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요? 다 큰 사내자식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울고 싶은지요?”송연아도 똑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당연히 그의 마음이 이해되었다.진원우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애린 씨를 정말로 사랑하는 걸까요?”그는 송연아에게 묻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자신에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애린 씨에게 조금만 더 잘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그는 구애린과 연애하는 동안 계속 일하느라 바빠 두 사람이 함께 식사했던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녀가 매번 회사로 찾아왔을 때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더는 오지 말라고 했었다.구애린이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했다.그녀가 자기 아이까지 임신했지만 결혼식 하나 해주기 싫었고, 그저 그녀가 묵묵히 자기를 따라다니기를 바랐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후회가 몰려왔다.그는 너무 이기적이고 구애린에게 못 할 짓을 많이 했다. 지금 도대체 무엇으로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상처를 입은 그녀의 몸과 마음을 메울 수 있단 말인가?“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요. 하지만 애린 씨가 나를 보면 자극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애린 씨가 떠나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 애린 씨에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줘야죠. 내가 범인들을 찾으면 애린 씨를 위해 직접 복수할 거예요. 그리고 다시 애린 씨를 찾아가겠어요.”진원우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단기간 내에는 깨지 않는 거죠? 잠이 들었을 때 얼굴을 보고 싶은데.”송연아는 얼굴을 돌려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고는 말했다.“들어가요. 몇 시간 안에는 깨어나지 않을 거예요.”진원우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병실로 다가갔다.문손잡이를 잡더니 흠칫하고는 송연아에게 말했다.“이 일은 연아 씨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이미 일어난 일이니 더는 생각하지 말죠.”송연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고마워요.”진원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송연아는 복도 벤치에 앉아 넋을 놓고 기다리
“세헌이가 작은 회사 사장도 아니고, 내조할 아내가 있어야 하는 건 맞아. 그의 일을 돕고, 집안일을 신경 쓰는 아내 말이야. 세헌이가 가정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알아. 전에 나에게도 찬이를 데리고 프랑스에 가야 할지 물었어. 거기에서 집을 사고 도우미도 준비했기에 프랑스로 가기만 하면 편안히 살 수 있대. 프랑스에 가면 일도 편하게 처리할 수 있고. 그런데 프랑스로 가려는 얘기를 더 꺼내지 않은 게 연아 너 때문이 아닐까?”송연아는 단 한 번도 강세헌에게서 그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오늘 싸우면서 송연아는 강세헌이 프랑스에 가서 살림을 차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그러니까...”“연아야, 세헌이가 돈이 많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너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돼.”한혜숙이 말했다.그녀는 송연아가 계속 일을 하는 것을 지지했고, 앞으로 계속 아이들도 돌볼 것이다.송연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한혜숙을 바라봤다.“지금이야 너를 아끼고 사랑하겠지. 하지만 넌 이미 아이를 둘이나 낳았잖아. 밖에 예쁘고 젊은 여자애들이 널리고 널렸어. 나는 네가 나처럼 물러설 곳도 없기를 바라지 않아. 알겠어?”배신을 겪어본 한혜숙은 진심으로 딸을 위해 생각했다.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미리 대비하는 것도 나쁠 것 없었다.한혜숙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내가 얘기를 잘해볼게.”“무슨 얘기를 할 거예요?”송연아는 갑자기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그녀는 한혜숙이 두 사람 일에 끼어드는 걸 원하지 않았고, 이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한혜숙이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까. 뭐 좀 먹어. 몸이 망가지면 정말로 집에 있어야 하니까.”송연아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엄마, 고마워요.”“고맙긴, 뭘. 나는 네 엄마야. 언제든지 네 생각을 가장 먼저 한다고.”한혜숙이 한숨을 길게 쉬며 말을 이어갔다.“만약 너랑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테이블 앞에 앉은 아들을 보니 강세헌의 차가운 얼굴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는 오로지 송연아와 아이들 앞에서 그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었다.강세헌이 찬이를 안아 올렸고, 찬이가 귀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빠, 엄마는요?”강세헌은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엄마는 출근했어, 저녁에 돌아오실 거야.”찬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아빠, 저녁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나가 놀고 싶어요.”강세헌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그는 찬이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아빠로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으니 말이다.찬이는 잔뜩 신이 나 박수를 쳤다.웃고 있는 그의 밝은 두 눈은 초승달처럼 예뻤는데 송연아의 눈과 똑 닮았고, 다른 이목구비는 그를 닮았다.강세헌은 갑자기 찬이와 둘째가 태어날 때 송연아가 겪었던 시련을 떠올렸다.‘연아를 속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했었는데. 아무리 다급했어도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닌데.'강세헌은 이제 송연아가 돌아오면 그녀에게 먼저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똑똑.’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그가 들어오라고 하자 한혜숙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찬이야, 이제 낮잠 자야지.”강세헌은 이따가 할 일이 있었기에 찬이를 한혜숙에게 맡겼다.한혜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혹시 잠깐 얘기해도 돼?”강세헌은 찬이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저녁에 돌아와서 얘기해요.”아마도 찬이가 자리에 있어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한혜숙은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알겠어.”...병원에서.진원우는 구애린이 깨어나기 전에 병실을 나섰다.“그럼 애린 씨를 잘 부탁할게요.”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애린 씨 옆을 잘 지키고 있을게요.”진원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앞에 선 채 다시 한번 구애린을 돌아보며 잠깐 망설이더니 끝내 성큼성큼 병실 밖으로 나갔다.송연아가 진원우를 불렀다.“비행기 티켓을 두 장 예약했어요. 제가 직접 애린 씨를 아버님에게
비행기가 기류를 만나 흔들렸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시차 때문에 미국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낮이었다.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송연아는 미리 구진학에게 연락했었다.그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출구로 나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구진학을 발견했다.송연아는 구애린 몰래 모든 일을 솔직하게 구진학에게 말했다.그는 표정이 굳었지만 구애린이 부담을 느낄까 봐 두 사람을 본 순간 아무 일도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 구진학이 웃으면서 말했다.“돌아왔어?”“아빠.”구애린도 구진학 앞에서 애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했다.차마 미소를 지을 수는 없었고, 다만 최대한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은 그녀의 두 눈과 피곤한 얼굴을 보면 그녀의 상태가 절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구진학은 여전히 모른 척하며 말했다.“가자, 집에 가자.”그는 딸을 꼭 안으며 말했다.“집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준비하라고 했어. 한국에 있는 동안 집밥이 그리웠지?”구애린이 말했다.“네, 엄청 먹고 싶었어요.”“그럴 줄 알았어. 너 어릴 때부터 먹는 거 좋아했잖아.”구진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 구진학의 말을 들으면서 구애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빠.”구애린은 구진학을 와락 끌어안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구진학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말했다.“다 큰 어른이 아직도 나한테 애교를 부리면 어떻게 해. 왜 이렇게 서럽게 울어? 진원우가 괴롭혔어?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가서 너를 위해 복수할까?”“아빠.”구애린이 다급히 설명했다.“아니요, 원우 씨가 저를 괴롭힌 거 아니에요.”“그럼 왜 울어?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얼른 집에 가요. 집이 그리워요.”송연아는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아무래도 구애린을 구진학 옆으로 보낸 건 맞는 선택인 듯했다. 적어도 구애린은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두 사람의
강세헌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강세헌은 부모가 일찍 돌아가서 부모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적어도 어렸을 때, 가족이 곁에 있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지는 않았다.“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이기적으로 보이는 걸 알아...”“이해해요.”강세헌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미 생각의 정리를 마쳤다.그와 송연아는 동등한 관계지, 그녀가 자기를 위해 희생해야 할 존재는 아니었다. 그건 불평등한 관계밖에 더 되지 않는다.구애린의 일을 겪고서 송연아는 심신이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강세헌은 그런 그녀에게 위로를 건네주지 못할망정, 그녀와 싸우기나 했으니 그런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한혜숙이 잠깐 멈칫하고는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강세헌이 대답했다.“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잘못했어요.”한혜숙은 하려던 말이 더 있었지만 결국 딸을 위해 일하는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그런데 강세헌이 이렇게 빨리 꼬리를 내릴 줄은 생각지도 못해 한혜숙도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강세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처리해야 할 회사 일이 있어서 이만 일어날게요.”한혜숙이 다급히 말했다.“그래, 가서 일 봐. 그게, 오늘 내가...”강세헌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우리는 가족이잖아요, 괜찮아요.”한혜숙은 조금 쑥스러웠다.강세헌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한혜숙에게 말했다.“저는 기뻐요, 연아에게 어머님이 있으니 복받은 거죠. 당연히 저도 덕분에 복받았고요.”그는 한혜숙이 진심으로 송연아를 위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엄마로서 한혜숙은 합격이었다.“...”한혜숙은 어안이 벙벙했다.‘왜 세헌이의 말을 못 알아듣겠지? 하지만 진지한 얼굴을 봐서는 농담 아닌 것 같은데.’한혜숙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송연아가 국내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서너 시였다.비행기에서 내린 후 그녀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연구센터로 향했다.그녀는 이미 이틀 동안이나 연구센테에 가지 않았다.막 부임하고서 이틀 동안이
송연아가 먼저 눈을 피했다.“미안해요.”송연아는 초조하게 옷자락의 끝을 잡았다.문득 솟구치는 불안감에 그녀는 심지어 강세헌과 눈도 마주치지 못해 그저 피하기에 급급했다.강세헌은 머리를 닦던 수건을 내려놓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우람한 몸집의 그는 천천히 가냘픈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날 봐.”강세헌이 말했다.그의 낮고도 감미로운 목소리는 유난히 매혹적으로 들렸다.송연아는 문에 기댔는데 등이 시려왔고 강세헌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강세헌은 고개를 숙이더니 바로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송연아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키스였기 때문이다.“웁...”송연아가 강세헌을 밀어내며 말했다.“화내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강세헌이 그녀를 바라봤는데 겨우 이틀 만에 야윈 그녀의 얼굴을 발견했다.“잘못한 건 당신이 아니라 나야.”그의 검은 속눈썹이 짙게 드리워졌고 깊은 눈동자를 떨며 송연아를 바라봤다.“남편으로서 내가 너무 못된 말을 한 것 같아. 자꾸만 내 아내를 속상하게 하니...”“아니에요.”송연아가 그의 입술을 막았다.그녀는 밝고도 맑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했다.“세헌 씨가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자꾸 세헌 씨에게 폐만 끼치고 다른 사람까지 힘들게 하잖아요. 심지어 아내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가끔은 내가 잘못했는지 의심이 들어요. 나...”“연아야.”강세헌은 몸을 떠는 송연아를 꼭 끌어안았다.그녀의 말을 들은 강세헌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미안해, 미안해.”그는 뜨거운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대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연아야. 미안해...”그는 그녀의 귀에 키스를 퍼붓기 시작하더니 감미롭고도 섹시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당신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고 싶고 당신을 잘 보호하고 싶어. 하지만 당신이 하마
그들은 문 앞에서 저번에 다쳤던 운전기사를 만났다.운전기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그 아가씨는 결국 구하지 못했어요...”강세헌은 그가 최선을 다한 걸 알고 있었다.“당신 일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맡겼어요, 우선 상처부터 잘 치료해요.”강세헌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자책했다. 그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어쩌면 구애린을 구했을지도 모른다.“사모님.”운전기사가 말했다.“고마워요.”송연아가 재빨리 상처를 처리해 준 덕분에 그는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그는 강씨 가문에서 일하면서 송연아가 친근한 사람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싫은 내색 없이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관심할 줄은 몰랐다.송연아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그녀는 의사였고, 사람을 살리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기 때문에 다쳤는데 말이다.“가자.”강세헌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송연아는 뭔가를 떠올리더니 운전기사에게 물었다.“정경봉 씨가 약은 다 가져다줬죠?”운전기사가 말했다.“네, 다 주셨어요.”“제때 약을 복용해요. 그리고 푹 쉬면 곧 나을 거예요.”“네, 감사합니다.”운전기사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별말씀을요.”말을 마친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강세헌의 뒤를 따랐다.강세헌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번에 내가 새로 사람을 뽑았어. 당신이 출근해야 하기도 하고 옆에 너무 많은 사람이 따라붙으면 사람들의 주의를 불러일으키니 경호원은 한 사람으로 준비했어. 주요하게 당신 안전을 책임질 거야. 전에 기사님도 싸움을 잘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잖아. 이분은 내가 나인 조직에서 직접 모셔 온 분이야. 혼자서 스무 명도 상대할 수 있대.”송연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강세헌이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부부 사이인데 고맙긴, 뭘.”“강 대표님.”그 경호원은 차 옆에
그녀는 다른 사람이 이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하동훈은 무리한 요구까지 하고 있었다.용서? 그녀는 평생 고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이영 씨, 이 사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고, 말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아요.”말을 마친 송연아는 이곳에 한 시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아 돌아섰다.이윽고 처참한 비명이 들려오더니 또 갑자기 멈췄다.송연아가 고개를 돌렸는데 하동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비명도 내지르지 않았다.그녀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눈길을 이영에게로 돌렸다.이영이 말했다.“소리는 못 내게 했습니다. 이제 사모님께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던져버리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하동훈을 들고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는데 마치 가벼운 병아리를 들 듯 너무 수월해 보였다.“수고했어요.”송연아는 이영이 돌아올 때 한 마디 건네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역시 프로페셔널한 경호원은 다르네, 참 효율적이야.’“원장님.”옥자현은 송연아가 걸어 들어오는 걸 보더니 바로 아부를 떨며 그녀에게 다가갔다.송연아는 그녀를 무시하며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정경봉을 불렀다.“기계 박사를 회의실로 불러와요. 할 얘기가 있어요.”인공심장은 한 개의 심장이 아닌 심장 대신 기능을 해주는, 인공적으로 개발된 기계이다.이 기계는 전문가의 정밀 제작이 필요했다.“참, 원장님께서 오셨어요.”정경봉이 말했다.“어디에 있어요?”“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제가 데리고 갈게요.”정경봉이 말했다.송연아가 그를 따라가자 곧바로 원장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지금 송연아는 이미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원장은 아직 퇴직한 게 아니라 송연아에게 인수인계하는 단계였다.원장은 송연아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시합하기로 했잖아? 해?”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 필요 없는데요. 다들 새로운 원장님 얼마나 따르는데요.”옥자현이 걸어와서 제일 먼저 말했다.원장이 손을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