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은 회사 쪽의 일을 급하게 처리하고 돌아왔는데, 뜻밖에도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런 광경을 보았다.강세헌은 창문을 올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운전하세요.”운전기사는 즉시 차를 몰고 갔다.강세헌이 집에 돌아오자, 찬이는 다정하게 그의 품에 안겨서 아버지라고 불렀다.강세헌은 찬이를 안고 물었다.“아빠 보고 싶었어?”찬이는 마늘을 찧듯 고개를 끄덕였다.“보고 싶었어요.”강세헌이 물었다.“어디로 보고 싶어 했는데?”찬이는 마음을 가리켰다.“여기로요.”말하고 나서 찬이는 강세헌의 얼굴에 뽀뽀했다.강세헌의 볼은 온통 찬이의 침으로 범벅이 되었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너 저녁에 뭐 먹었어?”찬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밥도 먹고 국도 먹었어요.”강세헌은 찬이가 너무 귀여웠다. 밥 먹는 거 누가 모른단 말인가?“또?”찬이는 머리를 굴렸다.“아까 똥 냄새나는 것도 먹었어요. 엄청나게 달아요!”“...”똥 냄새?오은화가 듣고는 웃으면서 설명했다.“두리안이에요.”강세헌은 찬이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하마터면 잘못 생각할 뻔했잖아.”찬이는 웃으며 강세헌의 목을 감쌌다.강세헌은 그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윤이를 보았다.한혜숙은 방금 윤이를 아기 침대에 눕혔다.그녀는 강세헌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돌아왔어?”강세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윤이에게 눈길을 돌렸다.한혜숙이 말했다.“방금 배가 불렀는지 잠이 들었네.”한혜숙은 윤이가 갈아입은 옷과 기저귀를 씻으려고 방에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전날에 보내온 물건은 다 잘 받았어.”한혜숙이 이어서 말했다.“너무 수고 많았어, 그렇게 많은 걸 준비하다니.”“아무것도 아니에요.”강세헌은 윤이의 볼에 뽀뽀했는데, 아기 피부가 부드럽고 매끈매끈해서 촉감이 너무 좋았다.“내게 두 아이를 낳아줬으니 내가 더 잘해야죠.”강세헌은 이 말을 할 때, 말투는 매우 차분했다.그러나 자세히 들으면, 한 가닥 은은한 압박
강세헌은 눈을 내리깔고 송연아를 깊이 응시했다.송연아가 물었다.“왜 그래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송연아는 발끝을 세우고 강세헌의 목을 두 팔로 감은 뒤 주동적으로 입술을 쭉 내밀었다.입술이 닿자 굳어있던 강세헌의 몸이 흔들렸다.“화났어요?”그러자 강세헌이 대답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내가 쓴 일기 말이에요.”강세헌은 내색하지 않지만 미간을 눌렀다.송연아가 스스로 그 얘기를 꺼낼 줄은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송연아는 여전히 두 팔로 강세헌의 목을 감싸고 있었고 까치발을 들어야만 턱을 그의 어깨에 얹을 수 있어 그녀는 요염하게 강세헌의 목덜미를 살짝 쓸었다.“그 일기는 내가 고작 열네다섯 살 때 쓴 거예요. 한창 사춘기였는데, 금방 이성에 대해 눈 뜨기 시작할 때였죠. 그때는 뭐가 좋고 뭐가 사랑인지도 몰랐고 시간이 지나서 난 이 사람을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어요.”“그래?”강세헌은 반신반의했다.“그래요, 당신 행동이 이상하다 했어요. 그래서 내가 유심히 관찰하니까 당신이 그 일기장 때문에 화가 나 있더라고요. 뭔가 해서 한 번 읽어봤는데, 당신이 충분히 기분 나빠할 것 같더라고요. 그 일기장은 이미 버렸어요, 기념할 필요도 없고 보존할 의미도 없으니깐요. 이젠 세헌 씨가 내 미래예요.”송연아의 이런 솔직함에 강세헌은 가슴이 벅차올랐다.강세헌의 눈매가 깊어졌다.“연아야.”송연아는 강세헌을 바라보았다.“왜요?”강세헌은 송연아의 턱을 움켜쥐고 살짝 들어 올린 뒤 머리를 숙여 입술을 맞췄다.뽀뽀에서 키스로, 뜨겁고도 끈적끈적하게.강세헌이 너무 훅 들어와서 송연아는 하마터면 똑바로 서지 못 할 뻔했고, 그는 그녀의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를 감쌌는데, 그녀의 허리는 버들가지처럼 부드럽고 연약해서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강세헌은 송연아를 들어 올려 창가의 낮은 테이블 위에 앉혔고 그녀의 두 다리를 벌려 그 사이에 섰다.이런 자세는 송연아를 부끄럽게 했고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여기선 안 돼... 요...”강세헌은
“우리는 보험회사 사람입니다. 강 대표님께서 물건을 호송하라고 하셨습니다.”맨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오은화는 알겠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방금 그들의 이미지에 단단히 겁을 먹었고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야 서서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들어오세요.”송연아는 눈을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남자는 두 개의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열었다.“송 사모님입니까? 검수해 주시길 바랍니다.”송연아가 물었다.“이게 뭔데요?”“보면 아십니다.”남자는 상자를 송연아 쪽으로 돌렸다.안에 있는 물건을 본 송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이게...비록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송연아였지만 눈앞의 이 다이아몬드 세트가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남자는 이 물건을 소개하기 시작했다.“이 액세서리는 강 대표님이 미국 경매에서 380만 달러에 낙찰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 국내로 호송할 것을 의뢰했습니다. 이것은 골동품급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로 예전의 이탈리아 황실이 남긴 것입니다.”송연아는 이것에 대해 잘 몰라서, 가치를 듣고는 미간이 찡해 났는데 완전히 가보로 쓸 수 있는 다이아몬드였다.아들이 둘이어서 며느리도 둘이겠는데, 어느 며느리에게 줘야 한단 말인가.생각만 해도 걱정이었다.그러나 송연아의 얼굴은 웃고 있었고 이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천천히 감상했다.이 다이아몬드 세트는 너무 예뻤다.“이것은 레드 베릴로 무게는 1.27~5.38캐럿입니다.”송연아가 세어보니 총 26개의 타원형 베릴이 있었는데, 각 베릴 옆에는 배 모양과 흰색의 올리브와 같은 끝이 뾰족한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었다. 다이아몬드와 베릴을 교묘하게 배치해 마치 한 송이의 꽃 같았고 목걸이는 화환처럼 만들어졌다.같은 디자인의 귀걸이도 한 쌍 있었다.“이 세트에는 원래 팔찌가 하나 더 있었는데, 누가 사 갔는지 몰라 불완전합니다.”송연아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이 상자 안에는 뭐가 있어요?”남자는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구애린은 강세헌을 보자마자 자신의 차 안으로 뛰어들었는데, 그와 눈이 마주칠까 봐 두려웠다. 사실 두렵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강세헌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강세헌이 자신이 일부러 그를 접근한다는 오해를 하는 것도 싫었다.구애린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강세헌은 차 쪽으로 눈을 흘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안이슬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송연아는 앞으로 나서서 강세헌을 붙잡고 방으로 돌아갔다.“오늘 당신이 물건을 보내라고 시켰어요?”강세헌은 송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들어?”송연아는 입꼬리를 치켜들었는데, 싫다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만 송연아는 그쪽에 관심이 없어 꼭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송연아가 가장 기쁘게 생각한 것은 강세헌의 마음이었다.그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너무 귀중해서 서재에 놔뒀는데, 서재에 금고 비밀번호를 몰라서 당신이 돌아오면 넣으려고 했어요.”강세헌은 웃었다.“그 말은 금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내 탓이란 말이야?”송연아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그래요, 남들은 다 여자가 집안일을 관리하는데, 우리 집은 가산을 내게 넘기지도 않았고, 예물도 주지 않았네요.”“그럼 예물을 얼마나 원하는데?”강세헌은 이 상황이 그저 웃겼다.“요즘에 어느 만큼 하면 그만큼 해요.”강세헌은 송연아의 얼굴을 꼬집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네가 다른 사람과 같아?”“뭐가 다른데요, 다 시집가는 건데.”“목숨까지 다 줄 수 있어.”강세헌은 송연아를 감싸 안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다른 사람은 이렇게 할 수나 있겠어?”송연아는 강세헌을 살짝 밀어냈다.“입만 살아서는,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강세헌이 물었다.“그럼 옛날에 난 어떤 사람이었는데?”송연아는 더는 강세헌과 시시덕거리지 않았고 책상을 가리키며 말
송연아는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알아요, 당신에게 중요한 물건이라는 걸요.”강세헌은 다급히 설명했다.“보여주기 싫은 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거야...”“정말 중요하지 않아요?”송연아가 반문했다.그녀는 그가 이것 때문에 자신에게 화를 내는 무서운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예전에 송연아는 정말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신경 안 쓴다면 거짓말이었다.“세헌 씨, 당신도 과거라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여자를 짝사랑했다든지...”“됐어.”강세헌은 송연아의 말을 끊었다.송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강세헌이 화가 난 것 같았다!‘뭐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지난 일을 건드려서? 지금도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고?’송연아는 정중하게 말했다.“세헌 씨, 당신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는 거 아니에요?”강세헌이 말했다.“아니야.”송연아는 믿지 않았다.만약에 정말로 없다면 왜 이렇게 반응이 컸을까?그럼 도대체 누가 남긴 물건이기에 강세헌이 이렇게 신경 쓴단 말인가?“있는지 없는지는 본인이 잘 알겠죠, 난 우리의 관계가 어떤 일이든지 서로 고백하고 신뢰도가 넘치는 서로가 되기를 바라요. 만약 내가 언젠가 당신을 믿지 않는다면, 그건 반드시 당신 때문일 거예요.”말을 마치고 송연아는 몸을 돌려 걸어 나갔고 방문을 ‘쾅’하고 닫았다.강세헌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그가 송연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다만, 어떤 것들은 그냥 공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밥을 먹을 때 송연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밥을 더 먹고는 윤이의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나오지도 않고 안에서 그냥 잤다.강세헌은 오랫동안 송연아를 기다리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송연아는 평생 함께할 사람이니, 강세헌은 그녀에게 솔직해야 했다.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송연아가 자신을 의심하게 하고,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강세헌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방문을 열었고 주황색 무드등 불빛이 눈
강세헌은 말을 하면서 추억에 잠겼다.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더라도 강세헌은 그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송연아도 뭔가 알아차린 것 같았다.손에 들고 있는 상자를 보면서 뜻밖에도 약간의 기대를 했다.송연아는 천천히 상자를 열었고 안에 든 물건을 보더니 순간 멍해졌다.‘이거, 내가 어릴 때 잃어버린 옥패 아니야?’송연아의 할아버지가 선물한 거라 한 살 때부터 끼고 다녔었다.그래서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확실하다, 이건 분명히 자신의 것이다.완전한 녹색이 아니라 얼음 속의 씨앗과도 같은 녹색, 미륵불이 생동하게 조각되어있는 패턴 모양, 송연아는 옥패를 손에 쥐었다.강세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있었다.그 사건 이후로 강세헌은 물 공포증이 생겼다!하지만 그가 누군가?어떻게 스스로 인생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도록 용납할 수 있겠는가?강세헌은 훗날 자신의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했다!“당신을 그 어린 소녀가 구했다고요? 사실 그 어린 소녀가 구한 게 아니에요. 만약 그 소녀의 할아버지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그녀 또한 그 소년과 함께 연못에서 익사했을 거예요.”강세헌은 눈을 번쩍 치켜떴고 캄캄한 눈동자는 간간이 떨렸다.송연아가 어떻게 이 일을 알 수 있단 말인가?왜냐면 강세헌은 항상 그 어린 여자아이가 분명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는데,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를 끌고 올라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다만 그렇게 디테일한 일을...그녀의 할아버지?강세헌은 송연아의 할아버지가 한때 강의건의 운전기사로 일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뜻은 즉 강가네 저택에 수시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강세헌은 송연아가 그 여자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이렇게 자세한 것까지 모를 것이다.강세헌은 나지막하고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널 계속 찾았었어.”“우리 할아버지는 당신이 해코지당한 것을 알고 계셨고,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할아버지 자신도 말하지 않으
송예걸이 말했다.“누나 깨우는 게 내 일이야.”“...”송연아는 눈썹을 찡그렸다.그날 송예걸은 송연아에게 와서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일을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싹싹 빌었다.그리고 기꺼이 일을 맡았다.‘근데 맡은 일이 바로 이거라고?’송연아가 너무 터무니없어 실소했다.“세헌 씨가 시킨 일이 날 깨우라는 거야?”“대표님이 내일 결혼식 현장을 누나에게 보여주라고 하셨어. 거의 다 꾸며놨으니까, 뭐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한 번 가서 봐봐. 그리고 오늘만 고칠 수 있어, 내가 자진해서 누나 깨우겠다고 한 거야, 그래서 누가 이 시간까지 자래?”송연아는 송예걸을 바라보았다.“대표님?”송예걸이 말했다.“앞으로 내 상사니까 이렇게 불러야지. 회사에서 능력 없는 낙하산이라고 오해받고 싶지 않아. 난 꼭 밑에서 열심히 배워서 성공할 거야.”“그런 각오가 있다는 건 네가 다 컸다는 거야.”송예걸은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난 원래 어른이였거든? 빨리 일어나,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알았어.”송연아는 기지개를 한 번 켰다.그녀는 샤워하고 옷을 입은 뒤 계단을 내려갔다.오은화는 송연아를 보고 말했다.“제가 위층으로 올라가 사모님을 부르려고 했는데, 끝내 말리지 못했어요.”“괜찮아요. 저도 이제 일어나야죠.”송연아는 아침을 대충 때우고 송예걸과 함께 나갔다.송예걸이 차를 반 시간 남짓 몰아서야 결혼식장에 도착했다.장소는 운성시의 랜드마크인 유니버설 빌딩이었다.차가 멈추자 송예걸은 경비원에게 차 열쇠를 주었고 지하 주차장에 세워달라고 했다.왜냐면 위에 주차가 허용되지 않았고, 또 내일 결혼식장에서 차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강세헌은 내일 결혼식장에 기자가 있을 거라고 했고, 한 언론사에서 독점 보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송연아가 앞으로 걸어가자, 송예걸은 그녀를 따랐다.현장에 들어서자 송연아는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현장은 2천 명에 2백 테이블을 용납할 수 있는 피로연이었다.부드러운
송예걸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지만, 발걸음은 이미 송연아를 따라가고 있었다.“우리가 왜 올라가는데?”그들도 전문적이지 않았기에 올라가도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밑에 그렇게 많은 기자가 있는데, 잘못되면 또 소란을 피울 것이다.“이상하지 않아?”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송연아는 송예걸을 바라보았다.“어디가 이상한데?”송예걸은 여전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아마 일이 송예걸과 연관된 것이 아니기에 그의 경각심이 부족할 수도 있다.“사람이 뛰기도 전에 기자가 무더기로 왔는데 어디서 정보를 얻었겠어?”송연아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만약 이 사람이 정말 죽고 싶다면, 어딜 가든지 다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여기서 뛰어내린단 말인가?송연아와 강세헌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여기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결혼식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얼마나 재수가 없는가?!“그렇네.”송예걸도 이제 알 것 같았다.송예걸이 말했다.“우리가 이렇게 섣불리 올라가면 위험하지 않겠어?”“여자애처럼 보이는데 설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송예걸이 물었다.“설득하지 못하면?”송연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섰다.여기서 죽으면 결혼식은 할 수 없다.곧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송연아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이런 빌딩에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하지만 지금 이 층에는 아무도 없었다.아무도 뒤에서 몰래 계획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송연아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창밖에 서 있던 여인이 인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돌리자 송연아인 것을 보고는 ‘씩’하고 웃었다.“오랜만이야.”송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임설?”강세욱의 여자친구.강세욱은 이미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누가 널 시켰는데, 강세욱?”송연아는 곧장 용건을 말했다.임설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세욱 씨를 모든 걸 잊게 했잖아? 나까지 포함해서. 그런데 세욱 씨가 어떻게 나를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