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저 누나에게 할 말 있어요.”전민수가 재빨리 말했다. 그는 차우미의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어제 나상준의 뒤를 따라온 전민수는 혹시 차우미를 볼 수 있을까 호텔에서 기다렸다.그도 아주 낮은 확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던 그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뭐라도 해보고 싶었다.그렇게 그는 진짜로 차우미와 만나게 되었고 아주 기뻐했다. 전례 없던 기쁨이었다.이런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줄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마음속 말을 모두 하고 싶었다.전민수에게 손목이 잡힌 차우미는 멍해졌다.차우미는 남자애가 모르는 사람의 손목을 덥석 잡을 정도로 담력이 있을 줄 몰랐다.그녀는 재빨리 전민수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전민수는 힘이 대단했다. 그녀는 한동안 전민수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차우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너...”“그 손 놔.”차우미가 전민수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굵은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조성했다.로비는 조용해졌고 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은 차우미는 그를 돌아봤다.나상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차우미에게 향했던 시선이 지금은 전민수에게로 향해 있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깊은 심연과도 같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깊은 심연에 빠질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은 전민수는 나상준을 바라봤다. 나상준의 무서운 눈빛에 전민수는 무의식적으로 꽉 쥐고 있던 차우미의 손목을 놓아줬다.하지만 전민수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시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조금 전보다 더 꽉 말이다.전민수는 턱을 치켜들고 두려움 없는 확고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당신은 누나의 남편도 아니잖아요. 저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은 상희 외삼촌이잖아요. 상희가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그 사진 속의 여자를 보면서 상희가 외숙모라고 했어요. 그 여자는 누나가 아니었어요. 당신
“임상희...”그의 묵직하고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사람을 긴장시켰다.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은 전민수는 고개를 들었다.“네, 상희 맞아요. 당신이 상희 외삼촌이라고 상희가 알려줬어요. 당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결혼 생활 3년 동안 아이도 갖지 않은 거라고 그랬어요. 당신은 줄곧 그녀를 사랑했다고 들었어요. 상희도 그 여자를 외숙모라고 불렀었고요.”“상희도 당신의 와이프가 아닌 당신이 사랑하는 그 여자를 외숙모로 생각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상희가 우리에게 당신이 사랑한다는 그 여자의 사진을 보여줬어요. 나도 봤어요. 그 사람은 누나가 아니었어요.”일반 사람이었다면 전민수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같은 남자로서 나상준에게서 위험을 느낀 전민수는 그가 들었던 사실을 얘기했다.이 얘기는 나상준에게 하는 말이 아닌 차우미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그도 나상준과 차우미의 관계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날 밤 나상준이 차우미를 데려갈 때 전민수는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임상희가 전민수에게 외삼촌과 외숙모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임상희가 그에게 외삼촌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차우미가 나상준의 사랑이라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사진을 보고 난 전민수는 안심했다.그 사진 속의 여자는 차우미가 아니었다.지금 다시 만난 나상준이 또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전에보다 더 강렬한 위험을 느낀 전민수는 반드시 똑똑하게 말을 해야만 했다.차우미는 전민수의 말을 들으며 멍해졌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소년의 견고한 표정을 보며 왠지 모르게 웃고 싶어졌다.그녀는 전민수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전민수가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들은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었다. 전민수는 차우미의 이름도, 뭐 하는 사람인지도, 심지어 나이도 몰랐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다른 것 같았다.차우미의 눈에는 전민수가 아이로밖에 보이지 남았다. 잘생긴 동생이었다. 전민수와 그녀에게는 뛰어넘을 수 없는
“나도 사진 좀 보자.”평온하게 말하는 나상준의 목소리에서 어떠한 불쾌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모습처럼 조금의 이상함도 없었다.눈앞에 있는 나상준이 평온하게 말하는 모습에 전민수는 멈칫했다. 그가 듣기에 나상준의 말투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전민수가 차우미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나상준의 모습은 마치 차우미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느낌을 줬다.전민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왜냐하면 나상준의 모습은 차우미의 친척 같았기 때문이다. 윗사람으로서 차우미가 어디가 좋은지 전민수에게 묻는 것 같았다.전민수는 차우미의 손을 놓고 바로 핸드폰을 꺼낸 뒤 주혜민의 사진을 나상준에게 보여줬다.“봐보세요, 바로 이 사진이에요.”이 시각 전민수는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는 더 이상 차우미의 손을 잡지 않았다.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차우미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이렇게 물을 줄 알고 있었지만 평온한 목소리로 물을 줄은 몰랐다.주혜민이 나상준과 상관없는 사람들한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기에 나상준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똑똑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방금 전민수에게서 외숙모에 대한 말과 나상준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차우미는 그 여자가 주혜민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만약 전민수가 임상희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차우미도 확신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임상희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확신했다.나상준은 전민수의 폰을 건네받은 뒤 사진을 확인했다.정교한 화장, 대범해 보이는 얼굴, 계략과 이익으로 가득한 눈을 가진 주혜민이었다.사진을 보고 있는 나상준의 눈빛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마치 그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나상준이 입을 열었다.“주혜민...”나상준은 임상희 이름을 불렀을 때처럼 묵직한 목소리로 주혜민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주혜민? 사진 속 사람 이름이 주혜민이라고?
나상준은 전민수에게 핸드폰을 돌려준 뒤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전민수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나상준과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차우미를 번갈아 보며 조급해했다.차우미와 나상준의 관계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게 없었던 전민수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막대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어렵게 차우미를 만나게 된 전민수는 차우미와 이대로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몰랐다.차우미는 전민수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고 진민수도 차우미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어떻게 찾을 방법도 없었다.전민수는 몹시 다급했다. 차우미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나상준이 그의 앞을 가로막은 채 압박감 가득한 무서운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을 때 차우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결국 진민수는 차우미를 쫓아가지 못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차우미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낙담한 진민수는 시선을 거두고 나상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날 밤 로앤에서요...”전민수는 그날 밤에 있었던 일들을 나상준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줬다.숨기지도 않고 감추지도 않았다.마치 어른의 물음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말하는 모습이었다.전민수의 말을 들은 나상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민수의 말을 다 듣고 난 나상준이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대답을 마친 나상준이 뒤돌아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전민수는 멍해졌다.‘가... 간다고? 이렇게 간다고? 그건 안되지!’전민수는 재빨리 나상준을 쫓아가 입을 열었다.“형...”‘형이라 부르는 거 이상한가?’나상준은 임상희의 외삼촌이다. 전민수와 임상희는 나이가 비슷했기에 그도 상희처럼 외삼촌이라고 불러야 했지만 임상희와 전민수는 친척 관계가 아니었기에 외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다.예의는 차려야 했기에 진민수가 머뭇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아저씨.”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나상준은 전민수의 부름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이 순간 나상준 주위 공기가 고요해졌다.나상준이 멈춰 서는 것을 본
“너 몇 살이야?”멈칫하던 전민수의 눈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저 올해 만 스물입니다. 이년 뒤에 결혼할 수 있어요.”나상준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스무 살이라고? 정말 젊네...’전민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상준을 바라보며 긴장했다. 그는 자신이 어리기 때문에 차우미와 차우미 가족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한참 생각하던 전민수가 입을 열었다.“제가 어려서 아저씨가 걱정하시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저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변함없이 한 사람만 영원히 좋아할 수 있어요. 누나와 함께하기로 했다면 헤어지지 않고 쭉 함께할게요. 누나가 원하는 건 모든 해드릴 자신 있어요. 누나가 밤하늘의 별을 원한다면 최대한 따려고 노력할게요. 최선을 다해서 누나와 누나 가족분들의 요구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아저씨, 저와 저희 전씨 가문을 믿어주세요.”전민수가 매우 확고하고 진지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가 방금 한 말은 절대로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전민수는 자신이 있었다.나상준은 전민수의 말을 들으며 팔에 걸친 정장 외투를 꽉 잡았다. 그는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전민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전씨 가문이라...”전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이 조금 전보다 더 반짝거렸다.“네, 전씨 가문이요. 제가 전 씨...”“내가 너에게 차우미가 결혼했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나상준이 전민수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고 전민수의 얼굴에 있던 희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민수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제... 제 기억에... 하지만...”“전요한과 장미애가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이 이미 결혼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면, 네가 봤을 때 그들이 어떻게 할 것 같아?”나상준이 부모님의 이름을 말하자 전민수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아저씨... 우리 부모님과 아는 사이세요?”나상준은 예전에 자신의 촌수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전민수에게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을 보았다.김온과 이영진 변호사에게서 온 것들이었다.아마 주혜민에 관한 일로 이 변호사가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그녀가 연락되지 않아 김온에게 연락을 넣은 것 같았다.차우미는 바로 핸드폰 잠금을 열고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시간을 확인한 뒤 김온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했다.[차우미, 바빠? 이 변호사가 그러는데 주혜민 쪽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대. 오늘 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혜민 쪽 변호사가 온다는데 너 언제쯤 시간 돼? 이 변호사가 경찰서에서 너 기다리고 있어.]차우미가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십 분에 보내온 문자였다.그녀가 조금 전에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 봤을 때 이영진 변호사에게서 여덟 시 반에 두통, 아홉 시에 두통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김온게서는 아홉 시 칠 분에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있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문자를 남긴 거였다. 그녀의 추측과 같았다.차우미는 바로 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건 뒤 김온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그녀에게서 답장이 없자 김온이 열한 시에 그녀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차우미, 문자 보면 연락줘.]차우미가 일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김온은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와 두 통의 문자메시지만 보냈다.그녀가 바쁜 일을 다 해결하면 자신에게 답장하리라는걸 김온은 알고 있었다.차우미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은 열한 시 삼십오 분이었다.그녀는 김온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와 동시에 핸드폰에서는 전화 연결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그녀가 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 변호사는 받지 않았다.차우미가 메시지를 전송하려는 찰나 이 변호사가 전화를 받았다.“차우미 씨.”차우미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는 전화기를 귀 옆에 가져다 댔다.“이 변호사님, 죄송해요. 오늘 오전에 일이 좀 있었는데 핸드폰을 챙기지 않아서 이제야 이 변호사님과 온이샘에게서 온 연락들을 확인했어요.”“괜찮아요. 제가 그쪽에 차우미 씨의 연락을 기다려야 된다고 답하니 그쪽에서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바라봤다.김온에게서 온 문자였다.[알았어. 그럼 나도 한시름 놓을게.]그녀는 김온에게 상황을 대충 설명해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지금 김온에게서 온 문자를 본 차우미는 웃으며 그에게 답장을 해준 뒤 옷을 갈아입으러 드레스룸으로 향했다.차우미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묶은 뒤 깔끔한 모습으로 드레스룸에서 나갔다.차우미가 나오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김온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전화를 받았다.“온이샘.”차우미는 통화를 하면서 가방을 가지러 갔다. 가방 안을 살펴보니 필요한 증명서가 모두 들어있었다.“오늘 바빴어?”예전과 별반 다름없는 온화한 목소리에 마음이 편안해 졌다.가방 검사를 끝낸 차우미는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준비를 마친 그녀는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응. 요 며칠 좀 바쁠 거야.”김온이 걱정할까 봐 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은 말하지 않고 그녀는 그저 바쁘다고만 했다.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예전과 별반 다름없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그녀의 웃음소리에 김온도 별로 의심하지 않고 한시름 놓았다.“아무리 바빠도 건강 챙겨. 건강이 제일 중요해.”“알았어. 온이샘도 건강 챙겨.”차우미는 김온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온이샘. 외할머니는 좀 어때? 괜찮아?”문에 다다른 차우미는 문을 열려 했다.그녀가 문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 문이 열렸고 그녀는 순간 멈칫하며 뒷걸음질을 쳤다.문밖에 있던 사람의 모습이 이내 시야에 들어왔다.큰 키의 나상준이 어제 옷차림을 한 채 팔목에는 정장 외투를 걸치고 문밖에 서 있었다.문이 열리자 나상준이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그는 차우미를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통화를 하고 있는 차우미를 보며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 서 있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방금 옷을 갈아입을 때도 경찰서에 갈 준비로
열한 시가 넘어서 차우미의 연락을 받은 김온은 한 시름 놨다.연락이 되지 않는 차우미를 걱정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만약 온종일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김온은 바로 회성으로 달려왔을 거다. 하지만 반나절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건 기다릴 수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온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그녀의 문자를 받은 그 순간 김온은 한시름 놓으며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다는 연결음이 들려왔다. 그는 차우미가 이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지금은 그녀가 주혜민의 사건을 처리하러 경찰서로 가는 길일 거라 짐작했다.귓가에 온이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우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응. 지금 가는 길이야. 일이 좀 있어서 나중에 다시 통화해.”온이샘은 멈칫하며 그녀의 목소리가 달라진 걸 알아차리고는 말했다.“그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응.”그녀는 전화를 끊고 고개 들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나상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화를 받고 있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그는 아리송한 표정에 차가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자신과 온이샘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한참 생각하던 차우미는 입을 열었다.“나와 온이샘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결혼 기간 3년 동안 나와 온이샘은 연락을 해 본 적이 없어. 우리가 이혼하고 나서 연락하는 거야.”예전에 차우미는 그에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미 이혼을 했기에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아침 그와 대화를 나눈 뒤로 차우미는 그에게 설명해야겠다고 느꼈다.김온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자신을 오해하는 건 상관이 없지만 김온은 떳떳했다. 자신 때문에 오해를 받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자신은 상관없었지만 온이샘의 명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참을 수 없었다.나상준의 검은 눈이 더욱 어두워졌다. 차가운 분위기마저 더욱 차가워졌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