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경은 그녀의 입을 막았다.그녀가 아무리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러도 그녀를 억지로 차에 밀어 넣고는 말했다.“기사님, 출발하세요.”심재경의 명령에 차는 곧이어 출발했다.안이슬은 분노가 끓어올라 그의 손바닥을 깨물었다.심재경은 극심한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안이슬을 꼭 끌어안고는 단호하게 말했다.“나 절대 너 놓지 않을 거야!”안이슬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하지만 난 당신이 싫고, 미워. 영원히 당신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아무리 당신이 날 잡고 놓지 않는다고 해도 날 가질 수 없을 거야. 나에게서 시간 낭비를 하는 대신 다른 여자를 찾는 게 어때?”“그게 무슨 소리야?”심재경은 애써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난 너밖에 없어.”“그래?”안이슬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가 지금 보이는 다정함도 다 연기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안이슬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캐물었다.“예걸 씨가 나한테 그랬어, 당신 결혼했었다고, 다른 여자 있었다고? 그게 전부 거짓이란 말이야?”심재경은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그 일은 어머니가 강요한 거야. 너에 대한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너를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내 자의가 아니야.”“하하.”안이슬이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배신을 그렇게 고상하게 말하다니, 내가 따봉을 보내줘야 하는가? 그 논리면 나도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나중에 그게 내 본의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 그러면 당신에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니잖아?”심재경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가 아무리 설명해도 안이슬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어차피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입 꾹 닫고 있는 게 나았다.곧이어 차는 심씨 저택에 도착했다.심재경이 차에서 내리고는 안이슬을 차에서 안아 내렸다.심재경 어머니는 마침 외출 준비 중이었다.안이슬을 안고 돌아오는 심재경을 보고 그녀는 휠체어
날카로운 칼끝은 순식간에 그의 옷을 꿰뚫어 살 속을 파고들었다.새빨간 피가 하얀 셔츠를 적셨다.안이슬은 저도 모르게 손을 부르르 떨었다. 곧이어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당신이 고육지책을 펼친다고 해도 나에게는 소용없어. 내 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니까.”심재경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통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는 자신과 안이슬 사이의 관계가 이대로 끝났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분명,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었는데 말이다.그는 안이슬이 자신에게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조금의 감정이라도 남아 있지 않는단 말인가?그가 안이슬의 손에 칼자루를 쥐여줬다.“정말 나한테 조금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는다면 이 칼로 내 심장을 찔러.”안이슬은 그의 눈빛을 피했다.“날 살인자로 만들려는 거야? 정말 음흉한 사람이네. 정 죽고 싶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왜 나를 들먹이려고 해? 나에게 살인죄를 씌우고 싶은 거야?”심재경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안이슬, 당신이 많은 걸 잊었겠지만 성격만은 그대로네. 여전히 그렇게 강인하군. 좋아, 네 말을 따를게.”그가 눈을 감고는 말을 이어갔다.“너한테 목숨 하나 빚지고 있으니까 오늘 그 목숨 갚을게!”그는 죽음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그의 몸에 박힌 칼날은 눈대중으로 봤을 때 4, 5cm쯤이었다.그녀는 법의관으로서 과거를 잊었다고 해도 직업적인 판단을 두고 있었다.칼날이 2cm 더 깊게 박힌다면 심재경은 분명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이고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심재경도 한때 의사로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다만 그는 너무 피곤했다.또 안이슬에게 목숨을 빚진 것도 사실이기에 그 빚을 갚아야 안이슬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안이슬이 그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죽어도 내 앞에서는 죽지 마.”안이슬은 차가운 말을 내뱉고 휴대폰으
“그 사람 혼자 자해했는데요.”안이슬은 전혀 두려운 게 없었다. 그녀가 칼을 찌르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심재경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재경이가 바보니? 칼로 자기를 찌르게? 너라면 네가 한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당연히 믿죠.”안이슬이 대답했다.심재경 어머니가 미간을 구겼다.“너...”이때 간호사가 말했다.“사인해 주세요.”심재경 어머니는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바로 사인하고는 당부했다.“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들도 최선을 다하실 겁니다. 게다가 환자분께서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요.”말을 마친 간호사는 수술 동의서를 들고 수술실로 들어갔다.심재경 어머니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녀는 더는 안이슬과 입씨름을 벌이지 않았다.‘나는 안이슬과 영 인연이 아닌가 보네.’그녀가 아무리 마음을 돌려 안이슬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안이슬이 한 짓은 그녀의 반감을 샀다.계속 그녀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나, 아니면 그녀와 심재경을 해치는 일을 여러 번 저지르지 않나, 아마 그녀는 앞으로 잠을 잘 때도 마음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안이슬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말이다.이번에 칼로 심재경을 찌를 수 있으면 다음번에는 충분히 그녀도 찌를 수 있었다.이게 어디 며느리란 말인가? 집안을 망치는 화근이 따로 없었다.“어떻게 재경이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 수 있어? 재경이를 사랑하지 않는 거지?”심재경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안이슬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 사람을 아직도 사랑할 리가 있겠어요?”“재경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좀 멀리 떠나는 건 어때? 재경이가 평생 너 찾지 못하도록 말이야.”심재경 어머니가 말했다.“그럼 그 사람 때문에 제가 남은 평생 숨고 지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안이슬이 되물었다.“외국으로 나가 유학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드는 나라에 정착해도 돼. 너한테 남은 평생 풍족하게 살 수 있는 큰돈을
진원우가 솔직하게 말했다.“고훈이 도망갔습니다.”당시 고훈과 그의 비서는 모두 크게 다쳤기에 진원우는 두 사람을 같은 곳에 가두었고, 감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강세헌은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훈이 모든 물건을 청양시에 둔 이유가 바로 그를 따돌리기 위해서였다.강세헌이 청양시로 떠나기만 하면 진원우가 아무리 많은 조치를 취했어도 고훈은 반드시 도망갔을 것이다.퇴로?이거야말로 고훈의 퇴로가 아닌가?그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다.고훈이 머리를 제대로 쓴 것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훈이 도망간 걸 알고 바로 사람을 보내 그들을 쫓았지만 그래도 한발 늦었습니다. 고훈은 이미 출국했더라고요.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고훈이 거기서 탈출한 뒤로 국내에 한시도 더 머무르지 않고 바로 출국했습니다. 마침 그때 출발하는 항공편도 있었고요. 모든 게 그렇게 빈틈없이 이루어진 게 이해가 가지 않네요.”고훈이 도망간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진원우는 바로 추적하고 터미널과 공항으로 가는 길을 막았는데도 고훈은 도망가는 데 성공했다.시간상으로는 미리 계획된 도주가 분명하다. 아니면 모든 게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국내와 달리 국외에서는 고훈을 잡기 어려웠다.“이 일은 모두 제 책임입니다. 제 부주의로 일어난 일입니다.”진원우가 자책했다.강세헌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네 탓 아니야. 고훈이 외국으로 도망갔지만 그래도 찾아야지.”“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진원우가 대답했고 강세헌도 ‘응’하고 대답했다....깨어난 심재경은 주위에 안이슬이 안 보이고 어머니밖에 없자 얼굴색이 한껏 어두워졌다.“이슬이는요?”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이 어느 때인데.”심재경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이 세상에 여자가 안이슬 뿐이니? 왜 꼭 안이슬이어야만 하는데? 꼭 안이슬의 손에 죽어야 속이 후련해?”심재경이 어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그 말은 제가 다친 게 이슬이 때문이라는 거예요? 아니에요. 엄마, 솔직하게 말
'인연이 없었으면 나와 이슬이가 다시 만났겠어? 학교에서부터 연애했겠냐고? 우리 두 사람이 인연이 없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야.’심재경은 짜증이 몰려와 침대에서 일어섰다.심재경 어머니가 말했다.“너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잖아...”“안 죽어요.”심재경은 욱하며 말했다.“짜증 나 죽겠어요.”심재경 어머니는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심재경은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그가 예상했던 대로 안이슬은 집에 없었다.그는 혼자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는데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안이슬은 송예걸이 맡아준 집에 있었다.오늘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이슬은 기분이 매우 우울했다.그녀는 몸을 움츠린 채 소파 모퉁이에 기댔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심재경이 칼을 자기 가슴에 찌르는 장면을 떠올렸다.‘심재경이 나에게 조금은 진심이지 않을까?’그 생각을 하자마자 안이슬은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이 일을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녀는 소파에서 일어서 현관으로 가서 외출하기 위해 신발을 신었다.하지만 문 앞에 선 그녀는 주저하기 시작했다.‘내가 어디로 갈 수 있지? 누굴 찾아갈 수 있지?’안이슬은 문득 자기가 매우 외롭다는 걸 느끼고 다시 집안으로 되돌아갔다.그녀의 머릿속에 송연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안이슬은 송인아에 대한 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에 혼자 있을망정 그녀를 찾아가는 건 싫었다....송연아는 직장에서 난관에 부딪혔다.그녀의 능력이 문제 있는 게 아니라 그녀는 단 한 번도 연구센터에서 일한 적이 없는데 바로 원장 후보로 되었으니 사람들은 그녀를 낙하산이라고 생각하며 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서 그녀가 쓸 기구를 일부러 숨기거나 없다고 거짓말을 하며 골칫거리를 안겨줬다.그리고 연구센터에는 고급 장비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교대로 쓰면서 송연아은 절대 쓰지 못하게 했다.그뿐만 아니라 식사하는 거로도 사람들은 그녀에게 장난을 쳤다.그녀의 반찬에 소금을 가득 넣었는데 반찬이 너무 짜
이 도시락은 식당 도시락이 아니었다.게다가 이 도시락에는 잘 썰린 용과도 담겨 있었다.귀한 과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코 흔하진 않았다.한혜숙도 그녀가 예전에 용과를 좋아했었다는 걸 모를 것이다.용과는 당분이 높아 많은 과일보다 달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송연아는 용과를 아주 좋아했다.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송연아는 바로 상대를 추측할 수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하동훈이 갑자기 문 앞에 나타났다.그가 미소를 지은 채 들어왔다.송연아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여기는 웬일이에요?”“제인 님 얼굴 보러 왔는데, 안 돼요?”송연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안 돼요.”하동훈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지금까지 송연아와 고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미 교훈을 섭취했기에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 일이 너무 알고 싶었지만 말이다.“어렸을 때 제인 님이 용과를 아주 좋아했던 게 생각 나요. 그래서 특별히 도시락에 넣었는데. 식사 마치고 후식으로 용과 먹어요.”송연아가 고개를 숙였다.그녀가 어렸을 때 단 과일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 삶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더는 어릴 때의 송연아가 아니었고, 더는 단 과일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송연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하동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도시락은 내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란 말이에요.”“이미 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당장 내 앞에서 꺼져요!”송연아는 일을 할 때 될수록 그 일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하동훈만 보면 그 일이 또렷이 머릿속에 떠오른다.하동훈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했다.“우린 친구잖아요...”“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요!”송연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일을 방해하지 말아요, 또 당신이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나와 당신은 영원히,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요!”“우린 예
강세헌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되물었다.“몸이 불편해?”송연아는 배에 올린 손을 내려놓으며 부인했다.“아니요, 그냥 오래 서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서요.”처음 강세헌을 발견했을 때를 제외하고 송연아는 강세헌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가요.”말을 마친 그녀는 먼저 자리를 떴다.강세헌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는 애써 허리를 곧게 펴려고 했다.강세헌은 제자리에 선 채 물었다.“얼마나 오래 걸려?”송연아가 굳어 서더니 잠시 후 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그녀는 더는 그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강세헌과 말이다.강세헌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송연아는 그의 손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잡혀 어쩔 수 없이 그의 걸음을 따라가야 했다.차는 마당 앞에 세워져 있었다.강세헌이 차 키를 꺼내서 버튼을 누르자 차 라이트가 깜박거렸다.그가 한 손으로 문을 열자 송연아가 창문 유리를 짚고는 말했다.“세헌 씨.”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을 이어갔다.“나 오늘 피곤해요. 더는 그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강세헌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응’하고 대답했다.송연아가 손목을 비틀며 말했다.“먼저 내 손부터 놔줘요.”강세헌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송연아는 그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져 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이제 집으로 가요.”그러고는 차에 올라탔다.강세헌이 반대편에서 차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위가 아픈 송연아는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좌석에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차 안에는 아주 조용했고, 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이라 그런지 길에 차도 많지 않아 전혀 막히지 않았다.차가 멈춰 선 걸 느낀 송연아는 눈을 떴다.하지만 밖을 내다보니 집이 아닌 병원 앞이었다.송연아가 미간을 구기며
“나 때문에 화가 났어?”그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은 바로 자기가 송연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강세헌이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마 그녀를 화나게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이때 송연아도 진정을 되찾았다.방금은 그녀가 잘못한 게 맞다, 강세헌에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미안해요.”송연아가 먼저 사과했다.강세헌이 말했다.“괜찮아.”“...”송연아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우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송연아가 입술을 씰룩거렸다.강세헌이 웃으면서 말했다.“잘못하면 사과하는 게 맞지. 아니면 앞으로 화를 잘 내는 버릇 생긴단 말이야.”강세헌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 서로 예의를 차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이가 점점 멀어질 거니까 말이다.강세헌은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그 일은 이미 발생했고, 송연아도 충분히 괴로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그는 송연아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도와야 했다.강세헌이 너그러워서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송연아도 이 일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그녀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겁하고 뻔뻔스러운 사람은 고훈이었다.송연아를 예전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그만큼 강세헌의 태도도 중요했다.이럴 때일수록 강세헌은 그녀를 예전처럼, 평범하게 대해야 했다. 특별하게 대할수록 그 일을 상기시키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니 말이다.송연아가 결심한 듯 손을 움켜쥐었다.“세헌 씨, 한 가지 물어볼게요. 솔직하게 대답해 줘요. 요 며칠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게 나 보기 싫어서죠...”“그게 무슨 말이야?”송연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세헌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엄숙한 얼굴을 보였다.“계속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던 게 그것 때문이었어?”송연아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말에 묵인하는 셈이었다.강세헌은 그녀의 의심을 풀기 위해 솔직하게 말했다.“나 청양시로 갔었어.”단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