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동시에 여준재도 진성시에 도착했다.원래 의도는 바로 고다정을 찾으러 원 씨 저택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구남준에 의해 제지당했다.“대표님, 이렇게 가시면 고 선생님이 좋아하시지 않으실 텐데요.”구남준은 대표님의 다크서클을 보며 걱정돼 한마디 했다.여준재는 그 말을 듣고는 백미러를 통해 자신의 안색이 확실히 좋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고다정의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바로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접은 채 분부했다.“가까운 호텔을 찾아서 좀 쉬자.”“네.” 구남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를 돌려 가까운 호텔에 짐을 풀었다.이 모든 것을 고다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는 신수 노인과 서재에 들어와 갈증을 해소하듯 원빈 노인이 소장하고 있는 의서를 정독했다.한 편, 원진혁은 할아버지에게 독을 넣은 범인을 찾는 일에 열을 가하고 있었다.그는 집안의 도우미들을 다시 한 명씩 불러와 대면 심문을 진행했다.주방에는 CCTV가 있어 약을 달이는 것을 책임진 도우미와 그 시간대에 주방을 출입한 사람들만 조사하면 누가 독을 넣었는지 밝혀낼 수 있었다.하지만 하필 약 달이던 도우미를 심문할 때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다. 그녀가 약을 가져가는 도중에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배가 아파왔고 어쩔 수 없이 약을 그 모퉁이에 내려놓은 채 화장실에 갔다는 것이다.CCTV를 조사해본 결과 그 도우미의 말이 진실임이 드러났고 그 모퉁이는 하필 CCTV 사각지대로 그동안 누가 약에 손을 댔는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어제 아침 8시 10분부터 20분 사이, 주방의 복도 모퉁이에 간 적 있나요?”원진혁은 무표정으로 반대편에 앉아있는 도우미를 쳐다보며 추호의 티도 내지 않고 그들의 오관과 표정 변화를 관찰했다.도우미는 도련님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압박감을 느끼며 안절부절못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어제 그 시간에 주방에 간 적 없습니다. 그 시간이면 제가 담당한 업무 장소는 정원이었어요.”원진혁은 이 도우미의 얼굴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보아내지 못했고 그의 대답 역시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전 그냥 제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었어요.”중년 남자는 억울함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봤다.원진혁은 냉소적으로 그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내가 믿을 것 같아요?”“...”중년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더 무서운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원진혁은 무표정으로 응시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다만, 배후에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건지 알려만 준다면 당신의 죄는 가벼운 거로 넘어가 주죠.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한 짓으로 감옥에 십여 년쯤은 보낼 수 있으니깐요.”그 말에 중년 남성의 눈빛에는 갈등이 드러났다.결국, 그는 결심한 듯 원진혁을 보며 물었다.“정말로 제가 말하면, 저는 풀어주실 건가요?”“물론입니다.”거짓말이었다. 원진혁은 그를 절대로 용서할 의사가 없었다.중년 남자는 이 사실을 모르고는 사실대로 털어놨다.“아가씨가 시켰어요.”“원경하요?”원진혁이 깜짝 놀란 채 되물었고 중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아가씨께서 말씀하셨어요, 자기 지시대로만 하면 끝나고 20억 원을 주고 자기 비서로 승진시켜 준다고 했어요.”그 말을 들은 원진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원경하가 범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하지만 그 배후가 단순히 원경하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큰아버지의 의도도 숨어있는 것인지 몰랐고 이런 생각에 더 확신을 갖지 못했다.한편, 중년 남자는 말 없는 원진혁을 보며 마음속으로 불안감이 몰려왔다.“도련님, 제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언제 저를 풀어주실 건가요?”그 말을 들은 원진혁은 시선을 맞추고는 차갑게 대답했다.“아직은 안 됩니다.”“하지만 방금 약속했잖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를 풀어준다고.”중년 남자가 당황했고 원진혁은 그런 그의 모습을 비웃었다.“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요. 만약 당신이 배후의 범인을 지목한다면, 제 약속은 지킬 겁니다. 당신에게는 가벼운 처벌만 내리도록 하죠.”한편, 원경하는 원진혁이 직접 도우미를 심문한다는 사실을
그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워했다.원경하의 낯빛이 갑자기 변화했지만 아쉽게도 원진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원 씨 부부가 다급하게 물었다. “범인이 누군데?”신수 노인과 고다정도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봤다.하지만 원진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원경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동생님, 어디 가려고 하는 거죠?”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몸을 구부리고 도둑처럼 자리를 뜨려던 원경하를 발견했다.원 씨 부부는 이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고 원호열이 즉시 물었다.“경하야, 너 뭐 하는 거니?”“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원경하는 당연히 도망치려 했다고는 인정할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 원진혁을 욕하며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혔다.하지만 그녀도 이렇게 앉아서 당할 수 만은 없었다.그런 생각에 그녀는 급히 핑계를 대며 말했다.“그게, 갑자기 제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어요. 저 올라가서 핸드폰 좀 갖고 올게요.”“방에 있는 핸드폰이 사라지기야 하겠어? 나중에 가져와도 되잖아. 할아버지에게 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은 거야?”원진혁이 떠나려는 원경하를 차갑게 불러세웠고 원경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등을 돌리고 섰고 얼굴이 차갑게 굳어갔다.하지만 그녀는 원진혁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이때 원 씨 부인도 입을 열었다.“진혁이 말이 맞아. 핸드폰은 방에 둬도 괜찮지. 지금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의 중독 사건이야. 경하야, 얼른 와서 앉아. 오빠가 무슨 일인지 말해줄 거야.”원경하는 어쩔 수 없이 굳은 몸을 돌려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자리에 앉은 후에도 계속 마음속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며 원진혁이 독을 쓴 사람을 찾아냈다고 해도 자신을 폭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지레 겁먹어서 스스로 자폭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고다정은 원경하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며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약속하셨어요. 분부대로 어르신이 마시는 약 항아리에 약재만 넣으면 10억을 주겠다고요.”중년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원경하가 꼬리 밟힌 쥐처럼 화들짝 놀랐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언제 할아버지한테 독을 넣으라고 했다고, 모함이에요!”원 씨 부부의 낯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이구동성으로 중년 남자에게 호통쳤다.“자기가 모시는 주인을 음해하려 하다니, 간땡이가 부었나 보네!’“말해, 도대체 누가 어르신에게 독을 쓰라고 시킨 거야! 계속 헛소리를 하다간 여생은 감방에서 썩게 해주겠어!”그 말에 중년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감옥에 가는 결과는 면치 못할 거라는 생각에 원 씨 부부의 경고는 무섭지 않았다.“헛소리 아닙니다. 아가씨가 어르신에게 독을 넣으라고 시키셨어요.”“다 거짓말, 헛소리에요, 난 그런 말 한 적 없잖아요!”원경하는 그런 적 없다고 단호하게 잡아뗐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도우미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찼다.원진혁이 그런 원경하의 다급한 모습을 보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내 사촌 동생이 사주했다는 증거라도 있나요?”“있습니다. 저한테 10억짜리 수표를 주셨어요, 맞아요, 녹음도 있습니다.”중년 남자는 각성한 듯 마지막으로 남겨둔 결정적인 증거까지 모두 말해버렸다.원경하는 그 말을 듣고는 깊은 절망 속에 빠졌다. 저 망할 놈의 도우미가 증거에 녹음까지 남겼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바로 그때, 원진혁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증거가 있다더니, 어디에 숨겨뒀어요?”“수표는 아직 교환하지 못해 방 안 베개 밑에 숨겨뒀습니다. 녹음은 제 휴대전화에 있어요!”중년 남성이 이실직고했고 원진혁은 옆에 있던 경호원에게 눈짓했다.경호원이 뜻을 알아채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 남자의 방에서 수표와 휴대전화를 찾아 들고 나왔다.원진혁은 휴대전화를 받아들더니 바로 녹음을 찾아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빠르게 거실에는 원
“엄마 아빠, 어떻게 저 여자 편을 들 수 있어요?”원경하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이기지 못해 물었다.원 씨 부부의 얼굴색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닥쳐!”원호열은 그녀를 향해 호통치며 말했다.“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원진혁은 이를 보고 차갑게 물었다.“큰아버지는 분명 사리를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신지 모르겠네요?”“넌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데?”원호열은 대답 대신 되물으며 원진혁을 바라봤고 원진혁은 말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그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었고, 큰아버지가 그에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거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경직되었다.반면 원경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아버지가 자신을 원진혁에게 맡겨버리다니, 원진혁은 아마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거기다가 그녀 입으로 할아버지를 해치려 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들은 이미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아빠, 미쳤어요? 제가 한 일도 아닌데, 왜 원진혁더러 절 처벌하게 하는 거예요?”“네가 한 일인지 아닌지는 너 스스로도 알고 있잖아.”원호열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원경하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빛은 실망으로 가득했다.하지만 원경하는 어떻게 자신의 죄를 벗어날 수 있을지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그녀는 아버지가 원진혁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고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제가 한 게 아니라고 하잖아요. 왜 아빠조차 절 믿어주지 않는 거예요?”원호열은 그녀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고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원경하의 화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이제 알겠어요. 이 집은 저를 받아주지 않는 거군요. 오빠가 온 후로 아빠는 항상 원진혁만 챙기고, 저를 가끔 무시하기도 했죠. 그런데 저는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았었어요. 저는 여자라서 차별 받는 거예요. 이제 원진혁이
그 말에 원빈 노인이 냉소적으로 답했다.“약에 독을 탄 사람도 알았으니 경찰서에 보내야지. 경찰더러 심문하게 해. 그들은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을 테니!”마지막 말은 원경하를 쳐다보며 일부러 한 말이었다.원경하는 상황을 보더니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조금 전의 기세등등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원진혁도 그녀의 변화를 알아채고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할아버지의 분부대로 경비더러 중년 남자를 경찰서에 보내라고 알려줬다.신수 노인은 드디어 사건이 일단락돼가는 것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사건도 해결됐으니 나랑 고 선생은 서재에서 의서나 마저 연구해야겠어요.”“가보시지요, 집사를 시켜 다과를 좀 들여보내겠습니다.”원빈 노인은 그들을 막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고다정과 신수 노인이 떠나자 거실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원호열이 일어나 원빈 노인에게 사과했다.“제가 딸을 잘 가르치지 못해 아버지께 폐를 끼쳤습니다.”하지만 그 말은 원빈 노인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인제 와서 딸을 잘 가르치지 못했다고? 같은 나이에 고 선생은 이미 유명한 의사가 되었어. 근데 네 딸은? 능력도 없으면서 집안에서만 건방지게 굴고 있잖아.”원빈 노인은 원경하를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원호열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원경하는 할아버지를 원망할 수 없어 고다정에게 화를 냈다.그녀의 눈에는 고다정의 등장 때문에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다.한편 고다정은 이런 일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신수 노인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 예전 일은 잊고 의학 서적에 집중했다.약 30분쯤 지났을까, 서재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원진혁이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신수 노인이 그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물었다.“어떻게 네가 직접 가져온 거니? 일은 다 처리됐어?”“할아버지께서 직접 나섰으니,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은 없어졌어요.”원진혁은 대답하면서 트레이를 방 안의 탁자에 내려놓았다.그리고는 차 한잔을 따라 고다정에게 건네며 사과했다.“고 선생님, 조금 전 안 좋은 일에 연루될
한창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갑자기 문 앞에서 집사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고 선생님, 문밖에 여 씨 성을 가진 남성분이 오셨습니다. 선생님과 친구 사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선생님 찾으러 왔다고 하는데, 들어오라고 할까요?” “준재 온 거 아니냐?”신수 어르신이 놀라서 입을 열었다.고다정도 의아해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여 씨인 사람은 여준재 뿐이었으니 말이다.이때 신수 어르신의 말을 듣고 있던 집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진짜로 고 선생님 친구분이시다면, 제가 바로 모셔오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는 바로 밖에 나갔다.그 모습을 본 신수 어르신이 고다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우리도 아래로 내려가 보자꾸나.”고다정은 머리를 끄덕이며 뒤따라 아래로 내려갔다.하지만 원진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고다정을 찾아온 그 여 씨 남성이 그녀와 대체 어떤 사이인지도 모르니 말이다.한창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사이, 뒤에서 원빈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도 한번 내려가 보지.” 원빈 어르신은 여 씨라는 성을 듣자마자, 운산 시의 그 유명한 여 씨 집안의 사람이 맞는지 궁금해 바로 침대에서 내려오셨다.아래층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원경하는 고다정과 그의 일행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바로 말을 멈췄다.원 씨 부인은 속으로는 고다정을 다소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일단 예의를 차려야 하니 예의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고 선생님 검사 다 끝나셨어요?”“네.”고다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거실 현관 쪽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본 원 씨 부인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 씨 부인한테 고다정이란, 전에 자기 딸이 잘못한 건 맞지만 딸이 핍박당하고 있었을 때도, 고다정은 한마디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기에 너무 차갑고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원경하는 고다정의 그 행동을 눈치채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현관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
원경하의 귀여운 척과 인위적인 모습에 나머지 사람들 모두 보기가 역겨웠다.여준재 또한 싫어하는 내색을 전혀 숨기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나한테서 떨어져요.”말을 마친 뒤 그는 원경하의 표정이 어떻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원빈 어르신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어르신,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별 말씀을. 이렇게 직접 우리 원 씨 가문에 찾아준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원빈 어르신이 정중하게 답했다.조금 전 자기의 손녀가 부린 추태에 대해서는 일단 잊기로 하고, 이어서 여준재에게 말을 건넸다.“만약 여 대표만 괜찮다면 오늘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시는 건 어때요? 제가 다 마련해드리죠.”여준재는 다른 사람 집에서 자는 게 습관 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을 거절하려 했었다.그가 입을 떼려는 순간, 갑자기 신수 어르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거 괜찮은 생각이구먼. 그럼 준재와 다정이를 한방에 마련해주면 될 것 같네.”“한방에 같이요?”고다정은 그 말에 사레가 들릴 뻔 했고, 깜짝 놀라 신수 어르신을 바라봤다.신수 어르신은 그녀의 눈빛은 보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준재가 멀리서 너 찾아왔는데 혼자 둘 거냐?”“제가 오라고 한 거도 아니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찾으러 온건데, 제가 왜 같이 있어요.”고다정이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소리는 그녀와 가장 가깝게 있는 여준재만 들었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 듣지 못했다.신수 어르신은 그녀가 입을 뻥긋 대는 건 보았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듣지 못해 다그쳐 물었다.“너 뭐라고 하는 거냐?”“저...”고다정은 같은 방에 있어야 한다는 제안을 거절하려 했지만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누군가가 말을 끊었다.원진혁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고다정 씨, 혹시 여기 여 대표님하고는 어떤 사이인 거죠?”그는 이 질문조차 하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 같았다.그 질문에 고다정은 갑자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