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슬은 직원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조식은 필요 없으니 가지고 나가세요!”양명섭이 안이슬을 바라봤다.평소 그녀는 화를 잘 내지 않았는데 오늘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하지만 그는 바로 묻지 않고 호텔 직원을 향해 말했다.“호텔 조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니까 다시 가져가세요.”직원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호텔 조식이 아니라 어떤 손님께서 보내오신 거예요.”양명섭은 왜 안이슬이 화를 내는지 바로 알아챘다.아마 이 조식도 그날 호텔에서 만난 남자가 보내왔을 것이다.“음식은 남기고 다들 나가줘요.”안이슬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게 누가 보낸 건 줄 알고 남겨?”양명섭이 말했다.“알고 있어.”안이슬은 더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알면서 왜...”양명섭은 바로 설명하지 않고 먼저 직원들을 내보낸 후 문을 닫았다.그는 안이슬 곁으로 다가가더니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는 인내심 있게 말했다.“이걸 내다 버린다고 해도 뭐가 달라져?”양명섭은 그녀의 속마음을 다 알았다.“이 음식들, 다 네가 예전에 좋아했던 거지? 사람 시켜 음식을 보내온 건 나를 도발하기 위해서일 거야. 나는 네가 예전에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모르잖아. 하지만 모르면 어때?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인데. 사람은 입맛도 바뀌고 감정도 시간에 따라 바뀌게 되어있어. 지금의 너와 나처럼 말이야.”안이슬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만약 넌 일말의 미련이 남아있지 않는다면, 그 어떤 환상도 품지 않는다면 덤덤하게 받아들여.”양명섭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난 네가 그 사람 때문에 네 기분이 영향받지 않았으면 해. 이런 내 마음 이해해 줄 수 있어?”안이슬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그녀는 양명섭의 어깨에 기대면서 말했다.“고마워.”양명섭은 이런 일로 비난하거나 꾸짖는 게 아니라 위로하고 타일렀기에 그녀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배고프지?”양명섭이 말했다.“식기 전에 좀 먹을까?”안이슬이 말했다.“내가 대학 다
사나이가 자존심이 있지, 심재경은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안이슬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따라간다면 그의 체면은 형편없이 구겨질 것이다.‘나 왜 지금까지 집착하고 있는 거야? 이슬이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야.’그는 안이슬과 양명섭의 꽉 잡은 두 손을 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떨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아마 오늘 내가 여기에 나타난 것도 두 사람에겐 하나의 웃음거리로 되겠지?’그는 호텔을 나선 후 차를 운전하며 떠났다.안이슬이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더 이상 그녀를 방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를 축복하는 것이 오히려 그녀를 보상하는 좋은 방법일 지도 모른다....송연아는 안이슬과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오은화는 그들에게 꽃차를 건넸다.찬이는 아직도 마당에서 트랜스포머 장난감에 흠뻑 빠져 있었고, 아기는 잠이 들어 집은 매우 조용했다.안이슬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일은 잘 해결됐어?”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젯밤 늦게 들어온 걸로 봐선 해결하고 있는 중인 듯했다.“곧 해결되겠죠.”송연아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왜요? 급하게 돌아갈 일이 있어요?”안이슬이 대답했다.“급한 건 아닌데. 네 일이 완전히 해결되면 돌아가려고, 아니면 마음이 안 놓여.”한혜숙은 잘 깎은 과일을 가져와 안이슬 앞에 놓았다.“원래 임신하면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해. 그래야 아이도 피부가 좋다잖아.”안이슬이 고개를 들고는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어요.”한혜숙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다행이야, 너도 결혼하고 아이가 있다니.”안이슬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한혜숙이 고개를 돌려 양명섭을 보며 말했다.“우리 이슬이가 정말 좋은 여자예요. 그러니까 꼭 잘해줘야 해요. 만약 이슬이를 괴롭힌다면 내가 제일 먼저 따지러 갈 거예요. 엄마 없고 아빠가 책임을 안 진다고 이슬이를 얕잡아보면 안 돼요. 나랑 연아가 다 이슬이 친정 식구나 마찬가지니까. 우리 이슬이 잘 부탁해요.”양명섭은
송연아는 놀라하면서 그녀를 집안으로 들였다.“언제 돌아왔어요?”“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구애린이 말하고는 집 안을 들여다봤다.“집에 손님이 있어요?”송연아는 그녀를 데리고 들어와서 소개를 시작했다.“이슬 언니는 내 친구예요, 여기는 양명섭 경찰관님이에요.”구애린이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안녕하세요.”안이슬도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로 화답했다.그 일이 있은 뒤로 구애린은 예전처럼 발랄하지 않고 많이 차분해졌다.안이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랜만에 돌아와서 명섭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돌아보고 싶어.”집에 손님이 왔으니 그녀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송연아는 구애린이 갑자기 돌아온 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몰라 안이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송연아는 안이슬을 직접 배웅하며 그녀의 팔짱을 꼈다.“저녁에 밥 먹으러 와요. 오랜만에 봤는데 제대로 밥 한 끼도 못 먹고 말이에요.”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송연아는 운전기사더러 두 사람을 모시라고 했다. 안이슬과 양명섭은 차를 안 가지고 왔으니 어디 다닐 때도 불편할 것이다.“언니가 임신했으니까 운전기사님이 데려다주실 거예요.”송연아가 말했다.안이슬은 고맙게 생각하며 말했다.“그럼 신세 좀 질게.”송연아가 말했다.“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줬잖아요, 그 신세는 언제 갚아요?”송연아가 도와서 차 문을 닫고 그들이 떠난 걸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뭐 마실래요?”송연아가 물었다.구애린은 목이 말라 고개를 끄덕였다.“뭐 마시고 싶어요?”송연아의 물음에 구애린이 대답했다.“주스면 돼요.”송연아는 오은화가 만든 신선한 과일 주스를 잔에 따랐고, 또 생강차 한 잔을 만들었다.그녀는 자리에 앉은 후 구애린을 보며 물었다.“원우 씨 보러 돌아온 거죠?”구애린은 고개를 숙였다.“원우 씨가 많이 바빠서 얼굴 보러 온 거예요.”송연아가 찻잔을 꽉 쥐자 손바닥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구애린을 마주하니 또 그녀 주위
강세헌은 진원우를 데리고 돌아왔다. 진원우는 요즘 바쁜 탓에 구애린에게 메시지를 적게 남겼었다. 현재 일이 해결되고 그는 미국에 잠시 갔다 오고 싶었는데 강세헌은 집에 손님이 있어서 함께 손님맞이를 해달라고 오늘 가지 말라고 말렸다. 진원우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가는 시간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구애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내일 애린 씨 보러 갈게요. 내일 저녁 티켓으로 예약했어요.」구애린은 윤이랑 놀고 있던 중에 휴대폰 진동 소리가 울려 꺼내 보니 진원우가 보낸 메시지가 떴다. 구애린은 메시지 내용을 보더니 웃음을 띠고는 일부러 이렇게 답장했다.「그렇게 바쁘면 뭐하러 와. 이제 나도 뒷전이고, 일이나 열심히 해.」진원우는 미간을 찌푸렸다.「화났어요?」「응.」이때 구애린은 윤이를 안고 살금살금 진원우의 뒤로 가서 그의 귓가에 작게 입김을 불었다. 진원우는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누구...”도대체 누가 감히 자신에게 이런 장난을 치는 건지, 구애린인 것을 확인한 진원우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을 더듬었다.“애, 애린 씨, 언제 왔어요?”“방금 왔어.”구애린이 대답하자 진원우는 코를 끄적였다.“나는 애린 씨가 정말로 화난 줄 알고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했어요.”“멎기는 무슨, 잘만 살아있구먼.”구애린의 말에 진원우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진원우는 윤이를 안아 들고는 구애린에게 가까이 가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나 보러 온 거예요?”구애린은 그렇다고 작게 대답했다.“너 바쁜 거 알아서 내가 보러 왔어.”진하게 감동한 진원우는 구애린의 손을 잡고 싶고 포옹도 하고 싶었지만, 여기에서 그러면 민폐일 것 같아서 꾹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주방에서는 아직 바빴다.강세헌은 거실에 있는 게 뻘쭘해서 송연아의 뒤에 따라다니며 그녀가 세팅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송연아는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은화가 주로 요리를 했고 송연아와 한혜숙은
심재경은 송연아의 말을 무시하고 물었다.“안이슬 거기 있지?”송연아는 식탁에서 일어서서 나왔다.“재경 선배, 허튼짓하지 말아요...”“허튼짓하려는 거 아니야. 내가 뭘 하려 한다면 그날 호텔에서 했겠지, 지금까지 기다렸을 리는 없잖아. 너도 알다시피 이슬이는 지금 그 남자랑 사이가 아주 좋아. 내가 뭘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 두 사람의 관계를 흔들지는 못할 거야. 왜 이렇게 경계하는 거야?”송연아가 말했다.“네,경계할 수밖에 없네요. 지금 이슬 선배 임신 중인데 선배가 아이를 해칠까 봐 두렵기도 하고 이슬 선배의 생활에 불필요한 소란을 가져다줄까 봐 두렵네요...”“안이슬 거기 있지? 지금 갈게.”심재경이 송연아의 말을 끊자 송연아는 얼굴을 찌푸렸다.“재경 선배... 뚜뚜...”통화는 이미 끊겼다. 송연아가 바로 다시 걸었지만, 심재경은 전화를 받지 않아 송연아는 애가 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일을 안이슬한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어떻게 할 건지 상의를 해야 하기에 송연아는 안이슬한테 문자를 보냈다.「재경 선배 이리로 온대요.」안이슬은 문자를 확인하고 거실을 힐끔 보더니 답장했다.「괜찮아.」안이슬이 이렇게 대답하는 걸 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처할 생각도 한 모양이기에 송연아는 식탁에 돌아와서 웃으며 얘기했다.“죄송해요. 센터에서 확인할 게 있다고 전화가 왔네요.”말하며 송연아가 안이슬을 보자 그녀는 송연아에게 요리를 집어 주며 말했다.“생각 말고 밥 먹어.”송연아는 안이슬을 보면서 대답했다.“네.”안이슬은 긴장하지 않았고 심재경이 온다고 해서 어떤 감정의 기복도 일지 않았지만, 송연아는 양명섭이 오해를 할까 걱정되었다. 하여 식사를 하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맛있는 요리들도 송연아는 맛을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강세헌은 송연아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국물을 한 그릇 떠서 송연아의 앞에 놓으며 물었다.“무슨 생각해?”송연아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송연아는 그릇을 들었다. 이때
심재경은 온몸이 굳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참 침묵하다가 작게 말했다.“괜찮고말고.”심재경은 차 문을 열고 올라타며 말했다.“들어가.”송연아는 다가가서 손으로 차 문을 잡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한마디 했다.“포기하세요.”고개를 들어 송연아를 보는 심재경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역력했다.“포기했어.”송연아는 뭐라고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세상에 여자는 많으니까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더 좋은 사람은 만날 수 있어도 더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제일 어려운 건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나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심재경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어서 들어가.”말을 마치고 심재경은 차를 몰고 떠났다. 송연아는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지금의 심재경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어깨에 손이 올려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니 강세헌이었다.“내가 봤을 때 재경 선배 많이 슬픈 것 같아요.”송연아가 이렇게 말하자 강세헌이 말했다.“다른 사람의 일은 신경을 좀 덜 써도 돼.”말하고는 송연아를 끌어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송연아가 말했다.“식사를 마치고 세헌 씨가 재경 선배 만나러 가요.”강세헌이 대답했다.“알겠어.”심재경이 식탁에 더 머물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를 망친 건 사실이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식기가 부딪치는 낭랑한 소리만 공기 속에 울려 퍼졌다. 진원우가 침묵을 깨고 술잔을 들어 양명섭과 건배를 했다.“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도와주셔서 감사해요.”양명섭이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지금 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오는 것도 편리해요.”“어찌 됐든 이슬 씨가 원장이 중독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이번 일은 이렇게 순조롭게 해결되지 못했을 거예요.”진원우는 진심으로 말하니 양명섭도 거절하기 어려워 둘은 몇 잔 더 기울였다.식사를 마치고 모두 흩어지고 송연아는
송연아는 병실에 앉아 오은화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어서 오은화는 의식을 되찾았다. 병세가 심하지는 않지만, 너무 갑작스러웠고, 큰 수술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운을 상하게 하는 것이기에 송연아는 오은화에게 이불을 꼭꼭 덮어주었다.“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오은화는 자신의 상태를 살피더니 힘이 안 들어오는 것 빼고는 딱히 아픈 곳은 없었다.“없어요.”송연아가 말했다.“괜찮아서 다행이에요.”“집에 어머님 혼자 있으면 바쁘실 텐데.”오은화는 송연아를 보고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송연아는 일어나려는 오은화를 다시 눕히며 말했다.“몸조리 잘해야 해요. 집안일은 나도 있고 안되면 잠시 도우미 더 찾죠. 아무쪼록 집안일은 신경 쓰지 마시고 몸조리부터 잘하세요.”오은화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병원에만 있어요?”“무조건 몸조리해야 해요.”송연아가 말했다.“아주머니가 몸조리를 잘해야 저를 도와 집을 잘 보살피죠.”오은화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누웠다.“아이고, 나이가 드니 몸도 예전 같지 않네요.”송연아가 말했다.“CT 찍은 걸 봤어요. 큰 문제는 없고 약을 먹으면 괜찮으니 두려워하지 마세요.”“두렵지 않아요.”오은화가 웃으며 말했다.“얼른 가보세요. 집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저는 여기 있어서 곁에 있어 줄 필요 없잖아요.”오은화가 말했다. 하지만 송연아는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시간이 늦어서 이 시간에는 마땅한 간병인도 찾기가 어려운데, 송연아는 고민하다가 정경봉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전화를 빠르게 받았다. 정경봉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경찰이 신일제약을 조사한다고 하던데 그러면 원장님은 괜찮은 거 아니에요?”송연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경봉 씨,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얘기하세요. 무슨 일이에요?”송연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경봉이 말을 끊었다.“사적인 일이긴 한데.”송연아가 말했다.“경봉 씨가 괜찮을지 모르겠
송연아는 병원에서 돌아와서 구애린을 보지 못했다. 만약 구애린이 이미 돌아왔다면 집에 기척이라도 들릴 테고 방 안에서 나오지 않을 리도 없었다.“아직 안 온 것 같아요.”송연아의 말에 강세헌은 고개를 한번 끄덕했다....구애린은 진원우를 집에 데려다주고 차에서 내리라고 하자 진원우가 말했다.“많이 마셔서 머리가 아프네요.”구애린은 주차하고 진원우를 부축해서 집에 들어갔다.“소파에 잠시 누워있어. 꿀물 좀 만들어 올게.”진원우는 구애린의 손을 덥석 잡았다.“애린 씨가 곁에 있어 주면 될 것 같은데.”진원우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진원우는 주량이 센 편이어서 그 정도로 마셔서는 취하지 않는다. 이때 구애린도 눈치를 채서 꼬집어 물었다.“일부러 나 속인 거야?”진원우는 웃기만 하며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구애린을 끌어서 품 안에 넣고는 허리를 꼭 안았다.“애린 씨가 저를 보러 올 줄 몰랐네요.”진원우는 구애린을 보았을 때 정말 의외였다. 구애린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거야. 계속 너한테 받기만 할 수 없어.”진원우는 턱을 구애린의 어깨에 살포시 걸치며 말했다.“내일 강 대표한테 휴가를 달라고 할거에요. 애린 씨랑 미국으로 가서 한동안 지내려고요.”“어떻게 그래?”구애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우리 오빠 도와야지.”진원우는 입을 삐쭉거렸다.“오빠라는 말이 아주 입에 착착 붙네요?”구애린은 고개를 쳐들었다.“그렇지. 혈연관계는 아니어도 명의상에서는 오빠 맞잖아. 오빠도 날 인정해줬고.”진원우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나는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오른 격이네요? 감히 상사의 여동생을 탐하는 거네요?”“이제 알았어?”구애린은 일부러 농담을 건넸고 진원우는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임지훈이 돌아왔기에 강 대표 곁에서 일을 도울 사람이 있어요. 나도 오랫동안 휴가를 가지 못했는데 지금 여기 있는 일도 거의 다 마무리되어가고, 업무상의 일은 임지훈이 나 대신해줄 수 있어서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