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문 앞에서 저번에 다쳤던 운전기사를 만났다.운전기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그 아가씨는 결국 구하지 못했어요...”강세헌은 그가 최선을 다한 걸 알고 있었다.“당신 일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맡겼어요, 우선 상처부터 잘 치료해요.”강세헌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자책했다. 그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어쩌면 구애린을 구했을지도 모른다.“사모님.”운전기사가 말했다.“고마워요.”송연아가 재빨리 상처를 처리해 준 덕분에 그는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그는 강씨 가문에서 일하면서 송연아가 친근한 사람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싫은 내색 없이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관심할 줄은 몰랐다.송연아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그녀는 의사였고, 사람을 살리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기 때문에 다쳤는데 말이다.“가자.”강세헌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송연아는 뭔가를 떠올리더니 운전기사에게 물었다.“정경봉 씨가 약은 다 가져다줬죠?”운전기사가 말했다.“네, 다 주셨어요.”“제때 약을 복용해요. 그리고 푹 쉬면 곧 나을 거예요.”“네, 감사합니다.”운전기사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별말씀을요.”말을 마친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강세헌의 뒤를 따랐다.강세헌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번에 내가 새로 사람을 뽑았어. 당신이 출근해야 하기도 하고 옆에 너무 많은 사람이 따라붙으면 사람들의 주의를 불러일으키니 경호원은 한 사람으로 준비했어. 주요하게 당신 안전을 책임질 거야. 전에 기사님도 싸움을 잘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잖아. 이분은 내가 나인 조직에서 직접 모셔 온 분이야. 혼자서 스무 명도 상대할 수 있대.”송연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강세헌이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부부 사이인데 고맙긴, 뭘.”“강 대표님.”그 경호원은 차 옆에
그녀는 다른 사람이 이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하동훈은 무리한 요구까지 하고 있었다.용서? 그녀는 평생 고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이영 씨, 이 사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고, 말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아요.”말을 마친 송연아는 이곳에 한 시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아 돌아섰다.이윽고 처참한 비명이 들려오더니 또 갑자기 멈췄다.송연아가 고개를 돌렸는데 하동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비명도 내지르지 않았다.그녀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눈길을 이영에게로 돌렸다.이영이 말했다.“소리는 못 내게 했습니다. 이제 사모님께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던져버리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하동훈을 들고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는데 마치 가벼운 병아리를 들 듯 너무 수월해 보였다.“수고했어요.”송연아는 이영이 돌아올 때 한 마디 건네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역시 프로페셔널한 경호원은 다르네, 참 효율적이야.’“원장님.”옥자현은 송연아가 걸어 들어오는 걸 보더니 바로 아부를 떨며 그녀에게 다가갔다.송연아는 그녀를 무시하며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정경봉을 불렀다.“기계 박사를 회의실로 불러와요. 할 얘기가 있어요.”인공심장은 한 개의 심장이 아닌 심장 대신 기능을 해주는, 인공적으로 개발된 기계이다.이 기계는 전문가의 정밀 제작이 필요했다.“참, 원장님께서 오셨어요.”정경봉이 말했다.“어디에 있어요?”“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제가 데리고 갈게요.”정경봉이 말했다.송연아가 그를 따라가자 곧바로 원장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지금 송연아는 이미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원장은 아직 퇴직한 게 아니라 송연아에게 인수인계하는 단계였다.원장은 송연아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시합하기로 했잖아? 해?”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 필요 없는데요. 다들 새로운 원장님 얼마나 따르는데요.”옥자현이 걸어와서 제일 먼저 말했다.원장이 손을 저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그때, 송연아가 앞으로 다가가서 원장을 바닥에 눕혔고, 또 심장충격기를 사용한 후 정경봉더러 산소를 가져오라고 했다.심장충격기는 응급처치 기기로 사용되었는데 순간적으로 직류 전류를 흘려서 심장의 박동을 다시 정상화하도록 한다.원장이 갑자기 숨이 턱 막힌 건 악성 부정맥을 일으키는 질환이 생겼기 때문이다.심장이 뛰지 않으니 호흡할 수 없어 숨이 턱 막힌 것이다.정경봉이 산소를 들고 오자 송연아는 바로 산소마스크를 원장의 입과 코로 가져가고는 계속 심장충격기를 사용했다.전체 응급처치 과정은 5분 동안 지속되었는데 원장은 조금씩 정상의 심장박동을 회복하면서 호흡도 차츰 순조로워졌다.송연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이야, 응급처치를 바로 할 수 있어서.’그녀는 원장을 일으키며 물었다.“몸은 좀 어떠세요?”원장이 대답했다.“많이 나은 것 같아.”“원장님...”사람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그들은 연구원이지만 모두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원장의 갑작스러운 발작에 사람들은 모두 그가 병을 앓고 있다는 걸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숨이 갑자기 턱 막히는 병은 여러 가지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원장은 일어서며 손을 저었다.“아이고, 나이를 먹으니까 몸을 못 쓰게 되었네.”“몸이 편찮으세요?”정경봉이 물었다.“말씀하시지 않으면 다들 걱정한단 말이에요.”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그들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에 원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걱정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뭐, 알려주지. 나 악성 부정맥에 걸렸어.”“원장님...”“됐어, 나 괜찮아.”원장이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건 바로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오늘부로 정식 퇴직을 선언한다. 앞으로 송 원장이야말로 이 센터의 원장이니 협조 잘하고, 그래야 나도 마음이 놓여. 내가 안심하고 가도 되는지 모르겠네.”“네, 당연히 안심하셔도 되죠.”정경봉이 앞장서 말했다.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러자 이영이 대답했다.“너무 세게 치지는 않아서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그럼 저 사람은 왜 아직 안 가고 저러고 있는데요?”송연아가 물었다.“아마도 제가 내다 버렸을 때 다리가 부러져서 걷지 못하나 봐요.”이영이 말했다.“그럼 그 사람은 계속 거기에 누워있을 것이 아니라 전화를 쳐서 사람을 불렀겠죠, 구해달라고.”송연아는 하동훈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갔다.다리가 부러졌다고 움직이지 않는다고?어디서 사람을 속이려고.이때 이영이 말했다.“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어서 전화해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여기 있어서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할 거고요.”이때 강세헌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잘했어.”강세헌은 하동훈이 송연아가 예전에 짝사랑했던 남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 항상 신경이 쓰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그는 고소해하면서 남몰래 기뻐했다.“감사합니다, 대표님.”이영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굳은 얼굴로 공손하게 말했다.“구급차 좀 불러줘, 계속 이렇게 누워있는 건 보기 좋지 않잖아.”“네.”이영이 응답했다.강세헌이 차를 몰고 떠났고 이영도 구급차를 부른 뒤, 차에 올라 강세헌의 차를 뒤따랐다.“오늘은 찬이 데리고 나가서 외식도 하고 놀이터도 가자.”강세헌이 말했다.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송연아는 강세헌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우리는 부모로서 자격 미달이에요.”강세헌이 말했다.“앞으로 최선을 다해야지.”“나도 그럴 거예요.”송연아가 말했다.그들은 돌아가서 찬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찬이는 너무 기분이 좋아 송연아의 품에 엎드려 신이 나서 두 다리를 계속 흔들며 말했다.“엄마, 아이스크림도 먹고 기차도 타고 싶어요.”송연아는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그래.”...남자는 연애를 안 하면 똑똑해지는 것 같다.안이슬이 떠난 후, 심재경의 회사는 많은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번에 한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용운시에서 1,5
그 여자가 말했다.“당신 취했어요.”그녀는 차 문을 닫고 심재경을 데리고 호텔로 갔다.그는 어떻게 보아도 눈앞의 여자가 안이슬로 보였기에 그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가지 마.”여자는 심재경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을 알았지만 그녀가 해야할 일은 타지에서 온 재벌을 잘 모시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안이슬인 척 했다.곧 차가 호텔에 도착했고 여자가 심재경을 부축하여 호텔로 들어갔다.방문 앞에서 카드를 긁고 문을 열었을 때, 심재경은 갑자기 그 여자를 밀치더니 휘청거리면서 소리쳤다.“너... 넌 안이슬이 아니야!”여자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당신 취했어요!”“넌 누구야?”심재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았다.“꺼져, 나 건드리지 마.”심재경이 다시 그녀를 밀쳐낼 때, 몸이 먼저 반응하듯이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나더니그내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 여자는 연거푸 두 번 밀쳐지자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나도 먹고 살려고 이러는 거야, 정말 내가 너와 가까이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만취 상태인 심재경을 본 여자는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쨌든 그녀는 이미 돈을 가졌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어서 그냥 돌아서서 가버렸다.옆방.안이슬이 다친 남자를 거즈로 처치해주고 있었다.“별일도 아닌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게 해서 미안해.”양명섭이 창백한 입술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난 괜찮으니까 빨리 돌아가.”안이슬은 약을 챙기면서 말했다.“다음부터 임무를 수행할 때 좀 조심해, 이번 부상이 치명적이지 않아서 다행이지. 아니면...”“알았어.”안이슬은 일어나면서 당부했다.“푹 쉬어. 그럼 내일 다시 올 거니까 나 먼저 가볼게.”“응.”양명섭은 안이슬의 예전 동료이자 친구이다.안이슬이 이쪽으로 온 건 이곳의 생활 리듬이 느린 편이라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동료의 친구를 통해 이쪽에서 옛날에 했었던 일과 결이 비슷한 안
호텔 앞.심재경은 어두운 표정으로 눈앞의 별로 인상이 없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면서 자신이 그를 문 앞에 버린 일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를 살펴보다가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저예요.”심재경은 분명히 어젯밤에 안이슬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도 또렷하게 떠올랐고 그토록 절절한 감정까지 느꼈었다.설마 안이슬이 너무 보고 싶어서 환각을 본 것일까?그래서 다른 여자를 그녀로 착각한 것일까?황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어때? 우리 정이의 서비스에 만족했어?”말할 때, 황 사장은 계속 그 여자를 앞으로 내세웠고 여자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었다.“심 대표님...”심재경은 어두운 눈동자로 황 사장을 바라보며 차갑게 입꼬리를 치켜세웠다.“투자는 없던 것으로 하죠!”“심 대표...”심재경은 비서의 손에서 300만원을 가져와 그 여자에게 던졌다.“넌 딱 이 정도의 가치야.”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니,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말을 마친 심재경은 차에 올랐고 황 사장은 일의 자초지종을 몰라 심재경이 왜 화가 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심 대표,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 거야?”그리고 바로 뒤돌아서서 그 여자를 혼냈다.“어떻게 된 거야?”여자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심재경은 쓸데없는 해명을 듣고 싶지 않은 듯, 귀찮은 얼굴로 비서에게 말했다.“운전해.”“심 대표...”황 사장은 해명하고 싶었지만 차는 이미 떠난 후였고 애꿎은 여자에게 욕을 퍼부었다.“너 도대체 뭘 한 거야? 원래 희망이 있었는데, 무슨 짓을 했기에 저렇게 화나게 한 거야? 어렵게 끌어들인 투자자가 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게 말이 돼?”여자는 돈을 품에 꼭 안고 생각했다.‘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또 돈 벌었네. 이 정도면 이득 본 거지. 그래도 겉으로 티내면 안 돼.’“내가 어떻게 알아요? 저 사람에게 이상한 취향이 있겠죠.”“그래?”황 사장이 입술을 삐죽거렸다.“분명히 그럴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왜 화를 내겠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날 찾
“괜찮아요.”찬이가 웃는 것을 보니 송연아도 매우 기뻤다. 그녀는 강세헌의 팔에 기대어 찬이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작은 볼을 살며시 꼬집으면서 말했다.“아들이 주는 솜사탕이 먹고 싶네.”찬이는 곧바로 송연아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입가에는 온통 끈적끈적한 설탕 가루가 묻었는데 종이로 닦으니 종이 부스러기가 그 위에 붙었다.송연아는 마음속으로 입 주변이 이렇게 끈적거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먹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이리 와.”강세헌이 손에 생수를 묻혀 송연아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물로 끈적끈적한 사탕 가루를 쉽게 닦아낼 수 있었다.강세헌은 눈을 내리깔고 진지하게 꼼꼼히 닦아주었고 송연아는 그의 아름다운 용모에 마음이 설레었다.그녀는 지금 외모 지상주의가 된 것 같았고 약간의 허영심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남자의 옆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든 여자의 부러움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 그녀는 옆에 여자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송연아는 웃으며 강세헌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마치 이 남자가 그녀의 것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 같았다.이때 따르릉 소리가 울렸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기차 놀이기구는 한 줄에 세 사람이 탈 수 있기에 마침 그들은 함께 앉을 수 있었다.그 놀이기구는 증기 기관차 소리를 흉내 내면서 꽝꽝 울리고 있었다.찬이는 흥분하여 난간에 엎드렸고 강세헌은 그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머리 내밀면 안 돼.”찬이는 말을 듣지 않고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난간에 달라붙어 계속 엎드렸다.그래서 강세헌은 아예 찬이를 끌어안고는 그의 입을 닦아주었고 송연아는 솜사탕을 조금 떼어내어 강세헌의 입에 넣었다.“당신 입에만 안 묻었어요.”강세헌은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송연아를 바라보았는데 입을 벌리지 않아 솜사탕이 인중에 묻으면서 하얀 수염이 자란 것 같았는데 모양이 조금 우스꽝스러웠다.송연아는 웃음이 절로 나왔고 강세헌은 입을 벌
“그 몇 사람의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가봐야겠어요.”단서가 용운시에 없었기 때문에 진원우는 급히 그쪽으로 가서 확인해야 했다. 이미 가는 길이었지만 그는 먼저 강세헌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되어 전화한 것이었다.강세헌이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네.”말이 끝나고 전화를 끊은 강세헌이 돌아서서 송연아가 앉아 있던 곳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송연아는 최근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강세헌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송연아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성큼성큼 걸어갔다.“어디 갔다 온 거야?”송연아는 강세헌에게 보여 주었다.“내가 당신에게 주려고 메밀면을 사 왔는데, 시간이 늦어서 다른 건 살 수 없었어요.”강세헌이 송연아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그가 메밀면을 안 좋아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메밀면은 그래도 훨씬 담백하잖아요. 만약 이것도 먹고 싶지 않다면, 돌아가서 아줌마더러 야식을 좀 만들어 달라고 해요...”“아니야.”강세헌이 말했다.“돌아섰는데 네가 안 보이길래...”송연아는 웃으며 말했다.“왜요, 내가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해요?”강세헌은 송연아를 끌어안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터프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녀에게 말했다.“그래, 한순간도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마.”고개를 든 송연아의 시선이 그의 늘씬한 목덜미와 튀어나온 목젖에 놓이자, 섹시하면서도 상남자다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아니면, 당신이 매일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 경호원 해요.”송연아는 강세헌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날 먹여 살릴 거야?”송연아가 메밀면을 탁자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그러죠. 일단 이리 와서 앉아요.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거 알아요. 근데 오늘 한 번만 봐줘요. 다음번에는 포장마차에서 같이 먹자고 하지 않을게요.”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