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가 대뜸 강서흔의 연락처를 묻자, 온이샘이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강서흔?"차우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차우미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 "방금 가현이와 통화 중이었거든. 근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엄청 힘들어하더라고.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알려주려고."온이샘은 그제야 이해되었다."번호 지금 보낼게. 너무 걱정하지 마.""응."차우미는 전화를 끊었다.온이샘은 전화가 끊긴 지도 모르고 문자로 강서흔의 연락처를 공유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차우미에게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다.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가 위급한 상황이다. 그러니 자세한 상황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강서흔에게 제대로 알려줄 수 있었다.그러나 문자를 보내자마자 그는 전화가 끊긴 것을 알았다.온이샘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그녀는 틀림없이 방해하는 게 두려워 전화를 바로 끊은 게 틀림없다.이내 차우미가 답장을 보내왔다. "고마워."그녀의 답장을 바라보던 온이샘의 눈빛이 온화해졌다.여가현과 강서흔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온이샘도 짤막하게 답장한 뒤 탑승구로 향했다.차우미는 온이샘이 보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연결 음이 들리자마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야, 차우미.""차우미?"강서흔은 놀란 듯 휴대폰을 다시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전화했어?"강서흔과 여가현이 연애하는 동안 차우미는 강서흔의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그게 친구에 대한 존중이라고 여겼다.그랬던 차우미가 갑자기 늦은 밤 전화를 걸어오자 강서흔은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긴 것을 눈치챘다. 그의 눈앞으로 여가현의 얼굴이 떠올랐다.여가현의 일이 아니면 차우미가 이 시간에 그에게 전화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강서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가현이한테 무슨 일 생겼어?"차우미가 입을 열기 전에, 강서흔이 다급히 물어왔다.차우미가 떨리는 목소리
사실 차우미에게 문자를 보낸 뒤, 전화가 끊길 것을 확인하고 강서흔에게 연락했었다.그러나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에 온이샘은 차우미와 강서흔이 통화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다시 전화를 걸었다."지금 거신 전화는 통화 중..."그러나 아직도 통화 중이었다. '아직도 통화 중인가?'어느새 12시가 되어갔고 기내에서 승무원의 안내음이 들려왔다."승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 비행기는 15분 후에 출발합니다. 안전벨트를 매주세요..."온이샘은 어쩔 수 없이 강서흔과 차우미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런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출발한다고 알렸다.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뒤에야 전원을 껐다.강서흔은 차우미과 통화를 마친 후 여가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강서흔은 어쩔 수 없이 M 호텔의 지배인에게 연락해 여가현의 상황을 알린 뒤 그녀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그런 뒤에도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안배했다. 얼마뒤 여가현이 응급실로 호송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왔고 강서흔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그는 다시 해당 병원의 주치의에게 연락했다.미리 병원에 연락해둔 덕분에 여가현은 병원에 이송되자마자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상태는 고스란히 강서흔에게 전해졌다.강서흔의 휴대폰으로 온이샘의 문자가 왔다.강서흔은 그제야 온이샘의 전화를 받지 못한 게 떠올랐다.그는 얼른 문자부터 확인했다.[가현이 아프다고 해서 우미한테 네 연락처 보냈어. 나 지금 급한 일 생겨서 영소시 가는 중이야. 새벽 1시 40분쯤 도착할 것 같아. 부탁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이따가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급한 일 생겨서 영소시 간다고?'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서흔은 온이샘의 엄마 고향이 영소시인 것을 알고 있다. 온이샘이 늦은 밤 갑자기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급한 일이 생긴 것을 강서흔은 눈치챌 수 있었다. 강서흔은 곧바로 온이샘에게 전화를 걸었다."죄송합니다. 거신 전화는 이미 꺼져 있습니다..."그러나 이
물론 가능하다면 강서흔은 온이샘과 동반 결혼을 하고 싶었다.한편, 회성 공항.택시가 공항 정문 밖에 멈춰 섰고 차우미가 돈을 내고 가방을 들고 내렸다.그녀가 막 차에서 내렸을 때,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들어왔다.차우미는 휴대폰을 확인했다.온이샘이 보낸 것이다.강서흔과 통화 한 후, 온이샘이 보낸 문자 같았다.강서흔이 일을 잘 해결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였다.그녀는 온이샘에게 여가현이 영소시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알릴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개인적인 일로 급히 떠난 온이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온이샘이 또 다른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우미야, 나 지금 비행기야. 내가 강서흔한테 얘기 잘했으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얼른 쉬어. 서흔이가 있는 한, 가현이도 무사할 거야. 그리고 나 휴대폰 한 시간 정도 꺼둘 거야. 무슨 일 있으면 문자 남겨줘. 귀찮게 하는 거 아니니까 편하게 얘기해.]그녀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온이샘은 어떻게든 그녀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장문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차우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응, 그럴게. 선배도 일 끝내고 편히 쉬어. 경찰서 가는 건 나 혼자 처리할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온이샘이 별일 없으면 내일 아침 일찍 돌아오겠다고 말한 이유를 차우미는 잘 알고 있다.분명 그녀와 같이 경찰서를 가주기 위해서다.문자를 보낸 차우미는 시간을 확인했다. 비행기 이륙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이 남았다.그녀는 새벽 두 세시쯤에 영소시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여가현의 상태를 모른다.그래서 마음이 너무 조급했다. 그녀는 얼른 탑승구로 향했다.강서흔은 모든 준비를 안배한 뒤, 앰뷸런스에서부터 동행한 의사에게 연락해 그녀의 상태를 자세히 물었다.여가현이 응급실로 들어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강서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차우미에게 여가현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줄 섰던 차우미의 휴대폰이 울렸다. "
누군가 스크린에 찍힌 항공편 정보를 확인했다. 차우미가 탄 항공편이 이륙하자, 그는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차가운 목소리가 휴대폰으로 들려왔다. "차우미 씨가 방금 회성을 떠나셨습니다. 1시 20분 비행기로 도착지가 영소시입니다."로엔, VVIP 룸.양훈이 침대에서 일어섰고 그의 몸에서 이불이 흘러 내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가 드러났고, 그의 곁에 누워 있던 벌거벗은 여인도 드러났다.여자는 인기척에 눈을 뜨고 양훈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양훈에게 다가간 여자는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입술에 키스했다.양훈은 아무 미동 없이 휴대폰으로 부하의 보고를 들었다.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온이샘은?""온이샘 씨는 바로 전 항공편입니다. 12시 15분에 회성에서 떠났습니다."양훈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같은 항공편이 아니야?""예."양훈이 입을 닫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영소시 진씨 가문에 무슨 일 생긴 것 같은데 사람 보내서 알아봐. 그리고 차우미한테 사람 붙여. 왜 거기 갔는지 알아보고.""예.""주혜민 행방도 주시해. 이상한 낌새 보이면 언제든지 보고해.""예."전화를 끊은 양훈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가로등이 환히 켜진 어두운 밤이다.여자는 양훈이 통화를 끝내자 그에게 다가가 다시 키스했다.그러나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가 여자의 귀에 들어왔다. "나가."차가운 목소리에 여자가 겁을 먹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양훈의 몸에 기댄 여자가 양훈의 몸을 쓸어내렸다. "꺅!"여자의 목이 순식간에 졸렸다. 갑자기 숨을 쉴 수 없게 된 여자는 죽음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자의 호흡이 가빠졌다.양훈은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얼음처럼 그녀를 찔렀다. 사람 목숨 하나 끝내는 건 아무 일도 아닌 것 마냥 태연했다.여자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발버둥을 쳤다.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양훈의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비행기가 영소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온이샘은 휴대폰의 전원을 켜면서 빠르게 비행기에서 내렸다.그는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나 방금 도착했어.""그래, 얼른 병원으로 와. 외할머니도 수술실에서 나왔어.""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니까 안심해도 될 것 같다."온이샘이 전화를 걸자마자 진문숙이 안도한 듯 그에게 알려줬다.온이샘도 이 소식을 듣고 희미하게 웃었다. 마음이 놓인 온이샘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다.""지금 바로 그쪽으로 갈게. 40분 정도 걸릴 것 같아.""괜찮아. 서두르지 마.""중환자실에서 며칠 동안 지켜보기로 했어. 천천히 와.""알겠어."온이샘은 전화를 끊은 뒤 휴대폰을 확인했다. 읽지 않은 메시지 2개가 있었다, 차우미와 강서흔이 보낸 것이다.온이샘이 미소 지으며 차우미의 문자부터 확인했다.[응, 그럴게. 선배도 일 끝내고 편히 쉬어. 경찰서 가는 건 나 혼자 처리할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온이샘도 그녀가 이렇게 답장할 줄 알았다.다행히 외할머니 수술이 무사히 끝나 그는 내일 회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차우미에게 문자를 하려던 온이샘은 늦은 시간을 확인하고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괜히 문자 때문에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채팅 인터페이스를 나간 그는 강서흔의 메시지를 확인했다.그의 문자를 확인한 온이샘이 발걸음을 멈추었다.[가현이 영소시에 있어. 차우미도 가현이 보러 왔고, 너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은데. 너도 몰랐던 거지?]강서흔은 아무도 모르는 소식을 자기 혼자 알고 있어 고소해하는 것 같았다.온이샘은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멍해졌다.'여가현이 영소시에 있고, 차우미는 여가현 만나려고 영소시로 온다고?'순간, 그의 머릿속에 차우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온이샘의 가슴이 급격하게 빠르게 뛰었다. 차우미에게 진실한 친구는 여가현 뿐이다. 온이샘이 차우미를 알기 전부터 둘은 절친한 사이였다. 그런 여가현이 아프다고
"도착했어?"전화가 곧 연결되었고 강서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이샘은 한결 평온해진 강서흔의 목소리에 여가현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현이 무사해?""응!""내가 누군데, 내 여자가 죽어가는 데, 내가 손놓고 있을 수 없잖아."자랑스럽게 말하는 강서흔이다.차우미가 여가현의 상태를 강서흔에게 알려준 것은, 강서흔에게 고백할 기회를 준 것과 다름없었다. 강서흔은 최선을 다해 여가현을 구할 것을 차우미는 알고 있었다."다행이네."온이샘이 통화를 하며 택시에 올라탔다.강서흔은 택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물었다. "내가 보낸 문자 봤어?""봤어, 보자마자 전화했는데 꺼져 있더라고. 아직 비행기에 있나 봐.""그럴 거야. 너보다 늦게 탄 거니까. 아마 3시쯤 도착할걸? 공항에서 차우미 기다릴 거야? 아니면 먼저 일 보러 갈 거야?"강서흔은 온이샘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까먹지 않았다.강서흔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인데? 많이 급한 일이야?"택시에 올라탄 온이샘이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영소병원으로 가주세요."강서흔이 비명을 질렀다. "야! 여가현도 영소병원이야!"휴대폰을 들고 있던 온이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여가현이 영소병원이 있었다.강서흔이 황급히 물었다. "영소병원에 가는 거야?""응, 외할머니가 어젯밤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수술했거든. 그래서 지금 가는 중이야.""와!""이런 우연이 다 있냐!""여가현은 지금 그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하고 있어. 어제 먹은 음식 때문에 배탈이 났다고 하더라.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큰 일 날 뻔 했어."강서흔은 매우 흥분해서 여가현의 상황을 온이샘에게 알렸다.게와 땅콩을 같이 먹었던 탓에 배탈이 났다.그러나 두 사람이 공교롭게 같은 병원에 있을 줄 몰랐다."나... 나 먼저 할머니 뵈러 병원 갔다가 우미 데리러 다시 오려고."온이샘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온이샘도 이런 우연이 있을 줄 몰랐다. 마치 온 세상이 그를 돕는 것
"우리 이제 나이도 있잖아. 우리 나이면 벌써 애들도 낳았을 나이라고. 근데 우리 둘 좀 봐, 아무것도 없잖아.""이대로 못 있지!""난 꼭 여가현과 결혼할 거야! 우리 부모님도 뭐라 안 하시거든!""어쨌든 이번 생은 여가현 뿐이야! 죽더라도 여가현 곁에서 죽을 거야! 평생 그녀 옆에 있을 거야!"확고한 결심이다, 강서흔은 바람을 탄 파도처럼 기세등등했다. 온이샘은 강서흔의 다짐이 진심인 것을 알 수 있었다."그래, 나도 축하할게.""쳇!""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도 좀 서둘러. 혼자 몇 년이나 있었냐? 차우미 때문에 몇 년 간 아무도 안 만나고,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이번에는 절대 포기하지 마. 차우미를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너 위기감 좀 가져야 해."이혼녀가 다시 재혼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돌싱녀가 재혼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강서흔과 온이샘은 차우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성격과 가정환경, 그리고 아내로서 훌륭한 조건들...비록 한번 갔다 온 여자이지만 남자들에게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였다.온이샘은 강서흔의 말에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도 알아."온이샘은 항상 위기감을 느꼈다, 지금도 매우 불안했다.그녀와 혼인 신고를 하기 전까지 온이샘은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차우미는 아주 훌륭한 여자다.온이샘은 그래서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가 없는 틈에 다른 남자가 그녀를 낚아챌까 봐 두려웠다."그래, 너도 생각한 게 있겠지. 나 지금 다른 전화 들어온다, 이따가 차우미 데리고 가현이 만나러 가면 나한테 전화 좀 해줘. 안 그럼 노심초사해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거든.""그래."통화가 끝났고 온이샘은 휴대폰을 내렸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새벽녘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차우미를 만나러 회성에 갈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연이어 뜻밖의 일이 발생하면서 온이샘은 점차 희망을 버렸다. 그러나 또다시 이런 방법으로 영소시에서 그녀와 마주칠
온이샘이 빠르게 걸어갔다."외할머니 지금 만나도 돼?"진문숙이 답했다. "수술하고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지금은 못 들어가. 내일 아침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대."진문남은 진씨 집안의 장남이다. 학술계의 권위인사다.외할머니의 집도의도 그가 찾은 것이다.온이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밖에서 잠깐 봐도 되지?"진문남이 말했다. "그래, 네 엄마랑 가서 봐. 우린 여기서 후속 치료에 대해 상의 좀 할게.""네."진문숙은 온이샘을 데리고 중환실 창으로 다가갔다. 투명 유리를 통해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각종 의료기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옆에서 수시로 상태를 체크하는 간호사가 있었다.온이샘의 눈가에 근심이 가득 서렸다.80세 고령인 할머니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이다.진문숙이 괴로운 듯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주무실 때 옆에 유모가 있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침대에서..."진문숙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온이샘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렸다. 운이 나빴으면 침대에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하잖아. 분명 좋아지실 거야."뇌졸중은 제때에 발견하고 제때에 수술하기만 하면 문제가 크지 않다. 시기를 놓치면 치료가 어렵지만 시기를 제대로 잡으면 안전하다.외할머니는 무엇보다도 연세가 많으셨다. 다행히 일찍 발견되어 수술했고 이제 남은 것은 회복뿐이다.온이샘은 할머니가 무사히 일어나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진문숙은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큰아빠가 의사한테 물어보니까 일찍 발견되어 다행이라고 하더라. 수술은 잘되었고 이제 남은 건 깨어나는 거야."온이샘은 진문숙에게 시선을 돌렸다. "외할머니 무사할 거야.""우리 그렇게 믿자."진문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사하실 거야."벌써 2시 반이었고 온이샘은 진문숙에게 말했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3시 좀 넘어 돌아올 거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
“알았어요.”가정부는 거실의 유선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주혜민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주 사장님, 사모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에 돌아올 수 없다고 해요.”주혜민은 눈 밑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많이 바쁘시군요. 오늘은 제가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 왔으니 방법이 없죠. 다음에는 사전에 약속을 잡고 다시 올게요.”말하면서 주혜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가정부가 고개를 끄덕였다.주혜민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가방을 들고 가정부에게 미소를 지으며 거실을 나와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별정을 빠져나가 가정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정부는 계단에 서 있다가 차가 보이지 않자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다시 거실에 있는 유선 전화기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문지영의 담담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리자, 가정부가 말했다.“사모님, 주 사장은 갔어요.”“알았어. 다음에 또 오면 나한테 전화할 필요 없이 그냥 내가 없다고 해.”“네, 알겠습니다.”문지영은 전화를 끊었다.옆에 있던 서혜란은 문지영이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누구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거야?”서혜란은 최근에 늘 문지영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가끔은 그럼 전시회로 가고 또 가끔은 연극, 뮤지컬을 보고 또 SPA 하러도 다녔다.그야말로 엄청나게 가깝게 지냈다.오늘 문지영과 서혜란은 어느 브랜드사의 요청을 받고 자선 만찬에 참석했는데 오늘 밤 경매의 수익금은 모두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 교육을 위해 기부될 거라고 한다.기부에 참여하기 위해 문지영과 서혜란은 각각 물품 두 개씩 샀다.이제 경매가 끝나 두 사람은 연회장의 소파에 앉아서 디저트를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이 전화 받을 때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문지영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
나예은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두 눈도 깜빡거렸다.“말하지 말라고? 왜? 그런데 예은이는 분명 큰아빠가 큰엄마를 무릎에 앉힌 걸 봤어. 그리고 큰엄마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어.”나예은은 손으로 흉내까지 내면서 서혜지에게 그때 상황을 재연하려고 했다.“...”서혜지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나예은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서혜지는 자기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나 싶었다.나예은은 서혜지가 자기를 믿지 않으니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심지어 나상준이 차우미를 보며 했던 행동과 말까지 모두 표현했다.서혜지는 나예은의 다채로운 연기를 듣고 지켜보며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에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서혜지는 분명 자신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어린 나이에 알면 안 되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반성했다.하지만 나예은이 이틀 동안 나상준과 차우미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듣고는 100% 나상준이 차우미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다고 확신했다.그렇다, 지금 나상준은 자신의 사업을 대하듯 진지했는데 심지어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그녀는 나상준이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 확실하고 신속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의 행동이 또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나상준은 차우미를 원하고 있고 차우미는 절대로 나상준의 공세를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이제 남은 건 시간뿐이다.서혜지는 갑자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나예은의 눈을 보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예은아, 오늘 엄마한테 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그리고 큰아빠와 큰엄마 함께 놀았다는 것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이건 예은이와 엄마, 아빠, 그리고 큰아빠, 큰엄마와의 비밀이야. 알겠지?”“왜? 왜 그래야 하는데?”나예은은 왜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왜냐하면...”서혜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
비행기는 정확하게 6시 5분에 출발했다.휴대폰을 끄기 전에 차우미는 하선주에게 비행기가 곧 이륙할 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비행기가 이륙해서 하늘에 높이 솟아오르자, 밤을 맞은 청주시는 아주 작게 변했고 차우미는 눈을 감았다.한잠을 자고 나면 집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나상준은 옆에 앉아서 창문 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고요히 잠이 든 차우미를 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본인도 눈을 감았다.불이 서서히 꺼지면서 비행기 내에도 밤을 맞이했다....유엔 빌리지.청주시는 밤을 맞이하여 불빛들이 밝아졌다.서혜지와 나예은은 저녁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갔다.나준우가 오늘은 너무 바빠서 저녁식사를 함께 못해서 서혜지는 송 할머니더러 나준우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워낙 서혜지가 직접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나예은과 놀고 싶고 또 나상준과 차우미의 상황을 알아볼 생각이었다.때문에 예전처럼 나예은과 같이 직접 나준우에게 저녁밥을 가져가지 않고 집에서 나예은과 둘이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러 나왔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예은아, 지난 주말에 큰아빠, 큰엄마와 같이 놀 때 큰아빠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어?”사실 진작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젯밤에 나예은을 데리러 갔을 때 이미 곤히 자고 있어서 하지 못했다.그리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해서 그럴 시간이 없었서 하교하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또 나상준과 차우미와 전화를 한 내용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느라 이제야 주말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게 되었다.나예은은 나상준이 나중에 또 같이 놀아준다는 얘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퐁퐁 뛰면서 노래도 부르고 나비처럼 춤도 췄다.서혜지의 질문을 듣고 나예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있어. 큰아빠는 예은이와 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어.”서혜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다고? 예은아, 큰아빠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야.”나상준은 나씨 가문 사람 중에서 이혜정보다도 말이 더 없었다
차우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차우미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차우미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으니, 그때도 아마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우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시간인 것을 보고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휴식 구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적막이 퍼졌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차우미를 보았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빛이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은 회성 회의실에서 일할 때와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다고 다시 휴대폰으로 안평의 관광 명소들을 검색했다.그는 자기와 멀어지려고 하는 차우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어 나상준과 차우미는 비행기에 탑승했다.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더니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온이샘에게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온이샘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지금 탑승하고 있어.]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일찍 탑승한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보더니 이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청주는 안평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이제야 차우미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청주에 있는 며칠 동안은 몇 년인 것처럼 오래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고 얼굴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물건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져서 놀라며 내려다
“예은이가 안평에 가본 적이 없어서 여름 방학이 되면 안평으로 놀러 갈 생각이야. 그런데 안평은 나도 잘 몰라.”나상준이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차우미는 나예은의 말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어찌 됐든 조금 전에 그녀는 약속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나상준의 말에 차우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렸다.나상준은 안평 사람이 아닌 청주 사람이고 또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기에 안평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는 청주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 오래 있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나예은과 같이 놀려면 어느 도시든 모두 가능한데 왜 하필 안평으로 가려고 하고 또 차우미까지 함께 하자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사실 차우미는 그들과 놀지 않고 일을 하고 싶었다.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차우미는 워낙 회성에서 일을 끝내고 또 나예은과의 약속을 이행한 다음에는 나상준과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은 또 이렇게 같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이 언제면 가능할지 막막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나상준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지켜보다가 말했다.“지금부터 서두를 거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그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여유를 주자, 차우미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우미를 보고 있던 시선도 거두고는 휴대폰으로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직 예은이의 여름 방학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고는 하지만 나 이번에 회성에서의 일이 금방 끝났고 또 휴가까지 썼기에 앞으로는 매우 바쁠 거여서 그때는 시간이 안 돼. 정말로 예은이와 같이 안평으로 가게 되면 내가 전문 투어 가이드를 소개해 줄 거니까 예은이와 같이 놀러 다녀.”비록 나상준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차우미는 아예 지금 미
차우미는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나상준이 통화하는 것을 보고 시선을 거두고 원래 앉았던 1인 소파에 앉았다.나상준은 시종일관 차분한 차우미의 표정을 보다가 별다른 생각없이 말했다.“그래, 큰아빠 시간이 될 때 전화할게.”“네, 알겠어요. 큰아빠 전화 기다릴게요.”나예은은 나상준과 차우미와 함께 놀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기에 나상준의 말을 듣고 엄청나게 기뻐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랐지만 업무상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 나예은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러다가 나상준의 입에서 큰아빠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큰엄마도 같이 있는데 얘기할래?”나예은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큰엄마와 같이 계세요?”사실 예전에 나예은은 나상준이 아닌 차우미에게만 계속 전화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같이 지낸 보람으로 처음 차우미가 아닌 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이다.때마침 나상준이 차우미와 함께 있다고 하니 나예은 순식간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옆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예상치 못한 일에 눈썹을 치켜올렸다.‘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나상준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격동의 앳된 목소리를 듣고 차우미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말했다.“응, 같이 있어. 전화 바꿔줄게.”“네.”나상준이 휴대폰을 차우미에게 건넸는데, 그녀가 아직 놀라 있을 때 휴대폰이 눈앞에 왔다.차우미는 잠깐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휴대폰은 나상준의 체온이 담겨 있는 듯 따뜻했다.“예은아.”“큰엄마, 깜짝 놀랐죠. 예은이 이번에는 큰아빠에게 전화했어요. 하하하...”차우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예은은 어찌나 기뻤는지 호탕하게 웃었다.나예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예은도 같이 웃었다.“그래, 큰엄마도 깜짝 놀랐어.”나예은과의 약속한 일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차우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
차우미는 잠깐 멈칫하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했다.휴대폰 화면에 신규 메시지가 뜨자 차우미는 하선주인 줄 알았는데 발신자는 온이샘이었다.그녀는 메시지를 클릭했다.[우미야, 탑승하면 나에게 메시지 보내줄 수 있어?]차우미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응, 알았어.]그러자 온이샘으로부터 또 잽싸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모티콘이 왔다.차우미는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조금 전에 대기실에서 온이샘이 휴대폰으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달력을 한참 동안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어떤 일은 애매모호하면 안 되고 정확해야 했기에 안평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시간을 내서 온이샘과 만나 확실하게 얘기할 생각이었다.라운지 휴식 구에서 나상준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줄곧 라운지 밖의 복도를 바라보며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했다.“아주버님, 지금 바빠요?”서혜지의 목소리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조금은 긴장하고 조심스러웠다.나상준이 말했다.“무슨 일이에요?”그는 바쁜가 하는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고 무슨 일인지부터 물었다. 아마도 상황에 따라서 다를 모양이다.그러자 서혜지가 서둘러 말했다.“다른 건 아니고요. 지금 예은이를 픽업했는데 예은이가 아주버님과 할 얘기가 있대요. 혹시 바쁘신데 폐를 끼치는 거 아닐까 해서 문의드리는 거예요.”나상준이 말했다.“안 바빠요.”서혜지는 예상했던 대답인 듯 즉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예은이 바꿀게요.”“그래요.”나예은은 아주 조용하게 베이비시트에 앉아 있었는데 커다란 두 눈을 굴리면서 서혜지를 바라보며 나상준과 통화시켜 주기를 기다렸다.나예은은 나상준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서혜지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서혜지가 자기를 바꿔주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예은은 기쁜 나머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서혜지 쪽으로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휴대폰을 받으려고 했다.서혜지는 조급해하는 나예은의 표정에 미소를 지
하선주는 이제 차우미 옆자리에는 온이샘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온이샘은 하선주에게 특히 좋은 인상을 남겨서 온이샘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좋아했다.차우미는 워낙 하선주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하선주가 눈치채자, 그냥 자연스럽게 대답하려고 했다.그런데 하선주가 갑자기 온이샘을 얘기할 줄은 몰랐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선배가 아니라 상준 씨랑 같이 가.”“나상준?”하선주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맑은 하늘에 먹장구름이 낀 것 같았다.“나상준은 왜 너와 같이 있어? 둘이 뭘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안평으로 오는 거야? 나씨 가문에 무슨 일 있어?”하선주의 불만이 섞인 말투와 함께 질문들이 쏟아졌다.나상준과 온이샘에 대한 하선주의 태도는 하늘과 땅이었다.이런 하선주의 반응을 차우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뵈러 오는 거야.”“...”표정이 굳어진 하선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우미의 말 한 마디에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분명 나씨 가문의 이혜정이 나상준에게 직접 가서 사과하라고 명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나씨 가문 이혜정의 일 처리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비교할 수도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선주는 마음이 불쾌했다.차우미는 하선주가 비록 말하지 않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이라도 상준 씨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오는 건 정상적인 일이야. 그러니 화내지 마.”“내가 왜 화를 내? 그리고 화를 낼 필요도 없어. 그냥 안 보면 되지.”하선주가 불쾌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걸 듣고 차우미는 웃었다.“엄마,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우리 이혼한 지도 벌써 몇 달 지났잖아. 상준 씨도 나도 이제 모두 각자의 삶이 있으니 두 가문은 예전대로 서로 왕래하면서 지내면 돼.”차우미의 아무렇지 않아하는 말을 듣고 있던 하선주는 순간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어렸을 때부터 말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