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그녀는 실크색 긴 셔츠를 입고 있었다.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와 높은 힐을 신고 있었다. 그녀의 우월한 외모와 몸매를 아주 잘 표현했다.다만 주혜민의 기분이 상당히 나빠 보였다.그녀는 입가에 손을 짚고 얼굴에는 웃음을 띠었지만, 눈에는 냉기가 돌았다.주혜민은 자리에 서서 한동안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차우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입술을 살짝 깨문 차우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주혜민이 차우미를 따라와 그녀의 통화를 엿들은 것이다.그녀는 차우미와 예은이 나누는 대화를 정확히 들었다. 차우미는 휴대폰을 살짝 움켜쥐고 주혜민을 스쳐지나기로 했다.주혜민에게 들키기 싫어 여기까지 나와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주혜민이 따라왔다.차우미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차우미가 주혜민을 스쳐지나자 주혜민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속에 들어왔다. "멈춰요."차우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주혜민의 발소리가 멈춰지자 몸을 돌려 섰다.그녀가 천천히 차우미의 앞으로 다가왔다.차우미보다 키가 살짝 더 컸던 주혜민은 10cm가 넘는 힐을 신은 탓에 훨씬 컸다.그녀는 차우미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어 차우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주혜민을 쳐다봤다."설명해야죠?"주혜민의 담담한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지만, 눈빛은 싸늘해졌다.그녀는 매우 화가 났다. 온이샘과 대화 내용을 엿듣기 위해 룸에 앉아 있다가, 차우미가 전화를 받으러 나오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뒤따라 나왔다.누가 전화를 걸었기에 이렇게 나와서 받는지 궁금했다.호기심이 생겨 따라나온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통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예은이다, 나씨 집안의 손녀.차우미가 아지도 그 집안 사람과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결국 주혜민의 마지노선을 넘었고 그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차우미가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주혜민의 말뜻을 차우미도 알아들었다. 헤어진 마당에
"하지만 난 상준 씨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그쪽이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진심이에요."말을 마친 차우미가 시선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주혜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주혜민에게 무례한 말 그만하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보는 시선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주혜민과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자리를 피했다.그러나 차우미는 자신의 이런 태도가 주혜민에게 도발로 다가왔다는 것을 몰랐다. 마치 그녀를 무시하고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것처럼 보였다.주혜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선심 써서 경고했더니 그걸 모르네요. 이젠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원망하지 마요."주혜민은 차우미가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나 직접 대면한 차우미는 그렇지 않았다.그래서 차우미에게 더는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았다.주혜민은 바로 팔을 들어 차우미의 앞을 막았다.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주혜민 씨." 차우미의 입이 열리자마자 주혜민은 순식간에 그녀를 밀쳤다.그러나 주혜민의 힘이 강했던 탓에 차우미는 떠밀려 비틀거렸다. 그리고 주혜민이 손찌검을 쓸 줄 몰랐던 차우미는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공격을 받았고 그래서 무게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던 것이다. 결국 차우미가 균형을 잃고 순식간에 뒤로 휘청댔다.그러나 넘어지는 순간 차우미의 뇌리로 다쳤던 발이 스쳐 지났고 다시 다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그래서 넘어지는 와중에 다쳤던 발부터 보호했다. 그러나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통증이 전해왔다.차우미가 바닥에 넘어지는 것을 본 주혜민은 그제야 만족했다.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주혜민은 그녀의 앞에 다가와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를 내려다보며 턱을 약간 치켜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임자 있는 약혼남을 감히 건드리고 뭐가 이렇게 당당해!"주혜민은 마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주혜민의 발언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주혜민의 입
"그만해!""그만해!"두 사람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하지만 주혜민의 행동이 더 빨랐다.순식간에 강한 힘이 차우미를 밀어붙였고, 채 일어서기도 전에 차우미는 다시 뒤로 자빠졌다.그러나 그녀가 뒤로 고꾸라지던 순간, 누군가 빠르게 날아와 순식간에 그녀를 품에 안았다.친숙하면서도 낯선 품에 부드럽게 안긴 차우미는 안정감을 느꼈다.'선배가 왔어.'온이샘이 차우미를 품에 꼭 감싸고 있었다.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주혜민를 노려보았다. "지금 한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아?"온이샘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이런 분노를 살면서 처음 느꼈다.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차우미가 휴대폰을 가지고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온이샘은 멍하니 접시에 놓인 꽃잎을 바라보았다.그는 차우미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음식에 집착했던 것이다. 어쩌면 둘 사이를 좋게 발전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줄 수 있었기에, 용기를 내서 자기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그러나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가 차우미의 식사를 방해했다. 둘 사이에 무언가 발전할 기회를 방해했다. 마치 둘 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실의에 빠졌다.항상 평온하던 온이샘은 이런 사소한 일에 감정이 동요해버렸다.침울한 기분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던 온이샘은 직원이 다가와 찻물을 따라줄 때가 되어서야 차우미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보자 주혜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주혜민과 맞은편에 앉은 남자 모두 사라져버렸다. 테이블에는 음식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차우미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나 차우미를 찾기 위해 나갔을 땐, 차우미가 바닥에서 일어서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온이샘의 마음이 시큰거렸다.그가 다가가던 찰나, 주혜민은 또다시 차우미를 해쳤다.바로 그의 눈앞에서 다쳤다. 이번에
그는 시선을 돌려 차우미에게 다가갔다.자기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진현 때문에 주혜민은 치솟는 분노를 어쩔 줄 몰랐다. 심지어 그녀가 아닌 차우미에게 시선을 고정한 진현 때문에 주혜민은 어쩔 줄 몰랐다.너무 화가 나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진현이 말없이 차갑게 주혜민을 지나치자 그녀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진현!”"..."진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혜민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했다.그는 차우미의 앞에 다가가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혜민이 대신 사과드립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말을 마친 진현이 허리를 구부리며 고개를 숙였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혜민의 두 눈이 커졌다. 상상도 하지 못한 전개였다.'날 대신해서 사과한다고?''저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 사과를 받는데?''자기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거야?'주혜민은 마치 미치광이를 보듯 진현을 바라보았다.차우미는 온이샘의 품에 안긴 덕분에 넘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애써 정신을 차렸다.겨우 안전하게 자리에 서자, 진심 어린 사과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차우미는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인 채 진심으로 사과하는 진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현은 진심을 다해 주혜민 대신 사죄를 했다.하지만 차우미는 그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죄송해요.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멈칫하던 진현이 몸을 똑바로 펴고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떠는 차우미는 연약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침착했고 평온했다.방금 뜻밖의 사고를 당한 사람답지 않게 차분했다.차우미는 말을 마친 뒤 시선을 주혜민에게 돌렸다. 주혜민은 충격과 분노에 서린 표정으로 외쳤다. "그쪽이 날 다치게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난 미안한 짓 안 했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사과하지 마요.""허!"주혜민이 실소를 터트렸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사람 됨됨이 대해 가르쳤어요.""세상사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고 하셨죠.""사람마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갖추면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윤리 도덕과 같은 품행 말이에요."주혜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혜민은 실눈을 뜨고 차우미를 쳐다보았다.차우미는 지금 주혜민이 윤리 도덕 없는 무례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우미가 자기를 완전히 얕본다고 여겼다.차우미는 주혜민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한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결코 나한테 재력이나 지위, 명예 같은 게 중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두 분은 그저 저한테 착실하게 살면 된다고, 그러면 가문에 먹칠하지 않는 거라고 하셨어요.""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날 지키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헐뜯지 않기 위해 내 일에 최선을 다했고 부끄러움 없이 잘 살았어요.""그런데 혜민 씨가 오늘 저한테 거짓을 진실인양 날조해 모독하고 내 명예를 훼손하고 날 다치게 한 거예요. 그쪽 가정 교육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우리 부모님 가르침대로, 나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물러서지 않을 거에요.""난 불륜을 한 적도 없고 누군가의 감정에 끼어드는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쪽이 한 비난과 모욕을 참을 수 없어요. 그쪽 언행으로 난 다른 사람들한테 불륜녀라는 낙인이 찍혔고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었어요. 물론 날 가르친 부모님께까지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고요.""혜민 씨가 모든 사람 앞에서 나한테 사과하세요."차우미는 어떤 감정의 미동 없이 차분하게 말을 마쳤다.그녀는 상처를 입은 사람보다 상처를 입은 사실을 진술하는 변호사 같기도 했다.순간, 주위가 삭막해졌다.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했다.구경꾼들은 차우미의 말에 살짝 동요했다.자기 할 말을 이렇게 똑 부러지게, 이성적으로 하는 여자를 불륜녀로 오해했다고 여겼다.온이샘은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차우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차우미에게 명예 훼손을 저지
'감히 나한테 따지는 거야? 사과하라고? 자기가 뭔데?'주혜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눈빛도 어두워졌다. 언제든지 무서운 짓을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그러나 차우미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다. 주혜민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차우미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그녀는 오직 자기 자신만 믿을 뿐,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주혜민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차우미의 모습에 헛웃음이 터졌다.그녀는 진현과 온이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위에서 질책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내가 만약 사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주혜민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말했다.차우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신고할 거예요."주혜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방금 당신이 한 말, 한 짓 때문에 난 실질적인 피해를 보았어요. 충분히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일이에요.""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서에서 만나야겠죠."주혜민은 더는 웃지 않았다.그녀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워졌다.차우미가 진심으로 한 말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 주혜민은 차우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얼마 뒤, 주혜민이 입을 열었다. "신고하세요.""지금 신고하면 돼요."말을 마친 주혜민은 차우미를 힐끗 쳐다보더니 돌아섰다.매우 건방지고 오만했다.차우미는 주혜민이 떠나는 것을 보고 휴대폰을 들고 112에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고 차우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신고하려고요."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주혜민은 차우미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그러나 바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차우미는 멀어지는 주혜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까 발생했던 상황을 낱낱이 설명했고 경찰관이 곧장 출발하겠다고 했다."네, 감사합니다."전화가 끊겼고 주혜민은 이미 떠났다.진현은 자리에 서서 주혜민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차우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차우미가 휴대폰을 넣으며 온이샘에게 말했다. "선배, 나 때문에 저녁 제대로
차에 탄 양훈은 경찰서에서 걸어나오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차우미가 오늘 왜 경찰서에 왔는지 조사해봐.""네."전화가 끊기자, 양훈은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가자."...호텔로 돌아온 주혜민은 곧바로 경찰서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진짜 신고했어?'전화를 끊은 주혜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가방과 함께 내동댕이쳤다.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분노다.3년 전, 나상준이 자기보다 못난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차우미에 관해 조사한 적 있었다.주혜민은 차우미에 관한 모든 것을 샅샅이 조사했다. 차우미의 집안은 청렴했다, 조상들도 청렴결백한 사람들이었고 지저분한 것이 없었다.나상준의 할머니가 차우미를 신붓감으로 고른 이유 중 하나가 그녀의 가문 때문이라고 여겼다. 차우미 집안이 바로 청렴결백한 집안이기에.두 사람의 집안과 비교하면 차우미 집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차우미의 관한 흠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결혼을 막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았으나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어쩌면 나상준의 할머니가 훨씬 전에 조사를 끝냈을 수도 있었다.결국 주혜민은 나상준의 결혼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나상준은 주혜민을 거절했다.그녀가 먼저 고백을 했고 나상준이 원하기만 하면 주혜민은 그와 결혼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나상준이 주혜민을 거절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주혜민은 처음 겪어본 거절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주혜민은 나상준이 결혼한 뒤에 후회하게 할 생각이었다. 틀림없이 후회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그러나 그가 정말로 차우미와 결혼했을 때 후회한 것은 주혜민이다.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그 결혼을 막아야 했었다.그러나 후회를 해봤자 이미 늦은 뒤다.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한방에서 살았으며 친밀한 일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주혜민은 질투에 휩싸였다.그래서 선택한 게, 출국이었
나상준뿐만 아니라 가온그룹의 아드님까지 그녀에게 매달리고 있는 꼴이었다. 주혜민은 아까 한식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차우미를 보호하던 온이샘, 차우미의 편을 들던 진현, 두 사람은 그녀에게 적대적이었다.'허! 대단하다! 진짜 대단해!'기가 찬 주혜민은 실소하며 눈빛이 음침하게 변했다.'차우미, 네가 감히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해?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더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아.'주혜민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몸을 구부려 바닥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방문과 닿은 곳에 내동댕이친 탓에 문 앞으로 가서 주워야 했다.그녀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일어서는 순간, 문밖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진현이다.언제부터 입구에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주혜민의 눈빛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실눈을 뜨고 진현을 바라보았다. "왜 온 건데? 아까는 모른 척하더니?"주혜민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들은 알고 지낸 지 몇 년이나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주혜민의 말을 들었다. 그녀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진현은 줄곧 주혜민의 말에 따랐다.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진현이 변했다.그녀가 알던 순종적인 남자가 아니었다.진현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얼굴로 조용히 들어왔다. "가자, 경찰서 같이 가줄게."진현은 주혜민 앞에 서서 온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주혜민이 손을 들었다. 짝!매우 우렁찬 소리와 함께 진현의 얼굴이 돌아갔다.진현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주혜민은 눈앞에 태연하게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경찰서를 가?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나 대신 사과를 해? 제까짓 게 뭔데! 진현, 경고하는데, 난 널 사랑하지 않아! 결코, 널 좋아하는 일 없을 거니까 헛된 꿈 품지 마!"주혜민이 턱을 치켜들며 차갑게, 조롱하듯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말을 마친 뒤 바닥에 있는 가방을 집어 들고 빠르
차우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차우미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차우미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으니, 그때도 아마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우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시간인 것을 보고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휴식 구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적막이 퍼졌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차우미를 보았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빛이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은 회성 회의실에서 일할 때와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다고 다시 휴대폰으로 안평의 관광 명소들을 검색했다.그는 자기와 멀어지려고 하는 차우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어 나상준과 차우미는 비행기에 탑승했다.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더니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온이샘에게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온이샘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지금 탑승하고 있어.]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일찍 탑승한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보더니 이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청주는 안평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이제야 차우미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청주에 있는 며칠 동안은 몇 년인 것처럼 오래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고 얼굴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물건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져서 놀라며 내려다
“예은이가 안평에 가본 적이 없어서 여름 방학이 되면 안평으로 놀러 갈 생각이야. 그런데 안평은 나도 잘 몰라.”나상준이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차우미는 나예은의 말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어찌 됐든 조금 전에 그녀는 약속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나상준의 말에 차우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렸다.나상준은 안평 사람이 아닌 청주 사람이고 또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기에 안평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는 청주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 오래 있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나예은과 같이 놀려면 어느 도시든 모두 가능한데 왜 하필 안평으로 가려고 하고 또 차우미까지 함께 하자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사실 차우미는 그들과 놀지 않고 일을 하고 싶었다.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차우미는 워낙 회성에서 일을 끝내고 또 나예은과의 약속을 이행한 다음에는 나상준과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은 또 이렇게 같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이 언제면 가능할지 막막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나상준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지켜보다가 말했다.“지금부터 서두를 거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그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여유를 주자, 차우미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우미를 보고 있던 시선도 거두고는 휴대폰으로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직 예은이의 여름 방학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고는 하지만 나 이번에 회성에서의 일이 금방 끝났고 또 휴가까지 썼기에 앞으로는 매우 바쁠 거여서 그때는 시간이 안 돼. 정말로 예은이와 같이 안평으로 가게 되면 내가 전문 투어 가이드를 소개해 줄 거니까 예은이와 같이 놀러 다녀.”비록 나상준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차우미는 아예 지금 미
차우미는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나상준이 통화하는 것을 보고 시선을 거두고 원래 앉았던 1인 소파에 앉았다.나상준은 시종일관 차분한 차우미의 표정을 보다가 별다른 생각없이 말했다.“그래, 큰아빠 시간이 될 때 전화할게.”“네, 알겠어요. 큰아빠 전화 기다릴게요.”나예은은 나상준과 차우미와 함께 놀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기에 나상준의 말을 듣고 엄청나게 기뻐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랐지만 업무상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 나예은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러다가 나상준의 입에서 큰아빠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큰엄마도 같이 있는데 얘기할래?”나예은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큰엄마와 같이 계세요?”사실 예전에 나예은은 나상준이 아닌 차우미에게만 계속 전화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같이 지낸 보람으로 처음 차우미가 아닌 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이다.때마침 나상준이 차우미와 함께 있다고 하니 나예은 순식간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옆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예상치 못한 일에 눈썹을 치켜올렸다.‘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나상준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격동의 앳된 목소리를 듣고 차우미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말했다.“응, 같이 있어. 전화 바꿔줄게.”“네.”나상준이 휴대폰을 차우미에게 건넸는데, 그녀가 아직 놀라 있을 때 휴대폰이 눈앞에 왔다.차우미는 잠깐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휴대폰은 나상준의 체온이 담겨 있는 듯 따뜻했다.“예은아.”“큰엄마, 깜짝 놀랐죠. 예은이 이번에는 큰아빠에게 전화했어요. 하하하...”차우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예은은 어찌나 기뻤는지 호탕하게 웃었다.나예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예은도 같이 웃었다.“그래, 큰엄마도 깜짝 놀랐어.”나예은과의 약속한 일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차우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
차우미는 잠깐 멈칫하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했다.휴대폰 화면에 신규 메시지가 뜨자 차우미는 하선주인 줄 알았는데 발신자는 온이샘이었다.그녀는 메시지를 클릭했다.[우미야, 탑승하면 나에게 메시지 보내줄 수 있어?]차우미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응, 알았어.]그러자 온이샘으로부터 또 잽싸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모티콘이 왔다.차우미는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조금 전에 대기실에서 온이샘이 휴대폰으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달력을 한참 동안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어떤 일은 애매모호하면 안 되고 정확해야 했기에 안평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시간을 내서 온이샘과 만나 확실하게 얘기할 생각이었다.라운지 휴식 구에서 나상준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줄곧 라운지 밖의 복도를 바라보며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했다.“아주버님, 지금 바빠요?”서혜지의 목소리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조금은 긴장하고 조심스러웠다.나상준이 말했다.“무슨 일이에요?”그는 바쁜가 하는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고 무슨 일인지부터 물었다. 아마도 상황에 따라서 다를 모양이다.그러자 서혜지가 서둘러 말했다.“다른 건 아니고요. 지금 예은이를 픽업했는데 예은이가 아주버님과 할 얘기가 있대요. 혹시 바쁘신데 폐를 끼치는 거 아닐까 해서 문의드리는 거예요.”나상준이 말했다.“안 바빠요.”서혜지는 예상했던 대답인 듯 즉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예은이 바꿀게요.”“그래요.”나예은은 아주 조용하게 베이비시트에 앉아 있었는데 커다란 두 눈을 굴리면서 서혜지를 바라보며 나상준과 통화시켜 주기를 기다렸다.나예은은 나상준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서혜지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서혜지가 자기를 바꿔주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예은은 기쁜 나머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서혜지 쪽으로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휴대폰을 받으려고 했다.서혜지는 조급해하는 나예은의 표정에 미소를 지
하선주는 이제 차우미 옆자리에는 온이샘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온이샘은 하선주에게 특히 좋은 인상을 남겨서 온이샘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좋아했다.차우미는 워낙 하선주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하선주가 눈치채자, 그냥 자연스럽게 대답하려고 했다.그런데 하선주가 갑자기 온이샘을 얘기할 줄은 몰랐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선배가 아니라 상준 씨랑 같이 가.”“나상준?”하선주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맑은 하늘에 먹장구름이 낀 것 같았다.“나상준은 왜 너와 같이 있어? 둘이 뭘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안평으로 오는 거야? 나씨 가문에 무슨 일 있어?”하선주의 불만이 섞인 말투와 함께 질문들이 쏟아졌다.나상준과 온이샘에 대한 하선주의 태도는 하늘과 땅이었다.이런 하선주의 반응을 차우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뵈러 오는 거야.”“...”표정이 굳어진 하선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우미의 말 한 마디에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분명 나씨 가문의 이혜정이 나상준에게 직접 가서 사과하라고 명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나씨 가문 이혜정의 일 처리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비교할 수도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선주는 마음이 불쾌했다.차우미는 하선주가 비록 말하지 않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이라도 상준 씨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오는 건 정상적인 일이야. 그러니 화내지 마.”“내가 왜 화를 내? 그리고 화를 낼 필요도 없어. 그냥 안 보면 되지.”하선주가 불쾌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걸 듣고 차우미는 웃었다.“엄마,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우리 이혼한 지도 벌써 몇 달 지났잖아. 상준 씨도 나도 이제 모두 각자의 삶이 있으니 두 가문은 예전대로 서로 왕래하면서 지내면 돼.”차우미의 아무렇지 않아하는 말을 듣고 있던 하선주는 순간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어렸을 때부터 말도 잘
“짐은 저 주세요.”나상준의 아무런 감정도, 온도도 없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들렸는데 봄날 같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졌다.온이샘은 시선을 살짝 돌려 나상준을 보았는데 나상준도 아무런 흔들림 없는 깊은 눈동자 온이샘을 보고 있었다.나상준은 지금 아주 담담하게 온이샘이 반드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차우미의 캐리어는 이제 나상준에게 넘겨줘야 했기에 온이샘은 캐리어를 잡았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바로 풀고 나상준에게 넘겼다.차우미가 말했다.“내가 하면 돼.”그녀가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었다.차우미가 손을 뻗었을 때 골격이 분명한 손이 이미 캐리어를 잡고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나상준이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가자.”차우미는 허공에 있는 손을 거두며 캐리어를 잡은 나상준의 손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온이샘을 향해 말했다.“선배, 우리 안평에서 봐.”온이샘도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그래, 안평에서 보자.”그리고 차우미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온이샘은 그 자리에 서서 가냘픈 몸매가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키 크고 분위기가 차가운 남자도 보이자,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차우미가 다른 남자와 함께 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다른 남자와 함께 그를 멀리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온이샘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억지로 이성을 회복했다.그는 온평에 가서 차우미를 만나면 마음속의 말을 모두 할 건데 그녀만 좋다면 온이샘은 두려운 것이 없었다.차우미와 나상준은 대기실을 떠나 VIP 라운지로 갔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서둘러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었다.때문에 두 사람은 라운지의 휴식 구에 가서 앉았다.그러자 직원이 차와 디저트를 가져왔고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나상준을 보며 말했다.“나가서 전화하고 올게.”나상준은 여전히 간단하게 알았다고 했다.차우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
하얀 셔츠, 연한 캐주얼 바지, 뼛속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좋은 가정 교양과 준수하고 우아한 얼굴은 대기실의 밝은 조명을 받아 더욱더 환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나상준은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더니 서두르지 않고 평온한 속도로 걸어갔다.“다 됐어?”모두가 한곳에 모여 발걸음을 멈추자마자 온이샘이 먼저 말했다.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응. 선배 이제 캐리어는 나 줘.”온이샘이 뭔지 몰라 흠칫하더니 말했다.“괜찮아. 내가 들게.”“그게 아니라, 선배, 우리 탑승구가 달라.”온이샘 얼굴에 있던 부드러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탑승구가 다르다고?’그는 머릿속으로 차우미가 나타나던 방향을 생각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깨달았다.사실 온이샘은 비행기 탈 때 보통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다.가끔 중요하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만 퍼스트 클래스를 선택할 뿐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코노미석이 익숙했기에 오늘도 습관적으로 티켓팅을 할 때 이코노미석을 예약한 것이다.하지만 나상준은 달랐다. 그는 지위와 신분 때문에 매번 퍼스트 클래스를 타야 했는데 따라서 차우미도 그와 함께 다닐 때마다 자연스럽게 퍼스트 클래스를 탔다.그런데 온이샘은 오늘 티켓을 예매할 때 이 부분을 놓친 것이다.온이샘은 잠깐 생각하더니 곧바로 말했다.“잠깐만, 나도 좌석 업그레이드하면 돼.”말을 마치고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좌석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다.온이샘은 차우미가 이코노미석인 줄 알고 있었는데 만약 차우미가 퍼스트 클래스인 줄 알았다면 진작에 퍼스트 클래스를 샀을 것이다.조금 전에 차우미는 온이샘의 표정을 보고 있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온이샘이 먼저 말을 하는 바람에 차우미는 하려던 말을 하지 못했다.지금 온이샘의 행동을 보며 차우미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온이샘의 선택을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 옆
여가현과 통화를 마친 온이샘의 눈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거기에는 굳은 의지도 담겨 있었다.여가현의 말을 듣고 그는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원래 차우미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는데 지금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나상준이 차우미 옆에 있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그 순간 가슴속으로부터 무한한 힘이 솟구쳤는데 온이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차우미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같은 시각, 공항 로비에서 나상준은 곧장 VIP 게이트로 향했는데 차우미는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가다가 가는 방향이 VIP 게이트인 것을 보고 무언가 떠올렸다.온이샘이 구매한 항공권은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석이어서 그녀에게 보낸 사진도 일반 대기실이지 VIP 라운지가 아니었다.차우미는 그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는 나상준을 불렀다.“상준 씨.”나상준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발 폭이 차우미보다 컸지만, 앞에서 걷지 않고 차우미의 속도를 맞춰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차우미가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그도 멈추고 대답했다.“응.”차우미가 말했다.“선배는 이코노미석이어서 일반 대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조금 전에 보내온 사진에서 봤는데 일반 탑승구였어. 상준 씨는 먼저 VIP 라운지에 가 있어. 나는 선배한테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갈게.”VIP 라운지와 일반 탑승구가 다르기에 나상준은 그녀와 같이 갈 필요가 없었다.“그럴 필요 없어.”“응?”“같이 가자.”말을 마치고 나상준은 먼저 출발했다.차우미는 깜짝 놀랐다가 서둘러 그를 쫓아가며 말했다.“같이 안 가도 돼. 먼저 라운지에 가서 휴식도 하고 일도 해. 나랑 다니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나상준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러자 차우미도 따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도 같이 가면 안 돼?”차우미는 당황하며 말했다.“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그냥...”“
온이샘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알았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흔이에게 전화해.”“그래.”그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여가현이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강서흔에게 건네자, 강서흔이 곧바로 물었다.“어때? 잘 된 거야?”여가현은 강서흔의 금방이라도 신랑이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표정을 보고 물 한 컵을 가져다 마시며 말했다.“뭐가 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강서흔의 흥분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왜 아직이야? 너무 느린 거 아니야? 나였다면 진작에...”말이 끝나기 전에 강서흔은 즉시 멈추고 조심스럽게 여가현을 바라보았다.여가현은 물컵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며 헛기침을 두 번 하고 물었다.“진작에 뭐?”여가현의 헛기침 소리에 강서흔은 순간 가슴이 섬뜩했는데 그녀의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은 너무 무서웠다.강서흔은 무의식적으로 장난이라는 듯 웃으며 주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여가현이 꼼짝하지 않고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에 즉시 생각을 접고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속삭였다.“나였다면 진작에 덮쳤을 거라고. 나는 네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무조건 너와 함께할 거야.”여가현은 웃었다.“우미가 나인 줄 알아? 미리 말하는데 우미는 절대 나처럼 양보하고 굽히지 않을 거야. 나상준 씨 어머니도 비록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우미를 괴롭히지는 못했어. 우미와 나상준의 이혼도 나상준 씨 어머니와는 아무 관련이 없이 오로지 우미의 뜻이었어. 우미가 한 번 결정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거야. 마찬가지로 우미는 한 번 이혼한 사람을 절대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거야. 때문에 절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선택할 거야.”강서흔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두 사람이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가현의 기분은 늘 변덕스러웠다.예를 들어 조금 전에 온이샘과 통화할 때는 태도가 좋더니 지금 강서흔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사실 여가현의 마음에 여전히 불만이 있었는데 수년간 쌓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