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입을 열었다.“마침 잘 왔네.”윤소민은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서 말했다.“재경 오빠, 황 사장 말이 다 거짓인 거죠? 황 사장이 오빠를 모함한...”“모두 사실이야.”심재경이 그의 말을 끊었다.“여기 서류에 사인해.”윤소민이 고개를 숙여서 보니 이혼서류였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심재경을 바라보았다.“저랑 이혼하겠다고요?”그녀는 심재경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심재경의 어머니는 지금껏 윤소민을 지지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눈빛을 피하며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심재경 어머니는 지금의 심재경은 이제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어머님, 재경 오빠가 저와 이혼하겠다고 하는데 가만히 계실 거예요?”윤소민은 한 번 더 희망을 품고 물었다.“이번에는 나도 어쩔 수 없어.”심재경은 이미 그녀에게 안이슬의 죽음으로 추궁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 말뜻은 바로 자기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거였다.심재경의 친모이긴 하지만, 그가 직접 감옥에 넣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다.그녀의 친아들이 확실하지만, 지금의 심재경은 이제 예전과 달리 냉정해졌다.그녀는 심재경의 변화에 기뻤다. 심재경이 지금처럼 냉정해져서 심씨 가문 전체를 지배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그래서 심재경 어머니는 윤소민의 일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방으로 올라갔다....아래층에서.윤소민은 여전히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아 휘청거렸다.심재경은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사인하면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데 계속 고집부리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때 가서 나를 원망하지 마.”그가 얘기하는 조금은 정말로 조금이었다.윤소민은 지금의 심재경이 마치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오빠, 변했네요.”“다 네 덕분이지.”윤소민이 진정하고 물었다.“아직도 그날 일 때문에 그래요? 그건 오빠가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잖아요?”“내가 왜 그런 짓은 해. 당신이야말로 부모를
윤소민 아버지에 대한 조사는 이미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는데 인터넷에 뿌려진 소식은 경찰한테 많은 물증과 인증을 제공한 셈이다.윤소민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정말 나한테 조금의 감정도 없는 거예요?”심재경은 어이가 없었다.“내가 너한테 감정이 있을 리가 없지.”윤소민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고개를 들고 웃었다.그녀는 화가 나고 원망스러웠다.“당신은 나와 이혼하고 자유를 얻고 싶은 거지? 꿈도 꾸지 마, 죽어도 이혼 안 할 거니까.”그녀는 미친 듯이 웃었다.“나랑 이혼하고 죽은 여자를 찾아가려고? 그럼 빨리 죽어서 저승에 가서 만나든가.”심재경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당신은 이제 나랑 조건을 따질 자격이 없어.”윤소민은 태어나서부터 부족한 것이 없었고 손해를 본 적도 없었기에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뒤에 든든한 부모가 버팀목으로 있는 듯싶었다.“조건을 말할 자격은 없을지 모르지만, 당신을 내 옆에 묶어 둘 수는 있겠지. 당신이 죽어도 그 죽은 여자와 함께 할 수 없게 할 거야. 당신 와이프 자리는 영원히 내 거야.”윤소민은 소리를 지르고 바로 돌아서서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녀는 울면서 뛰었다.얼마나 뛰었는지 지쳐서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계속 흐느끼며 눈물을 닦았고 자신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뒤로도 한참을 멍하게 있더니 그제야 어머니 생각이 났는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문은 이미 잠겨 있었고 어머니만 예전의 귀부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길옆에 거지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윤소민이 달려가며 불렀다.“엄마.”딸을 본 순간 그녀는 구세주를 본 듯이 와락 껴안으며 물었다.“괜찮니?”그녀는 윤소민이 심재경의 일 때문에 견디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다.윤소민이 어머니를 안심시켰다.“엄마, 미안해. 다 나 때문에 심재경이 이런 짓을 꾸민 거야...”윤소민의 말에 마지막으로 품었던 희망마저 사라졌다.“정말이야? 왜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윤소민은 고개를 돌렸고 자신을 잡은 사람은 심재경이였다.그녀의 차가운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바뀌었고 심재경한테 잘 보이려고 애썼다.하지만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심재경이 먼저 말했다.“당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내가 지시했어.”그러자 윤소민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굳어지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런데 왜 나를 못 들어가게 해요?”심재경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이혼 안 하면 뭐? 내가 못 들어온다고 하면 그런 거지. 안 그래?”윤소민은 심재경이 이렇게 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그녀는 동공이 확장되면서 놀라움과 후회가 뒤섞였다.조금만 더 일찍 심재경을 알아봤더라면 그를 믿지 않았을 텐데!그를 너무 믿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심재경!”그녀는 포효했다!심재경은 그런 윤소민을 무시하며 할 말을 계속했다.“이혼 서류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이렇게 급하게 돌아온 이유가 설마 돈?”윤소민의 눈이 씰룩거렸다.“너무 비열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심재경이 냉정하게 대답했다.“이거 모두 너한테서 배운 거야.”그러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윤소민이 따라 들어가려다 바로 제지당했다.너무 화가 난 윤소민은 현관문을 발로 쿵쿵 차며 죽어도 사인 안 할 거라고 소리쳤다....서원 연구센터.송연아와 연구팀에서 개발한 약은 시험단계에 들어갔다.동물로 시험해야 했기에 관찰 단계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송연아가 직접 약을 시험해 보려고 할 때 주석민이 그녀의 몸 상태를 생각해서 자진했다.“내가 할게!”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약은 그녀 아이의 목숨이 달렸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약을 시험하는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그녀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싶지 않았다.윙윙.송연아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녀가 핸드폰을 꺼내보니 강세헌이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송예걸의 위치를 알아냈고 이제 구하러 갈 거
잠자고 있는 찬이의 속눈썹은 자기 전에 울었는지 아직도 젖어 있었다.송연아는 찬이를 대신해서 아프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들 옆에 살며시 누웠다.한혜숙이 따뜻한 국 한 그릇을 가져다주며 말했다.“마시고 자.”송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시고는 다시 누웠다.한혜숙은 송연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그릇을 들고 나갔다.송연아는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수시로 잠에서 깼는데 세 번째로 깼을 때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어 조용히 일어났다.한혜숙은 그런 그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좀 더 자지 그래.”한혜숙은 최근에 너무 바쁘게 보내는 송연아가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찬이의 일이었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또 이렇게 바쁘면 지내면 강세헌을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나 연구센터 가봐야 해요.”송연아가 말했다.한혜숙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찬이를 돌보는 것뿐이었다.돌아오는 길에 송연아는 강세헌의 차를 봤다.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송연아는 강세헌이 왜 병원에 가는지 궁금했다.‘누가 사고가 났나?’그녀는 운전기사에게 따라가라고 말했다.곧 차는 병원 앞에 천천히 멈췄다.송연아는 차에서 내리며 기사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그녀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병상에 누워있는 송예걸을 보았다.“세헌 씨!”송연아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어떻게 된 거예요?”강세헌은 뒤돌아보다가 뜻밖에도 그녀를 보았다.그는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구출할 때 사고가 있었어.”사실은 송예걸을 숨긴 곳에 경호원 두 명이 지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덫이 있었다.경호원 두 사람은 강세헌이 쉽게 처리했지만, 송예걸을 데리고 나올 때 덫에 걸려 송예걸의 가슴에 칼에 찔렸다.송연아는 자세한 과정을 묻지 않고 서둘러 송예걸의 상처를 확인했는데 그녀는 단번에 심장이 다쳤다는 걸 알아채고 다급하게 외쳤다.“의사 불러요.”“여기에 의사 있어, 당신...”강세헌이
두 사람 모두 이런 상황에서 만날 거라는 걸 몰랐다.엄마가 될 거여서 그런지 최지현의 성격이 훨씬 부드러워졌다.송연아를 다시 만나니 예전의 질투나 원망 같은 건 더 이상 없었다.임신 기간에 그녀는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송연아가 본인한테 빚진 게 없다는 것과 강세헌이 처음부터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처음부터 송연아를 대신해 강세헌과 가까워질 기회를 얻은 건 바로 자신이었다.그런데 최지현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당연하게 여겼었다.“너...”송연아가 막 말을 하려던 때 최지현이 먼저 말을 꺼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허약했다.“우리는 참 운명인가 봐. 이렇게 인생 마지막 순간에 만날 수 있는 걸 보면. 우린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에서 일했어. 그런데 네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수해서 정말 부러웠어. 사실은 질투였지만.”송연아는 예전에 최지현을 미워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고 모든 걸 내려놨다.“최닥 지금 양수색전증이야. 우리 다 의사니까 지금 상황에서 살릴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거 최닥도 잘 알 거야. 만약 죽으면 심장을 기증할 의향이 있어?”송연아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최지현은 송연아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누가 필요한데?”최지현이 물었다.“송예걸.”송연아가 대답했다.송예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최지현은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동의하는데... 조건이 있어.”“말해.”“나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거 인정해. 하지만 애는 죄가 없잖아. 내가 죽으면 우리 애한테 화풀이하지 말아줘.”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았다.최지현이 과거에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했어도 엄마가 된 지금, 그녀는 아이 걱정뿐이었다.최지현도 이제 그저 한 아이의 엄마일 뿐이다.송연아는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너는 너고, 아이는 아이야. 아이한테 화풀이 같은 거 안 해.”“전에 지은 죄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내 심장 기증할게.”최지현은 고개를 들어 송연아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최지현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송예걸을 살리기 위해 송연아는 곧바로 송예걸의 심장 이식 수술을 준비했다.송연아의 실력이 이 분야에서 최고이기에 비록 위험한 수술이었지만 성공적으로 끝났다.수술 후, 송예걸은 중환자실에 들어갔고 거부반응도 없었다.최지현의 심장을 뜯어낸 사실을 알고 주혁은 병원에서 한바탕 난동을 벌이고 있었다.“당신들 우리 지현이 심장을 꺼내려고 죽인 거지? 경고하는데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주혁이 분노했다.병원 측에서 최지현이 서명한 기증 동의서를 보여주었는데 주혁은 거기에 적힌 필체가 정말 최지현의 필체임을 알아보고도 여전히 믿지 않았다.최지현의 죽음에 대한 분풀이를 병원에 하려는 거였다. 이번 기증 절차가 확실히 정상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에 병원을 고소하겠다고 난동을 피웠다.주혁이 계속 난동을 피우면 병원도 심각해질 수 있기에 송연아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직접 그를 만나러 갔다.송연아를 보자마자 주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당신이 한 짓이지?”송연아는 의자에 앉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최지현과 원한이 있는 건 맞지만, 최지현의 죽음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어요, 믿지 못하겠으면 얼마든지 부검을 신청해요.”“넌 의사잖아. 이미 다른 사람이 찾아볼 수 없게 손을 썼겠지.”“그런 능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그래?”주혁은 자리에 앉아서 그녀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물었다.“너랑 지현이는 늘 사이가 안 좋았잖아. 기회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었다고?”송연아는 조금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확인해 봐요, 양수색전증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건 모든 임산부가 겪어야 하는 건데 걸리기만 하면 거의 모두 사망이에요. 의사가 비록 응급조치했지만 이미 늦었어요. 최닥도 의사이기에 잘 알고 있었고요. 그리고 그가 구하는 사람이 송예걸인 걸 알았을 때 바로 동의했어요. 왜 송예걸한테 기꺼이 심장을 기증하려고 했는지는 내
강세헌은 손을 뻗어 송연아의 어깨를 감싸더니 부드럽게 품에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생각 해?”송연아는 그가 계속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장 비서한테 들키면 어떡해요?”강세헌은 그녀를 차에 앉히며 말했다.“지금 그럴 시간이 없을 거야.”...장 비서는 현재 고급 웨딩 숍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그녀는 강세헌이 직접 주문 제작해 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쁨에 푹 빠져 있었고 그가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받아들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일부러 다이아몬드 주얼리 세트까지 착용하고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만끽했다.“웨딩드레스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웨딩 숍 직원이 아부했다.장 비서는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그녀는 지금 주위의 부러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뻐했다.“이제부터는 사모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직원이 물었다.장 비서는 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직은 아니에요. 결혼식이 끝나면요.”“웨딩드레스도 다 준비하셨으니 곧 결혼하시겠네요?”직원이 물었다.장 비서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거만하게 대답했다.“물론이죠.”“축하합니다!”직원의 축하에 장 비서는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바싹 쳐들고 득의양양해하며 지금까지 한 모든 짓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송연아는 차에 앉아 나른하게 몸을 기대었다.워낙 몸이 허약한 그녀는 수술 후 더 피곤했다.“당신이 송예걸을 구한 걸 장 비서가 알까요?”“아니.”강세헌의 표정이 차가웠다.“찬이의 약때문이 아니라면 이미 오래전에 죽였어.”송연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찬이를 치료할 약은 이미 임상 단계에 있으니, 부작용만 없으면 찬이에게 약을 투여할 수 있어요.”강세헌이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왜 멈춰요?”송연아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건실하고 따뜻한 몸에 부딪혔다.강세헌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익숙한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자, 송연아의 몸이 순간 나른해졌다.“다
하늘의 별처럼.강세헌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다.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순간 서로의 체온이 느껴졌다.송연아는 눈을 감고 턱을 들어 올리며 조금 더 바짝 다가갔다.이건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 순간이었다.두 사람은 한참을 키스한 뒤 헤어졌다.강세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집에 데려다줄게.”송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 연구센터에 가봐야해요. 주석민이 약을 먹었는데 상태를 확인해봐야겠어요.”강세헌은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동을 걸었다....심재경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오늘 발표된 공지를 보고 있었다.윤소민 아버지의 사건은 모두 끝났다.그는 규칙과 규정을 따르지 않고 금지된 장비를 사용하여 여러 사람이 죽는 참사를 일으켰고 회개하지 않고 뇌물 공세를 한 것이 모두 밝혀졌고 또 심재경과 황 사장의 조력으로 28년 형을 선고받았다.윤소민 아버지는 지금 51세이고 나오면 거의 80세가 될 것이다.그때까지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윤소민 어머니는 법정에서 바로 기절했다.그들 가족이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윤소민은 실신한 어머니를 안고 아버지가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윤소민은 마침내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심재경과 황 사장한테 회사마저 빼앗겨서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녀를 지켜줄 아버지도, 집도 이제 더 이상 없었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 모든 것이 심재경 때문이다!윤소민은 자신이 바보 같았다.사랑 때문에 집안 전체가 파멸되었다. 그녀는 복수를 다짐했다.하지만 어머니를 병원에 보낸 후, 복수는커녕 어머니를 치료할 돈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지금 시집에는 들어갈 수 없고 친정집은 황 사장이 봉쇄한 상태였다.이제 가지고 있던 돈도 다 써버려서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아직 계산하러 안 가셨어요? 얼른 가서 병원비 납부하세요. 어머님 검사하러 가셔야 하는데 규정상 납부가 안 되면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간호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