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섭은 심지어 안이슬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명섭 씨, 왜 이래... 음...”안이슬이 처음으로 너무 아파서 그를 뿌리치려고 그의 팔을 세게 밀어봤지만......양명섭은 안이슬을 거의 기절시키다시피 해서 아예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아래 그 부위도 매우 아팠는데 그녀는 자기가 언제 의식을 잃고 잠이 들었는지, 어떻게 방으로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양명섭은 그녀를 벽에서, 문에서, 바닥에서...안이슬은 양명섭을 밀어내고 싶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밀면 밀수록 그가 더 강하게 힘을 주었기에 어떻게 반항할 수도 없었다. 도중에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어도 양명섭은 그녀를 놔주지 않았는데 다행히 아이는 오래 울지 않고 울음을 그쳤다.정신이 희미할 때 뭔가 몸에서 따뜻한 기운을 느껴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봤더니 양명섭이 그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안이슬은 차가운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는데 순간 온몸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양명섭은 손에 따뜻한 수건을 들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안해...”안이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들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몸을 검사해 보니 그곳이 부어있었다.‘부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안이슬은 양명섭이 자기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보니 양명섭은 자세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그녀가 보아보러 가자, 그가 말했다.“방금 먹였고 지금은 잠 들었어.”안이슬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심재경이 뭐라고 했어?”“아니, 아무 말도 안 했어.”그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그럼 왜...”“미안해.”양명섭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또 한 번 사과했다. 심재경이 그의 목에 있는 흔적을 보고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했듯이 양명섭도 보아를 보고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에 알코올의 자극하에 폭발했다. 양명섭은 안이슬을 해칠 생각이 없었지만 일은
진원우가 대답했다.“안 아파...”“어떻게 안 아파.”구애린은 너무나 마음이 상했다. 송연아도 의사 이긴 하지만 이미 병원에 다녀왔기 때문에 도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상처가 나으려면 시간이 흘러야 했다.“얼른 들어가요.”송연아는 진원우가 거실에 있으면 모두와 얘기해야 하기에 구애린에게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라고 하자, 구애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원우를 조심스레 부축했다. 진원우는 구애린이 자기를 마음 아파하는 걸 알고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구애린이 자기를 아이처럼 대하는 게 조금 불편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구애린은 그가 불편해하는 표정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진원우의 상처에 대한 아픔에 빠져 있었다.방에 들어온 구애린은 진원우를 침대에 누워서 자라고 했다.“...”진원우가 구애린을 앉으라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누워서 좀 자. 나는 주방에 가서 먹을 것을 만들어 올게. 사골을 사다가 사골국도 끓이고...”“애린 씨.”진원우가 구애린의 말을 끊고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바라보며 물었다.“사골은 왜 사? 나는 물고기를 좋아하는데...”“다리와 팔의 뼈를 다쳤잖아. 옛말에 뼈를 다치면 사골국을 먹으라고 했잖아.”구애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자, 진원우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있다가 두 그릇 마실게요.”구애린은 진원우가 누울 생각을 하지 않자 물었다.“누워서 휴식하지 않을 거야?”“지금 잠이 오지 않아요.”“잠이 오지 않아도 누워있어.”그녀는 아예 명령했다.“...”진원우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눕자, 그녀는 이불을 덮어주었는데 그때 그의 얼굴에 있는 깊은 상처가 가까이에서 보였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물었다.“많이 아팠지. 어떻게 버텼어?”진원우는 구애린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이제 다 지나갔으니 걱정하지 마.”구애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이라도 구해서 정말 다행이야.”구애린은 강
송연아는 강세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노크 소리를 듣고 바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애린 씨...”“언니, 사골 사러 가고 싶은데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알아요?”송연아도 몰랐기에 바로 이영에게 집에 돌아가서 집사한테 사 오게 하라고 시켰다. 집사는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순간 집사의 존재가 생활에 아주 큰 편리를 주는 것 같았다.구애린은 직접 사다가 만들고 싶어서 말했다.“저도 가고 싶어요.”“그럼, 이영 씨와 함께 가요.”송연아의 말에 구애린은 좋아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애린은 돌아서서 나가려다가 뭐가 생각났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송연아를 보며 말했다.“언니, 오빠 눈은요?”“지금 그 일로 의논하고 있어요.”구애린이 비록 진원우에게 정신이 팔린 상태였지만, 그래도 강세헌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원우 씨도 돌아왔으니, 이제 오빠 눈 더 지체하지 말고 빨리 치료해요.”송연아도 그 부분은 알고 있기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구애린이 이영 찾으러 가자, 송연아는 문을 닫고 강세헌을 보며 물었다.“다 들었죠?”강세헌은 초점이 없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무슨 말을 해도 당신은 집에 있어야 해.”“제가 연락한 의사잖아요.”송연아가 미국에 있는 유명한 안과의사를 찾고 예약했는데 두 사람은 한창 언제 미국으로 갈 건지 의논 중이었는데 물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송연아는 강세헌과 같이 미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강세헌은 그녀가 집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같이 가면 왜요? 나도 의사예요. 비록 안과 의사는 아니지만 분명 임지훈 씨가 돌봐 주는 것보다는 제가 나을 거잖아요?”강세헌이 물었다.“당신 총상은 다 나았어?”“네, 다 나았어요.”사실은 총상이어서 아직 다 회복하지 못했다.“왜 그렇게 내 말을 안 들어?”강세헌이 입술을 깨물며 말하자 송연아는 화를 내면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알았어요. 안 가, 안 가면 되잖아요. 얼른 가요.”강세헌은
안이슬이 바로 양명섭 앞에서 이 정도로 화를 낸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 것이다. 양명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안이슬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며 말했다.“명섭 씨, 무슨 뜻이야? 왜 나한테 그랬어? 난 당신 와이프야, 도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그 당시 안이슬은 양명섭에게서 조금의 부드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도 거칠고 사나웠다. 전에는 두 사람이 아무리 격렬해도 그는 항상 그녀의 감정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대하고 한 번도 불편하게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양명섭의 그러한 배려 덕분에 그녀도 아주 개방적으로 변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왜 그랬을까?안이슬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를 차지했다는 생각에 이제는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하지만 안이슬은 양명섭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그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는데 문득 머릿속에 심재경이 떠올랐다.‘심재경이 무슨 말을 해서 자극했나? 맞아, 그게 맞을 거야! 아니면 명섭 씨가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런데 명섭 씨는 내 과거를 이미 모두 알고 있는데?’아무리 생각해도 더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그녀는 머릿속이 답답했던 나머지 직설적으로 물었다.“명섭 씨,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그런 식으로 상처 주지 말고.”“미안해.”양명섭은 또 그저 사과만 할 뿐이다.“그딴 사과를 듣고 싶지 않아.”양명섭은 여자와 다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아주 조용했다.“정말이지, 나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나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해. 이렇게 명섭 씨와 싸우고 싶지 않아.”양명섭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불만 없어. 이슬 씨가 잘못한 것도 없고,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속이 좁아서 그래. 그날 술을 많이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안이슬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했어?”“내가...”양명섭은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신이
말을 할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고, 심지어는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섞여 있었다.“이슬 씨, 미안해. 정말로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그의 말투는 단호했다. 안이슬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 있다가 완전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이럴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생각했어야 했다. 그녀는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과거의 일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결혼 전 일이었고 양명섭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신경이 쓰인다고 해도 그건 양명섭 본인이 스스로 해결할 문제이다. 안이슬은 양명섭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존중할 거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덮고 누웠다.“명섭 씨도 얼른 자.”말하고 눈을 감았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은 너무 평온했는데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기가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양명섭이 물었다.“화났어?”“아니, 화 안 났어.”안이슬은 진심 화가 안 났고 또 화를 낼 자격이 없었다. 자기 일 때문에 상대방이 불편하다는 것은 자기 잘못이 맞는다고 생각했다.‘그게 아니면 무슨 말을 할까?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하지만 그것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어떡하자는 건가?양명섭도 이 점은 잘 알고 있었기에 자책했다.“이슬 씨,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양명섭이 말하며 안이슬 옆으로 다가갔는데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번 일 때문에 양명섭과 이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자!”양명섭은 안이슬의 마음에 응어리가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슬 씨,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할 때가 있나 봐.”안이슬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나 화 안 났어.”양명섭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당신을 몰라? 마음속으로 다음에 또 그러면 이혼할 거라고 생각했지?”“...”안이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양명섭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분유를 타 줄게...”“괜찮아, 내가 할게.”안이슬이 침대에서 내려 다가왔지만, 양명섭은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순간 서로 바라보며 굳어버렸다....심재경이 돌아왔는데 기분이 안 좋은 표정을 보고 송연아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집안 역시 진원우 일로 워낙 분위기기 다운되어 있었는데 다만 구애린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요리하는 걸 배우기도 하고 식재료 사러 가기도 했다.심재경은 소파에 반쯤 누워있다가 구애린이 갓 끓인 국을 담아 진원우에게 가져다주려는 걸 보고 불렀다.“애린 씨 눈에는 진원우 외에 다른 사람은 안 보여요?”구애린이 그를 보며 말했다.“갑자기 왜 시비에요?”심재경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 그냥 애린 씨가 만든 국이 어떤 맛인지 먹어보고 싶어서요.”“주방에 있으니 스스로 따라서 마셔요.”“저는 딱 지금 애린 씨 손에 있는 걸 마시고 싶은데요.”구애린이 아예 심재경의 말을 무시하고 진원우가 있는 방으로 걸어가는 걸 보고 심재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갔다.“뭐 하는 거예요?”“진원우가 애린 씨 덕분에 얼마나 살쪘나 보려고요.”심재경은 한 손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을 들고 물었다.“도와줄까요?”“...”‘약을 잘못 먹었나?’“말을 안 하면 동의하는 걸로 알게요.”그러고는 방문을 열자, 진원우가 웃옷을 다 벗고 있었는데 그의 등에는 아직도 수많은 채찍 자국이 남아있었다. 약을 바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손에 닿지 않아 낑낑거리고 있는 걸 보고 의사인 심재경이 자기에게 너무나도 쉽고 능숙한 일이었기에 다가가서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약을 가져다 진원우 어깨의 상처에 바르고 있는데 갑자기 진원우가 그의 손을 잡았다.“애린 씨...”“...”“...”진원우가 고개를 돌려보더니 자기 뒤에 있는 사람이 심재경이고 잡은 손 역시 심재경의 손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마치 똥을 털어내듯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뿌리쳤다.“넌 왜 왔어?”진원우가 미간을 찌푸리자, 심재경은
“농담하는 거예요. 성격이 그러니 신경 쓰지 마요.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진원우가 말했다.“나도 심재경 씨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아. 나쁜 사람이었으면 원우 씨가 같이 놀아주지 않았겠지.”구애린은 말하며 진원우 옷의 단추를 채워주었는데 진원우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걸 보고 구애린이 웃었다.“원우 씨도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진원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안 돌아가도 돼요?”“휴가 아직 안 끝났어.”그녀는 국을 진원우에게 건넸는데 그는 구애린이 만든 거면 맛이 있든 없든 다 먹어 치웠고 칭찬도 했다.“솜씨가 제법인데요. 앞으로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못 먹을 것 같은데요.”구애린이 심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원우 씨가 다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니 나 사직하고 싶은데...”진원우는 국그릇을 내려놓고 구애린을 바라보았다. 그도 구애린이 항상 자기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녀가 그냥 단순히 자기를 돌봐주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이제 정서적으로 조절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구애린이 진원우의 눈을 바라보더니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솔직히 말했다.“원우 씨만 괜찮으면 난 예전처럼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바보. 당연하죠.”진원우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죽을 놈들은 다 죽었으니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또한 민호준이 강세욱의 다리를 잘랐다는 좋은 소식도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했다.같은 시각, 강세헌은 눈 치료하러 간다고 나가서는 몰래 민호준을 잡으려고 행방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송연아를 따라오지 못하게 한 이유였다. 민호준은 숨어서 강세헌에게 복수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기에 송연아가 자기 옆에 있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강세헌은 그녀가 걱정할까 봐 얘기해주지 않았다.구애린은 진원우의 품에 안겨서 말했다.“나랑 같이 미국에 갈까?”“...”“여기 일을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내 말은 어차피 여기에서도 치료하는 거니까 나
심재경이 웃었다.“어떻게 알았어요?”“지금 행동이 이상하잖아요. 지금 상태를 봤을 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면 정신환자겠죠.”구애린이 대답했다.“나이도 어리면서 왜 오빠한테 그렇게 버릇없게 말해요?”구애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각했다.‘대체 누구 오빠라는 거지?’심재경은 아주 진지하게 그녀에게 분석했다.“세헌이와 원우는 저한테 둘도 없는 좋은 친구 사이잖아요?”이 부분은 구애린도 잘 알고 있는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우리 세 사람 중에 세헌이가 제일 큰데, 애린 씨가 오빠라고 부르죠. 그리고 나는 원우보다 크니까, 세헌이 쪽으로든, 원우 쪽으로든 다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거 맞잖아요.”“...”심재경의 말에 도리가 있지만, 오빠라는 호칭은 너무 오글거렸다.“다른 걸로 부르면 안 돼요?”심재경이 물었다.“뭐라고 부르고 싶은데요?”구애린은 오빠라는 호칭은 못 부르겠고, 아저씨라고 부르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이름을 부르는 게 제일 좋겠네요.”구애린이 말에 심재경은 손을 저었다.“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이름을 부르는 건 아니죠.”“그렇다고 오빠라고 부를 수 없잖아요.”구애린은 왠지 자기가 피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심재경과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럼, 세헌이를 부르는 것처럼 불러요.”“제 마음속에서 심재경 씨는 그 정도의 위치가 안 되거든요.”구애린은 체면을 하나도 봐주지 않았다.“나이도 아직 어리면서 어떻게 그렇게 사람 마음을 찌르는 말만 골라서 해요.”얼마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잃었는데 구애린 마저 인정사정없이 구니까 순간 삶이 너무 씁쓸했다.심재경의 눈에서 뿜어나오는 슬픔이 연기가 아닌 것 같아 구애린은 다시 앉으며 말했다.“무슨 일인지 말해봐요. 제가 분석해 줄게요.”“됐어요. 애린 씨는 이해 못 해요.”심재경이 일어나서 가려고 했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되는 구애린에게 친딸이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구애린이 자기를 비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