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는 나상준이 강하게 잡아끄는 바람에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하지만 강제로 급히 내리는 바람에 바닥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한 하이힐은 휘청거리더니 차 문턱에 부딪혔다.쿵!그렇게 차우미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움직이던 나상준의 발이 멈추었다. 소리 때문에 살짝 굳었지만, 그는 매우 빠르게 몸을 돌려 바닥에 주저앉은 차우미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여 그녀를 안아 올렸다.눈동자가 움츠러든 나상준의 눈썹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사람 전체가 무서울 정도로 침울했다.차우미는 넘어진 줄도 모르고 넋이 나가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바닥을 짚고 있는 자기를 보고 더 어리둥절했다.그녀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나상준이 그녀를 안아 올렸다. 덕분에 공중에 붕 뜬 그녀는 단단한 나상준의 품에 안겼다.차우미는 다시 한 번 넋이 나갔다.자기를 안아 든 나상준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과 표정을 그제야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어두운 밤하늘 아래, 노란 불빛 사이로 훤칠한 키를 가진 나상준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나상준은 얼음처럼 차갑고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졌다.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차우미는 나상준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언제나 잔잔한 호수 같았다. 항상 이성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센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거칠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의 변화에 놀랐다. 하지만 그녀가 알던 나상준이 아니었고 그래서 차우미도 적잖게 당황했다. 그의 품에 안긴 차우미는 너무 당황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그저 멍청한 인형처럼 말없이 안겨 있었다.나상준은 자기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차우미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얼굴은 핏기없이 창백했다. 넘어진 게 많이 아팠는지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하지만 나상준을 바라보는 차우미의 눈빛은 맑고 밝았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어딘가에 자기가 있다면,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세계 그 자체였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에게 다른 마음이
차우미는 움직일 수 없었다.나상준은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항상 감정 변화도 없었다. 그의 말에는 그의 기분이 담겨 있지 않았다. 성질도 없었고 불쾌함을 드러내 본 적도 없었다. 3년의 결혼 생활에서 오늘처럼 이렇게 감정을 앞세운 적이 없었다.오늘 밤이 처음은 아니었다, 임상희가 입원했던 그날부터 나상준이 변한 것 같았다.마음을 내비치지 않은 나상준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차우미는 말을 할 때, 항상 나상준의 기분부터 살폈다. 혹시나 그를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을 할까 봐 항상 눈치를 봤고 항상 신중하게 생각했다.어쩌면 두 사람이 이혼한 뒤부터 변했을지 모른다고 여겼다.어떤 일이 생기든 얼굴 한번 안 변하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해결하는 사람이 나상준이다. 사람이든 일이든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나상준은 곧게 뻗은 직선처럼 영원히 규격에 맞게, 곧게 뻗어 나갔다.하지만 지금의 나상준은 다르다.감정이 요동칠 수 있는 게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알던 나상준과는 많이 달랐다.3년 동안 나상준에게 지금과 같은 파동은 없었다. 차우미도 그런 것에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 감개무량한 것은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 걸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았다. 나상준은 그녀가 아파할까 봐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목을 살펴보았다. 차우미는 움츠러들지 않고 소파에 손을 짚고 서서 고통을 참았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나상준은 그녀의 신발을 완전히 벗겨 낸 후, 맨발의 그녀를 안아 올렸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던 차우미가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치려 했고, 나상준은 말없이 그녀를 안고 걸음을 옮겼다.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나상준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녀가 넘어져 발목을 삔 것이다. 나상준은 당연히 이 일에 책임감을 느꼈고 그녀를 병원까지 데려가려 했다.하지만 차우미는 그의 침울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그의
병원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중 양훈도 포함되었다. 양훈은 옆에서 떠드는 하성우의 입을 강제로 막았다.차우미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눈알만 굴렸다. 하성우는 양훈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하지만 양훈은 무덤덤한 얼굴로 하성우를 막을 뿐이다. 차우미가 이 광경에 웃음이 터졌다.그녀의 입꼬리가 샐쭉 올라갔다.나상준도 그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숙여 차우미를 바라보았다.달빛 아래, 그녀의 입술이 곱게 말려 올라갔다.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은 덧없이 피어난 꽃처럼 어두운 밤을 밝게 밝혀주었다.나상준의 어두운 눈이 밝아졌다.그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그녀를 꼭 껴안은 뒤, 병원으로 들어갔다.하성우가 미리 의사에게 진료를 부탁하긴 했으나, 그는 누가 어디를 다쳤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외과 전문의로 진료를 예약했다.물론 옆에서 조언한 양훈의 도움이 가장 컸다.의사는 차우미의 발목을 진찰하고 있었고, 하성우는 옆에서 양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속삭였다. "돗자리 깔아~ 신을 모셔야 해~"양훈은 두 손으로 문틀을 잡고 있다가 하성우의 장난에 그대로 가버렸다.하성우의 말을 계속해서 듣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하성우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시선을 돌려 차우미의 옆에 서 있는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나상준은 차우미의 곁에 서서 치료하는 것을 뚫어지게 보면서 주의 사항을 들었다.의사는 차우미가 발목을 심하게 다쳤고 요 며칠은 아예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며칠이 지나서 다시 병원에 와서 경과를 확인하자고 했다.회복이 잘 되면 며칠 만에 움직일 수 있겠지만, 잘 되지 않으면 집중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차우미는 의사가 하는 말을 들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회성에 일하러 온 것이다. 그런데 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아 발을 삐었고 그래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받는 것 같았다.가장
"평소에 형수님이 상준이 내조를 했으니까, 이번 기회에 상준이가 형수님 돌봐야 인지 사정이죠.""그리고..."하성우가 나상준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멀쩡하던 형수님이 상준이랑 돌아가자마자 이렇게 다친 걸 보니, 상준이가 소홀한 게 틀림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필 거예요.""그렇지, 상준아?"하성우는 로엔을 떠나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분명 좋은 일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차우미를 만만하게 보고 괴롭힌 게 틀림없었다.그래서 나상준이 모든 것을 떠맡아야 한다고 말했다.더군다나...하성우는 나상준이 처방전을 들고 접수하러 갈 때, 아주 유쾌하게 웃었다.아주 기뻐했다.나상준이 약을 받아온다며 밖으로 나갔다.차우미는 앉아서 멀어지는 나상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하성우는 나상준이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여겼다.하지만 차우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다.나상준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하성우가 차우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상준이 나가자마자, 차우미에게 다가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하지만 차우미는 하성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성우가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질문한다는 것을 안 그녀는 하성우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실수로 넘어진 거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하성우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차우미는 거짓말을 할 때 티가 나는 사람이다. 잔뜩 굳은 채로 실수로 넘어졌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고 하성우도 강요할 수 없었다.한참이나 그녀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정보도 캐낼 수 없었다.곧 무언가를 보고 깜짝 놀란 하성우가 외쳤다. "형수님, 손목!"하성우가 차우미의 손을 가리켰다.긴 소매를 입은 그녀는 줄곧 옷으로 손목을 가렸다. 사람들은 그녀가 발목만 삔 줄 알고 다른 곳을 살피지 않았다. 그런중, 추워서 두 손을 맞잡으며 긴 소매가 내려갔고 그녀의 손목
나상준은 차우미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 하성우도 따라가려고 했으나 나상준이 매몰차게 차 문을 닫는 바람에 따라가지 못했다.차우미는 차에 앉아 있었다. 창 밖으로 하성우가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분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나상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곧 차가 아주 빠르게 병원을 벗어났다.차우미는 이 장면이 약간 웃겼다. 나상준과 하성우, 양훈이 모이기만 하면 항상 재밌는 일이 생겼다. 차우미가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두 부모님에게 회성에서 다쳤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이 일이 나상준과 관련 있다는 것도 속여야 했다.숨기기 위해서는 그녀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간병인은 언제든지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진정국이 내일 회성에 온다. 그를 속이지 못하면 두 부모님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갈 것이다. 차우미는 마음이 무거웠다.여가현은 자기의 올해 운세가 좋지 않다며 한탄한 적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올해 운세가 좋지 않은 것은 여가현이 아니라 그녀였다.차는 호텔 앞에 멈췄고 나상준이 차우미를 안고 내렸다.발을 다쳐 움직일 수 없었던 차우미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상준 때문에 다친 것은 맞지만 이렇게 안겨 있는 모습이 편치 않았다.만약 가능하다면, 그녀는 나상준이 제발 일을 하러 나갔으면 하는 거다. 그녀는 따로 간병인을 부르면 되었다.그녀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나상준은 그녀를 안아 들고 호텔 방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소파 위에 그녀를 내려놓았다.그제야 차우미는 정신을 차렸다."상준 씨..."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살짝 놀랐다.나상준이 데려온 방은 그녀가 묶었던 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성우가 나상준과 그녀를 같이 데리고 왔던 방이었다.방 안의 배치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퀸 사이즈의 넓은 침대 위에는 붉은 장미 꽃잎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장미 꽃다발이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커다
바닥으로 넘어지지 않고 나상준의 품속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랐던 차우미는 휘청거리며 나상준의 셔츠를 움켜쥐었던 것이다. 얼굴을 그의 가슴팍에 붙인 차우미에게 나상준의 숨결이 닿았다. 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에게 달라붙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딱딱한 가슴팍에 얼굴을 팍하고 부딪치자, 얼굴이 얼얼했고 움직일 수 없었다. 나상준은 품에 안긴 차우미를 끌어안았다. 매번 저항하던 차우미는 웬일로 잠잠했다.얌전하게 그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있었다.무겁던 기운이 사라졌다. 차우미는 겁을 먹지 않았다.주위가 고요해졌고 어둠의 장막도 찾아왔다.향초 빛이 유유하게 흩어졌고 방안의 센서가 꺼졌다. 향초 불빛이 방 안을 유일하게 밝혔다.로맨틱한 분위기와 꽃향기가 둘 사이를 야릇하게 휘감았다.차우미는 나상준의 품에 여전히 안겨 있었다. 그녀의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었다.두 사람의 몸이 맞닿아 있었다. 그녀는 나상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살결과 차분하게 뛰는 심장 박동수가 들렸다.차우미는 멍했다.나상준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인지하자, 갑자기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차우미는 정신을 차리고 나상준을 홱 밀쳤다.하지만...나상준은 자기를 밀치는 그녀를 팔로 눌러 막았다. 그녀의 얼굴이 나상준의 가슴에 맞닿았고 그의 체온이 그녀에게 스며들었다.차우미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그녀는 멍한 얼굴로 넋이 나갔다.하성우에게 밀려 나상준의 품에 안긴 것도, 넘어지려는 그녀를 안아서 받쳐준 것도 전부 사고였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달랐다.이건 사고라고 할 수 없다.나상준은 힘껏 그녀를 자기 품에 안았다. 강한 힘으로 그녀를 자기 품에 껴안았다.두 사람은 밀착하게 되었고 차우미도 그를 떼어낼 방법이 없었다.차우미의 귓가로 나상준의 심장 박동이 들렸다. 그녀의 심장 박동도 점차 빨라졌다.서서히 심장 소리가 겹쳤고, 지금 뛰고 있는 게 그녀의 심장인지, 그의 심장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차우미는 멍하게 나상준의 품에 안겨 움직이지 않았다.나상준의 품에 안겨 숨을 내쉬며 그의 심장박동만 들었다. 얼마 뒤, 나상준은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차우미를 내려다보았다. "앉아 있어, 함부로 움직이지 마."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허스키했다.차우미는 고개를 들어 나상준을 바라보았다. 순간, 차우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언제부터인가 차우미는 나상준의 시선이 무서웠고 움츠러들었다. 도망치고 싶을 지경이다.그의 시선이 차우미에게 꽂히자, 차우미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차우미는 그저 나상준의 시선을 당해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녀가 어리둥절한, 멍한, 의아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나상준과 거리를 두고 앉았다.나상준은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그녀의 어깨를 살짝 만지더니, 욕실로 향했다.곧 욕실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차우미도 조금씩 의식이 되돌아왔다.나상준은 주혜민과 사랑하는 사이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차우미를 끌어안자 차우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자기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3년 동안, 나상준은 그녀에게 오늘처럼 스킨십을 한 적 없었다. 그런데 이혼을 한 뒤에야, 그녀를 안으며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차우미는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차우미는 발에 물을 묻힐 수 없었다. 그래서 씻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벅찬 일이다. 곧 나상준이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차우미가 욕조 안의 물을 바라보더니 급히 말했다. "내 의자 좀 갖구 와, 나 거기 앉아서 천천히 씻으면 돼."나상준에게 씻겨달라고 할 수 없었던 차우미는 혼자 씻으려 했다.나상준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래."의자 위에 앉은 차우미는 손을 뻗어 세안 용품을 가져왔다. 다행히 욕실에 필요한 용품을 둔덕에 편리했다.차우미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머리가 아팠다. 나상준은 그녀를 돌려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입을 옷도 없는데 말이다.평소에는 옆 사람도 돌볼 정도로 꼼꼼
그의 발걸음에 의해 센서 등이 반응했다, 방을 유일하게 밝혀주던 향초가 볼품없는 존재가 되었다.센서 등이 워낙 밝았던 탓에 향초는 인테리어가 되어버렸다. 방을 밝혀주는 존재보다는 방에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항상 존재한다.보잘것없고 희미한 것이라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 작용이 다를 뿐.침실 안이 조용해졌고 무중력 상태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조용한 곳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그 소리 역시 크게 들린다.욕실 안에서 바스락 소리, 물소리... 나상준은 밖에 서서 이 소리를 들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욕망으로 가득 찼다, 마치 화려한 어둠으로 가득 뒤덮인 밤거리처럼. 차우미는 미끄러운 욕실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오랫동안 씻었다.따듯한 물에 오랫동안 씻고 나니, 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에는 그녀가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나상준은 가운 하나를 건넸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운을 입기로 했다.가운을 걸친 그녀는 허리끈을 동여맸다. 길고 하얀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하지만 가운의 앞을 단단히 동여맨 탓에, 목덜미만 보였다, 쇄골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하지만 가운 밑으로 그녀의 하얀 종아리와 적당한 발이 드러났다.긴 머리를 드라이한 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했고 천천히 벽을 짚고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나상준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입구에 다다른 그녀는 욕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마자,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나상준이 들어왔다.차우미는 갑자기 들이닥친 나상준 때문에 깜짝 놀랐다.나상준은 그녀의 움직임을 듣고 담배를 끄고 몸을 돌렸던 것이다.알싸한 담배 냄새가 뜨거운 열기를 타고 퍼지는 옅은 향기를 만났다. 차우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눈을 동그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