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화가 났어?”그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은 바로 자기가 송연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강세헌이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마 그녀를 화나게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이때 송연아도 진정을 되찾았다.방금은 그녀가 잘못한 게 맞다, 강세헌에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미안해요.”송연아가 먼저 사과했다.강세헌이 말했다.“괜찮아.”“...”송연아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우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송연아가 입술을 씰룩거렸다.강세헌이 웃으면서 말했다.“잘못하면 사과하는 게 맞지. 아니면 앞으로 화를 잘 내는 버릇 생긴단 말이야.”강세헌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 서로 예의를 차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이가 점점 멀어질 거니까 말이다.강세헌은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그 일은 이미 발생했고, 송연아도 충분히 괴로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그는 송연아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도와야 했다.강세헌이 너그러워서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송연아도 이 일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그녀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겁하고 뻔뻔스러운 사람은 고훈이었다.송연아를 예전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그만큼 강세헌의 태도도 중요했다.이럴 때일수록 강세헌은 그녀를 예전처럼, 평범하게 대해야 했다. 특별하게 대할수록 그 일을 상기시키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니 말이다.송연아가 결심한 듯 손을 움켜쥐었다.“세헌 씨, 한 가지 물어볼게요. 솔직하게 대답해 줘요. 요 며칠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게 나 보기 싫어서죠...”“그게 무슨 말이야?”송연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세헌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엄숙한 얼굴을 보였다.“계속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던 게 그것 때문이었어?”송연아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말에 묵인하는 셈이었다.강세헌은 그녀의 의심을 풀기 위해 솔직하게 말했다.“나 청양시로 갔었어.”단
“연아야, 우리 한번 만나자.”강세헌이 고개를 들더니 상대가 누군지 물어보는 듯했다.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도 너무나도 낯선 목소리였다.게다가 전화가 걸려 온 번호도 전혀 익숙지 않았다.강세헌이 스피커 폰에 연결하고는 물었다.“당신 누구야?”‘뚜뚜뚜...’송연아의 목소리가 아닌 걸 확인하고 상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송연아가 미간을 구겼다.“이 사람 누굴까요?”강세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몰라.”사실 속으로는 도망간 고훈이 변성기를 쓰고 전화를 걸어온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갔다.그는 번호를 적고 진원우에게 보내 알아보라고 했다.“이 시간이면 응급실에 갈 수밖에 없겠지?”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사실 그녀에게는 정말 별일이 아니었다, 따뜻한 죽만 먹으면 통증이 곧 가라앉을 텐데 말이다.의사가 진료하더니 고통을 참지 못하겠으면 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송연아는 그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크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위통은 천천히 치료해야 하지, 그 약으로만 치료되는 게 아니라 송연아는 괜찮다며 거절했다.송연아가 진료실을 나서자 강세헌이 물었다.“의사가 뭐래?”“뭘 좀 먹으면 나을 거래요.”송연아가 대답했다.강세헌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시간에 아직 문을 연 식당은 없었다.송연아가 먼저 말했다.“집에 돌아가서 죽 좀 끓여서 먹으면 돼요.”“미리 집에 전화할게. 아주머니더러 죽 끓이라고 할 테니까 집 가면 바로 먹을 수 있을 거야.”그가 말하면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강세헌이 전화로 오은화에게 죽 끓여달라며 부탁하던 그때, 송연아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강세헌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 그래?”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앞을 보라며 눈짓했다.그가 고개를 들자 마침 전 집사를 발견했다.전 집사의 손에도 많은 약이 들려 있었다.그들을 발견한 전 집사도 흠칫했다.아마 이 시간에 이곳에서 그들과 마주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전 집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익숙한 목소리였는데 송연아는 바로 어제도 들은 것 같았다.그녀가 고개를 돌려 보니 전 집사였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경계심을 높였다.“무슨 일이세요.”“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전 집사가 말하고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르신은 제가 이곳으로 온 걸 몰라요. 지금 워낙 위급하신 상황이라 저에게 뭘 시키지도 못해요. 사모님을 만나러 온 건 온전히 제 생각이에요.”송연아가 바로 거절했다.“저희가 얘기할 게 뭐가 더 있나요?”말을 마친 그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전 집사가 빠른 걸음으로 송연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어르신께서 많은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사모님을 도련님에게로 보낸 건 분명 어르신께서 하신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겁니다.”송연아는 전 집사가 일부러 감정을 호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의건이 했던 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강의건은 그녀에게 잘해 주기도 했고, 또 나쁘게 굴기도 했다.송연아는 지나간 일은 더는 따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가 강세헌에게 한 모든 일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강의건 때문에 강세헌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고, 또 이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그래서 송연아는 절대로 강세헌 몰래 강의건을 만나지 않을 것이다.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강의건과 어떠한 만남도 갖지 않는 것이고, 각자 삶을 알아서 살아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제발 부탁드려요. 사모님은 훌륭하고 권위 있는 의사라는 걸 알아요. 혹시 사모님이면 어르신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어르신은 뇌암을 앓고 계시고, 저는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요!”말을 마친 그녀는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전 집사는 어쩔 수 없이 제자리에 서 있다가 실망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떴다.병원으로 돌아오고.강의건은 병상에 누워 있었다.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건 모두 약물 덕분이었다. 그것도 외제의약품이라 주사 한 번에 2억을 써야 했다.
상대가 그녀에게 덮쳐 두 사람이 같이 넘어지게 되었는데 안이슬의 뒤통수는 그대로 바닥에 부딪혔다.‘쿵’ 소리와 함께 안이슬은 눈앞이 깜깜해졌고, 머리가 ‘윙’ 울리는 것 같았다.송예걸이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죄송해요, 그냥 누나를 안고 싶었는데 발이 미끄러진 바람에... 어디 다쳤어요?”안이슬은 실눈을 떴는데 눈앞의 사람이 점점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더니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누나, 이슬 누나.”송예걸이 그녀를 부르며 그녀의 볼을 두드렸는데 안이슬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송예걸은 당황한 나머지 바로 전화를 걸려고 했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꺼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그는 다시 휴대폰을 주우려고 했다.“욱...”안이슬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인기척을 들은 송예걸은 바로 그녀에게 다가가고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이슬 누나.”“나 부축해 줘요.”안이슬이 미간을 찌푸렸다.송예걸은 그녀를 소파로 부축하고는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머리 다친 거 아니에요? 병원에서 검사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안이슬이 그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괜찮아요.”“하지만 아까...”“예걸 씨, 그 부부를 집으로 데려다줘요.”안이슬이 그의 말을 뚝 끊었다.“왜요?”송예걸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분들 돌려보내면 심재경은 분명 그들을 다시 붙잡아 누나를 협박할 거잖아요. 아직 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안이슬이 말했다.“괜찮아요. 심재경이 더는 두 분을 잡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두 분 계속 숨어 살 수도 없고요, 그들도 정상적인 생활이 필요하지 않겠어요.”“심재경이 누나한테 그랬어요? 더는 두 분을 잡지 않겠다고요? 심재경 말을 믿을 수 있어요?”송예걸은 안이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심재경 믿으면 안 돼요. 분명 뒤에서 누나를 붙잡으려고 온갖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누나, 더는 심재경에게 속으면 안 돼요.”안이슬이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예요.”송예걸은 드디어 뭔가를 눈치챈
순간, 송연아는 화면 속 인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화면 속 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곧장 송연아의 자리로 갔고 그녀의 찻잔에 무언가를 넣었다.이를 본 송연아는 두 손을 불끈 쥐었고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송연아는 CCTV 담당자에게 말했다.“이 부분의 영상만 나에게 보내줄 수 있을까요?”담당자가 말했다.“원장님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CCTV 내용을 넘길 수 없습니다.”“일단 주시면 안 될까요? 원장님 쪽에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하지만...”“센터에 있는 모든 직원이 나중에 제가 원장님 자리를 이어받을 걸 아는데, 이 정도의 결정권도 없나요?”송연아의 태도가 강경하자 담당자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명령조로 말했다.“얼른 주세요.”“알겠습니다.”담당자는 결코 송연아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은 계속 여기서 일하고 싶으니 말이다.그리고 나중에 송연아가 원장이 된다면 이번 일로 그를 난처하게 하거나 이유를 찾아 자신을 해고할까 봐 두려웠는데 지금 사회를 놓고 보았을 때,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게다가 현재 그의 월급은 적지 않았을뿐더러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하면서 높은 월급을 받는 곳은 정말 많지 않았다.“이메일 주시면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송연아는 담당자에게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주었고 그녀의 이메일은 핸드폰과 연결이 되어 있었기에 곧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았다.“저기... 원장님께 꼭 말씀드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가 설명해 드리기 곤란해집니다...”“알고 있어요.”송연아는 당연히 원장을 찾아갈 것이고 또 이 일은 원장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그리고 이 사람도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송연아는 알고 있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원장님께 잘 설명할게요.”말을 마치고 송연아는 돌아서서 경비실을 나왔고 입구에 서서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찻잔에 황
“이슬 언니?”송연아는 줄곧 안이슬이 기억을 잃은 후부터 자신에게 많이 냉담해졌다고 느꼈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그랬던 안이슬이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다니,송연아는 너무 의외여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어서 안으로 들어가요.”안이슬은 잠시 침묵을 지켰고 이내 입을 열었다.“우리 레스토랑으로 가자, 내가 밥 살게.”송연아가 말했다.“집에서 저녁을 다 준비해 놓았을 텐데...”“너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안이슬은 송연아를 바라보았고 송연아는 그녀의 뜻을 재빨리 알아차리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가서 먹어요. 제가 기사님 부를게요.”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왔는데, 여기서 다시 택시 타고 목적지에 가려면 다소 불가능했다. 왜냐면 이곳에는 택시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고 핸드폰 앱으로 택시를 불러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송연아는 운전 기사에게 조금 조용한 식당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다행히 운전기사가 아는 곳이 꽤 많아 바로 그들을 목적지로 데려갔다.장소는 아주 좋았는데, 방밖에 없었고 로비도 없었으며 인테리어도 우아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송연아는 안이슬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에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주문했다.또 한 가지 장점은 음식이 빨리 나온다는 것이다.음식 나온 후, 안이슬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이것들은 언니가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에요.”송연아는 안이슬에게 반찬을 집어주었지만 그녀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고 이내 입을 열었다.“기억을 잃은 시간 동안 너에게 크게 실망했어.”송연아의 음식을 집는 동작이 그대로 굳어졌고 눈을 치켜뜨며 안이슬을 바라보았다.“언니...”“맞아, 나 이제 기억이 다 되살아났어.”안이슬은 송연아를 보며 말했고 송연아는 몇 초 뜸 들이더니 대뜸 웃으며 물었다.“정말요?”“거짓말을 왜 하겠어.”안이슬은 논리정연하게 말을 했다.“넌 심재경 어머니가 나를 해
송연아는 서둘러 그 물건을 반대편으로 밀었고 안이슬은 거절하는 그녀의 손을 막았다.“이 돈은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송예걸에게 주는 거야. 직접 주면 안 받을 것 같아서 네가 날 대신해서 전해줘. 부탁이야.”그러자 송연아가 물었다.“예걸이에게 돈은 왜 주는데요?”안이슬이 말했다.“빚진 게 있어서 그래. 난 예걸이가 나 때문에 입은 손해를 평생 갚지 못할 수도 있어, 너도 들었겠지만 너희 송가네 회사는 나 때문에 망한 거야.”건네준 돈은 안이슬이 저축했던 모든 돈과 청양시에 있는 그녀의 작은 집을 동료에게 팔아 마련한 것이었다.원래 이렇게 빠르게 돈을 마련할 수 없었는데, 마침 안이슬의 동료가 집을 구하고 있었고, 또 그녀의 집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당장 사겠다며 먼저 그녀의 계좌에 돈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안이슬이 돌아가면 다시 정식적인 절차를 밟기로 했다.“왜 언니 때문이에요? 심씨 집안과 윤씨 가문 때문이죠...”“연아야.”안이슬이 말했다.“더는 날 죄책감 느끼게 하지 마. 실은 다 알고 있잖아, 내가 예걸이와 가깝게 지내지만 않았어도 그들이 예걸이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을 거고 너희 회사를 목표물로 삼지도 않았을 거라는 걸. 그러니까, 거절하지 말고 예걸이에게 전해줘.”송연아는 안이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돈을 받았다.“혹시라도 이제 급한 용무가 있으면, 이 돈 다시 가져가도 돼요.”“이번에 널 찾은 건 또 다른 일이 있어서야.”안이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나 곧 떠날지도 몰라.”송연아는 황급히 물었다.“떠나요? 어디로요?”“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어.”안이슬이 말했다.“나도 안 알려줄 거예요?”송연아가 물었다.안이슬은 고개를 끄덕였다.“알면, 송예걸과 심재경의 추궁을 견뎌낼 자신은 있고?”송연아는 안이슬의 말을 듣고는 사색에 잠겼다.“언니가 여기 있으면 우리가 돌봐줄 수 있어요. 근데 떠나면, 언니는 혼자가 되잖아요.”송연아는 안이슬을 설득하고 싶었다.새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어?”문짝을 사이에 두고도 원장의 말투에서 분노와 안타까움을 알 수 있었다.“송연아만 아니었다면 우리 사부님이 그렇게...”“그건 네 사부가 먼저 잘못한 거야, 네 사부 때문에 송연아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강세헌이 연아를 구해내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네 사부는 더 엄중한 처벌을 받았을 거야!”원장은 정경봉이 훌륭한 사람으로 되지 못함에 한스러워했다.“나도 알아, 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근데 누울 자리도 봐가면서 발을 뻗어야지. 네 사부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아직도 네 사부를 생각해서 복수하는 거니?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원장은 너무 화가 나서 폭언을 했지만 정경봉은 자존심이 세서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려 하지 않아 원장은 정경봉을 노려보았다. 자기 자식이었다면 아마 진작에 뺨을 후려쳤을 것이다.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힌 원장이 입을 열었다.“이제 출근할 시간이 되었으니, 연아도 이제 곧 오겠네. 가서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어...”“아니요.”정경봉은 거절했다.“어쨌든 그 여자가 내 사부를 해쳐...”원장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고 하마터면 정경봉에게 손찌검을 할 뻔했으나 억지로 참았다.“내가 아직 확실하게 안 말했나?”원장은 목소리를 낮춰 최대한 조용하게 말했다.“잘 알아들었습니다. 제 사부님이 먼저 잘못한 건 알지만, 사부님은 그 여자 때문에 평생 쌓으신 커리어가 무너졌고 또...”“닥쳐.”원장은 이제 더 말하기도 귀찮았다.“그래, 계속 그렇게 고집부려, 지금 자기 손으로 제 무덤을 파고 있는 줄도 모르고!”“그 여자가 날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나를 어떻게 하고 싶어도 증거가 있어야죠.”원장은 정경봉이 정말 바보인 것 같았다.“연아가 나에게 이번 일을 네가 했다고 확실하게 말했어. 설마 연아가 증거도 없이 말했겠니?”원장이 되묻자 정경봉은 말문이 막혔고 그의 침묵이 반쯤 흘렀을 때,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