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과연 그럴까?’송연아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강세헌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만약 강세헌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그녀는 절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편하게 그를 대할 수 없을 것이다.송연아는 그를 원망하거나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지만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사람이라면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강세헌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그녀와 강세헌 두 사람 모두 이 일을 잊어버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송연아는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이곳에 ‘똑딱똑딱’거리는 시계의 소리는 유난히 잘 들렸다.그녀는 휴대폰을 힐끔 보면서 주춤거리더니 끝내 휴대폰을 들지 않았다.소파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심재경은 진원우를 찾아가 고민 상담을 하려고 했는데 진원우가 너무 바빠 시간이 없었다.그래서 심재경은 회사로 갔고, 날이 어두워지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집에는 심재경 어머니뿐이었다.안이슬이 보이지 않자, 그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아니나 다를까, 안이슬의 물건들은 또 사라졌다.그 광경을 본 심재경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또 도망간 거야? 내가 그 부부를 잡아 올까 봐 두렵지도 않나?’그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어 밖으로 안이슬을 찾으러 나갔다.이튿날 점심, 그는 어느 한 레스토랑에서 안이슬을 찾았다. 그녀는 송예걸과 같이 식사하고 있었다.심재경은 지금까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안이슬의 모든 행동은 그녀가 송예걸에게 마음이 갔다는 걸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아니면 그녀는 송예걸과 이렇게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다.안이슬이 먼저 심재경을 발견했다.하지만 그저 덤덤한 얼굴로 그를 힐끔 보고는 바로 시선을 거뒀다.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송예걸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많이 먹어요.”그녀는 아주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심재경은 그녀의 입을 막았다.그녀가 아무리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러도 그녀를 억지로 차에 밀어 넣고는 말했다.“기사님, 출발하세요.”심재경의 명령에 차는 곧이어 출발했다.안이슬은 분노가 끓어올라 그의 손바닥을 깨물었다.심재경은 극심한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안이슬을 꼭 끌어안고는 단호하게 말했다.“나 절대 너 놓지 않을 거야!”안이슬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하지만 난 당신이 싫고, 미워. 영원히 당신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아무리 당신이 날 잡고 놓지 않는다고 해도 날 가질 수 없을 거야. 나에게서 시간 낭비를 하는 대신 다른 여자를 찾는 게 어때?”“그게 무슨 소리야?”심재경은 애써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난 너밖에 없어.”“그래?”안이슬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가 지금 보이는 다정함도 다 연기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안이슬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캐물었다.“예걸 씨가 나한테 그랬어, 당신 결혼했었다고, 다른 여자 있었다고? 그게 전부 거짓이란 말이야?”심재경은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그 일은 어머니가 강요한 거야. 너에 대한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너를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내 자의가 아니야.”“하하.”안이슬이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배신을 그렇게 고상하게 말하다니, 내가 따봉을 보내줘야 하는가? 그 논리면 나도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나중에 그게 내 본의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 그러면 당신에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니잖아?”심재경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가 아무리 설명해도 안이슬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어차피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입 꾹 닫고 있는 게 나았다.곧이어 차는 심씨 저택에 도착했다.심재경이 차에서 내리고는 안이슬을 차에서 안아 내렸다.심재경 어머니는 마침 외출 준비 중이었다.안이슬을 안고 돌아오는 심재경을 보고 그녀는 휠체어
날카로운 칼끝은 순식간에 그의 옷을 꿰뚫어 살 속을 파고들었다.새빨간 피가 하얀 셔츠를 적셨다.안이슬은 저도 모르게 손을 부르르 떨었다. 곧이어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당신이 고육지책을 펼친다고 해도 나에게는 소용없어. 내 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니까.”심재경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통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는 자신과 안이슬 사이의 관계가 이대로 끝났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분명,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었는데 말이다.그는 안이슬이 자신에게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조금의 감정이라도 남아 있지 않는단 말인가?그가 안이슬의 손에 칼자루를 쥐여줬다.“정말 나한테 조금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는다면 이 칼로 내 심장을 찔러.”안이슬은 그의 눈빛을 피했다.“날 살인자로 만들려는 거야? 정말 음흉한 사람이네. 정 죽고 싶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왜 나를 들먹이려고 해? 나에게 살인죄를 씌우고 싶은 거야?”심재경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안이슬, 당신이 많은 걸 잊었겠지만 성격만은 그대로네. 여전히 그렇게 강인하군. 좋아, 네 말을 따를게.”그가 눈을 감고는 말을 이어갔다.“너한테 목숨 하나 빚지고 있으니까 오늘 그 목숨 갚을게!”그는 죽음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그의 몸에 박힌 칼날은 눈대중으로 봤을 때 4, 5cm쯤이었다.그녀는 법의관으로서 과거를 잊었다고 해도 직업적인 판단을 두고 있었다.칼날이 2cm 더 깊게 박힌다면 심재경은 분명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이고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심재경도 한때 의사로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다만 그는 너무 피곤했다.또 안이슬에게 목숨을 빚진 것도 사실이기에 그 빚을 갚아야 안이슬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안이슬이 그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죽어도 내 앞에서는 죽지 마.”안이슬은 차가운 말을 내뱉고 휴대폰으
“그 사람 혼자 자해했는데요.”안이슬은 전혀 두려운 게 없었다. 그녀가 칼을 찌르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심재경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재경이가 바보니? 칼로 자기를 찌르게? 너라면 네가 한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당연히 믿죠.”안이슬이 대답했다.심재경 어머니가 미간을 구겼다.“너...”이때 간호사가 말했다.“사인해 주세요.”심재경 어머니는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바로 사인하고는 당부했다.“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들도 최선을 다하실 겁니다. 게다가 환자분께서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요.”말을 마친 간호사는 수술 동의서를 들고 수술실로 들어갔다.심재경 어머니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녀는 더는 안이슬과 입씨름을 벌이지 않았다.‘나는 안이슬과 영 인연이 아닌가 보네.’그녀가 아무리 마음을 돌려 안이슬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안이슬이 한 짓은 그녀의 반감을 샀다.계속 그녀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나, 아니면 그녀와 심재경을 해치는 일을 여러 번 저지르지 않나, 아마 그녀는 앞으로 잠을 잘 때도 마음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안이슬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말이다.이번에 칼로 심재경을 찌를 수 있으면 다음번에는 충분히 그녀도 찌를 수 있었다.이게 어디 며느리란 말인가? 집안을 망치는 화근이 따로 없었다.“어떻게 재경이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 수 있어? 재경이를 사랑하지 않는 거지?”심재경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안이슬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 사람을 아직도 사랑할 리가 있겠어요?”“재경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좀 멀리 떠나는 건 어때? 재경이가 평생 너 찾지 못하도록 말이야.”심재경 어머니가 말했다.“그럼 그 사람 때문에 제가 남은 평생 숨고 지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안이슬이 되물었다.“외국으로 나가 유학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드는 나라에 정착해도 돼. 너한테 남은 평생 풍족하게 살 수 있는 큰돈을
진원우가 솔직하게 말했다.“고훈이 도망갔습니다.”당시 고훈과 그의 비서는 모두 크게 다쳤기에 진원우는 두 사람을 같은 곳에 가두었고, 감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강세헌은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훈이 모든 물건을 청양시에 둔 이유가 바로 그를 따돌리기 위해서였다.강세헌이 청양시로 떠나기만 하면 진원우가 아무리 많은 조치를 취했어도 고훈은 반드시 도망갔을 것이다.퇴로?이거야말로 고훈의 퇴로가 아닌가?그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다.고훈이 머리를 제대로 쓴 것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훈이 도망간 걸 알고 바로 사람을 보내 그들을 쫓았지만 그래도 한발 늦었습니다. 고훈은 이미 출국했더라고요.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고훈이 거기서 탈출한 뒤로 국내에 한시도 더 머무르지 않고 바로 출국했습니다. 마침 그때 출발하는 항공편도 있었고요. 모든 게 그렇게 빈틈없이 이루어진 게 이해가 가지 않네요.”고훈이 도망간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진원우는 바로 추적하고 터미널과 공항으로 가는 길을 막았는데도 고훈은 도망가는 데 성공했다.시간상으로는 미리 계획된 도주가 분명하다. 아니면 모든 게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국내와 달리 국외에서는 고훈을 잡기 어려웠다.“이 일은 모두 제 책임입니다. 제 부주의로 일어난 일입니다.”진원우가 자책했다.강세헌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네 탓 아니야. 고훈이 외국으로 도망갔지만 그래도 찾아야지.”“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진원우가 대답했고 강세헌도 ‘응’하고 대답했다....깨어난 심재경은 주위에 안이슬이 안 보이고 어머니밖에 없자 얼굴색이 한껏 어두워졌다.“이슬이는요?”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이 어느 때인데.”심재경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이 세상에 여자가 안이슬 뿐이니? 왜 꼭 안이슬이어야만 하는데? 꼭 안이슬의 손에 죽어야 속이 후련해?”심재경이 어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그 말은 제가 다친 게 이슬이 때문이라는 거예요? 아니에요. 엄마, 솔직하게 말
'인연이 없었으면 나와 이슬이가 다시 만났겠어? 학교에서부터 연애했겠냐고? 우리 두 사람이 인연이 없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야.’심재경은 짜증이 몰려와 침대에서 일어섰다.심재경 어머니가 말했다.“너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잖아...”“안 죽어요.”심재경은 욱하며 말했다.“짜증 나 죽겠어요.”심재경 어머니는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심재경은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그가 예상했던 대로 안이슬은 집에 없었다.그는 혼자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는데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안이슬은 송예걸이 맡아준 집에 있었다.오늘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이슬은 기분이 매우 우울했다.그녀는 몸을 움츠린 채 소파 모퉁이에 기댔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심재경이 칼을 자기 가슴에 찌르는 장면을 떠올렸다.‘심재경이 나에게 조금은 진심이지 않을까?’그 생각을 하자마자 안이슬은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이 일을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녀는 소파에서 일어서 현관으로 가서 외출하기 위해 신발을 신었다.하지만 문 앞에 선 그녀는 주저하기 시작했다.‘내가 어디로 갈 수 있지? 누굴 찾아갈 수 있지?’안이슬은 문득 자기가 매우 외롭다는 걸 느끼고 다시 집안으로 되돌아갔다.그녀의 머릿속에 송연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안이슬은 송인아에 대한 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에 혼자 있을망정 그녀를 찾아가는 건 싫었다....송연아는 직장에서 난관에 부딪혔다.그녀의 능력이 문제 있는 게 아니라 그녀는 단 한 번도 연구센터에서 일한 적이 없는데 바로 원장 후보로 되었으니 사람들은 그녀를 낙하산이라고 생각하며 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서 그녀가 쓸 기구를 일부러 숨기거나 없다고 거짓말을 하며 골칫거리를 안겨줬다.그리고 연구센터에는 고급 장비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교대로 쓰면서 송연아은 절대 쓰지 못하게 했다.그뿐만 아니라 식사하는 거로도 사람들은 그녀에게 장난을 쳤다.그녀의 반찬에 소금을 가득 넣었는데 반찬이 너무 짜
이 도시락은 식당 도시락이 아니었다.게다가 이 도시락에는 잘 썰린 용과도 담겨 있었다.귀한 과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코 흔하진 않았다.한혜숙도 그녀가 예전에 용과를 좋아했었다는 걸 모를 것이다.용과는 당분이 높아 많은 과일보다 달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송연아는 용과를 아주 좋아했다.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송연아는 바로 상대를 추측할 수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하동훈이 갑자기 문 앞에 나타났다.그가 미소를 지은 채 들어왔다.송연아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여기는 웬일이에요?”“제인 님 얼굴 보러 왔는데, 안 돼요?”송연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안 돼요.”하동훈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지금까지 송연아와 고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미 교훈을 섭취했기에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 일이 너무 알고 싶었지만 말이다.“어렸을 때 제인 님이 용과를 아주 좋아했던 게 생각 나요. 그래서 특별히 도시락에 넣었는데. 식사 마치고 후식으로 용과 먹어요.”송연아가 고개를 숙였다.그녀가 어렸을 때 단 과일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 삶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더는 어릴 때의 송연아가 아니었고, 더는 단 과일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송연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하동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도시락은 내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란 말이에요.”“이미 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당장 내 앞에서 꺼져요!”송연아는 일을 할 때 될수록 그 일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하동훈만 보면 그 일이 또렷이 머릿속에 떠오른다.하동훈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했다.“우린 친구잖아요...”“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요!”송연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일을 방해하지 말아요, 또 당신이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나와 당신은 영원히,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요!”“우린 예
강세헌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되물었다.“몸이 불편해?”송연아는 배에 올린 손을 내려놓으며 부인했다.“아니요, 그냥 오래 서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서요.”처음 강세헌을 발견했을 때를 제외하고 송연아는 강세헌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가요.”말을 마친 그녀는 먼저 자리를 떴다.강세헌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는 애써 허리를 곧게 펴려고 했다.강세헌은 제자리에 선 채 물었다.“얼마나 오래 걸려?”송연아가 굳어 서더니 잠시 후 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그녀는 더는 그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강세헌과 말이다.강세헌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송연아는 그의 손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잡혀 어쩔 수 없이 그의 걸음을 따라가야 했다.차는 마당 앞에 세워져 있었다.강세헌이 차 키를 꺼내서 버튼을 누르자 차 라이트가 깜박거렸다.그가 한 손으로 문을 열자 송연아가 창문 유리를 짚고는 말했다.“세헌 씨.”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을 이어갔다.“나 오늘 피곤해요. 더는 그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강세헌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응’하고 대답했다.송연아가 손목을 비틀며 말했다.“먼저 내 손부터 놔줘요.”강세헌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송연아는 그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져 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이제 집으로 가요.”그러고는 차에 올라탔다.강세헌이 반대편에서 차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위가 아픈 송연아는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좌석에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차 안에는 아주 조용했고, 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이라 그런지 길에 차도 많지 않아 전혀 막히지 않았다.차가 멈춰 선 걸 느낀 송연아는 눈을 떴다.하지만 밖을 내다보니 집이 아닌 병원 앞이었다.송연아가 미간을 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