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이해가 안 갔다.“어떻게 끈을 푼 거예요?”이영은 자신이 묶은 매듭은 혼자서 절대 풀 수 없다는 것을 아주 확신할 수 있다. 무조건 누군가가 풀어준 것이다. 심재경은 킥킥 냉소를 지었다.“너네 배신당했어.”찬이는 똘똘한 큰 눈을 깜빡였다.“누가 우리를 배신해요?”“당연히 네 엄마지!”심재경은 쫓아가기도 귀찮았다.“너 혼자 얌전히 오면 약하게 때릴 거고 만약 네가 완강하게 저항한다면 엉덩이가 피나도록 때릴 거야.”찬이의 입은 동그랗게 말렸다.“삼촌,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독할 수 있어요?”“너를 상대하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지. 그리고 잊지마, 네가 오늘 나를 어떻게 괴롭혔는지.”심재경은 계단에 앉아 찬이를 향해 손짓했다.“이리 와, 이리 와.”찬이는 이영을 쳐다봤다.“우리 둘이 재경 삼촌 한 명을 때리면 승산이 있을까요?”“...”이영이 말했다.“나 혼자서 충분해.”“...”찬이는 또 의욕이 넘쳐서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삼촌 이리 와요.”“...”“너, 너 어린놈이 얌전히 있지 못할망정 싸움이나 하고 네가 엉덩이를 호되게 맞고 싶구나.”찬이는 이영의 곁으로 기댔다. 전에는 이영이 자기를 너무 엄하게 감시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의 곁에 서 있으니 아주 안전감이 있었다.이영이 아무렇게나 서 있어도 마치 산이 하나 서 있는 것 같았다.“나 못 때리죠.”찬이는 심재경을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심재경은 자신이 이제는 어린아이한테까지 괄시를 받아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는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으며 이렇게 비참해졌을까. ‘됐다, 됐어.’“너랑 더 따지지 않을 거야.”심재경은 일어나서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찬이는 곁에 있는 이영을 꾹꾹 찔렀다.“삼촌이 무서운가 봐요.”심재경은 이 말을 듣고 미끄러져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는 입꼬리를 삐죽거리더니 돌아서서 찬이를 보고 말했다.“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는 십 년도 늦지 않아.”찬이는 이영의 뒤에 쏙
심재경이 아는 얼굴이었다. 임지훈이 시켜서 밖에 배치해뒀던 사람이다. 심재경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당황해하는 거예요?”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당황한 게 아니라 다급한 것이다.“밖에 누가 심재경 씨를 찾아왔어요.”심재경이 물었다.“누구예요?”그 사람이 대답했다.“모르겠어요.”“...”괜히 물어본 것 같았다.“가서 봅시다.”심재경은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갔다. 그 사람도 뒤따랐다.문 어구에서 심재경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람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아이였다. 보기에 키는 170 정도 되어 보이고 말랐으며 몸에는 온통 더러운 것투성이였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사람처럼 머리카락마저도 엉겨 붙었다. 그 애의 얼굴이 너무 더러워서 심재경은 생김새도 볼 수가 없었다. 심재경은 의아해서 물었다.“나를 찾았어?”남자애는 고개를 끄덕였다.“누가 너더러 나를 찾으라고 했어?”심재경이 물었다.“진원우라는 한국 사람이요.”남자애는 심재경을 보며 말했다.“그 사람이 이곳을 알려주었어요.”심재경은 얼른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진원우는 확실히 여기에 있는 그의 집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재경은 쉽게 그를 믿지 않았다. 요즘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복잡했기 때문이다.“정말?”“정말요.”남자애는 손을 내밀었다. 더러운 손바닥에는 일련의 번호가 적혀있었는데 심재경의 번호였다.“그 사람이 나더러 여기 와서 당신을 찾지 못하면 이 번호로 당신한테 전화를 걸라고 했어요.”남자애는 계속해서 말했다. 심재경은 이미 마음속으로 그 애를 믿고 있었지만, 그 애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곁에 있던 사람의 귓가에 속삭였다.“집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얘기해. 내가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온다고.”송연아와 두 아이가 모두 여기에 살고 있다.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기에 심재경은 함부로 안으로 들이지 못했다. 그는 남자애를 데리고 호텔로 갔다.“먼저 씻고 있어. 내가 가서 옷을 마련할게.”남자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재경은 호
심재경은 욕이 나올 뻔했다.“설마 도망간 건 아니겠지?”심재경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는 순간, 그 남자애를 보게 되었다. 그는 심재경이 준비해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깨끗하고 윤기가 나는 짙은 노란색의 머리카락은 좀 길어서 귀를 덮었다. 얼굴은 새하얗고 주근깨가 좀 있었으며 내려온 머리카락이 미간을 가렸다.눈동자는 깊은 푸른색이었다.그는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심재경을 보며 말했다.“배고파요.”그는 씻고 나와서 사람이 보이지 않자 홀로 호텔에서 먹을 것을 찾았다. 이 호텔에서는 음식을 제공하였기에 그는 조금 포장해서 왔다. 심재경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드실래요?”남자애가 묻는 말에 심재경은 고개를 젓고 소파에 앉았다. 남자애도 자연스레 음식을 테이블에 놓고 먹기 시작했다. 심재경이 물었다.“이름이 뭐야?”“Barzel.”남자애는 입안에 음식을 넣으면서 대답했다. 심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바자엘? 이렇게 부르면 되지?”남자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Barzel을 한국말로 하면 바자엘이었다.“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바자엘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었다. 오히려 심재경은 아주 많이 의외였다. 어린 나이인데 말을 해보면 아주 말이 잘 통했다. 심재경이 말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내가 당신의 거주지로 가서 당신을 찾았는데 나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호텔로 데리고 왔다는 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에요? 하지만 괜찮아요, 저도 당신을 안 믿어요.”심재경은 그를 쳐다보았다.“나를 믿지 않는데 왜 찾아 왔어?”심재경이 물었다. 남자애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없이 계속 음식을 먹었다. 심재경이 또 물었다.“왜 말이 없어?”남자애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저희 아빠, 엄마가 다 안 계셔서 갈 데가 없어요.”심재경은 코를 쓱 만졌다. 자신이 괜한 물음을 물어본 것 같다. 남자애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상관없어요.”“...”심재경이 말했다.“앞으로 여기 있어.”남자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재경이 일어서자
송연아는 앉으면서 말했다.“선배, 우리 진지하게 얘기해봐요.”심재경은 송연아의 맞은쪽에 앉아서 시선은 빤히 송연아를 쳐다보고 있었다.“나 지금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어.”“선배가 이슬 언니를 보러 가려는 건 단지 아이를 보고 싶은 것뿐이라고 했는데, 그건 나를 속이는 거예요, 아니면 진심이에요?”송연아의 시선은 심재경을 곧게 쳐다보고 있었다.심재경은 흠칫했다. 그때 심재경의 마음속에는 고민이 있었다. 심재경 본인의 자식인데 본인은 자식을 찾아가 볼 수 없는 게 아쉬웠고 고통스러웠다. 심재경은 자신을 막는 송연아도 불만이었지만 송연아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 안이슬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그한테도 알 권리와 양육권이 있지 않은가?“아주 조금 너를 속이는 게 있었어.”물론 심재경은 이 점에 불만이 많고 아쉬움이 많지만, 의도적으로 안이슬 현재의 생활을 파괴할 생각은 없었다.“나는 지금 양 경관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 예전의 나보다 잘하고 있어.”심재경은 지금 자신과 안이슬이 이러한 상황을 맞은 게 모두 자신이 자초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만약 심재경이 충분히 능력이 있어서 안이슬을 잘 보호해주어 안이슬이 상처를 받지 않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지 않았다면 안이슬이 자신에게 마음이 식어서 다른 남자를 받아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나간 것들에 대해, 사실 그는 이미 다 깨닫고 있었다.만약 이 아이의 존재가 없다면 그는 안이슬의 평온한 생활을 절대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더 생기지 않았는가?“후...”심재경은 한숨을 쉬고 송연아를 보며 말했다.“도대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그런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절제해야만 한다는 것. 선배는 이슬 언니한테 어느 쪽이에요?”“...”심재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짧은 시간 내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는 송연아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왜 사랑한다면 절제를 해야 하
심재경은 또 답장을 거부했다.“...”지금 송연아는 더 침착할 수가 없었다. 심재경이 강세헌을 알고 지낸 시간은 송연아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강세헌의 과거에 대해서 송연아는 정말 많이 알지 못했다. 심재경은 얘기하다가 말고,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인가 말이다. 송연아는 더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재경 선배, 당장 나랑 무슨 얘기인지 말해요. 선배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심재경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메시지 소리가 나도 그는 그저 눈썹을 꿈틀할 뿐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심재경은 송연아가 조급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송연아는 지금 조급하다.송연아도 이렇게 조급해하는구나. 역시 사람 일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기분을 알지 못한다. 심재경은 직접 겪어본 것처럼 공감한다는 표현을 믿지 않았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가 없다.핸드폰은 계속 울렸다. 심재경은 핸드폰을 들어 힐끔 봤다.“재경 선배!”“심재경!”온통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심재경은 피식 웃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송연아는 심재경이 갑자기 문을 열 줄은 몰라서 미처 반응하지 못해서 먼저 흠칫하더니 죽일 듯이 노려봤다. 심재경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들어와서 좀 앉을래?”송연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선배 방금 하려던 얘기가 뭐예요?”“아무것도 아니야.”심재경은 덤덤하게 말했다.“...”심재경은 송연아에게 물을 한잔 떠다 주었다.“화 좀 식히고, 너 아직 환자야.”송연아는 물을 받아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마음대로 창가의 소파에 앉았다.“말해요.”심재경은 문 옆에 기대 서 있었다.“너는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절제해야 한다는 관점에 동의한다고 했지?”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럼 물을게. 강세헌에게 너는 어느 쪽인 것 같아?”심재경은 송연아를 보고 있었다. 송연아는 갑자기 시선을 옮겨 심재경과 눈이 마주쳤다. 송연아의 표정은 점점 구겨졌다.“말하려던 게 이거예요?”
심재경의 눈길은 아주 날카로웠지만, 송연아는 여전히 침착했다. 송연아는 갑자기 웃더니 말했다.“참나, 나는 그저 선배를 설득해서 이슬 언니를 방해하지 않게 하려고 한 말이에요.”“그렇다면 이 말의 뜻은 도대체 뭐라는 말이야!”심재경이 물었다. 그러자 송연아가 다시 심재경한테 물었다.“선배 생각에는요?”심재경이 대답했다.“내 생각에는 의미가 없어.”송연아는 깊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내가 생각하기에는 구별이 없어요. 좋아한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요? 그럼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이 때문에 심재경이 강세헌은 송연아를 좋아한다고만 얘기했을 때 송연아가 이렇게 덤덤할 수 있었다. 송연아가 보기에는 좋아하는 감정이면 충분했다.송연아의 생각에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구별이 없었다.심재경은 입을 삐죽거렸다.“이런 말들로 나를 옭아매려고 들었어?”“...”“아니에요...”송연아는 해명하려고 했다. 심재경은 송연아를 문밖으로 밀었다.“알겠어, 알았다니까. 내가 안이슬을 찾아가지 말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안 가면 그만이지.”송연아가 말했다.“알면 됐어요.”심재경은 문을 닫자마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재경은 자신이 왜 이렇게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음대로 하려는 게 아니라 심재경의 인생은 심재경 자신의 것인데 어떠한 결정에 대해서는 그래도 혼자서 해야 한다. 무작정 남의 얘기만 들을 수 없다. 심재경의 눈빛이 울적한 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이튿날.송연아는 아침에 심재경을 보지 못해서 한마디 물었다.“재경 선배 아직 안 일어났어요?”오은화가 대답했다.“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재경 씨가 일어나 계신 걸 봤는데요?”“몇 시에 일어났어요?”송연아는 오은화가 항상 일찍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내에서든지 프랑스에서든지 오은화는 다 늦게 일어나지 않았다.“다섯 시 좀 넘었을 거예요.”오은화는 아주 정확하게는
안이슬은 핸드폰을 진동모드로 해놨다. 저번에 안이슬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는 바람에 금방 재운 보아가 깨서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안이슬은 핸드폰을 진동모드로 바꿔놨었다. 이러면 적어도 갑자기 핸드폰이 울려서 아이를 놀라게 하는 일은 면할 수 있다. 안이슬은 빨래를 하려고 핸드폰을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채로 있었다. 현재 안이슬은 안방에서 보아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었기에 아예 듣지 못했다. 핸드폰 진동은 계속 울렸다. 안이슬은 보아를 먹이고 다 마른 옷가지들을 정리하여 옷장 안에 넣었다. 어젯밤에 제대로 못 잤기에 집안일을 다 하고 안이슬은 침대에 누워 딸을 안고 잠시 눈을 붙였다.안이슬과 양명섭이 진정한 부부가 되고 난 후 매일 밤 양명섭은 안이슬을 가만 놔두지 않았기에 안이슬은 밤에 계속 수면 부족이었다. 하여 낮에 잠을 좀 보충해야 정신이 났다.양명섭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사 온 생선을 주방에 가져다 두었다. 안이슬의 모유가 점점 적어져서 지금 보아는 거의 분유를 먹고 있었다. 양명섭은 생선과 갈비를 사 와서 안이슬에게 국물을 우려주려고 했다. 생선은 이미 죽이고 나서 손질을 다 한 상태였다. 양명섭은 주방에서 한참을 바쁘게 돌아치고 나서야 이것들을 모두 냄비에 넣었다.양명섭은 또 책을 한 권 샀는데 거기에는 국거리를 만드는 방법이 많이 적혀 있었다. 양명섭은 안이슬이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휴가가 아직 끝나기 전에 시간이 있을 때 안이슬을 많이 보살펴 주려고 했다. 양명섭은 주방에서 나와 소파에 있는 핸드폰이 계속 진동하는 것을 보고 걸어갔다. 핸드폰을 들어서 송연아의 이름이 뜨는 것을 보고 안방으로 가서 안이슬을 부르려 했지만, 안이슬이 자는 것을 보고 깨우지 않았다.핸드폰은 또 한 번 울렸다. 전화가 계속 통하지 않았기에 송연아 쪽에서는 이미 급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양명섭은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연결 버튼을 눌렀다. 양명섭은 안이슬이 자고 있어서 전화를
“명섭 씨는 이슬 언니를 믿지만 제가 재경 선배를 못 믿어요...”송연아는 이번에 정말 심재경의 행동에 놀랐다. 양명섭이 말했다.“제가 심재경 씨랑 얘기해볼 겁니다.”송연아는 생각해보았는데 양명섭은 반듯한 사람이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양명섭은 안이슬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안이슬을 반드시 잘 보호하겠지 싶었다.송연아는 심재경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심재경과 양명섭이 동시에 위험에 빠졌는데 반드시 한 사람만 구해야 한다면 송연아는 무조건 심재경을 선택할 것이다. 아무래도 심재경과 더 오래 알았고 감정이 더 깊었기 때문이다.인간이란, 자신과 감정이 더 좋은 사람을 포기할 만큼 위대할 수가 없다. 양명섭에 대한 모든 호의는 당연히 그가 안이슬의 남편이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다. 이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송연아는 심재경이 아이를 달라고 안이슬을 난처하게 할까 봐 두려웠는데 분명 양명섭이 안이슬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송연아는 계속 심재경을 꾸짖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이 바로 아이는 심재경의 아이기에 그는 아이를 데리고 올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안이슬과 양명섭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아이는 안이슬과 양명섭의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심재경이 아이를 데리고 가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양명섭을 대할 것이며 어떻게 안이슬을 대할 것인가? 어찌 됐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네. 이슬 선배는 별일 없죠?”송연아는 한마디 안부를 물었다. 양명섭이 대답했다.“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전화를 끊고 양명섭이 뒤돌려고 하는데 안이슬이 뒤에서 소리를 냈다.“누구한테 전화하고 있어?”양명섭은 망설이지 않고 안이슬에게 핸드폰을 주었다.“송연아 씨가 당신한테 온 전화야.”“뭐라고 했어?”안이슬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건네받았고 양명섭은 덤덤하게 말했다.“심재경이 여기로 온대.”안이슬은 흠칫하더니 눈꺼풀이 살짝 처지고 조금 가라앉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