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단 커피를 좋아해요.”그러고는 앞에 놓인 블랙커피를 가리켰다.“커피를 마시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데 너무 써서 싫어요. 그래서 저는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많이 섞어요. 그렇게 마시면 쓰지 않아서 좋거든요. 어제 저는 저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악성 부정맥으로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병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수시로 목숨을 잃을 수 있어요. 저는 우리의 직업이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심지어 환자를 치료해 주는 의사들보다도 더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의 연구로 인하여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신성하고 고귀한 연구센터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요?”송연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내 숨쉬는 소리가 달라졌다. 그녀를 반대하던 사람들도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그렇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이었던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심장을 연구하는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한 사람을 배척하기 위해 무슨 짓을 한 거지? 이게 진정 맞는 건가?’옥자현이 먼저 말했다.“이제부터 송 원장님을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전에는 실수로 저의 발을 밟았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못되게 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속 좁은 사람이였습니다. 사실 기존 원장님의 안목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업무에 열중하고 이 일에 평생을 바친 원장님께서 우리 연구센터를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실력 없는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분명 심사숙고를 해서 송 원장님께 맡기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옥자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자리에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송연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손을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마음에 두지 않았어요. 그리고 고마워요.”옆에 서 있던 정경봉 역시 송연아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정말 송연아가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전 원장님이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원장 자리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송연아의 뒤에
구애린은 자신이 무모한 짓을 한 것 같아 사과부터 했다.“죄송합니다. 저는...”구애린이 송연아를 보며 눈빛을 보내자, 송연아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밖에서 10분만 기다려요.”구애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고 회의실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왔는데 송연아는 꽤 많은 서류를 품에 안은 채 마지막에 걸어 나왔다.“무슨 일 있어요?”구애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연아가 서류를 사무실에 갖다 놓는 동안 구애린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송연아가 나오는 것을 보고 구애린은 앞으로 나와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오늘 원우 씨가 저보고 날짜를 잡으라고 전화했어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아빠에게 얘기하려고요.”“그래야죠.”송연아는 어쨌든 결혼은 인생에서 거사이기 때문에 집안 어른들과 상의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일이 이렇게 바빠요?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회의하고 있어요. 아직 저녁 안 먹었죠? 제가 살게요.”송연아는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구애린의 기분을 망치기 싫어서 동의했다.“좋아요!”“제가 탕수육을 잘하는 집을 아는데 마침 이 근처에 있어요. 거기 가요!”“단 걸 좋아해요?”송연아가 물었다.“신 걸 좋아하면 아들이고 매운 걸 좋아하면 딸이라고 들었는데 저는 단것을 좋아해요. 설마 남자도 여자도 아닌 건 아니겠죠?”“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송연아가 말했다.구애린은 농담이라고 하며 웃으며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만 낳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제가 딸을 낳으면 우리 사돈 할 수 있겠네요?”“고모잖아요?”“피 한 방울도 안 섞였잖아요.”구애린이 말했다.“저는 우리 애들이 고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송연아는 주요하게 친척이 없는 강세헌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게다가 구애린은 성격도 좋고 활발해서 강세헌한테 이런 동생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이들도 고모가 있으면 가족 또 생겨서 좋을 것 같았다.“좋아요. 고모 할게요. 여자아이를 낳아서 두 오빠의 사
키 크고 삐쩍 마른 남자가 걷어차여 바닥에 주저앉았다.자기를 걷어찬 사람을 똑똑히 보고는 물었다.“당신 누구야?”달려온 사람은 운전기사였다.그는 송연아를 보호하며 말했다.“사모님, 어서 가세요.”그는 송연아의 운전기사였을 뿐만 아니라 강세헌이 그녀를 위해 배치한 경호원이기도 했는데 송연아의 출퇴근을 책임지는 건 물론, 그녀의 안전을 책임지기도 했다.송연아가 다급하게 말했다.“애린 씨 좀 구해주세요.”“네.”운전기사가 말했다.걷어차인 남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사람을 잡으러 왔는데 그가 제일 먼저 쓰러 눕게 됐으니 부하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다들 뭐 하고 있어! 당장 저 사람 잡아!”그의 부하들 중에서 두 사람은 남아 구애린을 잡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송연아와 운전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운전기사는 그들과 싸움을 벌였는데 상대가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아무리 싸움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들에게 얽매여 잠시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송연아는 그 틈을 타 진원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녀는 진원우에게 주소를 알렸고, 또 재촉했다.“빨리 오세요.”“알겠어요.”전화를 끊은 송연아는 또 112에 전화를 걸었다.그들은 전혀 운전기사의 상대가 아니었다.겨우 몇 분 만에 두 사람은 의식을 잃었고, 중상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다.키 크고 삐쩍 마른 남자는 불리해지자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서 칼을 꺼내 부하들에게 나눠줬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연아는 마음이 다급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래서 마음속으로 진원우와 경찰이 빨리 도착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이런 큰 싸움에 연루되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주위 사람들은 그저 지켜만 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운전기사가 부하를 상대하는 틈을 타 남자는 뒤에서 운전기사에게 칼을 내리쳤다.송연아가 소리치며 운전기사를 일깨워줬다.“조심해요!”운전기사가 눈앞에 있는 사람을 걷어차고 다시 돌아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상대는
진원우는 뛰어왔지만 구애린을 발견하지 못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애린 씨는요?”송연아는 운전기사를 부축하고 있었다.애써 침착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렸다.“애린 씨 잡혀갔어요, 얼른 가서 찾아요!”진원우가 휴대폰을 꺼내고는 물었다.“애린 씨를 잡아간 차는 어떤 차예요? 번호판은 기억했어요?”송연아가 대답했다.“상대 차는 검은 색 미니밴이었는데 번호판이 없었어요.”그 차는 보기에 방금 구입한 것처럼 사용 흔적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일부러 아직 번호판이 달리지 않은 차를 선택했을 것이다.“저기 CCTV 있어요.”송연아가 멀지 않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이미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경찰이라면 저 CCTV를 입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차량을 추적해 행방을 더 빨리 알아낼 수 있어요.”휴대폰을 너무 꽉 잡고 있어 진원우의 손에는 핏줄이 터질 정도였다.“알겠어요.”송연아가 말했다.“죄송해요, 다 저 때문에 애린 씨가 잡혀간 거예요.”진원우가 대답했다.“아니에요, 연아 씨가 어떻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이때 진원우의 전화가 울렸고 그는 한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송연아는 운전기사를 부축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의 몸에서는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다.송연아가 다니고 있는 연구센터가 가장 가까웠기에 송연아가 운전해 운전기사를 연구센터로 데리고 왔다.정경봉은 마침 퇴근하려고 하는데 송연아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인사를 건네려고 했다.하지만 곧이어 그녀가 피투성이인 남자를 부축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송연아가 말했다.“상처를 치료해야 하니까 도구 좀 준비해 줘요.”정경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그녀의 말대로 했다.송연아가 운전기사를 의자에 부축한 후 정경봉은 의약 상자를 하나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송연아는 그 안에서 가위를 꺼내 운전기사가 다친 부분의 옷을 잘라냈다.그녀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여 조금의 시간도 지체
CCTV를 통한 정보가 전해져 왔기에 진원우는 지령에 따라 차를 운전했는데 점점 더 외진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거의 세 시간이 지났다.이곳은 CCTV도 없어 더는 추적이 어려웠다!그들 모두 단서가 끊겨서 어떻게 다음 단서를 찾을지 고민하던 그때, 송연아는 풀숲에 주차된 차를 발견했다.“저기요!”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진원우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확실히 차 한 대가 보였다.여기는 잡초가 높게 자랐기에 온전한 차가 아닌 차 지붕만 보였다.그리고 길옆에 움푹 팬 타이어 자국도 금방 생긴 것 같아 진원우는 사람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송연아도 따라서 내렸다.무성하게 자란 잡초는 높은 가지와 가는 잎으로 뒤덮였고, 땅에는 뒤엉키고 발을 찌르는 덩굴이 가득 있었다.그들은 타이어 자국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서 차 옆에 도착했다.차는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주위는 아무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진원우가 ‘확’ 차 문을 열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였다.그들이 일부러 여기에 차를 버려 시선을 끌려는 것일까?진원우가 말했다.“무슨 단서가 있는지 주위를 훑어봐.”...프랑스에서.강세헌은 임지훈의 안내하에 프랑스에 있는 고훈의 은신처를 찾았다.흰색 단독주택이었는데 앞뒤로 마당이 있었다.강세헌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데려가지 않았다. 이곳은 국내가 아닌 해외였기에 모든 일에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강세헌의 부하는 마당에서 잔디를 가꾸던 남자를 쓰러뜨리고는 자물쇠를 비틀어 열었다.고훈이 도망쳐 나온 뒤로 줄곧 이곳에서 상처를 치료했고, 거의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인기척을 들은 고훈은 문 쪽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했다.“나 물 한 잔 따라줘.”그는 자기를 돌보는 하인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다.강세헌이 그의 옆으로 걸어가자 고훈은 물잔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가 물잔을 건네지 않아 고훈은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몸을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임지훈이 생각했다.‘이러다가 정말 못 쓰게 되는 거 아니야?’하동훈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그는 계속 욕을 퍼부었는데 아마 이렇게 매너가 없고 화가 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일 것이다.송연아가 그렇게 화를 낸 것도 고훈이 그런 짓을 했기 때문이라니.“감히 나를 이용해서 그런 짓을 벌여? 젠장, 가서 죽어!”하동훈은 고훈이 송연아에게 한 짓을 알아내기 위해 고훈의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프랑스에 있는 고훈의 주소를 알아냈다.그는 이곳에 와서 이틀 동안이나 고훈을 졸랐지만, 그는 이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방금, 그는 무심결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서야 오랫동안의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당신 그러고도 사람이야? 나까지 이용해?”하동훈이 그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죽어!”“하동훈, 이거 놔... 미쳤어?”“내가 미쳤어도 당신 때문에 미친 거야!”고훈은 하동훈에게 맞고만 있을 수 없어 두 사람은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옆에서 지켜보던 임지훈이 말했다.“끼리끼리 싸우고 있네, 두 사람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윙윙.’갑자기 강세헌의 휴대폰이 울렸다.강세헌이 전화를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전화기 너머로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가 다시 한번 스크린을 확인해 보니 송연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강세헌은 이쪽 소리가 들릴까 봐 휴대폰을 다시 귀에 대고는 걸어 나갔다.송연아가 먼저 그에게 연락을 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갑자기 그녀의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왜 말을 안 해? 나 보고 싶었어?”국내의 어느 병원에서.송연아는 수술실의 구석에 앉아 가냘픈 몸을 움츠리고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입을 가린 채 흐느꼈는데 참아보려고 했지만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송연아는 어떻게 진원우를 마주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강세헌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연아야, 왜 그래?”감정을
송연아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이미 얘기했잖아요. 그만 물어봐요...”진원우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덤덤한 척했다.“나에게 말해줘요.”진원우가 목소리를 낮췄다.송연아는 부은 두 눈을 감고 말했다.“사실 어느 정도 추측이 가지 않아요?”송연아의 팔을 잡았던 진원우의 손가락이 천천히 풀렸다.구애린을 찾았을 때 그녀는 옷이 풀어 헤쳐진 채로 차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풀밭에 누워 있었다.“그러니까 묻지 마요.”송연아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많이 속상했지만 될수록 소리 낮춰 말했다.“한 시도 떠나지 않고 애린 씨를 지킬게요. 지금 애린 씨는 원우 씨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니 애린 씨 앞에 나타나지 마요. 애린 씨가 더 자극받을까 봐 걱정돼요.”진원우는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우울했다.속상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송연아도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그럼 애린 씨 보러 들어갈게요. 옆에 누군가는 지키고 있어야죠.”말을 마친 송연아는 몸을 돌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구애린의 수술은 그녀가 직접 했다.그래서 구애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송연아는 그녀를 자극할까 봐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병실로 갈게요.”구애린은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송연아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송연아는 조용히 그녀를 병실로 옮기고는 침대를 고정시켰다.그리고 의자를 하나 옮겨 침대 옆에 앉았다.구애린은 몸을 돌려 누우며 그녀를 등졌다.송연아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밖에 내뱉지 못했다.지금 이 순간, 모든 위로의 말은 너무 무력하게 들릴 것이다. 말로는 상처받은 그녀의 마음을 절대 치료할 수 없었다...어두운 불빛, 조용한 밤.억눌릴 대로 억눌린 구애린의 울음소리는 너무 또렷하게 들려왔다.송연아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울고 싶으면 울어요. 여기 다른 사람 없어요.”
강세헌은 사태가 심각할 것을 예상했지만 송연아에게서 직접 들으니 저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곧이어 얼굴색도 어두워졌다.그가 화난 건 단지 이 일의 원래 타깃이 송연아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작정하고 이 일을 꾸몄다는 걸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일 그만둘 수 있어?”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는 그가 지금 이 순간에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깐 멈칫했다.“왜, 왜요?”송연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만약 후임 원장 자리를 물려받기로 약속하지 않았다면 난 너를 데리고 프랑스에 가서 살았을 거야. 거기에 우리가 가서 생활할 모든 것을 잘 준비해 뒀거든. 그러면 이 일이 안 생겼을 수도 있었잖아.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난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줄 수 있어...”“그러니까 지금 내 탓을 하는 거예요?”송연아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네, 인정해요. 나 때문이에요. 내가 아니었으면 애린 씨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겠죠. 내 탓이에요. 다 내 탓이에요...”그녀는 강세헌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러니까 세헌 씨도 내 탓을 하는 거예요?”강세헌이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어갔다.“일단 진정해...”“내가 어떻게 진정해요?”송연아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는데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나도 속상해요. 그런데 세헌 씨가 지금 나에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원인이 나라고 하니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요?”“그럼 이 일이 만약 정말 당신에게 발생했다면 내가 어떤 기분일지 예상이 돼? 당신이 이 일에서 빠져나간 게 아니야, 다만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 당한 것이지. 그런데도 제멋대로 굴래?”강세헌이 두려운 기분이 든 건 사실이었다.고훈의 일은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고 하지만 이번 일은?송연아는 멍하니 서서 그를 바라봤다.그녀는 계속 침묵을 지켰는데 강세헌의 말에 일리가 있었지만 완전히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이 일에 그녀의 책임이 있다는 걸 그녀 역시 잘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