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방의 바람은 완전히 무너졌다.모닥불이 밖에서 피어올랐고 오두막 문이 거칠게 열렸다. 커다란 그림자가 바닥에 비쳤다. 상대를 압도하는 기운을 내뿜으며 천천히 들어왔다. 모닥불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을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이방은 단번에 상대를 알아봤다.그 사람은 수란키다. 그녀와 평화 협정을 맺은 서경의 원수다.이방은 몸을 부르르 떨며 벽에 등을 바짝 기댔다. 겁먹은 얼굴로 수란키를 쳐다보았다.성릉관에서 협정을 체결할 때, 이 위풍당당한 남자는 사람들을 압도했다. 용맹한 남자는 시종일관 우아한 기운을 내뿜었다. 평화협정은 매우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되었다.이방이 제안한 몇 개 조약에 수란키는 고민도 하지 않고 승낙했다. 수란키는 단 하나의 조건만 제기했다. 협정을 체결하면 즉시 인질을 풀어달라는 것이다.이방은 제발로 군공을 가져온 수란키를 호락호락하게 여겼다.지금처럼 음울하면서도 살기가 가득 찬 얼굴과 많이 달랐다. 이방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수란키가 사신(死神)처럼 느껴졌다. 그의 눈빛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겼다.수란키는 가죽 장갑을 벗어 뒤에 있던 병사에게 던졌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들어온 3황자에게 말했다. “끌고 가서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복수해. 이들은 잔인하게 네 형님을 괴롭혔다. 협정을 체결하던 날 그들의 얼굴을 전부 기억했다.”3황자가 이를 악물었다. “숙부, 알겠어요. 형님 대신 제가 복수할게요.”3황자의 시선이 이방에게 향했다. “이자는 어찌할까요?”수란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 여인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3황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에 있던 병사들에게 말했다. “저들을 끌고 나와. 내 두 눈으로 저들이 살려달라고 비는 걸 봐야겠다.”사람들은 얼굴이 거뭇하게 질렸다. 몸의 힘이 탁 풀려 예전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이방의 몸은 더욱 격렬하게 결렸다. “수... 수란키 장군님, 평화 협정을 체결했잖아요. 양국
오두막 문밖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이방은 까무러칠 정도로 겁에 질렸다.밖으로 끌려나간 이들이 어떤 형벌을 받는지 이방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포로로 잡아둔 젊은 장수에게 한 짓을... 정확히는 서경 황자에게 한 짓을 돌려받는 중이다.그들은 황자를 거세했다. 산채로 거세를 당한 황자는 지렁이처럼 바닥에서 꿈틀대며 몸부림쳤다.그가 비명을 질렀으면 그들도 더는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황자는 이를 악물고 어떤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오기가 발동한 병사들이 돌아가며 상처 난 그의 몸에 오줌을 쌌다. 그리고 날카로운 검으로 피부를 여러 차례 그었다. 피와 오줌이 뒤섞인 황자는 바닥에서 고통을 감내했다.지나간 일들을 회상한 그녀는 반성은커녕 오히려 통쾌했다.그러나 황자가 겪었던 걸 곧 자기가 겪어야 한다는 공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수란키가 단검을 꺼내자 이방이 기겁했다. “안 돼, 오지 마!”수란키는 쪼그려 앉아 그녀의 몸을 묶었던 밧줄을 벴다. 겁에 질려 움츠러든 이방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들었다.‘황자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에게 굴욕을 당했다.’ 밧줄을 푼 수란키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피부로 느껴지는 추위와 두피로 전해지는 고통에 이방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밖으로 나온 수란키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한 바퀴 돌더니 공터로 던져버렸다.눈으로 뒤덮인 공터에 18명이 누워 있었다. 그들은 실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 발가벗겨 있었다. 붉은 피가 흘러나와 어느새 피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들 옆으로 무언가 굴러떨어졌다. 남자는 거세를 당하고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거세당한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꿈틀댔다. 똑같은 상황에서 황자는 한마디 비명도 없이 견뎠다.나중에 무수한 고문을 당한 끝에 비명을 지르긴 했다. 병사들은 그의 비명에 환호했다. 누군가의 자존심을 짓밟는 건 그들에게 매우 짜릿하고 통쾌한 일이었다.몸부림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할 줄 알았으나 이방은 다시 오두막에 끌려갔다. 다른 이들도 같이 끌려갔다.오두막 안에 숯불이 타올랐다. 나무 판자 사이로 거센 바람이 들어와 따듯하게 있을 수 없었지만, 약간의 온기는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추위와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숯불로 기어갔다. 이방의 바지는 진작에 벗겨졌다. 다리 사이로 전해지는 고통 때문에 다리를 모을 수 없었다. 방 안이 따뜻했지만 피는 여전히 흘러내렸다. 그녀의 몸 아래에 피가 흥건했다.그러나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고통에 몸부림쳤고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두막 안에는 오로지 고통스러운 신음만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누군가 오두막에 들어왔다. 이방에게 약 한 사발을 건넸다. 그러나 약 사발 안에는 비릿한 오줌 냄새가 낫고 이방은 구역질이 났다.그러나 토하지 않았다. 괜히 오줌만 더 맞게 될까 봐 두려웠다. 수란키의 손에 들어온 이상 살 길은 없다. 그녀는 약 사발에 담긴 게 독약이길 바랐다. 이 상태로 버티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약을 삼키자 3황자가 들어와 그녀를 주먹과 발로 구타했다.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얼굴을 제외하고는 칼로 긁은 상처는 없었다.그녀의 얼굴에 어떤 글자를 새겼는지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고 얼굴에 새겨진 글자에 연연할 겨를이 없었다.바닥에 눕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장군님은 오지 않을 거야, 난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상국의 여장군이 되어서 이런 죽음을 맞이해야 되는 게 억울했다.앞으로 송석석에게 몰릴 영광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달갑지 않았다. ‘송석석은 나보다 출신 배경이 좋고 목숨이 나보다 조금 값지겠지.’ ‘나도 그런 출신이었으면 일찍이 공을 세웠을 거야.’송석석은 현갑군을 이끌고 서경군과 사국군을 뒤쫓아 철수하게 했다.전북망은 사람을 이끌고 송석석의 뒤를 바짝 쫓았다. 말 위에 올라탄 송석석의 수려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저리
송석석과 시만자가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전북망의 말을 들은 송석석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무슨 근거로 이 장군이 사국인에게 잡혀갔다는 것입니까?”“그런 뜻은 아니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이 장군이 서경 병사들을 뒤쫓았고 여태 돌아오지 않았소.”시만자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도성에 깔린 시신들을 일일이 확인해야겠습니다. 거기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그녀는 죽지 않았소.”전북망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북명군 전우들끼리 어찌 그런 저주를 할 수 있단 말이오?”시만자는 모닥불에 손을 쬐며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러니 전우도 아니지요, 그 여인이랑 같이 묶지 마십시오.”기가 찼던 전북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북망은 송석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잘못했소, 이방과 무관하오. 만약 다른 장병이 포로로 잡혔어도 구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오?”송석석이 되물었다. “만약 다른 장병이 포로로 잡혔다면 장군은 2만 명이나 되는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후퇴하고 있는 수십만 명이나 되는 적군 부대를 쫓아갈 것입니까?”전북망은 말문이 막혔다. “그건...”송석석이 답했다. “장군께서 장병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건 압니다. 이 장군이 적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증거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녀가 후퇴하고 있는 대부대에 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국경선을 벗어나면서 뒤쫓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장병이 위험에 처할 겁니다.”옆에서 이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몽동이가 탐탁지 않다는 듯 말했다. “옳습니다. 게다가 이 일대에 많은 유목민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강에 속하지 않지요. 만약 그들의 영지를 침공하게 되면 또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그는 유목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누군가가 함부로 그들의 영지를 침입하면 큰 사단이 일어난다는 것은 알고 있다.전북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송 장군은 계속 손 놓고 있을 거요? 포로로 잡힌 사람은 이방 한 사람이
화가 난 전북망은 송석석의 손을 거칠게 잡고 구석으로 성큼성큼 갔다. “포로로 잡힌 걸 알면서도 구하러 못 간다는 것이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오?”시만자가 그에게 채찍을 내던졌다. 전북망은 움켜쥔 송석석의 손을 풀어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시만자가 차갑게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일정 거리를 유지해서 하십시오. 가까이 붙지 마세요.” 전북망이 미간을 찌푸리며 시만자를 쳐다봤다. 그러나 시만자는 무공이 뛰어난데다가 그의 수하가 아니어서 관리하기 어려웠다. 애써 화를 억누른 전북망은 송석석에게 물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소?”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사막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고 초원이나 산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장군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현갑군을 보내 수색할 수 없습니다.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그럼 우린 여기서 뭘 기다리는 것이오? 그들이 포로를 돌려보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요?” 전북망이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송석석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네, 포로를 돌려보낼 때까지 기다려야지요.”전북망은 어이가 없었다. “미쳤소? 그들이 순순히 이방을 돌려줄 것 같소?”송석석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물론 쉽지 않겠지요.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성릉관 협정도 쉽게 얻은 게 아니잖아요.”전북망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소리요?”송석석이 전북망과 시선을 맞췄다. “수란키가 성릉관에서 대군을 이끌고 녹분성에서 철수한 게 이 장군이 북명왕께서 남강 전쟁을 원조한다는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정말 그 말을 믿었다면 장군이 될 자격은 없는 것 같네요. 병사도 못 될 것 같습니다.” 전북망도 물론 의심을 했다.마지막으로 이방에게 물을 때 역시 의심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협정도 체결됐기에 더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전북망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니까 수란키가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이오? 알려주시
송석석은 장작의 불길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장작 몇 개를 추가했다. 불길이 빠르게 마른 장작을 집어삼켰다. 일렁이는 불꽃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순간, 송석석은 장군부에서 친정집으로 돌아오던 날, 집안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핏자국을 봤던 날이 떠올랐다.가슴이 턱 막혀 제대로 숨 쉬는 것마저 힘들었다.송석석은 누구보다 이방이 죽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방이 죽는다고 해서 모든 원한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그녀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면, 수란키도 그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수란키는 이방을 쉽게 죽이지 않을 거라는 걸 송석석은 알고 있었다. 원수는 송석석더러 여기서 대기하라고 했다. 수란키가 원수에게 소식을 전한 것 같았다.원수는 이리에 자신의 정탐꾼이 있다고 했다. 송석석 시몬에도 정탐꾼이 있을 것 같았다.결국 그들이 여기서 기다리는 건, 원수의 뜻이면서도 수란키의 뜻이기도 했다.밤늦게까지 기다리면서 졸음과 피곤함이 쏟아졌다. 다행인 것은 장작불이 활활 타올라 추위는 피했다.후방에서 병사들에게 식량을 보내왔다. 볶음밥일 뿐이지만 전쟁터에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방 장군이 사람들을 데리고 식량을 조달하러 왔다. 그는 송석석에게 원수의 군령을 전달했다.“계속 기다리시오. 경계가 풀릴 때 즈음 교대로 자면 된다고 했소.”“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기서 대기해야 한다는 거요?” 송석석이 물었다.“원수님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상대를 쉽게 믿으면 안 된다고 했소.”송석석은 원수가 수란키와 단둘이 어떤 협정을 맺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원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방 장군 역시 원수의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군령이었기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식량을 전달한 방 장군은 다시 돌아갔다. 남강은 수복되었지만, 전쟁터의 시신들을 처리하지는 못했다. 희생된 장병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전쟁의 승리는 그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기쁨은 항상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동반했다. 같이
전북망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송석석은 현갑군의 부사령관이고 정5품 무장이다. 그녀가 내뱉은 말에는 무게가 실린다.전북망이 데리고 온 병사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현갑군이 함께 해주길 바랐다. 막 돌아온 그의 병사들은 피곤함에 찌든 상태다. 하룻밤 쉬었던 현갑군이 함께 한다면 서경군이나 유목민을 만났을 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전북망이 속삭였다. “현갑군과 함께 가고 싶소. 이렇게 부탁하오, 그간 내가 잘못했소. 당신이 내린 벌 기꺼이 받을 테니 제발 도와주시오. 이틀이나 기다렸지만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소. 이 장군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오. 그대가 이 장군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나도 알지만, 이것 또한 그녀를 찾은 뒤 전부 사죄하겠소.”송석석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사적인 원한과 상관없습니다. 현갑군은 여기서 움직이지 못합니다.”전북망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가 이리 애원을 하고 있는데, 왜 안 된단 말이오? 원하는 게 무엇이오?”옆에서 듣고 있던 시만자가 코웃음을 터뜨렸다.“아주 간절하게 부탁을 하네요? 너무 간절해서 당장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현갑군을 데리고 초원에 간다고요? 그러다가 서경군이나 유목민들을 만나면 현갑군을 내세우려고요?”“닥쳐라!” 시만자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 전북망은 고함을 질렀다. “네까짓게 뭔데, 감히 그딴 말을 하는 거지?”턱을 치켜든 시만자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웃기지도 않네. 네놈과 말 섞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신분을 논해? 네가 내 앞에서 방자하게 굴 깜냥은 돼?”“송 장군! 아랫사람 관리 좀 잘하시오! 주제도 모르고 내 앞에서 설치지 않소!”그러나 시만자보다 만두가 더 빨랐다. 주먹을 휘두르고, 두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전북망에게 달려들었다.주먹은 곧장 전북망의 머리, 얼굴, 몸을 강타했다.몽동이는 반응 속도가 조금 느려지긴 했지만 두 다리를 돌리며 풍차처럼 날아올랐다. 그렇게 날아와 전북망을 걷어찼다.단체 공격에 전북망
전북망의 안색이 변했다. “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소? 뭘 갚아준다는 거요?”송석석은 걸음을 옮겼다. 전북망이 절뚝거리며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송석석이 멈춰 설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바람 소리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매우 낮게 들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귀를 기울이세요. 바람 소리 외의 다른 것이 들릴 겁니다.”전북망은 마음을 진정하고 경청했지만 바람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송석석보다 무공이 약하고 내공도 부족하고, 바람 소리가 이리도 큰데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숨결을 전북망이 들을 리가 없었다.그는 송석석이 자기를 놀린다고 여겼다. 그래서 울화가 치밀었다. “말씀하시오, 도대체 뭘 되찾는다는 거요?”“생각해 보세요. 10만 명의 병사들이 왜 산에서 철수하지 않을까요? 왜 이 장군을 잡았을까요? 평화 협정을 체결한 뒤, 협정을 어기면서 남강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말을 마친 송석석은 몸을 돌려 떠났다. 전북망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석양이 구릿빛 피부의 전북망을 비췄다. 아름다운 얼굴선이 도드라졌다. 전북망은 조각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송석석은 이미 두 번이나 암시했다.그는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믿기지 않았던 전북망은 성큼성큼 송석석을 따라갔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엔 사내 문제밖에 없잖소. 그래서 이방을 위험에 빠뜨린 거잖소. 당신은 정말 끔찍하게 지독한 사람이오.” 전북망의 말을 들은 시만자가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내려는 순간, 송석석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신경 쓰지 마. 우리가 먼저 거리를 두자.”시만자는 채찍질로 분풀이를 풀려고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옳아. 똥이 무서워서 피해? 더러워서 피하지.”전북망이 아무리 화를 내봤자 그들은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고 도리어 그를 무시했다.그들은 입에 담기도 험한 말들로 전북망에게 모욕감을 줬다.한편, 오두막에 갇힌
그녀는 결코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비루하게 살아남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그녀는 사람이 평생토록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다시 일어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했다. 여장군이 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 충분히 강인하게 버틴다면 한 자리라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그래서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하지만 전북망은 그저 그녀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탈출 경로를 짜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번에 서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아시오? 합치면 백여 명이고, 시위만 해도 최소 예순 명이오. 내가 구해낼 수 있을 리 없잖소.”“혼자 할 필요 없으십니다, 장군님. 북명왕부가 도와줄 겁니다.” 이방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북망도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소리였다. “제가 서경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반드시 소승도 함께 데려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북명왕부는 소승을 못 본체 하지 않을 겁니다. 장군님은 단지 그들이 소승을 구할 때 저를 구해내면 됩니다.”전북망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온몸이 서늘해졌다. “뭐라고 하였소? 무슨 수로 서경 사람들이 소대장군을 데려가게 할 수 있다는 거요?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작정이오?”이방은 그를 흘겨보며 비웃었다. “알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 일을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를 구해 주시면 장군님과 저 사이의 빚은 깔끔하게 청산되는 겁니다. 앞으로 제가 죽든 살든 장군님과는 아무 상관없게 될 것입니다.”“아니, 난 받아드릴 수 없소.” 전북망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도와줄 수 없소.”“장군님, 장군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송석석이 남아 있겠지요. 장군님은 결국 저를 저버린 셈이 되는 겁니다.” 이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데도 저는 장군님을 위해 진술까지 바꿨습니다. 정말 조금의 정마저도 잊
담판을 앞둔 전달 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회동관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대리사 역시 밤새 재판을 진행했다. 형부에서는 이방이 자백한 이후로 줄곧 전북망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심지어 무릎을 꿇고 울며 애원하고 있었다.이방이 형부에 들어온 후 이렇게까지 약해진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택은 담판이 끝난 후 이방이 서경 사신에게 인계될 것이며 죽음도 쉽게 맞지 못할 잔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형수도 죽기 전에는 가족을 한 번 만날 수 있기에, 그는 오늘 밤 둘의 만남을 허락했다. 물론, 그 또한 감옥에서만 허용되었다. 이택은 전북망을 감옥으로 데려오라 명령하였다. 아전들이 감옥 문을 열어주자 전북망이 안으로 들어갔고 이택은 밖에서 대기했다. 당연히 전북망은 들어가기 전에 몸수색을 받아 어떠한 날카로운 물건도 지니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방이 자결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이방은 현재 여성 수감자용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너무 중요한 인물이기에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택은 엄중한 병력으로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작은 등불이 두 사람의 초췌한 얼굴을 비추었다. 성릉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의 그 당당함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오직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와 초라함, 그리고 절망과 혼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장군님을 위해 제 진술을 바꿨습니다.” 이방은 눈앞의 이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의지가 꺾인 모습에 그녀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다소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그들에게 성릉관 일은 장군님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니 장군님은 무사하실 것입니다.”전북망이 대답했다.“그건 사실이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소.” “하지만 장군님께서 개입하시기 전에는 소승이 모든 일의 주동자였습니다.”“그 말은 성립되지 않소. 황제와 형부는 믿지 않을 것이오.”이방의 얼굴이 더욱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상관없습니다. 서경이 이
수란석이 반사적으로 반박했다."말도 안 되오! 송석석이 아무리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우리 서경에서 제일 뛰어난 고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이오!" 장공주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손쉽게 제압했다지 않습니까? 서경의 고수가 권력에 눈이 멀어 스스로 무술의 한계를 정해버린 것과 달리 송석석은 어릴 적부터 만종문에서 무술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만종문이 어떤 곳인지 모르십니까?""그냥 하나의 무림 문파 아니오? 대체 뭐가 특별하단 말이오?"소란석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말했다. 비록 정영수가 송석석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눈에 선했지만, 그는 여전히 송석석의 무술 실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 했다. 만약 정영수를 이긴 게 북명왕이었다면 그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한 문파의 여제자가, 그것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한 무술 실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양안도 여성이 그렇게 강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비슷한 말을 했다.냉옥 장공주는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어휴, 이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그들의 불신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무지함은 그들의 자만에서 나온 것이었다.그들은 여성이 조정에 들어가 관직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상국뿐만 아니라 서경에서도 삼년에 한 번만 여성을 뽑아 조정에 들이는 데, 수많은 여인들이 단 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밤새도록 노력하고, 나태함은 한순간도 용납되지 않으며, 매일 세 시진밖에 자지 못한 채 긴장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음을 그들이 알리 만무했다.상국에만 하더라도 현재 여관은 단 한 명뿐인데, 그 사람이 바로 송석석이다. 그녀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현갑군의 지휘관을 맡을 수 있었겠는가?그녀는 심지어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운 바도 있었다.물론 그들의 눈에는 이런 모든 것이 북명왕이 그녀를
사여묵은 그가 충동적이고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이 판은 쉽게 풀렸고 그들은 즉석에서 정영수를 붙잡았기에 수란석은 충분히 회왕을 의심하고 회왕이 그들과 함께 짰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란석은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 말을 삼켰다. 그는 비록 충동적이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진 소경, 계속 심문하거라." 사여묵은 전혀 실망하지 않고 진이에게 명령을 내린 후 왕정에게 말했다. "수 대인을 회동관으로 모시고 이 일을 장공주께 보고하거라.""예!" 왕정은 명령을 받고 수란석에게 말했다. "수 대인, 가시지요."수란석은 정영수를 한 번 보더니 손을 내밀어 소매 주머니를 정리했다. 그 안에는 황제의 성유가 들어 있었고, 정영수에게 말을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정영수는 그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는 이미 버려진 졸개가 되었다. 비록 현장에서 붙잡혔지만 서경에서의 협상이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모든 책임을 혼자서 떠안아야 했다.수란석은 대리사를 떠나며 손과 발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고 마음속엔 계속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말로 매복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세 명만 있었던 걸까?’ 정영수의 몸에는 채찍 자국이 있었는데 그건 분명히 한 사람에게만 맞은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를 붙잡은 사람은 십여 명이 세 명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즉 북명왕은 미리 이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고 그저 정영수와 사사들이 싸움에서 밀렸을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수란석은 이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세 명이라면 그것은 마부와 여종, 그리고 북명왕비의 조합일 텐데, 그런 조합이라면 사사들이 없다 해도 정영수를 이길 수는 없다.아니다, 마침 그때 경위가 나타났다는 건 미리 준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 경위들이 정영수를 붙잡은걸까?그렇지만 그것도 이상했다.경위와 금군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그중에는 무공이 뛰어난 자는 거의 없었다.
약왕당 외에 두 개의 등불이 걸려 있었다. 사여묵 일행이 말을 타고 도착했을 때 송석석은 막 시만자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그녀가 나오자 수란석의 몸은 굳어졌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정말 실패한 걸까?’그는 분노로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 같았다. 회왕이다. 분명 회왕이다. 회왕이 서경과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것이 아닌, 상국이 보낸 첩자가 분명했다.송석석의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상처 입은 팔은 이미 붕대를 감고 새로운 옷을 입었다. 분명 누군가 그녀의 집에 가서 옷을 가져온 것이다.사여묵은 즉시 말에서 내리더니 약간 흔들리는 등불 아래를 급하게 걸어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소?"송석석은 불만과 억울한 기운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빨리 피하지 않았더라면 팔이 떨어져 나갔을 겁니다. 정 대인은 저와 무슨 큰 원한이 있기에 사람까지 데려와 저를 해치려고 하는 겁니까?"그녀는 화를 내면서도 사여묵의 손을 꼭 잡고 가볍게 손끝으로 두드리며 괜찮다는 표시를 보였다.그 말을 들은 수란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몇 번이나 쳐다보며 그녀가 진짜 북명왕비가 맞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금 정영수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가 그런 짓을 했다니, 말도 안 됩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손을 꽉 잡고 몸을 돌려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대리사에 가서 확실하게 확인해 봅시다."수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북명왕이 왕비를 말에 태우자 그 옆의 여종이 능숙하게 말에 올라 기민한 동작을 보였다. 이는 평범한 여종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밤늦게 대리사에 도착했지만 대리사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잡혀 온 정영수와 다섯 명의 사사는 아직 감옥에 가두어지지 않았고 소경인 진이가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다.심문실에서 정영수를 본 수란석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그는 온몸이 엉망이었고 머리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굵은 채찍 자국이 얼굴을 거의
정신을 차린 수란석은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갔다.1층에는 몇 명의 호위 복을 입은 사람들이 계산대 근처에 서서 보고하러 온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들어왔을 땐 주인장과 하인밖에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건지 궁금했다. 보고하러 온 사람은 왕정이었는데, 그는 세 명의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수란석을 보자 그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수 대인, 서경은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감히 송 대감에게 암살 시도를 하다니요?"수란석은 송석석이 보이지 않자 어쩌면 이것이 덫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십여 명을 이끌고 고작 세 명을 상대하는 일이니 정영수가 절대로 실패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정영수는 무공이 매우 높아 만약 그들이 미리 대비했다면 최소한 붙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송석석은 이미 잡혀갔고 그들은 그것을 서경에서 했다고 추측하여 이곳에서 그를 속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는 더욱 분노하며 사여묵을 향해 돌아서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북명왕,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연극을 꾸며서 우리를 모함하려는 겁니까? 내일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겁니까? 너무 비열하지 않습니까?"사여묵은 그에게 대꾸하지 않고 왕정에게 눈짓하며 말했다."왕비가 다쳤다고 했소? 그럼 괜찮은 건가?""큰 상처는 나지 않았고, 팔을 다치고 지금 약왕당에서 치료 중입니다. 치료가 끝난 뒤에는 대리사로 갈 예정입니다."사여묵은 왕비가 정말로 다쳤다는 말에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서경의 정영수가 한 짓이라고 확신하는게요?"왕정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합니다. 정영수 외에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십여 명 있었습니다. 송 대감이 몇 명을 처치했고 나머지는 모두 대리사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의 입속에는 독이 있었지만 송 대감이 모두 제거했습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음해하려 한다면 내일 협상은 필요 없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왕경루는 아직 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입구에는 "영업 종료"라는 글자가 적힌 양각등 두 개가 걸려 있었다.3층의 별실은 원래 차를 마시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술 한 주전자와 몇 가지 안주가 놓여 있었다.사여묵는 호위와 함께 오지 않았고 수란석도 단 한 명의 하인만 데리고 왔는데 하인은 문 앞에 서 있었다.술은 이미 절반을 마셨고 두 사람은 내일 있을 협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수란석은 그를 이곳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명확했기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작전은 이미 끝났기에 반드시 잡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반면, 사여묵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내일의 협상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웃을 뿐이었다. 그들은 북명왕이 아주 대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했지만 막상 수란석은 단 몇 마디만으로 그를 속일 수 있었다.그렇다고 경계를 푸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의 협상은 상국이 매우 중요하게 여길 것이고, 자기들이 불리하다는 걸 알기에 자국의 조건을 탐색하려 할 것이다.그가 웃긴다고 생각한 것은 북명왕은 마치 광대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그는 북명왕의 오만함이 참을 수 없어 웃으며 말했다."왕야께서는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허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황제께서 왕야에게 군권을 넘길까요? 제가 알기로는 귀국의 황제는 왕야를 두려워하시기에 다시 군을 맡길 리가 없습니다."사여묵은 담담히 대답했다."그건 상황을 보고 결정할 문제지 폐하의 뜻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상황요?" 수란석은 여전히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면 왕야는 군을 이끌고 나가서 과연 전세를 돌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다만...""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사여묵의 눈빛에 담긴 자신감은 수란석의 걱정을 일으켰지만 그들이 이미 선수를 친 상태에서
양안은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것과 황제의 명령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겨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장공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물러나기를 원하면 당연히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북명왕비를 잡는 것 역시 이방이 선태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두 군이 전쟁을 벌이면 북명왕비는 성릉관 전장에서 포로로 나타날 것이고 소가는 그대로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수란키 대장군이 선태자를 위해 체결했던 그 부끄러운 조약처럼 될 것입니다."장공주는 이를 듣고 격노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소! 그때 수란키 대장군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방이 우리나라의 태자를 잡았기 때문이오. 당시 황제의 병세가 위중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국본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소. 그런데 북명왕비와 태자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그대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내 말이 틀렸소? 그대들은 송석석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의 장군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군에 대해서는 아냐는 말이오!"양안은 송석석이 대단하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회안 대장군이고 그녀도 남강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지만, 결국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영수와 회왕의 사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무작정 나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명왕비는 반드시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둬둘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회왕부에 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진성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협상이 실패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서경으로 돌아가면 되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장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경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선포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