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는 식사 후 디저트를 먹는 습관이 없지만, 나상준이 직접 접시에 집어줬는데 먹지 않는 게 더 문제다.차우미는 어쩔 수 없이 디저트를 천천히 음미했다.나씨 집안은 식사 중에 말하는 습관이 없고, 차우미도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다. 나상준은 더욱 그렇다.그렇게 둘은 소리 없이 식사했다. 나상준은 차우미가 점심을 먹지 않은 것처럼 수시로 음식을 집어줬다.차우미는 처음엔 나상준이 자기가 점심 먹은 줄 몰랐다고 생각해서 음식을 집어줄 때 일부러 설명해주기도 했다.하지만 나상준의 조금만 더 먹으라는 한 마디에 차우미의 입을 닫았다.그는 전에 차우미에 반찬을 집어주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차우미는 평소에 너무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 너무 배부르게 먹으면 불편하므로 나상준이 지금 반찬을 집어줘도 먹을 만했다.나상준도 많이 집지 않고, 적당한 양으로 준다..그래도 다 먹으면 배가 터질 것 같다.나상준은 돈을 내고 차우미와 함께 식당을 떠났다. 차우미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니 벌써 두 시가 넘었다.식당에서 나와 차우미는 앞서가는 사람을 보고 물었다.“이따가 바빠? 바쁘면 먼저 가서 일 봐. 나도 일하러 갈게. 언제 시간이 되면 다시 이야기하자.”나상준은 차 뒷좌석 문을 열고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저녁에.”차우미는 나상준이 저녁에 시간이 있다고 단번에 알았다.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저녁에 다시 얘기하자.”말을 마치고 차우미는 나상준이 차 문을 열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 차에 올라탔다.그는 차 문을 열어 놓고, 몸을 한쪽으로 기울인 채 그녀가 차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차우미가 차에 오르자 나상준도 따라 올라탔고, 차는 곧 호텔로 향했다.레스토랑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십여 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차우미는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둘은 차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상준은 차에 오른 후 의자 등받이에 기대 눈을
나상준의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밤을 새워서 일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않다.차우미 역시 낮에 얘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물론 나상준이 동의하지 않으면 올라가서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어쨌든 회사에서는 나상준이 상사이고 차우미는 직원이다.대표님의 말을 감히 듣지 않을 수 없다.전화가 고는 중이다.차우미는 휴대전화를 들고 나상준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죄송합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잠시 연결이 되지 않사오니 잠시 후 다시 걸어주세요...”휴대전화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인공 목소리에 차우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의아해했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는 걸까?차우미는 생각해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옷방에 가서 외투를 입고 나와 39층으로 갔다.늦은 시간이라 호텔 안은 아주 조용했고, 긴 복도에는 차우미가 자신의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텅 비어있었다.나상준의 방을 찾아서 문을 두드리려 했으나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닫혀 있지 않았다.마치 그녀를 위해 일부러 문을 열어 준 것 같았다.차우미는 잠시 멈칫하다가 문을 두드렸다.“나상준?”“...”응답이 없고 조용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바쁜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이 없어서 문을 열고 그냥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거실은 평소와 같았다. 재킷은 소파에 버려져 있었고, 탁자 위에는 그의 휴대전화와 손목시계가 놓여 있었다.이를 본 차우미는 바로 알아챘다.나상준은 목욕하러 갔다.차우미는 소파에 앉아 나상준이 다 씻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그때 욕실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차우미는 창밖을 보고, 다시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보니 5분 안 돼서 10시였다.전화로 나상준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올라왔다.차우미는 앉아서 마치 선생님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조용히 앞만 보고 기다렸다.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탁자 위의 휴대전화에서 띵 하는 소리가 들렸다.메시지가 왔다.차우
나상준은 두 발짝 떨어진 차우미를 바라보며 안색을 살폈다. 특히 그녀의 맑고 청량한 두 눈을 보는데 거절이라고 또렷이 적혀 있는 듯했다.물을 따르든 업무 이야기하든 모두 거절했다.조금 전까지도 가까웠던 사람이 갑자기 멀어져 그동안 쌓은 정이 다 무너진 것 같았다.나상준은 말을 하지 않고, 눈동자도 그대로 멈춰 섰다. 그의 깊은 눈동자는 차우미를 쳐다보는데, 무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압박감이 너무 강한 눈빛이었다.차우미는 시선을 살짝 거두고는 다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일찍 쉬고 낮에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몸도 덜 상하고.”이번에는 말투가 방금보다 아주 부드러워졌다. 마치 나상준과 상의하려고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나상준과 잘 소통하기를 바랐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안색 변화를 보고, 그녀가 방금 한 말에 마치 낮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과 같이 얼굴에서 거리감이 덜 느껴졌다. 나상준은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돌아가 봐.”나상준의 말에 차우미는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나상준이 승낙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 눈빛에서 조금의 승낙도 보이지 않고, 압박감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렇게 흔쾌히 승낙할 줄은 몰랐다.차우미의 안색이 바로 회복되고 웃음을 지었다.“그래, 너도 일찍 쉬어. 내일 시간 되면 다시 업무 얘기하자.”차우미는 더는 머물지 않고 스위트룸을 떠났다.가기 전에 열려 있던 문을 닫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보지 않고 손에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방안은 다시 정적으로 돌아갔다.차우미가 왔었음을 증명하는 그녀의 숨결만이 방안에 감돌고 있었다.나상준은 움직이지 않고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우미가 떠나면서 이곳 온도는 다시 차갑게 변했다.그 온도는 마치 나상준의 눈동자에서 발산하는 차가운 시선처럼 낮았다.꽤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방안의 온기가 다 차가워져서야 수건을 소파에 걸치고, 바에 가서 술 한
로앤.“죄송합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 통화 중입니다.”하성우는 휴대전화에서 전해오는 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린 채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어떻게 된 거야? 방금까지 아무도 안 받았는데, 지금은 통화 중이야. 일부러 내 전화를 안 받는 거야?”하성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꺼진 화면을 보며 기분 나쁘게 중얼거렸다.양훈은 맞은편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하성우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듣고 말했다.“네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네.”하성우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어 말했다.“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고? 그럼 언제 전화해야 하는데?”“나상준 이 시간에 절대 안자. 겨우 10시인데, 적어도 11시가 되어서야 자. 그런데 내가 지금 전화하는 게 뭐 어때서.”양훈은 하성우의 무식한 말을 듣고 아예 그를 외면했다.바둑을 두면서 참견하지 않았다.하성우는 양훈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머리를 굴려 대답했다.“아! 알았다!”“일 보고 있는 거네!”말을 다 하고 하성우 자신도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차우미가 나상준을 받아들이지 않겠지?”“아니다. 백 퍼센트 거절할 거야. 둘이 결혼할 때도 아무 일 없었는데, 이혼했는데 차우미 성격으로는 절대 불가능해.”“그런데...”하성우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눈을 웃으면서 실눈이 떠졌다.“불가능하긴 한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도 보장할 수 없지.”그러고 하성우는 자기를 신경 쓰지 않고 바둑을 두는 양훈을 바라보며 스스로 감탄했다.“몰라봤네. 당신 같은 모태솔로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줄 알다니.”“대단해!”이 말을 들은 양훈은 잠시 동작을 멈추더니 이어 말했다.“앞으로 저녁에는 전화 작작 해.”양훈의 이 말은 하성우를 주의하라고 하는 말이다.“알았어.”“이 남자는 말이야. 하나를 알려주면 백을 알아요. 잘 알아들었어.”“그런데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는데. 차우미랑 다시 만난다는 게 어려운 상황인데. 여가현이 전 남자친구랑 재결합해서 지금 막 깨가 쏟는다는 소식을 들었
양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바둑판 위에 바둑을 두며 말했다.“그럼 꽤 오래 걸릴 텐데,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하성우가 심나연을 끔찍이 아끼는 것을 듣고, 양훈은 이 계획에 흥미가 사라진 게 분명하다.그러나 하성우는 알아듣지 못했다.“그렇게 오래 안 걸려. 기껏해야 보름 정도면 될걸.”“괜찮아. 나연이 발 다 나으면 바로 실행하는 거야.”양훈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때까지 기다리면 둘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호텔 안.나상준은 통화를 마치고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바깥을 바라보며 술잔에 남긴 술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침실로 들어갔다.깊은 밤의 적막이 소리도 없이 방안에 퍼졌다.차우미는 방에 돌아가서 씻고 쉬었다. 나상준의 이해심에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이튿날까지 꿀잠을 자고,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씻고 아침 식사를 했다.아침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떠올랐다.차우미는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시간을 보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차우미는 호텔로 돌아가서 일하면서 나상준의 연락을 기다리려고 했다.같이 나예은 선물도 고르고, 쉬는 시간에 업무도 보고할 수 있다.다만 나상준이 시간이 있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차우미는 오늘 호텔에서 나상준을 기다리고, 나가지 않고 일을 한다고 얘기했었다.바쁘다고 하기엔 그리 바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가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자료 검색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오전이 지나간다.차우미는 배달을 시켜서 점심을 먹고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저녁이 다 돼가고 바깥은 어두워졌다.하늘이 어두워지자 비로소 휴가가 끝나가고 밤이 다 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휴대전화를 들어서 시간을 보니 어느덧 6시가 넘었다.나상준이 여전히 바쁠 것 같아서 차우미는 저녁도 배달시켜서 호텔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저녁 식사를 다하고 일을 계속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 9시가 되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연락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
저녁 6시.사우스 호텔. 회의실.하종원은 직원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원래는 일주일 동안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일주일도 안 돼서 일을 끝냈네요.”“너무 효율적인데요.”“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하고, 여러분의 정성과 노력에 감사드립니다.”하종원은 말을 마치고, 직원들을 보며 몸을 굽히며 감사함을 표했다.다들 하종원의 이 동작을 보고 급히 손사래를 쳤다. 진정국도 급히 하종원을 부축하여 말했다.“교수님, 이러시는 게 더 부담스러워요. 얼른 일어나세요.”다들 하종원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라서 매우 당황하면서도 감사했다.하종원은 진정국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여러분이 그동안 고생한 거 저도 다 압니다.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번 일은 절대 할 수 없었을 거예요.”“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데, 저희 마음도 교수님과 같으니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다들 진정국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교수님, 우리 다 같은 목표로 여기까지 왔잖아요. 미래를 위해서,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요.”“안 그러셔도 됩니다.”“맞습니다. 교수님이 이러시면 저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다들 진심으로 하종원에게 얘기하고 있다. 집을 떠나 이렇게 멀리 일하러 와서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자식들도 보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고, 하종원의 말처럼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하고 신경도 많이 쓰는 것이다.하나도 힘들지 않다.직원들의 말을 듣고 있던 하종원은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여러분, 감사합니다.”차우미는 따라 일어서서 하종원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녀의 마음도 뭉클해졌다.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돈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감정을 추구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꿈을 추구한다.하종원의 말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명예도 이익
직원들은 하성우와 상준이 온 줄도 모르고, 웃으며 시끌벅적하게 안에서 걸어 나왔다.차우미는 그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조용히 있었다.하성우는 호텔에서 사람들이 서서히 나오는 것을 보고 똑바로 섰다.“나왔다. 나왔다.”뒤에서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걷는 차우미를 한눈에 알아봤다. 눈에서 빛이 나더니 옆에서 통화하고 있는 사람을 쳐다봤다.나상준은 항상 일도 많고 전화도 많이 걸어와서 계속 전화를 받고 있었다.이때, 나상준은 휴대전화를 들고 조용히 뒤따라오는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차우미는 거대한 아우라도 없고, 옷차림도 꾸미는 것도 아주 평범했다. 아무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얼굴이라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었다.매우 조용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그녀를 놓칠 수도 있다.하지만,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은 다 보이지 않는다.눈에 오직 그녀밖에 담기지 못한다. 그녀 말고는 누구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나상준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걷고 있는 차우미를 보며, 다른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자신의 눈길로 끌어들이는데, 자신의 세계로 가두고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하성우는 나상준의 눈빛이 마치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성우야. 나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이 소리에 하성우의 웃음을 끊기고, 하성우는 눈을 깜박이며 소리를 따라 보는데 진정국이었다.맞다. 진정국이 한 말이다.지금 차우미를 제외하고 다들 하성우와 나상준을 보고 있었다.그러나 모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진정국과 하종원을 제외하고 그들과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진정국의 한 마디에 모두 하성우와 나상준에게 관심을 쏠렸다.특히 나상준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어쨌든 하성우와 달리 매우 바쁜 사람이고,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차우미는 진정국의 말을 듣고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었다.순간, 그녀의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호텔 밖에 서 있는 하성우와
두 사람은 5일 동안 연락도 없고, 만나지도 않고, 아무런 엮임도 없었다. 지금 차우미가 나상준을 5일 만에 다시 보는데, 가까운 거리에 약간의 서먹함이 느껴졌다.나상준이 차 문을 여는 것을 보고 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가 차에 올랐다.회성에서의 일이 끝나면 그녀와 나상준도 더는 만나게 될 일이 없다.여기에서 마지막 업무, 그리고 해야 할 몇 가지 일을 실수하지 않고 잘할 것이다.나상준은 조용히 다가오는 차우미가 자신의 앞을 지나 차에 타는 것을 보는데, 그녀의 몸에 은은한 향기가 그의 주위에 가득 퍼졌다.익숙한 향기고 그녀만의 향기였다.그는 손을 약간 뻗고 차에 올랐다.문이 닫히고 주차장을 빠져나가 앞차를 따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회성의 6시는 이미 밤이어서 바깥은 어두워졌다. 딱 퇴근 시간에 맞춰서 차량이 많았고 시끌벅적했다.차 안은 시끌벅적한 밖과 달리 조용했다.나상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차우미는 할 말이 있었다.그녀는 내일이면 일이 끝날 텐데, 계속 회성에 있을 리가 없다.그래서 나상준에게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어보고, 같이 나예은 선물을 사러 가려고 했다.선물을 다 사면 같이 청주에 가서 나예은과의 약속을 지키면, 차우미도 안심하고 안평시로 돌아갈 수 있다. 나상준과도 더는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다만, 두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탓인지 갑자기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데 이 적막한 고요 속에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차우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변이 없는 한, 회성에서의 일은 내일이면 끝날 수 있어. 넌 언제 시간 되는데? 예은이 선물 사서 청주에 가서 보러 가야지.”나상준은 휴대전화를 들고 일하지도 않았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지도 않았다. 두 눈을 뜨고 정면을 보면서 진지한 표정이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옆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좁은 차 안에서 봄바람처럼 그의 마음을 흔들렸다.“오늘 밤이랑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