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시가 넘어서 차우미의 연락을 받은 김온은 한 시름 놨다.연락이 되지 않는 차우미를 걱정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만약 온종일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김온은 바로 회성으로 달려왔을 거다. 하지만 반나절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건 기다릴 수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온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그녀의 문자를 받은 그 순간 김온은 한시름 놓으며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다는 연결음이 들려왔다. 그는 차우미가 이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지금은 그녀가 주혜민의 사건을 처리하러 경찰서로 가는 길일 거라 짐작했다.귓가에 온이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우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응. 지금 가는 길이야. 일이 좀 있어서 나중에 다시 통화해.”온이샘은 멈칫하며 그녀의 목소리가 달라진 걸 알아차리고는 말했다.“그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응.”그녀는 전화를 끊고 고개 들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나상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화를 받고 있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그는 아리송한 표정에 차가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자신과 온이샘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한참 생각하던 차우미는 입을 열었다.“나와 온이샘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결혼 기간 3년 동안 나와 온이샘은 연락을 해 본 적이 없어. 우리가 이혼하고 나서 연락하는 거야.”예전에 차우미는 그에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미 이혼을 했기에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아침 그와 대화를 나눈 뒤로 차우미는 그에게 설명해야겠다고 느꼈다.김온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자신을 오해하는 건 상관이 없지만 김온은 떳떳했다. 자신 때문에 오해를 받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자신은 상관없었지만 온이샘의 명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참을 수 없었다.나상준의 검은 눈이 더욱 어두워졌다. 차가운 분위기마저 더욱 차가워졌
그건 책상위에 놓여있는 약봉투였다.그렇다. 그약은 그녀가 산적이 없는 약들이었다.멈칫하던 차우미는 약봉투에서 약들을 꺼냈다. 모두 감기약들이 었는데 처방약도 있었다.처방약은 병원에서만 살수 있었다. 약방에서는 살수 없는 약이었다.차우미는 흔들리는 마음으로 닫혀 있는 욕실 문을 바라봤다.약을 사서 이곳에 놓을 사람은 나상준밖에 없었다.어젯밤 차우미가 기침하는 것을 본 나상준이 약을 사러 병원까지 다녀왔었다.그녀는 그가 돌아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아니었다.그는 그녀의 약을 사러 갔던 거였다. 그래서 약을 사가지고 돌아온 그가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었다.물어보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수 있었다.그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간 뒤에도 계속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옷을 갈아입지 못한거였다.이 순간 차우미의 마음이 약해졌다.어느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이 머리속에 떠올랐다.그녀와 나상준이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보름도 안되는 사이에 감기에 걸리고 토하고 설사를 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었다.나상준은 그때 보름정도 출장을 떠나 있었고 돌아왔을 때에 그녀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녀의 상태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나상준은 느낄 수 있었다.그는 그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의사가 왔다.그때 그녀는 의사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의사가 왜 왔는지 알수 없었던 그녀느 나상준에게 어디가 아픈지 물었었고 나상준은 그녀때문에 의사를 부른거라고 답했다.차우미는 그때의 느낌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의외였고 믿기 어려웠으며 놀라우면서도 기뻤다.그랬다. 기뻤다.두 사람은 결혼전에 만나보고 결혼을 한거였지만 만남이 아주 적었다. 두 사람은 만나서 밥만 몇 번 먹은 게 다였다.그녀는 그와 매번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가 바쁜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디가고 싶은 곳은 없는지 물으면 그녀는 매번 괜찮다고만 말했었다.그는 돌려 말하는 스타일도
그는 강요하지도 않고 그녀를 난감하게 하지도 않았으며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줬다.차우미는 나상준에게 첫눈에 반했었지만 첫 만남 이후로 그에게 실망했다.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었기에 감정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그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나상준이 일 때문에 갑자기 자리를 떠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한동안 바빠서 연락이 안 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나상준은 그럼 만나보자고 말했고 그 둘은 그렇게 반년을 만났다.반년을 만나는 동안 나상준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그녀를 보러 왔었고 그녀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는 매번 안평으로 직접 그녀를 데리러 왔었고 예의 바르게 그녀 가족들의 선물도 챙겨왔다.그렇게 그녀는 점차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그는 입에 발린 말을 할 줄 몰랐고 예쁘게 말하는 것도 몰랐으며 자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남자에게는 없는 것들이 있었다.진지하고 예의 바르며 남을 존중할 줄 아는 훌륭한 가정교육과 인품을 갖추고 있었다.그는 한번 정한 것은 자신의 방식대로 앞으로 밀고 나아갔다.다른 사람들의 방식대로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고 속에 숫자가 있었으며 침착하고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나상준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느끼지 못한 차우미는 그가 자신과 결혼하자고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말에 그녀는 속으로 기뻐하며 승낙했다.차우미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 차우미는 매우 기뻐했다.그녀는 바라는 게 많지 않았다. 나상준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저 나상준과 결혼 전처럼 평범하게 지내면서 서로 존중하며 한평생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그녀는 매우 만족했다.하지만 결혼 한 뒤에도 나
차우미의 머릿속에 만약 그때 그런 소문이 없었다면, 만약 그때 자신이 물어봤다면 지금 이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금세 사라졌다.차우미의 눈빛이 유감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여전히 이혼을 했을 거다.나상준이 주혜민과 관계가 없다고 해도 차우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3년 동안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기에 그녀는 나씨 가문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은 오래갈 수 없다.주혜민이 아니었다고 해고 나상준의 어머니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그들처럼 유명무실한 부부들은 언젠가 이혼을 하기 마련이다.머릿속에 떠올랐던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그녀의 웃음 속에서 사라졌다.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고 차우미는 그가 행복하기를 바랐다.차우미는 약 봉투를 내려놓고 뜨거운 물과 약을 준비해 놓은 뒤 핸드폰과 가방을 들고 떠났다.만약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나상준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이혼을 한 상태이기에 선을 넘지 말아야 했다.나상준은 해바라기 샤워기 아래에 서서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그녀는 바로 떠나가지 않고 떠나기 전 몇 가지 일들을 하고 떠났다.딸깍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그는 일렁이는 검은 두 눈을 감았다.3년 동안 그녀와 결혼생활을 했던 그는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꼼꼼하고 예의 바르며 효심이 깊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었으며 평범한 걸 좋아했다.세상에 많은 사람이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평범은 극히 적고 드물다.일생을 평온하게 보내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그리고 무수한 일들을 겪고 난 뒤에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차우미가 바라는 게 보기에는 큰걸 바라는 거 같지 않지만 사실은 엄청 큰 걸 바라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신만의 표준이 있었고 만약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망설임 없이 떠나갔다. 그녀는 융통성이 없었다. 나상
그녀는 떠나갈 때도 소리 없이 조용히 떠나갔다.그의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마음을 빼앗긴 나상준이 어떻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김온이 도화선이었다. 모든 사실을 들추어낸 도화선 말이다.습관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나상준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그녀가 적합해서였다. 하지만 왜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가 적합한지에 대해서 그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여자를 만나보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없었다.차우미를 만난 그는 차우미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할머니께서 여자애가 한 명 있는데 사람이 아주 좋다고 말씀하셨다. 성격 좋고 조용하며 부드럽고 얌전한 데다 가정교육도 잘 받아서 효심이 깊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식과 교양이 있고 예절이 밝은 집에서 자란 아이라며 한번 만나보라고 하셨지만 강요는 하지 않았다.만약 여자아이가 괜찮다면 쭉 만나보라고 하시면서 결혼까지도 생각해보라고 하셨었다.할머니는 명문 규수인 신씨 가문의 딸이었는데 만약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지 않았다면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결혼을 한 뒤 자식들과 손주 손녀들을 정성껏 가르쳤다. 지금 나씨 가문이 방대해진 것도 다 할머니 덕이었다.할머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나상준은 차우미를 만나보기로 결정했다.오랜 시간 사업을 해왔던 나상준은 날카로운 눈썰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첫눈에 차우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다. 그는 한눈에 그녀가 결혼하기에 적합하다고 확신했다.하지만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한 번만 보고 결정할 수는 없었다.나씨 가문 며느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그녀와 한 번의 만남을 가진 뒤로 계속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갔다.그녀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한 뒤 그녀와 결혼하려 했다.나상준이
호텔을 나선 차우미는 택시를 타고 정주에 소속해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차에 오른 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는 변호사에게 도착하면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냈다.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사에게서 답장이 왔다.[네.]변호사의 답장을 본 차우미는 진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호텔과 경찰서 사이의 거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시간이 걸렸기에 주혜민의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면 오후 업무시간에 늦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정국 아저씨에게 말해야 했다.예전에 차우미는 휴가를 거의 신청하지 않았었다. 안평에 있을 때에도 그렇고 청주에 있을 때에도 아주 가끔 휴가를 맡았었다.하지만 회성에 온 뒤로 그녀는 빈번히 휴가를 신청했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휴가를 벌써 몇 번이나 신청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미안했다.“차우미구나, 그래 몸은 좀 어때?”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진정국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관심이 가득했다.“많이 좋아졌어요. 오후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처리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업무를 시작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아저씨, 제가 최근에 휴가 신청을 너무 많이 했어요.”미안한 마음이 든 차우미는 아저씨에게 사과했다.“그런 말 하지 않아도 돼. 아저씨가 너에게 미안하구나. 너에게 회성에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네가 다치지도 않고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내가 너희 부모님을 뵐 낯이 없어.”차우미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아저씨, 부모님에겐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감기에 걸렸을 뿐 별 다른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 진짜 괜찮아요. 회성에 온 것도 내가 오겠다고 해서 왔으니 아저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예요.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세요.”그녀가 회성에 온건 나상준의 말에 동의해서 온 것이지 아저씨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자책하는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진정국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네가 어른스러워서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일이 없었는데 회성에 온 이후로
나상준은 차우미가 챙겨 놓은 약을 먹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았다.20여 분 동안 짐을 챙긴 나상준은 손에 캐리어를 들고 나왔다.그는 망설임 없이 방문을 열고 떠나갔다....영소시.차우미와 통화를 마친 김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차우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말하지 않았기에 물어보기가 조금 그랬다.한참을 생각하던 온이샘은 차우미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문자를 보내려 했다.하지만 이 얘기는 자신이 늘 해오던 얘기였기에 더 말하면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생각을 접고 문자를 보내지 않았지만 걱정이 되었다.회성에는 그녀의 친척도 없었기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도 회성의 일을 마무리 짓고 안평으로 돌아갈 것이고 김온도 안평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김온은 마음속의 불안을 조금 내려놨다.그는 조금 뒤에 일은 잘 처리됐는지 차우미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온이야, 집에 들어가 쉬어. 엄마가 조금 뒤에 돌아가서 짐 정리해줄게.”김온의 외할머니께서 중환자실에서 나왔기에 가족들 모두 한시름 내려놨다.자손들도 일하러 갈 사람들은 일하러 갔다. 특히 진문숙이 외할머니를 잘 돌볼 수 있었기에 김온 같은 자손들은 병실에 더는 남아있을 필요도 없었고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김온은 사람들과 함께 외할머니를 보통 병실로 옮긴 뒤 병실을 나와 차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핸드폰을 들고 병실과 멀지 않은, 병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진문숙은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김온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아들에게 마침내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 같았다. 진문숙도 그 여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매우 마음에 들었다.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릴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이 빨리 결혼하기를 기대했다.만약 둘이 결혼한다고 하면 진문숙은 반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진문숙은 김온 앞으로 걸어가서 웃음 띤 얼굴로 자애롭게 말했다.그녀는 요 며칠 병원에 있으면서
진문숙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전화 받아. 엄마는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진문숙은 병실로 돌아갔다.보아하니 진문숙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러 간듯했다. 아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회성에 가지고 갈 물건들을 준비해줘야 했다.차우미의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아들이 동료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준비해줘야 했다.김온은 진문숙이 빠르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어머니의 활력있는 모습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그는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강서흔.”김온은 전화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어디야? 병원이야? 나 너에게 할 말 있어.”강서흔의 무기력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큰 타격을 받은 듯한 목소리였다. 김온은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며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 있어?”“그런 건 묻지 말고 내 말에 먼저 대답해줘. 너 병원에 있어?”“응. 지금 집으로 돌아가려고. 왜, 무슨 일인데?”김온은 멈췄던 발걸음을 내디디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서 버튼을 눌렀다.“그럼 병원 입구로 와. 입구에서 기다릴게. 할 말 있어.”강서흔이 진지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김온은 무슨 일이 있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그래. 지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이야. 금방 내려갈게.”“응.”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김온이 있는 층에 멈추었다.김온은 핸드폰을 치우고 걸어 들어갔다.어젯밤에 강서흔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까지만 해도 강서흔은 기뻐하고 있었다. 여가현이 이젠 자신을 배척하지도 않고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며 말이다.강서흔은 신이 나서 한참을 그렇게 떠들어 댔었다.김온은 차우미가 여가현에게 무슨 말을 했기 때문에 여가현이 변한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여가현의 변화가 말이 되지 않았다.여가현이 강서흔을 배척하지 않는 건 좋은 일이었다. 친구로서 기쁘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