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는 뒤척이다가 늦게 잠이 들었고, 평소보다 늦게 깨어났다. 그녀가 깨어났을 땐, 커튼이 닫혀있어 외부의 빛이 차단되었다. 희미하게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시가 거의 되어갔다.차우미는 흐리멍덩한 눈을 크게 뜨고 시간을 재차 확인한 뒤,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발목에 힘이 가해졌고 통증이 전해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가 어제 발목 삐었다는 것을 떠올렸다.머릿속에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났다. 어젯밤 일이 떠오른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소파 위를 바라보았다.이불이 소파 위에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차우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자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나상준이 갔다고 여긴 그녀는 몸의 긴장이 풀렸다.평소 업무가 많아 바빴던 나상준이니, 줄곧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그녀는 어젯밤 나상준이 옆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아주 고마웠다.오늘 진정국이 회사에 온다고 했으니, 그녀는 진정국에게 연락해야 했다."우미야."휴대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공항 안내음도 들렸다. "아저씨, 지금 공항이에요?""응, 곧 탑승할 거야."차우미가 미소를 지었다. "네.""참, 삼촌, 할 얘기가 있어요.""그래, 말하렴."차우미는 자기가 실수로 발을 삔 사실을 진정국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테니, 두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진정국도 흔쾌히 승낙했다. 다만 발을 삔 그녀가 걱정되어 당부했다.차우미는 이틀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정보를 진정국에게 알렸다. 진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일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네가 필요하면 연락할 테니 회복에만 집중해.""네."진정국과 통화를 마친 차우미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얼른 몸을 회복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손이 다 아물었고 그래서 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차우미는 침대에 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조심스
[깨어나면 연락해줘.]짤막한 문자에 차우미가 깼다고 답장을 했다.단순하게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려는 문자라고 치부한 차우미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상준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은 전혀 의외가 아니었다.차우미는 답장을 하자마자 프런트에 연락했다. 연락이 닿자마자,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차우미가 프런트 직원에게 말했다. "잠시만요.""네."휴대폰을 귀에서 뗀 차우미는 천천히 입구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차우미 님, 안녕하세요."문밖에는 깨끗한 옷차림의 40대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차우미도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차우미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인사하자, 의아했다. "혹시 간병인이세요?""네, 나상준 님께서 간병인을 신청했습니다."차우미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녀에게 깨어나면 연락하라고 한 이유는 간병인을 보내기 위해서였다.차우미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들어와요."나상준이 미리 간병인을 보낸 덕에 그는 프런트 직원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었고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간병인은 그녀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휠체어와 아침 식사를 호텔 직원이 가져다주었다.간병인은 얼른 방을 치운 뒤, 그녀를 매우 꼼꼼하게 보살폈다.나상준은 일처리가 깔끔했다.차우미도 안심이 되었다.아침을 먹은 그녀는 곧장 일을 시작했다. 각종 자료를 리서치하며 결코 한가롭게 보내지 않았다.비록 이 상태로 행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녀는 박물관에 둘 조각물에 관여해야 했다.어떤 것을 디자인하고 구현할지 모두와 상의해야 했다.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차우미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탓에 정신이 맑았다.점심을 간단히 먹은 차우미는 계속 일에 열중했다. 그렇게 또 오후 4시가 되었다.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었던 탓에, 나가서 산책하고 싶었지만, 이 발목으로 제대로 설 수 없었다.차우
나상준은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고 걷어 올렸다. 그의 굵은 팔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차우미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리고 황급히 말했다. "가서 일해, 난 간병인이 있으니까 괜찮아."간병인이 있기에 굳이 그가 돌볼 필요는 없었다.워낙 일이 많았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녀를 돌볼 필요는 없었다.나상준은 양쪽 옷소매를 걷어붙인 뒤 그녀의 뒤로 가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입술을 살짝 벌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이런 모습은 어젯밤과 매우 흡사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차우미는 그의 차분한 발소리에 집중했다.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의 입술도 서서히 닫혔다.나상준은 차우미가 탄 휠체어를 밀고 호텔에서 나왔다. 식사 후 한가한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서서히 퇴근 시간과 가까워졌고 도로에는 차들이 점차 많아졌다. 인도에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로등도 하나 둘 켜졌고 도시의 열기가 한층 무르익어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어디 갈까?"나상준의 질문에 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렇게 한동안 목적지 없이 걸을 줄 알았다.차우미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냥 걸어."목적지는 없었다, 다만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경치를 볼 생각이었다."음."낮은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다시 두 사람을 감쌌다.차우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사고였고 마음에 두지 마.""발이 완쾌하지 않아 한동안 더 치료해야 할 것 같아, 큰 문제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간병인이 아주 친절해, 세심하고 일도 잘해. 그러니까 안심해.""가서 할 일 해, 내 걱정은 하지 말고."그는 호텔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간병인이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대
차우미가 명확하게 말했기에 나상준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휠체어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도 안심되었다.나상준은 알아들었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의외의 말이다.그녀가 상상치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차우미는 한동안 멍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나상준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이 내뱉은 말에 당황했다.3년간 봐온 나상준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성숙해지고 점점 속마음을 잘 숨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감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그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웠다.그러나 두 사람은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부부였고, 그녀만큼은 나상준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녀가 아는 나상준은 절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나상준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나상준은 차우미가 앉은 휠체어를 밀며 앞을 주시했다. 평소처럼 앞만 바라보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평소처럼, 평온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의 미묘한 변화를 차우미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베일듯한 턱선, 날카롭게 솟은 콧날, 그녀가 처음 보는 짙은 눈동자였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나상준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나상준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까워졌다.차우미는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은 어제도 느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입술도 살짝 깨물었다.그녀의 뇌리로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났다.순간, 차우미가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내가 외도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그가 온이샘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가 내뱉은 말뜻은 아주 명확했다.그는 주로 밖에서 일했고 집에서 아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그녀의 할아버지를 믿었기에, 그녀도 의심하지 않았다. 차우미의 가족을 믿었기에 그녀를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하지만 이혼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그녀의 곁에 다른 남자가 생겼고, 나상준은 둘 사이를 외도로
얼마나 걸었을까, 나상준은 택시를 잡았다. 그녀를 택시에 태운 다음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고 택시에 올라탔다.호텔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나상준이 그녀를 돌볼 이유는 없었다.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6시가 되었고 하늘도 어두웠다.점심을 늦게 먹었기에, 지금 배고프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다시 호텔로 돌아가면 간병인은 그녀에게 저녁을 준비해 줄 것이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다시 핸드백에 넣었다.그때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데상타이로 가주세요."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호텔이 아니었다. 차우미는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뚝뚝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을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나상준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고민만 더 늘고 싶지 않았다.운전기사는 두 사람을 태우고 데상타이로 향했다. 20분도 안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상준은 다시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뒤, 레스토랑 안으로 그녀를 밀고 들어갔다.데상타이는 중식 전문 레스토랑이다. 붉은 등이 걸려 있는 레스토랑의 아래층은 사람으로 꽉 차 아주 시끌벅적했다.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얼른 뛰어와 둘을 반겼다. "예약하셨습니까?"나상준이 답했다. "네, 3508번이요.""네, 위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직원은 두 사람을 위층으로 안내했고, 그들은 룸에 들어갔다.직원은 나상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나상준은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지 않고, 혼자 주문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을 끝낸 직원은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그틈에 컵에 마실 물을 따랐다. 그리고 조용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나상준은 그녀가 따른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차우미는 그의 말을 들은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상준의 눈에 서운함이 더욱 깊어졌다.나상준은 손가락으로 컵을 만졌다.차우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천천히 만졌다.곧 음식이 나왔고
차우미는 순간 멈칫하더니 시선을 돌려 나상준을 바라보았다.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발신자는 하성우일 것이다.하성우에게 인내심이 없는 것 같았다.결국 차우미는 가방에 넣었던 휴대폰을 꺼냈다.하지만 발신자는 하성우가 아닌, 낯선 번호였다.차우미는 의아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 하성우가 머리를 써,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지 모른다고 여겼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받았다. "여보세요.""언니!"밝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도 잠시, 차우미는 당황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성우에게 코알라처럼 매달려 있던 그녀였다.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심나연이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한 발신자에, 다소 당황했다.그녀는 나상준을 바라보며 심나연에게 물었다. "옆에 성우 씨 있어요?"하성우가 나상준과 연락이 닿지 않자, 심나연이 그녀에게 전화한 것 같았다."어! 언니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 눈치 빠르네요! 전 성우 오빠랑 같이 있어요. 지금 밥을 먹으러 가려고요, 언니 혹시 상준 오빠랑 같이 있어요?"차우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심나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언니, 상준 오빠 기분은 어때요? 안 좋아요?""왜 성우 오빠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심나연은 말이 많았다, 쉬지 않고 말을 해댔다. 차우미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차우미의 시선이 나상준에게 향했다.'기분이 안 좋냐고?'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물론, 그러지도 않았다.그는 자기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래서 간파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오늘 그가 한 말로 볼 때, 나상준은 기분이 나빴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차우미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아니요, 상준 씨 화장실 갔어요.""아~ 어쩐지!""그럼 언니랑 상준 오빠는 지금 어디예요? 호텔이에요? 밖이면 저희가 거기로 가도 돼요?""밖이에요.""데상타이에 있어요.""네! 저희 금방 가니까 기다려줘요!"말을 마친 심나연이 전화를
밥을 먹은 뒤, 나상준은 일하러 가고 그녀는 호텔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두 사람은 접촉할 기회를 줄이는 편이 좋았다.나상준은 덤덤하게 밥을 먹는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차우미는 뜨거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하게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결국 수저를 놓고 어두운 눈빛으로 차우미만 바라보는 나상준이다.심나연과 하성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언니, 상준 오빠!"심나연은 안으로 들어오면서 둘을 찾았다. 즐거운 얼굴로 차우미의 곁으로 달려가 앉았다. 심나연은 어느새 차우미에게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하성우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하성우는 나상준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나상준이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는 하성우도 어느 정도 눈치챘으나, 여기에 와서 직접 보니 그 믿음이 더욱 확실해졌다.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나상준의 곁에 앉았다. 하성우는 고개를 돌려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님 발은 어때요?"심나연은 그제야 차우미가 발을 다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그녀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성우 오빠가 언니가 발을 다쳤다고 해서 처음엔 안 믿었는데, 진짜 다친 거예요?""형수님, 많이 아프세요? 걸을 수 있겠어요?"그녀에게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차우미는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괜찮아요, 살짝 삐끗한 거예요." "진짜요? 성우 오빠는 언니가 제대로 걸을 수 없다고 하던데."심나연은 고개를 돌려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상준 오빠, 언니 어쩌다가 다친 거야?""이 발로 어떻게 걸어."나상준은 하성우의 오른쪽에 앉아 눈을 늘어지게 뜨며 물 한 모금을 마셨다.심나연의 악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하성우는 심나연을 저지하기는커녕, 태연하게 주문을 했다.그는 아직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차우미는 심나연이 나상준에게 대놓고 물어볼 줄 몰랐다. 나상준이 대답할 기미
차우미는 나상준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여겼다.하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상준을 한동안 바라보았다.나상준의 태도가 납득가지 않았다.나상준의 두 마디 말에 심나연과 하성우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한참뒤,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서둘러 말했다.한 명은 나상준을 속이 좁다고 나무랐다. 차우미와 다툰 그를 원망하며 차우미를 달랬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에 나상준을 용서해달라는 말로 보충했다.차우미는 자리에 앉아 얼굴을 붉히며 나상준을 대신해 항변하는 심나연과 하성우를 바라보았다.나상준은 더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눈빛으로 손가락으로 컵을 문지르며 생각에 빠졌다.차우미가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심나연은 그녀에게 밖으로 나가 걷자고 제안했다. 하성우는 나상준에게 따라가지 말라고 눈짓했다.차우미의 휠체어를 밀고 심나연은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길에 빛나는 등불이 가득했다."언니, 상준 오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적어도 성우 오빠보다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에요. 상준 오빠를 먼저 알게 되었으면 나도 분명 상준 오빠를 좋아했을 거예요."심나연은 순간 말실수를 했다고 여기고 얼른 변명했다. "오해하지 마요. 성준 오빠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니까 언니가 그만 화 풀었으면 해서요. 언니가 화를 내면 성준 오빠가 가슴 아파할 거예요."심나연에게 나상준은 하성우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는 더 좋은 사람이다.나상준은 그녀의 이상형이었다.하지만 나상준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하성우가 제일 좋았고, 아무도 하성우을 대신할 수 없었다.차우미는 밖에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숨 막히는 공간에 있지 않아 정신이 맑아졌고 그녀의 의심도 사라졌다.그녀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차우미는 온이샘과 같이 삼륜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서 곧바로 차에 타고 도로로 나왔다.그때 차에서 차우미가 나상준에게 자기의 상황을 메시지로 보냈다.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을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출발하여 아직 2시가 되지 않았다.호텔에 도착하면 2시가 될 거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하고 차 키까지 맡기면 아마 2시가 넘어서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3시 넘어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으니, 시간이 충분하다.차우미는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고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했다.온이샘은 운전하면서 가끔 그녀를 살펴봤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심각하지는 않고 무언가 계획하는 것 같았다.온이샘은 차우미가 자기도 함께 안평으로 가는 데 있어서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온이샘은 나상준 때문에 차우미가 자기도 안평으로 함께 가려는 것을 거절할까 봐 걱정했었다.온이샘은 나상준이 차우미 옆에 있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기가 없는 상황에서 나상준만 차우미 옆에 있는 것이 두려웠다.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계속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온이샘은 방해하지 않았다.온이샘은 앞을 바라보고 안전하게 운전하며 이후에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이번에 청주로 오면서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기에 잘 생각해야 했다.두 사람은 호텔로 가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아 차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1시가 넘어서 교통 체증이 조금 있었지만, 아침 정도는 아니어서 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1시 47분으로 차우미가 예상했던 시간과 비슷했다.차우미가 가방을 들고 온이샘에게 말했다.“선배, 나의 짐은 준비를 다 했으니 이제 방에 돌아가서 한 번 살펴보고 공항으로 출발할 거야. 그러니 선배도 이제 돌아가서 정리하고 우리 공항에서 만나.”온이샘이 그녀와 같은 항공편을 예약했기에 그냥 돌아설 수 없어 자기의 상황을 얘기했다.어차피 같은 비행기로, 함께 안평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실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이 고양이는 특별히 귀한 품종이 아니고 아주 평범한 고양이다.이혜정은 식사하고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느 하루 박영자와 이혜정은 함께 산책하다가 숲에서 아주 약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이혜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숲속을 바라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주 작은 고양이가 이혜정 앞으로 걸어 나왔다.그는 이혜정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 걸 알고 있다는 듯 이혜정의 발 옆에 와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이혜정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습관이 없는데 어릴 때 가문이 망했을 때도 그녀의 생활은 여전히 평범하지 않았고 아가씨로 불리고 집에 가정부도 있었다.하지만 아주 어릴 때 누군가 아주 진귀한 페르시아고양이를 선물했었는데 그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하다가 죽었다. 그때 이혜정는 오랫동안 슬퍼했고 그 뒤로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이혜정은 더 이상 이별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게다가 그때 가문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페르시아고양이가 죽은 다음 가문이 더욱 힘들게 되면서 심지어 자기를 진심으로 대해줄 사람과 결혼할 수도 없게 되었다.그리하여 이혜정은 결국 그때 보따리 장사를 하던 나동석과 결혼하게 되었다.그렇다고 무작위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나동석의 근면 성실하고 착하고 노력하는 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다.결혼 후 두 사람은 많은 풍파를 함께 겪으면서 인생의 굴곡을 모두 체험했다.그런 상황에서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조건도, 여유도 없었다.때문에 어린 고양이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는 순간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라 이혜정은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지금까지 키우게 되었다.그런데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혜정은 힘들 때 나씨 가문을 도와주었던 차우미의 할아버지를 찾게 되었다.그 이후에는 나상준과 차우미의 결혼으로 서로 사돈을 맺게 되었다.고양이는 재미있게 놀다가 힘들었는지 그 자리에 엎드려 꼬리를 흔들며 물고기들이 헤엄치
봄이 지나고 여름이 한창이기에 산과 나무들은 무성하고 푸르다.숲속에서는 매미가 울고 나뭇가지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며 나뭇잎들은 바람에 사르륵 소리를 냈다. 이 모든 것은 여름날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었고 여름날의 풍경을 그대로 표현했다.별장은 푸른 산과 맑은 물을 중심으로 숲 아래에 있는데 봄이 가면서 추위가 사라지고 그윽하고 고요한 여름을 맞이했다.검은색 벤츠가 별장 문 앞에 있었는데 나상준이 거실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차는 곧바로 별장을 떠났고 박영자는 청석으로 포장된 바닥에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뒷마당의 연못 옆에 있는 정자로 갔다.박영자는 돌 벤치에 앉아 대나무로 엮은 공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를 앉고 있는 노인의 옆에 가서 말했다.“사모님, 도련님은 출발하셨어요.”이혜정은 주먹만큼 크기의 공은 한 손으로 잡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술 장식들이 있었고 공이 움직일 때마다 같이 흔들렸다.술 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노란 고양이가 몸을 일으키며 잡으려고 했고 잡지 못하면 다급해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이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했는데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연구하는 듯 귀를 잡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이혜정은 평소 잘 웃지 않았는데 후손들을 만나거나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볼 때만 주름을 자랑하며 미소를 보여주었다.박영자의 말을 듣고 이혜정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혜정의 대답을 들은 박영자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이혜정의 뒤에서 부채질했다.이혜정은 공을 여기저기 옮겨가며 고양이를 놀리다가 가끔은 고양이가 잡을 수 있게 행동을 멈추기도 했다.그녀가 공을 멈추고 높이를 낮추면 고양이는 누워서 뒹굴며 놀았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지면 그녀는 또 공을 뺏었는데 그때마다 혼란스러워하는 고양이의 표정을 보고 이혜정은 크게 웃었다.박영자는 이혜정의 웃음소리와 표정을 보다가 또 멍해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따라서 웃었다.이혜정은 고생을 많이 했는
“이샘이는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유독 여자애들과는 언제나 거리를 두었어. 다른 남자애들은 사춘기 때 짝사랑도 하고 좋아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이샘이는 공부 외에 아무 데도 관심이 없고 항상 품행과 학업이 모두 뛰어났어. 그래서 그때 우리 반의 여학생들은 거의 모두 이샘이를 짝사랑 했었거든.”유리의 말을 듣고 화동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당신도 좋아했어?”유리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당연하지. 그때 짝사랑 안 해본 사람이 없을걸. 게다가 그렇게 우수한 사람을 누군들 싫어하겠어. 그 나이 때는 누구나 짝사랑하는 거야. 사춘기의 소녀가 같은 반에 공부도 잘하고 가문도 좋고 잘생긴 남자가 있는데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화동은 유리가 흥이 나서 그때 일을 얘기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며 미소를 아끼지 않았다.유리는 화동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왜 웃어? 질투 안 해?”화동은 그녀를 끌어안고 고개를 저었다.“안 해.”유리는 화동의 웃고 있는 얼굴을 꼬집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어렸을 때니까 당연히 신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지만 크면서 달라지는 거야.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인연이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예전에 친구들이 농담으로 이샘이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지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끝내 알았어. 만약 이샘이와 우미 씨가 정말 좋은 결과가 있다면 애들한테 자랑해야겠어.”말하면서 유리는 휴대폰을 꺼내서 갤러리를 클릭해서 오전에 길거리를 구경하면서 찍었던 온이샘과 차우미의 사진을 화동에게 보여주었다.“이거 봐. 두 사람 잘 어울리지.”화동도 사진을 보았다.차우미와 온이샘이 무후문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무후문 위에 있는 깃발을 올려다보고 온이샘은 옆에서 차우미를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었다.화창한 햇빛 아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길거리의 풍경도 오가는 사람들도 모두 생활 중의 여러 가지 색으로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하지만 온이샘에게는 아
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놀리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가 아직은 연인이 아니고 또 차우미가 많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온이샘이 차우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너무 무례하지 않았다.유리가 먼저 침묵을 깨자, 화동이가 이어서 말했다.“우미 씨, 이샘 씨, 저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양해해 주세요.”화동의 겸손한 한마디에 온이샘이 서둘러 말했다.“아니에요. 화동 씨 요리 너무 맛있어요. 청주와 노주 그리고 안평 요리까지 모두 너무 맛있어요. 저 지금 엄청 많이 먹고 있어요.”말하면서 온이샘은 젓가락을 들고 요리와 함께 밥그릇의 맨 위에 놓인 차우미한테서 가져온 밥을 먹었다.차우미는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다가 온이샘이 아무렇지 않게 자기의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먹었다.그렇게 분위기는 금방 돌아왔고 모두 즐겁게 식사했다.오후 1시가 거의 될 때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지나서 화동과 주관규가 일어나서 식탁을 정리하자, 차우미와 온이샘도 일어나서 도와주었다.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여러 명이 움직이자, 식탁은 금방 정리되었다.설겆이까지 다 끝나고 온이샘이 시계를 보았는데 1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 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우리 오늘 안평으로 가야 해서 오래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다시 모이자.”유리는 두 사람이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너 일도 잘하고 책임감 있는 바쁜 사람인 거 알아. 우미 씨도 바쁜 것 같으니 잡지 않을게. 우리 서로 연락 방법을 남겨서 나중에 또 연락하자.”“그래. 교통도 편리하니 모두 시간이 될 때 또 만나자.”유리는 역시 소탈하고 통쾌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러자.”이어서 그들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는데 차우미도 유리의 전화번호와 카톡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번에 차우미도 신속하게 반응했는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릇을 잡으며 말했다.“유리 씨, 괜찮아요. 저 먹을 수 있어요.”차우미는 온이샘에게 자기가 먹다 남은 음식을 줄 수 없었다.유리는 차우미가 자기의 손에서 그릇을 가져가려고 하자 그 손을 뿌리치고 온이샘을 보며 말했다.“이 정도면 됐어.”말을 마치고 유리는 또다시 젓가락을 들고 차우미의 그릇에 요리를 산처럼 담은 다음 차우미 앞에 놓았다.그녀의 모든 동작은 매우 빨랐고 성격처럼 시원시원했으며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너무 당연해 보였다.“됐어요. 예의를 차리지 말고 많이 들어요.”차우미는 앞에 산더미와 같은 요리들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유리의 열정은 정말 말릴 수 없었다.온이샘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다 못 먹으면 나한테 줘.”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이샘 학생에게 주면 돼요.”“...”차우미는 어릴 적부터 음식을 남긴 적이 없었기에 아무도 그녀가 남긴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때문에 그녀는 온이샘의 밥그릇에 있는 자기의 밥을 보다가 말했다.“선배, 그냥 저한테 줘요.”차우미가 손을 뻗어 온이샘의 밥그릇에 넘겨 놓은 밥을 다시 가져가려고 했지만 온이샘은 자기 그릇에 온 것을 절대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그는 차우미가 남긴 것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때문에 서둘러 차우미의 손을 잡고 말했다.“괜찮아. 다 못 먹으면서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내가 먹을 수 있어. 낭비하면 안 되잖아.”온이샘은 마치 두 사람만 있는 듯 진지하게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그녀가 남긴 거면 뭐든 먹을 수 있었는데 이건 강요가 아니라 원해서 하는 것이다.온이샘은 무의식적으로 따뜻한 손으로 차우미의 손목을 꽉 잡고 제지했다.차우미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바로 손을 거두려고 했다.온이샘은 그제야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차우미의 손목을 잡았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놓으며 사과했다.“미안해. 너무 급해서 그만...”차우미는 손을 거두고
온이샘은 유리가 화동의 요리 실력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뭔가 결심했는데 그 순간 화동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온이샘은 정신을 가다듬고 화동을 보며 대답했다.“조금 밖에 몰라요.”화동이 말했다.“배우고 싶으면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두 남자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의 뜻을 이해했는데 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있다가 연락처를 추가해요.”“그래요.”두 남자가 농담처럼 오가는 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차우미는 왠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온이샘은 바빠서 요리를 배울 시간이 없는 사람인데 또 농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하지만 그 생각도 눈앞에 있는 산더미 같은 요리를 보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그녀는 젓가락을 들고 열심히 맛을 음미하며 먹기 시작했는데 비록 많지만 너무 맛있고 화동과 유리의 성의여서 맛있게 다 먹으려고 노력했다.그들은 예전의 재미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식사했는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온이샘은 꽃게, 새우 등 껍질을 까야 하는 음식을 모두 직접 손질해서 차우미에게 주었다.생선도 가시를 하나하나 따서 차우미의 그릇에 건넸다.평소 차우미의 식사량은 아주 적었는데 적지 않은 밥과 접시에 있는 요리면 이미 그녀에게 충분했다.그런데도 온이샘이 쉬지 않고 그에게 요리를 건네자 차우미가 말했다.“나만 챙기지 말고 선배도 먹어. 나는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온이샘은 비록 요리는 못하지만, 챙겨주는 건 너무나도 잘했다.이건 진심이어야 되는 것이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만이 몸에 배어 습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하지만 이런 대우는 아무 사람에게나 해주지 않는다.온이샘의 이런 대우는 그의 어머니와 가문의 후배, 그리고 차우미 밖에 없다.오늘 식탁에는 주요하게 해산물이어서 모두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었기에 온이샘은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요리들을 손질해서 차우미에게 건넸다.온이샘이 차우미를 챙기기 시작하
온이샘은 순간 차우미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 된 것 같았다.유리는 차우미의 말을 듣고 눈에서 빛이 나는 온이샘을 보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그녀는 여자를 대하기를 냉정했던 청월세자의 이런 표정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맞아요. 우리 이제 모두 친구네요.”유리는 시원시원하게 대답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유리의 특이한 웃음소리의 전염력은 곧바로 차우미까지 전염시켜 같이 웃게 했다.그렇게 세 사람은 웃고 떠들며 산책하다가 식사하러 오라는 화동의 전화를 받았다.유리가 전화를 끊고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되었다.“남편이 전화가 왔는데 다 되었대요. 우리 식사하러 가요.”“네, 좋아요.”세 사람은 걷지 않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곧바로 식당으로 돌아갔다.이제 점심시간이기에 아침 사러 오는 사람도 없어서 주관규도 주방에서 나와 그들이 식사할 식탁에 수저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관규가 말했다.“이샘아, 우미 양, 어서 손 씻고 와. 밥 먹자.”온이샘이 공손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오늘 저희 때문에 수고하셨어요.”“그게 무슨 말이야? 넌 우리 유리의 동창이고 또 은인인데 여기를 찾아주면 나야 기쁘지.”유리도 상 차리는 것을 도우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 웃는 모습을 좀 봐봐. 얼마나 기뻐하시냐.”“하하하, 그래 우리 유리가 내 마음을 잘 알지.”“당연하죠. 저는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손녀잖아요.”“하하하, 그렇지.”모두 웃었고 차우미와 온이샘도 손을 씻고 식탁으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식탁에는 이미 수많은 요리가 차려져 있었는데 해산물도 있고 또 현지의 유명한 요리는 물론 찜 요리 등등 너무 풍부했다.차우미는 요리의 가짓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접시마다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는 순간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왜 그러고 있어요. 어서 드세요.”유리는 차우미가 멍해 있는 것을 보고 큰 꽃게를 집어서 차우미의 그릇에 올려주었고 그 외에 새우와 다른 요리들도
어떤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차우미도, 온이샘도 모두 이해하기에 차우미는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온이샘을 막을 수도, 거절할 권리도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그리고 어떤 일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온이샘은 차우미의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항공권 구매도 멈추지 않았다.비록 차우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를 막지 못한다.이번에 안평으로 가면 온이샘은 나상준 옆에 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고 차우미의 곁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다.“다 됐어. 이제 가자.”항공권을 예매하고 확인 메시지를 받은 다음 온이샘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전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우미를 바라봤다.차우미는 그의 미소를 보며 말했다.“그래.”차우미가 자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포기하자, 온이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을 때 유리는 옆에서 전화하느라 바빴다.조금 전에 차우미가 통화할 때 유리와 온이샘은 얘기하면서 계속 차우미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녀도 차우미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차우미가 전화를 끊자마자 온이샘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고 유리는 화동에게 전화했다.유리는 차우미가 다른 일이 있는 것 같으니, 화동에게 빨리 서두르라고 했다.그녀는 차우미와 온이샘이 점심 식사는 약속대로 하겠지만 식사 후에는 곧바로 떠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유리는 두 사람 모두 한가한 사람이 아니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온이샘과 차우미가 다가오자, 유리도 전화를 끊었다.유리는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는데 특히 차우미의 상태를 각별히 신경 쓰다가 두 사람 모두 조금 전의 표정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시름을 놓았다.그녀는 간만에 동창과 식사하려는데 두 사람이 일 때문에 점심 식사도 못 하고 가면 너무 서운할 것 같았는데 그것이 아니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통화를 마친 유리는 두 사람 옆으로 돌아가서 조금 전과 같이 차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