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이 송연아의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나야.”송연아는 돌아서서 그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놀랐잖아요.”강세헌이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다음에는 조심할게.”송연아는 조금 전에 집에 강도가 들어온 줄 알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놀란 기분을 가라앉히더니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이슬 선배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돼요. 혼자 어디로 갔을까요?”강세헌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피곤하지 않아?”송연아는 목 스트레칭을 하더니 꽤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피곤해요.”“피곤하다면서 그것까지 신경 써?”송연아는 그제야 강세헌이 그녀를 관심하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다고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남도 아닌데 어떻게 모르는 체해요.”“알았어. 이제 자자.”강세헌이 송연아를 안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 아직 샤워 안 했어요.”“하루는 안 씻어도 돼. 그냥 자자.”송연아는 침대에 누워 말했다.“그럼, 내일 아침에 씻어야지.”송연아는 많이 피곤했는지 바로 눈을 감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강세헌이 잠든 그녀를 꼭 껴안자, 송연아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달콤하게 잤다....심재경은 안이슬이 떠났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을 모두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안이슬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났다.심재경은 혼자서 목적 없이 길을 걸었다. 생각해 보면 안이슬이 기억을 잃었을 때 비록 복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매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외롭고 슬펐고 그는 안이슬의 불행이 모두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했다.늦은 밤거리는 조용했고 달빛은 차가웠으며 나무 그림자는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는데 찬 바람이 부는 밤거리에서 심재경의 그림자는 가로등으로 인하여 유난히 길어 보였다.심재경은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날이 밝을 때쯤에야 집에 도착했다. 심재경 어머니는 심재경이 조금 더 늦었으면 사람을 시켜 찾으려던 참
“쉿.”옥자현이 신호를 보냈다.송연아는 이마를 찡그리며 상대방을 또렷이 바라보았다.“뭐 하는 거예요?”‘왜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야?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면 되지, 왜 이런 은밀한 곳으로 오는 거지?’송연아는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그러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송연아는 옷을 정리하며 옥자현이 보며 물었다.“뭐가 고마운데요?”“알면서 왜 그래.”옥자현은 말끝을 흐렸다.송연아는 정말 무슨 이유인지 몰랐다.“말 안 해주면 갈 거예요?”“잠시만. 왜 그렇게 급해.”옥자현이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출근 시간이 다 돼 가요.”송연아가 담담하게 말했다.“어제 그 장소를 제가 알려드렸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잖아. 날 생각해서 그랬다는 거 알아.”옥자현이 웃으며 말했다.송연아는 코트 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나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연구센터에 왕따는 저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요. 남은 사람들끼리라도 단합해야 더 큰 가치를 창조해 낼 수 있지 않겠어요?”옥자현은 송연아 말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부끄러웠다. 그렇다, 그들이 먼저 송연아를 따돌렸다. 송연아의 말대로 단합해야 더 큰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연구센터에 처음 왔을 때 모두 자신이 인류사회를 구할 수 있는 구세주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사실 우리 단합은 꽤 잘 돼 있어.”“단합이 잘 돼 있다는 거 믿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힘을 합치면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믿어요.”송연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옥자현은 송연아가 아주 쓸모없는 것 같지 않아 그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따돌렸지만, 그녀는 충분히 권력이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복하지 않았고 자기가 무례하게 했어도 추궁하지 않았다. 어쨌든 송연아는 곧 연구센터 원장이 된다.“더 붙잡지 않을게요. 먼저 들어가세요.”“근무 시간에 게으름 피우면 안 돼요.”송연아
“어떻게...”송연아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진단서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원장님이 병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 은퇴한 걸까?’그녀는 심장외과 의사였고 현재 인공심장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심장에 관한 질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원장님이 앓고 있는 병은 악성 부정맥이라는 건데 들었을 때는 별로 엄중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위험하다. 부정맥, 특히 악성 부정맥은 심장병 중에서도 비교적 심각한 것이다. 악성 부정맥이 발작하면 정상적으로 뛰던 심장 리듬이 깨지면서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되어 환자가 순식간에 의식을 잃을 수 있는데 이 상황에서 반드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사망 할 수 있다.보고서의 데이터로 분석해 보면 원장의 상태는 심각하다. 초기에 발견했으면 치료할 수 있는 희망이 있을 텐데 원장은 현재 약물로 공제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만약 약물로 통제가 안 된다면...송연아는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원장은 다년간 심장 연구를 했는데 정작 본인이 심각한 심장 질환으로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감정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직업적 특성으로 그녀는 바로 감정을 조절하고 진단서를 서랍에 넣고 심호흡하고는 업무를 계속했다....심재경은 비서에게 회사 근처에 숙소를 알아보라고 시키고 또 사람을 찾아 안이슬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다 보면 안이슬에 대한 생각도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서가 숙소를 계약하고 키를 전달하러 왔다.“금성 오피스텔입니다. 회사와 가깝고 또 환경도 좋습니다. 단점은 방이 크지 않습니다.”“혼자라서 그 정도면 충분해.”심재경은 아무렇지 않게 열쇠를 서랍에 넣었다.“오늘 오후에 워스 홀에서 오 대표와 미팅이 있습니다.”“알았어.”심재경이 말했다.오후 세 시경에 심재경은 오 대표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협력 건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 있었다. 심재경이 일찍 왔고 오 대표는 10분 늦게 도착했다. 오 대표는 미모의 여성과 함께
심재경은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하마터면 차 앞에 뛰어든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심재경 씨.”심재경은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차 앞에 차분하게 서 있는 윤소민을 보고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당장 비키지 않으면 경비를 부를 거야.”윤소민은 유리창 너머로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말했다.“경비 불러요. 오늘 안 만나줘도 돼요. 어차피 계속 찾아올 거니까요. 귀찮지 않으면 매번 경비 불러요.”심재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협박하는 거야?”“아뇨, 그냥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요.”윤소민이 말했다.“윤소민, 네가 지금 나랑 따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심재경이 냉정하게 말했다.“따지려는 게 아니에요. 저와 몇 마디 얘기하는 것도 안 돼요?”“그래.”심재경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나는 널 만나는 건 물론이고 너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어찌 됐든 부부였는데 저에게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당신이 비록 우리 가문을 망하게 했지만, 저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녀는 많은 것을 깨달았는데 선과 악은 반드시 각자 응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윤소민은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응보는 내가 받아야 하는데 부모님이 같이 받게 되어서 죄송할 뿐이에요. 제가 만약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모든 일은 발생하지 않았겠죠. 그랬으면 저는 여전히 윤씨 가문의 아가씨이고 저를 따르는 사람로 많았을 텐데 그때는 왜 바보같이 당신이 아니면 안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기껏해야 남들보다 조금 더 잘생긴 것 빼고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말이죠. 잘 생겼다고 해서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꼭 저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텐데 이젠 그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저의 인생은 당신을 사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어요.”“너의 비극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네 소유욕 때문이야.”심재경의 말에 윤소민은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송연아가 받은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사랑하는 누나에게:나 떠나, 찾지 마. 난 이제 성인이고 내 앞가림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어.이 편지를 보면 많이 놀랄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이 결정은 정말로 심사숙고해서 내린 거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누나가 한 말은 모두 새겨들었고 다 맞는 말이야.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어. 만약 나비를 좋아한다면 나비가 당신을 좋아하기 전까지 당신은 절대 나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당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꽃과 식물을 키워서 나비가 멈추도록 하는 것뿐이다.이 말은 누나가 나에게 한 말의 뜻과 비슷했어. 스스로가 우수해야 좋아하는 나비도 곁에 남길 수 있다는 거지. 내가 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번 해보고 싶어.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누나 곁에 있으면 형부의 힘을 빌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 얼마나 할 수 있는지 해보고 싶어. 실패하면 다시 돌아올 면목이 없겠지만, 걱정하지는 마. 절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일 없이 잘 살아갈 거니까. 안 되면 따로 일자리 찾으면 되니까, 절대 자포자기 하지 않을 거야.전화로 얘기하지 않고 편지를 남긴 건 누나에게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야. 계속 말하고 싶었는데 누나가 내 누나여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엄마, 아빠가 같은 친형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지금보다 더 좋았을 거야.누나 잘 있어.-송예걸」송연아가 눈을 내리깔고 편지를 다 읽었지만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자, 정경봉이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저는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송연아는 편지를 접어서 봉투에 다시 넣고 정신을 차렸다.“혹시 원장님 집 주소를 알아요?”“뭐 하시려고요?”정경봉이 견제하듯 묻자, 송연아는 정경봉을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경봉 씨가 보기에는 제가 뭘 할 것 같아요? 의논할 것이 있어서 한 번 만나 뵈려고요.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아요.”“조금은 호감이 있으려고 했는데 원장직에
원장이 차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로 걸어오고 있었다.“네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어?”“원장님.”송연아는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무슨 일 있어?”원장이 묻자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집으로 올라가자. 우리 집에서 같이 식사도 하고.”원장이 말했다.“그냥 밖에 나가서 조용한 데서 얘기하시죠.”원장은 송연아가 무슨 중요한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그래. 집 근처에 유명하고 맛있는 짜장면집이 있는데 내가 살게.”그렇게 말하며 원장이 앞장섰고 송연아는 그 뒤를 따라갔다.“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맛있게 먹겠습니다.”“나에게는 사양하지 않아도 돼.”원장이 웃으며 말했다.얘기하는 사이에 짜장면집에 도착했다. 워낙에 아파트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2분 걸렸다. 화려한 식당은 아니었지만, 내부는 깨끗했다. 원장은 짜장면 두 그릇과 국물, 그리고 간단한 요리를 주문했다.“얘기해 봐요. 무슨 일이에요?”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원장이 물었다. 송연아는 가방에서 진단서를 꺼내 건넸다.“원장님, 개인 물건을 사무실에 두고 오셔서 제가 가져왔습니다.”원장은 진단서를 받아보고 웃으면서 말했다.“집에 두면 가족들이 볼까 봐 사무실에 두었어. 중요하지 않은 문서 사이에 끼워 넣었는데 물건 정리할 때 찾지 못해서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네가 찾았네.”송연아가 원장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퇴직을 서두르셨던 건가요?”“그런 셈이지, 어느 날 갑자기 급사할까 봐 두려웠어. 연구센터의 일을 제대로 정리도 못 하고 그렇게 떠나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아서.”원장의 죽는다는 말을 들은 송연아는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의사로서 가장 슬픈 순간이 바로 병에 대해 속수무책일 때이다. 원장은 테이블 위에 있는 송연아의 손을 토닥토닥하며 말했다.“어이구, 이봐, 나 지금 멀쩡해. 아주 조심하고 있으니까, 지금 나를 흥분하게 만들지 마. 심장 연구센터 원장인 나도 이런 병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일반 사람들은 이런 질병에 걸려서 아무 방법이
송연아는 유아용품 가게 안에서 구애린을 봤다.‘구애린이 유아용품 가게에 웬일이지?’구애린은 분홍색 원피스를 들고 예쁘다며 한참을 보더니 원피스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문 앞에 서 있는 송연아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언니, 언제 왔어요? 애들 옷 사러 왔어요?”송연아가 걸어가며 말했다.“지나다가 그냥 들어왔어요.”“그래요?”구애린은 송연아가 특별히 왔다고 생각했다.“맘에 드는 거 있으면 사려고요.”송연아가 말했다.“방금 몇 개 봤는데 괜찮았어요.”구애린이 열심히 고르는 걸 도와주었는데 모두 송연아의 막내아들에게 어울릴 만한 옷들이었고 송연아의 마음에도 들었다. 송연아는 구애린의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했다. 뭔가 물어보고 싶어서 한참을 망설이던 송연아가 드디어 물었다.“여기는 혼자 왔어요?”구애린이 조금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맞는다고 대답하는 모습에 송연아가 조심스럽게 또 물었다.“임신했어요?”“...네.”구애린이 대답하자 송연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축하해요.”구애린은 고민이 많은 표정으로 말했다.“결혼식을 하고 싶은데, 원우 씨는 시간이 없다며 혼인신고만 먼저 하자고 해요. 저는 혼인신고도 하고 미국에서 결혼식도 하고 싶거든요. 비록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는 아직 계시니까요. 아버지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싶거든요.”송연아는 구애린의 말에 동의했는데 구애린의 생각이 옳았다.“제가 도와줄까요?”송연아가 물었다.“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원우 씨도 언니를 찾아가지 말라고 했어요.”“왜요?”송연아가 물었다.“원우 씨는 지금 한창 바쁜 시기여서 휴가 낼 수 없다고 했어요.”구애린이 말했다.송연아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말했다.“제가 나중에 연락할게요.”송연아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강세헌에게 먼저 물어봐야 했다.구애린은 여전히 진원우가 자기를 원망할까 봐 걱정했다.“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애린 씨에게 연락한 다음에 원우 씨와 얘기
“나 프랑스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강세헌은 오늘 임지훈이 고훈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다른 업무상의 일도 처리할겸 다녀오려고 했다.“가는 길에 미국에도 잠깐 들를 거여서 며칠 걸릴지는 모르겠어.”“회사 일 때문에 가는 거예요?”송연아가 물었다.강세헌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응.”강세헌은 고훈에 관한 건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다.송연아는 나름 진원우가 정말로 바빠서 강세헌에게 휴가 신청을 못 한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결혼식을 올릴 시간은 있지 않을까? 지금은 돈만 있으면 뭐든 쉽게 다 할 수 있으니, 모든 걸 대행사에 맡기고 신랑, 신부는 결혼식 날에 나타나면 되지 않을까? 구애린이 어차피 출근을 안 하니까 상세한 건 직접 준비하면 되는 거고.’송연아는 강세헌의 옷을 받으며 말했다.“오늘 애린 씨를 만났어요.”강세헌은 눈만 깜빡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송연아는 강세헌의 눈치를 보다가 계속했다.“임신했대요.”강세헌은 눈을 번쩍 떴다.“결혼식을 올리고 싶은데 원우 씨가 혼인신고만 하자고 하더래요. 회사 일이 아주 바쁘다고요. 정말 그렇게 바빠요?”강세헌은 송연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물었다.“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원우 씨에게 결혼식 올릴 시간을 줘요.”송연아는 이어서 재빨리 한마디 덧붙였다.“그게... 내 말은 회사가 안 바쁘면요...”“알았어. 원우와 상의할게.”“세헌 씨가 보기에 애린 씨 어때요?”송연아는 강세헌이 평소에 구애린을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물었다.강세헌이 담담하게 되물었다.“무슨 말 하고 싶은 거야?”“그 두 사람이 결혼하면 우리도 선물을 준비할 건데, 원우 씨 측에 해야 할지? 애린 씨 측에 해야 할지 해서요.”강세헌이 찬이 방으로 향하자, 송연아는 찬이가 이미 잠 들었다고 말했고 강세헌은 잠깐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당신이 알아서 해. 난 애들을 보고 올게.”강세헌이 찬이 방에 들어가자, 송연아는 웃었다. 강세헌이 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