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정의 차가운 모습을 보면서 원진혁은 갈수록 흥미가 짙어졌다.원진혁은 승낙이라도 하듯이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절대 다정 씨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원진혁은 고다정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고다정은 시종일관으로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세 사람은 차에 올라 진성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달려갔다.갑작스럽게 나타난 원경하가 있어서인지 차 안의 분위기는 무겁기 짝이 없었다.다들 가는 내내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20여 분이 지나고 나서 한 비즈니스타운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원경하는 지체없이 여성복 브랜드 매장으로 뛰어갔다.“안녕하세요, 고객님. 안 그래도 마침 이번 시즌 새로운 디자인이 도착해서 연락드리려고 했어요.”매장의 점원은 원경하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순간 웃음을 장착하고 열정적으로 마중을 나갔다.원경하는 이 매장의 단골인 것이 분명하다.반면, 고다정은 이런 옷들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그래서 원경하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둘러보았다.원진혁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다정 씨도 한 번 골라보세요.”“아니요. 저는 필요 없어요.”고다정은 고개를 저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바로 이때, 원경하는 실크 원피스 한 장을 들고 다가와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다정 씨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어디 한 번 입어보세요.”말하면서 원경하는 고다정의 의사도 듣지 않고 옷을 막무가내로 쑤셔 넣었다.고다정은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원경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또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원진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사촌 여동생의 행동이 너무 이상하므로 이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하필이면 옆에 있던 점원은 세 사람 사이의 미묘한 심리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다정의 외모와 옷 스타일을 위아래로 관찰하더니 알랑거리기 시작했다.“역시 고객님은 안목이 높아요. 이 드레스는 아마 손님 분위기에 딱 맞을 겁니다. 한 번
고다정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뭔가를 알아차린 것만 같았다.그리하여 고다정은 원경하의 말에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CCTV를 보고는 몸을 돌려점원에게 말했다.“괜찮으시다면, 매장 CCTV 좀 확인하고 싶어요.”만약 원경하의 말이 아니었다면, 고다정은 원피스를 입을 때 실수로 긁혀버린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원경하는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고 또 하필이면 원경하가 이 원피스를 가져왔다.두 가지 일을 함께 놓고 생각해 보니 수상하기 그지없었다.사실 고다정이 생각하는 바로 그대로였다.원경하는 CCTV를 돌려 보겠다는 고다정의 말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뜻이에요? 제가 일부러 덮어씌우기라도 했다는 거예요?”“사실이 무엇인지 CCTV를 보면 알게 될 거예요.”고다정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점원에게 분부했다.“매니저님 좀 불러주세요. CCTV 확인 해 봐야겠어요.”단호한 고다정의 모습에 원경하는 당황해 마지 못했다.“가지 마세요!”원경하는 점원을 향해 소리쳤다.점원은 중간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단골인 원경하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세 사람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원진혁이 입을 열었다.“이분 말씀대로 하세요.”그러자 원경하는 제대로 날뛰기 시작했다.원경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원진혁을 노려보았다.“오빠는 도대체 누구 편이에요? 설마 정말로 저 천한 년에게 반한 거 아니죠?”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뺨은 때리는 소리가 매장에 울려 퍼졌다.“네가 감히 날 때려?”“원씨 가문의 교육이 형편없어 보여서요. 타인에게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제가 대신 가르쳐 드리려고요.”고다정은 냉랭한 눈빛으로 원경하를 바라보았다.원경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 고다정에게로 달려들어 욕설을 퍼부었다.“미친년! 가만두지 않을 거야!”하지만 아직 고다정에게 손을 대기도 전에 원진혁에게 가로막혀버렸다.“원경하! 그만 좀 해!”원진혁
이튿날 고다정은 아침을 먹고는 신수 어르신을 따라 원빈 노인을 치료하러 나섰다.어제의 치료를 거쳐 병세는 이미 상당히 호전된 상태였고 오늘의 치료는 병세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하지만 고다정이 침술을 진행할수록 원빈 노인의 안색이 비정상적인 검붉은 보라색을 띠더니 푸흡하는 소리와 함께 선홍빛 피가 목구멍에서 울컥 뿜어져 나오며 의식을 잃고 침대에 고꾸라졌다.다행히 신수 노인이 발 빠른 대처로 환자를 끌어안았고 고다정은 깜짝 놀랐다.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원빈 노인의 손을 잡고는 진맥을 시작했다.신수 노인은 고다정의 엄숙한 표정을 보더니 걱정돼 물었다.“다정아, 원빈 노인이 어떻게 된 일이니?”“중독인 것 같아요.”고다정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심각한 얼굴로 쳐다봤다.신수 노인은 그 말에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물었다.“어떻게 중독일 수가! 상태가 심각한 것이냐?”“심각하진 않지만, 반드시 독이 어디서 온 것인지 똑똑히 알아내야 해요.”고다정은 혼수상태에 빠진 원빈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뒤이어 그의 몸에 꽂았던 은침을 하나하나 빼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전 나가서 원 씨 가족들과 얘기 좀 나눌게요.”“잠시만 기다려, 나도 같이 가자.”신수 노인은 고다정 혼자 원 씨 집안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친구를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방에서 나온 둘은 문밖을 지키고 있던 원 씨 가족들을 발견했다.“고 선생님 나오셨네요, 오늘의 치료는 다 끝난 건가요?”“오늘은 왜 어제보다 치료 시간이 훨씬 짧은 건가요?”원 씨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질문했고 고다정은 숨김없이 이실직고했다.“치료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문제가 생겨...”“무슨 문제요? 당신이 우리 할아버지 병세를 더 위중하게 만든 거죠?”고다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경하가 가로챘고, 다른 이들도 그 말에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쳐다봤다.고다정은 말이 끊어지자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대로 대답했다
신수 노인의 말에 원경하를 제외한 모두가 낯빛이 어두워졌다.원경하는 참지 못하고 대꾸했다.“누가 할아버지를 해친다는 거예요. 설마 우리겠어요? 아무리 봐도 저 돌팔이가 자신이 처방을 잘못 내리고는 일부러 우리 집안 사람들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우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같은데요.”그 말에 고다정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번했다.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이런 편견 가득한 사람과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결과만 끝까지 고집하기 때문이었다.“믿든 말든 맘대로 생각해요. 난 부끄럼 한 점 없으니까!”“당신——”원경하는 고다정을 노려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녀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귓가에 원진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됐어, 이 일은 사람을 시켜 제대로 조사하게 할 테니까. 지금 당장 급한 일은 할아버지를 살리는 일이잖아.”원진혁은 말을 마치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며 부탁의 말투로 말을 이었다.“우리 할아버지의 병세에 많은 신경 좀 써주세요, 고 선생님.”고다정은 대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그녀는 한번 시작한 일에 끝맺음을 명확히 하는 성격이었는지라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걱정 마세요, 원빈 노인 체내의 독소는 이미 더 퍼지는 걸 막았으니 해독만 한다면 별일 없을 겁니다.”“그럼 다행이네요, 고생하셨어요, 고 선생님.”원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원 씨 부부는 고다정에게 의심이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건 다정밖에 없었으니 막아서진 않았다.빠르게 고다정과 신수 노인이 방으로 돌아와 해독을 시작했다.해독의 과정은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고다정이 침술을 사용해 독소를 손끝으로 몰아넣고는 침으로 손가락을 찔러 검붉은 피를 짜냈다. 피가 선홍빛을 띠기 시작하면 해독이 된 것이었다.다만 이 해독과정은 보기엔 간단했지만 실행하기에는 상당한 정신력이 필요했다.신수 노인은 옆에서
신수 노인을 막아서는 모습을 보며 고다정의 눈에는 아쉬움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다정은 진짜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거기에 아쉬움을 느낀 건 원경하도 있었다.원경하는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투덜댔다.“가겠다는 사람은 그냥 보내주지, 잡아서 뭐 해요.”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유난히 조용한 방 덕분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원 씨 부부와 원진혁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신수 노인의 얼굴도 굳어졌다.“조용히 해, 아무도 널 벙어리라고 생각 안 하니까.”원진혁이 크게 호통쳤고 원 씨 부부도 신수 노인에게 사과했다.“너무 오냐오냐한 탓에 애가 버릇이 없네요. 어르신 너무 괘념치 마세요. 저희가 제대로 단도리 치겠습니다.”“저희 아버지 병은 그래도 어르신과 고 선생님이 수고해주셔야죠.”원 씨 부인은 고다정에게 사과의 웃음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다정이 입술을 달싹이며 답했다. “전 신수 노인의 말을 따르겠습니다.”그 말에 원 씨 부부는 신수 노인에게 더욱 비굴하게 행동했다.신수 노인은 화가 났지만, 자신의 옛 친구가 걱정돼 남기로 했다.다만 원 씨 집안에게 다짐을 받아놓는 것은 잊지 않았고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남는 건 가능하지만, 앞으로 아무도 이 친구의 의술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면 원빈 노인과 지난 몇십 년의 우정도 다 내팽개칠 거니까. 이 친구가 더는 억울함을 당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어.”“안심하십시오. 앞으로 절대 그 누구도 고 선생님을 의심하진 않을 겁니다.”원 씨 부부가 다급하게 약속했고 신수 노인은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고다정더러 올라가자고 눈짓했다.올라가면서도 그는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다정이 너 내가 또 남겠다 해서 날 미워하는 거 아니지?”“아니에요,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고다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신수 노인은 허허 웃더니 답했다.“네가 신경 안 쓸 줄 알았어. 하지만 내 친구의 손녀 놈은 사람이 덜됐더구나. 원빈 노인이 깨어나면 제대로 교육하라고 해야겠어.”그는
옆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여준재도 두 녀석의 말을 듣게 됐고 당장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둔 채 두 녀석을 향해 다가왔다.“하준이 하윤이, 아저씨한테 휴대전화 좀 졸래? 아저씨가 엄마한테 물어볼게.”“알겠어요, 아저씨.”쌍둥이는 반대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넘겨줬다.하준이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아저씨, 엄마가 괴롭힘당하고 있는지 꼭 물어봐야 돼요.”“알겠어.”여준재는 대답하고는 휴대전화를 들고 옆에 앉아 질문했다.“말해봐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요?”고다정은 영상통화 속 진지한 표정의 남자를 바라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다만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진짜 아무 일도 없어요. 하준이 하윤이가 하는 헛소리는 듣지 말아요.”“근데 왜 애들이 헛소리 하는 것 같지 않죠?”여준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다정을 뚫어지게 쳐다봤다.깊은 눈동자에 고다정은 순간 멈칫하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여준재의 얄쌍한 입술이 다시 달싹이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윤이가 아니라, 나도 당신이 기분 좋은지 안 좋은지는 알아볼 수 있어요.”“그래요? 그럼 내가 기쁠 때는 어떤 모습이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 얘기 좀 해봐요.”고다정이 눈썹을 씰룩이며 흥미롭다는 듯 여준재를 쳐다봤다.여준재는 웃으며 대답했다.“다정 씨 기분 좋을 때는 눈빛을 반짝거리고 입꼬리도 올라가 있죠. 기분 나쁠 때는 눈빛이 싹 죽어서는 입꼬리도 올라가지 않고, 그리고...”그는 일부러 뜸을 들였다.고다정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리고 뭐요?”“그리고 기분이 안 좋을 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려요.”여준재는 말을 마치고는 씨익 웃었다.그 말에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다정의 손이 그대로 굳어지더니 양심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여준재를 똑바로 볼 수 없어 눈빛을 흐리며 말했다.“진지하게 말하는 줄 알았더니, 내용은 헛소리네요.”“헛소리 아닌데요
구남준은 의문이 들었지만, 명령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여준재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정원을 향해 걸어 나가며 놀고 있는 두 녀석을 불렀다.“하준아, 하윤아.”“아저씨, 엄마랑 비밀 이야기 다 했어요?”두 녀석은 여준재 앞으로 뛰어왔고 하준이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아저씨, 엄마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누가 엄마를 괴롭히고 있는 거죠?”“맞아,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 그래서 아저씨가 지금 엄마 곁에 있어 주러 출발해야 돼.”여준재는 허리를 숙여 두 녀석과 시선을 맞추고는 의도를 설명해줬지만, 아이들은 그의 말에 따라가겠다고 투정했다.“아저씨는 우리 엄마 괴롭힌 나쁜 놈 혼내주러 가는 거죠? 우리도 갈 거예요.”“맞아요, 우리도 엄마 복수해줄 거에요.”하윤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여준재는 고다정을 지켜주겠다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너희들은 가지 않아도 돼, 아저씨 혼자 처리할 수 있어. 그리고 너희들에게는 더 중요한 미션을 줄게.”그 말에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쳐다보며 물었다.“우린 무슨 미션이 있는데요?”“너희들의 미션은 나와 엄마가 집에 없을 때 외증조할머니를 잘 보살피는 거야.”아이들을 속이는 말이었지만 두 녀석은 알아채지 못했고 오히려 그에게 설득당했다.그렇게 늦은 밤 여준재는 구남준을 데리고 진성시로 향했다....진성시, 원 씨네 저택에서원진혁은 할아버지가 중독됐단 걸 안 뒤로 침대맡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고 할아버지를 지켰고 원호열은 조카의 모습에 자신도 떠날 수 없어 같이 방을 지키고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늦어질수록 견디기 힘들었는지 참지 못하고 원진혁을 설득했다.“너무 늦었어, 네 할아버지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으니 너도 방에 들어가 쉬어라. 내일 회사 일도 처리해야 하잖니, 몸이 상하면 안 되지.”“큰아버지는 여유로우시네요, 할아버지가 이 지경이 되셨는데 잠잘 기분도 있으시고.”원진혁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원호열은 그 말에 단번에 눈썹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진혁아
다음 날, 고다정은 일찍 잠에서 깼다.시간을 한 눈 보고는 일어나 세수를 하고 정원에서 운동하러 나갈 준비를 했다.하지만 계단에 막 다다르자 예상치 못하게 역시 야외에서 운동하려던 참인 원진혁과 마주쳤다.“고 선생님도 달리기하러 가시나요?”이번에는 원진혁이 먼저 인사를 걸어왔다.고다정은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아니요, 정원에서 좀 걸으려고요. 진혁 씨는 달리기하러 가는 거죠? 그럼 방해하지 않을게요.”말을 마치고는 살짝 몸을 돌려 길을 터줬다.원진혁은 그 모습에 눈앞의 여인이 의도적으로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다정이 당황할까 봐 원진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계단에서 사라진 남자를 보며 고다정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젯밤 원진혁이 예상치 못하게 선물을 전해주며 사과한 뒤로 이 남자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열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은 다정이었다.그렇게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운동을 떠났다.8시 정도 됐을 때 원 씨 집안의 사람들도 모두 잠에서 깼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식사할 준비를 했다.아침 식사 자리에서 원진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어제 새벽에 할아버지가 깨어나셨어요.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데 아마 독소가 제대로 정리된 것 같아요. 고 선생님의 의술은 듣던 대로 대단하시네요, 역시 신수 노인이 직접 추천하신 분이시네요.”“뭘요, 과찬이세요.”고다정이 겸손하게 웃었다.다만 원 씨 부부는 그 말을 듣더니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가 깨셨다고?”“할아버지가 깨셨어? 너무 잘됐다. 나 올라가서 할아버지를 볼 거야.”원경하는 효심 지극한 손주의 모습으로 수저를 내려놓고 당장이라도 올라갈 태세를 취했다.원진혁은 그 모습에 눈썹을 찌푸리며 원경하를 불러 세우더니 불쾌한 듯 말했다.“방금 얘기했잖아. 어제 새벽에 깨셨다고. 지금 올라가면 할아버지 휴식을 방해할 뿐이야.”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