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의 간곡한 부탁에 성시원은 눈이 번쩍 뜨였다.쌍둥이는 아직 아빠와 엄마가 가짜로 헤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이 일은 다른 사람이 설득해서는 소용없고, 너희 아빠와 엄마가 스스로 갈등을 풀어야 해.”성시원은 잠시 멈추더니 여준재의 잘못을 부풀려 말했다.“하지만 두 사람이 스스로 갈등을 풀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너희 아빠가 엄마와 외증조할머니의 물건을 빌라 밖에 내던지는 짓까지 했으니 말이야. 이건 정말 너희 엄마 체면을 짓밟는 일이었어.”이 말을 들은 쌍둥이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들도 이 일을 알지만 아빠와 엄마의 결합을 위해서는 무시할 수 있다.한순간 그들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성시원은 침묵하는 쌍둥이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손으로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됐어. 너무 걱정하지 마. 이건 어른들의 일이니까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할 거야.”쌍둥이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채 여전히 말이 없었다.조금 뒤, 호텔 직원이 조식을 가져왔다.세 사람과 성시원은 식사를 마친 후 호텔을 떠났다.다만 그들은 문을 나서자마자 남아 있던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고다정 씨, 여준재 씨와 헤어졌다면서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정말 애정이 식은 건가요?”“고다정 씨, 그저께 저녁에는 왜 여준재 씨를 칼로 찔렀나요? 여준재 씨가 잘못한 일이 있나요?”“여준재 씨가 고다정 씨 물건을 버렸다고 하던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요?”“고다정 씨가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난 것은 여준재 씨와 여씨 가문에서 두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인가요?”한껏 흥분된 표정을 지은 기자들이 예리한 질문을 쏟아냈다.쌍둥이는 이 장면에 깜짝 놀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들은 잔뜩 성이 나서 방금 아빠가 그들을 버렸냐고 물은 기자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아빠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엄마와 헤어지지도 않아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아니면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할 거예요.”이 말이 나오기 바쁘게 고다정의 호통이 떨어졌다.“하윤,
이 말을 들은 유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상관없어. 까짓 두 아이쯤이야. 꼬맹이들이 말을 잘 들으면 떠맡을 의향도 있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사고나 내서 해결할 수 있어. 아이 목숨은 취약하니까.”디카프리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보고했다.“성시원이 고다정을 데려갔어요. 고다정의 기를 살려주려는 모양이에요.”“기를 살려주든 뭘 하든 그 여자가 다시 여준재를 찾아오지만 않으면 돼. 그 여자를 계속 감시해.”유라가 나지막이 말했다.그녀는 고다정과 여준재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믿었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불안했다.디카프리도는 알았다고 대답했다.잠시 후, 차는 병원 앞에 멈춰 섰다.유라는 치마에 구겨진 부분을 가볍게 정리한 후에야 천천히 차에서 내려 부하가 사 온 아침을 들고 느릿느릿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몇 분 후, 그녀는 여준재의 병실에 도착해 노크했다.“준재야, 나 들어와도 돼?”말만 그렇게 했지, 실제 그녀는 직접 문을 밀고 들어갔다.그녀를 본 여준재는 냉랭한 얼굴에 더욱 언짢은 기색을 띠며 따져 물었다.“누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유라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들어오지 말라는 소리를 못 들어서 들어와도 되는 줄 알았어.”그녀는 정성스럽게 도시락통을 들고 침대 옆에 오더니 보물을 바치듯 넘겨주었다.“인터넷 기사를 보고 너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서 특별히 맛있는 걸 사 왔어.”“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너랑 상관없으니까 물건을 가지고 나가.”여준재는 여전히 유라를 곱게 보지 않으며 직접 축객령을 내렸다.이 말을 들은 유라는 하마터면 얼굴에 미소를 유지하지 못할 뻔했다.그녀는 억울한 눈빛을 지었다.“준재야,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이전? 이전에는 내가 눈이 멀었었지!”여준재는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뒤이어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유라를 바라보더니 일부러 그녀를 자극했다.“내가 고다정과 헤어졌으니 너한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럼 아니야?유라는 이
거의 10시가 됐을 때 여준재가 끝내 구남준과 함께 병원에서 나왔다.그를 본 유라가 즉시 꽃다발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환하게 웃으며 손에 든 꽃다발을 건넸다.“준재야, 퇴원 축하해.”여준재는 그녀를 보고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꽃도 받지 않았다.그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유라는 얼굴에 미소를 가까스로 유지했다.그녀가 무슨 말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귓가에 분노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망할 놈, 헤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새 애인이 생겼어!”육성준이 여준재와 유라를 노려보며 울분을 토했다.방금 반응이 한 박자 늦었을 뿐인데 이렇게 화딱지 나는 화면을 보게 될 줄이야.당초 여준재가 좋은 놈인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나 고다정을 양보했더니, 이 남자가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니! 젠장!“여준재, 정말 잘하는 짓이야!”육성준은 선글라스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여준재에게 달려들어 때리려 했다.하지만 여준재가 가만히 서서 맞을 사람인가? 그는 육성준이 휘두른 주먹을 잡은 후 힘껏 밀치고, 지극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구남준도 옆에서 육성준을 말렸다.“육 대표님, 우리 대표님이 기분이 안 좋으니까 여기서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서로 치고받고 체면을 구길 필요 없잖아요.”“허! 기분이 안 좋다고? 새 애인이 품에 있는데, 기분이 안 좋을 게 뭐가 있어?”육성준은 비꼬는 말투로 여준재를 비난하면서 방금 몸싸움으로 흐트러진 옷을 바로잡았다.뒤이어 그는 눈에 쌍불을 켜고 여준재를 노려보았다.“내가 오늘 대중들 앞에서 당신이 처자식을 버린 일을 까발리고 한바탕 패 줄 거야.”그는 뒤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명령을 받은 경호원들이 즉시 여준재와 유라 등을 둘러쌌다.그들을 둘러본 여준재는 안색이 어두웠다.유라도 안색이 안 좋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육성준이 일을 크게 만들어 모든 사람이 그녀를 여준재의 새 애인으로 오해했으면 좋겠다.구남준은 주변을
양쪽의 역량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에 결과는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여준재 쪽의 승리였다.이때 경찰 차가 도착했다.방금 패싸움을 할 때 열성적인 시민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사건 담당 경찰관은 땅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과 만만찮아 보이는 경호원들을 보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길거리에서 패싸움을 벌였으니 저랑 경찰서로 가시죠.”한편, 이 사건은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다.[살아생전에 내가 이런 뉴스를 보게 되다니.][두 대표님이 한 여자를 위해 싸웠다고. 내가 그 여자였다면 행복해서 기절했겠다.][기사 내용을 좀 똑똑히 보실래요? 육 대표님은 친구가 안쓰러워 여 대표한테 따지러 간 거예요. 여 대표가 왜 갑자기 고다정 씨와 헤어졌나 했더니, 새 애인이 생겼네요. 역시 돈 많은 남자치고 좋은 놈이 없어요. 처자식을 버리다니. 지금부터 저는 YS그룹의 영원한 안티팬이 될 것입니다.]이 같은 댓글의 영향으로 점점 더 많은 누리꾼들이 여준재가 처자식을 버린 것에 반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겨우 안정된 YS그룹 주가가 또 한 번 폭락했다.인터넷에서 일이 너무 크게 번져 고다정도 알게 됐다.이때야 그녀는 육성준 그 자식이 정말 사람을 데리고 여준재를 찾아갔다는 걸 알게 됐다.그녀는 여준재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묻고 싶었지만 그 당시 유라도 있었다고 하니 들통날까 봐 결국 육성준의 휴대폰에 메시지를 보냈다.“너 왜 사람을 때리고 다녀?”“여준재가 맞을 짓을 했잖아. 내가 아니면 누가 너 대신 화풀이하겠어? 걱정하지 마. 오늘이 지나면 여준재 명성이 완전히 추락할 거야!”육성준이 흐뭇해하며 고다정에게 자기 공로를 떠벌렸다.그녀는 이 메시지를 보고, 인터넷에 뜬 기사가 이 자식의 작품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다.한편, 구남준도 부하의 메시지를 받고 인터넷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되어 급히 여준재에게 보고했다.“대표님, 인터넷에 대표님과 육성준이 싸웠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대표님이 바람 나서 처자식을 버린 매정한 남자라는 내용도 있습니다.”그는 여준재
“다정이 얘기 좀 그만하지. 듣는 사람이 역겨우니까. 다정이 이제 당신과 아무 관계 없잖아.”육성준이 비아냥대자, 여준재는 더욱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육형식이 얼마나 영리한 사람인가? 그는 표정을 보고 대뜸 둘이 부부 싸움을 했을 것으로 짐작했다.그는 육성준의 등을 힘껏 내려치며 훈계했다.“고다정 씨가 왜 여 대표님과 관계 없어? 고다정 씨는 여전히 여 대표님 아이들의 엄마야. 넌 입 다물고 있어. 한 마디라도 더 하면 즉시 아프리카 광산에 보내버릴 거야.”이 말이 나오자, 육성준은 여전히 달갑지 않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얌전해졌다.다름 아니라, 고다정과 여준재가 헤어진 지금이 자기가 뚫고 들어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녀와 엇갈렸고,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재차 기회가 주어졌으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그들의 대화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라가 엿들을 줄이야.유라는 질투 나서 견딜 수 없었다.‘여준재가 나한테 무관심한 것이 고다정 그년을 잊지 못해서였구나.’‘뭐라도 해야지, 안 되겠어. 적어도 여준재가 고다정에게 완전히 실망하게 해야 해.’그녀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귓가에 디카프리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인님, 누가 왔어요!”이 말을 들은 유라는 즉시 옆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이때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모퉁이에서 나왔다.그는 외국인인 유라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한 후 여준재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갔다.그도 사건 담당 경찰관이었다.길거리 CCTV 영상을 돌려본 후, 경찰은 이번 패거리 싸움을 육성준이 도발했고 여준재는 단지 자기방어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육형식이 옆에서 좋은 말로 사죄하니 여준재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육성준은 한소리 들은 후 아버지를 따라갈 수 있게 됐다.일행이 사무실에서 나오자 유라가 즉시 여준재를 맞으며 걱정스레 물었다.“준재야, 괜찮아?”“쯧쯧, 준재야, 괜찮아?”육성준이 괴상한 말투로 유라를 따라 했다.하지만 말하자마자 그 아버지 발에
“여러분이 오해하셨어요. 저와 준재는 아직 그냥 친구이고, 여러분이 말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유라는 인정하고 싶었지만 여준재가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한발 물러나 차선책을 택했다.물론 그녀는 딱 잘라 말하지 않고 조금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기자들은 워낙 글장난하는 사람인지라 자연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간파하고 더욱 흥분했다.다만 그들이 또 무슨 핵폭탄급 질문을 하기 전에 여준재가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한마디로 그들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저와 이 아가씨는 그냥 아는 사이일 뿐 잘은 모릅니다. 어떤 신문사든지 저와 관련된 헛소문을 퍼뜨리면 YS그룹 변호사로부터 고소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와 고다정 씨의 일은 개인사라 여러분과 공유할 필요 없습니다.”이 말을 남긴 후 그는 더 이상 기자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구남준의 뒤를 따라 길가의 승용차에 올라탔고, 잠시 후 승용차는 현장을 빠져나갔다.얼떨떨하던 유라도 정신을 차린 후 얼굴빛이 흙빛이 됐다.그녀는 여준재가 이 정도 체면도 주지 않고 매체 기자들 앞에서 창피를 줄 줄은 몰랐다.이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그녀도 냉랭한 표정으로 황급히 현장을 떠났다.기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걸 어떻게 보도하지?”“당연히 사실대로 내야지. 설마 여 대표님 헛소문이라도 퍼뜨릴 거야?”“그러게. 여 대표님의 능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자칫 미움을 샀다가 이 바닥을 떠야 할지도 몰라.”기자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흩어졌다.육성준 부자는 그제야 경찰서에서 나왔다.육형식은 떠나가는 기자들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육성준의 등을 툭 치면서 경고했다.“봤어? 네가 말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야. 여 대표와 고다정 씨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아. 경고하는데, 두 사람 일에 참견하지 마. 또 한 번 여 대표를 건드리면 그때는 구해주지 않을 거야.”“구해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고집이 센 육성준도 지려 하지 않았다.“애초에
전화기 너머 육성준은 몇 초 동안 침묵했다.고다정이 자신을 거절하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여기서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처음 고국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났을 때 육성준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사라질 줄 알았다.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긴 이상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지금 마음이 무척 괴롭다는 거 알아. 당분간은 다른 사람과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겠지. 그렇다 해도 난 상관없어. 네 곁에서 함께 이 힘든 나날을 이겨낼게. 다만 생각 정리되면 그땐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전화기 속 육성준은 진심을 담아 얘기했고, 고다정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생각 끝에 육성준이 더 이상 오해하지 않도록 진실을 알려주기로 결심했다.“그게, 사실 나랑...”“됐어, 말하지 마. 내 마음은 정해져 있어. 지금 네가 날 거절해도 난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 내가 여준재보다 낫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할 거야.”고다정의 거절이 두려워진 육성준은 그녀의 말을 가로채고는 전화를 끊었다.고다정은 무기력함과 고통이 뒤섞인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언젠가 꼭 시간을 내 육성준에게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알려줘야겠다.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한 주가 지나갔고, 강말숙이 충격을 받을까 봐 고다정과 여준재는 일단은 헤어진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하지만 종이로 불을 감쌀 수는 없는 법.특히 그동안 여준재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이날 강말숙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다정아, 준재는 요즘 바쁘니?”그 말에 고다정과 강말숙 곁에 있던 두 어린아이 모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두 아이는 서로를 쳐다봤고, 하윤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하준이가 손을 뻗어 덥석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하윤이는 불만을 품은 듯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강말숙은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전부 눈여겨보고 있었고, 조용히 고다정을 바라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VIP 고급 병동.고다정이 나간 뒤 강말숙의 시선이 두 어린아이에게 향했다.“말해봐, 너희들 엄마가 나한테 숨기는 게 뭐야?”두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윤이는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은 듯 의견을 구하는 눈빛으로 오빠를 바라보았지만 역시나 전처럼 거절당했다.하준이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엄마가 할머니한테 뭘 숨기겠어요.”아이가 그럴수록 강말숙의 마음속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그만해, 여기서 내 눈 속일 생각 마. 너희 둘을 내 손으로 키웠는데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다 알지. 혹시 엄마랑 아빠 싸웠어?”강말숙은 짐작하고 있던 바를 얘기했고, 두 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강말숙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게다가 엄마 회사는 줄곧 너희들 아빠가 맡아서 처리하고 있는데, 지금은 회사 일을 엄마가 직접 처리하는 게 이상하지 않니?”이 말에 두 아이는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결국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엄마랑 아빠가 싸워서 헤어졌대요.”“헤어져?!”강말숙은 충격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에 고다정에게 일이 생겼을 때도 여준재는 고다정을 찾는 걸 포기한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고작 싸웠다고 헤어진 게 말이 되나.두 꼬마는 이런 강말숙의 속마음을 모르는지 강말숙의 곁으로 다가와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할머니, 우리는 아빠랑 엄마가 헤어지는 게 싫어요. 아빠랑 엄마가 싸우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요?”정신을 차린 강말숙은 두 아이의 기대에 찬 눈빛을 마주하며 말했다.“이따가 엄마 돌아오면 할머니가 무슨 일인지 물어볼게.”“그럼 할머니, 절대 우리가 알려줬다는 거 말하면 안 돼요. 안 그러면 엄마가 우리 혼낼 거예요.”하준이는 강말숙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강말숙은 그런 아이를 흘끗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고다정은 화영과 함께 회사로 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