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강세헌의 깊은 호흡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강세헌은 몸을 돌려 송연아의 옆에 누워 이불을 덮어주었는데 송연아 역시 요동치는 마음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한지라 꼼짝하지 않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 송연아는 진정되었지만, 강세헌은 도저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일어났다.“나 찬물로 샤워하고 올게.”“찬물 샤워는 몸에 안 좋아요.”송연아는 말하며 일어나 옷을 입고 강세헌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마셔요.”강세헌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두 모금 마셨다.“잘 수 있겠어요?”송연아의 물음에 강세헌은 의아했다.“응?”“아직 늦지 않았는데 잠이 안 오면 찬이 데리고 영화 보러 갈까요?”지금 상황에서 송연아도 그렇고 강세헌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 가자.”두 사람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캐쥬얼한 옷을 입고 찬이 데리러 내려갔다. 찬이는 금방 잠옷으로 바꿔입고 자리에 누웠기에 의아해하며 물었다.“엄마, 우리 안 자요?”“엄마 아빠가 찬이 데리고 영화 보러 가려는데, 가고 싶어?”송연아가 옷을 입혀주며 물었다.“네, 가고 싶어요.”찬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와 같이하는 거면 다 좋아요.”찬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좋아하자 송연아는 너무 귀여워서 그의 얼굴에 뽀뽀했다.“엄마 이제부터 찬이랑 같이 놀 시간이 많아.”송연아의 말에 찬이는 눈을 깜빡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송연아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의 얼굴에 뽀뽀했다. 순간 송연아의 마음이 녹아내렸다.“맛있는 것도 많이 사줄게.”송연아는 순간 모성애로 가득 차서 이 세상 모든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었다. 두 모자가 차에 타자, 강세헌이 출발했다. 차에서 송연아는 휴대폰으로 영화 티켓을 고르고 있었는데 최근에 개봉하고 감상평이 좋은 영화 두 편이 있었지만, 찬이가 있기에 평론이 괜찮고 아이들이 볼만한 애니메이션을 골라서 3장 샀다.영화관에 도착하자 상영시간이 다 되어서 바로 팝콘과 음료를 샀는데 그사이에 찬이는 어찌나 신났는
양명섭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잠시 당황하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알아? 최근에 우리가 수사 중인 사건인데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로는 그 송예걸이라는 사람도 연루되어 있어. 당신도 살인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잖아. 그 사람과 어떤 사이이든 신경 쓰지 마. 그럴 가치도 없어!”안이슬은 양명섭의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보며 말했다.“송예걸은 연아의 이복동생인데 나한테도 친동생이나 다름없어.”양명섭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 관계를 듣고 너무 의외여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법은 냉정하기에 누구든 법을 어기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어른이 되었으면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그래도 양명섭은 안이슬을 위로했다.“수사가 잘못됐을 수도 있으니 그 생각은 하지 말고 아이를 무사히 낳을 생각만 해.”안이슬은 양명섭이 자기를 위로하는 걸 알고 그의 손을 꼭 잡고 부탁했다.“무슨 방법이 없을까?”양명섭이 웃으며 말했다.“알았으니까, 그 일은 마음에 새기지 말고 기쁜 일만 생각해. 뭐 먹고 싶어? 내가 사줄게. 탕수육 먹을래?”안이슬은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는데 지금은 먹을 기분이 아니었기에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약속해 줄 수 있어?”이건 분명 양명섭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다. 양명섭은 솔직하고 강직한 사람이어서 절대로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안이슬도 자기의 부탁이 양명섭을 얼마나 난감하게 하는 건지 알고 있었으며 또한 양명섭이 본인의 직업적 수칙을 어겨서 처벌받거나 옷 벗는 일을 하게 할 수 없었기에 곧바로 말을 돌렸다.“따뜻한 물 받아 줄게 시원하게 씻어.”안이슬이 일어나자, 양명섭이 붙잡았다.“그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 내가 하면 돼.”안이슬은 그를 앉아 기다리라고 하며 말했다.“난 괜찮아. 하루 동안 고생했잖아.”양명섭은 절대로 배가 남산만 한 안이슬이 목욕물을 내리게 할 수 없었다.“나 혼자 해도 되니까, 먼저 들어가서 자.”말하면서 양명섭은 안이슬을 침실로 데려갔다. 그
저녁 12시.한밤중의 바닷가, 반짝이는 해면 위로 바닷바람이 살살 불었고, 짜고 비릿한 바닷냄새가 스쳐 지나갔다.날씨는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컨테이너 안에 숨어 있던 경찰은 꼼짝하지 않고 집중해서 바깥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잠복 요원이 준 정보 덕에 그들은 용의선상에 있는 배를 확정할 수 있었다.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들은 바로 배 안의 사람들을 포위하고 체포할 것이다.범죄자들의 생각은 너무 뻔히 보였다. 그들은 배를 공해 구역으로 몰아 거래할 셈이었다.그래서 경찰들은 미리 움직여야 했다. 바다 위에서는 육지에서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없으니 배가 도망가기 전에 일거에 체포해야 한다.그들이 지켜보고 있던 배가 움직이자 부국장은 바로 그 배를 포위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그들이 거래한 물건은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도 해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사람을 죽인 전적도 있었기에 체포되면 최소 십여 년, 혹은 수십 년의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니 별다른 선택이 없는 그들은 체포될 위험을 감수하고도 경찰과 맞서 싸우려고 했다.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총소리가 밤하늘을 가르자 그 소리는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샀다.그렇게 많은 이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되었다.다행히 격렬한 전투 끝에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체포되었다.하지만 경찰 쪽에서도 희생을 치렀다.양명섭은 사람들을 데리고 배 위에 올라갔는데 그는 팀장으로서 앞장서야 했다.다행히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지,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상처를 치료하니 움직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찰은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배 위에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람은 내가 심문할게.”양명섭이 검은색 후드를 입은 채 벽에 기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검은색 후드를 입은 남자를 데리고 취조실로 향했다.양명섭이 말했다.“나 먼저 전화를 한 통 해야겠어.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누구 아이예요?”안이슬은 앞으로 걸어가서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혹시 법에 어긋난 짓을 했어?”송예걸은 눈이 벌게진 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혹시 심재경 그놈이랑 재결합한 거예요?”젓가락으로 만두를 집던 양명섭이 그 말을 듣고는 흠칫했다. 그리고 또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계속 만두를 먹었다.안이슬은 인내심 있게 그를 바라봤다.“내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똑바로 말해. 그래야 널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할 테니까.”“하하.”송예걸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나를 구한다고요? 어떻게요? 법을 어기면서 나를 구할 거예요? 그럴 권력이 있어요?”안이슬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예걸아...”“나 부르지 마요!”격분한 송예걸은 소리를 질렀고 양명섭이 고개를 들었다.“만약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이슬아, 너 먼저 나가 있어.”안이슬이 고개를 돌렸다.“명섭 씨, 나 시간 좀 줘...”“엄청 예민하게 구는 거 못 봤어? 어차피 얘기해도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야.”송예걸은 양명섭과 안이슬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고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며 물었다.“두 사람...”“우리 부부 사이야.”양명섭의 말에 송예걸은 그대로 굳어졌다.그의 눈빛 속에 담겼던 분노는 서서히 사라지고 오로지 충격과 놀라움만이 남았다.안이슬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송예걸에게 말했다.“이 사람 말이 맞아. 우리 결혼했어. 내 배 속의 아이는... 이 사람 아이야.”“하, 하하.”송예걸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심재경만 아니면 돼요.”그는 안이슬과 심재경이 재결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심재경과 그의 가족이 안이슬에게 그렇게 많은 상처를 안겨줬는데도 안이슬이 심재경을 용서한다면 송예걸은 울화통이 터질 것이다.제복을 입고 늠름한 모습의 양명섭은 안정감 있어 보였다.송예걸도 안이슬이 왜 눈앞의 남자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안이슬은 다시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말을 더듬거렸다.“그래도 감옥에 가야 하는 거야?”“옥살이는 무조건 해야 할 거야.”하지만 양명섭은 계속 그녀를 위로했다.“그래도 목숨을 반쯤 잃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안이슬이 송예걸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게...”“네, 그렇게 할게요.”송예걸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커버한다고 해도 처벌은 무조건 받을 것이다. 양명섭의 방법은 실로 현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먼저 돌아가, 나머지는 나에게 맡겨.”양명섭이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안이슬도 자신이 여기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양명섭에게 폐가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양명섭이라면 안이슬도 마음이 놓였다.다만...그녀는 고개를 돌려 송예걸을 바라봤다.송예걸은 그녀를 보더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돌아가요.”안이슬은 취조실을 나섰고, 양명섭은 그녀를 경찰서 밖까지 바래다줬다.“나 아직 못 돌아가. 밤새 잘 자지도 못했을 텐데 돌아가서 좀 자. 이제 내가 돌아갈 때 음식을 챙겨 갈게.”양명섭의 말에 안이슬이 대답했다.“뭘 먹고 싶어? 내가 만들어 줄게.”“아니야. 임신하고 있는데 불편하잖아. 말 들어. 푹 쉬고. 여기는 내가 있잖아. 내가 될수록 적은 형량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고.”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양명섭이 경찰서로 돌아가고는 송예걸의 모든 자백을 받았다.그리고 스파이를 하겠다는 것도 윗선의 허락을 받았다.이제 남은 일은 그를 다시 조직으로 돌려보내는 거였다.송예걸은 경찰에게 잡히지 않고 도망가는 척 연기를 했고 스파이를 하며 경찰 쪽에서 동선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넘겼다....안이슬이 집으로 돌아간 후 무기력하게 침대 옆에 앉았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서 음식을 만들었다.양명섭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마침 요리를 끝냈다.“가서 손 씻고 와.”음식을 사 온 양명섭이
양명섭이 말했다.“네가 너무 감정적이어서 스스로 고민을 떠안는 거야.”안이슬도 그를 따라 웃었다.“지금 나 칭찬하는 거야?”“아니, 아니. 사실 너무 감정적이어도 안 좋지. 감정적이면 주위 사람과 일에 쉽게 휘둘리잖아. 사람이 편안하게 살자면 먼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양명섭의 말에 안이슬은 미간을 구겼다.그럼 사람이 너무 매정해지는 거 아닌가?그래도 사람이 사는 동안 걱정해야 할 사람이 한두 명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녀는 양명섭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람이 왜 이렇게 매정해. 내가 죽으면 바로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여자들은 다 비슷비슷하잖아.”“...”양명섭은 한참 동안 안이슬을 뚫어지게 쳐다봤다.“내 뜻은 그게 아니라.”안이슬이 웃으며 말했다.“농담한 거야. 깜짝 놀라긴.”양명섭도 웃는 안이슬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안이슬이 처음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즐겁지도 않은데 애써 미소를 짜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안이슬의 웃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오고 있다.양명섭은 흐뭇한 마음에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됐어, 얼른 밥 먹어.”“응.”안이슬이 대답하며 젓가락을 들었다.밥을 먹은 양명섭은 자러 갔다. 어젯밤 밤새 잠을 못 잤으니 많이 피곤했다.안이슬은 테이블과 주방을 정리한 후 자는 양명섭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가서 좀 걸으려고 했다. 의사가 많이 걸으면 나중에 출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했으니.그녀는 외투를 가지러 방에 들어갔는데 거즈로 감싼 양명섭의 팔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침대 쪽으로 향했다.깊게 잠들지 않은 양명섭은 누군가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눈을 희미하게 떴고 곧이어 안이슬의 얼굴이 점점 또렷하게 보였다.“이슬아?”안이슬이 물었다.“다쳤어?”양명섭이 대답했다.“찰과상이야, 걱정할 것 없어.”안이슬이 자책하면서 말했다.“나 진짜 아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봐. 네가 다쳤는데도 모르고...”“아이고.”양명섭이 그녀의
안이슬이 대답했다.“심각해.”송연아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물었다.“어느 정도로 심각한데요?”안이슬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목숨을 반쯤 잃을 수도 있어.”그 말을 들은 송연아의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그녀는 윤이를 안은 채 자리에 앉았는데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윤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툭툭 치다가, 또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장난을 쳤다.“연아야, 내가 너에게 이 얘기를 한 것도 네가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으면 해서야. 명섭 씨가 최선을 다해 방법을 강구할 거야.”안이슬의 말에 송연아가 대답했다.“그럼 두 사람에게 좀 부탁할게요, 예걸이를 좀 잘 챙겨주세요. 세헌 씨도 없고 집에서 아이 둘이나 돌봐야 해서 거기로 갈 수도 없어요...”“걱정하지 마, 나랑 명섭이가 최선을 다할 테니까.”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고마워요.”“고맙긴 뭘.”전화를 끊은 후 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윤이는 실내가 싫은지 안에 도착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송연아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계속 그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쳐줬다.이때 진원우가 다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송연아가 고개를 들고는 물었다.“어쩐 일로 오셨어요?”진원우는 그녀를 보더니 주춤거렸다.송연아가 말했다.“할 얘기가 있으면 해요.”하지만 진원우의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쭈뼛쭈뼛 제자리에 서 있었다.송연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물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이렇게 난감한 얼굴을 보이는 거예요?”진원우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대표님에게 사고가 생겼습니다.”송연아는 충격에 몸을 비틀거리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심장이 찢어진 듯이 아팠다.진원우는 바로 그녀를 의자 쪽으로 부축하고는 그녀의 품에 안긴 윤이를 받아 안았다.“형수님...”송연아는 숨이 턱턱 막혔다.방금 송예걸이 일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또 강세헌에게 사고가 생겼다니, 그녀는 갑작스럽게 일
진원우는 송연아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그녀의 물음에는 더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다만...그는 사고 소식을 접한 후 바로 송연아에게 알리지 않고 그쪽에 사람을 먼저 보냈는데 전해진 소식에 의하면 비행기가 추락한 게 확실했다. 노르웨이 공역에서 떨어졌다고 한다.그리고 그가 송연아를 찾아오기 전 노르웨이의 초각봉 구역에서 비행기 잔해를 찾아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비행기는 사고가 적고 비교적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한 번 사고가 난다면 그 심각성은 실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그래서 진원우는 감히 송연아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희망을 크게 안을수록 실망도 크게 올 수 있으니 말이다.송연아는 무기력하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알겠으니까 가서 준비해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출발할 수 있을까요?”진원우가 대답했다.“네.”송연아는 윤이를 안아 들었는데 가슴이 후벼 파인 것처럼 허전했다.그녀는 윤이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면서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찾으려고 했다.하지만 윤이는 불편한지 발버둥 쳤다. 송연아는 윤이가 울고서야 그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정신을 차리면서 손에 힘을 풀었다.한혜숙이 걸어 나오며 물었다.“왜 그래?”송연아는 멍하니 한혜숙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엄마, 가서 짐을 정리해요.”한혜숙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짐은 왜 준비해?”“우리 프랑스로 가요.”송연아가 대답했다.그녀가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기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한혜숙은 한눈에 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어?”송연아는 그저 한혜숙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혹시나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세헌 씨가 진작 프랑스에 가서 살고 싶어 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국내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계속 지체했었죠. 이제 일도 그만두고 갈 수 있어요. 게다가 세헌 씨 본사도 프랑스에 있어서 프랑스에 가면 세헌 씨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