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슬이 바로 양명섭 앞에서 이 정도로 화를 낸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 것이다. 양명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안이슬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며 말했다.“명섭 씨, 무슨 뜻이야? 왜 나한테 그랬어? 난 당신 와이프야, 도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그 당시 안이슬은 양명섭에게서 조금의 부드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도 거칠고 사나웠다. 전에는 두 사람이 아무리 격렬해도 그는 항상 그녀의 감정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대하고 한 번도 불편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양명섭의 그러한 배려 덕분에 그녀도 아주 개방적으로 변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왜 그랬을까?안이슬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를 차지했다는 생각에 이제는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하지만 안이슬은 양명섭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그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는데 문득 머릿속에 심재경이 떠올랐다.‘심재경이 무슨 말을 해서 자극했나? 맞아, 그게 맞을 거야! 아니면 명섭 씨가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런데 명섭 씨는 내 과거를 이미 모두 알고 있는데?’아무리 생각해도 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그녀는 머릿속이 답답했던 나머지 직설적으로 물었다.“명섭 씨,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그런 식으로 상처 주지 말고.”“미안해.”양명섭은 또 그저 사과만 할 뿐이다.“그딴 사과를 듣고 싶지 않아.”양명섭은 여자와 다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아주 조용했다.“정말이지, 나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나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해. 이렇게 명섭 씨와 싸우고 싶지 않아.”양명섭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불만 없어. 이슬 씨가 잘못한 것도 없고,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속이 좁아서 그래. 그날 술을 많이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안이슬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했어?”“내가...”양명섭은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신이
말을 할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고, 심지어는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섞여 있었다.“이슬 씨, 미안해. 정말로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그의 말투는 단호했다. 안이슬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 있다가 완전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이럴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생각했어야 했다. 그녀는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과거의 일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결혼 전 일이었고 양명섭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신경이 쓰인다고 해도 그건 양명섭 본인이 스스로 해결할 문제이다. 안이슬은 양명섭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존중할 거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덮고 누웠다.“명섭 씨도 얼른 자.”말하고 눈을 감았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은 너무 평온했는데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기가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양명섭이 물었다.“화났어?”“아니, 화 안 났어.”안이슬은 진심 화가 안 났고 또 화를 낼 자격이 없었다. 자기 일 때문에 상대방이 불편하다는 것은 자기 잘못이 맞는다고 생각했다.‘그게 아니면 무슨 말을 할까?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하지만 그것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어떡하자는 건가?양명섭도 이 점은 잘 알고 있었기에 자책했다.“이슬 씨,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양명섭이 말하며 안이슬 옆으로 다가갔는데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번 일 때문에 양명섭과 이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자!”양명섭은 안이슬의 마음에 응어리가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슬 씨,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할 때가 있나 봐.”안이슬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나 화 안 났어.”양명섭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당신을 몰라? 마음속으로 다음에 또 그러면 이혼할 거라고 생각했지?”“...”안이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양명섭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분유를 타 줄게...”“괜찮아, 내가 할게.”안이슬이 침대에서 내려 다가왔지만, 양명섭은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순간 서로 바라보며 굳어버렸다....심재경이 돌아왔는데 기분이 안 좋은 표정을 보고 송연아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집안 역시 진원우 일로 워낙 분위기기 다운되어 있었는데 다만 구애린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요리하는 걸 배우기도 하고 식재료 사러 가기도 했다.심재경은 소파에 반쯤 누워있다가 구애린이 갓 끓인 국을 담아 진원우에게 가져다주려는 걸 보고 불렀다.“애린 씨 눈에는 진원우 외에 다른 사람은 안 보여요?”구애린이 그를 보며 말했다.“갑자기 왜 시비에요?”심재경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 그냥 애린 씨가 만든 국이 어떤 맛인지 먹어보고 싶어서요.”“주방에 있으니 스스로 따라서 마셔요.”“저는 딱 지금 애린 씨 손에 있는 걸 마시고 싶은데요.”구애린이 아예 심재경의 말을 무시하고 진원우가 있는 방으로 걸어가는 걸 보고 심재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갔다.“뭐 하는 거예요?”“진원우가 애린 씨 덕분에 얼마나 살쪘나 보려고요.”심재경은 한 손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을 들고 물었다.“도와줄까요?”“...”‘약을 잘못 먹었나?’“말을 안 하면 동의하는 걸로 알게요.”그러고는 방문을 열자, 진원우가 웃옷을 다 벗고 있었는데 그의 등에는 아직도 수많은 채찍 자국이 남아있었다. 약을 바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손에 닿지 않아 낑낑거리고 있는 걸 보고 의사인 심재경이 자기에게 너무나도 쉽고 능숙한 일이었기에 다가가서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약을 가져다 진원우 어깨의 상처에 바르고 있는데 갑자기 진원우가 그의 손을 잡았다.“애린 씨...”“...”“...”진원우가 고개를 돌려보더니 자기 뒤에 있는 사람이 심재경이고 잡은 손 역시 심재경의 손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마치 똥을 털어내듯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뿌리쳤다.“넌 왜 왔어?”진원우가 미간을 찌푸리자, 심재경은
“농담하는 거예요. 성격이 그러니 신경 쓰지 마요.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진원우가 말했다.“나도 심재경 씨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아. 나쁜 사람이었으면 원우 씨가 같이 놀아주지 않았겠지.”구애린은 말하며 진원우 옷의 단추를 채워주었는데 진원우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걸 보고 구애린이 웃었다.“원우 씨도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진원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안 돌아가도 돼요?”“휴가 아직 안 끝났어.”그녀는 국을 진원우에게 건넸는데 그는 구애린이 만든 거면 맛이 있든 없든 다 먹어 치웠고 칭찬도 했다.“솜씨가 제법인데요. 앞으로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못 먹을 것 같은데요.”구애린이 심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원우 씨가 다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니 나 사직하고 싶은데...”진원우는 국그릇을 내려놓고 구애린을 바라보았다. 그도 구애린이 항상 자기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녀가 그냥 단순히 자기를 돌봐주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이제 정서적으로 조절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구애린이 진원우의 눈을 바라보더니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솔직히 말했다.“원우 씨만 괜찮으면 난 예전처럼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바보. 당연하죠.”진원우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죽을 놈들은 다 죽었으니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또한 민호준이 강세욱의 다리를 잘랐다는 좋은 소식도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했다.같은 시각, 강세헌은 눈 치료하러 간다고 나가서는 몰래 민호준을 잡으려고 행방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송연아를 따라오지 못하게 한 이유였다. 민호준은 숨어서 강세헌에게 복수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기에 송연아가 자기 옆에 있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강세헌은 그녀가 걱정할까 봐 얘기해주지 않았다.구애린은 진원우의 품에 안겨서 말했다.“나랑 같이 미국에 갈까?”“...”“여기 일을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내 말은 어차피 여기에서도 치료하는 거니까 나
심재경이 웃었다.“어떻게 알았어요?”“지금 행동이 이상하잖아요. 지금 상태를 봤을 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면 정신환자겠죠.”구애린이 대답했다.“나이도 어리면서 왜 오빠한테 그렇게 버릇없게 말해요?”구애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각했다.‘대체 누구 오빠라는 거지?’심재경은 아주 진지하게 그녀에게 분석했다.“세헌이와 원우는 저한테 둘도 없는 좋은 친구 사이잖아요?”이 부분은 구애린도 잘 알고 있는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우리 세 사람 중에 세헌이가 제일 큰데, 애린 씨가 오빠라고 부르죠. 그리고 나는 원우보다 크니까, 세헌이 쪽으로든, 원우 쪽으로든 다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거 맞잖아요.”“...”심재경의 말에 도리가 있지만, 오빠라는 호칭은 너무 오글거렸다.“다른 걸로 부르면 안 돼요?”심재경이 물었다.“뭐라고 부르고 싶은데요?”구애린은 오빠라는 호칭은 못 부르겠고, 아저씨라고 부르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이름을 부르는 게 제일 좋겠네요.”구애린이 말에 심재경은 손을 저었다.“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이름을 부르는 건 아니죠.”“그렇다고 오빠라고 부를 수 없잖아요.”구애린은 왠지 자기가 피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심재경과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럼, 세헌이를 부르는 것처럼 불러요.”“제 마음속에서 심재경 씨는 그 정도의 위치가 안 되거든요.”구애린은 체면을 하나도 봐주지 않았다.“나이도 아직 어리면서 어떻게 그렇게 사람 마음을 찌르는 말만 골라서 해요.”얼마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잃었는데 구애린 마저 인정사정없이 구니까 순간 삶이 너무 씁쓸했다.심재경의 눈에서 뿜어나오는 슬픔이 연기가 아닌 것 같아 구애린은 다시 앉으며 말했다.“무슨 일인지 말해봐요. 제가 분석해 줄게요.”“됐어요. 애린 씨는 이해 못 해요.”심재경이 일어나서 가려고 했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되는 구애린에게 친딸이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구애린이 자기를 비웃을
심재경이 뒤를 돌아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진원우가 서 있는 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다쳤으면서 방에 가만히 있지 않고 왜 나왔어?”“내가 방에만 있으면 네가 하는 그 뻔뻔한 말을 들을 수 있었겠어?”진원우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애린 씨 이리 와요.”구애린은 바로 그에게 달려가서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화났어?”“애린 씨에게 화 난 거 아니에요.”심재경은 등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그럼, 나한테 화 난 거야?”“아니면 누구겠어?”구애린은 진원우가 소파에 앉는 걸 도와주었다.“다리가 불구가 됐으면 방에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나와서 돌아다녀?”“왜 말을 안 해?”심재경이 진원우에게 인신공격하자 구애린은 참을 수 없었다. 진원우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화내지 마요. 저 자식이 어쩌다가 여자 친구를 잃었는지 알아요? 바로 저 지독한 입 때문이에요.”“너 이거 인신공격보다 더 비겁한 거야.”진원우가 웃었다.“피차일반이야!”심재경이 삐쭉거렸다.“누가 너랑 같아?”심재경은 여기에 있어봤자,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일어나서 가려고 할 때 진원우가 불렀다.“가지 마.”“왜?”심재경는 경계의 눈빛으로 진원우를 바라보았다.“형수님이라고 불러봐. 우리 둘 중 누가 더 큰지 몰라?”진원우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방금 전에는 그가 구애린을 놀리려고 거짓말을 했기에 입술을 다시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그래, 네가 크다 커.”진원우는 매를 부르는 심재경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그쳤다.“그거 알면 어서 불러봐.”심재경은 진원우보다 어린 건 확실하지만, 한창 어린 구애린한테 형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심재경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방에 들어가서 불러 드릴까?”“꺼져! 앞으로 내가 없을 때 애린 씨를 괴롭히지 마. 그랬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심재경이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너무하네. 농담한 걸 가지고 왜 진지하게 받아?”구애린은
송연아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렇게 부르면 오히려 습관이 안 될 것 같아요.”어쨌든 그녀는 심재경을 예전부터 계속 선배라고 불렀었다.심재경은 이제 자기에게 유리한 것 같아서 말했다.“봤지? 나 송연아보다 위라고.”송연아가 물었다.“나보다 위에요?”“나 원래는 강세헌보다 작았지만, 이제 네가 강세헌에게 시집갔잖아? 그리고 난 너의 선배니까 강세헌도 너를 따라 나를 선배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어?”“...”“...”진원우도 구애린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애린 씨, 우리 방에 들어가요.”진원우가 일어났다.‘안 돼! 이런 식으로 계속 분석한다면 나에게도 자기를 선배라고 불러라고 하는 거 아니야?’“가지 마, 내 말 좀 들어봐.”심재경이 스스로 지금 상황에 만족해하며 득의양양했다.“후배 덕분에 내 위치가 올라가네.”진원우는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선배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순위 계산은 세헌 씨와 해요.”진원우가 심재경을 보며 말했다.“어디 계속 해 봐.”“...”심재경은 강세헌더러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아예 그냥 자기를 내쫓을 것 같았다.“인제 그만.”심재경은 이 일이 강세헌한테 가면 자기가 불리할 거라는 것을 알고는 화제를 돌리려 했다.구애린이 송연아 곁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언니, 제가 할 말이 있어요.”“얘기해요.”“저 원우 씨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고 싶은데 괜찮겠어요?”구애린이 물었다.“그건 두 분이 의논해서 결정해요.”그녀는 두 사람의 감정 문제이기에 둘이 의논하고 결정하면 되는 거지 자기는 간섭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고모, 갈 거예요? 여기에 계속 있어요.”찬이가 구애린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프랑스 집은 한국 집보다 작다보니 놀 수 있는 공간도 없어서 계속 송연아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송연아는 당분간은 여기에서 지내야 하기에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구애린도 간다고 하니 자기와 놀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다.송연아
진원우가 구애린에게 먼저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자, 구애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갔다. 구애린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진원우가 심재경을 보며 말했다.“여기 와서 앉아.”심재경은 믿음이 가지 않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진원우를 쳐다봤다.“왜 그러는데?”“기분이 안 좋은 같은데 나랑 얘기하지 않을래?”심재경은 자리에 앉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웃었다.“나에게 안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진원우는 심재경이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게 부담스러워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며 더 묻지 않았다.“네가 다 나으면 술이나 한잔하자.”심재경의 말에 진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방 안에서 찬이는 펜을 들고 공책에 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었다. 송연아는 오늘 반드시 이름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예쁘게 써야 한다고 했다.찬이가 이름을 쓰고 있을 때 그녀는 침대 옆으로 가서 임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찬이의 글쓰기를 살폈다. 그 뒤로 약 1시간 뒤에 휴대폰이 울렸는데 임지훈인 걸 확인하고 바로 받았다.“왜 전화를 안 받았어요?”임지훈은 안쪽에 있는 강세헌을 한번 바라보고는 거짓말을 했다.“방금 대표님과 같이 의사 선생님과 상담 중이어서 못 받았어요.”사실 두 사람은 지금 병원에 있지 않았다. 진원우를 구하기 위해 강세헌은 상대방에게 거액의 몸값을 줬고 또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도 내줬는데 방금 그 얘기를 하느라 휴대폰을 음 소거로 했었는데 일을 해결하고서야 이제 의사를 만나러 가려고 했다. 동시에 그는 민호준의 행방도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놈이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요? 지금 끝났어요? 의사가 뭐래요?”송연아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말해야지?’“휴대폰 나 줘.”강세헌이 말하자 임지훈은 휴대폰을 그에게 가져갔다.“대표님, 사모님입니다.”강세헌도 송연아인 걸 알고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의사 선생님이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