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지지 마요.”송연아가 경고했다.“계속 장난치면 앞으로 내 침대에서 못 자요.”두 사람이 장난치면서 걸어갔는데 마치 달콤한 열애 중인 커플 같았다.강세헌이 그녀를 끌어안고 샤넬 매장으로 걸어 들어갔다.“들어가 보자.”송연아가 그의 팔을 잡았다.“됐어요...”“내가 돈 낼게.”강세헌이 그녀를 안고 걸어 들어갔다.그녀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서 아무것도 선물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마음에 드는 걸 사.”송민아가 입술을 오므리며 강세헌의 품에 더 기댔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으면 안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강세헌은 그녀를 도와 알맞은 옷을 고르고 있었는데 이때 직원이 다가오며 말했다.“여기 있는 옷들은 모두 전시용입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면 새 걸로 가져오겠습니다.”송연아와 알고 지낸 이후, 그녀의 옷은 모두 캐주얼하고 편한 옷 위주였는데 세련된 옷들은 비교적 적었다.하지만 송연아는 캐주얼한 옷과 어울렸다.방금 대학 졸업한 여대생처럼 젊고 활기차 보였다.강세헌이 그녀에게 어울리는 옷 몇 벌을 골랐다.검은색과 흰색 체크무늬 치마가 송연아에게 어울릴 것 같아 강세헌이 말했다.“그리고 이것도.”직원은 눈대중으로 송연아가 어떤 사이즈를 입는지 보고는 말했다.“맞는 사이즈를 가져다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피팅룸은 아주 프라이빗했다. 안에는 손님을 위한 디저트도 준비되어 있었다.강세헌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송연아는 옷을 피팅하러 들어갔다.강세헌은 역시 송연아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른 옷마다 송연아에게 잘 어울렸고, 사이즈도 맞았다.직원은 송연아를 위해 옷을 정리하던 중 그녀의 얼굴에서 목까지 이어진 흉터를 보고는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송연아가 알아채고는 재빨리 얼굴을 가렸다.직원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며 말했다.“죄송합니다.”송연아가 피팅룸으로 들어가서 원래 옷을 바꿔입고는 말했다.“가요.”그녀는 흉터가
송연아의 얼굴색은 어두워졌다.“결혼한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강세헌도 똑같은 의문이 들었다.두 사람 모두 고훈이 안고 있는 아기가 그들의 아기라고 생각했다.고훈은 항상 강세헌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니 말이다.송연아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강세헌을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게다가 고훈의 일 처리 스타일을 생각하면 보복하기 위해 그들의 아기를 숨겼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송연아는 잔뜩 흥분한 채로 그에게 따져 물으려고 했다.아이와 관계된 문제는 절대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강세헌이 다급하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충동하지 마.”송연아가 다급하게 말했다.“고훈 씨가 안고 있는 아기, 우리 아기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요. 어떻게 급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연아야.”강세헌이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이렇게 가서 묻는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을 거야.”“어머.”고훈이 그들을 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그리고 자랑하듯이 그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여주며 말했다.“나 고훈에게도 아들이 생겼다고.”그는 도발하듯 강세헌에게 말했다.“왜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지? 내가 아들이 생긴 게 그렇게 눈꼴 사나워?”“당신 아이야? 결혼한 지 며칠 되었는데 벌써 아이가 생길 수 있죠? 유전자돌연변이라도 한 건가요?”송연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훈을 보며 말했다.“고훈 씨, 저한테 불만이 있으면...”고훈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죠? 나는 왜 못 알아듣겠죠?”송연아는 잔말하지 않고 바로 그의 품에 안긴 아기를 뺏으려고 했다.고훈이 눈치채고는 한발 먼저 그녀를 피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사람들 보는 앞에서 내 아이를 뺏으려고 하는 거예요?”“당신 아이 맞아요?”송연아가 대놓고 의심하며 말했다.고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내 아이 아니면 연아 씨 아이겠어요? 나도 연아 씨 아이였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연아 씨가 과연 나를 위해 아이를 낳아줄까요?”“펑!”고훈이 말을
“어떤 목적이 있든 친자확인은 하는 게 좋겠어. 그 어떤 기회라도 놓쳐서는 안 돼.”강세헌이 차가운 얼굴을 거두고는 송연아를 안으며 말했다.“이제 가자.”그들은 차에 올라탔다.송연아가 안전벨트를 매고는 강세헌에게 말했다.“이 친자확인 말이에요, 내가 직접 할 거예요.”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또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강세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송연아는 마음이 긴장되기도 했고, 기대되기도 했다.강세헌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송연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에 기대고는 말했다.“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거예요?”강세헌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다.송연아도 강세헌의 뜻을 잘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부러 덤덤한 척하며 말했다.“알겠어요.”...강세헌은 송연아를 집에 데려다주고는 말했다.“잘 쉬고 있어.”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리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강세헌은 그녀가 집으로 들어선 걸 보고서야 차를 운전해 떠났다.“윙윙.”송연아가 문 앞에서 신을 갈아신을 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간 있으면 잠깐 만날래요?”그 목소리는...송연아는 바로 발신자 확인을 했다.고훈이었다.송연아는 잠깐 주저하다가 대답했다.“그럴 생각 없어요.”“내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건가요?”고훈이 계속 말했다.송연아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내가 왜 당신 아이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죠?”“좋아요, 관심이 없다고 하니 제가 할 말이 없네요.”고훈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송연아는 전화를 꽉 쥐고 있었다.만약 고훈을 만나러 가면 그가 안고 있던 아이가 자기 아이가 맞는지 더 빨리 확인할 수 있었다.그녀는 심사숙고 끝에 끝내 다시 고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는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어올 걸 알았다는 듯이 곧바로 전화를
문을 연 사람은 고훈이었다. 그는 조금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연아 씨가 또 약속을 어기는 줄 알았어요.”“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요.”송연아가 덤덤하게 대답했다.고훈이 몸을 비키면서 말했다.“들어와요.”송연아는 문 앞에 서서 잔뜩 경계하며 방 안을 둘러봤다.방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걸 보고서야 그녀는 비로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고훈이 문을 닫고 말했다.“왜 그렇게 경계해요?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두려운 거예요?”송연아가 말했다.“언제 성공한 적이 있었어요?”“...”고훈은 할 말을 잃었다.송연아는 교활한 여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훈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여기는 제 아내, 소연이에요.”이때 소파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예의를 갖춰 송연아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고훈 씨가 친구분이 온다고 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송연아는 고훈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녀도 예의를 갖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고훈은 그녀를 꼭 끌어안고는 송연아를 보며 말했다.“친구가 결혼하는데 오지도 않고, 너무 서운해요.”송연아가 설명했다.“그때는 집밖에 나갈 수 없었어요.”그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산후조리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요? 참, 아이는 어디 있어요? 언제 백일잔치를 하나요?”송연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훈을 보며 말했다.“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고훈 씨가 결혼하고 지금까지 두 달도 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아이는 어떻게 생긴 거예요?”고훈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품에 안은 여자를 툭툭 치며 말했다.“말해봐.”전소연이 말했다.“사실 저 고훈 씨랑 연애한 지 엄청 오래되었어요. 이번에 제가 임신해서 서둘러 결혼한 거예요.”그럴싸하게 들렸지만 송연아는 전혀 믿지 않았다.“그래요?”“왜요? 안 믿어요?”고훈이 물었다.“네.”송연아도 솔직하게 말했다.“내 아이가 없어졌거든요.
송연아는 머리가 어지러워 눈앞의 고훈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곧바로 고훈도 어지러운 증상을 보였고 똑바로 서지 못해 휘청거렸다.그래서 고훈은 소파에 앉아 머리를 힘껏 흔들면서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혹시 당신도 어지러워요? 저도 그래요.”전소연이 말했다.그리고 방금까지 전소연의 품에 안겨 울던 아기도 깊은 잠에 빠졌다.고훈은 조금 전, 송연아의 반응이 떠올랐다.송연아는 의사이기에 후각이 예민할 것이고 그녀는 뭔가 잘못된 것을 발견한 게 틀림없었다.고훈의 시선은 곧바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디퓨저에 꽂혔다.그 디퓨저는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 호텔 직원이 보내온 것인데, 별생각 없이 받았다.그것이 문제인 것이 틀림없다.고훈은 일어서서 디퓨저를 끄려고 했으나 그것이 놓인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소파에 앉아 있던 전소연도 혼미하고 말았다....송연아는 방에서 나와 복도에서 있던 진원우를 보았다.“원우 씨가 왜 여기에...?”송연아가 물었다.그러자 진원우가 대답했다.“대표님께서 고훈 씨 아이의 머리카락과 피를 구해오라고 했어요.”송연아는 그제야 영문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 방에 있는 디퓨저는 원우 씨가 한 거라고요?”진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이면 다 쓰러졌을 거예요.”송연아가 말했다.“함께 가요.”진원우는 이미 고훈이 묵고 있는 방의 예비 카드키를 발급받아 쉽게 문을 열 수 있었다.방문이 열리자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고훈을 보았다.이런 약은 어른들도 쉽게 취했기에 작은 아기들이 흡입하면 인체에 해로웠다. 그래서 송연아는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전소연의 품에서 아기를 안아 올렸고 재빨리 걸어 나갔다.송연아는 아이에게 바깥 공기를 마시게 했고 안에서 진원우는 디퓨저를 껐다.확실히 디퓨저는 진원우가 꾸민 것이었다.진원우는 바닥에 누워 있는 고훈을 보더니 그를 발로 걷어찼다.“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어디 덧나?”송연아가 말했다.“그들을 어떻게 처리하려고요?”“난동을 부리지 않게 묶어야
강세헌은 가볍게 ‘응’이라고 대답했다.그도 마음속으로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그 아이는 송연아의 아이가 아니었고 혈연관계가 전혀 없었다.털끝만큼도 없었다!강세헌의 눈 밑에서 실망한 기색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으나 이내 감쪽같이 사라졌다.강세헌은 송연아를 안으면서 조용히 달랬다.“괜찮아, 괜찮아, 아니어도 괜찮아. 우린 계속 찾을 수 있잖아. 오늘 새로운 단서를 찾았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강세헌은 전에 송연아에게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언질을 주었는데, 만약 이 아이가 정말로 송연아의 아이였다면, 고훈은 섣부르게 아이를 송연아에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그래도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는 현실을 마주하니 상실감은 어쩔 수 없었다.송연아는 아이가 고통받고 있을까 봐 두려웠다...그러나 의사로서 침착하고 이성적이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기에 송연아는 금방 감정을 추슬렀다.송연아는 진원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는 고훈에게 돌려줘요.”자기 것이 아닌 이상 둘 필요가 없었다.“그럼 이 아이는 고훈의 아이가 맞는 거예요?”진원우가 물었다.송연아는 고훈과 그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았다.그리고 했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말하는 동안 송연아는 강세헌의 의견을 묻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강세헌은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 듯 한동안 침묵했다.송연아가 말했다.“세헌 씨.”강세헌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송연아에게 말했다.“먼저 돌아가, 여기 일은 내가 처리할게.”송연아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강세헌이 자신만의 계획이 있는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알았어요.”“운전기사가 밖에 있으니까 태워 달라고 해.”강세헌이 말했다.송연아는 알았다고 대답했고 그 아기는 안에 있다고 말하고 가버렸다.송연아가 떠난 후, 강세헌은 진원우를 불렀다.“최근 두 달 동안 고훈의 행적에 대해 한 번 조사해 봐, 결혼한 여자와 아이가 정말로 고훈의 것인지도 포함해서.”진원우가 말
심재경이 몸을 돌리자 뒷모습이 안이슬과 닮은 여인을 보았다.순간 그는 마치 이성을 잃은 듯 달려들어 그 여자를 붙잡았다.“안이슬.”여종업원이 고개를 돌렸다.멀쩡하게 생긴 남자인 것을 보고 물었다.“손님,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심재경은 여종업원을 노려보았고 눈을 너무 부릅떠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이 여종업원은 어찌 이렇게 안이슬과 닮았단 말인가.완전 똑같은 사람이었다.“너 안 죽었어? 너 안 죽은 거야?”심재경은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맺힌 얼굴로 웃고 있었다.그러나 여종업원은 심재경이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손님, 사람을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심재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여자를 꼭 껴안았다.탁!여종업원이 들고 있던 그릇이 바닥에 떨어졌고 안에 있는 음식도 다 바닥에 흘렸다.여자는 자기가 변태를 만난 줄 알았다!그래서 겁에 질려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살려주세요. 여기요, 살려주세요!”“이슬아, 왜 그래?”심재경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왜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놀라는지 이해가 안 갔다.“날 잊은 거야?”심재경이 그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여종업원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다.“저기요, 이제 놓아주실래요?”그들의 소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무슨 일이시죠?”지배인이 걸어왔다.지배인은 땅바닥이 난장판 된 것을 한 번 보고는 웃으며 심재경에게 물었다.“심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혹시 이 종업원이 대표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습니까?”심재경은 생각에 잠겼다.이 여종업원은 안이슬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자신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방금 놀란 모습도 꾸며낸 것 같지 않았다.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안이슬이 혹시 날 잊어버렸나?’“이 여자 이름이 뭐예요?”심재경이 지배인에게 물었다.지배인이 말했다.“이수연입니다. 여기서 웨이터로 일한 지 두 달째인데, 심 대표님, 혹시 수연 씨를 아십니까?”심재경이 말했다.“네.”“난 그쪽을 모르는데요.”이수연은 지배인 뒤로 숨으며 일
심재경은 몸을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송연아인 것을 본 심재경은 어딘가 다급해 보였고 또 감격스러워 보였다.심재경은 성큼성큼 다가와 송연아의 팔을 잡았고 너무 흥분하여 횡설수설했다.“연아야, 나... 안이슬, 안이슬 봤어. 안 죽었어!”송연아는 심재경이 또 안이슬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환각을 보거나 억측을 하는 줄 알고 마지 못해 그를 맞춰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요.”심재경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나를 못 믿는 거야?”“믿어요, 믿는다고요.”“근데 믿는 사람치곤 너무 건성건성 대답하는 거 아니야?”심재경은 가까스로 진정한 후, 진지하게 말했다.“정말 안이슬을 만났다니까. 내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억측한 것도 아니고, 정말이야.”송연아는 심재경을 노려보았다.심재경이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럴듯했다.송연아가 물었다.“어디서 만났는데요?”“방금 여기에서, 종업원이었는데, 이름이 이수연이래.”“이수연?”“나도 못 알아보고 이름도 바꾼 걸 보면 기억을 잃은 것 같아.”심재경이 이렇게 말하자 송연아가 입을 열었다.“그럼 날 데려가서 보여줘요.”심재경은 송연아를 믿게 하려고 지배인을 불렀다.“방금 그 여자 종업원을 불러오세요.”지배인이 말했다.“이미 퇴근시켰습니다. 수연 씨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오늘따라... 심 대표님의 미움을 샀네요...”“집 주소는 알고 있나요?”심재경이 물었다.지배인이 말했다.“그건 모릅니다.”심재경이 계속 물었다.“그럼 전화번호는 있겠죠?”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주세요.”심재경은 절박해 보였다.송연아는 조용히 옆에 서 있었다. 심재경이 번호를 받고 나가려 하자 송연아는 심재경을 제지하며 말했다.“일단 따라와요.”송연아는 심재경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선배가 조급해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여자가 선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이렇게 섣불리 전화하면 겁을 먹어서 도망갈 수도 있어요.”심재경은 곰곰이 생각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