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살려주세요.”간호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진원우가 말했다.“입이 엄청 무거워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강세헌은 싸늘한 얼굴로 간호사를 힐끔 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말했다.“입이 무거워? 그 말을 못 믿겠는데? 세상에 비밀이란 게 어디 있어? 말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설명하지.”진원우가 말했다.“네, 저에게 맡겨주세요. 10분 안에 반드시 말하게 하겠습니다.”그는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여봐라...”“말할게요, 저 말 할게요.”간호사는 눈앞의 사람들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가는 분명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턴으로 일하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갔고, 또 순조롭게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고생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 상황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말하지 않아도 맞고 나서도 말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말해!”진원우가 웅크려 앉아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그래도 눈치는 빠르네. 조금만 늦었어도 제대로 고통을 맛봤을 것인데 말이야.”간호사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누군가가 저에게 돈을 줬어요. 방금 수술을 마친 환자분께 물 한 잔을 건네주라며. 물은 그 사람이 준 거예요.”“그 사람이 누군데?”“모르는 사람이에요.”간호사는 진원우가 믿지 않을까 봐 말을 보탰다.“정말 누군지 몰라요. 그때 그 사람이 그저 환자분께 물을 건네면 60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워낙 많은 돈을 준다고 하니까, 그대로 한 것뿐이에요.”진원우는 또 간호사에게 신일제약의 임원들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이 안에 당신을 매수한 사람이 있어?”간호사가 차례로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없어요.”그러고는 또 말 한마디를 보탰다.“이 안에 정말 없어요. 저에게 물을 준 그 사람은 아주 말랐고, 얼굴에 주근깨가 있었어요.”진원우는 더
“그럼 원장님은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옥자현이 거침없이 물었다.송연아가 대답했다.“중독으로 돌아가셨어요.”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듯이 침묵을 지켰다.중독? 그럴 리가 있나?“무슨 독에 중독됐나요?”옥자현은 분명 송연아의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그리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일부러 중독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냐는 표정을 보였다.원장의 수술은 송연아가 고집해서 진행했고, 이 수술에 문제가 생겼으니 송연아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송연아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한 얘기 모두 비밀을 지켜줬으면 해요.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고, 이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면 괜히 상대는 경계심만 높일 거예요. 아직 내가 원장님이 중독된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갔다.“여러분들도 분명 원장님께서 중독으로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을 거예요. 내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핑계를 찾고 있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당당하고도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그때 인공심장 개발에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혔고, 나중에 이 박사님의 합류 덕분에 우리는 순조롭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이 박사님이 우리 연구센터에 합류하기 전에 신일제약에서도 이 박사님과 계약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 박사님에게 비열한 방법을 쓰면서 협박도 했지만 이 박사님은 결국 우리 연구센터에 들어왔어요. 인공심장 시장은 방대해요. 나라에서도 투자하고 있으니 말이죠. 신일제약은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게 목적인데 이 박사님이 우리 연구센터로 왔으니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 연구센터는 그들의 돈줄을 끊어버린 것과도 같겠죠. 그래서 최선을 다해 우리가 먼저 인공심장을 만들어내고 시장에 진입하는 걸 막으려는 거예요. 신일제약에서 이 박사님를 스카우트하지 못했어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그들은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기에 만약 우리
다시 보니 그의 옆에는 이영이 서 있었다.원장 아들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이영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당, 당신, 또, 또 나를 때려? 내가 당신을 상해죄로 고소하겠어!”이영이 일부러 손을 들자 원장 아들은 잔뜩 겁을 먹으면서 머리를 끌어안았다.“나 때리지 마!”“맞기 싫으면 꺼져!”이영이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원장 아들은 자기가 싸움을 잘하는 걸 이영을 전혀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의기소침하여 도망갔다.송연아가 이영에게 다가갔다.경호원인 그는 너무 든든했고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다음에 또 오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끝이 없네요.”송연아가 차에 올라타고는 말했다.“이런 사람은 멀리하는 게 좋아요.”도리를 따지지 않고 마구 사람에게 달라붙으면서 따졌는데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는 귀찮은 존재였으니 말이다.이영이 말했다.“이런 사람, 저 많이 봤어요.”세상은 넓고 맞을 놈은 많다.그 도리를 납득하고 나면 모든 걸 내려놓게 된다.이영이 물었다.“이번 일, 어떻게 해결할까요? 저 사람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송연아는 이마를 짚었다.“계속 찾으러 오니 피할 수밖에 없죠.”원장 아들은 쉽게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송연아는 몸이 끈적거리는 느낌에 불편했다.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벌써 생리가 올 때가 되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몸이 무겁게 느껴지더라니.“이영 씨, 마트 앞에서 차 세워요.”이영이 알겠다고 대답했다.“뭐 사려고 하세요? 제가 사 올까요?”송연아가 말했다.“괜찮아요.”한참 후, 이영은 한 마트 앞에서 차를 세웠다.송연아는 차에서 내려 마트로 향했고 생리대를 사서 주머니에 넣은 후 물도 한 병 챙기고는 돈을 내고 마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손에 물을 든 채 차에 올라탔다.이영이 물었다.“목마르셨어요?”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한 병 샀는데 이영 씨는 목말라요? 이거 줄까요?”이영은 괜찮다고 했다.“그럼 우리
송연아는 강세헌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곧이어 문이 열렸고 강세헌은 그녀의 손에 든 주머니를 발견하고는 물었다.“뭐 들고 있어?”송연아가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더러워진 옷이에요.”강세헌이 더 자세히 물어보려던 그때 진원우가 들어왔다.“먼저 소파에 앉아있어, 뭐 마실래?”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은 채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강세헌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더 물어보지 않고 테이블 앞으로 가 진원우에게 물었다.“어떻게 됐어? 사람은 찾았어?”진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찾았습니다. 신일제약 부대표 부하인 것 같더라고요.”부대표 부하가 사람을 찾아 간호사를 매수한 것이다.이제 중요한 단서를 모두 찾았으니 이제 원장 아들만 잘 설득하면 되었다.그는 지금 원장의 죽음을 송연아의 수술과 이식된 인공심장 때문이라고 잡아떼고 있는데 만약 이때 원장이 수술 때문이 아닌 독살로 돌아가신 걸 알게 되면 한동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물론 그들에게 지금 증거와 증인 모두 있었지만 그래도 미리 원장 아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게 좋은 방법일 듯했다.강세헌이 잠깐 고민하고는 말했다.“원우야, 지난번에 조사한 원장 아들 자료는?”진원우가 대답했다.“지금 바로 가지러 가겠습니다.”그가 말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강세헌은 송연아에게 눈길을 돌렸다.이 일에 관심을 보여야 하는 그녀가 왜 이렇게 우울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강세헌이 송연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연아야? 어디 불편해?”그의 목소리에 송연아는 생각을 거두고는 입을 열었다.“왜 그래요?”강세헌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무슨 생각 그렇게 골똘히 해?”강세헌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어디 아파?”송연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애써 기운이 넘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그녀는 겨우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강세헌의 손을 잡았다.“왜 그래요? 왜 그런 눈빛으로 날 봐요?”강세헌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너 오늘
송연아가 물컵을 내려놓고는 그의 손에 든 바지를 다시 주머니 안에 넣으면서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세헌 씨, 왜 그렇게 민감해요?”그녀는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생리 와서 피 묻은 바지를 갈아입었어요. 그런데 그걸 왜 열어봐요?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강세헌은 주머니에 비밀이 숨겨졌을 거라고 생각했다.오늘 송연아의 반응이 워낙 이상했으니 강세헌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송연아가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얼굴을 그의 가슴팍에 파묻었다.“왜 그렇게 유치하게 굴어요. 나 오늘 생리 와서 기운이 없단 말이에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아요.”강세헌이 알겠다고 대답했다.‘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게 맞겠지?’“일찍 돌아가서 쉬어.”강세헌이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말했다.“난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일이 끝나면 너랑 있어 줄게.”송연아는 애교를 부리면서 그를 꼭 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쇄골과 목젖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나 집으로 데려다줘요.”강세헌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알겠어.”송연아도 활짝 미소를 지었다.여기가 회사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강세헌을 꼭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에게 더 달라붙었는데 이는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었다.강세헌이 그녀에게 물었다.“회사 사람들이 네가 얼굴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말이 나오는 게 이제 안 두려워?”송연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이미 지난번에 세헌 씨 때문에 망신을 다 당했는데 뭐가 더 두려워요?”강세헌이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너도 안 두려워하는데 나는 두려워할 이유가 더 없지.”그 말에 송연아가 웃었다.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섰다.“대표님.”직원이 인사를 건넸고 강세헌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지난번에 송연아가 왔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알게 되었고 또 그녀가 강세헌에게 엄청 달라붙는다는 인상이 있었기에 지금 둘이 꼭 껴안고 있어도 직원들은 전혀
송연아는 병원 산부인과에서 접수증을 받고는 검사를 몇 개 진행한 후 결과를 기다렸다.약 한 시간이 지나서 결과가 나왔고 그녀는 결과를 든 채 진료실로 향했다.의사가 결과를 보더니 그녀에게 말했다.“검사 결과에 의하면 자연유산이 맞네요. 대부분 환자들은 그걸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유산이라는 걸 아셨죠?”송연아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추측이 정확했으니 말이다.생리가 미뤄진 건 아니지만 이번에 유독 출혈량이 많았고 핏덩이도 많았다.그녀의 전공은 흉부외과이다. 산부인과는 전문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지식은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일반인 여성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송연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는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줄 알고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HCG 결과가 있기에 우리는 환자가 자연유산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어요. 보통은 그 어떤 임신 증상도 나타나지 않죠. 심지어 임신한 기간이 매우 짧은데 생리 기간보다도 짧아 알아차리기 쉽지 않죠. 배아에 문제가 있어서 자연사한 거예요. 이 과정이 자연유산이죠. 보통 이런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HCG 검사도 하지 않으면 그저 평소보다 생리량이 많고, 생리 기간이 길다고 느껴졌을 거예요. 며칠 지나서 한 번 다시 검사를 받아봐요. 유산이 철저하게 끝나면 임신에는 영향 주지 않을 거예요. 다만...”의사가 그녀를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검사 결과를 봤는데 아마도 아이를 가지기에 적합한 몸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자궁벽이 워낙 얇으셔서.”송연아는 자기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네, 알고 있어요.”“알고 있으면 피임을 잘해야죠.”의사가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약을 처방해 줄게요. 깨끗하게 유산되는 것을 도와주는 약이에요.”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자연 유산도 보통 유산과 다를 것 없어요, 몸조리를 잘해야 해요.”의사가 신신당부했고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진료실에서 나온 후 그녀는 약을 받으러 아래층에서 줄을 섰다.줄을 설
송연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아파요.”한혜숙은 생강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아픈데 찬이를 안아주고 있어? 찬이가 지금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 아직 많이 안 아픈가보지.”그녀는 딸을 아끼는 마음에 찬이를 송연아 품에서 다시 안아왔다.“고통이 좀 가라앉으면 다시 찬이를 안아.”한혜숙이 찬이를 아래층으로 데려가려고 하면서 가기 전 그녀는 또 송연아에게 신신당부했다.“생강차를 꼭 다 마셔.”찬이는 속상한 마음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할머니 미워요.”한혜숙이 그의 코를 쓱 쓸어내리고는 말했다.“말 들어. 엄마가 편찮으셔. 좀 나으면 엄마랑 같이 있게 해줄게.”“엄마 저를 안아 들었잖아요, 어디가 편찮으시다는 거예요? 저에게 활짝 웃으셨단 말이에요. 할머니 왜 거짓말을 하세요?”찬이가 발버둥 치며 말했다.“이거 놔요.”한혜숙은 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그는 씩씩거리며 거실로 뛰어가고는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한혜숙이 그를 어르고 달랬다.“찬이야, 착하지. 아니면 트랜스포머를 사줄까?”“싫어요!”트랜스포머는 찬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인데도 지금은 너무 화가 났는지 거절했다.한혜숙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효과가 없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이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풀리겠지.강세헌이 돌아왔을 때 찬이는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강세헌을 본 찬이는 그의 품에 쏙 안기며 말했다.“아빠!”강세헌이 그를 안아 들며 물었다.“왜 그래? 울었어?”찬이는 억울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더니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한혜숙이 말했다.“연아가 찬이를 안지 못하게 했더니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야.”찬이가 얼굴을 강세헌의 품에 파묻고는 말했다.“할머니는 엄마가 저를 못 안게 하셨어요. 엄마는 분명 저를 안아주고 싶어 하셨는데요.”“...”한혜숙은 말문이 막혔다.“누가 너를 안아주고 싶어 해, 네가 얼마나 무거운데.”찬이는 강세헌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빠, 빨리 저를
송연아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세헌 씨, 날 안아줘요.”강세헌이 몸을 숙이고는 이불을 사이 두고 그녀를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허리 아파?”송연아가 대답하지 않자 강세헌은 웃음을 터뜨렸다.“왜 이래? 아들이 울먹울먹하더니, 너도 울먹울먹하네, 두 사람 다 나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거야?”송연아는 코를 훌쩍였다.“찬이가 울었어요?”“지금은 완전히 신나서 밖에서 즐겁게 놀고 있어.”강세헌은 곧바로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넌?”송연아는 두 손을 내밀어 그를 껴안더니 얼굴을 그의 품에 파묻으며 말했다.“그냥 세헌 씨가 보고 싶어서요.”강세헌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나도 너 보고 싶었어.”“세헌 씨, 사랑해요.”그녀는 이런 방법으로 강세헌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유산 했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강세헌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바로 얼굴을 돌렸다.눈물이 주르륵 흘렀지만 그녀는 애써 괜찮은 척하며 말했다.“나 보지 마요, 부끄러우니까.”강세헌이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알겠어.”“나 피곤해서 잘래요.”송연아는 이불을 머리 위로 올렸다.“그래, 자.”강세헌이 깊은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알겠다고 하고 방을 나서면서 문을 살며시 닫았다.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이영을 불렀고, 이영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강세헌이 물었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이영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없었는데요.”“확실해?”강세헌은 그의 속마음을 꿰뚫을 수 있을 것 같은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이영처럼 카리스마 있는 남자도 감히 강세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고개를 숙였다.“네... 확실해요.”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별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예외라면 송연아와 병원을 간 거였는데 송연아가 비밀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으니 이영도 섣불리 말할 수 없어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대표님...”그는 결국 입밖에 내뱉지 못하고 일부러 원장 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