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발걸음에 의해 센서 등이 반응했다, 방을 유일하게 밝혀주던 향초가 볼품없는 존재가 되었다.센서 등이 워낙 밝았던 탓에 향초는 인테리어가 되어버렸다. 방을 밝혀주는 존재보다는 방에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존재한다.보잘것없고 희미한 것이라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 작용이 다를 뿐.침실 안이 조용해졌고 무중력 상태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조용한 곳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그 소리 역시 크게 들린다.욕실 안에서 바스락 소리, 물소리... 나상준은 밖에 서서 이 소리를 들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욕망으로 가득 찼다, 마치 화려한 어둠으로 가득 뒤덮인 밤거리처럼. 차우미는 미끄러운 욕실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오랫동안 씻었다.따듯한 물에 오랫동안 씻고 나니, 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에는 그녀가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나상준은 가운 하나를 건넸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운을 입기로 했다.가운을 걸친 그녀는 허리끈을 동여맸다. 길고 하얀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하지만 가운의 앞을 단단히 동여맨 탓에, 목덜미만 보였다, 쇄골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하지만 가운 밑으로 그녀의 하얀 종아리와 적당한 발이 드러났다.긴 머리를 드라이한 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했고 천천히 벽을 짚고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나상준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입구에 다다른 그녀는 욕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마자,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나상준이 들어왔다.차우미는 갑자기 들이닥친 나상준 때문에 깜짝 놀랐다.나상준은 그녀의 움직임을 듣고 담배를 끄고 몸을 돌렸던 것이다.알싸한 담배 냄새가 뜨거운 열기를 타고 퍼지는 옅은 향기를 만났다. 차우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눈을 동그랗
차우미는 그의 행동을 보고 가정적인 남자가 아니라는 게 편견이라는 것을 알았다.결혼생활 동안 나상준은 이렇게 그녀를 챙겨준 적이 없었다. 챙길 필요도 없었다.차우미가 뜨거운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는 욕실로 들어갔고, 이내 물소리가 들렸다.욕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차우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안 가는 거야?'어둠이 깃든 밤, 회성은 고요했다.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깊은 잠이 든 것 같았다.나상준도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다. 차우미의 것과 달랐다. 가운을 헐렁하게 동여맨 그는, 옷깃이 많이 열려 있었다. 탄탄한 그의 가슴과 살결에 닦아내지 못한 물방울이 있었다.차우미는 순간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심장이 너무 쿵쾅대서 진정되지 않았다. 볼도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당... 당신..."나상준에게 나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나상준은 불그스름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3월의 매화꽃처럼 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볼이 눈에 띄었다. 그는 소파에 누웠다.나상준이 있던 방에는 1인용 소파만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방에는 2인용 소파가 있었다.비록 그의 기럭지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소파지만, 그래도 1인용 소파보다 나았다.나상준은 소파에 누운 뒤, 팔을 머리 뒤에 베고 눈을 감았다.차우미는 소파에 누운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샤워 가운만 입고 있었다.샤워 가운은 그녀가 입기엔 길었지만, 나상준이 입기엔 짧았다. 그의 튼튼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특히 저렇게 누워있자, 옷깃이 훤히 열려있었고 그의 가슴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차우미는 얼굴을 붉히며 눈알을 굴렸다. "돌아가서 자. 나 혼자 있으면 돼. 그러다가 감기 걸려.""……"침실은 고요했고 그녀의 목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차우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상준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상준 씨?""..."역시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써 잠든 것
차우미는 나상준의 협박에 기겁했다. 나상준이 이런 협박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순간, 나상준이 음흉하게 보였다.그녀를 안았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전개다.소파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은 분명 나상준이다. 차우미는 어쩔 수 없이 침대로 돌아가 조심스레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녀는 다시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그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밤, 그녀는 여러 번 나상준의 말에 복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그녀는 나상준이 살짝 두려웠다.침실은 고요했고 등도 꺼졌다. 예전이었으면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그녀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머릿속에는 온통 그가 샤워 가운을 입고 누워있는 장면만 떠올랐다. 회성의 밤은 평소 청주보다 기온이 낮았다. 그녀는 나상준이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되었다.그러나 그녀는 나상준의 협박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소파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차우미가 눈을 떴다.센서 등이 켜졌고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이불 하나를 떠 꺼내왔다.차우미는 살짝 놀랐다.나상준은 이불을 들고 와, 소파에 눕더니 이불을 덮고 다시 눈을 감았다.차우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편한 게 잘 수 있었다.눈을 감은 그녀의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났다. 혼란스러웠다.차우미는 어떤 일이든지 이해가 되어야 했다. 오늘 일어났던 일들은 그녀의 예상 밖을 벗어나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몸이 점점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왔고 그녀는 생각을 접은 채 잠에 빠졌다.침실의 센서 등이 꺼졌고 나상준은 얇은 이불을 덮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차우미의 가느다란 호흡이 들려왔다. 그는 그녀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있었다.커튼을 치지 않은 탓에 도시의 불빛이 안으로 들어왔고 침실 안은 이 희미한 빛으로 밝았다.나상준은 희미한 빛을 바라보
인연은 하늘이 정해준다. 전민수와 다른 여자들은 두 사람과 인연이 없었다.그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전민수도 체념한 채 술잔을 들어 술을 들이켰다.임상희의 친구들도 저녁에 본 나상준이 그녀의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임상희는 자기의 작은삼촌이 얼마나 독선적인지 모두에게 알렸고, 그들은 나상준에 대해 몹시 궁금해했다. 임상희는 나상준을 존경했다. 친구들이 이렇게 자기 삼촌에게 빠지자, 그녀도 숨길 게 없이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새벽이 되었다. 임상희는 그제야 자기가 몇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얘기한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입이 바싹 말랐다.옆에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친구들은 임상희가 갑자기 말을 멈추자마자, 넋을 잃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상희 작은삼촌 정말 매력 있어!""매력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볼 줄 알았던 사람이 현실에 있다니...""흑흑, 상희야, 어떡해! 나 너희 삼촌한테 빠졌어, 이젠 너희 삼촌 말고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 못할 것 같아...""나도! 임상희! 네가 책임져!""그래, 책임져!"친구들은 임상희의 손을 부여잡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임상희가 손을 낚아채며 거만하게 말했다. "너희가 얘기해달라고 사정한 거야! 난 어쩔 수 없이 말 한 거라고! 내 탓 하지 마!""임상희, 이 잔인한...""엉엉, 나 오늘 밤 잠 못 잘 것 같아.""……"친구들이 임상희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자, 임상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술잔을 들어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옆에서 침울한 얼굴로 술만 들이켜던 전민수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나...나 혹시 너희 숙모 사진 한 장 받을 수 있어?"임상희는 순간 행동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도 아주 빠르게 반응했다. "우리도! 우리도 너희 삼촌 사진 한 장만 주면 안 돼?"”"나도 줘, 밤에 그 사진에 기대
차우미는 뒤척이다가 늦게 잠이 들었고, 평소보다 늦게 깨어났다. 그녀가 깨어났을 땐, 커튼이 닫혀있어 외부의 빛이 차단되었다. 희미하게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시가 거의 되어갔다.차우미는 흐리멍덩한 눈을 크게 뜨고 시간을 재차 확인한 뒤,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발목에 힘이 가해졌고 통증이 전해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가 어제 발목 삐었다는 것을 떠올렸다.머릿속에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났다. 어젯밤 일이 떠오른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소파 위를 바라보았다.이불이 소파 위에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차우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자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나상준이 갔다고 여긴 그녀는 몸의 긴장이 풀렸다.평소 업무가 많아 바빴던 나상준이니, 줄곧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그녀는 어젯밤 나상준이 옆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아주 고마웠다.오늘 진정국이 회사에 온다고 했으니, 그녀는 진정국에게 연락해야 했다."우미야."휴대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공항 안내음도 들렸다. "아저씨, 지금 공항이에요?""응, 곧 탑승할 거야."차우미가 미소를 지었다. "네.""참, 삼촌, 할 얘기가 있어요.""그래, 말하렴."차우미는 자기가 실수로 발을 삔 사실을 진정국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테니, 두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진정국도 흔쾌히 승낙했다. 다만 발을 삔 그녀가 걱정되어 당부했다.차우미는 이틀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정보를 진정국에게 알렸다. 진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일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네가 필요하면 연락할 테니 회복에만 집중해.""네."진정국과 통화를 마친 차우미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얼른 몸을 회복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손이 다 아물었고 그래서 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차우미는 침대에 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조심스
[깨어나면 연락해줘.]짤막한 문자에 차우미가 깼다고 답장을 했다.단순하게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려는 문자라고 치부한 차우미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상준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은 전혀 의외가 아니었다.차우미는 답장을 하자마자 프런트에 연락했다. 연락이 닿자마자,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차우미가 프런트 직원에게 말했다. "잠시만요.""네."휴대폰을 귀에서 뗀 차우미는 천천히 입구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차우미 님, 안녕하세요."문밖에는 깨끗한 옷차림의 40대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차우미도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차우미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인사하자, 의아했다. "혹시 간병인이세요?""네, 나상준 님께서 간병인을 신청했습니다."차우미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녀에게 깨어나면 연락하라고 한 이유는 간병인을 보내기 위해서였다.차우미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들어와요."나상준이 미리 간병인을 보낸 덕에 그는 프런트 직원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었고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간병인은 그녀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휠체어와 아침 식사를 호텔 직원이 가져다주었다.간병인은 얼른 방을 치운 뒤, 그녀를 매우 꼼꼼하게 보살폈다.나상준은 일처리가 깔끔했다.차우미도 안심이 되었다.아침을 먹은 그녀는 곧장 일을 시작했다. 각종 자료를 리서치하며 결코 한가롭게 보내지 않았다.비록 이 상태로 행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녀는 박물관에 둘 조각물에 관여해야 했다.어떤 것을 디자인하고 구현할지 모두와 상의해야 했다.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차우미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탓에 정신이 맑았다.점심을 간단히 먹은 차우미는 계속 일에 열중했다. 그렇게 또 오후 4시가 되었다.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었던 탓에, 나가서 산책하고 싶었지만, 이 발목으로 제대로 설 수 없었다.차우
나상준은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고 걷어 올렸다. 그의 굵은 팔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차우미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리고 황급히 말했다. "가서 일해, 난 간병인이 있으니까 괜찮아."간병인이 있기에 굳이 그가 돌볼 필요는 없었다.워낙 일이 많았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녀를 돌볼 필요는 없었다.나상준은 양쪽 옷소매를 걷어붙인 뒤 그녀의 뒤로 가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입술을 살짝 벌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이런 모습은 어젯밤과 매우 흡사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차우미는 그의 차분한 발소리에 집중했다.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의 입술도 서서히 닫혔다.나상준은 차우미가 탄 휠체어를 밀고 호텔에서 나왔다. 식사 후 한가한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서서히 퇴근 시간과 가까워졌고 도로에는 차들이 점차 많아졌다. 인도에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로등도 하나 둘 켜졌고 도시의 열기가 한층 무르익어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어디 갈까?"나상준의 질문에 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렇게 한동안 목적지 없이 걸을 줄 알았다.차우미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냥 걸어."목적지는 없었다, 다만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경치를 볼 생각이었다."음."낮은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다시 두 사람을 감쌌다.차우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사고였고 마음에 두지 마.""발이 완쾌하지 않아 한동안 더 치료해야 할 것 같아, 큰 문제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간병인이 아주 친절해, 세심하고 일도 잘해. 그러니까 안심해.""가서 할 일 해, 내 걱정은 하지 말고."그는 호텔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간병인이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대
차우미가 명확하게 말했기에 나상준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휠체어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도 안심되었다.나상준은 알아들었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의외의 말이다.그녀가 상상치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차우미는 한동안 멍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나상준을 쳐다보았다.나상준이 내뱉은 말에 당황했다.3년간 봐온 나상준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성숙해지고 점점 속마음을 잘 숨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감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그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웠다.그러나 두 사람은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부부였고, 그녀만큼은 나상준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녀가 아는 나상준은 절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나상준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나상준은 차우미가 앉은 휠체어를 밀며 앞을 주시했다. 평소처럼 앞만 바라보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평소처럼, 평온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의 미묘한 변화를 차우미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베일듯한 턱선, 날카롭게 솟은 콧날, 그녀가 처음 보는 짙은 눈동자였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나상준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나상준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가까워졌다.차우미는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은 어제도 느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입술도 살짝 깨물었다.그녀의 뇌리로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났다.순간, 차우미가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내가 외도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그가 온이샘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가 내뱉은 말뜻은 아주 명확했다.그는 주로 밖에서 일했고 집에서 아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그녀의 할아버지를 믿었기에, 그녀도 의심하지 않았다. 차우미의 가족을 믿었기에 그녀를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하지만 이혼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그녀의 곁에 다른 남자가 생겼고, 나상준은 둘 사이를 외도로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