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당신 곁에 남고 싶어 하는 줄 알아요?”이 말을 뱉은 후 고다정은 노기등등해서 병실 문을 쾅 닫고 떠났다.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복도에서 마주 걸어오는 심해영과 쌍둥이를 만난 그녀는 멈칫하며 하마터면 들통날 뻔했다.다행히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화난 얼굴로 달려가 심해영의 손에서 쌍둥이를 빼앗았다.“준, 윤, 가자. 지난 5년 동안 여준재가 없이 나 혼자서 너희를 키웠잖아. 헤어진다 해도 여준재가 무슨 자격으로 너희를 빼앗으려 들어?”고다정은 심해영과 쌍둥이에게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재빨리 떠나갔다.심해영은 어안이 벙벙해 그 자리에 서 있었다.이때 구남준이 병실에서 쫓아 나왔다.그는 심해영을 보고 급히 다가와서는 예의를 갖출 겨를도 없이 급히 캐물었다.“사모님, 작은 사모님을 보지 못하셨어요?”거의 이 말과 동시에 병실에서 화가 잔뜩 난 여준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구남준, 이리 안 와? 너 그 여자를 쫓아가면 즉시 해고당할 줄 알아!”구남준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병실에 대고 말했다.“대표님, 사모님을 이 정도로 화나게 하시면 어떡해요? 대표님 아이도 가졌는데.”“내가 화나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여자가 내 호의를 무시한 거야!”여준재가 코웃음을 쳤다.심해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끝내 상황을 파악했다.그녀는 방금 들은 말을 생각하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병실에 뛰어 들어왔다.병실은 난장판이 돼 있었다.바닥에는 엎질러진 영양탕과 깨진 물컵이 나뒹굴고, 여준재는 침대 머리에 앉아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심해영은 여준재 앞에 와서 캐물었다.“너 다정이랑 싸웠어? 무엇 때문에?”그러나 여준재는 씩씩거리기만 하고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 광경을 본 심해영은 갑자기 돌아서서 뒤따라 들어온 구남준을 바라보았다.“구 비서가 얘기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제가요?”깜짝 놀란 구남준이 자기를 가리키며 우물쭈물 여준재를 쳐다보았다.심해영은 짜증 내며 재촉했다.“말하지 않
한편, 고다정은 쌍둥이를 데리고 병원을 떠났다.차에서 쌍둥이는 화가 잔뜩 난 엄마 얼굴을 보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결국 하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엄마, 아빠랑 싸웠어요?”고다정은 겁에 질리고, 걱정 가득한 쌍둥이의 표정을 보고 마음속으로 미안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화내는 척했다.그녀는 화를 가라앉히려고 애쓰는 듯 깊이 숨을 들이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엄마가 아빠랑 헤어진다면 너희는 엄마랑 살 거야? 아빠랑 살 거야?”“엄마가 아빠랑 헤어질 거예요? 왜요?”깜짝 놀란 쌍둥이가 의아해하며 고다정을 쳐다보았다.고다정이 대답했다.“너희도 어제 엄마가 아빠를 찔러 상처 입힌 걸 알지? 그 일 때문에 아빠가 엄마를 요양원에 가두려고 해. 위험하다고. 엄마가 동의하지 않으니 헤어지자고 협박해.”“그럴 리 없어요. 아빠가 엄마를 보낼 리 없어요.”쌍둥이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반박했다.그들은 고다정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고다정은 그들의 확고한 표정을 보고 대견하게 생각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화난 표정을 유지하며 나지막이 말했다.“사실상 나는 이미 너희 아빠한테 쫓겨났어. 지금 돌아가면 빌라에서 나가야 해. 너희는 엄마를 따라갈지, 아니면 빌라에 남아 아빠랑 같이 살지 생각해 봐.”쌍둥이는 이 말을 듣고 엄마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아 초조해졌다.특히 하윤은 대번에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엄마, 아빠랑 헤어지지 않으면 안 돼요? 헤어지지 마세요. 엄마랑 아빠가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엄마, 떠나지 않으면 안 돼요? 아빠는 틀림없이 무슨 고충이 있어서 엄마를 쫓아냈을 거예요.”하준도 옆에서 말렸다.그는 이 말을 한 후 자기가 진실을 알아냈다고 생각하고 흥분하며 말했다.“엄마가 아빠를 오해한 게 분명해요. 이전에도 아빠가 이와 비슷한 일을 벌인 적이 있잖아요. 아빠는 틀림없이 엄마를 보호하려고 그러셨을 거예요.”“그만해. 여준재가 무슨 목적이든 나는 절대 요양원에 가지 않을 거야. 너희가 아빠랑 헤어
그날 저녁 고다정은 빌라에서 나가 잠시 호텔에 묵었고 쌍둥이도 그녀와 함께했다.그들이 짐을 싸서 나간 즉시 이상철은 여준재에게 통지했다.전화기에서 여준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갔으면 나갔지, 전화는 왜 해요? 고다정이 살았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그 여자가 남기고 간 물건도 죄다 버려요.”“네?!”여준재가 이렇게 나오리라 생각지 못한 이상철은 일시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여준재는 그에게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때 옆에 앉아 있던 심해영은 여준재의 말을 듣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그리고 거기 다정의 물건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내가 아무리 지나쳐도 고다정만 하겠어요? 어머니는 도대체 누구의 어머니예요?”여준재는 즉시 언짢아하며 반박했다.말문이 막힌 심해영은 아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이 일이 가짜라는 걸 알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열 받아 죽었을 것이다.‘나쁜 자식, 좀 적당히 하지!’‘아니야, 진짜 같지 않으면 사람들을 속일 수 없어.’여준재와 눈이 마주친 심해영은 어쩔 수 없이 협조했다.“됐다, 나 이제 너희들 일에 참견하지 않을 거야!”이 말을 내뱉고 그녀는 돌아서서 재빨리 병실을 떠났다.한편, 고다정은 산하 회사에 YS그룹과의 협력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소식을 들은 모든 담당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게 무슨 일이지?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인터넷에는 고다정과 여준재가 파혼한다는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사실을 입증하는 사진도 있었다.고다정이 캐리어를 끌고 빌라를 떠나고, 그 후 집사가 고다정의 물건을 전부 버리는 장면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누리꾼들은 이 기사를 보고 삽시간에 왁자지껄 의견이 분분했다.[내가 뭐랬어? 고다정과 여준재 사이에 문제가 있다니까.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고다정과 여준재가 정말 사이좋다면 고다정이 왜 여준재를 칼로 찔렀겠어?][근데 두 사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보란 듯이 애정행각을 벌이더니.]이
쌍둥이가 육성준에게 전화할 때 임은미도 고다정에게 캐묻고 있었다.“다정아, 너 여 대표님이랑 헤어졌어?”말투로 보아 전혀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전화를 받은 고다정은 진작 예상했던 것처럼 놀라지도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정말 헤어졌어. 난 지금 그 남자 얘기 하고 싶지 않으니까 너 내 친구라면 더 이상 묻지 말아줘.”“...”한 마디도 묻지 말라는 뜻이다.궁금한 것이 많은 임은미는 참지 못하고 떠보듯 물었다.“한 마디도 안 돼?”“안 돼!”고다정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언짢은 말투로 볼 때, 한 마디만 더 물으면 화낼 것 같았다.임은미는 할 수 없이 궁금증을 내려놓고 말머리를 돌려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그럼 너 지금 어디 있어? 묵을 곳은 있어?”“잠시 호텔에 묵고 있어. 집을 찾고 있는데, 마침 너도 좀 알아봐 줘.”고다정이 고충을 털어놓자 임은미는 알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고다정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낼 것 같지 않아 전화를 끊고 여준재에게 연락했다.여준재는 전화를 받긴 했지만 말투가 냉랭했다.“무슨 일이에요?”화가 잔뜩 나 있던 임은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위축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여 대표님, 다정이랑 정말 헤어졌어요?”“정말 헤어진 게 아니면 가짜로 헤어졌겠어요? 제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요?”여준재는 즉시 퉁명스럽게 쏘아붙였고, 임은미는 한순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뒤이어 여준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 뒤로도 고다정과 여준재를 찾는 친지와 친구들의 전화는 한동안 계속됐다.그들도 임은미와 마찬가지로 믿지 않았다.하지만 전화를 끊은 후에는 모두가 두 사람이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성시원이 이 일을 알게 됐을 때는 한밤중이었다.그동안 아무 일도 없이 무사했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평소에 고다정을 치료할 때만 실험실에서 나오고 거의 하루 종일 안에 있었다.그는 부하가 전한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너 방금 뭐라 했어?”“어르신, 아가씨가 서방님과 헤어졌다고요.
여준재가 맞았다는 소식은 성시원이 떠나자마자 유라의 귀에 들어갔다.그녀는 가슴 아프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원래 그녀는 고다정과 여준재가 정말 헤어졌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하도 갑작스러운 소식이라.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점차 두 사람이 정말 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특히 성시원이 나타나면서 그녀는 이 일을 철저히 믿었다.시간만 허락된다면 그녀는 정말 지금 바로 병원에 달려가서 여준재를 제대로 위로하고 싶었다.‘안 돼. 그만 생각해야 해. 지금 푹 쉬어야 내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여준재 앞에 나타날 수 있어. 반드시 이번 기회에 여준재를 손에 넣어야 해!’여준재는 이런 걸 모르고 있었다.그는 의사와 간호사를 보낸 후 휴대폰을 꺼내 고다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당신 스승님이 와서 저를 한바탕 팼어요. 지금 온몸이 아파 죽겠어요. 이게 다 당신이 낸 아이디어 때문이에요.][고생했어요. 일이 해결되면 충분히 보상해 줄게요!]고다정이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여준재는 내용을 확인한 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왜 이렇게 늦게까지 안 자고 있어요?][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시끄럽게 해서 깼어요.]곧이어 고다정은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내왔다.[조만간 또 한 번 맞을지도 몰라요.][?][저의 죽마고우라는 육성준이 방금 전화에서 당신을 30분 동안 욕했어요.]고다정이 여준재의 의문을 풀어주었다.오랜만에 이 이름을 들은 여준재는 한참 후에야 누군지 생각났다.하지만 그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 자식이 내 상대나 돼요? 누가 누굴 때릴지 몰라요.”육성준은 고다정의 손윗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감히 도발한다면 그도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고다정은 여준재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갔다.뒤이어 그녀는 휴대폰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재촉했다.“됐어요. 시간이 늦었으니 메시지를 지우고 쉬세요. 내일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잖아요.”여준재는 마지막에 자기 어머니와 성시원이 그들의 작전을 눈치챘다고 말한
쌍둥이의 간곡한 부탁에 성시원은 눈이 번쩍 뜨였다.쌍둥이는 아직 아빠와 엄마가 가짜로 헤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이 일은 다른 사람이 설득해서는 소용없고, 너희 아빠와 엄마가 스스로 갈등을 풀어야 해.”성시원은 잠시 멈추더니 여준재의 잘못을 부풀려 말했다.“하지만 두 사람이 스스로 갈등을 풀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너희 아빠가 엄마와 외증조할머니의 물건을 빌라 밖에 내던지는 짓까지 했으니 말이야. 이건 정말 너희 엄마 체면을 짓밟는 일이었어.”이 말을 들은 쌍둥이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들도 이 일을 알지만 아빠와 엄마의 결합을 위해서는 무시할 수 있다.한순간 그들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성시원은 침묵하는 쌍둥이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손으로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됐어. 너무 걱정하지 마. 이건 어른들의 일이니까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할 거야.”쌍둥이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채 여전히 말이 없었다.조금 뒤, 호텔 직원이 조식을 가져왔다.세 사람과 성시원은 식사를 마친 후 호텔을 떠났다.다만 그들은 문을 나서자마자 남아 있던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고다정 씨, 여준재 씨와 헤어졌다면서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정말 애정이 식은 건가요?”“고다정 씨, 그저께 저녁에는 왜 여준재 씨를 칼로 찔렀나요? 여준재 씨가 잘못한 일이 있나요?”“여준재 씨가 고다정 씨 물건을 버렸다고 하던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요?”“고다정 씨가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난 것은 여준재 씨와 여씨 가문에서 두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인가요?”한껏 흥분된 표정을 지은 기자들이 예리한 질문을 쏟아냈다.쌍둥이는 이 장면에 깜짝 놀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들은 잔뜩 성이 나서 방금 아빠가 그들을 버렸냐고 물은 기자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아빠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엄마와 헤어지지도 않아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아니면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할 거예요.”이 말이 나오기 바쁘게 고다정의 호통이 떨어졌다.“하윤,
이 말을 들은 유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상관없어. 까짓 두 아이쯤이야. 꼬맹이들이 말을 잘 들으면 떠맡을 의향도 있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사고나 내서 해결할 수 있어. 아이 목숨은 취약하니까.”디카프리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보고했다.“성시원이 고다정을 데려갔어요. 고다정의 기를 살려주려는 모양이에요.”“기를 살려주든 뭘 하든 그 여자가 다시 여준재를 찾아오지만 않으면 돼. 그 여자를 계속 감시해.”유라가 나지막이 말했다.그녀는 고다정과 여준재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믿었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불안했다.디카프리도는 알았다고 대답했다.잠시 후, 차는 병원 앞에 멈춰 섰다.유라는 치마에 구겨진 부분을 가볍게 정리한 후에야 천천히 차에서 내려 부하가 사 온 아침을 들고 느릿느릿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몇 분 후, 그녀는 여준재의 병실에 도착해 노크했다.“준재야, 나 들어와도 돼?”말만 그렇게 했지, 실제 그녀는 직접 문을 밀고 들어갔다.그녀를 본 여준재는 냉랭한 얼굴에 더욱 언짢은 기색을 띠며 따져 물었다.“누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어?”유라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들어오지 말라는 소리를 못 들어서 들어와도 되는 줄 알았어.”그녀는 정성스럽게 도시락통을 들고 침대 옆에 오더니 보물을 바치듯 넘겨주었다.“인터넷 기사를 보고 너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서 특별히 맛있는 걸 사 왔어.”“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너랑 상관없으니까 물건을 가지고 나가.”여준재는 여전히 유라를 곱게 보지 않으며 직접 축객령을 내렸다.이 말을 들은 유라는 하마터면 얼굴에 미소를 유지하지 못할 뻔했다.그녀는 억울한 눈빛을 지었다.“준재야,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이전? 이전에는 내가 눈이 멀었었지!”여준재는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뒤이어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유라를 바라보더니 일부러 그녀를 자극했다.“내가 고다정과 헤어졌으니 너한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럼 아니야?유라는 이
거의 10시가 됐을 때 여준재가 끝내 구남준과 함께 병원에서 나왔다.그를 본 유라가 즉시 꽃다발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환하게 웃으며 손에 든 꽃다발을 건넸다.“준재야, 퇴원 축하해.”여준재는 그녀를 보고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꽃도 받지 않았다.그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유라는 얼굴에 미소를 가까스로 유지했다.그녀가 무슨 말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귓가에 분노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망할 놈, 헤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새 애인이 생겼어!”육성준이 여준재와 유라를 노려보며 울분을 토했다.방금 반응이 한 박자 늦었을 뿐인데 이렇게 화딱지 나는 화면을 보게 될 줄이야.당초 여준재가 좋은 놈인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나 고다정을 양보했더니, 이 남자가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니! 젠장!“여준재, 정말 잘하는 짓이야!”육성준은 선글라스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여준재에게 달려들어 때리려 했다.하지만 여준재가 가만히 서서 맞을 사람인가? 그는 육성준이 휘두른 주먹을 잡은 후 힘껏 밀치고, 지극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구남준도 옆에서 육성준을 말렸다.“육 대표님, 우리 대표님이 기분이 안 좋으니까 여기서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서로 치고받고 체면을 구길 필요 없잖아요.”“허! 기분이 안 좋다고? 새 애인이 품에 있는데, 기분이 안 좋을 게 뭐가 있어?”육성준은 비꼬는 말투로 여준재를 비난하면서 방금 몸싸움으로 흐트러진 옷을 바로잡았다.뒤이어 그는 눈에 쌍불을 켜고 여준재를 노려보았다.“내가 오늘 대중들 앞에서 당신이 처자식을 버린 일을 까발리고 한바탕 패 줄 거야.”그는 뒤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명령을 받은 경호원들이 즉시 여준재와 유라 등을 둘러쌌다.그들을 둘러본 여준재는 안색이 어두웠다.유라도 안색이 안 좋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육성준이 일을 크게 만들어 모든 사람이 그녀를 여준재의 새 애인으로 오해했으면 좋겠다.구남준은 주변을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