다고, 틀리면 틀리다고 말씀해주세요.”혜 태비는 아들이 화 내는 모습이 제일 무
송석석이 웃음을 터뜨렸다.동시에 이빨까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곧이어 다정한 말투로 답했다.“태비 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원래 장사라는 것이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는 법입니다. 아, 맞습니다. 금경루는 반반씩 책임지고 계시는 게 맞습니까? 계약서는 쓰셨는 지요? 장부는 보신 적 있으십니까?”이어서 혜 태비가 교만한 태도를 보였다.“본궁을 무시하십니까? 계약서는 당연히 썼지요. 반반이 아니라 7은 저의 소유입니다.장부는 당연히 보고 있습니다. 매 계절마다 보낸 장부를 확인하여 득실을 확인하지요.”“네? 태비 마마께서 꽤 큰 지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손해가 클수록 결국 마마께서 은을 쓰셨을 테지요. 몇 년 동안 얼마를 쓰셨는 지에 대한 장부는 확인 하셨습니까?”“당연한 소리.은을 쓸 때마다 항상 확인하지요.”송석석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그렇다면 지금까지 은이 얼마 정도 나가셨습니까?”혜 태비는 그녀의 질문에 기분이 상했다.“누가 그걸 기억하고 있겠습니까?장부를 확인하면 적어도 몇 만 은냥은 썼을 겁니다.”“그렇습니까!”송석석은 어두운 얼굴을 한 사여묵을 한번 바라 보았다.그녀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태비 마마께서는 금경루에 가보셨습니까?”혜 태비는 차갑게 답했다.“본궁은 궁 안에서만 지내는 거 모르십니까? 두 사람의 혼인을 위해 잠시 나간 적은 있습니다.하지만 본궁이 가든 말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금경루는 관리자가 직접 관리합니다. 게다가 본궁과 장공주의 신분은 감히 공개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매 계절마다 받는 장부가 있으니, 저희가 두려울 건 없지 않겠습니까.”송석석은 진성의 곳곳에 권력층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직접 운영하지 않고, 모두 관리자를 찾는다는 점이다.그리고 관리자들이 장부를 보내온다.감시자를 보내거나 직접 한번 찾아와 검사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없다.혜 태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저희’ 라는 말만 빼면 말이다.사여묵은 듣는
태후는 자신의 동생이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곧이어 사여묵과 송석석이 황제와 황후를 보러 갔다.자리에는 자신을 포함한 혜 태비와 고 씨 유모가 남았다.먼저 고 씨 유모에게 말했다. “관아는 사람들 간의 신뢰가 제일 중요하네.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북명 황실에 먹칠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지. 언행에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네. 자네가 모시는 공주가 자네의 손으로 키웠다고 할지라도 틀릴 때는 바로잡아야 하는 게 옳은 일이야.”고 씨 유모가 대답했다.“노비, 명 받들겠습니다.”혜 태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언니,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그리고 황실 일은 거의 제가 관리합니다. 게다가 고 씨 유모랑 집사뿐만 아닌 염구진도 같이 있습니다. 어떻게 문제가 생기겠습니까?”“네가 황실을 맡고 있다고?”태후가 손을 휘저었다.동시에 머리도 절레절레 흔들었다.“안돼. 너는 그냥 가만히 황실에 있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거야. 그냥 네 주위 사람들이나 관리해.”혜 태비가 답했다.“언니. 저는 여묵의 모친입니다. 제가 황실을 신경 쓰지 않으면 누가 신경 쓴 답니까.설마 송석석에게 맡기라고 하실 거는 아니죠? 그저 계집 일 뿐입니다.”태후는 혜 태비를 혼냈다.“아무리 계집이라도 너보다 아는 것이 많아. 모친이 장부 보는 법도 알려 주려고 했는데, 네가 싫다고 했었잖아. 금방 궁에 들어 와서 량소 한테도 졌잖아. 내가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해. 여묵이가 한 살도 안 되었을 때, 독으로 죽을 뻔 했던 건 기억하지?”혜 태비는 순간 민망해졌다.“이미 다 지나간 일을 왜 다시 꺼내십니까. 그때는 실수였다고 말씀드렸잖아요.량소가 유이식에 약을 타서 여묵이 토를 했던 겁니다. 그 악독한 년은 벌써 내쫓으셨지 않습니까.”“내쫓았어. 근데 내가 없었으면 량소가 한 짓 이라는 거 몰랐을 거야. 그리고 량소가 왜 약을 탔을 것 같아? 다 네 탓이잖아. 예쁘다고 질투하면서 매일 밤새 화풀이 대상으로 대했잖아. 네 성격에 무슨 황실을 관리해?
황제와 황후가 의전을 나와 사여묵과 송석석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인사를 끝내고 황제가 자리에 앉았다. 황후는 가벼운 화장을 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궁에 들였다면 후궁 자리는 송석석이 앉게 될 것이 분명하다.그녀의 청순한 외모는 궁에서 이길 자가 없다.황후는 자연스럽게 황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송석석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에 잠시 긴장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다면 의미심장한 눈빛을 내보내곤 했기 때문이다.그녀는 또 다시 송석석이 사여묵과 결혼한 사실에 안도했다.그 당시, 황제가 내린 구도 명령에 황후는 몇 날 밤을 자지 못했다. 전쟁에서 죽은 송석석의 부모 형제가 황제의 마음에 깊게 남아 있는 모양 이었다.게다가 그녀의 외모도 빼어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하지만 황후가 겁내던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훗날 송석석은 자신의 동서가 되었다.오늘 날, 송석석을 향한 황제의 웃음은 진심이다.감추고 있는 마음이 무엇이든 간에 동생의 아내를 뺏을 수는 없다.게다가 황후도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황제는 과거 사여묵과 송석석을 결혼 시켜서 병권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나.’즉, 황제는 처음 부터 송석석을 궁을 들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이제와서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사실 송석석이 궁에 들어온다고 하여도 그녀의 후위는 변함이 없다.하지만 후궁은 전쟁터와 다름없다.만약 황후가 후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무능을 뜻하는 것이다.아내이기 때문에 황제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이 갈까 두려웠다.규칙상 후궁을 아껴 할 수 있지만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보다도 자신의 명성이 떨어 질까 봐 두려웠다.한편, 황제는 송석석을 몇 번 보고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혹시 송석석에게 마음이 간다고 한들, 나라의 안정, 형제의 평화 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그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황제 자리에 앉고 나면
황후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진왕이 제씨 가문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본 혜 태비는 한녕공주도 제씨 가문 사람과 혼인시키고 싶었다.하지만 태후께서 이를 묵인하셨기에 효성이 지극한 황제는 태후의 뜻을 따를 것이다.제씨 가문의 남자들 중, 오직 여섯째, 제서훈만이 글공부에 흥미가 없어 매일 강아지, 고양이들과 함께 뛰놀며 여유로운 나날을 보냈다.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학문에 열을 올리며 언제가 조정에서 한 자리는 차지하려고 노력했다. 그중 다섯째가 유독 학문에 목을 맸다. 그가 어릴 적부터 머리를 싸매고 허벅지를 찔러가며 노력했던 것은 오직 과거시험만을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만약 공주와 혼인하게 되면 훗날 한가한 부마로 지내게 될 테니 그러면 그동안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황후는 자신이 장공주의 혼사에 관여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송석석에게 도움을 청하였다.송석석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한마디에서 그녀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그녀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녕공주와 제 동생이 좋은 인연을 맺게 된다면 왕비님께 신세를 진 것이니 큰 선물을 드리겠습니다.”송석석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물 같은 건 그녀에게 있어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 하나 더 두는 것이 적을 만드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제서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녕의 마음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정작 이 일을 반대하는 자는 그녀의 까다로운 시어머니, 혜태비였다. 송석석은 한녕을 자신의 여동생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마치는 즉시 궁을 나섰다. 사여묵은 먼저 왕부로 돌아가고 송석석은 혜태비와 함께 마차를 타고 장공주부로 향했다. 혜태비는 송석석과 단둘이 있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해 고씨 유모도 함께 마차에 태웠다. 어찌 된 일인지 송석석의 얼굴을 볼 때마다 설교당할 것 같은
마차가 대장공주부에 멈추자 문지기가 들어가 보고를 올렸는데 이내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뢰었다. “태비마마, 왕비마마, 소인이 깜빡 잊었사온데, 공주께서는 오늘 나가셨사옵니다...”듣고 있던 혜태비는 상기된 얼굴로 냉큼 송석석에게 말했다.“그럼 일단 돌아가고, 내일 뵙겠다고 알린 후에 다시 오면 되겠구나!”그러나 송석석은 때뜸 문지기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셨는지요? 혹시 언제쯤 돌아오시는지 아시나요?”“그것은 소인도 모르옵니다. 아마 늦게 돌아오실 것이라 생각하옵니다.”이에 송석석은 개의치 않다는 듯 말했다.“괜찮습니다. 기다리면 될 일이지요.”그녀는 혜태비의 손을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문지기가 다급히 다가갔다.“태비마마, 왕비마마, 여기는 공주부이오니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되옵니다.”송석석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어찌 함부로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오? 그러 장공주를 뵈러 온 것인데 공주부에서 기다리는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당신들 대청은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 아닙니까?”문지기는 송석석이 포악하다는 것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웃으며 말하지만 그녀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그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송석석은 혜태비의 손을 잡고 이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반면 혜태비는 내키지 않았다.“예의도 없느냐? 공주께서 안 계신다고 하였는데, 누구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냐? 정말 이대로 밤까지 기다릴 셈이냐?”“날이 바뀐다 해도 기다릴 겁니다.”송석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어머니, 그리고 고씨 유모, 오늘 만나지 못하면 저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그러자 혜태비는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동주를 내게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미 내 것이니 다시 찾는 것도 내가 결정한다.”“그렇게 하시지요.”송석석이 냉정하게 대답했다.“어머니께서는 먼저 돌아가시지요. 저는 기다리겠습니다.”그녀는 혜태비의 손목을 놔주었지만 혜태비는 송석석만 여기에 혼자 남겨둘 수는
잠시 앉아 있던 송석석은 차도 다과도 손대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여기저기 둘러봐도 괜찮지요?’자주 손님을 초대하는 공주부이게에 손님들이 둘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리 준비된 경우에만 가능했기에 이렇게 무작정 찾아와 둘러보겠다는 것은 당연히 허락할 수 없었다. 공주부에는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북명 왕비이기에 부병들은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자칫 무례를 범하기라도 한다면 뒷감당은 모두 그들 몫이 될 것이다. 하인들도 당연히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송석석은 능숙하게 그들을 피해가 빠른 걸음으로 내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렇게 송석석이 내원의 한 정원에 가까워졌을 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공주께서 돌아오셨습니다!”송석석은 입꼬리가 올라갔다.‘드디어 오시는군.’그녀는 머리를 정리하고 정원을 한번 쓱 바라본 뒤 말했다. “공주께서 돌아오셨으니, 저는 이만 대청으로 돌아가 기다리겠습니다.”하인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왕비 마마께서는 대청으로 돌아가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공주께서 환복 후 바로 뵈러 가실 겁니다.”송석석이 대청으로 돌아오니 혜태비는 다과를 모두 먹어 치우고 차가 식었다며 하인에게 새로 가져오라고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만한 혜태비였는데 공주부에서는 자세를 낮추어 하인들에게도 매우 공손하게 대하고 있었다.송석석이 돌아오자, 혜태비는 이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그렇게 기다리던 공주가 왔다는구나.”자리에 앉은 송석석은 담담하게 대꾸했다.“돌아온 건지 아니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건지는 알 수 없지요? 우리가 대청에 앉아 있었으니, 만약 공주께서 측문이나 후문으로 들어오지 않으셨다면 공주를 볼 수 있었을텐데요.”“공주부의 주인이 어찌 측문이나 후문으로 들어온단 말이냐? 너는 규칙도 모르느냐?”송석석은 식은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그렇다
장공주는 혜태비를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동주와 내기라뇨? 어젯밤은 그저 연회를 즐긴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언제 이자의 예물을 가져갔단 말입니까?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며느리의 예물은 본인만의 사유 재산인데 어찌 감히 손을 댈 수 있단 말입니까? 농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입니다!”혜태비는 그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사실 장공주와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잘 알고 있었기에 삼천 냥을 돌려주지 않을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입밖으로 내뱉은 것은 지킬 것이니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주와 내기를 전혀 인정하지 않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혜태비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씨 유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씨 유모는 추위에 얼굴이 빨갛게 상한 채 소매로 코를 막으며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혜태비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송석석을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송석석에게 무시당한 느낌에 혜태비는 화가 났다. 그리고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장공주의 뻔뻔함이었다.“어찌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어젯밤에 분명 제가 동주를 공주께 주지 않았습니까? 만약 며느리가 저에게 동주를 돌려달라고 하지 않으면, 그 동주를 돌려주고 삼천 냥을 더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지금 와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그러자 장공주는 표정을 굳히며 오히려 큰 소리로 꾸짖었다.“허황된 말입니다. 제가 어찌 그대에게 며느리의 예물을 가져오라고 했단 말입니까? 나가서 물어보세요. 제가 어찌 그런 일을 했다고 하십니까?”혜태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평소 장공주를 무서워하던 혜태비는 그녀가 화를 내지 않아도 쩔쩔맸다. 그런데 소리까지 지르니 다리가 막 후들거릴 정도였다. 잔뜩 겁먹은 그녀는 잠시 후 조심히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일단 돌아가서 확인해 보시지요.”송석석은 눈을 매섭게 흘겼다.‘돌아간다고? 그러면 다시는 이 물건들을
사여령은 한참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주먹만 꼭 쥐고 있었고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사여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리사 감옥 관리자가 되고 나서 사여령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으로 수천 수백 번을 생각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나중에 진소경이 사여령의 고민을 눈치채고 사여령에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눈앞에 닥친 일만 잘 해내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했기에 사여령은 그 뒤로부터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여태까지 답을 얻지 못했기에 갑작스러운 사여묵의 물음에 넋을 잃은 채 앉아있던 사여령은 위엄이 넘치는 사여묵 눈빛에 머릿속이 하얘졌다.덜컥 겁이 난 사여령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노주에 병사가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지는 모릅니다.”“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사여묵이 물었고 사여령은 노주에 병사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 뒤 오히려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선택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여령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연주의 왕부에 서재가 두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 평소에 2층에서 책을 보는데 가끔 하루 종일 2층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아래층에서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바로 아래층에서 얘기하고 있었지만 서재가 너무 큰 탓에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습니다. 노주에 대한 얘기가 몇 번 나왔고 노주 외에도 옹현, 간현, 부현 그리고 나현 등 지역도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지역도 있는데 지역명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번에는 식량을 노주에 가져가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연왕이 여러 지역에서 병사를 키우고 있다고? 그럼 세력이 대체 얼마나 큰 거지? 병사를 키운다는 게 점포를 여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식량과 무기 공급은 문제가 없는 건가?’사여묵이 사전에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연왕에게는 그럴 만한 세력과 재력이 없었다.옹현과 간현은 그럴 가능성
북명왕 저택에는 호위병 외에 따로 비밀 호위무사를 양성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밖에서 정보를 캐내는 무술 실력이 강한 부하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다들 매우 바빴기에 거의 한 달에 한번 저택으로 돌아와 얻은 정보를 보고하곤 했다.물론 정탐조도 있지만 이들은 적의 동향을 살피는 자들이기에 사적인 일로 움직일 수 없었다.비밀 호위무사를 두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에 파견되기 전에 이미 큰 전공을 세웠고 현갑군도 거느리고 있었기에 선황제는 사여묵이 저택에 너무 많은 부병을 두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두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 전쟁에 투입되고 나서 이런 부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기에, 전쟁을 승리하고 돌아왔을 땐 황제의 의심과 경계 때문에 더더욱 비밀 호위무사를 키울 수 없었다.지금 만약 황제가 대외적으로 사여묵을 노주로 정찰을 보낸다고 발표한다면 현갑군에서 병사들을 보낼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가는 것이기에 저택에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갈 수 있었다.“제가 같이 갈까요?”송석석의 물음에 사여묵은 피식 웃으며 송석석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괜찮소. 위험한 건 아니오. 그저 정보만 수집하는 일이라 몸을 쓸 일은 없소. 몸을 써야 한다면 우리 몇 명만 가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이제 연말이라 경위부도 사건 사고가 많을 테니 이곳을 지키는 게 좋겠소.”사여묵이 말한 것처럼 연말에 경위부와 순방영은 평소보다 훨씬 일이 많았기에 송석석이 간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하지만 몇 명만 보내기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다음날,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심청화는 10일 뒤면 서원도 수업이 끝나니 며칠 앞당겨서 사여묵과 함께 떠날 수 있다고 했다.심청화가 함께 간다고 하니 송석석은 훨씬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이 일은 국태 부인과 상의를 해야 한다.심청화가 국태 부인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다들 동의했으며 출발까지 아직 3일이나 남았으니 서원 시험만 보면 된다고 했다.심청화는 당연히 진짜 행방을 얘기
시만자는 현재 사부 외에도 석소 사저 등 몇 명과 함께 팀을 이루어 여성들에게 변태 짓을 저지르는 범인들을 잡으러 다녔다.처음에는 이 일이 매우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범인을 잡아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인정할 때까지 때려서 관청으로 보낸 뒤, 범인들은 자신들이 맞아서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석소 사저는 몰래 피해자 여성들을 찾아가 봤지만 다들 부인하기 바빴다. 심지어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다고 버럭 화를 내면서 석소 사저를 쫓아내기까지 했다.증거가 없는 탓에 범인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고 시만자는 풀려난 범인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이제 소속이 없는 자유의 몸이 아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왕야는 공문 소속이고 송석석도 현갑군을 관리하고 있기에 시만자는 살인자가 될 수는 없었다.그렇게 밤낮없이 범인을 잡느라 갖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지금까지 한 명도 감옥에 가두지 못했다.송석석은 화가 잔뜩 난 시만자를 위로했다.“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어쨌든 확실하게 팼으니까 범인들도 네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서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거야.”“패는 걸로 분이 안 풀려. 그 놈들이 전부 관청에 끌려가서 벌받았으면 좋겠어.”시만자가 턱을 괸 채 한숨을 푹 내쉬자, 송석석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 사람들에게 당한 여인들은 쉽게 나서지 못할 거야. 되레 그 사실을 꽁꽁 숨기려고 하겠지.”“그럼 저 나쁜 놈들이 저렇게 밖에 돌아다니게 내버려둬? 방법이 아예 없는 거야?”“다음에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관청으로 끌고 갈 필요도 없어. 일단 죽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패는 거야. 손이나 발을 잘라버려. 아니면 남자 구실을 못하게 만들어도 좋고.”시만자는 송석석의 말에 착잡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좋은 방법이네.”“근데 조사는 확실하게 한 거야?”시만자가 가슴을 퍽퍽 치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확실하게 조사했으니깐. 절대 죄 없는 사람은 잡지 않아. 하지만 피해자들
며칠 뒤, 숙청제는 장춘궁에 나타났고 제황후는 붉어진 눈시울로 제자예가 퇴학 당한 일을 꺼냈다.한편, 이미 제씨 가문에게 이 일에 대해 주의를 주었는데 제황후가 다시 언급하자 숙청제는 속으로 살짝 언짢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치를 보던 제황후는 화가 난 듯한 황제의 표정에 이내 화제를 돌렸고 요즘 명문 가문 귀부인들이 너도나도 송석석의 인품을 칭찬하고 있다고 했다.숙청제는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제황후를 쳐다보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짐은 궁금하기도 하오. 왜 세가의 부인들은 황후가 아닌 송석석을 칭찬하는 걸까? 황후는 한 나라의 국모로써 짐에게 시집오기 전에는 진성에 소문이 자자한 천재 소녀였소. 그럼 황후야말로 백성들의 모범이고 찬송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겠소?”제황후는 황제의 말이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헷갈렸다. 웬지 요즘 따라 점점 황제의 마음을 알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제황후는 황제에게 차 한 잔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현재 북명 왕비의 위신이 매우 높습니다. 여학과 소진 소주방도 점점 잘 되고 있고 예전에 왕비에게 손가락질을 했던 사람들도 다들 칭찬하기 바쁩니다. 뿐만 아니라 북명왕도 황제 폐하의 큰 신임과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마냥 좋은 일은 아닌 듯합니다.”숙청제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제황후는 황제의 반응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황제는 북명왕 부부에게 거리낌을 느끼고 있었다. 북명왕 부부는 너무 많은 찬송과 영예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신들도 부부에게 신뢰가 깊었기에 황제는 견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한편, 송석석은 민소와 홍현 등 여인에게 교대로 여학을 지키라고 했다.예전의 제씨 가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이제 제씨 가문 부인들은 각자 꿍꿍이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자예가 학교에서 쫓겨난 일로 황후는 매우 화가 나 있을 것이다.특히 넷째 부인은 막무가내로 미쳐서 날뛸 때가 많았기에 언제든 경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한동안 시만자와 두 사
조금 뒤, 저택으로 돌아간 제 상서는 넷째 부인을 불러 크게 호통을 치자, 그녀가 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저희도 그저 마마의 뜻에 따랐을 뿐이에요. 광릉후의 셋째 도련님께 혼사를 제안하려고 했지만 마마께서 우리 가문에 무장의 힘이 없다고 하셨거든요.”넷째 부인은 제황후가 혼사를 허락하려고 했지만 태후에게 제지 당한 일을 얘기했다.“방씨 가문도 참 어이가 없네요. 우리 제씨 가문의 귀한 딸을 대체 뭐가 싫다고 거절한 거예요? 방씨 가문은 지금 우리 제씨 가문을 만만하게 여기고 있는 거라고요!”“방씨 가문에서 왜 우리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돼? 그럼 우리가 방씨 가문을 만만하게 여기지 않았어?”제 상서가 버럭 화를 내며 되물었다. 이게 바로 문제점이다. 언젠가부터 제씨 가문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제씨 가문의 체면을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제 상서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제씨 가문은 어느새 사람들 눈에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말문이 턱 막힌 넷째 부인이 한참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저희는 제씨 가문이잖아요.”이 일을 계기로 제 상서는 제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소집하여 그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실을 조심하라고 했으며 절대 자만하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되고 괜히 잘난 척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그러다가 반역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는 제 상서의 말에 가문 사람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제 상서는 그래도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대황자가 멍청한 짓이나 악한 짓을 저지르기 전까지 제 상서는 괜히 대황자를 위해 모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어차피 대황자는 태어날 때부터 선택 받은 자로 태자의 자리는 결국 대황자의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황자의 녹록함은 점점 더 눈에 띄게 드러났고 심지어 녹록할 뿐만 아니라 성격과 품행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황제도 분명 이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니 지금 이 상황에서 뭔가 모략하는 건 황제의 의심을 더욱 크게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다행히 대황자는 아직
그러자 제 상서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제야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인지하게 되었다.아군 여학의 학생들 일을 조정에서 얘기하려고 하다니 말이다. 제 상서는 그렇게 대신들이 전부 물러갈 때까지 멍하니 서있다가 숙청제의 부름에 궁에 남게 되었다.숙청제는 제 상서를 어서방으로 불렀지만, 계속 안으로 들어오라는 얘기도 안하고 밖에 세워 두기만 했다. 그렇게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 제 상서는 두 시간이나 서있었지만 황제는 여전히 그에게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온몸을 덜덜 떨면서 서있던 제 상서는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어찌됐든 제 상서는 황제의 장인 어른인데 아무리 잘못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장인 어른을 이렇게 추위에 방치하는 건 너무했다.두 시간이 지나자 제 상서의 몸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고 보다 못한 오 대반이 제 상서에게 작은 손 난로 하나를 쥐여 주었다.한편, 오월은 빠른 걸음으로 어서방에 들어갔다가 조금 뒤, 밖으로 나와 제 상서에게 다가갔다.“제 상서, 왜 이곳에 이러고 계신가요?”제 상서가 이를 악문 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황제 폐하께서 저를 안으로 불러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제 상서의 말에 오월이 입을 떡 벌리며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폐하께서 조금 전에 저를 불러 제 상서를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어서방으로 불렀는데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하셨는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폐하께서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제 상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굳어버린 두 다리를 힘겹게 옮기며 어서방으로 향했다.평소와 같이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고 자리에 앉으라는 허락도 받았지만 제 상서는 황제가 지금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제 상서를 두 시간 동안 밖에 세워둔 것도 그에게 확실하게 주의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방 안은 따듯했고 제 상서도 얼어붙은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때, 오 대반이 따듯한 차 한 잔과 함께 조사 보고서를 제 상서에게 건넸다.의아
송석석은 최씨와 함께 돌아갔다. 송석석은 자신이 타고 온 말을 하인에게 끌게 한 뒤 최씨와 함께 최씨의 마차에 타고 있었다.송석석은 최씨에게 전할 말이 있었다.“오사형께서 안 좋은 걸로 골라서 또 몇 개 팔았고, 판 돈은 전부 왕경루 지하에 넣어뒀어요.”최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희 평서백부가 그분께 빚진 겁니다. 그 돈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편하게 쓰라고 전해주세요. 제가 따로 모아둔 돈도 조금 있습니다.”“오사형은 그 돈을 쓰지 않을 겁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니깐요.”잠시 침묵하던 송석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황제 폐하께서 고청우 신분을 조사하셨습니다. 고청우가 노주에 계신 한 부인을 양모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시씨는 강남 시씨 가문의 방계의 성씨를 따른 것 같습니다. 그 가문도 노주에서 장사를 하는 집안입니다. 전에 부인께서 고청우가 누군가와 비밀리에 왕래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상대방은 아무래도 시씨 가문 사람인 것 같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지금 그 사람에게 손을 쓰면 좋은데 아직 움직임은 없으십니다. 그럼 평서백께서 깊이 연루될 가능성이 큽니다.”송석석은 중요한 정보까진 최씨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노주에서 사병을 엄하게 조사할 거라는 등등… 이런 말들은 함부로 할 수 없었다.그리고 이 정도 정보를 얘기한 것도 최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배려였다. 왕표가 지금이라도 멈추면 그저 작위만 잃을 뿐, 평서백부는 어떻게든 발을 뺄 수 있을 것이기에 처참한 최후는 면할 수 있었다.이 모든 것이 비록 평서백 부인이 왕표를 말릴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결정되지만 최씨 부인은 그저 조용하게 듣고 있다가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최씨는 최선을 다했지만 왕표가 그녀의 얘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있다.그 사실을 눈치챈 송석석은 최씨의 손을 가볍게 토닥이고는 도중에 마차에서 내려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들이 있다.예를 들
최씨와 딸 왕지아는 마당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는 나무와 꽃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지만 그리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으며 특히 올해 겨울엔 더더욱 일찍 시들었다.“지아야, 너 왜 고모부… 방시원 장군님 편을 든 거야?”최씨는 손수건으로 왕지아의 상처 주위를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물었으며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평서백부에 이런저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지 않았으며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밖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너무 많았기에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왕지아는 벌겋게 부은 얼굴을 살짝 들었다. 분명 맑고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지만 나이와 맞지 않는 성숙한 눈빛이 보였다.“엄마, 예전에 고모부가 고모와 함께 우리 집안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 뭘 선물했는지 기억하세요?”왕지아의 말에 최씨가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엄마 기억으론 장군을 보필하는 마마가 너와 현이에게 금덩이 하나와 금열쇠 하나씩 선물했던 것 같은데?”왕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국태 부인의 산하지를 저에게 선물해 주셨어요. 그때 당시 고모부가 저에게 해준 말이 있었거든요. 지금 세상에 태어난 여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기 어렵다고 했어요.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가지 않는 이상,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쉽지 않지만 넓은 바깥 세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고 했어요. 우리 상국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보고 바깥 하늘이 얼마나 푸르고 높은지도 보아야 시야가 넓어지고 쓸데없는 일에 고집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도 없다고 하셨죠.”최씨는 딸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때 당시 방시원을 처음 봤을 때 최씨도 돈만 밝히는 사람이어서, 상대방이 무슨 선물을 들고 왔는지부터 따지기 바빴다.“고모부는 고모와 혼인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 찾아와서 따지거나 고모를 힘들게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엄마, 고모
제자예는 넷째 부인의 손을 뿌리치곤 최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절대 사과 안 할 거예요! 저를 뭐 어떡하실 건데요? 그렇게 억울하면 저도 한 대 치세요!”최씨를 향해 얼굴을 들이민 제자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세상 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최씨는 그런 제자예를 보며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차갑게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지금 당장 제 제사한테 찾아가서 물어봐야겠네. 따님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버릇이 없는 건지, 참.”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말했다.“훈장님, 그때 제 증인이 되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제 제사를 만난다면 전 당연히 솔직하게 얘기드릴 겁니다.”송석석의 대답에 제씨 넷째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이 일이 어르신에게 알려지면 넷째 부인은 크게 혼이 날 것이다.절대 어르신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넷째 부인은 이를 악문 채 제자예에게 말했다.“얼른 왕지아에게 사과해.”제자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엄마, 전 사과할 수 없어요. 쟤들이 날 괴롭혔고 날 서원에서 쫓아내려고 했어요.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쟤들이에요.”넷째 부인은 최씨와 송석석을 힐끗 흘겨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엄숙하게 말했다.“잘못을 저질렀으면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야.”제자예는 자신이 며칠동안 서러운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어머니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더욱 서럽고 슬펐다.“싫어요. 절대 사과 못 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전 절대 굴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하던 제자예는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이내 송석석에게 잡혀 다시 최씨 곁으로 돌아왔다. 송석석이 최씨를 보며 말했다.“이번 일이 저희 아군 서원에서 벌어졌으니 서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자예 학생이 왕지아 학생의 얼굴에 상처를 냈으니 관아로 보내는 건 어떠세요? 관아의 처리에 따라 저희 아군 서원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반드시 책임지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