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준의 강한 힘에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엄청나게 들어갔다가 서서히 풀렸고, 그녀도 잠시 그가 무슨 생각으로 자기를 잡았는지 몰라서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차우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물었다.“왜? 무슨 일 있어?”나상준은 잡았던 손을 놓으면서 조심스레 말했다.“우미 씨, 그냥 여기서 씻으면 안 돼?”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긴장했던 차우미는 그의 황당한 물음에 실소를 터뜨리면서 답했다.“옷들이 다 아래층에 있어서 거기서 씻는 게 편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피곤하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상준 씨가 먹은 약 중에 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이 있어서 잠이 잘 올 거야.”“응, 알겠어.”모처럼 나상준은 차우미의 말에 고집을 피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차우미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스위트룸을 나갔고, 나상준도 가녀린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본 뒤 돌아서서 침실로 들어갔다.자기의 방에 들어온 차우미는 부랴부랴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그의 스위트룸에서 눈을 조금 붙인 탓인지 잠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지도 않았고, 샤워를 하니까 정신이 아까보다 더 말짱해진 것 같았다.잠시 후, 그녀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방 안에 있는 짐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에야 휴대폰과 방 카드를 가지고 나상준의 스위트룸으로 향했다.이미 저녁 열한 시가 넘은 시간이라 호텔 안은 엄청나게 조용했고, 그의 스위트룸에도 정적만이 맴돌았다.나상준이 이미 침실에 들어가서 자는 듯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를 위해 특별히 열어둔 것 같이 침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침실의 등도 여전히 켜져 있었다.주위의 모든 것이 마치 깊은 겨울잠에 빠진 것처럼 아무런 기척이 없자, 차우미는 자기도 모르게 숨소리조차 나지막하게 내쉬면서 침실로 들어갔다.다음 순간, 그녀는 방 안의 광경을 보고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도
차우미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건 내가 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잖아. 넌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라서 방심하면 안 돼. 난 정말 괜찮으니까, 내 말대로 얼른 침대에 가서 자.”“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갑작스러운 그의 반문에 차우미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이때, 나상준이 담담한 태도로 말을 이어 나갔다.“넌 더 이상 내 아내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가 네 말을 꼭 들어야 하는 이유는 없는 거 아닌가?”나상준이 예상치 못한 말을 계속 내뱉자, 그녀는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 먼저 잘 테니까 방해하지 마.”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상준은 소파에 다시 누웠고 담요를 덮으면서 눈을 감았다.어린이 맞춤용으로 제작된 담요가 건장한 나상준한테는 너무 작았고, 그가 조금만 움직여도 발이 튀어나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그러나 차우미는 입안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맴돌 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그렇다고 해도 나상준과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오늘 밤 무조건 소파에서 자겠다는 그의 강경한 태도에 그녀는 결국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그래, 담요는 너무 얇아서 감기가 심해질 수 있으니까 여벌 이불이라도 있는지 찾아봐야겠어.’그러나 그녀가 옷장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여벌 이불은 존재하지 않았다.그도 그럴 것이 호텔에서 이불을 더 배치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늦은 시간이라 웨이터에게 연락한다고 해도 언제 가져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민에 빠져있던 차우미는 금세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빠른 걸음으로 스위트룸을 빠져나와 자기 방으로 향했다.‘아참, 내 방에도 이불이 있었지. 그걸 가져다 상준 씨한테 덮어주면 되겠네.’나상준은 차우미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방문이 쾅 닫히는 소리를 듣고 슬며시 눈을 떴다.그러나 그는 차우미가 무슨 생각으로 급하게 방을 나갔는지 아는 데다가
차우미가 허리를 숙여 나상준에게 다가갈수록, 숨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머리카락은 파도처럼 순식간에 밀려와 그를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그녀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마치 손으로 그의 눈, 코, 입을 쓰다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게다가 나상준이 회성에 돌아온 이후, 차우미와 가까이 지내면서 맡았던 은은한 향이 풍기자, 그는 그 향기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나상준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눈을 지그시 감았지만, 그녀의 숨결, 그녀의 온도가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한 꽃향기처럼 점점 더 선명해졌다.심지어 전 세계에 오직 그녀만이 남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그러나 괴로워하는 나상준과 달리 차우미는 이불을 덮어주는 데 집중하느라고 두 사람의 거리가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얼마 후, 그녀의 끈질긴 노력 끝에 그의 온몸이 이불에 꽁꽁 싸여 있게 되었고, 마치 큰 번데기가 소파에 누워 머리만 내놓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차우미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치아까지 드러내면서 환한 미소를 짓다가 그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한마디 했다.“자, 됐어!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잘 자.”말을 마친 그녀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 침대 옆에 두었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다음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환했던 침실이 순식간에 캄캄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어둠에 점차 적응되자, 나상준의 눈에 창밖의 불빛이 들어왔고 차우미의 실루엣도 보이기 시작했다.그는 맞은편 침대에 누워있는 차우미를 한참 동안 조용하게 지켜보았다.차우미는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져 내려왔고 연신 하품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반면, 나상준은 그녀의 쌕쌕대는 소리를 들으며 오랫동안 뒤척였다....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차우미가 침대에서 일어나 짐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이미 정리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그건 바로 평소 일찍 깨나는 나상준이
사람들은 문이 닫히고 나서야, 비로소 나상준과 차우미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었다.하종원은 두 사람을 볼 때마다 흐뭇하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고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보기 참 좋네.”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단번에 하종원이 자기의 손자도 차우미처럼 참한 아가씨를 만나서 일에 매진한다면 마음이 놓인다는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이에 진정국을 포함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맞장구를 쳤다.“다 훌륭해요.”“맞아요, 다들 훌륭하고 말고요.”하종원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고개를 가로저었다.정말로 누구의 자식이나 똑같이 훌륭하다면 부러워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한편, 차우미는 룸을 나오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오늘 아침 호텔 웨이터에게 건네받은 택배기사의 전화번호를 입력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모든 일에 철두철미한 편인 그녀는 이미 식당에서 호텔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인했고 시간을 맞춰서 택배기사한테 연락한 것이었다.나상준도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느긋하게 걸으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통화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전화기 너머로 택배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누구시죠?”차우미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했다.“안녕하세요, 제가 특산품을 좀 부치려고 하는데 지금 사우스 호텔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특산품이라면 혹시 신선식품인가요?”“아니요, 이미 다 포장되어 있는 선물 세트에요.”“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택배를 배송 중이라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30분 정도 걸릴 것 같네요.”식당에서 호텔까지 차로 20분 정도가 소요되었기에 시간이 맞게 떨어질 것 같았다.“네, 기다릴게요. 호텔에 도착하시면 바로 3918로 와주세요.”“알겠습니다.”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자, 차우미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두 사람은 식당 밖에 주차된 차 앞에 도착했고 나성준이 차우미에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고맙다고 말
나상준은 엄마한테서 걸려 온 연락을 무시하고 차에서 내렸으며 양복 점퍼를 손목에 걸친 채 호텔로 저벅저벅 들어갔다.차우미도 그의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으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차에서 내린 다음 그의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상준의 휴대폰이 조용해졌고 급한 일이 아닌 듯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게다가 그가 휴대폰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연락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호텔 로비로 들어온 두 사람은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상준이 묵는 스위트룸으로 향했다.어젯밤 그녀는 택배를 부쳐야 할 특산품들을 스위트룸으로 가지고 와서 거실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았고, 오늘 아침에 시간을 내서 특산품들을 선배 가족에게 보낼 것과 부모님께 보내드릴 거로 나누어 놓았다.그녀는 원래 선배와 여가현한테도 특산품을 보내고 싶었지만, 선배 가족과 자기 가족한테 주는 것만으로도 양이 만만치 않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방문을 열자, 호텔 측에서 청소를 해놓은 듯 방안은 매우 깨끗했고 쓰레기통도 전부 비어 있었지만, 다른 물건들은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차우미는 먼저 나상준에게 약을 챙겨주기 위해 가방을 아무렇게나 소파에 던져놓고 주방으로 가서 물을 끓이고 컵을 씻었다.얼마 뒤, 그녀가 끓은 물을 컵에 따르려는 순간, 미리 연락했던 택배 기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물을 컵에 다 따른 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아가씨, 10분 정도 있으면 도착할 것 같은데 지금 호텔에 계시나요?”“네, 3918호로 오시면 됩니다.”“알겠어요.”차우미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도로 넣고, 뜨거운 물을 호호 불면서 먹기 좋은 온도로 식혔으며 먹어야 할 약들도 챙기기 시작했다.한편, 나상준은 방에 들어온 이후로 거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차우미는 약과 물을 들고 나상준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상준 씨, 약 먹어.”나상준은 그녀의 부름에 휴대
차우미는 그의 물음이 조금 의외였지만, 그의 표정으로 보아 별 의도 없이 물어본 것 같았다.그녀는 나상준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두 군데 보낼 거야.”나상준의 시선은 여전히 특산품에 향했고,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차우미도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선배 가족들한테 선물할 특산품들을 다시 한번 체크하려고 했다.그 순간, 스위트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차우미는 잠시 멈칫하다가 문을 열려고 나갔다.“도착했나 보네.”그녀의 예상대로 문을 열자, 택배 기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아가씨, 택배를 부치시려고요?”차우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들어오세요.”“알겠습니다.”그녀는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특산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것들을 두 곳에 나눠 부치려고 하거든요.”택배 기사는 선물 포장된 수십 개의 특산품을 보고 놀라움을 그치지 못했다.“이렇게 많이요?”차우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하하하, 좀 많긴 하죠.”“괜찮아요, 배송 주소를 알려 주시면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네, 잠시만요.”곧이어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받는 사람의 인적 사항과 주소를 말하기 시작했다.“첫 번째 주소는 영소시에요...”“아가씨, 휴대폰을 저에게 주시겠어요? 제가 주소들을 스캔하면 돼요.”“알겠어요.”차우미의 휴대폰을 건네받은 택배 기사는 빠르게 두 개의 도착 정보를 스캔하고 말했다.“아가씨, 물건들이 많아서 헷갈릴 수도 있으니까 어디에 보내야 할 건지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래요?”그녀는 택배 기사가 혼동할 것을 예상이라도 했듯이 미리 양쪽으로 갈라놓았던 특산품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왼쪽에 있는 특산품들은 영소시에 보낼 거고, 오른쪽에 있는 특산품들은 안평시에 보내면 돼요.”안평에 친척들이 많은 관계로 부쳐야 할 선물 더미가 많았고, 선배의 가족에게는 예의상 보내는 거라서 양이 많지 않았다.택배기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가씨가 말한 대로
“일단 카톡을 추가하고 돌아가서 포장까지 다 하고 나서 저한테 택배비용을 알려주셔도 상관없어요. 그리고 택배를 보내기 전에 저한테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문제없습니다.”모든 확인을 마친 후, 택배기사는 차우미의 카톡을 추가하고 자리를 떴다.그녀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몇 시지? 설마 시간이 너무 지체된 거 아니야?’차우미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오후 근무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남아있었다.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오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후, 나상준에게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올라가자.”사실 두 사람이 호텔 정문 앞에 서 있는 동안,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상준을 힐끔힐끔 쳐다봤다.그도 그럴 것이 큰 키에 황금 비율을 가진 그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차우미의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그의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넘쳐났다.“응, 그래.”스위트룸에 들어가자마자 차우미는 물건도 부쳤고, 나상준이 약도 먹었으니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는 휴대폰을 넣으면서 말했다.“나 갈...”이때, 나상준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예은이는 뭐 좋아해?”잠시 멈칫하던 차우미는 이내 그의 말뜻을 알아채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예은이는...”“너도 급한 일은 다 처리한 것 같고 나도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나가서 돌아보자.”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고 곧장 밖으로 향했다.오후에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정리하려던 차우미는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멍하니 서 있다가 앞장서서 나가는 그를 보고 어안이 더 벙벙해졌다.나상준이 조카인 나예은에게 선물을 사주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한 번도 어린아이의 선물을 산 적이 없는 데다가 아직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어서 또래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몰랐다.그러나 나예은이
그는 조금 전 그녀가 거절한것에 대해서 한 치 숨김도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차우미는 잠시 멈칫했다. 속눈썹이 살짝 떨렸고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조금 전 그녀의 망설임이 나상준에게 영향을 끼쳤다.차우미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까 너의 말이 너무 갑작스러웠을 뿐이야. 그리고 택배를 보내고 나서 일을 하려고 생각했을 뿐이고 다른 이유는 없었어.”나상준이 직접 말을 꺼낸 이상 그녀도 당연히 해명해야 했다. 소통을 해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나상준이 말했다.“너는 일하러 가도 돼. 나 혼자 갈 수 있어.”이 말은 방금보다 더 직설적이였으며 한 치의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이전 같았으면 이미 떠났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차우미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정리하는 일은 아직 급하지 않아. 너보다 내가 시간이 더 여유로워서 이 정도는 괜찮아.”“평소에 바쁜데 이렇게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지. 먼저 같이 가서 선물을 고르고 나서 일을 해도 늦지 않아.”나상준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차우미가 말했다.“내 말은...”“나를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절대 손해 보게 하지 않지.”차우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상준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말을 끝내고 그는 뒤돌아서 갔다. 그는 차우미의 해명을 인정하면서도 그녀의 도움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태도를 밝혔다.그는 보답할 것이라는 뜻이였다.차우미는 그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로 도움에 대해 보답을 바란 적이 없었다. 친구로서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정말 못 도우면 다시 거절한다.뒤돌아서 가는 나상준을 바라보며 차우미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 직진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상준이 바로 그런 사람 같았다. 특히 방금 전의 말은 분명하게 직진남의 말투였다.이 생각에 차우미는 웃음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