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는 멍하게 나상준의 품에 안겨 움직이지 않았다.나상준의 품에 안겨 숨을 내쉬며 그의 심장박동만 들었다. 얼마 뒤, 나상준은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차우미를 내려다보았다. "앉아 있어, 함부로 움직이지 마."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허스키했다.차우미는 고개를 들어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순간, 차우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언제부터인가 차우미는 나상준의 시선이 무서웠고 움츠러들었다. 도망치고 싶을 지경이다.그의 시선이 차우미에게 꽂히자, 차우미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차우미는 그저 나상준의 시선을 당해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녀가 어리둥절한, 멍한, 의아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나상준과 거리를 두고 앉았다.나상준은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그녀의 어깨를 살짝 만지더니, 욕실로 향했다.곧 욕실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차우미도 조금씩 의식이 되돌아왔다.나상준은 주혜민과 사랑하는 사이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차우미를 끌어안자 차우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자기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3년 동안, 나상준은 그녀에게 오늘처럼 스킨십을 한 적 없었다. 그런데 이혼을 한 뒤에야, 그녀를 안으며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차우미는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차우미는 발에 물을 묻힐 수 없었다. 그래서 씻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벅찬 일이다. 곧 나상준이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차우미가 욕조 안의 물을 바라보더니 급히 말했다. "내 의자 좀 갖구 와, 나 거기 앉아서 천천히 씻으면 돼."나상준에게 씻겨달라고 할 수 없었던 차우미는 혼자 씻으려 했다.나상준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래."의자 위에 앉은 차우미는 손을 뻗어 세안 용품을 가져왔다. 다행히 욕실에 필요한 용품을 둔덕에 편리했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머리가 아팠다. 나상준은 그녀를 돌려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입을 옷도 없는데 말이다.평소에는 옆 사람도 돌볼 정도로 꼼꼼
그의 발걸음에 의해 센서 등이 반응했다, 방을 유일하게 밝혀주던 향초가 볼품없는 존재가 되었다.센서 등이 워낙 밝았던 탓에 향초는 인테리어가 되어버렸다. 방을 밝혀주는 존재보다는 방에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존재한다.보잘것없고 희미한 것이라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 작용이 다를 뿐.침실 안이 조용해졌고 무중력 상태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조용한 곳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그 소리 역시 크게 들린다.욕실 안에서 바스락 소리, 물소리... 나상준은 밖에 서서 이 소리를 들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욕망으로 가득 찼다, 마치 화려한 어둠으로 가득 뒤덮인 밤거리처럼. 차우미는 미끄러운 욕실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오랫동안 씻었다.따듯한 물에 오랫동안 씻고 나니, 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에는 그녀가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나상준은 가운 하나를 건넸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운을 입기로 했다.가운을 걸친 그녀는 허리끈을 동여맸다. 길고 하얀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하지만 가운의 앞을 단단히 동여맨 탓에, 목덜미만 보였다, 쇄골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하지만 가운 밑으로 그녀의 하얀 종아리와 적당한 발이 드러났다.긴 머리를 드라이한 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했고 천천히 벽을 짚고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나상준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입구에 다다른 그녀는 욕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마자,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나상준이 들어왔다.차우미는 갑자기 들이닥친 나상준 때문에 깜짝 놀랐다.나상준은 그녀의 움직임을 듣고 담배를 끄고 몸을 돌렸던 것이다.알싸한 담배 냄새가 뜨거운 열기를 타고 퍼지는 옅은 향기를 만났다. 차우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눈을 동그랗
차우미는 그의 행동을 보고 가정적인 남자가 아니라는 게 편견이라는 것을 알았다.결혼생활 동안 나상준은 이렇게 그녀를 챙겨준 적이 없었다. 챙길 필요도 없었다.차우미가 뜨거운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는 욕실로 들어갔고, 이내 물소리가 들렸다.욕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차우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안 가는 거야?'어둠이 깃든 밤, 회성은 고요했다.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깊은 잠이 든 것 같았다.나상준도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다. 차우미의 것과 달랐다. 가운을 헐렁하게 동여맨 그는, 옷깃이 많이 열려 있었다. 탄탄한 그의 가슴과 살결에 닦아내지 못한 물방울이 있었다.차우미는 순간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심장이 너무 쿵쾅대서 진정되지 않았다. 볼도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당... 당신..."나상준에게 나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나상준은 불그스름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3월의 매화꽃처럼 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볼이 눈에 띄었다. 그는 소파에 누웠다.나상준이 있던 방에는 1인용 소파만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방에는 2인용 소파가 있었다.비록 그의 기럭지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소파지만, 그래도 1인용 소파보다 나았다.나상준은 소파에 누운 뒤, 팔을 머리 뒤에 베고 눈을 감았다.차우미는 소파에 누운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샤워 가운만 입고 있었다.샤워 가운은 그녀가 입기엔 길었지만, 나상준이 입기엔 짧았다. 그의 튼튼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특히 저렇게 누워있자, 옷깃이 훤히 열려있었고 그의 가슴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차우미는 얼굴을 붉히며 눈알을 굴렸다. "돌아가서 자. 나 혼자 있으면 돼. 그러다가 감기 걸려.""……"침실은 고요했고 그녀의 목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차우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상준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상준 씨?""..."역시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써 잠든 것
차우미는 나상준의 협박에 기겁했다. 나상준이 이런 협박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순간, 나상준이 음흉하게 보였다.그녀를 안았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전개다.소파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은 분명 나상준이다. 차우미는 어쩔 수 없이 침대로 돌아가 조심스레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녀는 다시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그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밤, 그녀는 여러 번 나상준의 말에 복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그녀는 나상준이 살짝 두려웠다.침실은 고요했고 등도 꺼졌다. 예전이었으면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그녀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머릿속에는 온통 그가 샤워 가운을 입고 누워있는 장면만 떠올랐다. 회성의 밤은 평소 청주보다 기온이 낮았다. 그녀는 나상준이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되었다.그러나 그녀는 나상준의 협박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소파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차우미가 눈을 떴다.센서 등이 켜졌고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이불 하나를 떠 꺼내왔다.차우미는 살짝 놀랐다.나상준은 이불을 들고 와, 소파에 눕더니 이불을 덮고 다시 눈을 감았다.차우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편한 게 잘 수 있었다.눈을 감은 그녀의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났다. 혼란스러웠다.차우미는 어떤 일이든지 이해가 되어야 했다. 오늘 일어났던 일들은 그녀의 예상 밖을 벗어나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몸이 점점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왔고 그녀는 생각을 접은 채 잠에 빠졌다.침실의 센서 등이 꺼졌고 나상준은 얇은 이불을 덮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차우미의 가느다란 호흡이 들려왔다. 그는 그녀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뜨고 있었다.커튼을 치지 않은 탓에 도시의 불빛이 안으로 들어왔고 침실 안은 이 희미한 빛으로 밝았다.나상준은 희미한 빛을 바라보
인연은 하늘이 정해준다. 전민수와 다른 여자들은 두 사람과 인연이 없었다.그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전민수도 체념한 채 술잔을 들어 술을 들이켰다.임상희의 친구들도 저녁에 본 나상준이 그녀의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임상희는 자기의 작은삼촌이 얼마나 독선적인지 모두에게 알렸고, 그들은 나상준에 대해 몹시 궁금해했다. 임상희는 나상준을 존경했다. 친구들이 이렇게 자기 삼촌에게 빠지자, 그녀도 숨길 게 없이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새벽이 되었다. 임상희는 그제야 자기가 몇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얘기한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입이 바싹 말랐다.옆에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친구들은 임상희가 갑자기 말을 멈추자마자, 넋을 잃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상희 작은삼촌 정말 매력 있어!""매력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볼 줄 알았던 사람이 현실에 있다니...""흑흑, 상희야, 어떡해! 나 너희 삼촌한테 빠졌어, 이젠 너희 삼촌 말고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 못할 것 같아...""나도! 임상희! 네가 책임져!""그래, 책임져!"친구들은 임상희의 손을 부여잡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임상희가 손을 낚아채며 거만하게 말했다. "너희가 얘기해달라고 사정한 거야! 난 어쩔 수 없이 말 한 거라고! 내 탓 하지 마!""임상희, 이 잔인한...""엉엉, 나 오늘 밤 잠 못 잘 것 같아.""……"친구들이 임상희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자, 임상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술잔을 들어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옆에서 침울한 얼굴로 술만 들이켜던 전민수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나...나 혹시 너희 숙모 사진 한 장 받을 수 있어?"임상희는 순간 행동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도 아주 빠르게 반응했다. "우리도! 우리도 너희 삼촌 사진 한 장만 주면 안 돼?"”"나도 줘, 밤에 그 사진에 기대
차우미는 뒤척이다가 늦게 잠이 들었고, 평소보다 늦게 깨어났다. 그녀가 깨어났을 땐, 커튼이 닫혀있어 외부의 빛이 차단되었다. 희미하게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차우미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시가 거의 되어갔다.차우미는 흐리멍덩한 눈을 크게 뜨고 시간을 재차 확인한 뒤,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발목에 힘이 가해졌고 통증이 전해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가 어제 발목 삐었다는 것을 떠올렸다.머릿속에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났다. 어젯밤 일이 떠오른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소파 위를 바라보았다.이불이 소파 위에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차우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자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나상준이 갔다고 여긴 그녀는 몸의 긴장이 풀렸다.평소 업무가 많아 바빴던 나상준이니, 줄곧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그녀는 어젯밤 나상준이 옆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아주 고마웠다.오늘 진정국이 회사에 온다고 했으니, 그녀는 진정국에게 연락해야 했다."우미야."휴대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공항 안내음도 들렸다. "아저씨, 지금 공항이에요?""응, 곧 탑승할 거야."차우미가 미소를 지었다. "네.""참, 삼촌, 할 얘기가 있어요.""그래, 말하렴."차우미는 자기가 실수로 발을 삔 사실을 진정국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테니, 두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진정국도 흔쾌히 승낙했다. 다만 발을 삔 그녀가 걱정되어 당부했다.차우미는 이틀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정보를 진정국에게 알렸다. 진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일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네가 필요하면 연락할 테니 회복에만 집중해.""네."진정국과 통화를 마친 차우미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얼른 몸을 회복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손이 다 아물었고 그래서 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차우미는 침대에 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조심스
[깨어나면 연락해줘.]짤막한 문자에 차우미가 깼다고 답장을 했다.단순하게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려는 문자라고 치부한 차우미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상준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이런 문자를 보낸 것은 전혀 의외가 아니었다.차우미는 답장을 하자마자 프런트에 연락했다. 연락이 닿자마자,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차우미가 프런트 직원에게 말했다. "잠시만요.""네."휴대폰을 귀에서 뗀 차우미는 천천히 입구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차우미 님, 안녕하세요."문밖에는 깨끗한 옷차림의 40대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차우미도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차우미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인사하자, 의아했다. "혹시 간병인이세요?""네, 나상준 님께서 간병인을 신청했습니다."차우미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녀에게 깨어나면 연락하라고 한 이유는 간병인을 보내기 위해서였다.차우미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들어와요."나상준이 미리 간병인을 보낸 덕에 그는 프런트 직원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었고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간병인은 그녀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휠체어와 아침 식사를 호텔 직원이 가져다주었다.간병인은 얼른 방을 치운 뒤, 그녀를 매우 꼼꼼하게 보살폈다.나상준은 일처리가 깔끔했다.차우미도 안심이 되었다.아침을 먹은 그녀는 곧장 일을 시작했다. 각종 자료를 리서치하며 결코 한가롭게 보내지 않았다.비록 이 상태로 행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녀는 박물관에 둘 조각물에 관여해야 했다.어떤 것을 디자인하고 구현할지 모두와 상의해야 했다.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차우미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탓에 정신이 맑았다.점심을 간단히 먹은 차우미는 계속 일에 열중했다. 그렇게 또 오후 4시가 되었다.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었던 탓에, 나가서 산책하고 싶었지만, 이 발목으로 제대로 설 수 없었다.차우
나상준은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고 걷어 올렸다. 그의 굵은 팔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차우미는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리고 황급히 말했다. "가서 일해, 난 간병인이 있으니까 괜찮아."간병인이 있기에 굳이 그가 돌볼 필요는 없었다.워낙 일이 많았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녀를 돌볼 필요는 없었다.나상준은 양쪽 옷소매를 걷어붙인 뒤 그녀의 뒤로 가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입술을 살짝 벌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이런 모습은 어젯밤과 매우 흡사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차우미는 그의 차분한 발소리에 집중했다.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고 그녀의 입술도 서서히 닫혔다.나상준은 차우미가 탄 휠체어를 밀고 호텔에서 나왔다. 식사 후 한가한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서서히 퇴근 시간과 가까워졌고 도로에는 차들이 점차 많아졌다. 인도에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로등도 하나 둘 켜졌고 도시의 열기가 한층 무르익어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어디 갈까?"나상준의 질문에 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렇게 한동안 목적지 없이 걸을 줄 알았다.차우미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냥 걸어."목적지는 없었다, 다만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경치를 볼 생각이었다."음."낮은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고,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다시 두 사람을 감쌌다.차우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사고였고 마음에 두지 마.""발이 완쾌하지 않아 한동안 더 치료해야 할 것 같아, 큰 문제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간병인이 아주 친절해, 세심하고 일도 잘해. 그러니까 안심해.""가서 할 일 해, 내 걱정은 하지 말고."그는 호텔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간병인이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대
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놀리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가 아직은 연인이 아니고 또 차우미가 많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온이샘이 차우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너무 무례하지 않았다.유리가 먼저 침묵을 깨자, 화동이가 이어서 말했다.“우미 씨, 이샘 씨, 저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양해해 주세요.”화동의 겸손한 한마디에 온이샘이 서둘러 말했다.“아니에요. 화동 씨 요리 너무 맛있어요. 청주와 노주 그리고 안평 요리까지 모두 너무 맛있어요. 저 지금 엄청 많이 먹고 있어요.”말하면서 온이샘은 젓가락을 들고 요리와 함께 밥그릇의 맨 위에 놓인 차우미한테서 가져온 밥을 먹었다.차우미는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다가 온이샘이 아무렇지 않게 자기의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먹었다.그렇게 분위기는 금방 돌아왔고 모두 즐겁게 식사했다.오후 1시가 거의 될 때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지나서 화동과 주관규가 일어나서 식탁을 정리하자, 차우미와 온이샘도 일어나서 도와주었다.유리는 차우미와 온이샘을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여러 명이 움직이자, 식탁은 금방 정리되었다.설겆이까지 다 끝나고 온이샘이 시계를 보았는데 1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 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우리 오늘 안평으로 가야 해서 오래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다시 모이자.”유리는 두 사람이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너 일도 잘하고 책임감 있는 바쁜 사람인 거 알아. 우미 씨도 바쁜 것 같으니 잡지 않을게. 우리 서로 연락 방법을 남겨서 나중에 또 연락하자.”“그래. 교통도 편리하니 모두 시간이 될 때 또 만나자.”유리는 역시 소탈하고 통쾌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러자.”이어서 그들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는데 차우미도 유리의 전화번호와 카톡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번에 차우미도 신속하게 반응했는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릇을 잡으며 말했다.“유리 씨, 괜찮아요. 저 먹을 수 있어요.”차우미는 온이샘에게 자기가 먹다 남은 음식을 줄 수 없었다.유리는 차우미가 자기의 손에서 그릇을 가져가려고 하자 그 손을 뿌리치고 온이샘을 보며 말했다.“이 정도면 됐어.”말을 마치고 유리는 또다시 젓가락을 들고 차우미의 그릇에 요리를 산처럼 담은 다음 차우미 앞에 놓았다.그녀의 모든 동작은 매우 빨랐고 성격처럼 시원시원했으며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너무 당연해 보였다.“됐어요. 예의를 차리지 말고 많이 들어요.”차우미는 앞에 산더미와 같은 요리들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유리의 열정은 정말 말릴 수 없었다.온이샘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다 못 먹으면 나한테 줘.”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이샘 학생에게 주면 돼요.”“...”차우미는 어릴 적부터 음식을 남긴 적이 없었기에 아무도 그녀가 남긴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때문에 그녀는 온이샘의 밥그릇에 있는 자기의 밥을 보다가 말했다.“선배, 그냥 저한테 줘요.”차우미가 손을 뻗어 온이샘의 밥그릇에 넘겨 놓은 밥을 다시 가져가려고 했지만 온이샘은 자기 그릇에 온 것을 절대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그는 차우미가 남긴 것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때문에 서둘러 차우미의 손을 잡고 말했다.“괜찮아. 다 못 먹으면서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내가 먹을 수 있어. 낭비하면 안 되잖아.”온이샘은 마치 두 사람만 있는 듯 진지하게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그녀가 남긴 거면 뭐든 먹을 수 있었는데 이건 강요가 아니라 원해서 하는 것이다.온이샘은 무의식적으로 따뜻한 손으로 차우미의 손목을 꽉 잡고 제지했다.차우미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바로 손을 거두려고 했다.온이샘은 그제야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차우미의 손목을 잡았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놓으며 사과했다.“미안해. 너무 급해서 그만...”차우미는 손을 거두고
온이샘은 유리가 화동의 요리 실력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뭔가 결심했는데 그 순간 화동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온이샘은 정신을 가다듬고 화동을 보며 대답했다.“조금 밖에 몰라요.”화동이 말했다.“배우고 싶으면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두 남자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의 뜻을 이해했는데 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있다가 연락처를 추가해요.”“그래요.”두 남자가 농담처럼 오가는 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차우미는 왠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온이샘은 바빠서 요리를 배울 시간이 없는 사람인데 또 농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하지만 그 생각도 눈앞에 있는 산더미 같은 요리를 보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그녀는 젓가락을 들고 열심히 맛을 음미하며 먹기 시작했는데 비록 많지만 너무 맛있고 화동과 유리의 성의여서 맛있게 다 먹으려고 노력했다.그들은 예전의 재미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식사했는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온이샘은 꽃게, 새우 등 껍질을 까야 하는 음식을 모두 직접 손질해서 차우미에게 주었다.생선도 가시를 하나하나 따서 차우미의 그릇에 건넸다.평소 차우미의 식사량은 아주 적었는데 적지 않은 밥과 접시에 있는 요리면 이미 그녀에게 충분했다.그런데도 온이샘이 쉬지 않고 그에게 요리를 건네자 차우미가 말했다.“나만 챙기지 말고 선배도 먹어. 나는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온이샘은 비록 요리는 못하지만, 챙겨주는 건 너무나도 잘했다.이건 진심이어야 되는 것이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만이 몸에 배어 습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하지만 이런 대우는 아무 사람에게나 해주지 않는다.온이샘의 이런 대우는 그의 어머니와 가문의 후배, 그리고 차우미 밖에 없다.오늘 식탁에는 주요하게 해산물이어서 모두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었기에 온이샘은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요리들을 손질해서 차우미에게 건넸다.온이샘이 차우미를 챙기기 시작하
온이샘은 순간 차우미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 된 것 같았다.유리는 차우미의 말을 듣고 눈에서 빛이 나는 온이샘을 보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그녀는 여자를 대하기를 냉정했던 청월세자의 이런 표정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맞아요. 우리 이제 모두 친구네요.”유리는 시원시원하게 대답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유리의 특이한 웃음소리의 전염력은 곧바로 차우미까지 전염시켜 같이 웃게 했다.그렇게 세 사람은 웃고 떠들며 산책하다가 식사하러 오라는 화동의 전화를 받았다.유리가 전화를 끊고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되었다.“남편이 전화가 왔는데 다 되었대요. 우리 식사하러 가요.”“네, 좋아요.”세 사람은 걷지 않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곧바로 식당으로 돌아갔다.이제 점심시간이기에 아침 사러 오는 사람도 없어서 주관규도 주방에서 나와 그들이 식사할 식탁에 수저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관규가 말했다.“이샘아, 우미 양, 어서 손 씻고 와. 밥 먹자.”온이샘이 공손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오늘 저희 때문에 수고하셨어요.”“그게 무슨 말이야? 넌 우리 유리의 동창이고 또 은인인데 여기를 찾아주면 나야 기쁘지.”유리도 상 차리는 것을 도우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 웃는 모습을 좀 봐봐. 얼마나 기뻐하시냐.”“하하하, 그래 우리 유리가 내 마음을 잘 알지.”“당연하죠. 저는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손녀잖아요.”“하하하, 그렇지.”모두 웃었고 차우미와 온이샘도 손을 씻고 식탁으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식탁에는 이미 수많은 요리가 차려져 있었는데 해산물도 있고 또 현지의 유명한 요리는 물론 찜 요리 등등 너무 풍부했다.차우미는 요리의 가짓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접시마다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는 순간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왜 그러고 있어요. 어서 드세요.”유리는 차우미가 멍해 있는 것을 보고 큰 꽃게를 집어서 차우미의 그릇에 올려주었고 그 외에 새우와 다른 요리들도
어떤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차우미도, 온이샘도 모두 이해하기에 차우미는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온이샘을 막을 수도, 거절할 권리도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그리고 어떤 일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온이샘은 차우미의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항공권 구매도 멈추지 않았다.비록 차우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를 막지 못한다.이번에 안평으로 가면 온이샘은 나상준 옆에 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고 차우미의 곁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다.“다 됐어. 이제 가자.”항공권을 예매하고 확인 메시지를 받은 다음 온이샘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전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우미를 바라봤다.차우미는 그의 미소를 보며 말했다.“그래.”차우미가 자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포기하자, 온이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을 때 유리는 옆에서 전화하느라 바빴다.조금 전에 차우미가 통화할 때 유리와 온이샘은 얘기하면서 계속 차우미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녀도 차우미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차우미가 전화를 끊자마자 온이샘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고 유리는 화동에게 전화했다.유리는 차우미가 다른 일이 있는 것 같으니, 화동에게 빨리 서두르라고 했다.그녀는 차우미와 온이샘이 점심 식사는 약속대로 하겠지만 식사 후에는 곧바로 떠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유리는 두 사람 모두 한가한 사람이 아니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온이샘과 차우미가 다가오자, 유리도 전화를 끊었다.유리는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는데 특히 차우미의 상태를 각별히 신경 쓰다가 두 사람 모두 조금 전의 표정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시름을 놓았다.그녀는 간만에 동창과 식사하려는데 두 사람이 일 때문에 점심 식사도 못 하고 가면 너무 서운할 것 같았는데 그것이 아니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통화를 마친 유리는 두 사람 옆으로 돌아가서 조금 전과 같이 차우미
“왜? 무슨 일 있어?”번잡한 거리에서 갑자기 맑은 시냇물처럼 청명한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차우미는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는데 온이샘이 어느새 가까이에 와 있었다.그녀는 자기와 일정한 거리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아마도 자기가 전화할 때의 표정을 보고 온이샘이 그녀가 전화 끝은 다음 곧바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했다.차우미는 고개를 저으며 온이샘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상준 씨가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뵈러 안평으로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어떤 말은 차우미도 솔직하게 온이샘과 할 수가 없었는데 똑똑한 온이샘은 이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 이유를 알아챘다.‘나상준 씨 행동이 빠르네.”온이샘이 흠칫하더니 말했다.“급해?”그는 추호도 불안하고 불쾌해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물었다.마치 차우미가 한 말이 아주 간단하고 일상적인 것처럼 말이다.차우미는 기분의 변화가 없이 평소와 같은 온이샘을 보더니 그날 그녀와 나상준이 나예은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 충격을 받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소 놀랐다.차우미는 온이샘이 자기의 말을 들었을 때 분위기가 달라지며 이혼한 여자라는 현실을 인식하고 다시 신중하게 결정할 줄 알았는데 그녀의 추측과 달리 너무 차분했다.“왜 그래?”차우미가 아무 반응 없이 멍하게 자기를 바라보고 있자, 온이샘은 따뜻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눈빛으로, 무조건 차우미를 이해했다.그녀의 마음을 온이샘이 모를 리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이샘은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차우미를 좋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나상준이 차우미의 곁에 접근한다는 것은 온이샘에게 위기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차우미가 이제 싱글이기에 온이샘은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추구할 수 있다.이 부분에서 나상준은 온이샘을 막을 수 없고, 온이샘 역시 나상준을 막을 수 없다.지금부터 두 사람은 선후 순서가 없이 같
나상준이 신속하게 차에 오르자 진정국도 운전석에 올라타고 별장을 나갔다.바깥쪽에 있는 조각 철문은 그들의 차가 가까이 가자 열렸다가 떠나자 다시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별장은 또다시 전체가 고요해졌다.차우미가 없는 몇 달 동안 나상준이 한 번도 별장에 오지 않았던 것처럼 또 그 상태가 되었다.비록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었지만, 별장 안에는 차가운 기운이 맴돌아 사람들이 가까이할 수 없게 했다.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고 나상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무언가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나상준은 자기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차우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바탕화면으로 돌아온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나상준에게 데리러 올 필요 없이 비행기 시간이 확정되면 공항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차우미는 본인이 두 사람 항공편을 예약하고 나상준은 시간에 맞춰 바로 공항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차우미는 나예은과 같이 보내는 이틀 동안 나상준이 돈을 많이 썼기에 이번에 비행기 티켓은 자기가 사려는 생각이었다.이 내용들은 차우미가 나상준과 같이 할아버지 뵈러 가겠다고 대답할 때 모두 생각했다.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을 보니 어느새 10시가 다 되었다.나상준의 계획대로 오늘 간다면 아마 저녁에 늦어서 할아버지 댁에 도착할 것이다.차우미는 너무 늦으면 안 되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휴식을 취하기 전에 도착하려면 청주에서 일정을 빨리 끝내고 안평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차우미는 마음속으로 여기에서 2시 정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갔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면 3시가 될 것이고 공항에서 이것저것 수속을 밟으려면 6시의 비행기를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으로 관련 앱를 클릭하고 6시 출발 항공권을 검색했다.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나상준이 또 허영우에게 자기 것까지 예약하라고 지시할 것 같았다.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나상준이 시간을 물어보던 상황이 생각났다.‘설마 벌써 영우 씨에게 예매하라고 지시한 건 아니겠지?’나성준의 성격상 이미 진
차우미와 나상준은 원한이 없기에 함께 조부모님을 만나서 이혼했지만 두 사람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보여주면 조부모님도 시름을 놓을 것이다.나상준은 생일 얘기를 하고 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우미가 침묵하고 휴대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나상준은 여전히 휴대폰을 잡고 번잡한 길거리 소리를 듣고 있었다.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오래된 관계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무시할 수 없었다.나무에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듯이 한 가문에 자손이 많고, 기반이 깊고, 관여하는 범위가 넓으면 그중의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진다고 해도 다음 해에는 또 새로운 것이 자라는 법이다.이처럼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는 차우미가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그런 관계이다.차우미가 차씨 성을 가지고 있는 한 그녀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연계가 있을 것이며 숨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안될 것이다.나상준의 표정은 너무 평온하여 정서적인 감정을 한치도 알아볼 수 없었다.그는 침묵했던 차우미의 목소리를 듣고 유유히 대답했다.“오늘 시간이 돼.”차우미가 대답했다.“그럼, 오늘 할아버지 뵈러 가겠다는 거야?”“응.”나상준은 생일날 당일에 가면 할아버지가 화를 낼까 봐 전에 뵈러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생일 당일에 화를 내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그래, 알았어. 나 여기 일이 오후에 끝날 것 같으니 그때 다시 연락할게. 괜찮지?”“몇 시쯤 끝날 것 같아?”차우미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늦어도 3시까지 연락할게.”“응, 끝나면 연락해. 데리러 갈게.”말을 마치고 나상준은 곧바로 휴대폰을 끊었다.그는 고개를 들고 창밖의 밝은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하늘 높이 떠오른 불같은 태양이 대지를 불태우려는 듯 내리쬐고 있었다.햇빛은 나상준의 눈동자에도 밝은 빛을 비추어 심오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그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휴대폰을 다시 들고 진정국에게 전화했다.“본가로 갈 거니까 준비해 주세요.”“알았어, 나 대표.”전화를 끊고 나상준은 자리
“우미야, 우리 협의해서 이혼한 거지 원수는 아니잖아. 지금까지 할아버지 생신 때마다 줄곧 함께 참석했는데 이번에도 함께 가야지.”차우미가 알고 있던 나상준이었다면 그녀의 말에 이미 화를 냈을 건데 그는 전혀 화를 내지 않을뿐더러 아주 차분하고 이성적인 말투로 말했다.정말로 평소의 나상준답지 않았다.하지만 차우미는 그의 말투와 정서에는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생일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했다.맞다, 며칠 후면 차우미 할아버지의 생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차우미는 나상준과 같이 생일에 참가했는데 3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었다.때문에 가문의 어른들은 나상준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하지만 이제 두 사람 이혼했기에 모두의 마음이 다를 것 같았다.차우미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할아버지 생일이라면 그가 참여하는 것도 두 가문의 관계상 정상이고 그가 참석하지 않겠다고 해도 그의 할머니 이혜정이 가라고 할 것이다.나상준 역시 방금 이혜정의 뜻이라고 했다.그 순간 차우미는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나상준이 이토록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이혜정 때문이었다.이혜정은 아주 자상하고 지혜가 뛰어난데 모든 일에서 트집을 찾아볼 수 없게 완벽하게 처리하셔서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과 친구들 모두 그녀를 존중했다.차씨 가문과의 왕래에 대해서도 매번 특별히 신중하게 챙기셨고 차우미도 엄청나게 예뻐하셨다.때문에 이번에도 분명 이혜정이 특별히 나상준에게 명령했을 것이다.비록 차우미와 나상준이 이혼을 했지만, 이혜정은 줄곧 나상준과 나씨 가문에서 차우미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이번에 차우미 할아버지 생일에 나상준한테 반드시 차우미와 함께 참석하라고 한 것도 두 어른께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결혼 생활 3년 동안에 차우미는 이혜정의 성격을 대략 요해했는데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의 잘못부터 말씀하셨다.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건 분명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